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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The Accidental Husband)



#1.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만 치미는 양키식 러브 스토리


가끔 미쿡아해들의 연애관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이 많은 듯싶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반인륜적 폐륜아적 퍼포먼스일 터인데, 걔네들에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가 보다. 이번에는 그러한 자태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미쿡아해들만의 상식초월 이해불가 황당무계 번갯불 콩 볶아먹기식 러브스토리 무비를 한편 소개할까 한다.


<너무나도 불장난스러운 사랑영화. 그래서 남자주인공 직업이 소방수인가?>



제목하여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원제는 The Accidental Husband로, 해석하면 <우연한 남편> 정도가 되겠다. 한 마디로 전혀 엉뚱한 작명기법으로 한국의 관객들을 우롱하겠다는 배급사의 음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제목에 낚여서 이 작품을 감미로운 로맨틱 코미디로 기대하였다면, 영화가 끝난 후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듯한 껄적지근한 느낌이 들 것이다. 솔직히 출연진만 놓고 본다면 설마 낚이겠어? 하는 심정이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많은 주가를 올린 우마 서먼이 등장하고, 연기력 검증된 콜린 퍼스와 제프리 딘 모건이 더블 타워를 구축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단단히 마음 잡고 만들었나 보다 싶은 기대감이 든다. 제프리 딘 모건이 누구인고 하고 잘 모르시겠다면, <왓치맨>에서 코미디언으로 나온 그 콧수염 아저씨를 떠올리면 되겠다. 전혀 매칭이 안되겠지만, 이 사람 나름 수염깎고 보면 잘생긴 호남형이다. 느끼하게 보셨을지 몰라도 이 작품에서는 그래도 로맨틱한 남자로 나오니 살짝 기대하시길. 어쨌든 캐스팅도 나름 빠방하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고, 더욱이 연출도 부족한 부분이 없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들의 연애관이 도무지 우리내 정서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표방해 놓고서는 코미디도 아니다!! 보는 내내 필자를 이토록 답답하게 만든 영화는 근래에 없었다.


<요근래 가장 덜떨어져 보이는 역을 맡은 우마 서먼. 살짝 안습이다>



#2. 스토리 - 어쩌다 건드린 그녀가 쩔꺽 낚여버리다


그럼 먼저 그 문제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라디오 방송연예인인 엠마 로이드(우마 서먼)는 여러 여성 애청자들과 라디오 상담을 통해 사랑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초절정 인기의 연애심리학 박사. 그녀에게는 엄청난 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완벽남친 리처드(콜린 퍼스)가 있었다. 곧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완벽커플의 베스트 샘플. 


어느 날 엠마는 한 애청자로부터 상담문의를 받게 되고, 여자친구는 내팽개치고 허구한날 축구하며 욱해서 화내고 지 멋대로 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이라는 말에 엠마는 그런 남자는 과감히 버리라고 조언을 해 준다. 그 말에 덥석 낚여버린 애청자. 결국 애청자는 남자친구를 버리고 돌아서고 만다. 이 비련의 애청자 이름은 소피아(크리스티나 클레베). 그리고 그녀를 상처입힌 무책임 남친은 동네 소방수로 근무 중인 패트릭(제르피 딘 모건). 


패트릭은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고 소피아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 그녀이다. 이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패트릭. 그 날로 죽을 맛이 되어 전전긍긍하다가, 여친이 자신을 내친 이유가 바로 엠마의 라디오 전화 상담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침 컴퓨터 크래킹에 능통한 꼬마놈 덕에 엠마의 프로필에 자기를 남편으로 떡 하니 등록시키는 엄청난 장난을 걸게 된다. 이 때까지는 순전히 복수심에 의해 엠마의 인생을 망쳐보려는 패트릭의 심보였던 것. 이 사실도 모른 채 남친 리처드와 함께 혼인신고를 하러 간 엠마는,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서류상 이미 결혼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류정정을 위한 확인서에 도장을 받기 위해 남편으로 등록되어 있는 패트릭이라는 사람을 찾으러 떠난다. 


힘겹게 패트릭을 찾은 엠마는 그 때부터 패트릭의 수에 넘어가게 되는데, 술집에서 진탕 술을 퍼마시고는 그대로 뻗어버렸던 것. 패트릭은 엠마를 자신의 집에서 재우고, 마치 무슨 뜨거운 밤이라도 벌인 것처럼 슬쩍 속여넘긴다. 졸지에 필름 끊기고 대박 사고 친 줄로 아는 엠마. 정신차리고 직빵으로 회사에 출근하지만, 리처드는 이미 화가 난 상태. 일이 자꾸만 꼬여가자 어떻게든 사실을 은폐한 채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엠마.


<이봐 사당에서 신촌까지 학생 2명 얼마냐구!!!>



패트릭은 마치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다시 엠마의 회사까지 찾아와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엠마는 결혼 준비를 위해 케익 시식회를 가야 했는데, 패트릭이 너무 달라붙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시식을 하러 가게 된다. 거기에서 패트릭은 분위기상 예비신랑 역할을 해야했는데, 옳거니 싶어 아예 대놓고 오버질을 하기 시작한다. 게걸스럽게 케익을 먹어 식당의 고귀한 품격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며 주변 고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모한 호탕함이 통한 것일까? 고객들도 그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서서히 하나된 분위기가 되어 간다. 결국 독일에서 온 모 아주머니가 열렬한 팬이 되었던 것. 


패트릭은 도와줄 듯 도와줄 듯 하면서도 질질 끌고 계속 리처드에게 사실을 은폐하고 혼자서 처리하려는 엠마의 고군분투. 어느 날 마침 파티가 열리고, 그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지난 케익 시식 때 열렬한 팬이 된 그 독일 아주머니였던 것. 알고보니 그 아주머니가 리처드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꿀꺽 삼키려는 모 재벌그룹 회장의 사모님 되셨던 것이다. 엠마의 팬이 된 이 아주머니가 당연히 남편 몰래 엠마에게 미리 귀뜸을 해주게 되고, 아주머니는 자기가 도울 테니 리처드를 불러 남편을 설득시키자고 한다. 그런데, 실제 리처드가 아닌 패트릭을 리처드로 착각하고 있었으니 이 때부터 더 큰 일이 터지는 셈. 이 때 패트릭이 도착하게 되고 패트릭을 리처드로 소개받은 재벌그룹 회장은 처음에는 경계스런 반응이었으나, 축구를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 패트릭과 축구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서로 삘이 통했는지 급격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진짜 리처드는 무슨 일인가 싶어 왔다가 졸지에 엠마로부터 남동생 칼이라고 소개받으며 굴욕을 당하게 된다. 영문도 모르는 리처드에게 엠마는 결국 비밀을 말해 주지만, 리처드가 뚜껑 열리는 것은 당연지사. 아무튼 패트릭의 뛰어난 붙임성 덕분에 그들은 저녁 만찬 약속을 잡게 된다. 저녁 만찬에서 재벌그룹 회장은 리처드에게 회사매각 사실을 알리려던 심산. 그리고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패트릭의 1등급 주둥아리. 엠마는 결국 패트릭에게 SOS를 보내고, 재벌그룹 회장과의 저녁 만찬에 참석해서 리처드 역할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뒤늦게 만찬에 도착한 패트릭. 패트릭은 불편한 럭셔리 저녁 만찬 대신 자기네 동네에 가서 파티를 즐기자고 초대를 한다. 사실 패트릭이 사는 동네는 인도인 주거 지역으로, 집안 구성원이 모두 인도인이었던 것. 마침 컴퓨터 크래킹의 진범인 꼬마놈이 성인식을 치르는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에 재벌그룹 회장 커플을 모셨던 것이다. 의외로 효과 만점. 이 때문에 재벌그룹 회장은 리처드를 다시 생각하기로 하였다. 


<왓치맨의 콧수염을 제거하니 20년은 젊어보인다 오빠~>



한편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엠마를 사랑하게 된 패트릭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게 된다. 이에 엠마는 끌리는 듯 하면서도 리처드를 생각하며 뿌리치고 돌아선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였던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엠마. 패트릭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고 다음 날 라디오 방송 중인 엠마의 회사로 가서 전화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쩔꺽!! 떡밥에 제대로 물리는 엠마. 결국 그날로 바로 진짜진짜 뜨거운 밤을 보내는 두 사람.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엠마가 패트릭의 방에서 자신을 복수심으로 접근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증 제시로 할 말이 없어진 패트릭. 엠마는 바로 도망가버리고, 패트릭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해준다. 바로 엠마가 소피아 때문에 자신을 찼던 사실을 알려주고, 처음에는 엠마의 인생도 망치고 싶어 그랬다는 것을. 뭐 이정도 얘기까지 나오면 엠마도 솔직히 기분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결국 엠마는 이별을 고하고 다시 리처드에게 돌아가 미안하다며 받아달라고 한다. 마음씨 넓은 리처드는 그렇게 엠마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 애비에 그 딸래미라더니, 하여간 바람피는 기질은 유전적으로 타고 났다>



#3. 초강력 범죄를 묵인하는 미국식 연애관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쩌다 보니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어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로맨틱 영화가 그렇겠지만, 이 영화도 사랑을 연결해 나아가는 주제의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찾게 되는 과정이 너무 로맨틱하지가 않다는 것. 남자주인공 패트릭이 하는 짓도 그렇고, 여자주인공 엠마가 하는 짓도 그렇지 않은가? 오히려 철없는 것들이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만나서 이것 저것 다 무시하고 홀라당 사랑에 빠진다는 듯한 내용 아니겠는가. 현재 결혼을 앞둔 커플들은 절대 이 영화를 봐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철썩 같은 믿음도 이토록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영화 내내 답답함을 선사한 주범은 바로 엠마의 행동. 우마 서먼이 어쩌다 그런 캐릭터를 맞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강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연기를 펼쳐왔던 그녀와는 너무도 다른 배역인 것 같았다. 작품에서의 엠마는 그야말로 줏대도 없고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해결하지도 못하는 못난 여성 캐릭터. 같은 여자가 보아도 정말 속이 터져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싶은 심정일 정도라면 말 다했을 듯.


<이 영화의 감독이 인도로부터 협찬을 받은 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패트릭이 저지르는 짓도 완전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능구렁이같이 넘어가는 꼴이 너무 어이없다. 남의 정보를 크래킹으로 조작하는 사이버범죄를 저지르고, 결혼을 한 것으로 위조하는 사기범죄를 저질렀으며, 지속적으로 사랑한다고 스토킹하고 따라다닌 등의 간접협박을 하는 등의 멀티범죄자 우수등급감 패트릭.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잘못한 것 없다고 배짱 튕기는 것도 대단하고, 거기에 이렇다 할 법적 대응도 하지 못하고 훌러덩 넘어가는 엠마도 참 답이 안 나온다. 흥분하면 단 것만 잔뜩 쳐먹는 리처드는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돈 많고 능력있어도 단 것만 쳐먹으면 죄인가? 오히려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본능에 순응하며 사는 패트릭은 죄가 없단 말인가? 리처드도 분명 사람이고 사랑에 대한 갈망도 있고 하지만 결국 사랑을 놓치고, 단지 느끼하게 생긴 마스크로 여심 녹여주시는 패트릭에게 사랑이 꽂히는 이유는 뭐냐구. 이거 완전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요상한 논리만 심어주는 꼴인 것 같다. 



#4. 요새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주제는 막장 


솔직히 필자는 얼마 전에 이런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 때도 참 어이없어 하며 정신세포를 난도질 당했더랬다. <댄 인 러브>라고 하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그것도 비슷하게 전자렌지에 닭 튀겨먹는 시츄에이션식 폐륜아적 사랑만들기 스토리를 선보였기에 꽤나 트릿하게 느꼈었는데, 이 작품은 그보다 더 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하여 <댄 인 러브>까지는 리뷰 생각도 안했더랬는데, 이 작품으로 그만 필자가 고통받았던 형이상학적 좌절감을 독자 여러분들께 알리고 싶어졌던 것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봤다가 훌러덩 한 입에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가슴 따뜻한 영화>



미쿡아해들의 연애관은 참으로 자유롭다. 개인주의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자신만의 삶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다. 어찌보면 좋아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내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복구 불능의 가랑이 파열 진단을 받을 수 있는 법. 우리는 오히려 국산 로맨스나 일본 로맨스에 더욱 진한 감동과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내 정서와 어울리기 때문이려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막장 드라마 소재로 등장할법한 내용을 나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승화할 수 있는 헐리우드의 “Don’t Worry, Be Happy”식 마인드를 생각해보며, 이런 영화 너무 자주 보다가 우리들 마음만 뭉그러지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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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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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2)

Movie 2016. 4. 1. 16:10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11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2012 (2012)



#1. 심심하면 튀어 나오는 뜨거운 감자, 지구의 종말


예부터 지구의 종말은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신화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지구의 종말은 우리네 삶과 결코 먼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왔다. 고대의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던지 간에,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구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어왔고, 그것은 당시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을 순식간에 멸종시킬 정도의 가공할만한 변화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서인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인류도 언젠가는 떼죽음을 당하겠거니 하고 본능적으로 느껴왔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언젠가는 들어맞을 수 밖에 없는 어거지식 예언을 뿌렸던 바, 그것이 바로 인류의 종말이었다.


<힘들게 산 꼭대기에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스님의 슬픈 뒷모습이 압권>



20세기 말에는 세기말적 현상때문인지 종말에 대한 이슈가 시끄러웠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의 시기가 마침 도래했던 것이다. 게다가 종교계에서도 휴거가 올 것이라는 말이 성행하면서 집단자살 유행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별 일 없다는 듯이 살아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종말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는 매스컴까지 아주 대놓고 떠들어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종말론계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급 매니아인 한 사나이가 종말을 시각화한 또 한편의 자신의 작품을 내놓게 된다. 바로 영화 <2012>이다. 숫자로 제목을 써서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고 의문을 품는 분들을 위해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주구장창 읊어나가겠다.


<지구 최후의 시각을 잘못 예측하여 나름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애드리언 박사>



#2. 스토리 -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인간의 종족보존능력


때는 2009년. 지질학계의 유망주 애드리언 헬슬리(치웨텔 에지오포) 박사는 동료의 부름을 받고 인도의 한 지역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는 지구의 내부운동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되었다는 것. 바로 최근에 심각해진 태양의 대폭발로 인해 중성미자가 다량으로 지구로 뻗쳐오면서 지구 내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본능적으로 지구가 곧 과열해서 폭발하고 말겠구나 하고 감 잡는 애드리언. 애드리언은 즉시 미국으로 돌아와 환경부장관인 앤하우저(올리버 플랫)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에 지구의 위기가 대통령(대니 글로버)에게까지 보고되고, 세계의 수장들은 그 이후 지구의 종말이 될지도 모를 이 사실을 비밀리에 대응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12년. 최근들어 지진이 심해진 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소설작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이혼한 후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선다. 얼떨결에 링컨 리무진을 끌고 가서 아이들과 자연 탐방을 하게 된 잭슨. 잭슨은 자신의 딸 릴리(모갠 릴리)와 아들 노아(리아 제임스)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외부통제가 되어있는 것. 그래도 배째라 마인드로 기어이 쳐들어가는 세 사람은, 예전에 호수였던 곳이 홀라당 말라버린 비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치는 군인들. 졸지에 군인들에게 잡혀간 잭슨과 아이들은, 마침 그곳을 담당하고 있던 애드리언 박사와 만나게 된다. 애드리언 박사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지구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에 구축된 비밀기지에 앤하우저 장관의 명으로 급파되었던 터였다. 애드리언 박사는 마침 잭슨을 알아보고 자신이 잭슨의 저서의 애독자라고 소개하면서 급친한척 한다. 이 때문에 아무 탈 없이 풀려나게 되는 잭슨.


<통제구역 강제침입이라는 강수를 두었다가 결국 팔자 피게되는 잭슨>



그런데 공원을 나서자마자 이번에는 웬 미치광이 히피족이 달려들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는다. 잭슨은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그 미치광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겔겔대면서 사라진다. 


그날 밤, 공원 근처에서 야영을 하던 잭슨과 자식들은,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어색한 가족분위기를 풀지 못한 채 어색함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잭슨은 그 소리를 따라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낮에 보았던 미치광이 남자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용을 들어보니, 잭슨이 줄곧 들어왔던 찰리 프로스트(우디 해럴슨)라는 라디오 방송가가 바로 그 미치광이였음을 알게 된다. 찰리는 이제 지구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면서 그 모든 사실을 정부가 숨기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사나이였던 것. 평소 찰리의 애청자였던 잭슨은 이내 아는 척 하고, 찰리는 잭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부의 음모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지구는 곧 종말할 것이고, 정부는 이미 종말에 대비해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이에 잭슨은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떠나버린다. 


한편 캘리포니아에서는 잭슨의 전 부인인 케이트(아만다 피트)가 새 남편 고든(톰 맥카시)과 장 보러 나왔다가 땅이 갈라지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케이트는 급하게 아이들을 부르고, 잭슨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서 컴백 홈한다.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그저 몸 하나만 달고 도망가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미스테리>



다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잭슨은 부업으로 하고 있던 운전기사 알바를 뛰기 위해 또다시 출동한다. 유리 카보프(즐라고 뷰리치)라고 불리우는 러시아 대부호의 운전기사로 고용되어 그의 두 쌍둥이 아들들을 집으로 보내주는 역할이었던 것. 그런데 평소 싸가지없기로 유명한 두 아이때문에 진절머리가 났던 잭슨은 아이들을 집이 아닌 공항으로 데려다주고는 이제 일을 때려칠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 때 비행기에 오르던 쌍둥이 중 하나가 “너희들은 곧 죽을꺼야.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멀리 날아갈거니까”라고 잭슨에게 말한다. 이에 잭슨은 갑자기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 얘기를 상기하며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계속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여론 흘리기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태를 직감한 잭슨은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었고, 무언가 곧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믿은 잭슨은 급하게 케이트에게 전화해 빨리 도망갈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하여간 타이밍도 기가 막혀서 땅이 갈라지고 집이 폭삭 무너지기 직전에 케이트와 아이들, 그리고 사이 안 좋은 고든까지 구출하게 된 잭슨. 링컨 리무진으로 웨딩카가 아닌 구출목적으로 활용하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캘리포니아 지대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그러다가 더 이상 땅에 붙어있다가는 살 가망이 없다고 보고 공항으로 달려가 미리 마련한 작은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무너져 내리는 활주로를 겨우 이륙하여 목숨을 건진다. 


한편 지구가 본격적으로 지각변동의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비밀 플랜을 가동하고, 비밀리에 구축한 비밀기지로 우주선 탑승 대상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신호한다. 대부분이 10억 유로라는 거금을 지불한 대부호였던지라, 그 중에는 유리도 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비밀기지로 향한다.


<결국 날고 기는... 아니 나는 놈들만 살아남게 되는 시츄에이션>



어쨌든 겨우 목숨을 건져 비행기로 연명하고 있던 잭슨 일행은,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을 타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가서 장소를 확인하려고 한다. 옐로우스톤에 다시 도착하지만, 그의 트럭에는 라디오 방송만 나올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죽기살기로 찾아본 결과 찰리는 어느새 옐로우스톤 산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지구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화산폭발까지 일으키는 옐로우스톤. 그 광경에 취한 찰리는 그대로 죽기를 바란다며 살기를 거부하고, 우주선의 위치를 알리는 지도는 알아서 찾으라고 한다. 


일단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산재와 불덩어리를 피해 살아야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죽기살기로 또 도망치는 잭슨. 겨우겨우 지도까지 얻어서 비행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옐로우스톤을 탈출한다. 그런데 이게 웬 병 주고 약 주기? 지도를 보니 우주선의 위치가 중국이었던 것. 경비행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판국인지라 잭슨은 더 큰 비행기가 필요하다며 인근 공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공항에는 유리가 비행기가 없다고 못 가고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 마침 몰려오는 옐로우스톤 화산폭발의 후폭풍 때문에 어떻게든 탈출이 시급했던 일행들은, 유리의 충실한 조수 사샤가 급히 마련한 러시아제 대형 수송기를 구해서 일단 죽기살기로 또 도망친다. 결국 사샤와 고든의 콤비플레이로 겨우겨우 무너지는 땅덩어리를 뒤로 하고 살게 된 일행들.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탈출극이 벌어진다. 리무진이 슈퍼카로 돌변하는 그 장면!!!>



식구가 늘어난 잭슨 일행은 이제 수송기에서 안심을 하며 중국까지 갈 것을 꿈꾼다. 그런데 문제는 연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 그래서 중간에 하와이에도 들려보려고 하지만 이미 하와이도 쑥대밭이 되어있던 터라, 그야말로 이제는 갈 데까지 가서 바다에 비상착륙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제 워싱톤도 무사하지 않게 되자 대통령은 자신의 딸 로라(탠디 뉴튼)에게 지구 종말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종말에 대해 알고 있던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비밀리에 살해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를 알게 된 애드리언은 일반 시민들도 알 권리가 있다면서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낸다. 이에 삘받은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을 결심하고, 유일한 탈출구였던 에어포스원에 자기 대신 자신의 딸과 애드리언을 태운 뒤 쓰나미에 무너지는 워싱톤과 함께 장렬히 희생한다.


위기의 순간을 함께 넘기며 이제 어느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잭슨과 가족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 첫 번째로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것. 원래 중국까지 가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질 예정이었으나.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 중국대륙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면서 다행히 비행기가 중국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결국 히말라야 고원지대의 어느 지역에 불시착해야 하는 일행들은, 수송기 안에 있던 유리의 수집품 중 가장 튼튼하다는 벤틀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비행기에서 떨어져나와 무사히 착륙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기수를 놓지 않았던 미남 조수 사샤는 결국 비행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되고 만다.


<등에 업은잭슨의 딸이 마치 외계인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고원지대에서 발이 묶인 일행은 때마침 지나가던 중국군의 헬기에 발견되어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들은 우주선의 티켓만 가지고 있는 유리와 그의 아들들만 태운 채 버리고 떠나간다. 졸지에 제대로 버림받게 된 일행들. 결국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어디로든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운이 억수로 좋았는지, 마침 자신의 가족들을 태우고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티벳 승려 니마(오스릭 차우)를 만나 그들과 함께 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들만 몰래 우주선에 태우려던 니마의 형 텐진(친 한)은 잭슨 일행을 거부하고, 니마의 어머니의 설득에 못 이겨 겨우 잭슨 일행까지 태우기로 한다.






<멜 깁슨과형사 노릇하다가 어느새 대통령까지 해먹는 대니 글로버>



#3. 종말, 그거 과연 일어나기는 하는 겁니까?


앗…생각보다 스토리가 길었다.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지구가 어떻게 박살나는가가 전부인데, 워낙 긴 런닝타임(150분)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작품의 요지는 결국 인류가 지구의 환경변화로 인해 멸종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아서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모티브가 지구의 종말론이었던 만큼, 종말론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가자. 이 작품의 제목이 2012인 것은 2012년에 지구가 종말한다는 모종의 이론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고대 잉카문명의 마야 인들이 만들었다는 마야 달력. 마야 달력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일 정도로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이 달력은 5128년을 주기로 계속 돌아가게끔 만든 매우 장시간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달력이다. 그런데 이 달력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2012년 12월 21일(혹은 23일)까지만 달력이 계산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찬란만 문명과 고도의 천문학,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마야인들이 왜 달력을 2012년까지만 나타내도록 만들었을까? 그 달력에는 2012년 이후에는 더 이상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써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그 이후의 날짜를 셀 달력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2012년 종말론이 급 대두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또 하나의 사실이 2012년 종말론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현대의 인류가 만든 최고의 예측기계인 웹봇.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로 개발된 웹봇은 지구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계이다. 그런데 이 로봇이 2012년 이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웹봇이 그 이후의 지구는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러한 것들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객관적 사실만을 고집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지구의 종말은 아직 먼 미래라고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자연파괴가 심각하고 기후의 변동 등이 급속도로 진행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인류가 살만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특히 환경이 나빠지는 만큼, 인류도 서서히 이를 극복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도 많다. 어떤 이들은 지구의 환경오염은 오히려 세계의 음모라는 요상한 말까지 하고 있을 지경이다. 


<극적인 것은 좋은데, 너무 허무맹랑할 정도로 위기 속에서 잘도 탈출한다>



어쨌거나, 실제로 멸망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지켜봐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흥미롭게도 종말론에 대해서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교가 바로 크리스트교인데, 필자는 종교인이 아닌지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쨌든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선한 자는 구원받고 악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주 유명하다. 반면 불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종말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일어나므로 신앙심을 돈독히 하라는 주장도 없다. 그저 탄생과 멸망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 우주상에 단 한 개의 종교가 아닌 이상은 각각 다른 종말론에 대한 얘기는 어느 하나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모든 종교에 중립적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4. 인류를 말살시키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감독


자, 어쨌든 종말이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주 굿 타이밍과 굿 네이밍 센스로 만들어진 것인데, 대체 누가 이런 신선한 감각을 소유했던 것일까? 바로 감독 롤랜드 애머리히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투모로우>이다. 투모로우를 본 독자라면 어딘가 모르게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구의 멸망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감독한 다른 작품에서도 묘하게 인류가 시련을 겪는 고통을 선사한다. 그것도 가족적인 차원이 아니라, 전 인류에 가까운 아주 대규모적인 위기이다. 이것이 바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을 '재난 영화의 황태자'로 평가받게 한 주요 요인이다. 


<하여간 모든 영화에서 개념없는 애완동물 때문에 여럿 다치는 꼴이 생긴다>



이 감독은 정말 묘하게도 지구를 어떻게든 말아먹어야 재미가 느껴지는가 보다. 일단 만드는 작품마다 버라이어티하게 지구를 들들 볶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1992년작 <유니버셜 솔져>에서는 장 끌로드 반담의 화끈한 액션을 볼 수 있었고, 1994년작 <스타게이트>에서는 센세이션에 가까울 정도로 피라미드에 대한 색다른 개념을 선사하면서 SF적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일을 터뜨리는데, 그것이 바로 1996년작 <인디펜던스 데이>. 이 작품에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은 그의 주특기로 불리우는 '스케일'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거대하고, 일단 인정사정없이 박살내고, 일단 닥치는대로 죽인다. 이 작품으로 그는 단번에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고, 이후 또 하나의 SF 대작을 선보이게 된다. 1998년작 <고질라>가 그것인데, 엄청난 투자와 대규모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나름 슬픈 사연이 있는 고질라를 완전 악덕 공룡으로 만들어버린 탓에 이 영화는 의외로 졸작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졸작으로 평가받아도, 2년마다 꾸준히 대작을 선보이는 그답게, 또다시 2000년에는 멜 깁슨이 게릴라로 활약한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를 선보여 정통역사극에도 솜씨를 발휘했고, 그런가하면 2002년에는 <프릭스>를 통해 거대 독거미로 인류를 위협하는 엉뚱한 SF 호러도 만들었더랬다. 


이 때부터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대작 아니면 졸작뿐인 극단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프릭스>로 쫄딱 망한 롤랜드 애머리히는 이후 모든 사람들의 기대 속에 2004년 <투모로우>를 개봉한다. 이 작품은 롤랜드를 다시 대작 감독으로 부상시키는 한편, 재난영화에 있어 가장 충격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감독으로서 인정받게 하였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또 하나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인 <10,000BC>를 개봉하기에 이르는데, 문제는 이 작품이 엄청난 사전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봉 후 발작(일명 발로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롤랜드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다. 


여기서 롤랜드는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는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스펙터클한 재난 영화야말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왔다는 것. 그래서 드디어 이번에 또 하나의 재난영화로 투모로우를 능가하는 엄청난 스케일과 비주얼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제는 거대한 스케일로 부족한 스토리를 메우는 감독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또한 독일 출신으로서 SF적 연출에 뛰어난 감각을 선보여서 그런지 '독일의 스필버그'라는 호칭을 듣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판국에 작업질에 몰두하는 애드리언과 로라>



#5. 지구 멸망에 어울리는 후덜덜한 캐스팅


자, 이 영화가 그럼 과연 롤랜드 감독의 명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졸작이 될 수 있을까? 한번 따져보자.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도 좋고, 투입액도 어마어마하고, 더욱이 쟁쟁한 주연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연기력을 극대화한 것도 훌륭하게 보인다. 특히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존 쿠삭 아저씨는, 아주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실력을 인정받은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이 작품에서도 물불 안 가리는 연기 투혼을 보여주고 있는데, 존 쿠삭 본인의 말로는 역대 배역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리쎌 웨폰>, <쏘우> 등으로 잔뼈가 굵직한 대니 글로버가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여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를 풍기면서 나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고,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전혀 안 어울리지만 탐 크루즈와 러브라인을 구성했던 흑인 여배우 탠디 뉴튼이 대통령의 딸 로라 역을 하였다. 인정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배불뚝이 앤하우저 장관 역에는 올리버 플랫이 활약하였는데, 이 배우는 필자가 아주 오래 전에 <삼총사>라는 영화에서 프로토스로 등장하여 낯이 익은 배우이다. 올리버는 그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감칠맛나는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였는데, 희한하게도 미국 출신인데도 꼭 이탈리아나 러시아 출신 마피아 등의 역할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필자가 여기서 부각시키고 싶은 배우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찰리 프로스트라는 11차원 사나이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 처음에 영화를 보고 누구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대머리가 인상적이었던 그 우디 해럴슨이 아니던가! 이 친구 요새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에 본 <내츄럴 본 킬러>라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문제작에서 정말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여 적잖이 놀랬더랬다. 제목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쾌락을 위한 유일한 취미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미치광이 엽기 잔혹 살인자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정말 그때는 저 배우가 마약이라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더랬다. 아무튼 이 배우가 다시 이 작품에서 지구의 종말에 쾌락을 느끼는 미치광이로 나온다는 점에서 무언가 묘한 옛 추억을 느꼈다.


<어쩌다 이제 얼굴까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묘한 배역만 맡게 된 우디 해럴슨(오른쪽)>



#6.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보다 획기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자, 이정도의 캐스팅이면 언뜻 보아서는 작품이 대작!이겠거니 싶다. 그런데 늘 롤랜드 감독을 괴롭히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형편없는 스토리. 이 작품의 스토리를 보고 느낀 부분은 어떤가? 사실 전체적으로 쭉 보면 답이 뻔히 나오는 스토리 구조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우주선 얘기를 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처럼 수십만 명의 인류를 태운 거대 우주선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우주로 나가는가 하고 기대하기도 하였지만, 나름 반전이라고 준비한 장치가 사실 설마 그거겠어? 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힌트는 영화 초반부터 나온다. 잭슨의 투덜쟁이 아들의 이름에서 그 힌트가 있다. 바로 노아. 아들의 이름이 노아이다. 그리고 지구에 종말이 온다. 그런데 그 종말의 끝에는 바로 세계를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홍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홍수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누구라도 다 아는 얘기. 그렇다. 바로 노아의 방주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막판에 치닫는 결론은 결국 방주이다. 우주선이라고 떡밥을 던져놓고는 결국 제대로 낚은 셈이다. 


사실 방주에 대한 암시를 많이 심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 아크 건조를 위한 비밀기지도 히말라야 산중에 만든 것을 보면, 방주가 터키지역의 아라랏산에 놓여졌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꾸미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메이드 인 차이나이지만 짱개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거대 아크의 모양을 보면 정말 멋대가리 없는 통자루 모양인데, 실제 방주의 모양도 직사각형에 가까웠다고 하니 이도 어쩌면 나름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스토리가 뻔하다 보니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이 심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가족애. 잭슨이 부인과 이혼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아직까지 가족으로서 인식되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가족애를 되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비단 잭슨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딸의 관계에서도 그려지고, 유리 카보프와 아들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려진다. 또한 텐진과 니마의 가족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주제의식은 제대로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삼총사에서 프로토스 역으로 멋진 활약을 했는데, 이제는 배불뚝이에 볼살도 장난 아니다>



뭐, 생사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판국에서는 누구든 애정을 더 느끼게 마련인데, 사실 이는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구가 멸망하는 시츄에이션 정도면 누구나 서로 한 가족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능적인 수순을 롤랜드 감독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나열했다는 점이다. 좀 재미있다 싶으면 어이없이 터지는 것이 바로 가족애를 자극하는 시퀀스이기 때문에,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 처음에는 좀 봐줄만하지만 갈수록 뻔하고도 적나라하게 연출하다 보니 막 짜증이 날 정도이다. 이건 뭐 나중에 눈물은커녕 하품만 나올 지경으로 만드니, 지나친 것은 역시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실제로도 미국에서 개봉 당시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수입을 얻기는 하였지만, 비평가들에게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2012년에 실제로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식의 모욕적인 평까지 받은 작품이다. 호평도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역시 악평이었더랬다. 이는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의 작가주의적 주제의식을 강조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다분히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헐리우드식 뻥튀기 연출에 질려버린 비평가들의 조롱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억지로 가족애를 끌어올리려는 듯한 설정이 너무 뻔한 연출>



#7. 그나마 지구를 작살내는 스케일은 만족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의외로 필자를 감동시키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바로 유리의 수송기 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슈퍼카들이 둘러쳐져 있다는 것. 실제 보기도 어려운 이 슈퍼카들이 한 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된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기서 단 1대만에 멀쩡히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벤틀리인데, 왜 벤틀리를 이용해서 탈출할까 하는 이유는, 5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차가 오직 벤틀리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차보다 튼튼하다거나 비싸다거나 해서 고른 이유는 아닌 것. 아무튼 벤틀리를 타고 출발을 하려 하는데, 시동이 안 걸리지 싶다. 그 때 유리의 촌철살인적 대사 작렬. “쉿! 모두 조용히! 엔진~ 스~타~트~” 그렇다. 벤틀리는 음성 인식으로 엔진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마치 사모님이 “김귀솨~ 운줜훼~”하는 말투 식으로 조용히 엔진 스타트라는 발음을 작렬해 주시는 것. 나름 가장 코믹적인(어쩌면 유일한) 장면이기도 한데, 필자 입장에서는 벤틀리의 첨단 기술이 신기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재미와 평가를 떠나서, 그나마 괜찮았다고 평하고 싶은 것이, 지구가 쩍쩍 갈라지고 화산이 뻥하니 터지는 시퀀스의 그래픽이 나름 예술이라는 점. 실제로 정말 지구가 저렇게 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스펙터클하고도 소름끼치는 영상이었다. 전 세계의 대륙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이되고, 지구의 자장이 바뀌는 등의 파국을 생각해보면, 인류는 지구 멸망 이후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결국 과거의 문명의 형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고 새출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해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2012년 마야인들이 예언했던 인류의 멸망은 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뭐 때문에 이리도 열심히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고도의 찬란한 문명을 향유했던 마야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기이한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도 정말 그들처럼 하루아침에 증발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인생 뭐 있어? 훌랄라~!!!”


(이 글을 2016년에 성공적으로 옮긴 것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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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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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2 (Night At The Museum 2: Battle Of The Smithsonian)



#1. 어렸을 적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 영화


어렸을 적 TV와 책으로만 보던 세상의 여러 신기한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꿈과 소망이 있었더랬다. 그러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유일한 것은 바로 박물관이었고, 필자는 보통 박물관에 가면 남들은 정신없이 뛰어놀기 바쁠 때 혼자 1~2시간씩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을 쏟아 부어버리곤 하였다. 박물관의 모든 것들은 그야말로 필자의 상상력이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 그 자체였다. 단지 유리창 너머에 놓여 있는 물건들만 바라보더라도 필자의 마음은 벅참과 설렘으로 그득할 뿐이었다. 


그런데, 박물관의 모든 것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면, 그리고 실제 인물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면 더더욱 어떤 느낌일까?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이러한 상황이 한 편의 유치 찬란한 영화에서 펼쳐졌으니, 그 작품이 바로 <박물관이 살아있다> 되겠다.


<포스터만 보고 있노라면 허벌나게 화려한 등장인묻들이라고 생각할지도>



이번에 개봉된 <박물관이 살아있다 2>는 지난 1편이 대박 흥행을 기록한 데 힘입어 보다 스펙터클하고 장대한 스케일로 무장하여 제작된 속편이다. 그럼 먼저 1편을 살짝 건드리고 가보자. 1편의 내용은 영화의 주인공 래리 댈리의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매일 쓸데없는 아이템 발명만 하다가 쫄딱 망한 래리는 결국 참다못해 집을 나간 아내를 대신해 하나 남은 아들을 위해 직장을 구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다가 힘겹게 구한 직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야간 경비원. 커다란 포부를 안고 첫 날 근무를 시작한 래리는, 선배 경비원 3인방으로부터 ‘절대 모든 것들을 박물관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아리송한 충고를 듣는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고 치부하고 야간 경비를 시작한 래리.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밤만 되면 박물관 안의 모든 전시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이 아수라장 속에서 래리는 보릿자루 꿔다 놓은 것처럼 아무 것도 손을 쓰지 못하고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지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루즈벨트 밀랍인형의 조언을 통해 서서히 사태를 진정시켜 나가게 된다. 


어째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알고보니 비밀은 저주받았다고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아크렌마의 석판 때문이었다. 그 석판의 저주로 인하여 밤만 되면 모든 전시물이 꼬물딱 댔던 것. 점차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한 래리는 이제 완벽한 경비원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선배 경비원 3인방의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 그들은 일부러 래리에게 자리를 내주고 도와주는 척 하면서 사실은 래리의 짓으로 꾸미고 박물관의 물건을 빼돌리려 했던 것. 하지만 래리와 아들의 활약과 전시물들의 도움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래리는 박물관에 다시 평화를 가져온다.


<손전등으로 악당도 때려잡는 능력을 가진 슈퍼경비원 래리>



#2. 스토리 - 더 커진 공간에서 펼쳐지는 더 엉망진창인 전시물 보존 미션


1편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참으로 더더욱 어처구니없게도 태연히 받아들이고 적응한 래리의 행동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 이제 그 2편에서는 얼마나 더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1편에서 박물관 난동사건으로 홀라당 짤려버린 래리(벤 스틸러)는 새로운 발명품이 대박을 터뜨리자 일순간에 잘 나가는 사장님으로 급부상하였다. 그래도 아직 박물관 친구들이 그리운 래리는 틈만 나면 자연사 박물관에 찾아와 밤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자연사 박물관이 재정위기로 인하여 모든 전시물을 미국 최대, 아니 세계 최대라는(정말?)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이관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전시물들이 꾸러미 신세가 되고 만다. 모두와 작별인사를 하는 래리. 


하지만 꼬마 인형 제레디아(오웬 윌슨)로부터 저주를 달고 사는 아크멘라의 석판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같이 딸려갔다는 긴급 전화를 받고 래리는 질겁을 한다. 이제 래리는 홀홀단신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향하고, 이미 전시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들래미의 도움을 받아 미션 임파서블을 능가하는 작전을 펼치며 스미소니언 박물관 지하 보관실로 잠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래리는 묘한 상황을 보게 되는데, 어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고대 이집트 복장을 한 인형들이 컨테이너를 향해 창을 치켜들고 있었던 것. 그 안을 보니 자연사 박물관 친구들이 아크멘라의 석판을 필사적으로 지키는 형상이었더랬다. 래리가 힘겹게 아크멘라의 석판을 꺼낸 찰나 박물관에 밤이 찾아오면서 순간 모든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고대 이집트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이 갑자기 래리에게 석판을 달라고 한다. 


자신을 카문라(행크 아자리아)로 소개한 그 인형은, 아크멘라의 석판을 이용하여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그냥 당할 래리가 아니다. 래리는 특유의 잔꾀를 내어 카문라를 속이고 도망을 친다. 도망을 치던 도중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조지 커스터 장군(빌 헤이더)이 나타나 래리를 도우지만, 알고보니 이 인간도 말만 많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속 빈 강정이었던 것. 오히려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래리를 도와주게 되는데, 그 여인이 바로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이름을 남긴 아멜리아 이어하트(에이미 애덤스)였다.


<소싯적에 까스통좀 배달해 보셨다는 조지 커스터 장군>



한편 카문라는 역사적 악당 또는 폭군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러시아의 차르였던 폭군 이반(크리스토퍼 게스트)과 프랑스의 나폴레옹(알랭 샤바), 그리고 전설의 마피아 알카포네가 카문라의 똘마니들이 된다. 카문라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홀라당 부하가 된 세 무리는 카문라의 지시에 따라 래리를 쫓게 된다. 


컨테이너 안에서 죽때리고 있던 자연사 박물관 멤버들은 엉겁결에 끼여든 조지 커스터 장군 때문에 개판 오분전이 되고, 참다 못한 제레디아와 옥타비우스(스티브 쿠건)는 단 둘이 컨테이너를 빠져나가 래리를 도우려하지만, 제레디아는 되려 알카포네의 부하에게 딱 걸려서 카문라에게 끌려간다. 이리 저리 열심히 도망치던 래리도 결국 악당 똘마니 3총사에게 붙잡혀 카문라에게 끌려오게 되고, 카문라는 자신을 도와 세계를 지배하게 해줄 지옥의 사자들을 불러오기 위한 지옥의 문을 열기 위해 아크멘라의 석판을 문 입구에 설치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지옥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까먹었던 것. 결국 카문라는 제레디아를 모래시계에 가두어두고 래리로 하여금 1시간 내로 석판의 비밀번호를 알아오라고 지시한다. 


일단 래리는 석판을 가지고 다시 나오지만, 문제는 어디에서 석판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가 하는 것.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별 짓을 다하지만, 결국 답을 준 것은 아인슈타인 인형. 답을 알아낸 래리.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답을 알려줄 수는 없었으니, 열심히 쫓아오는 카문라의 부하들을 피해 링컨 동상의 도움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계속 쫓기게 되는 래리 일행은 이어하트의 도움으로 종이로 만든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타고 박물관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역사상 가장 작은 정복자로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편에서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었던 루즈벨트 영감. 원조교제를 꿈꾸기도 한다>



#3. 어디까지나 어린이 관객들에게 초점을 맞춘 가족 영화


스토리만 봐도 딱 초글링들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아이들에게 동심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스타일 아니겠는가. 그만큼 볼거리에 있어서 유치쌈뽕할 수 있지만 나름의 재미도 있는 법이다. 일단 재미있는 요소를 찾아본다면, 뭐니뭐니해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인형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는 요소이겠거니. 이미 1편에서도 테오도르 루즈벨트와 제레디아, 옥타비우스, 칭기즈칸, 인디안 소녀 사카주웨아 등이 그야말로 생(生)쇼를 펼치면서 톡톡한 재미를 안겨주었는데, 2편에서는 여기에 더해서 알 카포네, 나폴레옹, 이반 대제, 이어하트, 커스터 장군 등이 더 심각한 막장 쇼를 선사한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모습이 실제로도 그러했을까 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이긴 하다. 


또 다른 재미는 영화 속의 모든 상황이 하나같이 초글링스럽다는 것이다. 즉, 진지하고 엄숙하거나 장엄해야 할 상황에서 그 반대로 무척 가볍고 유치한 농담과 개그로 범벅을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형 링컨 동상이 링컨이라는 무게감을 벗어던지고 비둘기 똥에 의한 노이로제로 투덜대는 모습이라던지, 자칭 악당이라는 카문라는 위엄을 보이거나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야 하는데 철부지 꼬맹이처럼 투덜대고 썰렁한 개그나 날리는 모습이 그렇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은 계속 "생각 중, 생각 중”만 외치다가 옆의 여인상을 보고 근육이나 뽐내면서 작업질이나 하는 캐릭터로 나올 정도면 다른 캐릭터들의 짓거리는 안 봐도 감이 빡 오지 않는가? 


래리 댈리 역을 맡은 벤 스틸러의 개그도 여전하다. 벤 스틸러 특유의 능청맞고 여유 넘치는 개그는 이 기묘하고도 괴상망측한 상황에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는 형태로 표출된다. 즉, 상식을 뛰어넘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상식에도 낄 수 없는 상황 연출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기가 차서 웃는 웃음이요, 아가들 입장에서는 지네들 수준에 맞아서 웃는 웃음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다. 



#4. 스케일은 커졌지만 흥행에서는 비참해진 비운의 속편


뭐 일단 1편이 이러한 요소로 인해 대박을 쳤더랬다. 벤 스틸러 특유의 코믹 스타일과 동심을 자극하는 호기심이 절묘한 조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2편에서도 그대로 적용한 그 코드가 과연 또 한번의 대박을 터뜨려주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이다. 늘 그렇듯이 1편의 코드를 그대로 따라하는 2편은 1편만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번 2편도 1편의 코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악당이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등장하고, 스케일도 더 커졌다는 것 정도? 하지만 문제는 늘어난 스케일만큼 개그코드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그 면모를 하나씩 찝어보자.


<나름 악당인데 어째 이리도 유치쌈뽕한지... 요근래 보기 힘든 최악의 악당>



먼저, 카문라부터 시작하겠다. 카문라, 이 친구가 나름 악당 중의 악당 되시겠다. 그런데 하는 짓은 초글링이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은 하였지만, 처음 등장부터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정말 악당 맞아? 하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지옥의 문을 연답시고 석판을 끼어넣고서는 비밀번호 까먹었다고 투털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터미네이터가 배터리 떨어졌다고 편의점에서 건전지 사는 꼴하고 똑 같은 참담한 수준이다. 대사도 끝내주게 유치한데, 어째 잘 나간다 싶으면 꼭 끝에서 썰렁 개그를 작렬하시어 역사상 가장 불쌍한 악당으로 전락시키는 추태를 보여주고 계신다. 


카문라가 이 정도인데 그 밑에 있는 띨방 악당 3인방은 어떠할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라 불리우던 나폴레옹은 어쩌다가 악당 무리로 편입이 되어서, 작은 키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정말 대한민국 초딩스러운 존재로 전락했단 말인가. 폭군으로 평가받는 이반 대제도 그러하다. 카문라의 복장에 대해 왜 남자가 치마를 입느냐는 둥, 그걸 자기도 입어야 하냐는 둥 어디 하나 러시아 황제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가장 악당스러운 알 카포네는 나름 기관총 부여잡고 폼을 재어 주시지만, 이 역시 특유의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유치찬란한 애들 장난질만 일삼는 존재로 부각된다. 


악당이 멍청하다고 해서 그럼 아군은 똑똑한가? 그것도 아니다. 나름 폭주족스러운 포스로 장렬한 등장을 보여준 조지 커스터 장군은 횡성수설에 제정신이 아닌 듯한 존재로 나오더니, 아예 막판에는 겁쟁이 소심쟁이로 묘사된다. 비록 몸은 작지만 정신 하나는 제대로 박힌 듯이 등장했던 제레디아와 옥타비우스도 이번에는 하는 짓이 가히 더블 카운터 수준이다. 옥타비우스는 제레디아를 구한답시고 칼을 빼들고 들판을 가로지르는데, 아…이걸 어떻게 웃어야 하나… 참담하다. 나중에는 다람쥐를 보고 무시무시한 짐승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영화도 이제 막장이구나 하는 한숨이 나온다.


<아인슈타인 인형들. 이것들만 합쳐도 IQ가 1,000이 넘겠지만 그런 효과는 절대 기대하기 어렵다>



2편에서 가장 실질적인 도우미로 등장하는 존재는 에밀리아 이어하트인데, 사실 도와준다기보다는 짐에 가깝다. 말괄량이 무개념 여편네로 등장하는가 싶더니, 아무런 개연성 없이 래리를 사랑하게 되고, 그러구서는 밀랍인형 주제에 캐나다로 떠난다고 비행기 타고 사라진다. 살짝 무개념인지라 혼자 사건 해결하기도 힘든 래리에게 계속해서 장애물로 등장하는데, 그나마 비행실력 때문에 막판에 비행기로 활약하는 장면이 있으니 그나마 실질적인 도우미로 꼽은 것이다. 


1편에서 막판 대활약했던 래리의 아들래미는 2편에서 초장부터 대활약의 낌새를 보이지만, 막상 집에서 인터넷으로 지도나 뚜들겨 찾고 핸드폰으로 정보나 알려주는 신세가 된다. 즉, 그 이후에는 아예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래리라는 초강력 울트라 슈퍼 경비원의 독고다이 활약 때문에 사건을 해결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벤 스틸러는 어째서 1편의 성공과 달리 2편을 이토록 참혹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참혹한건 맞는 걸까? 사실이다. 필자의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미국에서 개봉 이후 엄청난 혹평이 쏟아졌었다. 모 평론가들은 '상영 내내 시계만 봤다', '1편보다 더 멍청한 영화' 등등 가혹한 평가를 내렸을 정도이다.


<1편에서 나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 제레디아는 2편에서 하는 일이 없다>



#5. 벤 스틸러의 주특기는 역시 양키식 저질 개그


사실 벤 스틸러는 이토록 멍청한 배우는 아니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코미디 배우이자, 감독이자, 연출자이기도 한 나름 멀티플레이어 되시겠다. 이 친구가 출연했다 하면 일단 미국아해들은 배꼽잡고 나가떨어지는 건 기본이라는데, 그만큼 미국식 코미디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친구라도 보면 되겠다. 필자가 본 벤 스틸러의 출연작 중 가장 양키스러우면서 웃겼던 것은 그가 악당으로 등장한 <피구의 제왕>이라는 영화인데, 벤 스틸러는 이 작품으로 인해 그해 MTV 최고의 악당상에 뽑히기도 하였다. 이뿐일까? 벤 스틸러는 아무튼 여러 작품을 통해 MTV 어워드의 단골손님이 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왜 이번에는 이런 졸작을 만들고야 말았을까? 애초에 시도 자체는 참신하고 훌륭했다. 1편에서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장소를 환상의 공간으로 만든 데 성공하여, 2편에서는 아예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영상으로 공개된 적이 없다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촬영하는데 성공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미국 전체가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아크멘라의 석판에 대한 본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는 점도 이게 더 이상 단순한 밤장난은 아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더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저 밤장난에 불과했다. 단지 장소가 좀 더 컸을 뿐. 결론적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다 2는 '개그코드는 죽어있다'라는 부제를 달아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평가이지만, 필자가 기대했던 만큼의 벤 스틸러다운 개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마도 그의 개그코드가 너무 양키스러워서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이미 <트로픽 썬더>에서부터 필자가 어느 정도 느껴왔던 부분이다 (트로픽 썬더도 미국에서는 대박흥행을 쳤지만 국내에서는 코드가 안 맞아서 쪽박을 찼다). 



#6. 등장인물들의 실재 이력에 대한 친절한 부가설명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간략하게 실제 약력을 소개할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모르는 인물들도 등장하고, 더욱이 하는 꼬락서니가 완전 초딩레벨이라 많은 관객들이 실제 인물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참고로 1편의 등장인물들까지 기술하겠다.


<치고받고 싸우다 정이 들어버린 제레디아와 옥타비우스. 본격적인 우정이 펼쳐진다>



[테오도르 루즈벨트]

1900년대 초기에 미국을 이끈 대통령. 어렸을 적부터 심약한 육체를 타고났던 그는 하버드 재학시절 불굴의 노력 끝에 신체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고, 결혼 후 닥친 어머니와 아내의 동시 사망이라는 좌절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1901년 2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국회의원, 전쟁의용군 장군 등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의 평화에 이바지한 바가 매우 크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루즈벨트는 현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조언자로 평가받기도 하다. 현재 그는 러시모어 산의 대두 4인방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습은 미국-스페인전쟁 당시 참전 모습으로 여겨진다.


[칭기즈칸]

한국 사람이라면 칭기즈칸을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니, 유럽 사람들도 전부 다 알고 있다. 단지 이미지가 다를 뿐. 아시아에서는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유명하지만, 유럽에서는 가장 포악한 정복자로 그려져 있다. 본래 이름은 테무진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골족의 내전을 통일하고 대족장으로 즉위하여 1206년 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후 초강력 몽골기병을 이끌고 영토를 확장하여 동으로는 고려까지, 서로는 지금의 독일지역까지 쳐들어갔을 정도로 역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이다. 원 나라의 태조이기도 한 그는, 한 지역을 정복한 후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씨를 남기지 않고 모조리 전멸시켰기 때문에 가장 잔혹한 정복자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너무 무식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도 잔혹한 정복자라는 이미지가 서양인들에게 깊이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로 더 유명한 로마의 초대 황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율리우스 케사르가 초대 황제가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케사르 본인이 인정했듯이 그는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케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우스는 케사르가 부르트스에게 암살당한 이후 케사르의 유언에 의해 그 뒤를 이어받는다. 총명하고 박학다식했던 옥타비우스는 여론을 이용하여 부르트스를 제거하고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 2 삼두정치를 펼친다. 이후 레피두스를 유배보내고, 클레오파트라와의 러브배틀로 유명한 악티움 해전에서 라이벌 안토니우스를 영원히 골로 보내고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옥타비우스는 원로원의 만장일치로 로마제국 최초의 황제로 등극한다. 이후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받은 옥타비우스는 경제, 정치, 산업, 교통, 외교 등 전분야에서 뛰어난 통치를 펼쳐 ‘PAX ROMANA’ 시대를 연 로마 역사상 최고의 황제이기도 하다. 이토록 훌륭한 인물이 영화에서는 띨뻥하게 나온다니 말 다 했다.


<여성부에서 좋아라 할 여성인권의 개척자 에밀리아 이어하트>



[사카주웨아]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인물인데, 이 여자는 미국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800년대 미국은 아직 인디안들이 거주하고 있던 서부지역은 개척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 때 루이스와 클락이라는 두 군인이 제퍼슨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서부지역의 항로를 개척하던 중 만난 인디안 여인이 바로 사카주웨아인데, 당시 사카주웨아는 프랑스인에게 팔려 프랑스인과 결혼한 상태였다. 사카주웨아는 남편과 함께 탐험대에 편입되어 통역요원으로 활약하였고, 이후 인디안과의 갈등 없이 태평양연안 탐험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본래 쇼숀족이었던 사카주웨아는 히다스타부족에게 납치된 사연이 있으며, 프랑스 남편과의 결혼에세 태어난 혼혈 아이를 등에 업고 탐험을 한 사진으로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있다. 


[제레디아]

그냥 카우보이이다. 아마도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에 기여를 했을 인물로도 보이지만 어떠한 역사적 사료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가공의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이 인물에 대해 아시는 분은 손~!!! 


[카문라]

이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다. 아크멘라 역시 가상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니 아무리 찾아봐도 역사적 사료를 찾을 수 없다. 착각하지 않도록!! 


[에밀리아 이어하트]

1897년에 태어난 에밀리아 이어하트는, 여성 최초의 단독 비행사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본래 간호사였으나, 1차대전 당시 병원에 위문공연 온 곡예비행팀에 매료되어 그 길로 간호사를 때려치우고 비행학원을 입학한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편견은 여성이 감히 남성의 영역에 도전할 수 없었던 시기. 그래서 이어하트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남편의 도움으로 드디어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의 비행은 단지 뒷좌석에 타서 구경만 했던 것. 이에 더 큰 도전의식을 불태운 이어하트는 1928년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데 성공한다. 뒤이어 1932년에는 여성 최초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하는데 성공하고, 1937년에는 세계일주라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이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주를 시작한 지 1달 후 남태평양 부근에서 “연료가 부족하다”는 교신을 끝으로 영원히 착륙하지 않게 된다. 당시 이어하트의 실종에 대해서 잔해라던지 추측할만한 자료가 없어서 현재까지도 세계 7대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한다. 이어하트는 단지 여성이 최초로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했다는 사실보다도, 여성의 인권을 상승시킨 상징적 인물로 더욱 존중받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는 도전의식이 넘치는 여성으로 보이지만, 너무 촐싹맞게 나오는 것 같아 조금 안습이기도 하다.


<띨방한 똘마니 악당 3인방. 왼쪽부터 폭군 이반, 알 카포네, 나폴레옹. 알 카포네는 당시 흑백필름 시대여서 색깔이 없다는 황당한 설정>



[나폴레옹]

나폴레옹 모르면 간첩 아닐까? 아니, 술이 아니라… 아무튼 나폴레옹은 칭기즈칸 못지않은 역사상 위대한 정복자이자 지도자이다. 격동의 18세기 프랑스에서 태어나 섬 출신이라는 엄청 딸리는 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군인이 되어 전쟁에서 대활약, 이후 프랑스1제국 초대 황제로 등극하기까지 한다. 집요할 정도로 고집스럽고, 깡다구 기질이 강해서 나폴레옹의 인격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들이 많은데, 특히 그가 작은 키에 가진 열등감은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다만, 실제로 키가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주변 경호원들이 모두 190cm에 육박하는 초대박 사이즈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그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또 한가지 특징은 그의 초상화에서 늘 한쪽 손으로 배를 만지고 있다는 것인데, 전문가들 말로는 나폴레옹이 격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위염을 앓지 않았나 하고 여기는 근거이기도 하다. 당시 프랑스를 열강들 사이에서 초강력 국가로 성장시킨 나폴레옹이었지만, 무리한 러시아 및 영국 원정과, 주변국가들의 연합공격으로 인하여 다구리를 당하고, 넬슨 제독의 전사로 유명한 트라팔가 해전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대패로 인하여 전세가 기울어 1814년 마침내 엘바섬으로 유배당하고 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탈출하여 다시 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이듬해 다시 전쟁을 벌이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과 블뤼허 장군의 연합에 대패하여 또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당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그 곳에서 비소중독 등 건강악화로 1821년에 사망하고 만다. 나폴레옹은 생전에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서 ‘내 사전에 실패란 없다’는 말을 남겨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깡통 통조림 개발, 초콜렛 개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반 대제]

16세기 러시아제국을 통치한 황제로서, 본명은 이반 4세 바실리예비치이다. 흔히 폭군 이반, 이반 뇌제로 알려져 있는데, 뇌제라는 단어는 ‘잔혹한’이라는 러시아어를 오역한 명칭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황제를 일컷는 ‘차르’ 혹은 ‘짜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지만, 유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 말기의 막장 엽기 행각으로 인하여 잔혹한 군주라는 악플에 시달려야만 하였다. 러시아 최초의 법전 편찬, 영국과의 통상외교 시행, 시베리아 정복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평소 신경질이 심하고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인들을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특히 말년에 며느리를 유산시키고, 자신의 아들래미인 바실리 황태자를 때려죽이는 초엽기 행각을 벌이기도 하였다. 아들 살해 후 뒤늦게 정신차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자 수도자의 길을 걷지만 3년 후 눈을 감는다. 그의 뒤를 이은 표도르 2세,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표도르 1세가 러시아의 새 왕조를 열고 훗날 표도르 대제가 통치하는 태평시대를 열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라는 60억분의 1의 사나이를 탄생시킨다는…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알 카포네]

<대부>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희대의 갱스터이자 마피아.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은 금주령이라는 엽기적인 정책이 시행되면서, 암흑루트를 통한 주류 유통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여 암흑가 최고의 물건으로 떠오르게 된 인물이 바로 알 카포네이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들으며 암흑가를 주름잡았고, 얼굴의 흉터로 인해 ‘스카페이스’라는 닉네임도 가지고 있었다. 영화 <대부>에서 그려졌던 마피아간 대학살극이었던 ‘발렌타인데이 대학살극’으로 인해 당시 최고의 마피아로 등극하지만, 끈기로 똘똘뭉친 수사요원 엘리엇 네스(언터쳐블의 그 주인공)에 의해 탈세혐의로 기소되어 이후 7년간 공포의 알카트래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석방된 후에는 이미 매독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서는 말대가리 형상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알 카포네는 푸짐하고 둥그스런 외모를 가지고 있다.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

19세기 미국 전쟁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본래 머리도 썩 좋지 않고 인간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던 커스터는 짤릴 위기 속에서도 사관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하고 겨우겨우 장교가 된다. 이후 20대의 나이로 전쟁을 누비며 활약하다가,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영웅 로버트 리 장군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고 북군의 최종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커스터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장군의 직책을 부여받은 초대박 로또를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쟁통 속에서 임시 계급장이 난무하던 시대였던지라 결국 전쟁 종결 후 대령으로 강등된 커스터는 이후 제 7 기병연대를 이끌고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지휘하였다. 1876년 인디언 압박 정책에 의하여 리틀빅혼 강 인근에서 거주 인디언들을 쪼아댈 계획을 짰던 커스터는, 인디언들을 너무 얏본 나머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고 만다. 당시 인디언들은 ‘수’와 ‘코만치’족이었는데, 가뜩이나 용맹한 이들 부족에게 ‘웅크린 황소’와 ‘미친 말’이라는 이름 그대로 무시무시하고도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결국 상대를 얏본 커스터 장군과 기병연대는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고 생존자 한명 없이 모두 전멸하고 만다. 당시 전사한 커스터 장군의 나이는 34세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가볍게 살다 간 사람 같은데, 이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그나마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외에도 최초로 우주에 나간 원숭이 에이블, 최초의 흑인 비행사 유진 불라드, 최초로 달 탐사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 등이 등장하지만, 어쩌다가 한 컷 정도 나오는 수준이라 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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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9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포스터부터 여타의 외계물과는 다르다는 포스가 느껴지는 디스트릭트 9>



#1. 이제 외계인도 차별화 시대


이 드넓은 우주에 지적생명체는 과연 우리 인간밖에 없는 것일까? 혹자는 외계인으로 불리우는 다른 행성의 지적생명체가 있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외계인이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한다. 경험론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단연 후자의 입장이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존재함을 경험적으로 인지하지 않았더라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외계인이 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꼴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칭하는 존재가 외계인일 수도 있다. 그 형태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형태를 빌어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가 아는 외계인의 모습도 인간과 크게 다른 형태는 아님을 감안한다면 외계인이 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결코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되었든, 외계인이 있다고 믿어온 사람들에게 있어 외계인은 늘 미지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모습도 가지각색이고 성격도 가지각색이어서, 어떤 외계인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슴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지구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는가 하면, 어떤 외계인은 흉측한 모습으로 닥치는대로 인간들을 잡아먹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어떠한 외계인이든 선 또는 악이 극명하게 갈리는 형태였으며, 특히 인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아주 독특한 외계인 영화가 등장하였다. 지금까지의 외계인은 잊으라는 듯이 매우 오묘한 설정의 외계인들을 등장시켜버린 영화, 바로 <디스트릭트 9> 되시겠다. 미국 본토에서는 오래 전에 개봉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엄청 뒷북 때리며 개봉하게 되는 이 영화의 스토리를 먼저 살짝 알아보자.


<우주 최초의 외계인 집단 수용소로 기네스 북에 오른 디스트릭트 9, 믿거나 말거나>



#2. 스토리 - 기뉴특전대도 울고 갈 어느 인간 청년의 외계인 변신 스토리


영화의 시작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바로 비커스 반 데르 메르바(샬토 코플리)라는 인물. MNU로 불리우는 외계인 통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어리버리 사내이다. 이 친구가 맡은 임무가 무엇이냐 하면, 디스트릭트 9으로 불리우는 외계인 집단거주지에서 거주하는 외계인들을 강제퇴거 시키는 것. 


어째서 외계인들이 지구에서 집단거주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28년 전 지구에 불시착하여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에서 멈춰버린 우주선 안에서 대량의 외계인들이 발견되었던 것. 그들은 우주선이 멈춰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거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외계인들이 인간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충돌이 잦아지자 인간은 MNU라는 기구를 창설하여 외계인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외계인들의 수를 조절하고, 무기들을 회수하여 범죄를 막고, 신분증과 이름을 지어주어 인간처럼 통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인간들은 외계인을 프론(쓰레기를 좋아해서 쓰레기라는 의미를 부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외계인들이 거주하던 디스트릭트 9은 각종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어 더 이상 통제가 어려워지게 된 것. 그래서 보다 강력한 통제를 위해 디스트릭트 10으로 새롭게 이주할 정책을 세우고, 비커스를 총 책임자로 선망한다. 알고보니 MNU의 총수가 바로 비커스의 장인이었던 것. 비커스는 쿠버스 벤터(데이빗 제임스)가 이끄는 경호대원들을 이끌고 디스트릭트 9에 진입하여 외계인들로부터 퇴거명령서에 서명을 받는 업무를 수행한다. 비록 외계인들과 폭력 마찰을 빚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비커스.


<MNU에서 낙하산 인사로 프로젝트 총 책임자가 되어버린 어리버리 비커스>



한편 크리스토퍼라고 불리우는 외계인은 자신의 동료와 함께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년 동안 힘겹게 모은 어떤 액체를 테스트하던 것. 하지만 비커스가 몰려오자 비밀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몸을 숨기고 동료에게 절대 들키지 말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비커스의 집중 탐문에 동료 외계인은 흥분하게 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쿠버스의 총에 맞아 목숨을 달리 한다. 그리고 집 안을 집중 수색하던 중 비커스는 정체모를 원통을 집어들고 보던 중, 갑자기 뿜어져나온 액체에 흠뻑 젖고 만다. 이후 계속되는 구토와 어지러움증으로 몸을 가눌 수 없어 어리버리대다가 갑작스런 외계인들의 공격에 왼쪽 팔을 크게 다치고 결국 후퇴하게 된 비커스. 


비록 한 쪽 팔을 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상으로 돌아온 비커스. 하지만 그의 신체에 이상한 변화가 발생한다. 코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검은 액체를 토해내는가 하면, 눈가의 주름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한 비커스는, 자신의 다친 팔의 붕대를 풀자 너무도 놀라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왼쪽 팔이 그만 외계인의 팔처럼 변해버린 것. 


사건이 이 지경이 되자 갑자기 어디론가 강제 이송되는 비커스. 알고봤더니 MNU의 지하에서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계인들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하는가 하면, 외계인의 DNA로만 작동하는 무기의 작동 테스트를 하고 있었던 것. 결국 MNU는 비커스를 테스트하여 무기를 작동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그를 해부하여 인간의 외계인화에 대한 비밀을 파헤칠 궁리를 한다. 그리고 그 명령의 중심에는 바로 비커스의 장인이 있었다.


<당신 외계인특별대출 받고 돈 안갚았지? 당장 돈 내놓으슈, 안그럼 작살나니까>



해부대에 누운 비커스는 결정적 순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주를 감행하고, 쿠버스의 추적을 뿌리치며 은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외계인과 성관계를 맺어 돌연변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쫙 퍼지고 사람들이 비커스를 알아보기 시작하자 이젠 도망칠 곳도 없게 된 비커스. 결국 그는 자신이 그토록 쫓아내려고 했던 디스트릭트 9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이제는 고양이먹이마저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게 된 비커스. 사실 고양이먹이와 쓰레기는 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구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 타냐(바네사 헤이우드)와 가까스로 통화하여 사랑을 전하는 비커스. 하지만 전파추적으로 인하여 위치가 노출되고, 쿠버스는 디스트릭트 9으로 대원들을 급파한다. 또 쫓기게 되자 부랴부랴 도망치기 바쁜 비커스. 그러던 도중 비커스는 크리스토퍼의 집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크리스토퍼의 집 안에서 어마어마한 수준의 컴퓨터 장치들을 보게 된 것. 이는 모두 불법인데, 크리스토퍼는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커스의 팔이 외계인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게 되자 크리스토퍼는 비커스에게 가져간 액체통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알고봤더니, 비커스를 이렇게 만든 문제의 액체는 바로 28년 동안 움지이지 않고 있는 우주선의 에너지였던 것. 그리고 크리스토퍼는 28년 동안 공을 들여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비커스에게 우주선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치료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비커스는 크리스토퍼를 도와 액체를 되찾아 올 것을 결심한다. 이에 무기를 장만하려고 비커스는 디스트릭트 9 내에 거주하는 갱단을 찾아간다. 그런데 갱단의 두목은 외계인의 무기를 쓰고 싶어서 안달난 친구. 그래서 비커스의 외계인 팔을 잘라서 먹으려는 괴상한 소원을 빈다. 위기의 순간에서 외계인의 무기를 작렬하며 탈출에 성공하는 비커스. 결국 무기를 챙기고 MNU에 쳐들어가 지하 4층의 비밀실험실까지 당도하게 된다. 액체를 다시 회수하게 된 비커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쿠버스. 그런데 크리스토퍼는 실험실에서 그만 자신의 동료였던 외계인의 사체가 심히 훼손된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만다. 비커스의 충격요법으로 겨우 정신을 차린 크리스토퍼는 비커스를 도와 무사히 MNU를 탈출한다. 다시 디스트릭트 9으로 돌아온 두 생명체는 이제 에너지를 꽂아 우주선을 움직이는 절차만 남겨놓게 된다.


<사람 살려!! 사람....아, 아니, 반은 사람, 반은 외계인 살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온 집념의 외계인 크리스토퍼. 빨간 조끼가 압권이다>



#3. 외계인 이야기이지만 실은 인간의 자화상을 담은 시사적 이야기


이 영화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스토리의 외계물이다. 일단 외계인에 대해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없다. 인간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 즉 갈 곳 없어 수용소에서 난민을 이루어 거주하게 된 외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반 외계인에서 친 외계인으로 변화하는 격동적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도 외계인화라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를 통해서 말이다. 이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발상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외계인을 통해 보다 철학적이고 시사적인 내용을 투영하는 해학적 요소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있다 하겠다. 


왜 외계인들은 집단 난민을 형성한 채 인간들에게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지역이 요하네스버그일까? 어느 정도 눈치까는 사람들은 이러한 설정이 바로 인종차별과 직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심장부이다. 남아공은 바로 얼마 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 차별이 이루어진 국가이기도 하다.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우는 인종분리주의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 곳에서 이번에는 인간과 외계인이 인종분리노선을 택하고 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인간들에 의해서. 여기에서 인간은 백인이고, 외계인은 흑인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비단 남아공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꼭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만도 아니다. 백인과 황인 사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같은 피부색이라고 해도 또한 국가와 핏줄, 종교 등등에 따라 인류는 서로를 차별하고 싸우려 한다.




<외계인을 차별하는 각종 금지판. 영화 내에서는 곳곳에 이런 표식이 붙어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극단적 해결책은 바로 내가 그들처럼 되어보는 것이다. 외계인을 통제하던 주인공은 우연한 사고에 의해 외계인으로 변화되면서 비로소 외계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비록 그는 투쟁을 통해 겨우 싸움의 끝을 맺지만, 반드시 투쟁 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사고가 필요하다. 실연당한 사람의 마음은 실연당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남의 입장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다른 두 존재간에 이해와 공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비커스의 투쟁적 노력은 이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한다. 엔딩 부분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각이 비커스를 통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인류는 비커스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역지사지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은 계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했지만, 반드시 폭력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간디도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종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서 바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얘기하고 싶다.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의 욕심을 위해 죽고 죽이고 하는 실정이다>



#4. 저예산으로 탄생한 명작 SF 무비


어쩌다보니 이 영화의 철학적 요점부터 집중적으로 얘기하였는데, 이번에는 영화 자체적인 면으로 들어가 보겠다. 일단 제작이 피터 잭슨이다. 이거면 말 다하지 않았을까?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세계 최고의 퐌따지 영화의 대가가 되신 분이시다. 해리 포터 100명이 달려와도 반지의 제왕 멤버들을 꺾기는 힘들 정도이다. 그만큼 볼거리에서 절정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그런데 피터 잭슨이 놀랍게도 판타지가 아닌 외계물을 들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바로 감독인 닐 블롬캠프에게 있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니, 그 동안 단편영화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남아공 출신의 감독이다. 그런데 피터 잭슨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2006년에 게임을 원작으로 한 <할로>를 함께 해보자고 제의하였었더랬다. 하지만 제작비 문제로 말짱도루묵. 그러다가 닐 감독의 2005년 단편작 <얼라이브 인 요버거>를 보고 삘받은 피터 잭슨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편영화를 만들자고 제의를 한다. 그 작품이 바로 디스트릭트 9인 것이다. 고로 디스트릭트 9의 원작은 사실 얼라이브 인 요버거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이 둘의 합작이 이토록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스토리도 빠방하고, 철학적 주제의식도 거창하며,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연출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도 특별해서, 초반부터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나열하며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풀어나가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이 보다 사실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리고 결말에서 채택한 약간의 슬픈 결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실 만큼 감동적인 것이 사실이다.


<상공에 저렇게 거대한 우주선이 떠 있다고 생각을 해보라. 실로 경이롭지 않은가?>



미국에서 개봉 당시 엄청난 파장과 흥행을 몰고 온 이 작품은 놀랍게도 출연 배우 전원이 거의 무명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주인공 역을 한 샬토 코플리는 재미있게도 얼라이브 인 요거버를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남아공에서나마 좀 유명하지 세계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대박을 쳤으니, 이로써 헐리우드에서 파워가 엄청난 스타급 배우들을 쓰지 않고도 대박을 칠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만큼 감독의 재능과 스토리의 탄탄함, 그리고 놀라운 연출과 상상력의 현실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5. 디테일에 충실한 외계인 설정 


이 작품의 외계인은 기존의 외계인과는 다른 모습도 많다. 일단 인간과 함께 지구상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맨 인 블랙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너무 황당할 정도로 엉켜 사는 모습도 아닌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외계인들은 자기네들의 언어를 쓴다. 그리고 자기네들의 본능대로 살아간다. 고양이먹이를 좋아하고 쓰레기를 좋아하는 모습은 지극히 외계인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외계인 언어와 지구인 언어가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소통된다는 부분은 조금 의아하다. 짐작컨데 주인공이 외계인 통역 전문자격증을 소지한 인물로 보여지지만, 아무튼 28년 만에 두 생명체가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솔직히 좀 어거지 아닌가 싶다.


<와방 재밌는 최첨단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비커스...가 아니라! 탈출 시도 중인 모습>



폭력적이고 육식을 좋아하는 외계인의 모습을 봐서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지만, 크리스토퍼가 보여주는 외계인의 습성은 오히려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화가 나지만 분노를 참으면서 주먹으로 벽을 치는 장면이라던지, 자신의 종족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원통해 하고 절망을 느끼고 하는 부분들은 완전 인간과 똑같다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러한 설정은 외계인도 감정이 있고 지적인 생명체로서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만든 장치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관객들이야 바보가 될 테니까.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편이 외계인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훨씬 쉬어지는 장점은 있다. 그래도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장치는 지나친 인간주의적 설정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그 이후의 모습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크리스토퍼는 돌아올 것인가? 비커스는 다시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여운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무언가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하면서 모호하게 끝이 나는 결말, 바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2탄이 나와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2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이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완성작이다. 더 이상의 사족은 필요 없다고 본다. 제작자와 감독은 이미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영화 내에 모두 담아두었다. 그들에게 있어 주인공이 나중에 어떻게 되어버린다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까.


<외계물 사상 가장 감각적이고 감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


우리 주위에도 외계인들이 많음을 잊지 말자. 못생긴 여자에게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자.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그들에 대한 편견은 그 자체가 바로 차별인 것이다. 내가 남들로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바꿔보자. 어쩌면 우리들에게 그들 중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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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초인들은 고개를 들고 인간은 눈깔을 깔아야 했던 우주평등에 위배되는 문제적 포스터>



#1. 21세기 들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슈퍼맨


맨 중의 맨은 휴 잭맨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지만, 누가 뭐래도 진짜 맨이라 불리는 인물은 바로 슈퍼맨이 아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퍼히어로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며, 오래 전부터 영화와 만화를 통해서도 워낙 상징적인 캐릭터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리라. 특히 1979년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한 <슈퍼맨> 영화는 이후 슈퍼맨의 표본과도 같이 되어버려, 전 지구인들에게 슈퍼맨이란 저런 것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리브가 <슈퍼맨 4> 이후로 안타까운 낙마사고로 불구가 되면서 그 뒤를 이을 슈퍼맨 역의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대가 끊기게 될 때에, 외모가 비슷한 브랜든 루스라는 배우가 나타나면서 2006년에 드디어 <슈퍼맨 리턴즈>를 통해 또 다시 슈퍼맨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다가왔었다. 하지만 기존의 크리스토퍼 리브의 이미지가 강했던 슈퍼맨을 브랜든 루스라는 배우로 바꾸기만 했던 작품의 성격이 강했던지라 팬들의 평가는 기대와 달리 참혹했고, 이를 끝으로 더 이상의 슈퍼맨 영화는 어렵지 않겠냐는 영화계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였다. 심지어 니콜라스 케이지가 차기 슈퍼맨이 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대머리 슈퍼맨의 탄생 가능성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과감히 새로운 슈퍼맨에 대한 도전에 발을 디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독특한 미장센을 자랑하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존의 슈퍼맨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내는 무모한 시도를 하였던 바, 그것이 바로 2013년 작 <맨 오브 스틸>이었다. 이 작품에서 슈퍼맨은 기존에 크리스토퍼 리브나 브랜든 루스가 보여주었던 액션을 초월하여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힘을 가진 외계인의 무차별적인 파괴 액션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슈퍼맨이 얼마나 전지전능한 캐릭터인지를 시각적으로 확실히 각인시키게 해 주었다.


이렇게 재탄생된 슈퍼맨에게 더 이상의 적수는 없을 것으로만 보였더랬다. 그런데 어느 날 DC는 놀라운 이야기를 꺼낸다. 이러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슈퍼맨에게 일개 인간이 개긴다는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우주적 파워를 가진 슈퍼맨과 인간을 대표하는 고독한 흑기사 배트맨과의 싸움이 말이다. 팬들은 그야말로 대 환호를 하였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3년을 기다려 드디어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을 통해 그 싸움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바로 그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상쾌한 리뷰 되시겠다.


<그간 참 많이 바뀌었쥬?>



#2. 스토리 – 이유가 있어 싸우는 것인지 싸우려고 이유를 만드는 것인지 모를 말도 안 되는 이종(서로 다른 종족) 격투기


이 작품은 참으로 할 말이 많은데, 일단 155분에 달하는 긴 런닝타임에 녹아든 스토리부터 정리하고 가겠다.


브루스 웨인(벤 애플랙)은 어린 시절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강도에 의해 아버지 토마스 웨인(제프리 딘 모건)과 어머니 마사 웨인(로렌 코헨)을 잃게 되고, 장례식 때 우연히 우물에 빠지면서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그 이후 그는 부모를 죽음으로 몬 범죄를 증오하며 범죄자들을 싸그리 박멸하기 위해 박쥐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배트맨으로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새 중년이 된 브루스에게 어느 날 날벼락같은 사건이 터지게 되니, 바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발생한 슈퍼맨(헨리 카빌)과 조드 장군(마이클 섀년)이 이끄는 크립톤인들과의 전투였다. 그리고 이 사건은 브루스나 인류 역사에 있어 최초로 외계인과의 조우가 되었더랬다.


문제는 이 첫 번째 조우가 그야말로 세기말에 가까운 파괴의 연속이었다는 것. 당시 메트로폴리탄에 위치한 웨인 파이낸셜 빌딩으로 향하던 브루스는 부하 직원들의 위험을 직감하고 급히 구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두 외계인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무참히 사망 또는 50% 이상 고도 후유장애를 입게 된다. 이에 브루스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슈퍼맨이라는 존재가 인류에게 이토록 많은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막아야 할 대상임을 결심하게 된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18개월. 조드 장군이 타고 온 크립톤 우주선의 잔해가 떨어진 인도양 어딘가에서 원주민들이 묘한 돌을 하나 건져낸다. 그리고 그 돌을 깨보니 안에서는 초록색 빛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 바로 크립토나이트의 발견이었던 것이다.


<이 업계에서 망토 히어로는 자기가 원조인데 갑자기 슈퍼맨이 나타나 당황하는 배트맨>



한편,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데일리 플레닛 언론사 소속의 로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이 테러리스트 기지를 방문하여 인터뷰를 따고자 한다. 그런데 카메라맨의 정체가 CIA임이 발각되고, 이로 인해 로이스는 그대로 감금당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테러리스트 멤버에 속해 있던 백인 요원들이 나머지 토종 흑인 요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한 뒤 오토바이로 튀어버리게 되고, 어찌된 영문인지 곧바로 슈퍼맨이 나타나 로이스를 구해내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미 의회에서는 슈퍼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와서는 그로 인해 자기네 가족들이 죽었다며 탄원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지게 되고, 핀치 의원(홀리 헌터)은 이를 통해 슈퍼맨에 대한 제재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시민들의 슈퍼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바로 웨인 그룹의 직원이었다가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전투 때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키프(스쿳 맥네이리)가 슈퍼맨의 동상에 “가짜 영웅이다”라는 낙서를 해서 테러범으로 잡혀가기까지 하였다. 슈퍼맨에서 평소엔 데일리 플래닛 기자로 위장하며 살고 있는 클락 켄트는 이러한 뉴스를 접하며 슈퍼맨의 정의로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에 대해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로이스는 샤워 도중 아프리카에서 가져 온 자신의 노트에 당시 백인 테러 요원들이 발포한 총알이 박혀있음을 알게 되고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물건이 기존의 탄두와는 다르게 생겨먹었기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로이스. 마침 그 때 클락이 나타나고, 로이스는 클락에게 아프리카로 구하러 온 것은 무리였다고 꾸중을 한다. 그러자 일단 입술박치기부터 시작하면서 화제 전환을 시도하는 클락.


한편, 어느 저택에서 경찰들이 수사를 벌이게 되고, 그 곳에서는 배트맨이 범죄자를 처단하고 있었다. 배트맨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고, 남겨진 범죄자에게는 배트맨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이러한 배트맨의 파격 행보에 대해 언론에서 다루게 되고, 클락은 이를 통해 고담시의 시민과 경찰들이 법 위에서 활동하는 배트맨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며 정의롭지 못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배트맨은 왜 그러면 이러한 추노 놀이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고담시로 핵폭탄이 유입된다는 소문이 돌아 그 진상을 파헤치기 위함이었다. 관계된 범죄자들에게 배트맨 낙인을 찍어놓고 하나씩 추적해 나가는 중이었으나 아직까지는 소득이 없었던 것. 그러다가 마침내 아나톨리(칼란 멀베이)라는 놈이 중책임을 알게 되고, 그에게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사실 아나톨리는 슈퍼맨이 아프리카로 로이스를 구하러 가기 전 흑인 토종 테러 요원들을 사살한 문제의 백인 집단의 우두머리이나, 배트맨이 이 사실을 알리는 없을 터.


<브루스가 만날 이 여인은 훗날 배트맨에게 정말로 심쿵을 선사한다>



브루스는 격투기 도박장에서 아나톨리를 보게 되고, 일부러 그의 심기를 건드리며 접근에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그의 핸드폰 내용을 복사하는 데 성공한 브루스는, 통화내역을 통해 “화이트 포르투게스”라는 단어와 통화 대상자가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임을 알게 된다. 그러자 렉스 루터를 조사할 필요가 있어진 브루스. 하지만 배트맨으로 접근을 시도하려고 할 때 알프레드(제레미 아이언스)는 이미 브루스 웨인으로 초대를 받았다면서 배트맨 수트를 입지 말 것을 충고한다.


고담시에 웨인 그룹이 있다면, 그 옆동네(서울과 분당같은 관계)인 메트로폴리스에는 렉스코프라는 초거대 기업이 있었는데, 바로 그 렉스코프의 사장이 렉스이다. 렉스는 마침 자신의 기업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는데, 바로 크립톤 우주선 잔해에서 떨어진 초록색 조각에 대한 연구였다. 렉스는 크립토나이트라 불리는 그 조각을 연구한다면 앞으로 슈퍼맨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무기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인도양에서 발견된 크립토나이트 원석의 정식 수입 허가를 요청한다. 그러나 방문 멤버에 속해 있던 핀치 의원은 허가해줄 수 없다고 저항하고, 렉스는 대신 다른 의원을 꼬셔 딜을 하며 추가로 크립톤 우주선에 대한 접근 권한과 조드 장군의 시체를 요구한다.


그날 밤 렉스의 저택에서 칵테일 파티가 열리게 되고, 여기에 브루스와 클락이 참석하게 된다. 브루스는 렉스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알프레드의 도움을 받으며 지하 서버실로 내려가 몰래 해킹 장치를 설치하고 잠시 시간을 벌고자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연히 아름답고도 오묘한 자태의 여인(겔 가돗)을 보게 된다. 한편 클락은 브루스와 알프레드의 무선 통신을 우연히 엿듣게 되고, 이를 통해 브루스가 배트맨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브루스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클락. 결국 클락은 브루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며 배트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쌩뚱맞은 질문을 하게 되고, 브루스는 비록 클락의 정체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오히려 슈퍼맨이야말로 위험한 존재라며 서로 신경전을 피게 된다. 그 때 마침 렉스가 나타나 서로를 인사시키고는 클락이 힘이 좋다며 “둘이 서로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사라진다. 이후, 새마을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이나 해킹 시도에 필요한 7분이 지나고 다시 해킹장치를 회수하려 브루스가 지하로 향하게 되고, 클락 역시 뒤를 쫓게 된다. 그런데 마침 멕시코에서 화재사건이 터진 소식을 보게 된 클락은 브루스 추적을 포기하고 만다. 브루스는 해킹장치를 회수하려 서버실에 왔는데, 이게 웬 일? 해킹 장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이윽고 아까 파티장에서 본 오묘한 여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 앞에서 사라지고, 브루스가 쫓아가지만 그렇게 그 여인은 차를 타고 도망가버린다. 죽 쒀서 개 준 꼴.


<셋이서 모두 한 꺼번에 대면하는 것은 이 장면이 유일>



한 편 멕시코로 날아간 슈퍼맨은 무사히 화재사고에서 인명 구출에 성공하게 되고, 그 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신처럼 떠받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슈퍼맨의 의미에 대해 갑론을박을 피게 된다. 누군가는 슈퍼맨을 신이면서 구세주라고 보는가 하면, 누군가는 외계인일 뿐이며 언제든 인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핀치 의원은 여전히 슈퍼맨의 무고한 행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에 대해 슈퍼맨은 자신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대립하는 것에 대해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어느 박물관에서 브루스는 문제의 도둑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훔쳐간 물건을 돌려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도 훔치려 하지 않았냐며 기세 등등하게 나오는 도둑녀. 그리고 그녀는 자신 역시 렉스의 비밀 정보가 필요하다면서, 렉스가 자신의 소유인 사진 하나를 가져가서 그 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브루스는 당신 같은 여자 허벌나게 만나봤다고 자랑하지만, 나 같은 여자는 처음일거라며 한 방 먹이는 도둑녀. 그리고 이내 시크하게 해킹 장치를 돌려주고는 자리를 떠난다.


배트케이브로 돌아 온 브루스는 해킹장치를 해독하게 되는데, 그 사이 잠시 꿈을 꾸게 된다. 꿈 속에서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바바리 코트 입고 나타나는 배트맨. 그리고 그에게 어느 집단이 나타나 물건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함정에 빠지는 배트맨과 그를 추종하는 집단들. 슈퍼맨 마크를 단 집단이 떼거지로 몰려 들고 뒤이어 하늘에서는 날개달린 요상한 괴생명체까지 합세한다. 결국 핀치에 몰린 배트맨은 그렇게 잡히게 되고, 마침내 슈퍼맨이 등장하여 그의 앞에 서게 된다. 배트맨은 타락하여 악하게 변해버린 슈퍼맨을 비난하고,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그녀는 나의 전부였는데, 네가 그것을 앗아갔다”며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기어이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다. 순간 쇼크로 꿈에서 깨어난 브루스. 그런데 이번엔 자기 앞에 웬 짝퉁 아이언맨 같은 놈이 나타나서는 뜬금없이 “너의 그에 대한 생각이 옳았다. 너의 뜻대로 행해라. 그리고 그녀를 찾아라. 로이스 레인이 키이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라는 괴랄한 말만 지껄이고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또 꿈에서 깨어나는 브루스. 알고보니 몽중몽을 꾸었던 것.


별 희한한 꿈도 다 있겠거니 싶을 때 마침 해독 작업도 마무리 되어 브루스는 이내 렉스코프의 비밀 자료들을 보게 된다. 거기에서 발견한 “화이트 포르투게스”는 바로 사람이 아닌 배였던 것. 고담항으로 입항 예정인 이 배에는 크립토나이트가 실려 있었고, 그 돌은 크립톤인의 세포에 반응할 경우 그 세포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이것으로 브루스는 슈퍼맨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이 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는 한편 여러 폴더 중에 아쉽게도 ‘직박구리’는 없었지만 ‘메타휴먼’이라는 므흣한 폴더를 발견하는 브루스. 그리고 그 폴더 안에 보니 제목 미상의 므흣해보이는 동영상이 4개나 있었던 것. 그 중 하나를 클릭해보니 동영상에는 바로 문제의 도둑녀가 최근에 CCTV에 포착된 것이었는데, 아래로 주욱 내려가보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뚜들기는 시츄에이션? 1918년이라고 찍혀있는 사진에도 떡하니 그녀가 포스 작렬하며 등장해 있었던 것. 자신이 작업걸었던 미모의 여인이 알고보니 100살 넘은 할머니라 충격먹은 듯한 브루스.


<훗! 날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존재는 너가 처음이야 슈퍼맨군~>



한편 핀치 의원은 렉스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속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크립토나이트의 수입을 절대적으로 막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렉스는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협박성 태도를 취하게 되고, 자신의 집에 놓여있는 ‘천사 대 악마’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녀를 이름 그대로 핀치로 몰아붙인다.


또 한편, 로이스는 자신이 건진 총알이 CSI의 조사에서도 정체불명으로 나오자, 이 것이 국방부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형 탄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상 조사를 위해 자신의 상사인 데일리 플래닛의 악마 페리 국장(로렌스 피시번)에게 헬기 타고 국방부로 보내달라고 조르고, 마침내 로이스는 국방부 소속 스와닉 장군(해리 레닉스)을 만나 탄두를 보여주며 진상을 밝혀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씹히고 마는 로이스.


고담항에 문제의 화이트 포르투게스 배가 입항하는 밤에 배트맨은 하역장에 잠입하여 크립토나이트를 실은 트럭에 추적기를 달고 배트모빌을 타고 추적하게 된다. 본래 계획은 도로 상에서 강탈하려던 것이었는데, 적들의 저항이 거세 쉽게 빼앗지 못하게 되고, 겨우 겨우 마지막 차안스에 돌입한 그 때 갑자기 슈퍼맨이 나타나 한눈 판 배트맨에게 교통 사고를 유발시킨다. 드디어 맨과 맨으로 만난 두 사람.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자비심이 있을 때 살려줄 테니 더 이상 깝치지 말고 배트시그널 떠도 숨어 지내라”고 협박하고, 배트맨은 되려 “너도 피를 흘리냐”며 개겼다가 개무시당하게 된다. 그러자 배트맨은 반드시 피를 흘리게 해주겠다며 결의를 다짐한다.


<슈퍼맨은 데뷔한 지 고작 18개월 만에 글로벌 슈퍼스타로 자리잡는다. 반면 배트맨은 한 평생 활약했건만....>



겨우겨우 배트케이브로 귀환한 배트맨은 추적장치를 통해 크립토나이트 원석이 렉스코프 연구단지로 향했음을 알게 된다. 왜 그 물건은 그 곳으로 향했을까? 렉스는 바로 이 크립토나이트 원석을 이용해 조드 장군의 시체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드 장군의 지문피부까지 떠버리는 요상한 짓을 하는 렉스.


한편 그간 슈퍼맨 동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있었던 키프가 누군가의 보석금으로 풀리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렉스의 계략이었던 것. 렉스는 키프에게 새로운 삶을 주겠다고 하고선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바로 슈퍼맨을 타락한 영웅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스스로 증인이 되어버리라는 것. 이에 키프는 핀치 의원을 찾아가 자신이 슈퍼맨을 비판할 수 있는 증인이 되겠다며 나서고, 핀치 의원은 이에 힘을 얻어 슈퍼맨에 대한 대대적인 청문회를 열어버린다. 그녀는 슈퍼맨에게 청문회에 나타나서 인류의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슈퍼맨의 입장에 대해 설명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자 가치관에 심각한 혼란을 느끼게 된 슈퍼맨은 자신을 길러 준 양어머니 마사(다이안 레인)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늘 착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전형적인 엄마스러운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마사. 결국 슈퍼맨은 청문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로 결정하고, 로이스는 그런 슈퍼맨을 막아서지만 끝내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택배 왔습니다~ 핵미사일 시키신 분?>



드디어 워싱턴 DC에서 역사적인 슈퍼맨의 청문회가 열리고, 실시간으로 언론에서 다루어지자 이를 보던 브루스는 그 곳에 증인으로 자신의 부하직원이었던 키프가 있음을 알고 이것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며 그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궁금해 연금 지급 내역을 조회해본다. 그러자 모든 연금이 반환되었고 고지서에는 계속해서 브루스를 비난하는 글들만 적혀 있었던 것. 그 와중에 마침내 슈퍼맨이 청문회장에 나타나고, 밖에서는 시민들이 ‘외계인 고 홈’을 외치는 비난 속에서 당당하게 핀치 의원 앞에 선다. 핀치 의원은 이내 슈퍼맨에게 질문을 시작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받고 계속 말을 더듬는 그녀. 그것은 바로 청문회 직전 만나게 된 렉스로부터 받은 협박성 멘트가 정말로 위협이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불사의 슈퍼맨을 제외한 청문회장 내 모든 인원들이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다. 이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지고, 슈퍼맨 역시 이 안타까운 상황에 고개만 떨굴 뿐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던 브루스 역시 배트맨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각오를 더더욱 다지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키프의 자살폭탄테러로 판명나지만 그 배후에는 슈퍼맨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퍼지고, 결국 슈퍼맨에 대한 인류의 태도는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에 충격먹은 슈퍼맨은 그대로 잠수를 타게 되고, 마사와 로이스는 그런 그를 걱정하게 된다.


한편, 렉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렉스코프 연구단지가 쑥대밭이 되어버리는데, 알고보니 배트맨이 크립토나이트를 훔쳐간 것. 배트맨은 드디어 크립토나이트를 구해서 각종 공정 작업을 통해 슈퍼맨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 역시 스스로도 슈퍼맨에 대항하기 위해 육체적 훈련에 돌입한다.


로이스는 그간 스와닉 장군을 꼬셔서 탄두를 통한 진상 조사에 돌입하게 되고, 마침내 그 탄두가 국방부가 아닌 다른 민간기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렉스코프. 그러자 로이스는 왜 렉스코프가 이 탄두를 아프리카에서 쐈을까 하고 의심하다가 이내 이 것이 슈퍼맨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한 렉스의 계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뒤늦게 머리에 전구가 켜진 로이스.


한편, 렉스는 조드 장군으로부터 검출한 지문 피부를 이용해 크립톤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우주선을 가동시켜 크립톤인들이 축적했던 우주 10대 문명의 모든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다. 이 것을 토대로 렉스는 조드 장군의 시체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고, 크립톤 우주선의 인공지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를 직접 조드에게 주입시키면서 그야말로 분노와 파괴본능에 가득찬 괴물을 탄생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설정상 천재인데 오히려 지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어보이는 렉스 루터>







#3. 참 대단한 영화인데 어딘가 모르게 쌈마이 같기도 한 느낌은 무엇일까?


스토리 설명이 너무 길어진 점에 사과를 드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155분의 런닝타임을 자랑하는데, 이 시간도 모자라서 정말 많은 내용들이 핵심 내용만 마구잡이로 풀어재껴지는 식이다. 위의 스토리 흐름을 잘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토리 상의 사건들이 갑자기 전환하기를 밥 먹듯이 해버린다. 어떤 장면이 뜬금없이 약 10초간 나오다가 다시 전혀 다른 장면이 또 짧게 나오는 식으로 정말 번개 같은 스토리 전환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오로지 기억에 의존하여 스토리를 정리해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위 내용 중 일부는 분명 잘못 된 순서로 기술되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너무 작은 주머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한 욕심 때문이리라. 알다시피 이 작품은 단순히 슈퍼맨과 배트맨의 싸움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후에 펼쳐질 ‘저스티스 리그’라는 DC코믹스를 대표하는 수퍼히어로 집단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작품이기에 그에 대한 설명들이 모두 녹아들어 있었어야 했다. 애초에 잭 스나이더도 이 작품은 본래 4시간 분량의 스토리였다고 하는데, 아마 상영시간과 흥행을 고려해야 했기에 부득이하게 155분으로 줄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불가피하게 각 핵심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줄 서브 스토리들이 죄다 빠져버리면서 그야말로 뜬금없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비교적 허접한 편집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야 슈퍼맨! 태양 가리지마! 일광욕 방해되잖아!!>



사실 이러한 편집과 연출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에 크리스토퍼 놀란, 각본에 데이빗 고이어, 그리고 감독에 잭 스나이더까지. 그야말로 후덜덜한 제작진들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누구이던가? 바로 배트맨 트릴로지로 배트맨 영화 역사는 물론 다크히어로 무비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명감독이 아니던가. 여기에 헐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중 하나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데이빗 고이어가 각본을 썼으니 스토리도 완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잭 스나이더는 앞서 설명했듯이 자신만의 미장센을 기반으로 다크한 분위기를 아주 잘 뽑아내는 액션영화의 거장 아니던가. 그래서 이들의 조합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수퍼히어로 무비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본 현 시점에서는 이들의 조합이 시너지는커녕 서로의 개성을 갈아먹은 느낌밖에 들지 않고 있다. 단지 <맨 오브 스틸>에서 보여주었던 시각적 충격을 조금 더 긴 이야기로 늘여놓은 기분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토퍼 놀란은 <맨 오브 스틸> 때부터 자기는 바지사장만 하고 전권을 잭 스나이더에게 위임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잭 스나이더의 의지대로 가게 된 경향이 큰데, 문제는 잭 스나이더 특유의 미장센마저도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300> 시리즈와 <서커 펀치>, 그리고 필자가 베스트로 꼽는 <왓치맨>에서 보여주었던 느와르적이면서도 장중하게 펼쳐지는 슬로우 액션 비주얼이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이미 <맨 오브 스틸>에서 그런 조짐이 보여 실망이 다소 있었는데, 이번에서도 그러한 아쉬움을 답습했다는 점에서 더 실망감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잭 스나이더 특유의 미장센은 액션이 아니라 영화 초반부와 막판의 장면에서 과도하게 연출되면서 무언가 통일성이 결여된 느낌이기도 하다.



#4. 배트맨 대 슈퍼맨의 승자는 마블이다?


일단 영화의 연출적인 면에 대해서는 스톱하고, 지금부터는 이 작품이 평가를 받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 바로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 계에서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는 DC와 마블을 대표하는 작품들간의 비교 되시겠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옆 동네 마블 애들이 인기를 더 얻었다니>



알다시피 마블은 오래 전부터 마블의 모든 수퍼히어로를 모아서 지구는 물론 우주 평화를 지킨다는 어벤져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벌써 2편의 어벤져스 영화가 개봉된 상태이다. 물론 흥행에서는 계속해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대박 작품이 되었으며, 스토리, 캐릭터, 연출, 액션 등등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대표 코드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DC에서도 뒤늦게 발동이 걸려 어벤져스에 대항하기 위해 저스티스리그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된다. 저스티스리그는 어벤져스처럼 DC의 수퍼히어로들이 죄다 모여서 만든 우주 평화를 수호하는 집단이라고 보면 되겠다. 양 집단의 컨셉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둘의 영화화는 필연적으로 대결 구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테이프를 끊은 마블의 경우는 철저하게 가족 영화 컨셉으로 만들어냈다. 우주적인 스케일을 다루었지만 인간과 외계인의 조우는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고, 지구에 위협이 되는 사건도 그다지 절망적인 수준까지 보여지지는 않았다. 캐릭터들은 모두 막강하지만 늘 여유를 잃지 않았고, 심지어 각자의 개성을 담아 개그까지 선사하면서 시종일관 재미를 선사하였다. 특히 액션과 드라마의 강약 조절이 매우 잘 되었고, 캐릭터들 간의 스토리가 촘촘히 짜이면서 연출 상의 허점도 거의 없었다. 인간과 신, 외계인, 인조인간 들로 다채롭게 구성된 캐릭터들 간의 밸런스도 큰 차이 없이 그려졌다. 주제는 늘 권선징악이었고, 악당조차도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 애정이 가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후발주자로 나선 DC는 조금 달랐다. 어차피 마블을 따라가봤자 캐릭터만 다를 뿐 차별화가 될 것이 무엇이겠느냐며 전혀 다른 노선을 취했는데, 그것이 바로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이고 장엄하며 무거운 주제로 다크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DC를 대표하는 배트맨 캐릭터가 이미 배트맨 트릴로지를 통해 어마무시하게 다크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성은 충분히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는 잭 스나이더가 추구하는 방향성하고도 아주 잘 들어맞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배트맨 트릴로지와 저스티스리그는 다르다는 것을 제작진들은 간파하지 못했던 듯하다. 배트맨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철저하게 인간적인 캐릭터이다. 과거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이기에 고통을 느끼며 싸운다. 또한 늘 정의를 추구하지만 법 위에 서야 하기 때문에 모두로부터 쫓기는 그야말로 다크 나이트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감수하면서 외롭게 싸우는 존재이다. 


<인간 배트맨이 초능력 외계인 슈퍼맨을 상대로 어떤 싸움을 할 수 있을지는 늘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여기에 애초부터 출신 성분이 다른 슈퍼맨이 등장하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슈퍼맨은 태생부터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며, 가뜩이나 초고도 문명과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태양의 후예, 유시진…이 아니라 크립톤 종족이기 때문이다. 설정부터 넘사벽인 이 외계 캐릭터가 사실적이라 해도 얼마나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실 잭 스나이더는 <맨 오브 스틸>에서 그러한 사실적인 슈퍼맨을 그리기 위해 이들이 싸우면 적어도 이 정도로 풍비박산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다보니 전투 중의 여유는 없고 오로지 사력을 다해 닥치는 대로 싸우는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수십 아니 수 천명이 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즉, 배트맨이 정말 헥헥거리며 범죄자 한놈 한놈을 정성들여 따잡수다가 슈퍼맨이 나타나 눈깔에서 히트빔 한방으로 수천명이 싸그리 몰살당해 버리는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은 어떠한 느낌을 받을 것인가? 그야말로 너무도 현실적인 밸런스 차이 때문에 오히려 작품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사정이 이러한데 여기에 DC는 시종일관 무겁게 가겠다고 했으니, 관객들은 영화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박살나고 부서지고 줘터지고 묵사발되는 장면만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슈퍼맨이라도 단 한번도 여유를 부리는 적이 없이 늘 진지하게 전투에 임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늘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까.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 여유와 웃음은 사치일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배트맨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슈퍼맨보다도 더 심각한 캐릭터가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해도 그야말로 묵사발이 날 수 있다. 게다가 하고자 하는 짓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이라 늘 부담을 스스로 지고 다니며 싸움에 임한다. 한 마디로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 엄청난 책임감과 정의감, 그리고 사명감에 불타며 매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현실적인 나머지, 이러한 캐릭터들에 팬들은 거부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어벤저스와 저스티스리그에서 등장하는, 또는 등장할 예정인 주요 히어로들에 대한 능력치도 차이가 상당하다. 어벤저스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서 서로를 보완해주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팀웍이 중시될 수 밖에 없도록 연출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캐릭터의 능력치를 약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 출신인 토르도 묠니르가 없으면 아이언맨에게 두들겨 맞을 정도이며, 캡틴 아메리카도 비브라늄 방패가 없다면 총알 몇 발에 그대로 숨질 수 있는 인간 육체를 가졌을 뿐이다. 헐크도 불안한 심리가 약점이어서 선과 악을 왔다리 갔다리 할 수 있는 리스크를 지니고 있고, 아이언맨도 수트빼면 그냥 바람둥이 중년 신사일 뿐이다. 더욱이 호크아이와 블랙위도우는 어떤가? 이 친구들은 수퍼히어로도 아니다. 그저 인간 중에서 보통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발탁된 특수 요원에 가까운 개념이다.


하지만, 저스티스리그는 히어로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슈퍼맨 자체만으로도 이미 지구 평화가 가능하고 어지간해선 우주도 상당 부분 커버가 가능한 초초초초초능력자이다. 설정상 불사에 가까우며 태양빛만 있으면 언제든 힘과 에너지가 철철 넘쳐 흐른다는 먼치킨 캐릭터이다. 여기에 원더우먼이 가세하였는데, 원더우먼은 태생이 신이며 이미 나이가 5,000살이 넘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지구에 살면서 인류를 지켜왔기에 힘과 능력 모든 것이 지구 최강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앞으로 등장할 주요 멤버들 중 하나인 플래시는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시간보다도 빨라서 과거와 미래를 출퇴근할 수 있는 수준이고, 아쿠아맨은 원더우먼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진 바다의 수호자이다. 여기에 보통 인간인 배트맨이 끼긴 하는데, 이번 작품이 참으로 현실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빙하는 것이, 둠스데이랑 싸울 때 배트맨이 줄기차게 도망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에 안구가 촉촉해지는 장면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넘사벽 캐릭터들이 주구장창 나와버리니 마블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싹 없어지고, 일단 반경 몇 십 미터는 잿가루로 만들고 시작하는 싸움이 줄을 이으니 시원시원하면서도 동시에 허무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좋아는 해 주는데 어째 팬들의 상태가 이상하다? 이 것이 이 작품의 진짜 결과를 암시하는 것이 될 줄이야>



#5. 저스티스리그에 대한 떡밥 고찰


기왕 바로 앞에서 저스티스리그 멤버들에 대해 얘기가 나왔으니, 이번 작에서 등장하는 여러 떡밥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 전에 이 작품이 마블과 비교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을 언급하자면, 바로 이러한 떡밥들을 뿌리는 방식의 차이이다. 마블은 떡밥들을 엄청나게 뿌려대는데, 이것들은 마블 덕후가 아닌 이상은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형식으로 뿌려댄다. 거의 이스터에그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그만큼 관객들이 매니악하게 빠지게끔 만드는 수를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DC는 떡밥을 다소 친절하게 드러내주고 있어서 대충 사전 지식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알게 되는 방식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들만 떡밥을 뿌리기 때문에 괜히 덕후스럽게 달라붙을 필요가 없다.


자, 그럼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앞으로 나올 저스티스리그 멤버들에 대한 소개일 것이다. 이미 동영상에서 이들에 대한 소개가 다 끝났다는 것이 함정인데, 이름만 안 나왔을 뿐이지 각자 특성이 다 소개되어버려 사실상 떡밥이라고 보기도 민망하다. 하나씩 소개를 해보자면, 바다에서 캐스팅된 인물은 아쿠아맨으로, 인간명은 아서 커리이며, 인간과 아틀란티스 종족 간에 태어난 혼혈이다. 아틀란티스 종족은 바다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이어받아 바다 속에서는 천하무적에 가까우며 넵튠의 창이라는 삼지창을 이용하여 물을 이용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는 아틀란티스의 왕으로서 벌어먹고 살고 있다. 본래 바다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이고 인간과의 인연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 세상과 동떨어져 살다가, 희대의 빌런이 등장하면서 지구가 박살날 위기에 처하자 일단 살고 보자는 식으로 합류할 것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 영상으로 나오는 인물은 플래시로, 본명은 배리 앨런이다. 본래 센트럴시티 소속 경찰 감식반이었다가 입자가속기의 폭발 사고로 전기를 맞고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포스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시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별의 별 능력들을 구사할 수 있게 되는데, 놀랍게도 시간까지 거슬러서 미래와 과거도 다녀올 수 있게 된다. 영화 중간에 배트맨의 몽중몽 장면에서 갑자기 아이언맨 짝퉁처럼 튀어나와 괴랄한 말을 지껄이던 친구가 바로 이 플래시로, 왜 여기에서 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고찰해 보겠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플래시 역시 저스티스리그에 가입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스크린을 통해 데뷔할 멤버로는 (왼쪽부터) 아쿠아맨, 그린랜턴, 원더우먼, 슈퍼맨, 배트맨, 플래시, 사이보그>



마지막에 나온 인조인간 로봇 같은 존재는 바로 사이보그이다. 본명은 빅터 스톤으로, 원래 미식축구 선수였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자 그의 아버지이자 스타 연구소 수석 연구원인 사일러스 스톤 박사가 온 몸을 기계로 대체 후 모종의 기술로 살려내는데 성공하면서 기계인간으로 활약하게 된다. 사이보그답게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는 자체 와이파이 기능을 탑재하고 있어서 매우 유용하며, 기계를 이용한 다양한 기술 구사가 가능한 캐릭터이다. 영상에서 사이보그를 가동시키는 데 쓰인 박스 같은 물질이 원작에서 등장하는 마더박스라는 물체로 여겨지고 있다. 이 친구는 아마 늘 와이파이를 필요로 하는 배트맨에 의해 강력하게 가입추천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모두 메타휴먼이라고 불리는데, 메타휴먼은 말 그대로 휴먼을 초월한 존재라는 뜻이다. DC에서는 메타휴먼은 이들과 같이 보통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은 능력을 보유한 인간 출신 히어로들을 지칭하고 있다. 다만, 원더우먼이 본래 신인데 영화에서는 메타휴먼에 소속되어 있어서 나중에 설정상 신인지 인간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은 곧 개봉될 <원더우먼> 독립작품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초반에 슈퍼맨이 바라보는 그의 사이드킥 로빈의 수트. 이 역시 조커와 그에게 죽임당한 로빈에 대한 떡밥 투척이다>



그렇다면 저스티스리그는 왜 뭉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마치 어벤저스가 뭉친 계기가 스크럴이라는 외계인 집단이 로키에 의해 지구로 침공하게 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뭉친 것과 매우 유사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다크사이드라는 우주 최강의 빌런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 대체 다크사이드는 무엇인가? 정작 이 작품에서는 다크사이드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떡밥들을 던져주고 있다. 첫 번째로 렉스가 막판에 말하는 “그가 온다”는 부분이다. 렉스가 크립톤 우주선 안에서 방대한 우주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다크사이드의 존재를 알아챘을 것이고, 다크사이드 역시 지구의 존재를 알고 언젠가 우주 정복을 위해 지구로 올 채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렉스는 두려움에 떨며 이미 늦었다고 말했던 것이고, 이는 향후 저스티스리그가 뭉쳐야 할 원인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크사이드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약간 설명을 하자면 DC에서 존재하는 우주 최강의 빌런이라고 보면 되겠다. 마블에서 이미 어벤저스 3부작의 끝을 우주 끝판왕 타노스와의 대결로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기조에 응하듯 DC역시 초장부터 초강력 빌런인 다크사이드를 내세웠다는 예측이다. 흥미롭게도 마블의 타노스는 DC의 다크사이드를 본떠서 만든 캐릭터이다.


이러한 예측에 힘이 실리는 것은 바로 배트맨의 몽중몽과 렉스의 그림에서 등장한 날개달린 악마와 같은 괴생명체 때문이다. 이 괴물들이 뜬금없이 왜 튀어나올까 싶었을 텐데, 이들은 바로 다크사이드가 이끄는 페러데몬이라는 괴물 무리이다. 이것을 통해 다크사이드의 부하들이 지구에 와서 타락한 슈퍼맨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모습이 꿈에서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즉, 다크사이드가 끝판왕으로 등장할 것이 매우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 캐릭터들의 독립 작품에서 이 다크사이드에 대한 떡밥이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여진다.


<왼쪽 기둥에 퀘스쳔 마크가 보이는가? 이 것은 배트맨의 숙적 중 하나인 리들러의 상징>



#6. 이해가 다소 어려웠던 몇몇 장면에 대한 필자만의 의견


자, 그럼 이제 플래시가 중간에 배트맨의 꿈에 나타난 이유와, 바로 그 직전에 꾼 배트맨의 꿈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관객들이 너무 개연성없는 장면 아니냐며 항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이제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배트맨의 꿈에서 등장하는 황량한 사막 같은 곳은 미래의 고담이나 메트로폴리스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이 장면은 꿈이라기 보다는 평행이론으로 설명 가능한 미래의 다른 시간 축이라고 보면 되는데, 미래에서 결국 슈퍼맨이 타락하여 다크사이드와 손을 잡고 악의 주축이 되어버리며, 배트맨은 여기에 대해 끝까지 정의를 지키며 악에 대항하는 현실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플래시가 브루스에게 나타난 것은, 이러한 미래를 플래시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보았던 것이고, 이를 통해 플래시는 다시 시간축을 되달려 현재의 배트맨에게 와서 경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트맨, 너의 그에 대한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배트맨이 계속 의심하던 슈퍼맨의 타락 가능성에 대해서 미래에서 실현됨에 따라 옳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래시가 개그를 하나 치는 것이 “내가 너무 빨리 왔나?”라는 대사인데, 사실 이 시점에서 배트맨은 아직 슈퍼맨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플래시가 타이밍을 못 맞추고 좀 더 앞선 시대로 거슬러와서 너무 일찍 말했기 때문에 했던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래시가 했던 다른 말을 유의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녀를 찾아야 해. 그리고 로이스 레인이 키가 될 것이다”라는 말인데, 여기서 대부분은 ‘그녀’가 바로 로이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여기서 지칭한 ‘그녀’는 실은 로이스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다. 바로 수퍼맨의 양어머니인 마사. 이 뿐만 아니라 몽중몽에서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던진 “그녀가 나의 전부였는데, 네가 앗아갔다”라는 말에서의 ‘그녀’ 역시도 대부분 로이스라고 생각하겠지만 마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것은 이 작품에서 최종적으로 슈퍼맨이 타락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는 사건에 연루된 그녀를 지칭하는 것일 텐데, 아무리 봐도 그럴만한 인물이 로이스보단 마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스포일 수도 있으니 더 이상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이 부분을 스킵하길 바란다. 아니라면 계속해서 읽어보시기를. 그럼 왜 마사라는 말인가? 렉스가 마사를 납치했을 때 슈퍼맨은 마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을 대표하는 태도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오로지 마사를 살리기 위해서 선택한 필수불가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배트맨이 의외로 꼼수를 잘 써서 슈퍼맨을 죽일 정도로 몰아부치게 되는데, 여기서 결국 슈퍼맨은 렉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사가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평행이론에 의해 분기가 생기는데, 만약 배트맨이 슈퍼맨의 부탁을 거절하고 마사를 죽게 내버려뒀다면 슈퍼맨은 분명 배트맨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되고 타락하여 악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반면 배트맨이 마사를 살리게 된다면 슈퍼맨의 타락을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플래시가 강조한 ‘그녀’와 슈퍼맨의 ‘그녀’ 모두 마사라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원더우먼이었더라면 모든 남성 캐릭터들이 더 열심히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플래시가 말한 ‘로이스가 키가 될 것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바로 이 대사 때문에 ‘그녀’가 로이스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로 ‘그녀’인 마사를 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주는 인물이 바로 로이스였다. 배트맨이 계속 슈퍼맨에게 왜 마사라는 이름을 말하냐고 다그칠 때 혜성같이 나타나 진실을 말해 준 인물이 바로 로이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트맨이 그 순간 망설이다가 슈퍼맨을 죽이지 않은 것은 로이스의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다고 봐도 되겠다.


그런데, 또 한가지 궁금해지는 것이 배트맨은 과연 그 순간에 단지 마사라는 이름이 자신의 어머니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살인을 포기한 것일까? 필자 생각에는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는 충분한 영화적 설명이 있지는 않았지만, 플래시가 말했던 ‘그녀’라는 의미와 몽중몽의 내용에 대해 깨우치게 된 배트맨이 “옳거니. 여기서 나는 플래시의 말대로 마사를 살려야 하는구나”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슈퍼맨이 타락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어머니 마사에 대한 안타까움도 작용했겠지만, 이 것은 그저 부수적인 장치였다라고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직후 배트맨이 되려 마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아가는 장면에서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유가 모두 크게 작용을 해서 나타난 행동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시는 엄마를 죽게 둘 수 없다는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와, 미래를 위해 플래시의 경고대로 ‘그녀’를 죽게 둘 수 없다는 의무감 모두가 작용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외에도 다른 몇몇 장면들도 이해가 어려웠던 요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왜 아프리카에서 렉스의 부하들은 슈퍼맨을 궁지로 몰기 위해 그딴 짓을 한 것일까 등이다. 사실 이를 더 깊게 파고들면 결국 렉스는 왜 슈퍼맨과 배트맨이 서로 싸우도록 이간질 시켰는가 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영화에서 전혀 설명이 안되었다고 보여진다. 표면적으로는 슈퍼맨이 너무 전지전능해서 인류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막아야 한다는 것을 주창하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배트맨을 도울 것이지 왜 나중에는 배트맨까지 죽이려 했는가 하는 부분에서 모순이 생긴다. 물론 원작에서 렉스는 수퍼빌런은 아니지만 천재적인 지능 때문에 다른 수퍼빌런들을 지휘할 정도의 무서운 능력을 갖추고 있는 빌런이고, 그는 미국을 지배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긴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렉스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 왜 그가 이런 짓을 꾸몄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그가 계속 노래처럼 불러재꼈던 타락한 힘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그의 동기를 설명하기엔 터무니없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단순하게 다크사이드의 지시였다고 보기도 어려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훗날 다른 작품을 통해 여러 모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7. 원작의 캐릭터와 배우들간의 싱크로


자, 이제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 하고, 원작 캐릭터와 작품에서 투영된 캐릭터의 차이, 그리고 이를 열연한 배우들간의 싱크로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먼저 슈퍼맨은 이미 <맨 오브 스틸>에서 나왔듯이 기존의 슈퍼맨과 확연히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쫄쫄이 스판까지 바뀌었지 않은가. 더 이상 파란 내복 위에 빨간 팬티를 입지 않는 슈퍼맨이라니,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아무튼 잭 스나이더식 슈퍼맨은 조금씩은 최근의 원작 컨셉을 따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생소한 슈퍼맨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연기한 헨리 카빌 역시 기존의 슈퍼맨에 대한 상식을 깨는 캐스팅이기도 하였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정립한 외모와 분위기가 사실 브랜든 루스를 통해 대물림되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헨리 카빌이라는 배우가 나타나 오로지 근육질 몸매 하나로 슈퍼맨을 꿰차게 되어버리니 팬들의 질타가 어마어마할 수 밖에.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간 미국의 상징이었던 슈퍼맨을 영국 출신의 헨리 카빌이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진짜 힘있어 보이는 슈퍼맨을 보여주기 위해 4개월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근육질 바디를 완성시킨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등장하자 우려는 기대로 바뀌며 새로운 슈퍼맨의 등장에 환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였다. 마치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기존의 통념을 깨고 다니엘 크레이그로 바뀌면서 007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던 것처럼, 슈퍼맨 역시 헨리 카빌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원작 그대로 살리려 했다면 원더우먼은 더 섹시하게, 둠스데이는 더 거칠게 나왔어야 할 터>



배트맨은 사실상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배역이다. 그것은 이전의 배트맨 트릴로지에서 보여준 ‘벳신’ 크리스챤 베일의 명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작품으로 배트맨은 크리스챤 베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조가 형성되었는데, 갑자기 벤 애플렉이라는 바람둥이 배우가 캐스팅되어버리니 다시 과거 조지 클루니 사태와 같은 흑역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었더랬다. 그러나 DC는 각고의 노력 끝에 가장 원작에 가까운 비주얼과 캐릭터의 해석이었다며 벤 애플렉의 연기를 칭찬하였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크게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은 캐스팅이었다는 평이다. 이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배트맨의 느낌이 배트맨 트릴로지에서의 배트만과 아주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일단 배트맨이 전작의 영화에서 등장했던 모습과 달리 꽤 폭력적이고 총까지 난사하는 등 전투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배트맨 트릴로지에서의 배트맨은 가능한 적들에게 물리적 피해를 줄이되 행동불능으로 만들어 체포되게끔 만드는 것이 특징이었고, 주로 맨손 격투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 작에서 배트맨은 일단 죽기 직전까지 적들을 무차별적으로 제압해버리고 필요하다면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는 등 살인까지도 할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번 작에서는 배트맨의 탐정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보다 부각되었다고 보여지는데, 아무래도 타 히어로들에 비해 능력이 딸리니 자신의 주특기를 좀 더 살리는 쪽으로 연출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더우먼은 이번 작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캐릭터인데, 이 역시 처음 프로젝트가 발표되었을 때 우려가 컸었더랬다. 왜냐하면 1970년대에 TV와 영화로 만들어진 <원더우먼>에서 린다 카터라는 배우가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확고히 정립했기 때문이었다. 슈퍼맨 못지않게 너무나도 미국적이고 마치 바비인형처럼 예쁜 외모에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던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과연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당연했을 것이리라. 그런데 막상 캐스팅이 되고 컨셉이 공개되니 이 역시 기존의 원더우먼과 전혀 다른 캐릭터였던 것이다. 더 이상 원더우먼은 미국을 상징하는 코스튬을 입지도 않았고, 외모는 그야말로 카리스마로 점철되었으며, 액션은 슈퍼맨 저리가라할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연기한 겔 가돗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으로, 알다시피 여군이 의무인 이스라엘인답게 강렬한 카리스마와 놀라운 액션을 능수능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리엔트와 옥시덴트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미모 때문에 고대 신이면서 아마존의 전사다운 이미지가 아주 잘 드러났던 것. 이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팬들이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환호와 박수를 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원더우먼의 컨셉은 기존의 원더우먼이 가지고 있던 여성성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패미니즘에 보다 가까워진 재해석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 원더우먼은 더 이상 남성들을 위해 예뻐야 하고 귀여워야 하며 알록달록한 코스튬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며, 이는 슈퍼맨 못지 않은 능력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이제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위치를 얘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원더우먼.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렉스 루터라는 캐릭터는 원작에서도 그러했고 기존의 슈퍼맨 영화에서도 그러했듯이 사실상 대머리 중년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놀랍게도 대머리가 아닌 금발머리 촬랑거리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이 또한 기존의 통념을 깨는 설정인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설정은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연기한 제시 아이젠버그는 시종일관 표정변화와 잔동작이 많은 캐릭터로 열연을 했는데, 이것이 과연 캐릭터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렉스 루터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청년 이미지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고 배짱이 있으며 사악한 지략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범죄자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기존 작품에서도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슈퍼맨에 대항해 맞설 수 있는 사악한 보통 인간이라는 느낌이 쉽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무게감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막판에 특유의 대머리 컨셉을 선보이고 있으니, 향후 시리즈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재등장할 지 기대해보는 것이 좋겠다.


이미 <맨 오브 스틸>에서 전사한 조드 장군은 여기서 거론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매개로 탄생한 둠스데이는 원작과의 설정을 가능한 높게 맞춘 캐릭터라는 평이다. 원작에서 둠스데이는 슈퍼맨의 숙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만큼 슈퍼맨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외계 생명체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슈퍼맨이 한번 죽임을 당하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둠스데이이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작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보여주니 원작에 나름 충실한 해석이었다는 느낌이다. 다만, 그 막강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번 작품에서 한 번만 출연하도록 스토리가 짜인 부분에서는 아쉬움도 있는 바, 차라리 다른 차원으로 가두어두는 식으로 해서 차기 시리즈에서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이 남자는 슈퍼맨은 이겼을 지 몰라도 크리스챤 베일은 이길 수 없었다>



이제 로이스 레인이라는 캐릭터 차례인데, 알다시피 슈퍼맨의 연인이다. <맨 오브 스틸>에서 원작과는 달리 클락이 슈퍼맨이라는 것을 클락의 데일리 플래닛 입사 이전부터 알고 있게 된다는 설정으로 나왔으며, 이 작품에서는 시종일관 배트맨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왜 하고많은 미녀 배우 중에 다 놔두고 나이많은 로이스 레인을 캐스팅했는가 이다. 이 분은 1974년생으로 헨리 카빌보다 무려 9살이나 많은 연상이시다. 그렇다고 예쁘거나 개성이 넘치는 것도 아니어서 참으로 애매한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이 외에도 히어로나 빌런은 아니지만, 배트맨의 평생 조수인 알프레드 역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보여준 제레미 아이언스는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이었다는 평이다. 아무래도 배트맨 트릴로지에서 명연기한 마이클 케인의 알프레드 이미지가 너무도 강했던 나머지, 시종일관 배트맨의 혼사 걱정이나 하고 가볍게 푸념만 내뱉는 알프레드의 이미지는 배트맨의 중심을 잡아주던 조력자로서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 외 <맨 오브 스틸>에 이어 켄트 부부 역으로 등장한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은 짧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좋은 작품이 되도록 기여하였다고 보여진다. 참고로, 토마스 웨인으로 등장한 제프리 딘 모건은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에서 코미디언으로 등장하였던 이력이 있는데, 아마도 그 인연 때문인지 비록 조연이지만 오랜만에 등장해서 필자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8. 정의에 대해 과연 진지한 고민이 되었던가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처음에 내세웠던 주제의식에 대해 씹어보겠다. 바로 “싸움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슈퍼맨과 배트맨은 싸워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주구장창 설파하는 ‘정의(Justice)’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약자를 구하는 것이 정의라면서 매번 범죄자들을 못살게 구는 배트맨의 방식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배트맨은 슈퍼맨의 지구를 지키려는 행위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이끌었다며 어떠한 경우이든 인류에게 악이 될 가능성이 있는 힘은 통제해야 하는 것이 정의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두 명이 설파하는 정의는 모두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핀치 의원이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는데, 이 때문에 결국 어느 한 쪽이 맞고 틀리다라는 답을 던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 문제는 잭 스나이더의 전작 <왓치맨>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룬 주제이다. 그 작품 역시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픽노블 자체가 매우 무거운 작품이다 보니 영화 역시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완성도 있는 무게감과 주재의식을 선보였었다. 그러한 면에서 필자는 이 작품을 베스트 작품 중 하나로 꼽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의라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충격적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왓치맨>에서도 배트맨과 슈퍼맨 각각의 정의와 유사한 정의를 강조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배트맨의 경우는 로어셰크와 매칭이 되는 듯하고, 슈퍼맨의 경우는 오지맨디아스와 유사하다. 이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훗날 <왓치맨> 리뷰를 통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정의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다 큰 어른들이 이런 날에 꼭 싸워야 쓰것냐>



아무튼 <왓치맨>에서는 히어로들끼리 서로 다른 정의로 인해 투닥투닥대다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정리하는 식의 인물이 등장해서 나름 찝찝한 타협점을 보여주는데,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이러한 역할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원더우먼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원더우먼은 정의라는 것은 개나 줘버리고 일단 지구를 구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식으로 독고다이 자세를 보인다. 이러한 카리스마를 뿜내니 솔직히 슈퍼맨과 배트맨이 깨갱할 수 밖에. 그도 그럴 것이 원더우먼은 5,000년이나 살아 온 존재이기에 이미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는 달관하고도 남았을 것이리라.


이무쪼록 이번 작품은 결론적으로 <왓치맨>만큼의 무거운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본연의 목적이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저스티스리그라는 이야기의 거대 예고편에 가깝기 때문에, 너무 주제의식을 가져갔다가는 더 큰 혹평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이 어디까지나 저스티스리그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고, 비슷한 컨셉의 마블 어벤져스와 비교되다 보니 여러모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저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히어로무비 팬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구축해 놓은 마블식 히어로 영화 분위기에 흠뻑 취해있는 상태이고, 팬들은 결국 이러한 기준으로 DC의 작품을 평가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DC가 독립적인 방향성으로 독자적 노선을 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팬들에게는 늦어버린 행보가 아닐 수 없겠다. 따라서 앞으로 DC가 주구장창 내놓을 저스티스리그의 부속 작품들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크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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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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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6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두둥둥 두둥 특유의 시그널과 함께 등장하는 공포의 대가리>



누군가가 미래에서 나를 죽이러 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암살자가 더욱이 인공지능 로봇이라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충격적인 스토리로 전 세계 영화광들을 더더욱 미치게 한 문제의 영화 터미네이터. 제임스 카메룬이라는 미치광이 감독이 만든 희대의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의 4번째 시리즈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터미네이터 1편이 1984년 개봉된 이후 실로 25년만의 일이다. 25년 동안 우리는 미래에서 온 로봇 암살자들에게 열광해야 했고, 그 공포에 오줌을 지려야 했다. 더욱이 인류가 피할 수 없다는 심판의 날의 공포. 그 어둡고 절망스러운 미래. 그리고 마침내 그 미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미래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 대해서 파헤쳐볼까 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자장면 2개랑 탕수육 하나 배달요! 빨리!!!>



#1. 터미네이터 3부작 되새김질


먼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지난 3부작에 대해 짤막하게 훑고 지나가자. 1편은 1984년의 LA를 배경으로, 평범하게 살던 젊은 처자 새라 코너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이름 모를 헬쓰보이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헬쓰보이의 정체는 현 LA 주지사…가 아니라 2029년 미래에서 새라 코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진 터미네이터라 불리우는 강력한 살인병기 로봇.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역시 미래에서 카일 리스라는 인간이 패키지로 날아왔다는 것. 새라 코너는 카일 리스를 통해 끔찍한 미래의 모습을 알게 되고, 기계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는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가 자신임을 이해하면서 전사로서 각성하게 된다. 결국 최후의 결투에서 새라 코너는 터미네이터를 무찌르지만 카일 리스도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강력한 여전사로 자립 선언한 새라 코너는 카일 리스와의 연정을 통해 얻게 된 아이, 존 코너를 임신한 채 어디론가 떠나고 만다. 


2편은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의 어릴 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미 10세가 된 존 코너는 싹수가 노랑노랑해서 매일 양아치 짓이나 하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인 새라 코너는 어찌된 영문인지 정신병원에 갇혀버린 신세. 그러던 중 또다시 미래에서 소환된 헬쓰보이. 하지만 이번에도 패키지는 빼놓지 않았으니, 유동멀티합금이라는 신기술을 탑재한 신형 모델 T-1000 되시겠다. 지난 번에 T-800을 무찌르는데 일개 인간으로서는 부족했다고 판단했던지, 이번에는 T-1000을 무찌르기 위해 T-800을 세뇌해서 보내주는 쎈쓰. 하지만 얼굴이 왜 하필 악당의 얼굴이냐고! (헬스보이를 만난 새라 코너의 누렇게 질린 얼굴을 보라. 누가 그를 보호자로 믿겠는가) 어쨌든 온갖 변신의 재주를 다 보이는 T-1000 앞에서 꿋꿋하게 근육자랑만 하는 T-800은 마침내 두 부자의 보호에 성공하고, 1997년으로 맞춰진 심판의 날을 막기 위해 스카이넷의 개발을 담당하게 되는 사이버다인 연구소까지 박살낸다. 그리고 최후의 증거물인 자신의 두뇌칩마저 소각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선보이며, T-800 아놀드형님은 이렇게 외친다. 알뷔백!! (I will be back)


<거대 터미네이터 하베스터. 덩치에 비해 임무는 인간 채집하는 아기자기한 것>



3편은 존 코너가 23세가 된 현재를 배경으로 한다. 존 코너가 10년 전 13살 때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다고 하는데, 2편에서는 10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때부터 존 코너는 왕구라쟁이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쨌든 이번에도 미래에서 패키지 상품이 퀵으로 발송되고, 스카이넷은 더욱 강력한 암살자로 T-X를, 저항군은 조금 더 개량(말만 개량이지 얼굴은 노화)된 T-850을 보낸다. 과거에 너무 인상 더러운 아저씨들로 보내서 존 코너를 꼬시는데 실패한 스카이넷은 존 코너의 바람둥이 기질을 이용하기 위해 아리따운 여성으로 보냈나 보다. 아무튼 T-X는 닥치는 대로 존 코너의 주변 인물들을 해치우기 시작하고, 노숙자 생활로 일관하던 존 코너는 초딩동창 케이스 브루스터를 만나면서 묘한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다시 아놀드 형님…아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존 코너. 존은 이미 심판의 날인 1999년은 지났다고 하면서 미래를 막았다고 호언장담하지만, T-850은 심판의 날이 2003년으로 연기된 것일 뿐이라고 충격적인 말을 해 준다. 여기에 더 충격적인 발언은, 존 코너를 바로 자신이 죽였고, 자신을 잡아다가 세뇌한 인물이 바로 미래의 저항군 부 사령관이자 존 코너의 아내인 케이스 브루스터라고 말한다. 미래의 마누라라는 소리에 순간 급방긋 해주는 존 코너. 그래도 막판에 정신차리고 저항군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심판의 날을 막기 위해 스카이넷이 자리잡고 있는 미공군 기지로 침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묘한 인연인지라, 스카이넷 총 책임자가 케이스의 아버지라니. 결국 장인어른 호강 한번 못 시켜드리고 존 코너 일행은 공군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스카이넷. 처음에는 단순 군사방어프로그램인 줄 알았으나, 어느새 스스로를 인지하고 모든 인류를 말살하고자 엄청난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핵 미사일은 발사되고 만다. T-X를 가까스로 물리치고 살아남은 존 코너지만, 결국 T-850의 목적은 심판의 날을 막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날에 존 코너를 피신시키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미래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미래는 바뀔 수 있다고 거짓말한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유상무상무상유상수리무상보장서비스센터가 어딘가요?>



#2. 잘 나가다가 공든 탑에 테러를 가한 3부


1, 2편은 제임스 카메룬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영화역사의 한 획을 긋는 초절정 울트라 스펙터클 메가톤급 블록 버스터로 자리매김하였고, 3편은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이 맡으면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꼴을 선보였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데, 그 밥상을 뒤집어 엎다니. 어쨌든 3편에서 스토리를 묘하게 꼬아버리는 바람에 관객들도 어리둥절하였고, 늙어버린 아놀드 형님마저 멍 때렸을 터. 게다가 10살의 나이에도 아낙네들 안구를 정화시키면서 꽃미남 카리스마 풍겨주시던 에드워드 펄롱의 눈부신 연기가 3편에서는 닉 스탈이라는 스타일도 안 사는 배우가 맡아서 양아치로 전락시킨 존 코너의 연기란. 그래도 막판에 심판의 날을 결국 터뜨려줌으로써 미래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되새겨준 것에 대해서는 4편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해해줄 수 있겠다. 하지만 날짜가 뒤죽박죽된 것은 어쩌라고.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편이 개봉된 시점에서, 일단은 기대보다는 그 이하라는 평이 많다. 2편에서의 충격적인 영상이 이미 대뇌피질 안쪽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적어도 그 이상의 충격이 다가왔어야 할 터. 하지만 결론적으로 4편으로는 아직 충격의 충자도 전해지지 않은 느낌이다. 대중의 평이 어떠하든 간에 일단 뜯어먹고 보자.



#3. 스토리 - 것잡을 수 없이 꼬여버린 미래,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시작


스토리부터 차근차근 밟아보겠다. 때는 현재. 어느 교도소에서 마커스 라이트(샘 워싱턴)라는 죄수가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의 순간에도 사이버다인의 영업은 계속되고, 끈질긴 영업에 결국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기로 한 마커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생을 마감한다.  


<잡상인 출입금지랬자나!! 카일 리스와 마커스의 첫 대면>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2018년의 미래. 2003년에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인류를 말살하기 위한 심판의 날을 감행하였고, 기계들의 지배에 살아남은 인류는 존 코너(크리스챤 베일)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기계에 저항하여 왔다. 존 코너가 이끄는 붉은 완장의 저항군들은 스카이넷의 핵심 기지를 타격하고, 그 안에서 신형 터미네이터인 T-800의 청사진과, 실험용으로 잡혀져 있는 듯한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구경도 잠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기지는 송두리째 날라가고 졸지에 부하를 모두 잃게 된 존 코너. 하지만 폭파된 기지의 잔해 안에서 홀로 뛰쳐나오는 나체주의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커스 되겠다. 


자신의 부하를 모두 잃은 존 코너는 저항군 본부 상관들에게 하소연을 하지만, 마침 기계들의 정신줄을 놓을 수 있는 시그널을 찾았다는 소식에 급방긋, 바로 증명작업에 들어가주신다. 한편, 거리를 떠돌면서 너무나 확 달라진 도시의 모습에 멍때리고 있는 마커스에게 갑자기 나타난 청년. 그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카일 리스(안톤 옐친)라 소개하고, 기계들에 대항해 싸우는 예비저항군이라고 하며 도움을 청한다. 졸지에 기계들과 한판 붙게 된 마커스는, 이 끔찍해진 미래에 별 갈등없이 동화하면서 카일과 함께 저항군의 지도자 존 코너를 찾으러 떠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대형 터미네이터 하베스터에게 카일과 그의 동생 스타가 잡혀가고, 구출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실패하고마는 마커스. 


기계들과 싸우다가 추락한 여조종사 블레어 윌리엄스(문 블러드굿)를 만난 마커스는 그녀가 존 코너의 부하라는 것을 듣고 그녀와 함께 존 코너를 만나러 간다. 여행 도중 난관에 빠지는 블레어를 용감히 구해 준 마커스. 그 모습에 홀딱 반한 블레어는 그 누구보다도 착한 남자라며 작업을 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저항군 기지. 자석지뢰밭을 건너며 기계들만 뒤진다고 천연덕스럽게 걸어가는 블레어. 하지만 자신의 넓적다리에 척 달라붙는 지뢰를 보며 멍때리는 마커스. 그리고 그 결과는… 꽝!


<반은 인간 반은 기계인 마커스에게서 진심어린 인간성을 보게 된 존 코너>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실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바라본 세상은 어둡고 참혹한 모습. 인간을 사냥하려는 기계들과, 그에 대항해 맞서는 약자 인간들의 모습. 그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실마리를 잡은 마커스. 그리고 커다란 절규. 그는 바로 심장이 뛰고 있는 기계였던 것. 자신을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마커스 앞에서 갈등하는 존 코너. 이미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T-800을 제조하려는 스카이넷의 음모 앞에서 마커스 또한 또 하나의 침투병기가 아닐까 하고 고뇌하는 존 앞에, 오직 목소리로만 남아있는 어머니 새라 코너의 조언만이 유일한 힘이 되어줄 뿐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라”는 것. 


그런 와중에 작업걸기에 종지부를 지을 심산으로 마커스를 구출해주는 블레어. 열심히 도망쳐서 결국 마커스는 빠져나가는데 성공하지만, 수중에서 활동하는 터미네이터 하이드로봇의 위협에 빠진 존 코너를 구하면서 다시금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마커스. 존 코너는 그러한 마커스의 진심을 이해하고 스카이넷에 잠입하여 카일 리스의 생사를 알려달라고 한다. 


한편 기계를 제압할 수 있는 시그널을 대규모적으로 이용하여 기계들을 잠재우고 스카이넷 중앙기지를 파괴하려는 엄청난 작전을 계획한 저항군 지휘본부. 하지만 존 코너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충성스러운 부하가 될 운명을 타고 난 카일 리스를 살리기 위해 이 무모한 작전을 중지해달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홀로 카일 리스를 구출하기 위헤 스카이넷으로 달려가는 존 코너. 같은 로봇이기에 별다른 수속없이 무사통과로 스카이넷 핵심장소로 들어간 마커스. 그는 컴퓨터와의 접속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인류의 과거를 알게 되고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대 반전의 충격적인 전개.


<어따~ 그녀석 무섭게도 생겼네>






<아직은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카일 리스>



#4. 떡밥에 낚인 수많은 네티즌들


일단 스토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 반대로 특별하지도 않다. 한 마디로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애초에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많은 팬들이 예상했던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가 펼쳐졌다. 


참고로 당시 베일에 쌓여있던 터미네이터 4의 줄거리에 대해 나름 가장 설득력있었던 추측을 살펴보겠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존 코너가 사형대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스카이네트와 터미네이터 군단에 맞서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선 존 코너는 마지막 기억이 사형대에 올라가는 것으로 멈춰있다. 존 코너와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벌이기 위해 스카이넷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정체불명의 터미네이터 마커스 라이트도 미래에서 왔는지 과거에서 구출된 것인지 불명확한 것으로 그려진다. 정체불명의 터미네이터 마커스는 범죄자로 2003년 사형됐으며, 그의 시체는 스카이넷과 관련된 프로젝트 엔젤에 기부된다. 그리고 그의 몸은 터미네이터로 만들어지는데 존 코너는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전투를 벌이던 도중 패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를 지도자로 맞아 싸우던 저항군들은 존 코너가 지닌 상징성 때문에 그가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터미네이터인 마커스의 피부를 제거해 존 코너의 것을 이식한다. 즉 터미네이터 마커스가 새로운 존 코너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사전 유출되었을 수도 있는 이 기가막힌 스토리에 많은 팬들이 광분하였고, 존 코너의 터미네이터화라는 전대미문의 반전에 엄청난 기대를 했었으리라. 하지만 막상 개봉이 되고 스토리가 공개되자, 우리의 기대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듯이 그토록 공허하기만 하였다. 일단, 존 코너가 처음 사형대에 오른다는 설정은 사실 마커스 라이트의 내용이었고, 막판에 존 코너가 터미네이터가 된다는 것은 초절정 구라일 뿐이었다.


<터미네이터 T-800이 양산되기 직전의 모습. 보는것만 해도 끔찍하다>



#5. 전편과 4편의 모순으로 가득 찬 연대기를 한 눈에


아마도 기대만큼 반전스럽지 못했던 스토리와 존 코너의 생각보다 미지근한 활약이 팬들로서는 크게 실망스러웠던 듯. 게다가 미래와 과거의 꼬여버린 설정은 영화를 주의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펄쩍 뛸 정도로 뒤죽박죽인 셈. 4편이 공개된 이후 아직도 뜨거운 논란의 소지로 안주감이 되고 있는 그 뒤죽박죽 섞어찌개식 연관도를 살펴보겠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연도별 사건과 개연성을 도식화하였다.




영화 1~3편의 스토리로 추정하면 1984년과 1994년, 그리고 2003년에 각각 터미네이터들이 보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1984년에 최초로 T-800이라는 무시무시한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여 새라 코너를 암살하려 들고, 이에 보호자로 보내진 카일 리스는 새라 코너를 이해시키기 위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여기서 그의 말에 따르면 2029년에 지긋지긋한 전쟁의 끝을 보기 위해 존 코너가 마침내 스카이넷을 파괴하기 직전에 이르고, 스카이넷은 최후의 수단으로 T-800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새라 코너만 안 죽는다면 미래에 2029년에는 결국 인간이 승리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새라코너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에 또 다른 터미네이터가 보내진다. 더욱 강력해진 T-1000. 여기서 설정상의 오류가 발생하는데, T-1000은 분명 2029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보내졌을텐데, 과거의 흐름대로라면 2029년에 스카이넷은 작살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어떠한 사건이 추가적으로 발생되어 미래의 흐름에 약간의 변화가 왔었다고 하자. 그 대표적 예가 카일 리스가 주장한 1999년의 심판의 날이 2003년으로 연기된 설정. 이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 카일 리스는 분명 미래의 사람인 만큼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는 알고있어야 한다. 그게 원래 1999년이었다 하여도 카일 리스는 2003년으로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카일 리스가 사는 미래의 시점에서는 과거의 실제 사건만이 기억될 뿐이므로. 더욱이 카일 리스는 새라 코너에게 존 코너가 미래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확신하였다. 그런데 3편에서 온 아놀드 형님은 존 코너가 죽는다고 하였다. 그것도 자기 손에. 그렇다면 T-X를 보낸 시점을 T-1000보다 더 개량된 가정하에 더 먼 미래라고 하였을 때, 존 코너의 나이는 아무리 적어도 50세를 훌떡 넘기게 된다. 늙어빠진 존 코너가 미래를 승리로 이끈다고 하였는데, 아놀드 형님에게 죽는다니. 모순이 심각하다.


<나름 인간흉내 낸답시고 마스크를 뒤집어 쓴 T-600. 인간포로를 감시 중>



모순은 계속된다. 4편에서 스카이넷은 카일 리스를 알고 있다. 아예 암살순위 1순위로 지정해 놓은 상태. 그것은 카일 리스가 과거에 새라 코너를 보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카일 리스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있을 텐데. 게다가 그 때는 스카이넷도 개발되기 전이다. 따라서 스카이넷은 당연히 카일 리스를 몰라야 한다. 물론 스카이넷도 핑계는 있다. 4편에서 이런 멘트가 나온다. “지금까지 수많은 터미네이터들을 보내봤지만 암살에 실패하였다”라는 스카이넷의 대사가 있다. 이 말을 직설적으로 해석하자면 마커스 이전에 구형 T-600으로 기를 쓰고 존 코너를 꼬셔봤지만 실패하였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자면 과거로 여러 터미네이터를 보내봤지만 암살에 실패했다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카일 리스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렇담 위에서 본 것처럼 T-800보다 더 최신 기종을 T-800 양산 이전에 보낼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스카이넷은 왜 카일 리스를 살생부 1순위로 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정을 통해 관객들을 납득시킬 감독의 의무가 있겠다.


<양아치들도 함부로 못 탄다는 쑝카형 터미네이터>



#6. 이젠 아예 대놓고 속임수를?


그리고 4편 막판에서 깜짝 출현해주시는 아놀드 형님. 3편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존 코너의 어릴적 추억 때문에 접근하기가 쉬웠고, 그래서 암살할 수 있었다는 터미네이터의 회고록 시퀀스가 있다. 그렇다면 아놀드의 얼굴을 본 존 코너는 기뻐 날뛰거나, 혹은 무언가 혼란에 사로잡혀야 했을 설정이다. 하지만, 4편에서 아놀드를 보자마자 존 코너는 별 생각없다는 듯이 치고받고 싸운다. 이거 너무 싱겁지 않은가? 게다가 T-800은 왜 죄다 아놀드의 얼굴이란 말인가. 분명 1편에서 미래를 회상할 때 여러 인간 모습을 한 터미네이터들이 등장하는데, 굳이 초기형부터 아놀드의 마스크를 덮어씌운 것은 왜일까. 스카이넷이 선호하는 얼굴형인가? 


또 한가지 설정 상의 오류를 말하자면, 존 코너의 나이이다. 2편에서 존의 나이는 10살로 나오는데, 3편에서는 13살 때 처음 터미네이터를 봤다는 존 코너의 회고가 나온다. 얼래? 어디서 왕구라를… 심판의 날 지났다고 술만 퍼마시며 띵까띵까 놀더니 이제 기억마저 희미해진 게냐. 아무튼 3편부터 살짝 맛이 간 스토리라인이 4편에서 왕창 뒤죽박죽 되었음은 피할 수 없는 과오. 이 때문에 더더욱 팬들은 실망을 하나보다.


<멀리서 보면 섹시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형적인 줌마스타일인 문 블러드굿>



#7. 앞으로도 2편이나 남은 새로운 시리즈


어쨌든 이런저런 문제점은 이제 그만 두고, 앞으로 이어질 5, 6편에 대해 전망을 해 보자. 맥지 감독이 3부작을 반드시 완성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한 이상, 5편은 보다 세련되고 충격적이고 빈틈없는 스토리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때문에 2018년과 2029년 사이의 공백을 채울 내용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케이스 코너의 임신이 암시하는 바에 따라 존 코너의 자녀가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막판에 나름 인간미 날려주신 마커스 라이트. 그냥 죽기에는 안타깝지 않은가. 분명 5편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다 줄 어떠한 장치로 보인다. 카일 리스의 성장과, 그를 과거로 보내야하는 존 코너의 갈등, 그리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스러운 고뇌는 율도국을 능가하는 이상향을 통해 승화될 것만 같은 이 느낌. 어쨌든 이번에는 소문만 무성하지 말고 제발 기대만큼 제대로 된 작품으로 나왔으면 한다. 



#8. 알고 보면 재미있는 사실들


마지막으로 이번 4편의 몇몇 감칠맛 나는 재미를 찾아본다면, 먼저 새라 코너의 목소리 되시겠다. 이미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된 린다 헤밀턴이니 만큼, 전격 출연이 불가능하여 결국 목소리 더빙으로 출연을 해주셨다. 아놀드 주지사님도 마찬가지여서, 그 늙으죽죽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결국 남의 탱탱한 몸매에 CG처리로 대타처리해주시는 쎈쓰. 5편 이후에도 등장을 해주셔야 할텐데 CG만 등장해도 출연료를 받을지 궁금하다.


<존재감 제로에 가까운 케이스 코너. 근데 어째 3편보다 젊어졌다???>



T-600과 T-800의 진화과정도 재미있다. T-800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약간 소름끼치기도 한다. 처음에 여러 터미네이터들의 컨셉 이미지가 공개되었을 적에 T-800과 T-600을 비교하여 올린 이미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했던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본 대부분의 블로그나 사이트에서는 T-800과 T-600을 서로 잘못 표기했던 것. T-800은 덩치가 크지만 그대신 운동성도 떨어지고 눈에 쉽게 발각되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던 바, 겉에 인간의 피부를 덮어씌울 용으로 인간 사이즈로 줄이고 운동성도 개선한 T-600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덩치가 더 큰 T-600이 더 개량된 모델인 줄 알고 T-800으로 착각했던 듯.


<오른쪽의 은색 몸체가 최신형 T-800이다. 그 옆의 마커스타입이 따로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9. 후덜덜한 배우들과 액션으로 중무장한 미래저항군 멤버들


배우들의 연기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크리스찬 베일은 이미 다크 나이트를 통해 지상 최고의 매력남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번 작품에서도 거친 인상과 인간미적인 느낌 모두를 느끼게 하는 저항군의 리더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마커스 역의 샘 워싱톤도 흠잡을 데 없는 발군의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주연 같은 조연으로 빛나고 있으며, 오히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감탄사까지 받을 정도이다. 


그 외에도 많은 조연들이 활약하지만, 블레어 중위 역의 한국계 배우 문 블러드굿의 활약이 살짝 짧았던 점에 아쉬움이 있다. 카일 리스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안톤 옐친이 크게 활약할 요소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계에 맞서 용감히 저항하는 모습은 나름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하지만 3편에 비해 한없이 설 자리가 좁아진 케이스 코너는, 배우도 바뀐 탓인지 화면에서 몇 번 보이지도 않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배우들의 명 연기와 더불어 웅장한 스케일의 액션도 나름 괜찮은 수준. 거대한 터미네이터 하베스터와 대결은 살짝 트랜스포머를 패러디한 듯 하지만 그래도 흠잡을 데 없었고, 모터사이클형 터미네이터와의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액션씬은 2편의 오마쥬인 듯 강렬하였다. 다만, T-600이 개떼로 등장하지 않아서 오히려 백병전의 묘미는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5편에서 양산화되는 T-800의 개떼들과의 전투가 기대된다. 참고로 T-600은 나름 실탄을 마구 갈려서 부술 수 있었다지만, T-800은 실탄은 우습게 날려버리기 때문에 본격 레이저전쟁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1편에서 이미 미래의 모습은 레이저쇼의 도가니탕이었다.


<나 이대로 출연 끝나는겨? 시방 고렇게 쉽게 죽진 못허지~!! 알뷔백!!!>



단순한 액션 영화로만 놓고 보면 수작인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하지만 전작과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기대보다 못한 터미네이터 4.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라고 말 하는 맥지 감독의 말이니만큼, 앞으로 개봉될 5, 6편을 잔뜩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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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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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여러분들은 영화의 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 다양한 가치관이 있겠지만, 영화는 때로는 현실에서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만들어주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와 설정,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충격과 재미를 선사하는데, 그 중에서도 참으로 기괴하고 속이 거북하면서도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1. 독특하지만 매력적인 컬트 무비의 바이블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흔히 컬트 무비(Cult Movie)라 칭한다. 컬트 무비란, 예배·제사 등 컬트(cult)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음습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영화를 말한다. 정공법적인 영화형식이나 보편적인 영화이론에 구애받지 않으며, 영화가 발표된 후 특정계층 관객의 반응에 의해 컬트 무비로 규정되는 특징이 있다. 


필자도 컬트 무비를 진심으로 좋아라한다. 컬트 무비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없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계층에 있어서는 보통의 한계를 초월해버리는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필자처럼 정신머리가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컬트 무비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소리이다. 바로 그 컬트 무비의 효시! 컬트 무비의 시발점! 컬트 무비라는 새 지평을 연 놀랍도록 파괴적인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뻘건 도발적 입술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포스터. 전형적인 호러물 컨셉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TV에서 홍록기가 여장남자 분장을 하고 섹시한 춤을 추면서 광고한 록키 호러 쇼(Rocky Horror Show)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뮤지컬 무비인 록키 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Picture Show)가 오늘의 리뷰 대상이다. 


일단 뮤지컬이든 영화이든 이 작품을 접해 보지 않은 분들은 홍록기가 괴상망측한 패션으로 춤을 추는 것만 보고 엽기 저질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컬트 무비란 처음에는 다 그렇다.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성공하는 작품이 컬트 무비가 될 수 없다. 컬트 무비는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가 소수에 의해 신성시되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러한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이 작품이 어떠한 작품이길래 이리도 괴상망측하지만 그 가치가 대단하다고 하는 것일 것? 자, 이제 스토리를 읊어 볼 텐데, 스토리 자체만 보아도 황당엽기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끝까지 참고 읽어 주시길.


<노틀담의 꼽추를 연상시키는 집사 리프래프. 하지만 진짜 정체는 엄청나다는>



#2. 스토리 - 정말로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범 우주적 스케일의 스펙타클 서스펜스 호러 로맨틱 코모디의 결정체


어느 평화로운 마을. 교회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축하해 준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재닛(수잔 서랜든)은 부케를 받게 되고,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 브래드(배리 보스트윅)로부터 청혼을 받게 된다. 초고속 결혼 코스를 약조하게 되는 두 사람. 두 사람이 이렇게 되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은사 스캇 박사(조나단 애덤스)에게 감사하고자 그들은 박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한밤 중에 폭포처럼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작렬하는 악천후 속에서 타고 가던 자동차의 타이어가 펑크가 나버리자, 둘은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근처의 외딴 성으로 향한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외딴 성. 그곳에서 재닛과 브래드를 맞이해주는 사람은 자신을 집사라고 소개하는 괴물처럼 생긴 꼽추 리프래프(리차드 오브라이언)였다. 잠시 전화만 쓰려고 온 성에서 이상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고, 졸지에 괴상한 사람들이 모인 파티를 목격하게 되는 재닛과 브래드. 신나는 파티가 한 바탕 벌어지고 난 후 재닛과 브래드는 어서 이 이상한 곳을 떠나야 겠다고 결심한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타나는 이가 있었으니. 성주인 프랭크 퍼터 박사(팀 커리)는 자신을 트란실바이나 은하계의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한 밤의 파티에 함께 할 것을 권유한다. 수염난 얼굴에 꽃분이 화장을 한 프랭크 박사가 생소하고 어딘가 거북하긴 했지만, 일단 파티라고 하니 빼도 박도 할 수 없이 지켜보게 된다. 파티의 주인공 프랭크 박사는 초장부터 팬티스타킹에 하이힐까지 신고 정신병자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엽기 패션으로 파티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리프래프와 그의 누이동생인 마젠타(패트리시아 퀸), 그리고 하녀 콜롬비아(넬 켐벨)의 권유로 어느 틈에 재닛과 브래드도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다.


<브래드와 재닛. 이떄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닥칠지 몰랐을 것이다>



온통 속옷차림으로 즐겨야하는 룰이 있다는 파티. 일단 재닛과 브래드도 속옷만 입게 된다. 뒤이어 프랭크 박사는 특별한 날이라며 재닛과 브래드에게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바로 프랭크 박사가 만든 인조인간 록키(피터 힌우드)가 잠에서 깨어나는 이벤트. 록키의 탄생 목적은 오로지 하나. 프랭크 박사가 자신의 성적인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였던 것.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인조인간으로 태어난 록키는,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헬쓰 보이이지만 머리는 텅텅 빈 돌대가리. 어쨌든 탄생 축하를 위해 또 파티를 여는 사람들. 하지만 그 순간 냉동실에서 에디라는 짝퉁 엘비스 프레슬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이에 열받은 프랭크 박사는 결국 에디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만다.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어 끝나게 되고, 프랭크 박사는 록키와 함께 둘만의 보금자리로 향하게 된다. 


그날 밤, 재닛과 브래드는 각기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런데 프랭크 박사가 재닛의 방에 들어가 브래드인 척 속여 재닛과 짜릿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이번에는 브래드의 방에 들어가 재닛인 척 하여 브래드와 또 짜릿한 시간을 보낸다. 둘 다 뒤늦게 상대가 프랭크 박사임을 알게 되지만 얼떨결에 성에 눈을 뜨는 바람에 서로 몰래 프랭크 박사와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장을 CCTV 카메라로 속속들이 보고 있는 마젠타와 콜롬비아. 


한편 마젠타와 리프래프는 돌대가리 록키를 괴롭히게 되고, 이를 참다 못한 록키는 공포에 질려 도망을 가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랭크 박사는 당장 잡아오라고 지시하고, 이 틈을 타 방을 빠져나온 재닛은 모니터를 통해 브래드가 프랭크 박사와 동침을 했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충격받은 재닛. 순간 몰래 숨어있었던 록키와 만나게 되고, 재닛은 록키의 근육에 반해 록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기괴한 캐릭터들의 엽기적인 춤과 노래의 향연>



프랭크 박사는 록키를 놓친 리프래프를 따끔하게 야단치게 되고, 순간 느닷없이 재닛과 브래드의 은사인 휠체어맨 스캇 박사가 성을 방문하게 된다. 무언가 속셈이 있어 왔다고 느낀 프랭크 박사는 스캇 박사를 강제소환 시키고, 프랭크 박사는 자신의 조카인 에디를 찾기 위해 왔다고 한다. 마침 록키와 몰래 숨어있던 재닛이 스캇 박사가 온 것에 놀라 프랭크 박사에게 들키고, 이 기묘하고도 삭막한 상황에서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록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벌인 고기뷔페 저녁식사였지만, 졸지에 에디의 과거에 대한 폭로전이 시작되면서 식사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참다 못한 프랭크 박사는 에디의 시체를 보여줌으로써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재닛 일행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지만, 결국 프랭크 박사가 개발한 움직임 잠금 장치에 의해 붙잡히고 만다. 그 때 난데없이 콜롬비아가 프랭크 박사를 사랑했다며 배신감에 분노를 느낀다고 울부짖고, 이에 석화장치를 가동하여 돌로 만들어버리는 프랭크 박사. 뒤이어 록키와 스캇 박사, 재닛, 브래드를 모두 돌로 만들어 버린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보이는 재닛>







#3. 뮤지컬이 원작인 희대의 걸작


스토리를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당신은 정말 비위가 대단하거나, 호기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필자의 리뷰 중 이토록 엽기발랄하고 황당하면서 복잡하고 납득불가능한 스토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스토리부터가 뒷통수를 제대로 때려주시는 작품이다. 


영화 시작부터 검은 배경에 시뻘건 입술이 튀어나와 엽기적인 내용의 가사로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리차드 오브라이언의 락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 원작이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Rocky Horror Show>이다. 여기에 영화를 뜻하는 Picture를 집어 넣어 영화판 록키 호러 쇼라는 뜻의 <Rocky Horror Picture Show>라는 타이틀을 만든 감독의 작명 쎈쓰가 정말 대단하다. 사실 감독인 짐 셔먼은 이 작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타의 작품이 없다. 그의 필로그래피에는 오로지 이 작품만이 존재한다. 사실 그는 이전에 뮤지컬 영화의 연출을 맡은 경력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이토록 완성도있게 만든 것이 가능했을 지도.


<양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보기드문 외계인 프랭크 박사>



이 작품이 1975년에 초연되었을 때에는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 그 자체였다. 당시 정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스토리와 비주얼로 인하여 관객들이 외면했던 것. 이 당시만 해도 컬트 무비라는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보편적인 영화의 틀을 깨는 작품은 전부 저질 영화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성에 대한 고정관념의 이탈과 엽기적인 성적 묘사 등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기 때문에 야시시한 분위기가 나는 한 밤 중에나 극장에 걸려 관객들에게 상영되곤 하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을 법한 것이, 당시로서는 한 밤 중 어수룩한 극장에서 몰래 영화를 보는 것으로나 가능했다는 것. 



#4.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 뒤늦은 골수 매니아들의 탄생


그런데 놀라운 일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탈을 꿈꾸던 미쿡의 젊은 아해들 사이에서 이 작품이 놀랍도록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던 것. 이 작품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사상이 바로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던 성에 대한 통렬한 조롱과 일탈이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이데올로기와 제대로 맞아 떨어졌던 것. 그래서 매일 밤 젊은이들은 극장으로 몰려 가 이 작품을 감상하기에 이르렀고, 이윽고 매니아 집단이 형성되면서 아예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복장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관람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컬트’적이라고 명시한 당시의 비평을 통해 이후 록키 호러 픽쳐 쇼 같은 작품을 컬트 무비로 정의하게 되었다. 


어쨌든 록키 호러 픽쳐 쇼는 계속해서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젊은이들의 하나의 사회 코드로 인식되었고, 급기야는 미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 작품을 한번쯤은 봐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특히나 아직 성에 대해 오픈할 수 없는 미성년자들에게는 이 작품은 불문율로 전해져 온다. 이 작품을 접함으로써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 셈이다. 이러한 요소는 재미있게도 작품 속의 재닛의 상황과 닮아 있다. 재닛은 프랭크 박사를 만나기 전까지 순진무구한 숫처녀 걸이었는데, 프랭크 박사에 의해 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 하지만 그러한 쾌락의 순간도 잠시, 모든 것은 결국 허무주의로 끝난다는 것은, 이제 막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결국은 그 또한 하나의 순간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그래서 어쩌면 의외로 교훈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팀 커리 인생 최대의 배역. 그 누구도 이를 대신할 수는 없을 정도이다>



그나저나 놀라운 사실은 아직도 미국을 비롯해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자신들을 트란실바니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젊은이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이들은 분명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는 중일 것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극 중 노래와 춤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캐릭터들의 패션이 다소 엽기적이기는 하지만 노래와 율동 자체는 상당히 신이 나고 재미있다. 많은 팬들이 사실 괴기망측한 것을 떠나서 이 신나는 노래와 율동에 빠져들어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경우도 많다. 과거부터 뮤지컬영화 하면 유명한 것들이 많은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라던지 <사랑은 비를 타고> 등 5, 60년대의 명작들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듯한 완벽한 연출을 자랑한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한 발이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하는 행동을 취하게 될지도. 



#5.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깔려 있는 철학적 주제 의식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오락적인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도 중간중간 내레이션을 집어 넣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무겁고 침울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철학적인 대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는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악당 역으로 맹활약한 찰스 그레이인데, 마치 전지적 작가 관찰자 시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듯 내레이션을 펼쳐 주고 있다. 특히나 마지막에 재닛과 브래드가 꼬물꼬물 기어가는 장면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찰스 그레이의 지구본으로 오버랩되면서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그야말로 뜬금없이 그지없지만 그 무엇보다 긴 여운을 던져 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일까? 나름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그가 던져주는 말은 깊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6. 후덜덜한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재미


재닛 역을 맡은 수잔 서랜든은 설명하면 입이 아플 정도. 한때 청순미녀 캐릭터로 헐리우드를 좌지우지한 명 배우 아니겠는가. 최근에는 <스피드 레이서>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로 등장하여 건재함을 과시하였지만, 아무튼 수잔 서랜든의 초기작이 이런 황당엽기 영화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멀쩡한 얼굴의 팀 커리. 영화 초반에 깜짝 출연한다. 잘 보시길>



필자가 정말 강조해서 자랑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 바로 프랭크 박사 역을 맡은 팀 커리. 이 배우가 누구이던가? 잘 모를 것이다. 일단 코미디언 한무를 연상케 하는 물고기 왕눈을 잘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배우임을 알 것이다. 이 배우는 웬만한 영화에서 감칠맛 나는 조연으로 숱하게 등장한 조연 전문 배우. 사실 연극무대에서 연극배우로서 상까지 탈 정도로 연기력 하나는 일품인 명 배우이다. 그래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프랭크 박사라는 사상 유래없는 초특급 엽기 캐릭터를 맡아 완벽하게 소화해낸 인물. 안타깝게도 이후의 작품에서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하여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팀 커리가 아니었으면 프랭크 박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누가 여성 속옷차림을 하고 섹시하게 노래와 춤을 추면서 엽기행각을 벌일 수 있겠는가? 국내에서는 홍록기가 프랭크 박사 역을 맡았다지만, 팀 커리의 카리스마에는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팀 커리의 초연작이기도 했던 이 작품에서 그의 활약은 단연 으뜸!! 



#7. 입맛에 맞는지는 일단 먹어봐야 아는 법


몇몇 독자분들 중에는 이번 리뷰를 통해 필자의 사상이 심히 의심스럽다는 분들도 계시리라 본다. 하지만 일단 이 작품을 접해보시기를 권한다. 왜 이 작품이 컬트 무비의 바이블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1975년에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1998년에 개봉을 하였다. 그 전까지는 작품의 성격상 심의윤리위원회에 걸렸던 것. 그러다가 당시 예술영화에 한해서 등급이 자유로워지면서 이 작품도 예술영화로 인정받아 당시 예술영화 전문 극장인 종로의 모 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국내 상영 실적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과거 미국에서 개봉 때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필자는 이 작품을 극장에서 접하고서 흥분과 감동을 금치 못하였고, 지금도 DVD로 소장하면서 BEST 10에 손꼽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외계인 출신의 콜롬비아와 마젠타. 인물들과의 관계도 꽤나 엽기적이다>



혹시나 컬트 무비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아마 록키 호러 픽쳐 쇼와 비슷한 영화를 접해봤을 수도 있겠다. <헤드윅>이나 <벨벳 골드마인>이 대표적 예인데, 모두 뮤지컬을 근간으로 하면서 주인공이 성 정체성에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더라도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들 작품에 비해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몇 단계는 더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필자는 필자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므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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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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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Deadpool)

Movie 2016. 3. 18. 17:58


데드풀 (Deadpool)


 

수퍼 히어로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작품들 속의 수퍼 히어로들, 예를 들어 마블 사의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 그리고 워너브라더스사의 배트맨이나 수퍼맨 같은 존재들은 수퍼 히어로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오로지 정의와 선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각자마다 정의와 선의 기준은 조금씩 달랐지만, 어찌되었건 수퍼 히어로라면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서 이를 개인보다는 지구 평화를 위해 (혹은 우주 평화를 위해) 활용하는 인물, 즉 쉽게 말해 초능력 자원봉사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 다룰 수퍼 히어로는 이러한 관념에서 와장창 빗겨나간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수퍼 히어로라고 부를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능력은 인간 이상이니 수퍼 어쩌구의 자격은 갖추고 있으니 수퍼 히어로가 될지 수퍼 빌런이 될지는 모르는 애매모호한 인물이다. 우스운 것은 이 캐릭터가 히어로로서의 정의구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빌런으로서의 지구파괴를 일삼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뭐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인 수퍼 인간, 바로 데드풀에 대한 영화를 리뷰해 보고자 한다.


<포스터부터 정신이 대략 멍해지는 비주얼과 텍스트의 연속이다>



#1. 스토리 - 발렌타인데이 러브스토리인줄 알았으나 호러스토리인 것 같더니 엽기 액션으로 마무리되는 어느 한 젊은이의 병맛 인생

 

영화 시작부터 나뒹구는 SUV 차량 안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있는 사람들과 빨간 쫄쫄이 의상을 입은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뒤죽박죽 난장판이 연출된다. 그리고 영화는 곧 약 15분 전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대체 이들에겐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데드풀. 그에게 있어서 오늘은 바로 그 동안 벼르고 벼르던 복수의 날. 이 날을 위해 무려 1년이 넘게 기다렸다고 한다. 택시 기사 도핀더(카란 소니)는 이 괴상망칙한 손님의 수다를 받아주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데드풀은 그야말로 숨쉴 틈 없이 수다를 작렬하다가 도핀더에게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다. 도핀더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더 잘난 경쟁자가 있어서 사랑 쟁취가 어렵다고 말하자, 데드풀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제발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고가도로 한 복판에 택시를 멈춰 선 데드풀은 하이파이브 한 방으로 할증을 받아도 모자랄 택시요금을 외상 처리해 버리고, 고가도로 난간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는 둥 시간을 보낸다. 그 곳에서 철천지원수인 프란시스(에드 스크레인)을 기다리던 데드풀. 그러다가 마침내 프란시스의 부하들이 나타나자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이들을 도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가도로에서의 격투 끝에 데드풀은 악당 무리 중 마지막 남은 한 놈을 꼬치로 만든 채 자신의 기구한 팔자에 대해서 읊조리기 시작한다.

 

데드풀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것. 그는 한 때 해결사 업계에서 꽤 잘나가는 해결사 웨이드 윌슨이었다. 단지 한 가지 흠이라면 더럽게 말이 많고 까불쟁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바로 해결사들의 둥지이자 일자리 알선장소인 바의 바텐더 위즐(티제이 밀러)이다. 위즐은 매일 웨이드의 수다를 들어주면서도 한 편으로는 바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인 데드풀에 웨이드의 이름에 200 달러를 베팅하고서 다음 죽을 차례가 웨이드이길 바라는 살인적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확실히 데드풀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기는 하다. 믿거나 말거나>


 

이 지저분한 세계에서 영원히 넝마 인생을 살 것만 같았던 웨이드에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나타나니, 바로 길거리 매춘부 바네사 칼리슨(모레나 바카린)였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바네사에게 한 눈에 뻑간 웨이드는 특유의 수다로 작업질을 시전하는데, 엉뚱하게도 뻐꾸기 날리는 내용은 누가 더 비참한가였던 것. 나름 비참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바네사에게 더 엽기적이고 비참한 과거사를 남발하는 웨이드가 결국 승리. 이렇게 해서 웨이드는 가진 돈 275달러로 48분동안 웨이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바네사와 딜을 하게 된다.

 

48분동안 둘이 심혈을 기울여 한 짓은 과연 무엇이던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처절하게 짓밟으며 그 둘은 오락실에서 공던지기 게임을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놀라운 솜씨로 득템에 성공한 웨이드는 선물 한가득을 선사하며 이미 초과해버린 48분에 추가로 3분의 시간을 더 벌어서 드디어 그 3분동안 마치 3시간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의 육체적 화음을 만들기에 성공한 것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웨이드와 바네사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커플들이 별의 별 기념일 챙기며 손발 오그라드는 행위를 능가하는 수준의 기념일 챙기기를 통해 매번 육체적 화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된 웨이드는 드디어 바네사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되고, 둘은 결국 결혼까지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포즈 기념으로 또 한방 거사를 치르려는 찰나, 갑자기 나자빠지는 웨이드.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폐암 말기로 오늘내일 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웨이드. 이에 바네사는 임상실험을 받아서라도 웨이드가 나을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이미 마음 속 한 구석에 이 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게 된 웨이드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제 남은 하루하루는 사건 해결이 아니라 생명 연장을 위한 사투가 되어버렸다. 그런 웨이드에게 어떤 손님이 찾아왔다고 위즐이 얘기하고, 전화번호 적힌 명함 하나만 띡 던진 작자가 누군지 궁금해 일단 만나보는 웨이드. 자신을 단지 영업사원일 뿐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제드 리스)는 웨이드의 특수부대 시절 과거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시한부 인생까지 알고 있는 의문의 존재가 아닌가. 그리고 웨이드에게 넌지시 새 삶과 새 능력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에 당연히 미친 소리라고 빠구먹이는 웨이드. 그러나, 점점 죽어만 가는 자신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해 하는 바네사가 걱정되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하는 웨이드. 마침내 웨이드는 바네사에게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작별을 하고 그렇게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를 하기로 한다.

 

거래 직후 끌려간 곳은 위생시설이 형편없는 생체 실험실 같은 곳. 이 곳에서 웨이드는 자신을 에이잭스(에드 스크레인)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에이잭스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은 인공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수퍼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며, 이 수술이 성공한다면 암세포도 말끔히 사라지고 가공할만한 능력까지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잭스 역시 그 시술을 통해 엄청난 반사신경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동료인 엔젤더스트(지나 카라노)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있었으니, 에이잭스의 경우는 말초신경이 다 타버려서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되는 등 어떠한 능력이 발현되는 대신 무언가를 잃을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시술이었던 것.

 

<이거슨 악당에게 주는 나의 그림 편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깨달은 웨이드이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은 웨이드. 특히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필요하여 웨이드는 시술 이후 지속적으로 엄청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특유의 낙관주의와 수다정신으로 이 난관마저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버리는 웨이드.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말벗이 되어주는 같은 실험체 처지인 데이빗(휴 스콧) 덕분에 웨이드는 스트레스 없이 계속해서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날리는 조크가 있었으니, 바로 간지 하나로 먹고 사는 에이잭스의 본명이 프란시스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이라는 것. 이에 제대로 뚜껑열린 프란시스는 웨이드를 각성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처방을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산소 농도를 늘이고 줄여서 숨쉬는 것이 힘들도록 만듦으로써 저승길 문턱까지 가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고통은 화생방 가스실 훈련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그러자 드디어 돌연변이 능력을 발생하게 된 웨이드. 그러나 그 대가는 실로 참혹했으니, 온 몸의 피부가 목욕탕에 진득하니 담은 것처럼 쭈끌쭈글해져버린 것이다. 이에 당연히 분노로 화답하는 웨이드. 그러자 프란시스는 그 찌그러진 얼굴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며 말 잘 들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웨이드가 아니었으니. 기어이 기지를 발휘해 시험관 속에서 탈출에 성공하고 화염 속에서 프란시스와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공격에 웨이드는 꼬치구이가 되어버리고, 그렇게 그는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건물더미와 함께 사라진다.

 

죽은 줄 알았던 웨이드는 돌연변이 능력으로 인해 불사의 힘과 치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겨우 목숨을 건진 웨이드는 자신의 흉측한 몰골을 숨긴 채 힘겹게 살게 되었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차마 바네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일 자신이 없었던 웨이드는 위즐에게 도움을 청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하여 복수를 꿈꾸는 존재로서 데드풀이라는 이름을 정하고, 이후 자신이 직접 코스튬을 제작하여 얼굴을 숨긴 채 자기를 이 꼴로 만든 프란시스를 잡기 위해 쫄따구들부터 하나 둘씩 처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복수의 순간이 오늘에서야 온 것이다.


<강남 성형외과 의사선생님들이 데드풀의 저 얼굴을 좋아합니다>

 


한 편, 평소 데드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엑스맨 양성으로 유명한 자비에르 영재학교의 보디가드 콜로서스(스테판 카피식)이다. 그는 그 고지식한 티타늄 몸뚱아리만큼이나 사고방식도 고지식해서 오로지 데드풀을 정의로운 존재로 개화시켜 엑스맨에 합류시키기를 소망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데드풀이 고가도로에서 난장판을 피운다는 소식을 듣자 친히 정신교육을 위해 마침 학교에서 죽치고 있던 또 다른 뮤턴트인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란드)와 함께 고가도로로 향한다.

 

데드풀이 드디어 프란시스를 찾아내서 도망가려던 프란시스를 잡아 복수의 종지부를 지으려 할 때, 훈수쟁이 콜로서스가 나타나서 그런 데드풀을 막아선다. 그러자 훈수라면 이골이 나는 데드풀이 콜로서스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그 틈을 타서 프란시스는 도망쳐 버리고 만다. 결국 자신의 계획을 망친 콜로서스에 화가 난 데드풀은 회심의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지만, 온 몸이 티타늄으로 된 콜러서스인지라 때리는 족족 뽀사지는 데드풀의 육체. 그리고 마침내 콜로서스가 데드풀에 수갑을 채워 엑스맨 아지트로 데려가려고 시도하자, 친히 영화 <128시간>을 스포일러하면서까지 자신의 손목을 잘라 탈출에 성공하는 데드풀.


<원작에서도 티격태격 하더니 영화에서까지도 그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 두 뮤턴트>

 


이후 데드풀은 그 동안 자신을 챙겨주었던 룸메이트인 맹인 알 할머니(레슬리 우감스)의 집으로 몸을 숨기고 서서히 자라나는 손과 함께 다시 시간을 두고 복수의 기회를 다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바네사에게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일그러진 얼굴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프란시스가 절실히 필요한 그였다. 그러나 그 동안 죽은 줄 알았던 웨이드가 데드풀로 멀쩡히 살아있음을 알게 된 프란시스는 반대로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이름가지고 능욕한 데드풀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고, 그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위즐을 찾아가 협박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네사와 웨이드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 프란시스는 곧바로 바네사에게 향한다.




 



#2. 기존의 통념을 산산히 박살내는 이단아같은 작품

 

간만의 포스팅이라 그런지 스토리 리뷰가 너무너무 길어졌다. 마치 데드풀이 수시로 떠드는 듯 필자 역시 리뷰 하나만으로 줄줄 늘어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기존의 수퍼히어로물과는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캐릭터에 대한 개성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캐릭터에 걸맞게 아주 엽기적이고 황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하나 천천히 따져보자면, 가장 먼저 오프닝에서 표기되는 크레딧에 대한 신랄한 시도부터 아주 주옥같다. 보통은 등장 배우들의 이름과 감독, 기타 연출진들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 영화는 이름 대신 이들을 조롱하는 듯한 장난스러운 문구로 나타내고 있다. 가령 주연배우인 라이언 레이놀즈의 이름 대신 쎄끈한 매력남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감독에 대해서는 돈만 많이 쳐받는 초짜라고 하질 않나, 제작진에 대해서는 이들이 진정한 히어로라는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비꼬고 있다. 필자가 극장에서 보는 통에 모두 정확한 표기가 기억나지도 않고 영어식 표현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의역한 부분이 있어서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초반부터 기발하게 배꼽잡으며 시작하는 영화이다. 이러한 병맛 개드립은 영화 내내 시종일관 진행되는데, 아예 엔딩 크레딧에서까지도 등장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면 겁내 섹시이런 식으로 드립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병맛의 수준이 고정관념을 완전 깨버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로 등장하는 워헤드에게 색드립을 치는가 하면, 막판에도 콜로서스의 장엄한 연설에도 불구하고 확 깨는 행동을 하는 등 그야말로 상상초월 병맛과 드립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중간중간 터지는 이런 장면 때문에 이 영화가 로맨스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두 번째로는 데드풀의 정체성이다. 그는 다른 영화작품과 달리 자신이 영화 속 캐릭터임을 알고 있는 아주 황당한 존재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들 즉 관객들에게 대화를 건낸다. 데드풀은 영화 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우리들 사이에 놓인 벽을 4의 벽이라고 말하며, 이를 깨는 것이 하나의 목표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이러한 설정이다 보니 데드풀은 또한 작품 중간중간 자신이 겪는 상황에 대해서 영화 컨셉임을 알고 말하는 엽기발랄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자비에르 학교로 콜로서스를 찾아갔을 때, 콜로서스와 워헤드만 있는 것을 보고 제작진이 예산이 부족해서 두 명 밖에 캐스팅 못한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콜로서스가 학교로 가서 자비에르 교수를 만나면 얼굴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데드풀이 맥어보이? 스튜어트? 시대가 마구 바뀌어서 헷갈린다는 식으로 드립을 친다. 실제로 과거 엑스맨 영화에서 늙은 자비에르 교수는 패트릭 스튜어트가, 젊은 시절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는데, 실제와 영화를 완전히 허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데드풀은 관객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발칙한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온갖 잡설로 영화의 스토리를 앞으로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영화의 시간대를 비틀어버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 영화는 사실 러브스토리였다는 둥, 사실은 호러무비 였다는 둥의 관객 스스로의 평가를 아예 통제해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장난질의 백미는 바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 나오는 쿠키영상에서 나타나는데, 이전의 수퍼히어로 무비에서 엔딩 크레딧은 후속편을 위한 암시라던가 주인공들의 재미있는 후일담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데드풀이 목욕 가운을 입고 슬금슬금 나오더니 관객들에게 영화 끝났다고 왜 아직까지 멍청히 앉아 있냐며 어서 가라고 핀잔을 준다.


<분명 포스터에는 발렌타인데이 때 보는 러브스토리였더랬다. 여성 관객들은 정말 속았을까?>

 


여기에 데드풀만의 코믹하면서도 잔인한 영상은 또 다른 매력이다. 데드풀은 마블 수퍼히어로 무비 최초로 19금 청소년 불가 영화로 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로 바로 잔인한 영상이 수두룩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총알이 신체 구석구석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은 아주 그냥 애교 수준이며, 머리가 숭덩숭덩 잘려 날라다닌다거나 사지가 절단되어서 나뒹구는 장면이 아주 감칠맛나게 등장한다. 게다가 데드풀이 자신의 손목을 거침없이 자르는 장면은 이걸 웃으면서 봐야 할지 토하면서 봐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는 개그와 거북함이 공존하는 묘한 장면이 되기도 하였다.


데드풀이 19금 판정을 받은 이유는 단연 피비린내 나는 사지절단 액션 때문만은 아니다. 당연히 19세 이상의 관객들의 심장 박동수를 향상시키는 배드신도 등장하는데, 어차피 제대로 19금으로 가기로 작정했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남녀 주인공의 맨살이 도드라진다. 아마도 마블 수퍼히어로 무비 역사상 최초로 붕가붕가 장면을 보여준 히어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서 데드풀 특유의 수다정신을 배가시켜 주는 찰진 욕설과 거친 입담도 청소년 불가 판정에 한 몫 하였다. 데드풀의 말투 자체가 온갖 비속어와 욕으로 점철되었다 해도 무방하며, 어차피 정의로운 수퍼 히어로라는 딱지를 걷어찬 이상 아무런 말이나 거침없이 질러댄다. 오죽하면 콜로서스가 계속 입조심 하라고 훈계를 둘까.



#3. 아는 만큼 더 배꼽빠지는 깨알같은 셀프디스

 

이러한 깨알 같은 발칙함과 고정관념의 붕괴, 그리고 유쾌한 유머 코드는 필자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필자가 오히려 이 작품에서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던 부분은 바로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셀프디스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셀프디스가 이 작품을 가장 독특한 마블 히어로 작품으로 인정받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단순히 자기 비하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배우 자체의 이력에 대한 셀프디스가 이루어지는 경지에까지 오른다. 이미 필자의 블로그에서 다룬 <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도 데드풀이 등장한다고 리뷰를 했었는데, 여기에서 데드풀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라이언 레이놀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작품에서의 데드풀이 원작과 많이 동떨어진 그야말로 안습의 캐릭터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오죽하면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가 원망스러워 입까지 막히는 비운의 캐릭터가 되질 않았던가. 그리고 <데드풀>에서 이제서야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라이언 레이놀즈는 바로 과거 자신의 흑역사와도 같은 그 배역에 대해 대놓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분들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이겠지만, 초반에 데드풀이 궁댕이에 총알 박힌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장 쪽팔린 모습이라고 얘기를 한 후 과거를 회상할 때 등장하는 액션피규어가 바로 그 문제의 흑역사를 장식한 데드풀 캐릭터의 피규어이다. 필자마저도 해당 작품을 리뷰할 때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글을 썼을 만큼 황당함이 너무도 컸던 캐릭터이긴 하였더랬다.


<이 녹색 수트가 그의 평생 쪽팔림이 될 지는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셀프디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또 하나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연기한 경력이 있는데, 바로 DC가 대표하는 히어로 중 하나인 그린 랜턴 되시겠다. 나름 상당한 비주얼과 원작에 준하는 설정으로 꽤 퀄리티가 우수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평가는 그야말로 폭망. 덕분에 라이언 레이놀즈의 두 번째 히어로무비 도전기 역시 흑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이 역시 흑역사로 치부하며 간접 디스를 하는데, 주인공이 뮤턴트 실험을 당하기 전 최초로 실려가는 장면에서 “내 수퍼 수트는 초록색으로 만들지 말아. 애니메이션도 안돼"라고 농담을 치는 장면이 그 문제의 장면 되시겠다. 왜냐하면 <그린 랜턴>에서 라이언 레이놀즈는 시종일관 캐릭터의 비주얼 아이덴티티인 녹색 쫄쫄이 스판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실제 배우의 이력에 대한 셀프디스는 데드풀이 지향하는 제 4의 벽 돌파와 관련된 설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제 4의 벽이 현실과 작품간의 갭이라고 말하였는데, 작품 속에서의 데드풀을 연기하는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의 현실에서의 이력에 대해서 디스를 하고 있는 셈이니 이미 제 4의 벽은 그 때부터 무너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그는 또 다른 실존 배우에 대한 디스까지 뻗치면서 그 정점을 치닫게 된다. 바로 맨 중의 맨 휴 잭맨에 대한 일편단심 디스이다. 초장부터 휴 잭맨에 대해 풀버린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명까지 말하며 비하하는가 하면, 계속해서 이제는 자기가 <데드풀> 영화로 인해 휴 잭맨을 능가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개드립을 치기도 한다. 막판에도 휴 잭맨의 마스크로 괴상한 장난까지 치는데, 어찌나 질기고도 우습던지 아주 찰지기 그지없다.


<데드풀에게 평생 까일 팔자인 비운의 두 캐릭터, 흑역사 시절 데드풀과 울버린>


 

그렇다면 대체 왜 그토록 휴 잭맨을 까고 보는 것일까. 그것은 앞서 말한 안습 데드풀 캐릭터에 대한 흑역사 때문이다. 사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캐릭터의 광팬이었고,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제작 발표와 함께 데드풀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알려지자 본인이 나서서 데드풀 역을 꼭 맡고 싶다고 바지가랑이 붙들고 매달릴 정도였다. 결국 그 배역을 따내며 이제 나의 세상이 왔다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연기인생을 펼쳤지만, 되돌아 온 것은 안습의 데드풀 캐릭터 설정과, 막판에 배우까지 뒤바뀌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초반에 데드풀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하다가, 막판 웨폰XI가 된 후로는 스콧 앳킨스가 연기하였다). 그러다보니 배우로서도 캐릭터로서도 휴 잭맨이 라이벌이 되어버린 셈이니, 계속해서 그를 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라이언 레이놀즈는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휴 잭맨을 능가했다고 스스로 영화 속에서 자뻑하는 꼬라지인 것이다.



#4. 저예산으로 놀라운 결과물을 낸 역대 최강 능력의 제작진과 배우들

 

, 그럼 이제 이토록 발칙한 영화를 만들어낸 제작진과 배우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먼저 감독은 팀 밀러인데, 놀랍게도 <데드풀>이 이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실 데드풀 캐릭터에 대한 스핀오프 시리즈 제작에 대해서는 <엑스맨 탄생 : 오리진> 이후부터 급격히 거론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퍼히어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던 시기인지라 이에 어긋나는 캐릭터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커서 제작사에서 많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본래 2000 5, 아티산 엔터테인먼트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데드풀 영화를 공동제작 하고 투자 및 배포를 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2004 1, 뉴라인 시네마와 영화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5 3, 흥행에 대한 의심때문에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돌리면서 관심이 줄어들었고 대신 20세기 폭스사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그리고 마침내 2009 5, 20세기 폭스사가 작가들에게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었고, 2011 4월에 팀 밀러가 감독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사실 20세기 폭스사는 흥행에 대한 보장이 없어 계속 투자를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2012년 1월 3분짜리 잛은 footage 영상을 만들어 제작사 간부들을 설득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footage 영상이 2014년에 어쩌다가 뒤늦게 유출되면서 의외로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몰게 되자 흥행의 가능성을 직감한 제작사가 급히 입장을 바꿔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하게 되었고, 저예산이다보니 신예 팀 밀러가 감독의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발칙한 자세를 보라. 그만큼 영화의 모든 것이 발칙하다. 심지어 제작진까지>



사실 팀 밀러는 전문 감독이라기 보다는 시각효과 전문가에 가까웠다. 그는 장기를 살려 단편 애니메이션 <Gopher Broke>로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우수한 시각효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 <토르 : 다크월드>의 오프닝 영상을 제작하면서 그 진가를 세간에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비주얼에 감명받은 제작사가 비주얼 센세이션을 노렸던 <데드풀>에 팀 밀러가 적격이라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제 겨우 감독으로서 명함을 들이민 팀 밀러가 초장부터 이렇게 대박을 쳐버리니, 앞으로 그의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주연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조금씩 설명을 했지만,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 친구는 데드풀을 위해 태어난 영화배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만화 매니아였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캐릭터를 유독 좋아해서 성격이나 말투까지도 데드풀을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드디어 꿈을 이룰 기회가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통해 열리게 되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죽기살기 각오로 매달려 배역을 따내고 데드풀 연기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과는 당연히 흑역사였기 때문에 상심이 무척 컸을 터. 그러나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데드풀 작품을 위해 계속해서 배역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정성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 바로 앞서 <데드풀>이 본격 제작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footage 영상이다. 그 영상에서 데드풀 코스튬을 입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짧은 시간이나마 연기하였는데,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모습 그대로의 데드풀을 연기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영상은 의도적으로 유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의 이러한 노력과 가치를 알아준 것이 바로 관객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데드풀이 제대로 된 모습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필자는 라이언 레이놀즈를 과거부터 참 애매한 배우라고 생각해 왔다. 전형적인 미국적 호남형 얼굴에 건장한 체격, 그리고 꽤 훌륭한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 그러나 한 편으로는 무언가 너무 식상한, 그야말로 특별한 개성이 없는 배우라는 느낌이 강했더랬다. 솔직히 그가 처음에 영화계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작품들이 다 고만고만했고, 역할도 조연에 불과했다. 그나마 <저스트 프렌드>에서 주연으로 등장하여 김아중에 버금가는 과체중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필자에게는 <블레이드 3>를 통해 액션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는데, 사실 그 때의 이미지는 진정한 액션보다는 껄렁껄렁하게 입방정떠는 개그 액션 전문 배우로서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엑스맨 탄생 : 울버린> <그린 랜턴>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보니 이 친구는 한계가 있는가 싶은 느낌이었다. 이후 최근에 <셀프리스>에서 진지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그 작품이 SF스릴러이다 보니 차라리 그 분야에 내공이 깊은 톰 크루즈가 배역을 맡았더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이러한 껄렁껄렁하고 여유넘치는 가벼운 액션 배우로서의 모습이 실은 데드풀의 성격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다. 역시 그의 회고에서처럼 꼬꼬마였을 때부터 말과 행동이 데드풀을 따라했다고 하니, 그것이 그의 연기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무쪼록 이제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를 통해 확고한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성공하였으니, 앞으로도 지속적인 <데드풀> 시리즈를 통해 <아이언 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능가하는 고유의 히어로 배역을 가진 배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오로지 데드풀이 되기 위해 살아 오다가 꿈을 이룬 라이언 레이놀즈. 과연 심형탁은 도라에몽이 될 수 있을까?>

 


여자 주인공 바네사 칼리슨 역을 꿰찬 모레나 바카린은 이 작품이 그녀의 첫 주연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도 감독만큼이나 거의 신예에 가까운데, 2015년 초유머대작 <스파이>에서 조연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에 데뷔한 신참내기 배우이다. 이후 TV시리즈 <고담 시즌 2>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조금씩 연기력을 쌓았는데, 이렇게 검증안 된 조연 배우가 덜컥 주연배우로 캐스팅되었다니,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허를 찌르는 영화가 아닐 수 없겠다. 짧은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매력과 몸매를 과시해주었으니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기대해본다.

 

악당 프란시스 역을 맡은 에드 스크레인 역시 모레나 바카린만큼이나 신참 배우이다. 이 친구는 2012년 처음으로 데뷔하여 줄곧 액션 연기만 한 외길인생 사나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딱 봐도 비주얼이 무척 액션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나름 탄탄한 연기력과 액션을 선보인 탓에 택배기사들의 삶의 애환(?)을 그린 시리즈물의 최신작 <트랜스포터 : 리퓰드>에서 주연을 맡아 선 굵은 액션을 선보였다. 잘 알다시피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단골 신사였던 제이슨 스타뎀이 영국 출신 배우인 만큼, 에드 스크레인 역시 그 정통성을 이어받아 대머리에 영국 출신 배우로서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킬 유어 프렌즈>, <타이거 하우스>, <스워드 오브 벤전스>, <왕자의 게임> 등 영국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서 활약하면서 연기력을 쌓은 배우이다.


<살짝 니콜라스 홀트와 닮기도 한 에드 스크레인. 대머리로 바꾸면서 제 2대 트랜스포터의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악당 엔젤더스트 역을 맡은 지나 카라노는 어지간한 격투기 매니아라면 다 아는 유명한 배우이자 전직 격투기 선수이다. 과거에 이종격투기 선수였던 그녀의 경력은 화려하였는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7승 무패의 무서운 실력을 뽐내여 여성 격투기 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2009년 스트라이크포스 대회에서 크리스티안 저스티노에게 패하면서 돌연 격투기계를 떠나 영화계에서 투잡 활동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173cm의 남성에 꿀리지 않는 체격과 격투기로 다져진 맨 몸 액션으로 인해 그녀는 이내 영화 내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하였고, 2013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에서 미셀 로드리게즈와 지하철에서 미모와 액션을 버무린 엄청난 격투 연기를 펼쳐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미모도 나름 괜찮았기 때문에 <인 더 블러드>라는 작품에서는 아예 주연을 꿰차며 평범했지만 알고 봤더니 무서운 여자라는 설정으로 멋진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번 <데드풀>에서는 두 눈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벌크업을 감행하여 엔젤 더스트 역을 소화했는데, 괴력이 컨셉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밸런스잡힌 몸매를 포기하고 드럼통 같은 통짜허리의 몸매를 선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콜로서스와의 힘 대결은 나름 찰진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여주인공의 슴가는 보여주면 지나 카라노의 슴가는 가리는 것이냐 콜러서스!!


<결국 격투기보다 영화가 돈벌이에 좋다는 것을 증명한 지나 카라노. 최근 론다 로우지도 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고 한다>


 

택시기사 도핀더 역으로 분한 카란 소니는 인도 출신답게 인도식 영어가 아주 찰지게 나왔는데, 최신작 <구스범스>에서 조연으로 등장해 우리에겐 크게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 앞으로의 연기 인생이 기대되는 것이, 올해 리부트 예정인 여성판 <고스트 버스터즈>에서도 중요한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 역을 맡은 브리아나 힐데브란드와 위즐 역의 티제이 밀러 모두 신인 배우들인데, 나름 짧지만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어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다만, 브리아나 힐데브란드는 컨셉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 발연기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딱봐도 연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정말로 데드풀 말대로 예산이 적어서 그나마 싼 값에 불러서 출연시킨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종일관 CG로 등장하는 티타늄 부랄을 자랑하는 콜로서스는 스테판 카피식이란 배우가 목소리를 맡아서 러시안스러운 딱딱한 억양을 선보였는데, 그의 우직한 성격이 그대로 억양에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번 작품에도 마블 히어로 무비에 줄창 등장하시는 마블 히어로의 아버지 스탠 리가 역시 등장하는데, 눈이 휙휙 돌아가는 스트립클럽에서 DJ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이 바로 스탠 리 옹 되시겠다. 영감님 이 작품으로 눈 호강 좀 하셨을 듯.


<이름도 거시기한데 연기력마저 더더욱 거시기한 10대 일진 소녀 뮤턴트 워헤드>



#5. 원작에 충실한 데드풀의 스크린 데뷔

 

갈수록 글이 늘어지는데, 간만의 포스팅이니 참아주기를 바란다. 이제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으며, 이번에는 만화 원작에서의 데드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는 마블 히어로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생각만큼 많이 보지는 못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래픽 노블이 번역되어 발간되어 점차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모든 세계관을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데드풀에 대해 썰을 풀어볼까 한다.

 

데드풀은 19912 <뉴 뮤턴츠 #92>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본명인 웨이드 윌슨은 본래 DC 히어로 중 하나인 데스스트로크의 본명인 슬레이드 윌슨을 패러디한 것이다. 본래 캐나다 태생으로 스페셜 포스 등 특수부대와 용병으로 맹활약하다가 뇌종양에 걸리게 되자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쫑내기 위해 웨폰X 프로젝트에 자원하게 된다. 웨폰X 프로젝트는 울버린을 탄생시킨 그 유명한 문제적 프로젝트였는데, 바로 여기서 울버린의 대표 능력으로 꼽힌 힐링 팩터가 획득되고 이를 다시 데드풀에게 주입하면서 그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힐링 팩터가 뇌종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성장시켜버려서 종양이 온 몸에 퍼지게 되고, 결국 데드풀은 힐링 팩터로 인해 끊임없이 종양에 의한 세포 손상과 회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해 데드풀은 외모가 끔찍하게 변한 것이고, 지속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점차 이성이 마비되면서 지금의 병맛스러운 캐릭터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데드풀은 이러한 설정 때문에 자신이 만화 속 존재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면서 자꾸만 제 4의 벽을 뚫어야 한다는 소리를 지껄이게 되고, 심지어 이중 인격도 아닌 4중 인격까지 형성되어 지 혼자서 쉴틈없이 수다떠는 모습을 선사하기도 한다.


<원작에서도 호러와 병맛이 공존하는 아주 개성넘치는 캐릭터이다>

 


데드풀은 본래 수퍼 히어로를 꿈꾸었지만 점차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래서 이후 마블 세계관에서 전 우주적 사건이 터져 모든 히어로와 빌런들이 힘을 합쳐 생존을 건 전투를 할 때에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데드풀과 친한 수퍼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인데, 이는 그 둘의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이 잘 들어맞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만, 데드풀은 진심으로 스파이더맨을 좋아해서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쫓아다니는데 반해, 스파이더맨은 정신나간 데드풀이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사실이다


또다른 데드풀과 인연이 있는 존재로는 바로 마블 세계관에서 우주의 4대 본질 중 하나로 꼽히는 데스이다. 데드풀이 종양으로 인해 계속해서 요단강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덧 데스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데, 데스 역시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 데드풀이 신기해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웃긴 것은 설정 상으로 데스는 여성이기 때문에 데드풀이 데스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사상 최강의 빌런과 사랑의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바로 데스의 공식 연인인 타노스가 그 라이벌이다. 참고로, 원작에서 설정된 데드풀의 국적과 신체 사이즈가 실제 라이언 레이놀즈와 동일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정말로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여겨질 법도 하다.



#6. 마블 세계관을 위한 떡밥 투척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다른 마블 히어로 영화들과 갖는 관계성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 끝내겠다. 다른 마블 히어로들은 어찌되었던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떡밥을 던져주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영화 판권은 20세기 폭스와 마블이 서로 쪼개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계관을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각자의 회사가 가지고 있는 판권 내에서는 어느 정도 떡밥을 뿌리며 관객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데드풀> 역시 이러한 재미를 선사하는 떡밥들이 존재하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찰떡궁합 커플인데 속편에서는 같이 나올 수 있을랑가 아몰랑>


 

영화 후반부에 데드풀이 프란시스의 부하들과 한바탕 대결을 치른 후에 부하 중 한 명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하의 이름이 밥인데, 사실 밥은 원작에서 데드풀과 매우 친한 쉴드의 요원이자 하이드라의 스파이이다. 안타깝게도 20세기 폭스사는 하이드라 판권이 없기 때문에 대놓고 소속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원작에서 절친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터라 그만큼 원작의 설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 앞으로 판권이 합쳐져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된다면 데드풀과 밥과의 관계가 더욱 알차게 꾸며질 수도 있겠다.

 

최후의 결투 장소로 등장하는 거대한 항공모함도 쉴드와 연관이 깊다. 이것은 누가 봐도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에서 등장하여 막판에 박살나는 쉴드의 공중부양요새 헬리캐리어인데, 역시 판권 문제로 이게 쉴드 것이다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고 그냥 배경으로만 등장한다. 어쨌든 시대적인 배경을 본다면 이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와 하이드라가 싸우고 난 후의 시기로 볼 수 있겠다.

 

데드풀의 연인 바네사 칼리슨의 정체는 또 다른 떡밥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그냥 평범한 매춘부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칼리캣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뮤턴트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그녀는 미스틱에 버금갈 정도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 그녀가 아이잭스에게 던진 대사인 나는 많은 역을 해왔지만, 비탄에 빠진 여자 역할은 안 맞아에서 마치 칼리캣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이 또한 지켜 볼 설정이다.


<바네사 칼리슨과 그녀의 정체로 의심되고 있는 뮤턴트 칼리캣>


 

영화에서 그나마 대놓고 나오는 엑스맨의 아지트인 자비에르 영재학교는 당연히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쓴 케이스이다. 사실 데드풀과 엑스맨은 원작에서도 어느 정도 질긴 인연이 있다. 스파이더맨 만큼은 아니지만 울버린은 데드풀에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아마 같은 웨폰X 프로젝트 동기생이라서 그런 것인지, 똑같이 힐링팩터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서 겉도는 데드풀에게 그나마 엑스맨에서 연결고리를 갖는 것은 울버린이다. 아마 예산이 많았더라면 이 영화에서 당연히 휴 잭맨이 울버린으로 까메오 출연하여 멋진 장면을 선사했을 것이라 보여진다. 따라서 이번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만큼 더 이상 흥행 걱정으로 저예산으로 편성한 제작사의 만행은 없을 테니, 후속작에서는 막강한 예산으로 후덜덜한 엑스맨 멤버들의 캐스팅을 기대해 볼 만 하겠다.



#7. 개봉 전부터 회자되었던 병맛 크리의 진수

 

, 여기까지 썰을 풀어봤는데, 설마 이게 진짜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마음 놓고 창닫기 버튼을 누르려 했는가? 그렇다면 실로 안습이 아닐 수 없겠다. 실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사실!!! 데드풀도 관객들을 농락하는데 나라고 못 할 쏘냐!!!

 

진심 마지막 코너는 바로 이 작품이 제작이 예정된 시기부터 펼쳐진 기상천외한 영화 홍보에 대한 것이다. <데드풀>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게 된 부분은 역시 입소문이 가장 효과가 컸는데, 그도 그럴 것이 2015년부터 무슨 특정한 날만 되면 여기저기서 뜬금포로 병맛 같은 데드풀의 마케팅 이미지나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특별한 날마다 그 짓을 하듯이, 실제에서도 그렇게 영화를 홍보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홍보 방식이 기존의 바이럴 마케팅과도 또 다르게 아주 기상천외해서 특히 이슈가 되었는데, 예를 들어 대중 장소에서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복장을 입은 채 평범하게 돌아다니기도 하였고, 트위터에선 시종일관 데드풀 복장을 하고 여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트윗을 하면서 특유의 병맛 개그를 구사하기도 하였다. 때때로 일부 홍보 영상이나 이미지는 대놓고 다른 작품들을 패러디하면서 개그를 시전하였고, 한국에서도 대선후보 포스터 같은 패러디 컨셉을 통해 병맛을 마음껏 선보이기도 하였다.


<나도 모르게 218번 후보에 투표할 뻔 했다>


 

<어벤저스>가 히어로 무비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면, 역사에도 없었던 새로운 구강액션을 선보여 또 다른 역사의 행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데드풀>. 그 유쾌하고 통렬한 개그와 액션 만큼이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선한 스토리와 컨셉으로 단순 액션이 질린 수퍼 히어로 무비에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데드풀은 입으로 떠드니 그나마 나을 텐데, 필자는 손으로 줄창 떠들어 버리니 손가락에 마비 증세가 온다그러나 필자에겐 힐링 팩터가 없다는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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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4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퍼니셔 2 (The Punisher : War Zone)



#1.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깃든 노력형 히어로


학창시절 하교길에 필수 코스였던 오락실에서 필자가 단짝 친구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게임이 있다. 바로 2인용 횡스크롤 액션 게임 “퍼니셔”. 당시 필자로서는 가슴에 해골 마크 달고 터프한 인상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는 캐릭터에 묘한 매력을 느껴 퍼니셔를 굉장히 좋아했더랬다.


<옛날에는 백골 마크가 하록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이제는 퍼니셔의 것으로 대체된 듯>



어디서 이렇게 멋진 캐릭터가 나왔을까 하고 궁금증을 실증적 차원에서 접근해 본 결과, 히어로 대량 생산 공장인 마블 코믹스의 제품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블 히어로 하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 데어데블 등 인도의 신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히어로들로 유명하다. 그런 슈퍼 히어로 들 속에서 퍼니셔는 조금 다른 개성과 컨셉을 가지고 있었던 몇 안 되는 히어로. 


퍼니셔는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도 없을 뿐더러, 지구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계인도 아니고, 아이언맨 처럼 초특급 갑부도 아니면서, 남들처럼 가면이나 쓰고 다니면서 상판떼기를 숨기는 이중적인 캐릭터도 아니다. 그저 우리네와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도 당당히 히어로 리스트에 들어간 후천적 노력형 히어로인 셈이다. 어째서 이렇게 후천적 노력형 엘리트가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처절할 정도로 비참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저항 때문이다. 남들은 갑부라서 돈지랄 하기 위해 재미삼아 히어로를 한다지만, 퍼니셔는 억울하게 살해당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복수심 하나로 세상 모든 악당들을 때려잡는다는 파격적이고도 철밥통 같은 독고다이 인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블코믹스 원작에서의 퍼니셔. 다시한번 말하지만 악당이 아니라 어엿한 히어로 주인공이다>



#2. 퍼니셔 원작에 대한 고찰


그렇담 짤막하게 원작의 퍼니셔를 리마인드 해보자. 재미있게도 원작에서는 퍼니셔에 대한 배경 설명이 거의 없다. 처음부터 묻지마 해결사로 등장하는 컨셉이었기 때문에, 원작 내내 오로지 악당 쓸어버리기에만 전념을 다하는 시퀀스를 보여주었다. 


방금 전에 히어로라고 했지만, 사실 원작만 놓고 보면 악당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는 것 외에는 히어로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없다. 왜냐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악당들도 다 처자식이 있고 소중한 목숨일진데 일단 퍼니셔한테 걸렸다 하면 콘택600...이 아니라 무조건 황천길이기 때문이다. 허구한날 인상만 쓰고 시거 피워대며 다니는 무차별 총지랄 중년남성의 이미지 외에는 이 인간이 왜 이런 잔혹한 청소부가 되었는지, 과거에는 뭐로 먹고 살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해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한 인물이다. 무차별 무자비 독고다이 인생이기 때문에 이걸 히어로라 불러야 할 지 살인마로 불러야 할 지 애매한 것이다. 마블코믹스의 전형적인 연출 기법으로, 간혹 각기 다른 히어로들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작품 속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퍼니셔의 경우에는 스파이더맨과 겨루기도 할 정도로 무언가 개운한 구석은 없어 보인다. 100% 순도높은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눈에는 퍼니셔도 일종의 악당으로 보일 뿐이었고, 퍼니셔는 일단 자기 일에 끼어드는 놈들조차 다 쏴죽이는 버릇이 있어서 스파이더맨을 방해물로 여기고 죽이려 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가장 완벽한 몸매를 선보여 준 2대 퍼니셔 토마스 제인. 연기도 나름 괜찮았다>



어쨌든 밝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연쇄살인범스러운 아저씨의 일대기는 나름 성공을 거두어 헐리우드의 필수 코스인 실사화를 거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무려 2번의 재탕을 거치는 사골국 신세가 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람보와 쌍벽을 이루던 돌프 룬드그렌이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세워 최초의 퍼니셔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2004년에 크리스토퍼 램버트랑 비슷한 안면을 자랑하는 토마스 제인이 리메이크 버전의 주인공이 되어 남다른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에 또다시 재탕하기에 이르러 <퍼니셔 : 워존>이라는 작품이 제작되기에 이른다.


<돌프 룬드그렌의 오리지널 퍼니셔. 생각보다 원작과 싱크로율이 꽤 높다>



#3. 스토리 - 은퇴후 노후 설계에 들어간 퍼니셔의 눈물 투혼기


오늘 필자가 평하고자 싶은 작품은 3편의 작품 중 가장 괴이한 결과물을 보여준 <퍼니셔 : 워존>이다. 최신 개봉작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이 작품 대단히 독특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겠다. 비록 매번 우려먹은 스토리이지만 다시 한번 이번 작품에서 그려진 스토리를 나열해 보겠다.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마피아계의 거장 빌리 루소(도미닉 웨스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거만한 자세를 보이며 마피아 모임에 등장한다. 영어를 야매로 배워 영어 발음이 쥐약인 링거 투혼의 대부 앞에 선 빌리는 러시아 마피아가 생물학 무기를 부두를 통해 들여오려고 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짓을 도와서 돈 좀 만져볼 예정이라고 한다. 신이 난 대부와 빌리, 그리고 똘마니들은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 앞에 앉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온 불청객 퍼니셔(레이 스티븐슨)에 의해 순식간에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만다.


<지하철 노숙자로 전락한 퍼니셔. 피흘리고 중무장한 괴인이 지하철역을 활보해도 그 누구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



나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마피아 일당을 숙청하는 퍼니셔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빌리와 그의 똘마니들을 놓치고 만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퍼니셔 앞에 나타난 것은 계속 퍼니셔를 잡겠다고 나불대고 있던 잠복근무 중인 형사. 일촉즉발의 위기지만, 사실 이 형사는 암묵적으로 퍼니셔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 덕분에 빌리가 도망친 곳을 알게 된 퍼니셔는 빌리를 쫓아 그의 아지트로 간다. 


아지트에서는 나름 숨 좀 돌리게 된 빌리가 똘마니들과 함께 다른 작전을 구상하지만, 휴식시간조차 주지 않는 퍼니셔에 의해 또다시 아지트는 쑥대밭이 된다. 그런데 퍼니셔가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숨지게 한 첫 번째 희생자이자 빌리의 오른팔 격 똘마니가 알고보니 FBI가 빌리를 잡기 위해 심어놓은 비밀요원이었던 것. 후회도 잠시, 결국 모든 똘마니들을 지옥행 급행열차에 태워보내고 빌리마저 유리병 분쇄기계로 던져버린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FBI 요원을 죽인 죄책감에 끙끙 앓는 퍼니셔.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빌리가 안면리모델링을 성공리(?)에 마치고 현업에 복귀했다는 소식에 자신이 죽인 FBI 요원의 가족인 안젤라(줄리 벤즈)와 그의 딸을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어느 누가 방긋 웃으며 받아주겠는가? 결국 문전박대당하며 용서를 빌 기회도 얻지 못한 퍼니셔는 그 길로 빌리의 뒤를 밟아 질긴 인연을 끝내려고 한다. 


한편 얼굴 개조하고 이름도 직쏘로 바꾼 빌리는 자신의 든든한 서포터즈인 친형 래니 빈 짐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킨다. 이후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형제애를 선사하며 퍼니셔 하나만을 죽이기 위해 온갖 복수의 장치를 마련하는데, 우선 자금 마련을 위해 안젤라의 집에 침입해 안젤라를 인질로 삼고 돈을 챙기려 한다.


<썩소를 날려주고 있는 빌리 루소, 그리고 의외로 심플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똘마니들>



한편 직쏘의 똘마니 중 한명을 처리하고 퇴근하려던 퍼니셔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특파된 FBI 요원 버디안스키(콜린 샐먼)에게 걸려 쇠고랑 신세가 된다. 하지만 안젤라가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버디안스키 요원이 안젤라의 집으로 달려가 영웅 행세를 하려고 시도, 그러나 역시 조연답게 싱겁게 인질이 되고 만다. 퍼니셔의 숨은 조력자였던 FBI 요원 소업은 퍼니셔를 풀어주고, 퍼니셔는 역시나 이름값하며 간단하게 진압을 한다. 


퍼니셔의 포스에 홀딱 반한 안젤라와 딸래미는 그 길로 퍼니셔의 아지트인 지하철 보일러실로 몸을 숨기고, 퍼니셔는 슬슬 은퇴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쇠고랑 신세였던 직쏘와 래니의 또라이 형제들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계획하고 있는 생물학무기 밀반입 사건을 해결하려는 FBI와의 협상으로 사건 해결을 대가로 자유의 몸이 된다. 또라이 형제는 퍼니셔를 죽이기 위해 도시의 모든 갱단을 단합하려는 궐기 대회를 열고, 퍼니셔의 무기공급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인 마이크로칩(웨인 나이트)를 협박하여 퍼니셔의 소굴로 쳐들어가 안젤라와 딸래미마저 납치해간다. 이후 후줄근한 호텔을 한 채 빌려서 무장 갱단들을 집결시키고 꼭대기층에 안젤라와 마이크로칩을 인질로 두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는 또라이 형제.


<얼굴 리모델링에 대만족(?)하는 직쏘. 얼굴 바꿨다고 이름까지 바꾸냐?>






자,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나름 흠잡을 데 없는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왜 이 영화를 필자가 괴이한 작품이라고 칭했는 지에 대해 이제부터 파헤쳐 보겠다.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는 주름살 투성이 퍼니셔. 설정상 은퇴를 고려한 시점으로 보인다>



#4. 원작의 분위기를 말아먹은 미스 캐스팅


우선 등장인물들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주인공인 퍼니셔부터 건드려보자. 2004년작 퍼니셔와 동일선상에서 이해하자면 초장부터 실수이다. 2004년작 퍼니셔는 이제 막 퍼니셔로 각성한 전직 FBI 특수요원 프랭크 캐슬을 보여주고 있다. 친절하게도 영화 초반부에 가족을 억울하게 잃고 겨우 혼자 살아남아 복수심에 불탄다는 배경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젊고, 강인하고, 그러면서도 아직 자신의 복수심에 대한 선과 악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내면적 갈등에 시달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번 퍼니셔는 2004년과 2008년의 4년이라는 공백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파삭 늙어버렸다. 퍼니셔 역의 레이 스티븐슨의 실제 나이가 65년생이다. 결국 전작에서 10년 이상 지난 시대적 배경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늙어버린 퍼니셔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전작의 토마스 제인이 너무 젊어서 원작의 인상 더러운 아저씨 삘이 전혀 안 살았지만, 레이 스티븐슨은 적절히 그 느낌을 뿜어내주고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육질 하나 없는 중년 아저씨는 좀 아니지 않은가? 리쒤 웨폰에서도 그러했듯이, 세월의 무력함에 굴복해야만 하는 히어로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한다고 치자면, 것두 좋다. 하지만 캐릭터 문제는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더욱 과감하게 나타난다. 


<어디서 본 건 참 많아가지고, 별의 별 총지랄을 다 한다. 일명 전등에 거꾸로 매달려 360도 회전풍차샷>



악당이 가장 큰 문제이다. 2004년작의 악당이었던 하워드 세인트(존 트라볼타)는 나름 악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프랭크 캐슬이 현직이었을 때 임무 도중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것. 이에 격분해 세인트 역시 복수의 차원에서 프랭크의 가족을 몰살했던 것이다. 참으로 얄궂게도 복수가 복수를 낳은 운명이었던 셈이고, 그 시작은 바로 프랭크 캐슬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악당과 주인공 간의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복잡한 연결고리 속에서 아주 끈적하게 풀어나갔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의 악당인 직쏘와 비니 또라이 형제는 그야말로 노홍철 저리가라의 돌+아이 정신을 백분 발휘하는 개그 캐릭터로 나오고 있다. 퍼니셔와의 질긴 인연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저 퍼니셔가 그의 본업에 충실하던 중 재수없어서 놓친 악당 중 하나일 뿐이다. 나름 직쏘도 복수라는 컨셉을 들고 나오지만, 그 복수가 세인트의 그것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쌩얼(잘 생기지도 않았다)을 리모델링하게 했다는 이유 하나. 이름도 직쏘로 바꾸다니, 이건 뭐 지가 쏘우의 매니아라도 된단 말인가? 아무리 원작 만화에서 빌런으로 직쏘가 나오니 그 설정을 채용했다고 하지만 설정이 너무나도 다르지 않은가. 온갖 똥폼 잡으면서 징그러운 얼굴 비추면서 내뱉는 대사 “빌리는 죽었어. 이제부터 나는 직쏘다”에서 필자는 그만 대략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삼류 B급 엽기호러물을 보는 듯한 시퀀스. 이 또라이 형제들만 나왔다 하면 뿜을 준비 하시라>



또 다른 악당인 직쏘의 형 래니 빈 짐은 더 심각하다. 처음에는 엄청 대단한 악당인 것처럼 나온다. 어찌나 흉악하고 엽기적인 살인마이길래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온 몸이 꽁꽁 묶여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멍때리는 표정 하며. 그야말로 초반 컨셉은 양들의 침묵의 닥터 한니발에 버금가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멍때리는 표정이 풀리자마자 또라이 근성이 나타나고, 이후부터는 그저 노홍철 같은 아이 보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실소를 터뜨리며 보게 된다. 짝달막한 키에 번쩍이는 대머리, 노홍철스러운 페이스, 그러면서도 온갖 아양과 애교섞인 말투와 표정. 거기에 더해 틈만 나면 악력기를 가지고 손운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상태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KTX 열차.


악당이 이 정도인데 다른 떨거지들도 나을 것은 없지 않겠는가. 나름 강렬한 인상과 카리스마로 퍼니셔와 긴장감넘치는 갈등구조를 그려나갈 것만 같았던 버디안스키 요원도 어찌나 퐝당한 자태를 보이던지. 나름 진지하게 경찰차에 올라 퍼니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상하던 중 퍼니셔가 옥상에서 떨어뜨린 직쏘의 똘마니를 보고 “Oh~ Shit!!”하는 장면에서 필자는 그만 뿜어버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일관성 떨어지는 캐릭터들의 유치찬란한 행각이란 말인가? 나름 범죄적 포스를 뿜어내겠다는 마피아들의 자태도 어찌나 우습던지, <옹박>의 목소리 마이크 영감님 이후 이렇게 어설프고 웃긴 마피아 대부는 실로 오랜만이다. 이런 악당들을 상대로 하는 퍼니셔이다 보니, 뭐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보인다.


<결국 퍼니셔편을 들어주는 띨빵한 FBI 요원들. 오른쪽의 버디안스키는 깨는 캐릭터 중 하나>



#5. 원작의 분위기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안습유발 액션


이번에는 퍼니셔가 그토록 강조하는 초특급 울트라 다이나믹 하드고어 액션을 살펴보자. 퍼니셔의 컨셉 자체가 무차별 무자비 살인 위주의 액션이다보니 이러한 연출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얼마나 더 하드고어하고 리얼하면서 다이나믹하느냐가 영화의 평가에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이미 1988년작 돌프 룬드그렌의 액션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었고, 2004년작 토마스 제인도 흠잡을 데 없는 액션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중년 남성이 펼치는 액션 느와르는 어떠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엽기황당이다. 마치 스티븐 시걸의 무뚝뚝한 액션과 쿠웬틴 타란티노의 엽기 하드고어가 짬뽕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레이 스티븐슨의 액션은 정말이지 리얼하다기 보다는 스티븐 시걸스러운 무언가 딱딱한 느낌이 진부하다. 시걸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어디 한번이라도 신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던가? 시걸한테 걸리기만 하면 초특급 슈퍼 악당도 간난아기가 되고 마는 일방적 개갈굼 액션이 레이 스티븐슨에게로 옮겨진 느낌이다. 


게다가 아무리 전직 특수요원이라지만 수십명의 갱단이 총격전에서 단 1명에게 깔끔하게 쓰러지는 모습은 마치 과거 홍콩느와르의 대표적 총질 액션을 보여주는 듯하다. 주윤발이 쏘는 총은 눈감도 엎드려 쏴도 맞는데, 악당들이 쏘는 총은 서서쏴 정자세로 심호흡을 하고 쏴도 안맞는 황당무계 시츄에이션이 퍼니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게다가 무한 탄창도 빠지지 않는 설정. 대략 4~5개 정도의 무기를 달고 갱단을 처리하는 퍼니셔인데, 권총만 따지면 1개의 탄창당 대략 10발로 계산시 50발 정도 소모가 가능하다. 여기에 예비 탄창을 10개 정도 챙겼다고 해도 100발이 한계이다. 그렇다면 갱단 한 명 죽이는데 2~3발 정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영화에서 하는 짓은 그야말로 무차별 난사. 게다가 총맞아 죽어가는 떡실신 상태에도 불구하고 확인사살까지 해주시는 퍼니셔의 애프터 서비스는 그 많은 총알을 대체 어디서 수급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한다. 총기 자체는 아주 리얼하고 레이 스티븐슨도 총기 다루는 모습이 프로처럼 보이지만, 무제한 총알 자체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것 아니던가?


<어이, 목이 근질근질한데 내 목에 낀 생선가시좀 빼주겠나 친구?>



총격전도 문제이지만, 그 외의 격투씬은 더욱 퐝당하다. 킬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엽기 격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젖에 숟가락 비슷한 것을 관통시키지를 않나, 칼을 그대로 머리통에 쑤셔박지를 않나, 주먹으로 얼굴 치니 얼굴이 폭발하지 않나. 이거 무슨 북두의권도 아니고, 보고있자니 충격적인 액션이라기 보다는 B급 슬래셔 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연출 면에서도 많은 문제가 느껴진다. 몇몇 장면을 보다 보면 “어라?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맨 처음 퍼니셔가 등장하는 씬. 탁자 위에 올라서서 조명탄을 비추며 해골마크를 드러내는 장면은, 처음에는 “와우!! 연출 대박!!”이라며 기뻐했는데, 그 이후의 액션에서 그만 필자는 <킬빌>의 따사로운 추억을 느낄 수 있었다. <킬빌>에서 오렌이 테이블 위로 쪼로록 달려가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이 퍼니셔에서도 똑같이 연출된 것이다. 정말 쪼로로 달려가서 영어발음 잘 안되는 마피아 영감님의 목을 댕강 잘라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표절의 대표 시퀀스. 이 외에도 <야마카시>를 패러디한 듯한 악당들의 건물옥상 날아다니기 장면이라던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360도 회전 총질이라던지 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참신함이 떨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연출. 


이런 패러디도 웃긴데, 여기에 더 안습인 몇몇 장면은 악당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잔인하다기보다는 너무도 우습다는 것이다. 건물 옥상을 날아다니는 야마카시 타입 악당 중 한명의 사살 장면은 그야말로 대 안습. 공중에서 꾸에르보 3단 틀기를 선보이며 옆 건물로 점핑하여 날아가는 순간, 어디서 난데없이 날아오는 미사일에 맞아 터져죽고 만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못말리는 시리즈”식 연출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게다가 얼굴 잡고 돌리기만 하면 소리없이 인생 하직하시는 연출을 보면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원작과 달리 빈약한 몸매를 가리고 목숨부지하기 위해 해골마크없는 민무늬 방탄조끼를 입는다>



#6. 이거 웃어야 해? 말아야 해?


퍼니셔의 행동거지에도 퐝당한 요소는 수차례 찾아볼 수 있는데, 격투 중에 한 대 얻어맞아 비뚤어진 코를 제자리로 원상복귀 시키는 장면이 압권이다. 연필을 쑤셔 넣어 뚝!하고 제자리 찾아주시는 쎈쓰는 200% 진지한 표정의 퍼니셔의 얼굴과 도저히 매칭이 안된다. 한 마디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로 재평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조연들의 연기도 어설프다는 데서 안구가 자꾸만 축축해져 온다. 나름 비장한 시퀀스를 보여줘야 하는 장면에서 조연들의 연기가 억지같다는 느낌이 너무 피부로 느껴진다. 순간 이 영화는 저예산 쌈마이 영화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였다. 하여 감독을 찾아보니 렉시 알렉산더라는 놀랍게도 여성 감독이라는 것. 아무래도 정신상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차세대 B급 쌈마이 영화계의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7.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한번만 더 참아보자


그리고 앞서 설명한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퍼니셔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안 나온다. 즉, 어디서든 퍼니셔의 옛날 이야기는 듣고 와야 이야기가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속편 격으로 내는 것이다 보니 2004년작의 배경 설명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것 같다. 하지만 퍼니셔가 어떻게 해서 FBI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지, 마이크로칩하고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쏭달쏭이다. 


원작에서 퍼니셔는 말 그대로 독고다이 인생이다. 마이크로칩만이 유일한 동료로서 그를 그림자처럼 도와줄 뿐이다. FBI나 경찰에서도 퍼니셔는 일개 살인자일 뿐이다. 오죽하면 정의의 사도인 슈퍼 히어로들 조차도 퍼니셔와 대립했을 정도. 여기서 조금 우스운 부분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의 시대 설정이 모두 제각각이라 이를 하나로 묶어서 동시대에 등장시키다 보면 엉뚱한 전개가 나오곤 한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퍼니셔만 해도, 시대가 살짝 미래인 만큼 별의 별 첨단기기가 등장하는데, 퍼니셔는 여기서 어떤 비밀단체(그러나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는 그 단체)에 의한 협조를 받기도 한다. 


이렇듯 단독 출연이 아닌 이상 뭐든 꼬이기 마련임을 명심하자. 어찌되었던 가슴팍에 새하얀 해골 마크를 보는 것만이라도 가슴 설레게 만드는 퍼니셔. 하지만 정작 가슴팍에 해골 나오는 장면은 단 2번 뿐이라는 데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찡하게 만드는 영화 퍼니셔. 이제는 늙어버린 중년 퍼니셔의 액기스 쪽쪽 빠진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후련함 보다는 무언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2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이 영화는, 앞으로 전개될 <어벤져스>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퍼니셔를 등장시킬 지에 대한 많은 궁금증과 걱정을 함께 안기고 있는 작품이다.


<진정한 퍼니셔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영화보다 만화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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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이드 (Hell Ride)

Movie 2016. 3. 18. 09:45

※ 본 리뷰는 필자가 2008년 9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헬라이드 (Hell Ride)



엽기 로드 로망 영화의 대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신 B급 영화가 나왔다. 웬만한 매니아 아니고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그가 이번에는 초저예산 초무감각 영화를 들고 바이크라는 싸나이들만의 주제로 매니아들의 심금을 울리고자 한다.


<요새 영화라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감각적 아날로그 포스터. 웬만한 등장인물들은 전부 포스터에 처박아두었다>



#1. 전형적인 양키 마인드와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심금을 울리는 서곡에 불과한 포스터를 보자. 제목만 봐서는 공포영화같고, 그림만 봐서는 애니메이션같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는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데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래리 비샵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는 것이다. 


래리 비샵, 이 친구가 누구인가?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나름 헐리우드에서는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연기력도 나름 되시는지 가끔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직접!!! 주연을 맡았다. 그것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는 간지작살남으로. 


<간지작살 아저씨들의 향연. 가운데 리더가 바로 래리 비샵이다. 절대로 알 파치노와 혼동하지 말 것>



이 영화는 의외로 단순하다. 딱 3가지 테마로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오토바이, 복수, 그리고 낭자한 피. 킬빌에서 보여준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엽기잔혹복수극이 그대로 살아있고, 멕시코와 서부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색깔도 살아있다. 무대는 분명 미국이지만, 도저히 미국같다는 느낌은 없다. 그나마 온 몸을 나체로 등장하는 여럿 매력적인 여자들을 볼 때 비로소 아~ 미국이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2. 스토리 - 도무지 이해안되는 껀덕지로 서로 죽여대는 양아치 액션


어쨌든 뻔한 주제와 테마같은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오토바이족의 하나인 빅터파를 이끄는 두목 피스톨레로(래리 비샵)는 오래전부터 체로키 키섬(줄리아 존스)이라는 인디언 여자로부터 했던 약속 하나만을 굳게 맹세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쾌남아이다. 그러던 어느날 빅터파에 대항하는 식스식스식서스파는 빅터파의 무리를 하나 둘씩 제거하며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피스톨레로는 그의 오른팔 젠트(마이클 매드슨), 그리고 조직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믿음직한 부하 코만치(에릭 벌퍼)와 함께 빌리 윙스(비니 존스)가 이끄는 식스식스식서스에 제거당한 조직의 일원들을 위해 서서히 복수극을 준비한다. 


한편 피스톨레로는 과거에 식스식스식서스에 의해 무참히 불에 타 죽은 체로키 키섬으로부터 한 약속 "자기 아들을 위해 보물을 지켜달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는 의리의 사나이. 갈수록 빌리 윙스의 횡포에 빅터파는 와해되어 가고, 피스톨레로와 젠트, 코만치는 과거 빅터파의 우상이었던 에디 제로(데니스 호퍼)의 합류와 함께 소수 정예멤버로 식스식스식서스와 최후의 대결을 계획한다. 






<빅터파를 이끄는 피스톨레로와 젠트. 완전 동네 양아치 아저씨 수준이다>



#3. 이래뵈도 간지 나는 B급 영화 


스토리는 보면 볼수록 단순함의 극치를 달린다. 연출도 단순하고 유치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어찌보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따위 영화를 다 만들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 래리 비샵이 초저예산으로 만든 B급 영화임을 감안하면 나름 독특한 매력이 없지만도 않다. 우선 예산은 그야말로 오토바이 기름값으로만 들어갔을 정도이다. 살인을 하거나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B급 영화의 매력으로는 충분할 정도이다. 총알 값이 아까웠는지 총 몇 발만 쏴도 적들은 알아서 고이 죽어버린다. 특수효과가 형편없는 대신, 거기에 쓰일 예산을 전부 몸매 죽이는 여성들 캐스팅에 쏟아부었나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하나같이 눈부신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게다가 또한 엄청 섹시하고 야하기까지 하다. 가슴 노출은 기본에, 중요한 부분까지 슬쩍 보여주는 쎈쓰라니. B급 영화니까 이 정도는 보여줄 수 있다는 건가?? 아무튼 오토바이로 대변되는 남자들의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이 이 영화에서는 격투와 여자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그리고, B급 영화인 만큼 다양한 시도가 또 빠질 수 없을텐데 피스톨레로가 환각상태에 빠져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의 연출은 그야말로 독특하고 절묘하다. 사람이 환각상태에 빠졌을 때 과연 어떤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사실 체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런데 래리 비샵은 그러한 느낌을 절실하게 느껴보았는 지 그것을 영상에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알록달록한 형광색으로 비추는 세상,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시츄에이션. 마치 한 편의 비주얼 아트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그 장면은 필자가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독특하고 가치있는 장면이라고 뽑고 싶다.


<B급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무차별적인 피의 잔치 되겠다. 장면은 빌리 윙스의 최후>



#4. 아직까지는 불편한 양키식 마인드


나름 독특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도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상황에 대한 설명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약간 킬빌 식의 액자식 구성을 따온 것 같으나, 쿠엔틴이 아닌 래리였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엄청난 실패. 도무지 용납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시츄에이션의 연속이기에 쟤는 뭐고 쟤는 또 왜저래? 하는 의문밖에 안생긴다. 피스톨레로가 어떻게 체로키 키섬과 연결되었는지도 설명이 안되고, 코만치가 뜬금없이 체로키 키섬의 아들이었다는 것도 어거지 수준이다.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도 모두가 찾고자 했던 보물, 대체 그 보물이 무엇일까? 영화는 끝내 보물상자 속의 내용물은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낸다. 차라리 보물의 내용이라도 보여줬더라면 왜 그렇게 지키려 했는지, 왜 그렇게 다들 찾으려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름 설득력있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아이디어의 부재인지, 연출력의 부재인지 아니면 얼토당토않은 호기심을 관객에게 부여하여 나름 카타르시스를 연출하려고 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까지 미흡한 연출을 보여준 것은이 영화 최대의 단점이면서 동시에 래리 비샵에 대한 큰 실망감으로 연결된다. 아무리 래리 비샵이 키작은 아저씨였더라도 그건 용서가 되었지만, 연출력 부분에서는 빵점..... 


<악당 전문 배우로 급 부상한 빌리 윙스 역의 비니 존스>



#5. 그저 래리 비샵의 소꿉 장난으로 보이는 영화


이 영화를 각본, 감독, 주연한 래리 비샵은 "이 영화는 최고의 오토바이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했는데, 아무래도 그 것은 자화자찬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정말 순수한 반어법이었을까? 어쨌든 오토바이만큼은 실컷 나오는 영화 헬라이드. 필자는 오토바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선그라스 끼고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고 긴 머리 휘날리며 타는 오토바이의 낭만은 한번쯤 느껴봤으면 하는 바이다. 


그나저나, 이 영화로 인해 동네 오토바이 양아치들이 더 설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히려 오토바이 리스나 판매가 증가한다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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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8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삼국지 - 용의 부활 (三國志 - 見龍卸甲)



중국 고전 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삼국지일 것이다. 위, 촉, 오 삼국이 정립하는 난세의 전장 속에서 이름을 떨친 수많은 영웅 호걸들. 약 50년에 걸친 짧은 역사의 한 순간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교훈과 영웅담이 존재한다. 그러한 삼국지의 거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영화화하려는 작품이 바로 유덕화의 <삼국지-용의 부활> 되겠다.


<국내판 포스터와 해외판 포스터. 분위기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작품은 유명 배우를 등장시켜 삼국지를 멋드러지게 영화화했다는 점에 의의가 크겠지만, 아쉽게도 삼국지의 장대한 이야기를 기대한 팬들에게는 실망스런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부제 '용의 부활'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용, 즉 조자룡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의 원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를 비롯하여 제갈량, 조조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인물들이 이 작품에서는 엑스트라급에 가까울 뿐이다. 그나마 조자룡이라는 무패장군의 영웅담을 중심으로 인간사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꽃피우려 했던 어찌보면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철학영화라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액션장면은 많지 않고, 요상한 편집기법을 이용해 재빠르게 넘어가는 특성이 다분하다. 


<영화의 두 주인공, 조운과 조영. 같은 조씨끼리 싸운다. 물론 한자는 다르다>



#1. 스토리 - 조자룡의 TV 인생극장


스토리는 조운이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 전의 모습부터 출발한다. 유비의 의용군 모집 포스터를 보고 "저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치며 의용군에 자원입대한 조운(유덕화). 당시 입영담당관인 나평안(홍금보)은 조운이 상산 출신임을 알고, 자신과 동향인 조운과 가까워지게 된다. 이후 유비(악화)가 난세의 통일을 위해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조운도 일개 군사로 싸워나가게 된다. 


유비가 천하의 기재 제갈량(복존흔)을 얻은 직후 일어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 박망파 전투에서 조운과 나평안은 이미 쫄따구로 박망파 사수를 맡고 있었다. 하후돈이 이끄는 초강력 기갑부대가 다가오는 가운데, 속수무책에 빠진 유비군. 이 때 한가롭게 밥이나 퍼먹고 있던 후줄그레한 선비가 유비군에게 쫄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에 유비군은 그 선비를 겁대가리가 가출한 놈이라고 놀리는 가운데, "조조군은 유비군 중한 명을 두려워하므로,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나이트 웨이터라도 되는 마냥 "제갈량"이라 적힌 명함을 보이며 자신을 소개한다. 조운과 나평안이 중심이 된 상산출신 병사들이 적의 한가운데를 돌파하는 별동대가 되어 한 밤중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적의 진지를 습격하고, 이에 우왕자왕하는 조조군에 좌, 우에서 유비군이 가세하여 개떡을 만들게 된다. 


박망파 전투에서의 승리를 뒤로 하고, 뚜껑열린 조조(유송인)가 직접 진두하여 진격하는 대군세에 밀려 난민들을 이끌고 느릿느릿 도망가는 유비군. 박망파 전투에서의 공로를 치하받아 유비군의 핵심 보디가드가 된 상산출신 별동대원은, 조운의 출세를 시기하는 나평안의 띨뻥한 짓거리때문에 유비의 두 와이프를 잃고 만다. 와이프의 생사보다도 민생이 더 중요한 유비에게 조운이 달려가 와이프를 구해올 것을 자청 하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냐는 둥 싱겁게 쳐다본 관우(적룡)와 장비(진지휘)가 조운보고 꺼지라고 하였으나, 조운은 이들과의 무력 대결로 실력을 인정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유비의 전갑을 하사받는다. 


관우와 장비의 도움으로 전장까지 달려나간 조운은, 이후 홀홀단신하며 유비의 두 와이프와 아두를 찾고, 그 전쟁통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아두만을 전갑으로 질끈 동여맨 채 조조군과 맞닥뜨리게 된다. 조운의 전설이 되어버린 장판파 전투에서, 조운은 수많은 조조군을 무찌르며 오히려 조조앞으로 돌진 조조의 보물 중 하나인 청홍검을 빼앗으며 그를 조롱하고, 또다시 뚜껑열린 조조 앞에서 껄껄껄 웃어대며 탈출을 하는 조운. 자신의 할아버지가 적의 일개 장수에게 테러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조조의 손녀 조영은 그때부터 복수심을 불태우게 되었다. 


이후 전장에서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으며 수많은 공로를 쌓은 조운은 관우, 장비, 황충, 마초와 함께 5호대장군에 임명되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가운데, 선제 유비가 죽고 5호대장군도 모두 전사한 가운데, 제갈량의 북벌 출사와 함께 최후의 전투를 치르러 나간다. 아버지의 복수심에 불타는 열혈청년 관흥(오건호)과 장포(정해봉), 그리고 자신의 심복인 등지(안지걸)를 거느리고 진정한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하여 조조군을 향해 진군하는 조운.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두 패로 갈라진 조운군은, 등지와 함께 봉명산으로 향한다. 


봉명산은 조운이 의용군 자원입대를 하였던 추억의 장소. 그 곳에서 일생일대 최후의 적,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어버린 조조의 손녀 조영(매기 큐)과 그녀의 부하인 한덕(우영광) 패밀리들과 만난다. 할아버지를 대신해 조운을 사로잡겠다는 조영의 끈질긴 복수심과, 자신이 북벌의 선봉이 아니고 미끼가 되었음을 알게 된 조운의 비장함 속에서 조운은 다른 쪽으로 돌아간 아군이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봉명산을 사수한다. 






<백발이 성성한 조운. 유일하게 생존한 5호대장군으로서 북벌에 참가한다>



#2. 역사의 왜곡 - 조자룡 띄어주기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실제 역사와 상당부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조운이 유비군에 가담하게 된 경로가 다르다. 역사에서는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서 카우보이 노릇을 하다가, 공손찬이 원소군에 패한 후 자신이 평소 흠모하던 유비에게 달려가 유비의 장수가 될 것을 자청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애초부터 일개 병사로 자원입대하여 성실히 군복무를 행하다가 박망파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두 번째로, 장판파 전투에서의 활약상이 조금 다르다. 청홍검을 빼앗는 부분이 역사에서는 하후은을 죽이면서 얻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조조가 직접 들고 조운에게 대들다가 조운이 되려 빼앗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역사에서는 장판파때 이미 조운이 유비에게 중용되고 있었으나, 영화에서는 무명의 병사였다가 자청하여 발탁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세 번째로, 봉명산 전투의 내용이 다르다. 봉명산 전투는 제갈량의 북벌 당시 위군과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전투인데, 사실 이 전투에서 조영이라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조영은 영화에서 만들어낸 가상인물로, 실제로는 조운군이 한덕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이 전투에서 물론 제갈량과 조운의 파워에 촉군이 승승장구하게 되지만, 조운은 실제로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진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북벌군을 편성할 당시 제갈공명은 조자룡의 나이를 염두에 두어 그에게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하지만 촉의 오호장군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던 조운은 출전을 요청하고 공명도 그의 뜻을 받아들여 등지를 부장에 두고 5천 군사를 주어 그에게 선봉의 임무를 맡긴다. 이에 위의 대장을 맡은 하후무는 자신의 네 아들과 함께 한덕을 선봉으로 삼아 조운에 맞서게 했다. 하지만 결국 영화에서와 같이 한덕의 네 아들은 조운에 의해 제압당했는데 영화와 달리 둘째인 한요는 사로잡았고, 나머지 세 아들인 한영, 한경, 한기는 모두 조운에 의해 죽음을 면치 못했다. 또한 한덕 역시 하후무의 질책에 부끄럼을 참지 못하고 조운과 교합을 벌이지만 결국 그도 창에 찔려 죽었다. 


한편, 그 뒤로 봉명산에 진을 친 하후무의 참군 정욱의 아들 정무가 세운 계책에 빠진 조운은 위군의 매복군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위기에 처했지만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로부터 구출되었고, 그 뒤로 전투에 앞장서며 혁혁한 공을 세우다 후에 제갈량의 명을 어긴 마속으로 인해 중요한 고지였던 가정(街亭)을 위의 사마의에게 뺏긴 후, 결국 제갈량은 한중으로 귀환했다. 이때 조운은 마지막까지 후방을 사수했으며 후에 제갈량이 직접 이 공을 치하했다. 또한 그 후, 명을 어긴 마속을 문책한 제갈량이 결국 그를 처형하라 명한 뒤 통곡했으며 이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그 후, 한중에서 북벌을 위해 제갈량이 군대를 조직하는 중에 조운은 천수를 다했고, 그가 죽던 날 제갈량의 집 앞뜰 소나무 가지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 후로 북벌을 거듭하는 제갈량과 그에 맞서는 사마의의 전투가 거듭된다. 한편, 1차 북벌 당시 제갈량은 마속을 잃은 대신 강유를 얻었으며 강유는 훗날 제갈량의 뒤를 잇는다. 


추가적으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운과 함께 하는 나평안이라는 인물도 실제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며, 영화에서 조운과 함께 최후를 마치는 등지의 경우에도 실제로는 무장이라기 보다는 문관에 가까운 인물로, 제갈량이 중용하였다.


<봉명산에서 최후의 전투를 기다리는 조운과 나평안, 그리고 등지>



영화에서 장수들이 입고 나오는 투구와 전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것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투구는 1차 대전 영국군의 투구처럼 접시를 뒤집어 엎은 것처럼 생겼는데, 원래 삽화나 이미지에서 나오는 삼국 시대의 투구는 그리스/로마 타입이 아니었던가? 모양이 저렇다보니, 사자투구로 유명한 마초의 투구도 결국 사자대가리는 보이지도 않고 접시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7월에 개봉될 <삼국지-적벽대전>을 보면 확인될 수 있으리라.


<전투 중 한가롭게 비파나 뚜들기고 있는 조영>



#3.삼국지를 모른다는 매기 큐는 왜 출연한거지?


조조의 손녀 조영 역할을 한 매기 큐는, 사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 삼국지를 한번도 못 읽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만들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가상의 인물이었던 만큼 조영 역은 아무렇게나 연기해도 되었으리라. 그렇기에 조영의 모습은 삼국지에서 가뜩이나 등장안하는 여성장수에 대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겠다. 모습이 귀부인타입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닌 조영. 누구의 자식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조조의 손녀인 이상 지력도 뛰어나고, 무력도 조운과 막상막하일 정도로 뛰어난 여장수이다. 영화에서의 직위는 도독으로, 오군의 마스코트였던 주유와 대등한 직위를 가진 것을 보면, 그만큼 걸출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듯 하다. 


영화에서 조영과 조운이 일기토를 벌이는데, 의외로 이 장면은 연출이 뛰어나다. 언월도를 든 매기큐의 연기가 일품인데, 카리스마 짱! 포스 짱! 그야말로 멋지다. 조운도 창을 들고 폼잡는 모습 또한 일품인지라, 일기토 장면만큼은 이 영화의 베스트 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처음에는 냉철하고 침착하며 명석한 모습의 조영도, 일기토에서의 패배와, 청홍검을 돌려주는 조운의 조롱에 분개하여 결국 자신의 부하장수 한덕까지 매몰차게 죽이는 가미가제 전법을 보이는 조영. 역시 조조의 손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조운은 뛰어난 창술로 유명하지만, 정작 자신이 애용한 창의 이름은 없다>



#4. 들러리가 된 삼국지의 주인공들


항상 삼국지를 생각할 때 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관우, 장비, 유비, 제갈량 등의 인물이 실제로는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사로 만들어지는 영화에서는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도 큰 관심사인데, 이 작품은 그런 기대에서 조금은 벗어난 면이 없지 않다. 


잠깐 등장하는 관우와 장비, 유비는 그야말로 안습. 유비는 대사는 별로 없지만 그나마 근엄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장비는 털이 숭숭하지는 않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역시 연인장비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관우인데, 관우의 키가 9척에 가깝고 얼굴이 붉으며, 수염이 허리까지 닿았다고 하나 영화에서는 술취한 노숙자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관우 역을 맡은 배우가 초창기 무술영화에서 이름 날렸다가 <영웅본색>에서 대박을 친 그 유명한 적룡인데, 이제는 그도 늙어서 그다지 뽀대가 나질 않는다. 관우가 이정도인데, 여포가 등장하였다면 얼마나 더 안습이었을까. 


제갈량은 첫 등장장면에서 특유의 여유와 입담을 보여주어 나름 기대에 찼는데, 문제는 북벌 출사를 거행할 때 보여준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다는 것이다. 조운에게 북벌에서 나서지 말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대사부터 야심차게 준비한 계책이 관흥과 장포군의 전멸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부분에서는 제갈량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도 없네~라는 탄식을 만들어버릴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필자로서는 분개하지 아니할 수 없는 설정이지만, 어쨌거나 영화 자체가 처음부터 배배 꼬인 허구적 설정이다 보니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촉의 5호대장군으로 임명받는 조운. 흰색 전포가 압권이다>



#5. 조운에 대한 고찰


실제로 조운의 능력은 어땠을까? 삼국지를 게임화한 코에이의 대표작 삼국지 시리즈를 보면 초창기 조운의 능력치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지력 : 83, 무력 : 99, 매력 : 88 


그야말로 3박자가 고루 갖춰진 엘리트 장수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무력의 경우도 관우, 장비와 동급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조운에게 있어 출중한 무력은 가장 큰 장점이고, 그에 못지않게 높은 학문과 사람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조운을 가장 완벽한 장수로 묘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국지 시리즈가 후대로 오면서 조운의 능력에 대해 재평가하는 부분이 많았고, 조운이 분명 장판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다른 5호대장군들과 달리 쟁쟁한 적장수와 일기토를 벌인 일이 많지 않기에 무력에 대한 능력은 다소 평가절하되어가는 듯하다. 


어찌되었건, 게임에서의 수치는 그야말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100% 확실한 자료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게임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지만, 5호대장군 중 가장 오래 생존하였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으며, 가장 멀쩡하게 최후를 마쳤다는 점에서도 조운은 그야말로 촉군의 장수 중 가장 모범스런 장수의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천하의 제갈량도 조운이 숨을 거두었을 때, "이제 나의 오른팔이 떨어졌으니 그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라고 탄식을 했겠는가. 


<의외로 강렬한 카리스마와 비장한 모습으로 똘똘 뭉친 등지. 이정도 깡다구가 있었기에 손권 앞에서도 꿀리지 않았던가>



#6. 조연 등지의 주연급 활약


영화 후반부에서 상당한 비중을 보여주는 등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자면, 실제 역사에서 등지가 처음 부각되는 것은 제갈량이 오와 협정을 맺기 위한 사절로 간택하면서부터이다. 선제 유비가 죽은 후 위의 사마의는 무려 5개 진군로를 통해 촉을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위와 손잡은 오의 군대를 막기 위해 제갈량은 오와 화촉을 맺기를 결정하나, 당시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뛰어난 사절을 찾지 못해 고뇌했다고 한다. 이 때 손권의 마음을 바꾸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다는 등지의 달변에, 제갈량은 "등지라면 능히 해낼 것이다"는 말과 함께 등지를 파견하여 결국 오와의 협정을 채결하게 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등지는 문관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문관이라고 해서 무력이 약하거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실제 북벌때도 제갈량은 등지를 조운의 부장으로 삼아 보내기도 한다. 그만큼 등지는 촉의 후반부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장수이며, 제갈량에게 인정받은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영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한덕>



#7. 캐릭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실험적 작품


삼국지를 영화화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 그 소재 자체는 방대하고 웅장함에도 불구, 잘못된 고증과 스크린화는 오히려 졸작으로 치부받을 수 있다. <삼국지-용의부활>은 그런 점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미친 졸작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조운이라는 걸출한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인생의 진리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관철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는 나름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삼국지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로서는 빵점이지만, 깊은 주제의식을 가진 철학영화로서는 50점 정도 되겠다. 진정한 액션대하서사극으로서의 삼국지를 원한다면 곧 개봉할 <삼국지-적벽대전>을 기대해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상산 조자룡의 진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사진으로, 그의 위대함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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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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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8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엑스파일 : 나는 믿고 싶다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1. X-파일의 기원과 테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대뇌피질에 가공할만한 지식이 축적되어 갈 무렵에 세상 모든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시대적 통찰을 깨우쳐 준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미드 계의 살아있는 전설, 바로 <X-파일>이다. 별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X-파일>은 그 어린 나이에 그토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외계인, 초능력, 심령, 초자연 현상 등의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요소들을 과학적인 수사와 절묘히 조화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멀더와 스컬리로 대변되는 사건 해결계의 무적 커플의 모습은 너무나도 극명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사건을 풀어나가고 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계속해서 작품을 보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98년 <X-파일>이 처음으로 영화화되는데, 오랜 시즌을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멀더를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혀 오던 바로 그 외계인의 존재를, 그동안 존재를 부인해 오던 스컬리를 비롯한 X-파일 팬들에게 증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예 스컬리를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나 나올 법한 대형 UFO에 납치하는 수준까지 다다르는, 그야말로 더이상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지 말라는 항명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계기로 <X-파일>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새로운 시즌으로 접어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이야기는 또 베베 꼬이고 왜곡되어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고, 기어이 멀더와 스컬리가 쌩쇼를 하다가 FBI에서 짤리고 은퇴하는 사태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던 현재 그 새 10년이나 늙어버린 멀더와 스컬리가 다시 괴상한 주제를 가지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외계인일까? 


<영화 포스터. 예전만큼 신비롭지는 않다>



#2. 스토리 - 나는 이 영화의 허무한 결말을 결코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 작품의 부제는 "나는 믿고 싶다"이다. 대체 뭘 믿고 싶다는 거지? 멀더는 늘 외계인이 자신의 여동생을 납치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언뜻 유추해 보면 혹시 이러한 사실과 연계되어 여전히 멀더의 히스테리가 판을 치는 것이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전혀 엉뚱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무엇을 믿고 싶어했고, 누가 믿고 싶어했는 지를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멀더(데이빗 듀커브니)와 스컬리(질리언 앤더슨)가 은퇴한 이후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FBI. 하지만 어느 날 미모의 젊은 여성 요원이 원인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FBI는 행방불명된 요원을 찾는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이는 황당하게도 자신이 환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늙은 천주교 신부 조 크리스먼(빌리 코널리). 어쨌든 묘하게도 시체나 사건 발생 장소를 때려맞추는 조 신부의 능력에 FBI는 어쩔 수 없이 그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문제는 과연 이 늙은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 그래서 FBI가 초자연 현상의 매니아 멀더의 협조를 요청하기로 하였다. 


FBI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멀더의 환심을 사기 위해 FBI는 현재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스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하게 된다. 가뜩이나 불치병에 걸린 남자아이를 살리는 데 스트레스 받고 있는 스컬리에게 FBI의 요청은 그야말로 왕 짜증. 그래도 옛 정을 생각해서 멀더를 설득하여 다시 FBI와 한 팀이 되어 사건에 협조한다. 


조 신부의 신통한 재주에 관심을 가진 멀더는 계속해서 조 신부의 환상을 통해 사건에 다가가게 되고, 갈수록 그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진짜라고 믿는 스컬리의 완고한 고집은 여전하여 멀더와 조 신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실적에만 급급한 FBI도 초능력으로 사건 해결했다고 하면 자기네들 위신이 말이 아닌지라 조 신부를 달갑게 보지는 않는다. 그러던 와중 또 다른 여인이 납치되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조 신부가 과거에 성 범죄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멀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조 신부를 사기꾼으로 몰아 세운다. 


그러던 중 얼음덩어리에서 찾아 낸 시체 쪼가리들을 통해 이것이 장기 밀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찾아 용의자를 좁혀 나가던 중, 결정적으로 걸려 든 범인을 쫒아 멀더는 추격전을 벌인다. 하지만 유유히 사라진 범인. 그리고 불치병으로 쓰러진 조 신부. 병상에서도 환상을 보았다는 조 신부였지만, FBI가 수집한 자료와 다르다는 이유로 멀더도 결국 조 신부를 믿지 않게 된다. 하지만, 쓰러지기 직전 스컬리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묘한 말을 남긴 조 신부의 말에 대해 스컬리는 그것이 자신에게 걸린 남자아이 환자의 수술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조 신부를 다시 보게 된다. 






<늙어서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멀더와 스컬리. 그런데 어느 덧 연인으로 발전했다!!>



#3. TV판과 영화판의 차이점 - 역시 TV가 낫다?


영화는 큰 기대와 달리 그저 TV 시리즈의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법한 이야기를 러닝 타임만 조금 늘려 할애한 수준이다. 외계인과의 좀 더 끈적한 관계를 원했다면 급 실망. 그래도 10년 동안 침묵을 지켜 온 멀더와 스컬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나름 가치는 있을 듯 하다. 


이 영화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우선 멀더와 스컬리가 그토록 오래 일하면서도 연인사이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영화에서는 버젓이 연인 사이로 나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둘의 대화로 유추해보면 둘 사이에 자식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게 된 것 같은데, TV 시리즈의 후반부를 보지 못한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신선한 컨셉. 이제 둘의 키스는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 거리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컬리가 동성애자협회의 넘버 2 정도 된다는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이와 연계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범인의 범행 동기가 너무 괴상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야말로 엽기적인 수술을 행한 것인데,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살리고 싶었던 그 사랑의 대상... 그것이 바로 OO라니. 범인은 동성애자였고, 동성애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한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아마도 스컬리는 이런 스토리를 은근 반겼을런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능력없고 융통성 제로인 FBI>



10년이 지난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TV 시리즈와 동일한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멀더는 여전히 초자연 현상에 목숨걸며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복수심에 자글자글 끓고 있고, 스컬리는 여전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없다며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철저한 객관주의자. 거기에 여전히 무능력하고 개념없는 FBI 요원들의 행태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발전 없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TV시리즈에서 주름잡았던 몇몇 미스테리한 인물들, 예를 들면 꼴초아저씨 라던지 이런 캐릭터들은 다들 늙어 죽었는지 아니면 외계인이 데리고 갔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나온다. 그래도 늘 뒤치닥거리하던 대머리 아저씨가 간만에 등장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감탄과 더불어 동정심이 물씬 부풀어 오른다고나 할까. 


<환상을 보는 조 신부. 이해가 쉽게 안 되는 캐릭터들간의 고리로 묶여 있다>



#4. 이제 직장을 잃게될 것 같은 멀더와 스컬리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소재의 고갈이라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계인이 가장 적절했을 터이나, 얼마 전 <인디애나 존스 4>에서 이미 차용해 버린 탓에 소재의 신선함도 무척 떨어졌을 법한 상황. 결국 초능력과 엽기적인 실험을 아이템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약간 부족하다 싶었는지 범인과 범인의 애인, 그리고 조 신부의 괴상한 연결고리를 추가하였다. 조 신부가 젊었을 적 성범죄자로 명성을 떨칠 때 아동 성범죄의 피해자 중 한명이 바로 범인이 그토록 살리려는 애인이었던 것. 조 신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신의 뜻에 따라 그 피해자와 연결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췌 그 연결이 어떤 의미로 되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피해자의 용서를 빈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가 못 살게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조 신부. 우습게도 조 신부는 대가리만 남은 피해자가 숨을 거둘 때와 동시에 그 역시 숨을 거둔다는 설정이다. 


결국 조 신부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신은 있다"라는 엉뚱한 결론. 그렇다면 결국 외계인은 있다고 믿는 멀더의 말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말일까? 


멀더의 방 한켠에는 커다란 외계인 사진과 함께 "Want to believe"라고 쓰여 있는데, 여전히 멀더의 고집이 스컬리의 냉철한 논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영화의 부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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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9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 (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오래된 교훈이 있다. 맨 처음 당한 놈의 입장에서는 결국 자신이 복수를 해도 다시 복수를 당한다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결국 당하면 참을 수 밖에 없는가라는 묘한 논리를 설파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나 우리의 착하고 용감한 주인공이 어쩌다 악당에게 당해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 나서 이에 복수하기 위해 들고 일어서 악당들을 쳐죽인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유쾌통쾌상쾌 3박자를 고루 갖춘 한여름의 수박화채와도 같은 짭짤한 재미 되시겠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 영화에서는 일단 착한 놈의 복수는 무조건 당연한 것이고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깬 아주 독특하고 기괴한 작품이 존재했었더랬다. 장르는 호러, 연출은 하드고어 엽기 잔혹, 스토리는 피칠갑이 난무하는 비극적인 결말, 도저히 뮤지컬로는 구현조차 어려울 것만 같은 독특한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왔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고 드디어 비싼 돈 주고 브로드웨이로 비행기 타고 가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작품이 극장가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엽기로 똘똘 뭉친 작품 <스위니 토드>가 그 것이다.


<팀 버튼이 크리스마스에 유독 집착하는듯한 느낌이 드는 문제적 포스터>



#1. 스토리 - 어느 이발사의 비극적인 사랑과 복수, 그리고 사필귀정


일단, 시작은 무조건 스토리부터 걸고 넘어지는 것이다. 안개가 자욱이 낀 어두운 바다 위 한 척의 배가 런던을 향하고 있다. 음흉한 날씨와는 달리 런던 가서 신난다고 노래를 불러제끼는 한 청년이 있었으니, 넓은 이마빡을 자랑하는 말라깽이 사나이 안소니(제이미 캠벨 보웬)이다. 하지만 음흉한 날씨에 딱 맞는 또 다른 사나이가 등장하니, 15년만에 런던을 오게 되었다는 스위니 토드(죠니 뎁)라는 똥씹은 표정의 사나이 되시겠다. 


런던에 도착한 스위니 토드는 갑자기 안소니에게 옛 이발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내를 노리던 나쁜 놈에 의해 남자는 어디론가 끌려가버렸다는 이야기. 원래 스위니 토드의 옛 이야기이지만 안소니는 누구 얘기일까 하고 궁금해 한다. 그 와중에 스위니 토드는 작별의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스위니 토드가 플릿 거리를 거닐다가 예전 자신의 이발소가 있었던 집 1층의 빵가게를 들어가게 된다. 겉 모습부터 음침한 그 빵가게는 일대에서 아주 유명한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의 빵가게였던 것. 무엇으로 유명한고 하니, 바로 위생, 청결, 깔끔, 신선과 전쟁을 선포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문제아적 점포였던 것이다. 결국 바퀴벌레 양념된 빵을 집어드시고 피자판 만들기 직전으로 급행하시는 스위니 토드. 결국 러빗 부인의 배려로 제대로 된 술로 속을 비운 스위니 토드는 러빗 부인에게 텅빈 2층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종일관 인상만 찌푸리고 사는 스위니 토드와 이마반을 자랑하는 안소니>



러빗 부인은 2층이 비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다가 벤자민 바커라 불리었던 비운의 이발사가 바로 스위니 토드임을 알게 된다. 스위니 토드는 러빗 부인에게 자신의 아내인 루시(로라 미쉘 켈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묻자, 러빗 부인은 그녀가 비소가 든 독을 마시고 죽었다고 얘기해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하나뿐이었던 딸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주범 터핀 판사(알란 릭맨)에 의해 입양되었다는 것. 이에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희망이 사라져버린 스위니 토드는 2층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은빛 면도칼을 치켜세우며 그야말로 복수의 칼을 간다. 


한편 홀로 런던거리에서 똥폼 잡고 간지좀 내고 있던 안소니는 우연히 건물 안에서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된다. 둘이 제대로 눈이 맞아버린 청춘남녀.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던 여인은 이내 모습을 감추고, 안소니는 지나가던 거리여인에게 미모의 여인에 대해 물어본다. 터핀 판사의 양녀 조안나(제인 와이즈너)라고 알려준 거지여인은 절대로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사라지지만, 개념없이 계속 찝적대다가 터핀 판사에게 딱 걸리고 만다. 결국 죽도록 쳐맞고 쫓겨난 안소니는 계속 조안나를 훔친다는 범죄적 가사를 읊조리며 자리를 떠난다. 


러빗 부인과 함께 거리로 나온 스위니 토드는, 광장에서 우연히 터핀 판사의 똘마니인 비들(티모시 스펄)을 보게 된다. 당장이라도 가서 때려죽이고 싶지만 이를 말리는 러빗. 마침 광장에서는 북치고 장구치며 요란스럽게 짝퉁 약을 파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명 피렐리의 기적의 약이라는 발모제였는데, 짝퉁 티가 확 나다보니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은 바로 때려치우라고 한다. 이 때 이에 발끈하고 등장하는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피렐리의 기적의 약을 직접 제조하고 판매하는 콧수염 사나이 아돌프 피렐리(사차 아론 코헨)이다. 나름 VIP의 면상만 상대했다는 피렐리에게 급제안을 하는 스위니 토드. 누가 더 깔끔하게 이발을 하는지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대충 이 모습만 봐도 "앗! 저 배우!!!"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겠다. 대체 댁은 뉘기??>



드디어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피렐리는 온갖 오도방정을 다 떨면서 특유의 주둥아리를 나불대며 이발을 하지만, 정말로 5초도 안 걸리고 끝나버린 스위니 토드에게 제대로 카운터어택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내깃돈도 잃고 개망신만 당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졸지에 이발사로서의 능력을 재평가받게 된 스위니 토드. 갑자기 사람들이 이발소가 어디있냐고 물어보고, 비들도 그 능력에 탄복해 조만간 찾아간다고 얘기한다. 이게 왠 굴러들어온 떡! 이제 신장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스위니 토드. 그때 안소니가 찾아와서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기가 조안나라는 가엾은 여자를 데리고 도망을 가려고 하는데, 마차가 올 때까지 잠깐만 이발소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부탁을 받아들인 스위니 토드. 안소니는 좋아라 하고 달려나가고, 이내 첫 손님이 찾아온다. 


첫 손님은 다름아닌 짝퉁 물약의 제조범 피렐리. 친히 쪼수 토비어스(에드 샌더스)까지 데리고 왕림하시어 스위니 토드에게 은근슬쩍 협박을 가한다. 어린 토비어스가 러빗 부인에게 이끌려 맛 드럽게 없는 빵조가리로 습관성복부허탈감을 해결하고 있는 동안, 2층에서는 피렐리와 스위니 토드의 신경전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 피렐리가 스위니 토드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 결국 스위니 토드는 더 이상의 위험을 막기 위해 복수의 뜻을 담았던 은빛 면도날을 피렐리의 목에 살포시 테스트해본다. 전격 피렐리 사망. 이 사실을 모르는 토비어스는 엄마처럼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러빗 부인에게 서서히 감화되어 간다.


<맨 얼굴 자체가 가장 호러틱한 인물인 조안나>



한편 법정에서 닥치고 사형만 외치는 개념없는 악질 판사 터핀이 오늘도 어김없이 개념머리 없는 판정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비들의 제안으로 신정개업한 이발소에 들러 이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뜬금없이 마주치게 된 스위니 토드와 터핀. 스위니 토드는 이 아닌 밤 중의 홍두깨 선생님스러운 시츄에이션에 므흣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은빛 면도날로 터핀 판사의 목덜미의 털을 베어 나가기 시작한다. 


드디어 하이라이트의 순간!!! 하지만, 깜놀 들이닥친 안소니로 인해 복수가 실패하고, 안소니와 스위니 토드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터핀 판사는 화를 내며 그대로 돌아가버린다. 다 된 밥에 재뿌린 안소니만 또 죽어라 욕 얻어먹고 쫓겨나게 되고, 열받은 스위니 토드는 이제 본격적으로 복수의 화신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깃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한 스위니 토드. 이발 의자를 개조해서 사형집행대로 만들어 버리고,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모두 지옥행 급행열차를 태워보낸다. 하루 하루 죽어나가는 시체가 많을 수록 희한하게도 1층 빵가게에서는 구수하고 먹음직스러운 빵굽는 냄세가 거리를 가득 메워 사람들을 꼬이게 한다. 거기에 어느 새 러빗 부인의 쪼수로 직장을 옮긴 토비어스가 호객 행위를 해서 런던에서 가장 형편없던 빵 가게는 한 순간에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빵 가게로 탈바꿈하게 된다.


<신동엽의 러브러브 하우스를 보듯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되는 러빗 부인의 빵 가게>



잘 죽이고, 잘 팔리는 세상이 도래하게 된 두 주인공. 결국 러빗 부인은 스위니 토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까지 하자고 프로포즈한다. 사태가 점점 러브러브 모드로 흐를 즈음, 갑자기 안소니가 찾아와 터핀이 조안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에 정신병원 잠입 노하우를 전수하는 스위니 토드. 그리고 토비어스를 불러서 터핀에게 한번 보자는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토비어스 이 놈도 갑자기 러브러브 모드로 돌변하여 띠동갑을 제곱으로 해도 모자를 연상의 여인 러빗 부인에게 대뜸 사랑 고백을 해버리고 만다. 이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에 일단 러빗 부인이 입을 틀어막고자 토비어스를 며느리도 모른다는 빵 맛의 비밀인 지하 제조실로 데리고 간다.






<저렇게 얌전했던 개기름 좔좔 헤어가 어쩌다 폭탄맞은 것처럼 변했지?>



#2. 엽기적인 소재의 뮤지컬과 엽기적인 두뇌의 감독이 만난 엽기적인 호러무비


이 영화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나는 영화이다. 인트로부터 피가 주룩주룩 흘러서 온 천지를 피칠갑으로 만들더니, 엔딩 장면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면서 그 끔찍한 결말을 더욱 비장하게 만든다. 그만큼 이 영화가 추구하는 장르는 엄연히 호러이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피의 향연은 정말 역겨울 정도로 리얼하고 잔인하다. 사람 목을 그어버릴 때 사방으로 피가 튀고 찢겨진 살이 다 드러나 보이는 장면은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애들, 그리고 심장이 약한 분들은 절대 보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것은 이 영화가 다른 호러영화와 다른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이 뮤지컬이라는 것. 그런데 영화도 놀랍게도 뮤지컬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즉, 원작의 무대를 단지 스크린으로만 옮겼다고 보면 된다. 이미 뮤지컬을 베이스로 한 여러 명작들이 존재했더랬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카고, 헤어스프레이 등이 그것인데, 이 작품도 그에 결코 뒤지지 않은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과 춤, 연기 등등 그야말로 뮤지컬을 보는 그대로이다. 그러면서도 보다 더 웅장하고 완벽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무섭다는 느낌 보다는 뮤지컬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게다가 아무리 무섭더라도 일단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면 그게 어디 공포인가? 그야말로 활기 넘치는 무대가 되는 것 아닌가? 


또 다른 특징은 이 작품의 감독이 바로 팀 버튼이라는 것. 팀 버튼, 이 인간이 누구인가? <배트맨>, <비틀 쥬스>, <가위손>, <화성 침공>, <슬리피 할로우>,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 신부>, <크리스마스 악몽> 등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엽기 감독의 대명사 중 대명사 아니겠는가. 늘 정상과 비정상을 뒤집어버리고, 공포를 유머로, 유머를 공포로 바꾸어 버리는 천재적인 감각을 소유한 감독, 게다가 늘 고정관념을 깬 독특한 시각과 연출로 늘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감독이 아니던가. 그러다보니 스위니 토드도 팀 버튼식 해석에 충실하여 상당히 그로태스크하고 엽기적이면서도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기괴한만큼 유머스럽고 해학적이며 어딘가 모르게 동화 같은 느낌이 들어버리고 만다.


<저 암울하고도 환상적인 런던의 모습을 보라. 팀 버튼만이 가능한 연출이다>



이 2가지 요소가 필자에게는 무척 매력적임이 틀림없다. 일찌감치 필자의 리뷰를 접해온 분들이라면 필자가 필시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팀 버튼식 세계관을 좋아라한다. 늘 새롭고 이채로우며 기괴한 현실, 그리고 상상을 불허하는 유머와 호러의 절묘한 짬뽕.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세상이 눈 앞에 그려진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것도 유별나고 무섭기까지 한 공포의 동화라면? 팀 버튼 감독은 삶 자체가 기괴한 인물이다.



#3. 영화 역사상 가장 독특한 개성과 작품의식을 가지고 있는 팀 버튼 감독


얼마 전 방송매체를 통해서도 팀 버튼의 일대기를 광고 형식으로 언급하면서 성공하는 자의 자세를 그린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팀 버튼은 천재 감독들이 즐비한 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확고히 자리매김한 슈퍼 울트라 감독 중의 한 명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렸을 적부터 괴상한 사고방식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 당하고 집단 괴롭힘도 당하며 우울증까지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꿈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룬 지금의 팀 버튼의 모습은 정말 존경받을 경지가 아닌가 싶다. 


대체 팀 버튼이 어떻길래 이상하다는 것인가? 하고 궁금하시다면, 그의 몇몇 대표작들을 보면 하나같이 공통된 코드가 있음을 금새 알 수 있다. 동화 같은 스토리와 주인공들, 그리고 동화 같은 배경, 게다가 동화 같은 이색적인 연출까지. 마치 아직도 어릴 적 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어린 아이의 동심을 보는 듯하다. 


그의 이러한 컬러는 심지어 전혀 동화스럽지 않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배트맨>인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액션 히어로물임에도 불구하고, 팀 버튼 특유의 꽈배기 버릇이 제대로 녹아들어서 그야말로 컬트식 배트맨이 탄생하게 되었다. <화성침공>도 보면, 분명 원작 소설은 동해안 오징어처럼 생긴 외계잡것들이 무시무시한 침공을 감행한다는 얘기인데, 팀 버튼은 외계인을 너무도 징그러우면서도 귀엽고 익살맞게 그려서 배꼽을 잡아야 할 지 소름이 돋아야 할 지 알 수 없는 초특급 딜레마를 선사했더랬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도 분명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고 엽기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같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칼질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난 일단 망가져야 대박난단 말이다>



#4. 팀 버튼의 페르소나들로 꽉꽉 들어찬 편식쟁이를 위한 맞춤형 도시락 같은 영화


이토록 독특한 컬러의 팀 버튼인 만큼, 주연 배우를 고르는 데도 상당히 엄격한 기준이 있다. 그래서 팀 버튼에게는 그의 페르소나 격인 배우가 존재한다. 바로 이 시대 최고의 섹시가이 죠니 뎁. 


어쩌다 섹시가이가 팀 버튼의 페르소나까지? 재미있게도 죠니 뎁이 데뷔한 작품은 호러물인 <나이트메어>였는데, 이후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시건방적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청소년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바로 팀 버튼 감독의 괴상한 영화였는데, 손에는 티타늄 가위가 장착되고 헤어스타일은 수세미 꼬부라진 것 같으며, 눈썹 하나 없고 창백한 표정으로 닥치는 대로 가위질만 해대는 에드워드 역으로 나온 <가위손> 되겠다. 위노나 라이더의 예쁘장한 미모도 대단했지만, 에드워드로 분한 죠니 뎁의 독특한 연기와 캐릭터는 그를 일약 스타의 덤으로 올려놓게 되었다. 


그 이후 팀 버튼과 죠니 뎁은 배창호 & 안성기 듀엣의 찰떡궁합에 준하는 놀라운 궁합을 선보이게 된다. <슬리피 할로우>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또 다른 기괴한 캐릭터를 맡아 팀 버튼 특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실력을 보여주었고, 곧 개봉 예정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도 또 한번 개성넘치는 연기를 선 보일 예정이다. 


어쨌든 팀 버튼 때문에 죠니 뎁은 일단 괴상한 분장을 해야 대박 터뜨린다는 속설까지 생긴 터이니, 멀쩡한 얼굴로 등장하는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가 얼마나 대박 성공을 하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필자가 좋아하는 배우인 죠니 뎁에 대해서 몇 마디 더 재미있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자면, 죠니 뎁이 스위니 토드 역을 맡아서 당해 MTV 최고의 악당상을 뽑히기도 했었다는 사실. 아니, 주인공 역을 맡고 나서 악당상을 받아? 정말 우스운 결과가 아닌가? 또한 죠니 뎁은 <캐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 연기를 통해 MTV 최고의 코미디 연기상을 타기도 했다. 정말 기괴한 역할 만큼이나 엉뚱한 상을 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스위니 토드로 남우주연상을, 캐러비안 해적으로 남우연기상과 최고의 연기상을 타기도 했으니, 연기력도 단연 일품인 것이 바로 죠니 뎁의 매력인 것이다.


<연기와 노래, 춤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죠니 뎁. 필자는 그의 노래실력에 깜딱 놀랬다! (알고보니 죠니 뎁은 과거 밴드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었다는...)>



어찌보면 엉뚱해 보이면서도 섹시한 매력이 있는 죠니 뎁. 그런데 그를 영화계로 끌어들인 베프가 누군지 아는가? 바로 케서방, 니콜라스 케이지라고 한다. 억!!!! 전~~~혀 안 어울리는 두 사람이 베프라니. 엽기 아닌가? 그리고 죠니 뎁의 취미가 놀랍게도 담배피기이다. 말보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피운다는 대단한 말보로 매니아이다. 아마 폐 안쪽에 말보로라고 거멓게 그을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에겐 죠니 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화의 주인공에 남자만 있어서 될까? 팀 버튼의 여성 페르소나, 바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존재한다. 일단 팀 버튼의 작품에서 단골손님은 바로 이 인물이다. 그다지 예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영국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여성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 절정인 히로인다. 


이 여자도 사실 개성 하나는 왓따!이다. 죠니 뎁 못지 않게 분장했다 하면 엽기라는 찬사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배우이다. 그런데, 어째서 멀쩡한 여자가 팀 버튼 영화만 출연하면서 죄다 망가지는 건가? 그것은 바로 이 여자가 팀 버튼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으하하하~ 그럼 말 다했지.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인지 아무튼 최고의 스타커플인 것 같다. 만약 팀 버튼의 작품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부부싸움했으리라 짐작하면 될 듯.


<팀 버튼의 마누라인 헬레나 본햄 카터. <유령 신부>의 그 유령 신부 같지 않나?>



이 작품에는 죠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 말고도 또 한 명의 개성 폭발하는 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멋진 콧수염을 자랑하는 아돌프 피렐리 역으로 등장하는 사차 바론 코헨. 이 사람이 누구이던가? 바로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라는 기발한 소재의 영화에서 카자흐스탄의 뉴스 기자 보랏 역을 맡아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그 친구이다. 그는 이 영화로 인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LA비평가협회, 시카고 비평가협회, 토론토 영화제 등 영향력 있는 시상식에서 최우수 배우상을 한꺼번에 휩쓰는 영광을 안기도 한 놀라운 배우이다. 그만큼 센세이션 하나로 똘똘 뭉친 사내가 역시 개성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좀 굵직하다 싶으면 죄다 악당인 역할로 나오는 이 아저씨. 한스 그루버라는 이름이 너무도 친숙하다>



터핀 판사 역을 맡은 알란 릭맨도, 비록 노래는 남들에 비해 조금 딸리는 듯하지만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맘마미아>의 피어스 브루스넌보단 낫다). 그런데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크리스마스만 되면 지상파에서 사정없이 재탕해먹는 추억의 명작 영화 <다이 하드>에서, 악당 한스 그루버 역으로 나온 바로 그 배우이다. 재미있게도 다이 하드가 데뷔작이었다는 이 배우는 그 이후에 악당 이미지가 고정되어서 죄다 악당 역으로 나온다. 캐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로빈 후드>에서도 악당 노팅햄으로 등장하는 괴력을 보여주다가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또 악당. 그래도 필자는 악당 치고 매력있는 악당만 골라 맡은 괜찮은 배우라고 여겨진다. 



#5. 18세기 런던의 시대적 고증(심지어 우울함까지도)이 훌륭하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영국 런던인데, 재미있게도 18세기에 실제로 스위니 토드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아직 확실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있었다는 설과 거짓이라는 설이 팽팽하다고 한다. 어쨌든, 런던이 배경인 만큼 배우들도 런던의 암울한 느낌을 정말 잘 살리고 있다. 배경 연출도 대단하지만, 배우들의 표정도 그렇고, 의상도 훌륭하다. 나름 스위니 토드가 오토바이 타다가 하이바를 갓 벗은 듯한 23세기 지향적 헤어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외 등장인물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다 할 수 있겠다. 


필자가 놀랍다고 생각한 것은 죠니 뎁의 영국식 발음인데, 이 친구 원래 미국물 먹고 자랐으면서 어째서 영국 발음을 밥 먹듯이 잘 하나 신기하다. 보면 다른 작품에서도 영국식 발음을 구사하는데,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자랐나? 


엽기를 떠나고서라도 필자가 이 작품에서 크게 동감하는 부분은 바로 스위니 토드가 아주 비극적인 운명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말했듯이, 시작이 곧 끝이라는 결말. 즉, 피로 시작된 복수는 결국 자신마저 피로 물들이고 만다는 비극적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올라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마저 몰라보고 죽이는 현실 하며, 자신의 딸 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운명이란. 그렇기 때문에 스위니 토드의 마지막 결말은 비록 잔인한 결말이라 하더라도 나름 또 한편의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무언가 끝이 계속되는 여운으로 돌돌 감싸진 영화인 만큼, 정말 딱 필자의 취향인 것이다.


<궁합도 안보고 결혼...아니, 파트너를 맺었다는 팀 버튼과 죠니 뎁>



비록 잔인하고 엽기적이며 피칠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B급 냄새의 호러 영화이지만, 팀 버튼 특유의 놀라운 감각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뮤지컬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춤과 노래의 향연이 완벽을 보여줌으로써 21세기 최고의 뮤지컬영화로 추앙받고 있는 스위니 토드. 도무지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팀 버튼의 머리 속에서 무려 10년이나 가까이 구상에 대한 목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이 작품. 아직 작품을 보지 못한 독자라면 한번쯤 꼭 보기를 원한다. 물론 시청 전에 우황청심환은 하나씩 먹어두길. 참고로, 영상미만 감상하지 말고 음악도 꼭 주의깊게 감상해 보자. 음악 자체만으로도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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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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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패 2 : 풍운재기 (東方不敗 2 : 風雲再起)



<포스터만 보면 마치 둘 중 누가 원조 동방불패인지 배틀붙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필자가 이미 블로그를 통해 홍콩 무협액션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던 <동방불패>는,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훨씬 넘은 현재에도 다시 보더라도 여전히 액션의 퀄리티와 스토리의 우수함, 그리고 배우들의 명 연기가 눈부신 작품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임청하라는 대배우를 알게 해 준 작품이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이었더랬다. 하여 임청하의 팬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봐야만 하는 영화 <동방불패 2 : 풍운재기>에 대해서 리뷰를 해보겠다.



#1. 스토리 – 한 번 제대로 망가진 무림고수의 힘겨운 재기를 다룬 역경 스토리


본 작품의 스토리를 주저리 주저리 파헤치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전작인 <동방불패>의 스토리를 되새김질 해보자. 명나라 말기 중국은 일본과 조선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나라가 IMF 구제금융이 필요할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무림 고수들이 들고 일어나 반란을 꾀한다. 그 중 묘족을 중심으로 한 일월신교의 동방불패는 무림 절대 비급인 규화보전을 익혀 초절정 고수로 거듭나면서 쿠데타를 통한 대륙의 지배를 꿈꾼다. 한편 화산파의 제자였다가 악질 사부를 처단하고 그 사부의 딸래미와 함께 도망쳤던 또 한 명의 무림고수 영호충은, 썸타고 있던 일월신교의 교주의 딸인 임영영과 함께 즐겁게 음주가무나 즐기며 세상 편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가, 일월신교가 동방불패에 의해 쑥대밭이 되면서 다시 강호의 피바람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규화보전으로 인해 남성성을 잃고 점차 초절정 미모로 거듭나던 동방불패와 영호충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썸을 타게 되고, 결국 이 것은 무림의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이름 하에 피비린내 나는 사랑과 전쟁의 씨앗이 되고 만다. 흑목애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동방불패는 영호충의 독고구검에 의해 패하고,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절한 사랑의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벼랑 끝으로 떨어지며 세상과 이별한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고장풍. 나름 강직한 인물인 줄 알았으나 그 역시 미모에 넘어가는 평범한 남자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본 작의 스토리를 이어나가 보자. 흑목애에서 동방불패의 역사적 쿠데타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명나라 말기. 이미 임진왜란 원조로 많은 국고를 탕진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명나라 조정은 결국 외세의 힘을 빌어 국력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그러한 차원에서 신무기로 잔뜩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동원하여 흑목애에서 벌어졌던 쿠데타의 진상을 밝히려고 한다. 스페인 함대를 이끌고 흑목애 사건 조사의 총 책임으로 임명된 자는 명나라 조정에서 몇 안 남은 무술 고수 고장풍(우영광). 고장풍은 평소 전설로 전해지던 절대 고수였던 동방불패에 대하여 이유모를 존경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번 조사에서 동방불패의 죽음에 대한 진위를 가리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스페인 군대는 그와 달리 실제로는 초절정 무림비기라는 규화보전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흑목애에는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고, 동방불패는 천하의 죄인이라는 영호충의 글귀가 적힌 깃발만이 을씨년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스페인 군대는 마치 동방불패의 무덤으로 보이는 곳을 마구 파괴하기 시작했고, 고인이 된 동방불패의 명예를 존중하고자 했던 고장풍은 그러한 스페인 군대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신식 무기인 총 앞에는 무술도 별 수 없었던 것.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진 고장풍이었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백발의 늙은이가 나타나 스페인 군대를 모조리 염라대왕 앞으로 영창보내고 쓰러져가는 고장풍을 구해내 근처 바닷가로 튄다.


자신을 일월신교의 장로라고 소개한 쭈그랑 노인네는 왜 대역죄인의 과거를 들추려 하냐고 하지만, 고장풍은 노인네의 뛰어난 무술 솜씨에 감복하고 그가 혹시 죽은 줄로 알려진 동방불패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고장풍은 어차피 죽을 몸이니 마지막으로나마 동방불패를 보는 것이 로또 1등 당첨보다도 더 큰 꿈이라고 말하고, 이에 노인네는 요술램프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겠다면서 고장풍의 온 몸의 혈도를 죄다 틀어막아 버려 죽음에 직면한 폐인으로 만든 뒤 가면을 벗어던져 진짜 동방불패(임청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발의 늙은이로 숨어 지내던 동방불패의 정체 공개. 이 모습은 훗날 백발마녀전에서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제 마지막 서비스로 상조 서비스까지 베풀려던 동방불패에게 고장풍은 갑툭튀로 장엄한 중대연설을 펼친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강호 곳곳에 동방불패라 지칭하는 자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답시고는 실제로 세상을 더 어지럽히고 있으며, 이를 막을 자는 바로 진짜 동방불패 그 자신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처음에는 무슨 귀신 씨나락 볶아먹는 소리냐며 무시했던 동방불패도 은둔자적이 심심했던지 서서히 마음을 돌려먹게 되고, 동방불패는 강호로 나가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생각을 다지며 대신 고장풍을 죽이지 않고 바다로 내던져 버린다.


실제로 강호는 명나라 조정의 약해진 힘 탓에 치안과 통제가 형편없었고, 그 덕에 자신을 동방불패라 지칭하는 짝퉁들의 이권다툼으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그 중 자신이 원조 30년 전통 동방불패라고 지칭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다 죽어가던 일월신교를 다시 일으켜 세워 묘족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주창하는 나름 비쥬얼은 동방불패스러운 짝퉁 설천심(왕조현). 설천심은 자신을 동방불패라 믿는 교도들을 앞세워 명나라에 들어와 자체 세력을 키우고 있던 동방 닌자 집단 세력들과 대항전을 펼치며 나름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천심의 본래 목적은 일월신교의 구원보다는 자신을 애첩으로 삼고 사랑을 듬뿍 퍼주었던 일편단심 동방불패만을 다시 만나는 것. 그래서 가짜로 동방불패 행세를 하고 다니면 언젠가 진짜 동방불패가 오지 않겠느냐는 초딩스러운 논리였던 것이다.


그런 설천심의 배에 무언가 입질이 왔기에 건져 올려보니 다름아닌 반사 상태의 고장풍이었던 것. 고장풍은 동방불패를 흉내내는 설천심을 보고 또 짝퉁이라며 웃어재끼고, 이에 화난 설천심은 그를 잡아가두지만 그의 입에서 진짜 동방불패가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자 이내 회상에 잠기며 동방불패느님을 생각한다.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 님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만 설천심.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일시'라고 한다>


강호로 나온 동방불패는 어디선가 씻김굿을 하는 듯한 장소에 들렀다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대한 동상을 세워 동방불패를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집단이 동방불패의 이름을 빌어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생간도 아닌 생심장을 꺼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없이 펼치고 있었던 것. 이에 동방불패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당장 엽기잔혹 퍼포먼스를 멈추라고 하지만, 사이비 교주는 “너가 동방불패면 나는 동방신기다”라고 콧방귀를 끼면서 개무시를 시전한다. 개무시에 뚜껑열린 동방불패는 결국 사이비 집단을 모조리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앞으로 동방불패를 지칭하는 놈들은 모두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할 것임을 결심한다.


설천심의 활약상은 그러한 동방불패의 귀에도 들어가, 결국 설천심의 소망대로 진짜 동방불패가 그녀의 배에 등장한다. 참치타고 피리부르며 간지나게 등장한 동방불패에게 경의를 표하는 설천심. 그리고 자신이 이끌던 교도들에게 이 분이 진짜 동방불패라고 소개하지만, 여태껏 설천심을 동방불패라고 믿어왔던 교도들에게는 오히려 신뢰도에 타격을 주었던 것. 이에 술렁이는 일월신교의 모습을 보자 동방불패는 설천심에게 이것이 인간사임을 말하면서 다 부질없음을 얘기한다. 그리고는 옛날 화끈하게 불타는 사랑을 했던 둘만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설천심과 달리 이제는 복수의 화신이 된 동방불패는 설천심에게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인 외로움을 선사하겠다며 냉정하게 버리고 떠난다. 


동방불패가 사라지고 아수라장이 된 일월신교는 교도들이 그간 자기들을 속인 설천심에게 분노를느끼며 그녀를 죽이려 든다. 이에 그새 설천심의 미모에 뻑가버린 고장풍은 설천심을 죽이려던 교도들을 막아서고, 이미 몸과 마음 모두 크게 상처를 입은 설천심에게 고장풍은 치료해 주겠다며 자신이 속해 있었던 명나라 군대의 기지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명나라 수군 기지로 복귀한 고장풍은 자신의 절친이자 믿음직한 부하인 한청(고웅)의 도움을 받으며 설천심의 회복을 도우는 한편 이미 통제불능의 파괴의 화신이 된 동방불패를 막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수군 진영에서 동방불패의 옷을 입고 흉내를 내면서 술시중을 드는 여인들과 이를 보고 주색에 빠져 노는 수군들을 보고 크게 실망한 설천심은 한족도 모두 똑같다며 혐오감을 비춘다. 이에 나름 정의파임을 외치는 고장풍은 그 즉시 주색잡기에 빠진 군졸들을 처단하면서 아직 정의는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설천심은 이미 그토록 처절하게 내침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방불패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지고지순한 생각뿐이었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고장풍에게 요청하여 동방불패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그런 그녀에게 두 번 다시 강호의 전장에 돌아오지 말라고 부탁하는 고장풍.



<간만에 강호에 나왔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여성으로서 맹활약하는 타짜 동방불패>


한편, 이제 완전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뜬 동방불패는 동방 닌자 집단의 마을에 카지노녀로 위장취업하여 생계에 힘쓰던 중, 동방 닌자 집단의 우두머리인 무음뇌장도 짝퉁임을 눈치챈다. 동방불패는 밤에 몰래 찾아가 그의 부끄러운 정체를 친히 밝혀주면서 이승과 작별 인사를 시켜주고, 무음뇌장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그의 행세를 하면서 동방 닌자 집단을 명나라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긴다.


고장풍 역시 짝사랑하던 설천심이 떠나간 후 허탈함에 모든 원망을 동방불패의 탓으로 돌리며, 더 이상 그를 존경의 대상이 아닌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악마로 생각하며 그를 막기로 결심한다 (사실 속마음은 설천심을 빼앗기 위함인지도). 이에 무리임을 알면서도 한청을 설득하여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동방불패를 향해 나아간다.






#2. 원작 소설에 없었지만 인기에 편승해 탄생한 외전격 작품


<동방불패> 1편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편에 비해서 2편은 등장인물도 빈약하고 스토리가 너무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본래 김용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편과 달리 2편은 철저하게 감독이 의도한 새로운 스토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동방불패> 1편에서 마지막에 동방불패는 흑목애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사가 불투명하게 되는데, 원작에서는 사실 이 장면에서 동방불패가 확실히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무협 액션 로맨티스트 서극 감독이 이 부분을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로 남기기 위해 생사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설정을 이용해서 실은 동방불패가 죽지 않았다면 하는 IF 시나리오로 2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전편에서 원작대로 등장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은 원작 설정과의 개연성의 문제로 2편에서 등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 스케일이 무척 작아진 것이 사실이고, 더욱이 스토리마저 김용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무협 대서사시를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다시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영호충은 원작에서 정말로 무림을 떠난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등장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방불패2: 풍운재기

<애초에 두 인물의 초 특급 인기를 한데 모아서 기가톤급으로 뻥튀기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모든 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을 속편이 나와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1편의 대대적인 성공과 더불어 임청하라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방불패> 1편은 사실 전작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오강호>였다. <소오강호>도 나름 훌륭한 스토리와 후덜덜한 캐릭터들의 조합으로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는데, 정작 <동방불패>는 후덜덜한 캐릭터들을 정말로 후덜덜한 명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더더욱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나면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동방불패 역을 맡아 중성적인 연기를 펼친 39살 노처녀 임청하는 홍콩 액션 영화계에 전무후무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고, 뒤이어 전 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동방불패 캐릭터의 인기를 이대로 죽이기가 아까워서 1편 제작 후 1년만에 초스피드로 2편 제작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동방불패 2: 풍운재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3. 오로지 액션에만 치중하다가 아스트랄함을 선사한 비운의 작품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1편보다 못한 2편이 어딨겠는가. 아무리 천하의 임청하라 하더라도 진부한 스토리와 바람빠진 타이어마냥 빈약한 캐릭터들의 개성은 어떻게도 살릴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왕조현도 마찬가지였는데, 알다시피 왕조현은 임청하 이전에 <천녀유혼> 등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 커다란 팬덤을 형성하고 있던 초특급 스타였고, 그러한 그녀의 가세는 <동방불패 2>가 제작 전부터 화재의 작품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두 명의 초절정 미녀 스타로서도 살리기 힘든 작품성 앞에 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필자는 또 하나의 가정을 세워본다. 만약 <동방불패 2>가 전작의 감독이었던 서극에 의하여 계속해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말이다. 서극 감독은 사실 <동방불패> 1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소수민족의 비애를 이야기하였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던 동방불패라는 캐릭터가 메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녀가 소수민족인 묘족을 이끌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장풍은 처음엔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며 동방불패를 이끌었으나, 결국 흔한 신파극처럼 여자에 빠져 인생 망치는 캐릭터>


서극 감독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명감독이지만, 사실 그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극 감독은 어렸을 적에 베트남에서 쫓겨나다시피 나라를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여 정착을 하게 되면서 터전을 잃고 사는 소수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은연 중에 이러한 아픔과 불안감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다름아닌 <영웅본색> 시리즈인데,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액션 느와르로 꼽는 영화인 <영웅본색>도 사실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90년대의 암울한 홍콩인들의 자화상을 깊숙이 깔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오죽하면 <영웅본색>의 영문 제목이 “A better tomorrow”였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고유의 터전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홍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극은 이미 베트남에서 겪었던 아픈 경험을 다시 홍콩에서 겪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그 누구보다도 컸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그의 주제의식 때문에 <동방불패>는 일월신교의 비애와 함께 이를 짊어지고 나아가려는 동방불패의 애절함이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방불패 2>가 서극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2편 역시 일월신교와 동방불패의 애절한 스토리가 부각되면서 보다 사회성이 더 짙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2편의 부재로 선정된 “풍운재기”라는 말을 보았을 때는 이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서극의 관점에서의 풍운재기는 동방불패 자신과 일월신교 모두의 재기를 의미했을 것이고, 그들의 처절한 재기 스토리가 마치 <백발마녀전>처럼 애절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주면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쉽게도 서극이 손을 떼면서 정소동과 이혜민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둘 다 액션에 치중하는 스타일이었던 만큼 보다 액션 중심적인 작품으로 탄생될 수 밖에 없었다. 정소동과 이혜민 감독은 <소오강호> 작품에서부터 같이 작품을 해왔던 관계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동방불패> 시리즈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방불패> 1편에서 전무후무한 무협 액션을 선사하였던 멤버들인 만큼, 이를 더 업그레이드한 무협 액션을 선보이고자 하는 욕심도 컸을 것이다. 그 결과물로 <동방불패 2>는 확실히 더욱 커진 스케일의 무협 액션을 보여주었고, 너무 오버한 나머지 시대를 앞서간 사물 액션(잠수함 변신 같은)까지 선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아스트랄 무협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흥행면에서 결국은 액션보다 스토리를 원했던 관객들에게 처참하게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스트랄함의 시작. 일명 대서양 참치타고 무공 뽐내기>



#4. 파란만장한 배우 왕조현에 대한 고찰


앞서 왕조현 얘기가 나왔으니, 배우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이미 임청하라는 배우는 본 블로그의 <동방불패> 1편 리뷰에서 자세히 얘기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왕조현은 80년대부터 홍콩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특유의 청순한 미모로 전 아시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더랬다. 그녀를 80년대 책받침 공주로 만들어버린 결정적 작품은 바로 1987년작 <천녀유혼>.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애절하면서도 때로는 발랄하고 도도하면서도 귀여움이 철철 넘치는 개성넘치는 귀신 연기를 해내면서, 장국영과 더불어 홍콩을 대표하는 남녀 스타로 대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귀신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였을까, 이듬해 출연작인 <화중선>에서도 너무나도 유사한 캐릭터도 재등장하여 사골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더랬다. 그러더니 이후에도 여러 무협 영화에 출연하면서 귀신이거나 혹은 귀신이 아니더라도 저주를 받아 남자주인공에게 구원을 받는 등의 정형화된 캐릭터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왕조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청순함과 여성스러움으로 인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캐릭터로서의 가치와 가장 잘 매칭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이번 작품에서 남성다움을 강조한 임청하와 여성다움을 강조한 왕조현의 콤비 플레이는 같은 여성끼리의 조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화재가 된 장면. 실제 둘은 이 장면에서 키스와 끈적한 스킨십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에서 입으로 물을 따라주는 괴랄한 짓까지도...>


그러나 저러나, 왕조현 역시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는 매우 드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사실 대만 출신으로, 16세까지 농구선수로 활약하는 등(이 때문에 그녀의 별명이 롱다리 아가씨이다) 홍콩 영화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행보를 걸어 왔더랬다. 그러다가 광고모델로 덜컥 뽑히면서 대만 언론에서 잘나가는 CF 모델 겸 영화배우가 되었고, 보다 더 큰 시장을 노리기 위해 1985년에 홍콩 영화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약 10년간 무려 60여편이 넘는 다작 활동을 펼치다가 1997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표면적 이유로는 휴식이었지만, 루머에 따르면 유부남이었던 홍콩 거물과의 염문설이 불거지면서 스캔들을 잠재우고자 은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때부터 왕조현이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녀의 늙어가는 나이에 반비례하여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2001년 그간의 은둔자 생활을 마감하고 당차게 재기를 선언하여 <유원경몽>이란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다시 연기인생을 펼쳤다. 이 작품에서 왕조현의 과거의 청순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천녀유혼>에 버금가는 열연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해당 작품은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아 그녀를 원했던 원조 팬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공간 상 안 넣으려다가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비스로 대 방출>


<유원경몽> 출연 이후 왕조현은 다시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팬들에게 또 한번의 쇼크를 선사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덕에 그간의 열정이 식었다, 여전히 스캔들에 시달려서 스트레스가 크다 등등의 각종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 이후 지속적인 두문불출 속에서 2003년 자신의 영화인생 최고의 파트너이자 베프였던 장국영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더해지면서 왕조현이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심각한 비만 상태라는 등의 루머가 한국까지 퍼지기도 하였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 2004년에 양치기 소년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재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금 팬들에게 쇼크X2를 선사하였고, 그렇게 해서 <미려상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의 왕조현은 더 이상 책받침 공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 찌든 중년의 여배우 모습이 역력했고, 작품 역시 그녀의 대표 장르였던 무협이 아니라 근대의 암울한 중국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왕조현은 또 다시 영원한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에게 크리티컬 350배의 초특급 필살기 데미지를 선사하면서 영원히 영화계를 떠나버렸고, 역시 은둔자적 모드였기 때문에 다시 비만이 도졌다는 둥, 지나친 성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둥, 사생아를 낳았다는 둥 별 희한한 루머에 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왕조현은 은퇴 직후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고 그 곳에서 어학 공부도 하는 등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몸과 얼굴 모두 아주 정상적으로 아름다운 상태로 말이다.



<2016년에 공개된 왕조현의 근황. 49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한 미모를 자랑한다. 임청하의 동안 미모를 능가하는 듯>



#5. 조촐하지만 나름 명연기로 무장한 조연진들


<동방불패 2>는 1편에 비해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연으로서 명 연기를 펼친 배우가 하나 있는데 바로 고장풍 역의 우영광 되시겠다. 이 배우는 홍콩 영화를 많이 본 팬들이라면 아주 친숙한 배우일텐데, 한국으로 치면 배우 이경영 정도만큼 다작 출연을 하면서 감칠맛나는 명품 조연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우영광 역시 80년대부터 홍콩 무협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선이 굵은 연기들을 펼쳤는데, 필자가 기억하는 이 배우의 유명 출연작만 해도 <진용>, <프로젝트 S>, <영웅>, <풍운>, <뉴 폴리스 스토리>, <삼국지 용의 부활> 등이다. 초반에는 강인한 인상 탓에 악역에 주로 캐스팅되었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비중있는 조연 역할을 펼치며 인상깊은 배우로 남아 있다. 재미있게도 정우성과 장쯔이가 출연하여 화재가 된 한국산 무협 영화 <무사>에서도 등장하였고, 한국에서 제작된 <깡패 법칙>이라는 괴작에서도 무려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출연하여 나름 필모그래피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당시 악역을 주로 맡다가 이 작품에서 어쩐 일로 선한 일을 다 맡았을까 싶었던 우영광. 그러나 역시 기존 이미지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장풍만큼의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그나마 명나라 장수 중 가장 정신머리 제대로 박혀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한청 역의 고웅 역시 한번쯤은 입방정을 털어보고 싶은 명품 조연 배우 되시겠다. 사실 이 배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자세히 보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을 것이다. <리썰웨폰 4>에서 위조지폐 전문가로 출연하여 악당 이연걸에게 목이 졸려 사망하는 비운의 캐릭터로 출연한 배우가 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아하~”하실지도 모르겠다. 이 배우도 상당한 다작 배우인데, 그나마 기억나는 역할로 견자단이 출연한 <정무문>에서 곽원갑으로 등장했던 것과,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백발마녀전>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하였고, 유덕화를 명배우로 각인시킨 <지존무상>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나름 고전에 속하지만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한번쯤 시청했을 <공작왕>에서도 등장하여 필자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배우이다.



#6. 영화보다 더 빛난 주옥 같은 OST


<동방불패 2>는 비록 기대만큼의 훌륭한 작품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바로 OST인데, 사실 최초의 시리즈 격이었던 <소오강호>의 작품 배경을 본다면 사실 음악적인 부분이 매우 강조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오강호>는 영화 제목 그 자체가 바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노래 제목으로, 작 중에서 무림 고수 커플인 순풍당 당주와 일월교 장로가 K(강호)-POP 오디션 1등을 위해 자작한 명곡이다. 이 곡은 <동방불패>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작품 곳곳에서 강호의 허무함을 노래하듯 울려퍼지기도 하였고, 임청하 본인도 직접 소오강호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방불패 2>에서는 이러한 소오강호 음악은 단 한번도 울려퍼지지 않아 어찌보면 원조 시리즈인 <소오강호>와의 연결고리는 더 이상 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대신 극 중에서 임청하가 카지노 로열을 재현하며 불러재낀 노래와 엔딩 크레딧에서 울려퍼진 노래는 모두 <동방불패 2>만을 위해 만들어진 곡인데, 이 곡들이 그야말로 주옥같았다는 것이 반전. 실제로 영화 자체는 시시껄렁하게 보신 관객들 중에서 노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찾아서 들으려는 의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임청하가 극 중 직접 노래를 불렀던 장면. 은근히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필자가 솔직히 해당 노래의 제목은 잘 모르지만, 그 음만큼은 아주 강렬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필자의 우상인 임청하가 직접 불렀기 때문이리라. 사실 임청하가 그렇게 노래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홍콩 영화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배우들이 단순히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댄스에까지 매진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대세였다. 오죽하면 홍콩 4대 천왕으로 꼽힌 배우들이 모두 자신의 고유 앨범 타이틀과 더불어 가요계로 홍콩을 점령했을까. 이러한 트렌드였다 보니 임청하 역시 OST에 직접 참여하여 노래를 불렀던 것인데, 임청하는 노래 실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에 <동방불패 2> OST 중 임청하가 직접 부른 곡은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수려한 OST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음악을 맡은 원탁범으로, 그는 이미 <동방불패> 1편에서도 음악을 맡으면서 명품 음악 감독으로서의 싹수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그는 그 유명한 주제가를 탄생시킨 <황비홍 2 남아당자강>에서도 음악을 맡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주제가를 듣는다면 “얼씨구!!”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될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그리고 그 곡은 원조 황비홍인 성룡이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요수도시>, <백발마녀전> 등에서도 음악감독으로서 좋은 음악들을 선보였으나, 90년대 말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이 없어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강호에 나왔더니 그 새 짝퉁들이 너무 범람하여 이미지 손상에 적잖이 타격받은 동방불패>



#7. 임청하를 한국으로 오게 한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


이 작품이 필자 개인적으로나 한국 문화계에서 또 하나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임청하라는 당대의 명배우를 초전성기 시절에 한국에 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90년대에 홍콩 배우들이 한국 문화를 초토화 시키고 있을 때 그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동방신기가 동남아 방문하는 것과 유사한 거대한 문화계 지각 변동을 야기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영화 시장은 홍콩 영화의 주요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가 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어서, 많은 홍콩 스타들은 영화 홍보차 일본이나 기타 동남아 국가를 많이 가고 한국은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동방불패> 1편이 한국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 성공 기록을 보이면서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임청하 팬덤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고자 <동방불패 2>의 홍보를 위해 임청하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더랬다.


당시 더더욱 놀랐던 것은, 홍콩의 수퍼스타가 이례적으로 한국의 TV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감행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당시 주말 예능계를 주무르고 있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는 이경규가 ‘시네마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당대 걸작 영화들을 대스타를 초청하여 엽기적으로 패러디하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임청하가 홍보차 내한한다는 소식에 프로그램을 특집 편성하여 ‘시네마천국 시상식’ 중간에 특별 게스트로 등장시켜 우수상과 대상 등을 직접 수여한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해서 임청하가 정말로 무대에 등장했고, 사전에 예고가 크게 되지 않았던 탓에 관객들은 광범위 스턴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특별 출연이었지만 임청하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프로그램과 함께 하면서 시상식 외적으로 자신의 출연작인 <동방불패 2>의 홍보와 함께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지게 풀어냈고, 특히 직접 OST까지 한 소절 불러주면서 어마어마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게스트였던 미모의 배우 김희애를 능가하는 젊음과 미모를 과시하여 필자를 비롯해 많은 남성 팬들의 분당 심장 박동 수를 평균 257% 상승시켰으며, 말하는 중간 중간 선사한 깨알 같은 애교 넘치는 행동은 기존의 한국 스타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문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임청하는 한국에서 짧은 일정을 소화하며 팬 사인회, 영화 홍보, 화보 촬영 등을 진행하였고, 당시 임청하의 특별 화보집이 발행되어 해당 화보집의 뒷부분에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물론 임청하의 전무후무한 한국판 화보집은 필자도 고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한국 방문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 한국판 화보집에도 실려 있다>


영화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냈지만, 무대 위에서는 애교 넘치고 끼 많은 연예인이었고, 또 사진 속에서는 청순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수수함을 보여준 임청하. 그리고 그녀의 매력이 듬뿍 발산된 영화 <동방불패 2>. 액션과 스토리를 배제한다면, <백발마녀전>과 함께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을 가장 잘 뽑아낸 작품으로서 인정할 만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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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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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 (X-Men Origins : Wolverine)


<엑스맨의 초막강 캐릭터 울버린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



#1. 울버린, 그는 원초적으로 고뇌로 가득한 인물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카프카의 ‘변신’ 中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을 보면 주인공 고르고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닫게 된다. 하루 사이에 바퀴벌레가 되어 버린 고르고.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고통스러운 삶의 이면. 주인공에게 닥친 일련의 신체적 변화가 가져오는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늘 새롭고 신선할 것만 같은 변화가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기도 한다. 


미국에서 연재된 마블의 대표적인 만화 엑스맨의 주인공들도 바로 이러한 고르고의 모순을 간직한 인물들이다. 갑작스레 진행된 인류의 유전자 변이. 그로 인해 탄생한 돌연변이 생명체들. 모두가 보통 인간을 뛰어 넘는 특수한 능력을 지녔지만, 사회로부터 차별당하고 소외 당해야 하는 아픔을 지닌 존재들. 결코 화려하지만 않은 돌연변이 초능력자들의 얘기를 다룬 엑스맨은 우리가 결코 가볍게 보고 넘어가야 할 작품은 아니다.


<형보다 나은 동생 없다지만, 이 두 형제는 동생이 더 낫다>



수 많은 엑스맨의 등장 인물들 중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이중적인 가치를 지니는 인물이 바로 울버린 되겠다. 원작에서는 촌티나는 코스튬과 물불안가리는 성질 머리로 ‘나름 까다로운 캐릭터’ 신세였으나, 울버린이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인간적인 갈등에 나름 삘을 받았던지, 영화에서는 덜커덕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욱 강화된 인간적 갈등의 면모와 외모. 특히나 휴 잭맨의 섹시한 매력까지 200% 싱크로된 완벽한 캐릭터 울버린. 그의 영화속 숨은 이야기가 모두 파헤쳐진 작품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살펴보겠다.



#2. 울버린에 대한 고찰


일단 원작의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고찰을 해보겠다. 원작을 접하기 어려운 한국 팬이라면 영화의 울버린만 보고 원작과 동일하다고 오해할 여지가 상당히 크다. 하지만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축소하고, 게다가 원작의 여러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존재를 영화에서는 오직 하나의 메인 캐릭터로 가져오다 보니 설정 상의 변화가 꽤 존재한다.


<역시 목욕은 반신욕이 최고여!!>



울버린은 원작에서 처음부터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최초 등장은 엑스맨이 아닌 전혀 엉뚱한 작품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크레더블 헐크였다. 헐크 만화판 181회에서 악당으로 등장하였는데, 정말 쌩뚱맞지 않은가? 늑대같이 난폭한 돌연변이 악당 울버린에 맞서 싸우는 녹색 아저씨 헐크 (참고로 헐크는 회색이 원래 색깔이나 인쇄상의 어려움으로 녹색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나름 매력을 느꼈던지 원작자인 스탠 리 할아버지가 덜커덕 엑스맨에 등장을 시켜버렸다. 그래서 졸지에 대머리 자비에 교수님의 똘마니들로 구성된 엑스맨의 멤버가 된 것. 우습게도 악당으로 등장했다가 선한 편으로 재등장하게 된 것은 그만큼 울버린의 잠재된 캐릭터적 가치가 컸다는 것일지도. 이후 매그니토를 중심으로 한 브라더후드에 대항하는 선한 세력 엑스맨의 일원으로 대활약하는 울버린은, 때로는 가차없이 난폭한 늑대본성의 사나이로,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려지며 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 영화 엑스맨 시리즈 되새김질


어쨌든 원작에서도 꽤나 껌 좀 씹어주었다는 울버린이 영화에서는 대체 어떻게 업그레이드된 것일까? 일단 이미 개봉된 엑스맨 1, 2, 3편을 대충 훑어보자. 여기서는 주인공 울버린의 관점으로 핵심만 짚고 넘어가겠다.


<영원한 라이벌 세이버투스와 울버린의 오리지널 일러스트. 둘 다 인간이 아니라 괴수 수준이다>



1편에서 세상은 갑작스레 늘어나는 돌연변이들에 의해 시끄러운 상황이 되었고, 인간을 증오하는 매그니토에 의해 돌연변이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집단이 결성된다. 이에 대항하고자 형성된 또 다른 돌연변이 집단 엑스맨은 매그니토가 울버린에게 접근하자 울버린을 구출하고 액스멘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깡다구 있는 울버린은 계속 안티하게 행동하지만, 나름 매력적인 여성 돌연변이 학자 진의 매력에 푹 빠져 자기도 모르게 엑스맨의 한 축이 되어버린다. 


엑스맨 일당은 매그니토가 왜 울버린에 집착하는가에 대해 다같이 고민하지만, 정작 매그니토는 울버린이 아닌 로그에 관심이 있었던 것. 결국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은 울버린은 개분노하고 마침내 매그니토의 음모를 괴멸시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울버린의 과거는 무엇? 


2편에서는 울버린의 과거를 추적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돌연변이라면 닥치는 대로 잡아 없애려고 하는 스트라이커 대령이 등장하면서, 엑스맨과 브라더후드는 공통된 위험에 빠지게 되고, 이를 타계하고자 일시적인 연합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울버린 앞에 등장한 스트라이커 대령은 울버린의 과거를 알고 있는 듯이 말하고, 울버린은 이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라이커의 돌연변이 말살 정책이 밝혀지고, 이에 맞서는 용감한 깡다구 사나이 울버린. 결국 자신이 스트라이커 대령의 모종의 비밀 실험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울버린은 자신의 과거를 증오하면서 닥치는대로 박살내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쓰라린 과거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찰나, 엑스맨들을 구하고 숭고하게 희생하는 진을 향해 울부짖는 울버린. 


대충 재밌게 흘러가던 시리즈물이 3편에서는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어야 했기에 극단적인 설정을 가져오고야 말았다. 인류가 드디어 돌연변이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에 위험을 느낀 브라더후드는 치료약을 없애고 인류를 작살내기 위해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밥줄 끊기기 두려운 엑스맨들이기에 역시 브라더후드에 대항하여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선택하게 되고, 악의 화신 피닉스로 부활한 진을 사랑의 힘으로 달래며 최후의 결전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울버린의 대 활약. 그리고 어이없게도 치료약을 맞아버린 매그니토는 그 이후 파고다공원에서 체스나 두는 신세로 전락하고, 세상은 다시 인간과 인간을 지키는 선한 돌연변이들의 세계가 되고 만다. 하지만 사랑했던 여인 진을 잃은 슬픔에 울버린은 다시 여행을 훌쩍 떠난다 (막판에 매그니토의 능력이 부활했음직한 암시를 던져 쓸데없이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밤송이를 까라면 까란 말이다!! 군대가서 개념없다고 줘터지는 두 형제>



자, 이렇게 전개된 3부작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원작과 많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2편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뤄진 울버린의 과거에 대해 많은 팬들의 기대가 한층 커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 원작에서도 울버린이 스트라이커 대령의 실험체였다는 과거가 있었던 만큼, 울버린의 과거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이 더 다뤄지기를 필자 역시 간절히 바랬었다. 그러한 기대가 너무나도 컸던 것일까? 마침내 스핀오프격인 이번 작품이 만들어졌으니, 필자를 비롯해 또 얼마나 많은 팬들이 광분했겠는가? 



#4. 스토리 - 울버린에 대한 뼈아픈 과거의 폭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들어가보자. 일단 스토리부터 살짝 살펴보자. 스포일러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설정이니 읽는 분들은 알아서 조심스레 읽어주시길.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아다만티움 최초 탑재인간이 바로 울버린 되시겠다>



때는 바야흐로 1880년대. 나름 막장드라마틱한 분위기의 가정에 불어닥친 괴이한 사건. 그것은 바로 늘 병약하기만 하던 소년 제임스(트로예 시반/훗날의 울버린)가 욱하는 성질에 그만 손에서 삐져나오는 가시로 자신의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것. 자신의 돌연변이 성질을 들킨 제임스는 자신의 형 도그(마이클-제임스 올슨/훗날의 빅터)와 함께 줄행랑을 친다. 


형제가 모두 돌연변이의 능력을 갖게 된 그들은 이후 30세에서 성장을 멈춘 듯 영원불사로 삶을 살게 된다. 형제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자고 굳게 맹세한 두 사나이는 이후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전장 속에서 맹활약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돌연변이는 결국 인간으로부터 두려움을 사게 되고 소외당하게 되는 것이 진리. 


그러던 와중 돌연변이들로만 구성된 특수부대를 편성하고자 하는 스트라이커(대니 휴스턴)의 권유에 두 형제도 힘을 합하게 된다. 하지만 작전을 수행하면서 스트라이커의 분별없는 무차별 작전에 크게 실망한 제임스(휴 잭맨)는, 갈수록 살인의 희열에 빠져드는 형 빅터(리브 슈라이버)의 모습에 반감을 가지고 결국 생이별을 하게 된다. 세월은 흐르고 이름을 제임스에서 로건(휴 잭맨)으로 바꾼 후 어느덧 애인도 만들어 버젓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도끼청년 로건. 하지만 과거 돌연변이 특수부대 멤버들이 하나둘씩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마수가 마침내 로건에게까지 뻗쳐지게 된다. 


마수의 정체는 다름아닌 빅터. 로건의 애인 카일라(릴 콜린스)는 빅터에 의해 살해당하고 이에 분개하는 로건.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빅터와 한판 대결을 펼치지만 빅터에 패하고 결국 자신의 팔뚝 이쑤시개마저 두동강이 나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 때 굿 타이밍으로 등장하는 스트라이커 대령. 절규하는 로건에게 빅터를 이길 초강력 파워를 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그를 자신의 비밀실험인 웨폰X 실험실로 초대한다.


<네일케어가 절실히 필요한 세이버투스. 코딱지 팔 때 정말 조심해야...>



실험의 목적은 돌연변이를 대상으로 초강력 합금이라는 아다만티움을 주입하여 가장 강력한 돌연변이를 만들어 내는 것. 로건의 특수 능력인 재생능력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스트라이커 대령의 시도였고, 절망의 분노 속에서 새롭게 눈을 뜬 로건은 울버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아다만티움으로 튜닝한 초강력 돌연변이 생물체가 되었다. 하지만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개코와 고양이 귀로 이 모든 실험이 실은 빅터와 스트라이커가 짜고치는 고스톱을 벌여 자신을 실험체삼아 더 강력한 돌연변이 웨폰 XI를 만들려는 스트라이커의 음모임을 알게 된다. 


이후 전개는 뻔할 뻔자. 닥치는대로 박살내고 도망가는 울버린.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스트라이커의 충실한 쪼수 에이전트 제로(다니엘 헤니). 하지만 에이전트 제로도 필사의 추적 끝에 울버린의 저항에 황천길로 비명횡사하시고, 울버린은 이후 복수심 하나만으로 웨폰X 실험을 끝장낼 것을 다짐한다. 


빅터와 스트라이커를 박살내기 위해 과거의 동료들을 찾은 울버린. 거기에서 빅터가 스트라이커의 명령으로 돌연변이 청소년들을 어떤 섬으로 납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섬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돌연변이 겜빗(테일러 키취)을 만나 피터지게 싸우며 속사정을 듣고 난 후, 겜빗과 함께 정의를 행사하고자 외딴 섬(비행기로 이동했는데 알고보니 도시 옆에 붙어 있다)으로 향한다. 


<울버린의 가슴 속 깊은 사랑 실버폭스. 너무나 깊어 나중에는 기억도 안 난다는..>






<그노무 주둥아리 때문에 인생 망치는 안습의 데드풀>



#5. 전작 시리즈와 이번 작품의 모호한 연결 고리


스토리만 놓고 보면 전작의 3부작 시리즈와 적절히 연결이 되는 느낌이다. 감독이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조금씩 바뀌기는 하였지만, 영화 본연의 느낌은 그대로 지속되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로 기획된 듯한 간결한 느낌이다. 사실 감독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미 전작에서 충분히 울버린의 과거에 대한 청사진을 전면에 잘 깔아놓았었기 때문에 짜집기만 잘하면 되는 멍석 깔아주기 시츄에이션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울버린 외의 인물들, 즉 울버린의 잃어버린 과거에 한 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캐릭터들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였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필자의 입장에서 다소 논란의 요소가 있다고 본다. 이번 작품과 전작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세이버투스, 사이클롭스, 그리고 막판에 얼굴만 합성해서 비춰주는 막장 쎈쓰의 자비에르 교수 되겠다. 이중 세이버투스는 엑스맨 3부작 중 1편에서 등장하여 정말 원작의 세이버투스다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나름의 조연 역할을 잘 했다가,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격으로 격상되는 영광을 맛본 행운의 캐릭터. 


하지만 연결고리는 사뭇 이해가 쉽지 않다. 이번 작품에서 세이버투스와 울버린의 설정은 바로 피를 나눈 형제지간이라는 것. 둘이 같은 돌연변이 능력을 타고 났고, 10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그 형제애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증오도 깊다는 설정인데, 정작 3부작의 1편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세이버투스는 더 띨뻥해진 짐승으로 나오고, 울버린이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해도 세이버투스는 울버린이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기억할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안 나온다. 그런데 스핀오프에서는 둘이 지겹도록 의지하며 살아오고 배신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 치고받고 싸우는 것으로 묘사되고, 더욱이 세이버투스가 너무나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완전 시골 촌동네 타짜로 전락한 겜빗. 대리운전까지 하며 먹고사는 팔자..>



실제 원작을 살펴보면 세이버투스는 울버린과 형제 관계가 아니다. 둘은 치열한 라이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앙숙의 관계는 거부할 수 없는 형재라는 운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알게 된 너무나도 서로가 비슷한 느낌, 즉 비슷한 능력에 비슷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라이벌의식이 싹튼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원작에서도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있다. 세이버투스가 한 때 울버린의 친 형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으나,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나와있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알려진 사실은 세이버투스가 어떤 미스터리한 부족의 일원이고, 노화방지의 능력이 있으며, 울버린처럼 자연치유의 능력과 동물적인 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훗날 세이버투스도 아다만티움을 소유하게 된다!!). 결국 영화에서의 형제라는 설정은 이미 원작에서 살짝 삼천포로 빠져버린 시츄에이션. 


아무튼 이렇게나 울버린에게 중요한 존재인 세이버투스가 1편에서는 우둔한 짐승으로 등장하였다가 2편부터 영영 스크린에서 사라진 것을 보면, 작품들간의 개연성에 약간의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세이버투스는 울버린과 오랜 기간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협력하는 묘한 관계로 등장하여 나름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2편부터 잠적을 감춘 것은 참으로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겜빗 "아저씨 일단 앉아서 얘기합시다">



여기에 사이클롭스의 등장은 더욱 큰 괴리를 가져온다. 분명 1편에서 사이클롭스와 울버린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고, 진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으르렁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우습게도 어린 청년의 사이클롭스가 등장한다는 것. 비록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울버린을 보지는 못했을 테지만 같이 탈출한 동료 중 누군가가 얘기해주지는 않았을까? 사이클롭스의 얼굴을 본 울버린이야 막판에 기억을 잃어버려서 나중에 사이클롭스를 못 알아본다고는 해도 어쨌든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는 설정하고는 괴리가 크다. 이는 원작과도 사뭇 달라서, 원작에서 행동대장인 사이클롭스가 비록 삼각관계라 하더라도 울버린과 대화는 통하는 수준이므로, 영화에서는 울버린을 너무 격한 캐릭터로 그린 느낌이 적지 않다. 


울버린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안겨 준 실버폭스의 존재도, 정작 3부작에서는 기억을 되찾아가는 울버린에게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정작 기억을 찾았어도 오로지 진만 생각하는 울버린이라니. 실버폭스와의 사랑은 결국 하룻밤의 불장난이었단 말인가? 실버폭스는 자기 한 목숨 다 바치며 울버린을 살려줬는데. 역시 남자들은 다 늑대?? 하긴 울버린은 여러모로 늑대 컨셉이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실버폭스가 연인으로 나오지만, 영화 3부작에서는 전혀 설명이 안되어있다는 것이 아쉬웠다고나 할까 (원작에서도 울버린은 여러 여자를 사모하는 바람둥이로 나온다?).


<정말 빠른건지 아니면 공간이동인지 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레이쓰(오른쪽)>



스트라이커 대령은 3부작의 2편에서는 짜리몽땅 아저씨로 나오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훤칠한 아저씨로 나오는 것은 배우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자. 그것만 빼고는 스트라이커의 연결고리는 꽤 훌륭하다. 스트라이커 대령이 어떻게 해서 웨폰 X 실험을 진행하였는지 자세한 셜멍이 돋보였고, 이미 2편에서 이러한 실험의 원인이 자신의 돌연변이 아들 때문이었음이 드러났기에 두 작품을 모두 잘 이해한다면 큰 괴리는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6. 울버린에 대한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자, 지금까지는 전작의 3부작과 이번 작품간의 연결고리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주인공 울버린에 대해서 과거가 밝혀진 이상 원작의 설정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단, 이미 세이버투스와 울버린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은 얘기를 하였다. 좀 더 추가적인 설명을 위해 아래 내용을 참고하겠다. 


울버린(족제비)/ 웨폰X Weapon X (무기 X)

본명: 제임스 하울렛 James Howlett, (가명 로건 Logan)

능력: 보통의 인간보다 월등한 시각과 후각, 청각을 지녔다. 팔뚝에는 격납식의 뼈 손톱들을 갖고 있다. 주먹들 사이에서 이 손톱들을 나오게 할 수 있다 (이때, 주먹들 사이의 피부는 찢어지고 피가 나지만, 자연치유력에 의해 빨리 멎는다.) 

직업: 모험가, (과거에 CIA 요원, 해결사)

소속: X-Men, Avengers (과거에 Yashida 가문, Weapon X Program, Alpha Flight, Team X, Devil's Brigade, X-Treme Sanctions Executive)

출신지: 캐나다

가족: 바이퍼(전 아내)

눈:블루

모발:흑발

첫 등장: INCREDIBLE HULK #181


로건이라는 인물의 개인사는 그가 과거에 배웠던 정보의 많은 것들이 인공적으로 주입되었거나, 함부로 변경되었던 기억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밝혀내기 어렵다. 아직 그가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100년 전에 태어난 제임스 하울렛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주의 병든 아들 제임스는 그의 엄마와 일꾼 로건 사이에서의 태어난 아들일지도 모른다. 로건이 쫓겨났을 때, 그는 복수를 하러 돌아와 하울렛을 죽이고 어린 제임스를 공격했다. 제임스는 자신을 보호하려 뮤턴트의 손톱을 사용하여 로건을 죽이고 도그 Dog라는 로건의 아들을 상처 입혔다. 가정교사는 제임스의 탈출을 돕고, 둘은 앨버타 Alberta의 광산마을에 숨었다. 거기에서 그녀가 제임스에게 로건이라고 불렀고, 제임스는 유년시절을 두려워하는 듯 했다. 도그가 제임스를 추적해왔다. 싸우다가 제임스는 뮤턴트의 손톱이 다시 나왔다. 싸움을 말리려던 가정교사는 제임스의 손톱에 실수로 찔려 죽자, 겁에 질린 제임스는 황야로 도망쳤다. 


로건으로서, 그는 실버폭스 Silver Fox와 사귀고, 캐나다의 군인이 된다. 그는 데블스 브리게이드라는 그룹에서 전쟁에 참전했고, 나중에 프리랜서 정보원이 되었다. 그의 정부 비밀요원들인 팀X로서 매버린 Maverick, 세이버투쓰 Sabretooth와 일 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전에 아시아 국가 마드리푸어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고, 심지어 일본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불사의 닌자 오군 Ogun에게 일본어와 무예를 배웠다. 제 2차 세계대전동안, 로건은 캐나다 군인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한 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나중에 로건은 뮤턴트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웨폰X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서 로건의 뼈는 아다만티움 adamantium과 결합되었고, 이것이 아마도 일시적으로 그를 미치게 했거나, 그의 야성적인 분노를 높였다고 보인다. 그는 많은 장비들을 파괴하고 탈출했다. 정신을 잃은 그를 황야를 방랑하며 동물이나 다름없게 행동했다. 


캐나다 정부의 공식요원들인 알파 플라이트의 리더인 가디언 Guardian과 빈디케이터 indicator가 신혼여행 중에 로건의 습격을 받았다. 빈디케이터에 의해 부상당한 로건을 오두막에 감금한 가디언은 로건의 치유능력을 보고, 그를 쓸모있다고 생각했다. 가디언이 스키를 타고 나간 사이에 의식을 찾은 로건은 빈디케이터를 공격하기위해 손톱을 꺼냈다가, 누군가가 바꿔치기 했음을 알고 두려워했다 (사실 가디언은 아다만티움 연구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로건을 만날 것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부는 로건을 밤낮으로 간호하며 같이 생활했다. 


로건은 가디언의 데파트먼트 H 프로그램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캐나다 특수요원이 된 로건은 미 정보요원인 캐롤 댄버스 Carol Danvers(지금은 워버드 Warbird)와도 일했다. 캐나다 정부공인 히어로팀인 알파 플라이트의 리더가 된 로건은 웨폰X라는 코드명을 얻었다. 웨폰X로서 그는 헐크와 웬디고 Wendigo와 충돌했었다. 새비어는 나중에 로건에게 X맨의 새로운 버전에 가입할 것을 요청했다. 로건은 빈디케이터에게 반했으나, 그녀가 남편을 떠나 일이 없을 것이므로 X맨에 들어왔다. 울버린이란 이름으로 X맨이 된 로건은 사이클롭스의 여자 친구인 진 그레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그가 자신의 모험을 하기 위해 이따금 팀을 나가긴 했지만, 오랜 기간동안 X맨에 남아있다. (중략)

<출처 : http://superhero.x-y.net/superframe.htm>


<라이언 일병 구하기 표절??>



#7. 후덜덜한 원작 캐릭터들의 몰락 - 하지만 그들의 오리진을 기대하라


본 출처의 원작 내용을 살펴보면, 영화의 설정이 나름 큰 뿌리는 건드리지 않은 채 조금씩 영화에 맞게 각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완전 색다른 일부 설정을 제외한다면, 울버린과 웨폰 X의 실험에 대한 관계는 원작과 큰 괴리는 없다. 다만, 웨폰 X 프로젝트가 나온 이상 걸고넘어갈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웨폰 XI로 등장하는 데드풀. 


영화 초장부터 나불대는 주둥아리로 빈축을 사는 쌍칼잡이 웨이드가 바로 데드풀인데, 원작하고는 달리 완전 인조인간 깡통로봇 개념을 탑재한 악역으로 나와 상당히 아쉽다. 원작에서는 나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괴로워하다 자진해서 웨폰 X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쌍칼잡이 닌자코스튬의 강력한 돌연변이로 탄생했다가 자신의 과거를 되찾으면서 고뇌한다는, 어찌보면 울버린과 비슷한 사연을 품고 사는 강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엽기적인 캐릭터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마저 봉인당한 불쌍한 돌연변이로 등장한다니. 웁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재미있는 사실은, 데드풀이라는 캐릭터가 원작에서 너무도 강렬하고 인기도 많았던 탓에 감독이 삘 받아서 데드풀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돌연변이들의 잡스런 능력을 다 부여받고 막판에 사이클롭스의 눈탱이 레이저까지 쏴대다가 대가리가 잘린 데드풀이 어떻게 해서 되살아나는지, 그리고 대체 어떤 캐릭터로 그려질지가 사뭇 궁금하다.


<총질 하나는 예술인 에이전트 제로. 이퀄리브리엄이 연상된다>



기왕에 데드풀을 주인공으로 한 또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하였으니 하는 말인데, 감독이 제대로 삘 받긴 받은 모양이다. 이미 매그니토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도 제작한다는 발표가 나왔으니 엑스맨 캐릭터별 종합 세트가 만들어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1편 오프닝에서 매그니토가 어렸을 적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 이상, 매그니토의 2차 대전 시절 활약상과 인간에 대한 증오로 악당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만큼 매력적인 스토리일 수 밖에. 이런 판국이라면 나중에는 또 어떤 캐릭터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질 지 궁금해진다. 


어쩌다보니 얘기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다시 캐릭터의 얘기로 가 보자. 이번 작품에서도 색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겜빗, 에이전트 제로 등이 나름 비중있는 신규 캐릭터일 것이다. 에이전트 제로는 우리의 자랑스런 대한남아(?) 다니엘 헤니가 연기하여 기대가 컸는데, 초반부터 울버린과의 갈등 구도는 좋았으나 중간에 헬리콥터에 끼어 썩소를 날리며 비명횡사해버려서 나름 웁쓰였다는. 사실 에이전트 제로도 원작에서 인기는 없었지만, 여러가지 능력을 보유한 제대로 된 돌연변이로 등장한다. 영화처럼 총질만 해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하여 이용하거나 광선을 쏴대는 등의 능력도 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캐나다인이다!! 나름 닌자스러운 코스튬이 자랑이지만 영화에서는 어엿하게 헤니의 조각 같은 쌩얼을 오픈하고 있다. 


겜빗의 경우 원작에서 타짜의 아귀만큼이나 감칠맛 나는 도박쟁이 히어로로 활약하였는데, 이번 영화에서 나름 큰 역할로 나올거라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겜빗만큼 굴욕적인 캐릭터도 없었을 듯. 울버린에게 얻어터지고서 마지못해 비행기로 대리운전해주는 설정은 그야말로 안습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 게다가 대리운전만 해주고 사라졌다가 막판에 끝장 다 보니까 등장하여 울버린을 데리고 다시 본업에 충실해 주시는 쎈쓰는 이름값 제대로 못한 대표적 캐릭터의 비운이라 할 수 있겠다. 원작에서는 울버린과 세이버투스와 모두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물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고작 대리운전이라니. 


마침 비행기 대리운전 시퀀스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웨폰 X 프로젝트의 비밀 실험실이 외딴 섬이라는 힌트 하나로 어렵사리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바다 한가운데에 울버린을 떨궈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퀀스만 보면 정말 외딴 비밀 섬인가보다 하는 이해가 드는데, 막상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건 뭥미? 외딴 섬은커녕 잘 발달된 도시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밤섬과도 같은 섬이 아니었는가! 게다가 육지와 다리로 연결까지 되어 있다니! 그냥 버스나 택시타고 가도 될 곳을 힘들게 밤에 몰래 비행기타고 가서 중간에 헤엄까지 쳐가며 무단침입해야 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황당 시츄에이션. 


참고로, 엑스맨 오리진 시리즈의 남발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엑스맨 탄생 : 겜빗>도 감독의 머리 속에서 구상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데드풀, 겜빗, 매그니토에 이어 또 어떤 인물들의 외전이 탄생할 지 참으로 궁금하기가 그지없다.


<청년 시절의 사이클롭스. 눈가리고 있어서 아무것도 못봤다는 설정>



#8. 감독은 철학적으로, 제작사는 오락적으로


어쨌든 몇 가지 원작과의 괴리를 빼면 나름 훌륭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엑스맨 탄생 : 울버린>. 휴 잭맨은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표출하고 있고,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 몸매는 많은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얘기가 있다.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다니엘 헤니도 훌륭한 연기력을 통해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고 있고, 앞으로 계속될 엑스맨의 전설에 시발점이 될 이번 작품의 연출력도 꽤 수준높은 평을 내리고 싶다. 


전작 3부작의 1편과 2편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과, 3편을 맡은 브랫 레트너, 그리고 울버린을 맡은 게빈 후드 3명의 감독 사이에 커다란 괴리 없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통일된 분위기를 이끌어 간 것은 크게 평가할 일이다. 다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자신은 처음에 로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가장 소외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진정한 가치철학적 문제를 꺼내고 싶었으나 흥행성의 문제로 결국 울버린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었다고 하니, 2편까지 나름 철학적 주제를 건드렸던 느낌은 3편에서 막장을 보여주고, 이번 울버린에서는 아예 순수 액션활극으로 도배질을 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무게감있는 주제의식을 좋아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라면에 김치가 빠진듯한 약간의 아쉬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번 영화의 개봉과 맞물려 게임도 제작되었으니 엑스맨 매니아라면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참고로, 게임의 경우 영화의 스토리는 물론 그 이후의 추가적인 스토리가 공개된다고 하니 게임과 원작과의 비교도 커다란 재미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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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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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The Wrestler)

Movie 2016. 2. 18. 13:38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더 레슬러 (The Wrestler)


<미키 루크의 부활이라고 아예 때려박아넣은 멘트가 압권인 포스터>



#1. 헐리우드판 TV 인생 극장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인의 허심탄회한 일상을 파고드는듯한 TV시리즈 인간극장 류의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스타가 아닌, 그리고 대본조차 없는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또한 가식으로밖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반대로 스타가 등장해서 마치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하여 마치 소박한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 중에는 꽤나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고 본다. 물론 작품 속의 주인공은 가짜 인물이고 대본이 존재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똑같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작품에는 더욱 매력이 느껴지고 재미있게 보게 된다. 


만약, 작품 속의 캐릭터의 삶과, 실제 그 배역을 맡은 배우의 삶이 너무도 똑같다면 어떻겠는가? 이러한 경우라면 그야말로 전자와 후자의 모든 장점과 매력을 다 갖춘 작품이 아닐까? 두말하면 잔소리였는지, 아무튼 여기에 그런 걸작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프로레슬러의 애환이 담긴 양키버전 인간극장 <더 레슬러> 되겠다. 



#2. 스토리 - 늙다리 레슬러의 눈물겨운 노후 이야기


먼저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한 때 미국 레슬링계를 군림했던 최고의 레슬러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20년이 지난 지금 그 명성을 뒤로 한 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벤트로 펼쳐지는 언더 레슬링계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 지금은 근육도 예전같지 않고, 얼굴에 주름도 늙었으며, 온몸이 삐그덕 거리는 늙다리가 되었지만, 팬들의 성원을 받아 링 위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사나이. 하지만 링 위에서 아직도 많은 인기를 끄는 그도 링을 벗어나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외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월세도 제때 갚지 못하면서 외톨이로 살아가는 랜디. 평일에는 동네 슈퍼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행사 뛰러 다니는 일명 투잡 사나이이다. 그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사람은 동네 스트립바에서 일하는 스트립퍼 캐시디(마리사 토메이). 나이도 비슷해 보일 만큼 스트립계에서 늙다리가 된 캐시디도 랜디가 싫지 않았는지 최고의 손님으로 모신다. 어쨌든 어렵사리 번 돈을 죄다 여기와서 탕진하고 가는 랜디. 


여전히 올드팬들에게 인기 만점인 랜디는 이벤트 기획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듣는다. 과거 전성기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아야톨라와 20년만에 재대결을 치루자는 것. 이에 랜디는 흔쾌히 승낙하고 몸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레슬러와 초엽기 하드고어 레슬링을 펼친 랜디는 승리 후 락커룸에 들어와 온 몸의 상처를 치료한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향하던 랜디는 갑작스레 온 심장마비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한 랜디는 의사로부터 두 번 다시 레슬링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는다. 이에 레슬링복을 버리며 삶의 유일한 낙을 포기하는 랜디. 그는 비싼 병원비 지불에 자신의 딸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가 돈을 댔다는 것을 알게 된다.


<WWE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잔혹한 리얼 레슬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랜디에게 고질적인 고민이 하나 있다면, 바로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는 딸 스테파니와 어떻게든 화해하는 것이다. 과거에 레슬링에 미쳐 가족도 버리고 달아난 랜디였기에, 하나뿐인 딸은 무책임했던 아빠를 극도로 미워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이제 심장마비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이 그리워진 랜디는 용기를 내어 스테파니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여전히 저기압인 스테파니는 랜디를 용서하지 않는다. 


딸을 만나고 상심만 하고 돌아온 랜디는 캐시디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에 캐시디는 선물을 사줘보라는 조언을 해주고, 랜디는 캐시디의 조언에 따라 옷가게에서 선물로 줄 옷을 산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 랜디는 그렇게 캐시디에게 은근슬쩍 작업을 걸고, 캐시디도 그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만 손님과는 절대 사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며 그렇게 도망치고 만다. 


레슬링도 접고 이제 동네 슈퍼에서 잡일하면서 살아가는 랜디. 다시 용기를 내어 스테파니를 만나러 가고, 꼬까 옷을 선물하면서 조금씩 스테파니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리고 옛 추억이 떠오르는 장소를 거닐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부녀. 결국 랜디는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앞으로 잘 해보자며 주말에 저녁식사를 약속하는 두 사람. 


딸과의 화해도 잘 되었겠다, 슈퍼에서 일하는 맛도 재미있겠다 싶어 자신의 변한 삶이 마냥 행복한 랜디. 그는 캐시디에게 가서 자랑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서툴렀던 것일까? 그만 너무 오바해서 캐시디와 다투게 된다. 레슬링이 그리워 후배들의 경기장을 찾은 랜디는 뒤풀이에서 너무 삘받아서 그만 자신의 팬이라는 여자와 마약도 하고 홀라당 자버리고, 뒤늦게 깨어나서는 딸과의 약속을 잊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급하게 스테파니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마음 단단히 돌아선 스테파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절규의 소리를 들은 랜디는 그렇게 쫓겨나고, 다시 인생의 좌절을 맛보면서 랜디는 집으로 돌아온다.


<심장수술을 받는 랜디. 그런데 심장보다 얼굴 상태가 더 안 좋은 듯...>







#3. 오로지 미키 루크만이 할 수 있었던 배역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휴먼 다큐 어쩌구 눈물 쥐어짜내고 그런 식의 뻔한 스토리는 안 보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관이다. 이 작품도 사실 막판에 약간의 눈물방울 분사를 요구하는 구조이기는 하다. 하지만 필자가 왜 스스로에게 모순을 안겨주면서 이 작품을 보았는가!! 실망하려고? 아니다. 오히려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미키 루크라는 배우 단 하나 때문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통해 미키 루크는 최근의 영화팬들에게 새롭게 회자되었었는데, 그 이유는 미키 루크의 삶이 자신의 배역이었던 랜디 더 램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나이 어린 관객들은 미키 루크가 뭐하던 사람이야 하고 궁금해하실 텐데, 여기서 잠깐 미키 루크의 바이오그래피를 떠듬어보고 지나가겠다. 1956년에 태어난 미키 루크는, 1979년에 <1941>이라는 영화를 통해 데뷔하여, 이후 <나인 하프 위크>와 <와일드 오키드> 등의 영화를 통해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단 더럽게 잘생기고 쌔끈하게 빠진 몸매와 외모, 그리고 조니 뎁을 능가하는 섹시한 수염, 게다가 화려한 패션 감각. 그야말로 헐리우드의 섹시가이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갖춘 배우였더랬다.


<왕년의 미키 루크. 섹시가이의 i-Pod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토록 잘 나가던 미키 루크는 영광도 잠시, 곧 나락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데, 그 시작은 바로 그가 취미로 시작한 아마복서 생활이었다. 그는 영화 데뷔 전부터 아마복서로 활약하면서 뛰어난 권투실력을 자랑하였는데, 문제는 배우가 된 이후에도 그 취미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계속했던 것. 아마에서 어느 정도 전적이 화려했던 탓에 그는 배우라는 유명세를 등에 업고 1991년에 프로복서 데뷔전까지 치르기도 하였지만, 아무리 전적이 좋았다 한들 무엇하나? 배우의 생명은 얼굴인데, 그 얼굴을 샌드백 후려치듯 얻어터지고 으깨졌으니 결국 최고의 자산을 쓰레기통에 꾸겨버린 셈. 


복싱으로 인해 망가진 얼굴을 고치기 위해 결국 미키 루크는 엄청난 성형을 시도하였으나, 과도한 성형은 결국 자신을 제 2의 마이클 잭슨으로 만들어버렸더랬다. 성형 중독과 부작용으로 인해 얼굴이 심히 오크스러워졌던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권투때문이었을까? 워낙 성질도 더러웠고, 게다가 술에 쩔어 살면서 이 여자 저 여자 마구 덮쳐대서 여성편력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던 바람둥이 터프가이였다. 


그러다가 88년에 데브라 포이어와 결혼하지만 이후 92년에 케리 오티스와 재혼, 그리고 개 같은 성질 못 참아서 케리 오티스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98년에 결국 이혼을 하지만 이미 그 때의 미키 루크는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 동안 벌어두었던 돈은 엄청난 성형과 방탕한 생활, 그리고 자신이 운영했던 복싱체육관 운영에 모두 쏟아 부었었고, 하나도 제대로 관리된 것이 없다 보니 거의 알거지 신세가 되었던 것. 복싱도 은퇴했던 상황이라 그는 더 이상 돈벌이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팬들은 그를 질타할 뿐이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미키 루크는 그렇게 사라져만 갔다.


<이렇게라도 해서 먹고살아야지 별 수 있나>



#4. 미키 루크의 화려한 컴백과 인생 대역전


이후 미키 루크는 돈벌이를 위해 몇몇 인디 영화에 출연하며 겨우겨우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았는데, 이를 보다 못한 한 사람이 과거의 미키 루크를 재건하기 위해 엄청난 배역을 그에게 제시하게 된다. 미키 루크는 그 작품으로 인해 새로운 연기를 선보이면서 제 2의 전성기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프랭크 밀러 원작의 <씬 시티>였다.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맡은 배역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신의 애인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독고다이 액션을 펼치는 마브 역이었다.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하였을 때 과연 누가 괴물같이 생긴 마브 역을 맡을 수 있을까 하고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이 고민하고 있었을 적에 그 적임자로 단 한 사람, 바로 미키 루크밖에 없다고 강추한 인물이 다름아닌 원작자 프랭크 밀러였다고 한다. 그래서 프랭크 밀러와 쿠엔틴은 인생에 좌절하고 있었던 미키 루크를 찾아가 수 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겨우 출연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씬 시티에서 전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른 외모와 연기를 선보인 미키 루크는, 그의 화려했던 과거 뒤에 쌓인 불명예적인 좌절과 함께 재기라는 타이틀이 믹스되면서 작품의 새로운 히어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흥행에 맞물려 미키 루크는 헐리우드에서 다시 주목해야될 인물로 꼽혔고, 미키 루크는 이 일을 계기로 과거의 슬픔을 떳떳하게 털어내고 흉측해진 외모를 부끄럼없이 드러낸 채 새로운 배우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된다. 


자, 미키 루크라는 배우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이제 이해가 좀 되시는가? 하여간 헐리우드에서 한 때 휘파람 좀 불었다 싶은 남자 배우들은 하나같이 술과 여자로 인해 인생 망치는데, 미키 루크가 딱 그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표본이었던 것. 하지만 미키 루크는 그에 좌절하지 않고 뒤늦게나마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물론 그 스스로가 택한 재기는 아니었고, 순전히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와 <씬 시티>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씬 시티를 보면 원작의 마브와 200%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미키 루크를 보고 있노라면 저게 정말 미키 루크 맞아? 싶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실제 매치였다고 하면 믿을까?>



그래도 어쨌든 미키 루크는 그 한번의 계기로 스스로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재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부분에 있어서 영화 속에서의 랜디 더 램이 막판에 다시 링 위에 서는 것과 똑 같은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미키 루크는 나이도 많이 먹은 상태이고, 몸도 확실히 예전같지는 않다. 더욱이 그의 외모는 더 이상 과거의 그의 수려했던 외모가 아니다. 정말 어디서 실컷 얻어터지다 온 오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미키 루크는 그 천재적인 연기력과 열정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더랬다. 그러했기에 다시 헐리우드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악평으로 거론되었던 자신의 이름을, 이제는 재기의 사나이, 불명의 명 배우 미키 루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작품이 미키 루크의 실제 삶과 100% 동화된 스토리를 보여준다고 해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미키 루크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재기의 의지, 즉 그의 꺼지지 않은 연기력과 열정을 700% 분출하였다는 데서 더 큰 가치가 있다 하겠다. 



#5. 100% 리얼을 지향한 배우들의 투혼


이 작품은 전적으로 레슬러의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레슬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노령 세대로 접어든 미키 루크가 과연 레슬링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무리 과거에 복서였다고 해도 복싱과 레슬링은 전혀 다른 운동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우려와 달리, 미키 루크는 스턴트맨 없이 모든 배우가 직접 레슬링을 펼칠 것을 주문하였다. 자신 스스로도 유명 프로레슬러와 격투가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하며 실전기술을 익혔고, 작품 내내 등장하는 모든 레슬링 경기 장면을 직접 찍는 투혼을 발휘하였다. 특히 망가진 몸을 되살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정말 늙은 레슬러다운 몸을 만들어냈고, 진짜 레슬러들과 똑 같은 기술과 마인드를 가지고 레슬링에 임했다고 한다.


<표정이 살아 있는 저 연기를 보라.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 오지 않는가>



여기에는 엄청난 에피소드가 있는데, 정말 리얼한 레슬링 경기를 위해 관중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관람객들을 모아놓고 컷 사인 없이 경기를 펼쳤다고 한다. 특히 영화 속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랜디와 숙적이였던 아야톨라와의 경기는 2008년 3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Ring of Honor” 이벤트로 실제로 치뤄졌고, 그 때의 열기와 함성이 그대로 필름에 담겼다고 한다. 


100% 리얼한 액션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런지 경기 중의 미키 루크의 얼굴과 표정은 정말로 그가 실제로 느끼고 말하고 싶은 모든 것 같다. 연기가 아닌 실제라는 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에 링 기둥 위에 올라서서 고통을 참으며 다이빙 할 때의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감동적이고 실제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6.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감각적 작품


이 작품이 연출에 있어서 실제의 레슬링 경기를 담았다는 것 말고도 뛰어난 부분은, 바로 일상에서의 랜디의 모습을 너무도 인간적으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록키 발보아>에서 이미 늙어버린 록키의 모습을 참으로 인간적이고 솔직담백하게 잡아낸 부분이 상당히 인정을 받았었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몇 배는 더 능가하는 듯한 수준이다. 


인간극장을 따라하듯 카메라가 미키 루크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발걸음, 숨소리, 표정, 행동 하나하나 세세한 것 모두를 잡아내고 있다. 특히 그가 거칠게 내몰아 쉬는 숨소리는 그야말로 리얼 다큐의 백미. 정말로 연기인가? 아니면 정말로 저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미키 루크의 연기는 리얼을 방불케 한다. 보통 연기라면 나름 꾸미고 하는 것이 있을 텐데, 도무지 이 작품에서는 꾸밈이 드러나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적적하게 살아가는 랜디의 삶이 마치 우리의 실제 삶처럼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가 느끼는 고독과 좌절, 슬픔, 그리고 링 위에서의 희열, 그 모든 것이 실제 우리의 삶의 일면인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이런 랜디의 일상에서 무언가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필자는 랜디가 일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필자가 잠깐 아일랜드를 갔었을 때 느꼈던 하루하루의 느낌이 랜디가 보여주는 일상과 너무나도 쉽게 오버랩되었던 것. 뭐라 형용하기는 힘들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 모르게 너무도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랜디의 모습이 마치 아일랜드에서의 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반적인 분위기가 닮아서일까? 필자도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리고 너무도 사실적이다. 


이 작품이 개봉된 이후 미국에서는 놀라운 찬사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미키 루크의 연기와 열정에 감동한 듯 하다. 마치 마지막에 링에 서서 관중들로부터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오직 팬”이라는 말을 하듯 미키 루크 자신도 이 작품을 통해 팬들에게 똑 같은 말을 내뱉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겠다. 작품 속에서 랜디는 링 위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키 루크도 그런 열정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건이다. 이미 미키 루크는 여러 작품에 출연이 내정되어 있다. 특히 초 기대작 <아이언맨 2>에서 과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초섹시 수염을 장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기가톤급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7. 화려하진 않지만 멋진 배우들


너무 미키 루크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는데, 하긴 이 작품에서 주연급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나마 여 주인공인 캐시디 역의 마리사 토메이를 보자면, 이 여자 나름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한데도 웃통 홀딱 벋고 섹시한 자태를 뽐내주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정말 눈망울을 촉촉히 젹셔주시는 관대함을 선사하시니,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기를 보여주는 마리사 토메이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거에 딱히 유명한 작품에 출연한 것도 아닌데, 이번 작품에서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어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언뜻 보면 늙은 제니퍼 애니스톤을 연상케 하는 마리사 토메이>



미키 루크의 딸로 등장한 스테파니 역의 에반 레이첼 우드. 전혀 미키 루크랑 닮은 구석은 없지만, 암튼 딸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 아닌가? 표정은 살짝 시니컬하면서 어두운 구석이 있고, 화장이라던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참 다크해 보인다. 뭘까? 이 다크한 포스는… 이 배우의 놀라운 이력이 있는데, 바로 세기말 정신분열 호러 뮤지션 말린 맨손…아니, 마릴린 맨슨의 여친 되시겠다!!! 항상 충격적인 영상미와 퍼포먼스로 락의 새 지평을 열고 다니는 마릴린 맨슨의 여친이라니, 말 다했다. 정말 마릴린 맨슨과 비슷한 포스를 필름 속에서도 보여주고 계신다. 


이력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는 것. 특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극 중에서 열혈 레슬링을 펼치는 많은 배우들. 특히, 랜디와 하드고어 레슬링을 펼치는 투혼을 보여준 산타 수염의 대머리 배우가 참으로 인상깊다.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면서까지 보여준 연기. 밥 먹다가 보면 구토 나올 지경이다. 정말로 호치키스를 온 몸에 박아넣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아무튼 실제 연기라면 그야말로 킹왕짱!!


<저 시체같은 표정과 얼굴빛,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다크 포스는 바로...>



정말 간만에 건진 걸작 휴먼다큐 영화인 <더 레슬러>. 뻔할 것 같지만 뻔하지 않은 가슴뭉클한 스토리와 미키 루크의 놀라운 연기 투혼은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고독한 사나이라면 한번쯤 꼭 봐야 할 영화. 그렇다고 보고 나서 썸머 슬램 하겠다고 깝죽대다가 허리 나가면 책임 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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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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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Heat)

Movie 2016. 2. 17. 15:14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히트 (Heat)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선하고, 누군가는 악하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반드시 올바른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악한 사람이 반드시 잘못된 삶을 보여주지만은 않는다. 홍길동과 로빈 후드를 보더라도 그들은 비록 약탈이라는 악한 짓을 했지만, 삶의 방식이나 목적은 참으로 선한 것이었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기준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개념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러한 딜레마를 겪게 된다. 무엇이 과연 더 나은 삶일까? 여기 그러한 딜레마를 품고 사는 두 명의 사나이의 이야기가 있다. 범죄라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가정은 파탄지경까지 몰고 가는 열혈 형사와, 비록 먹고 살기 위해 은행을 털지만 낭만적인 사랑도 하고 세상을 똑바르게 바라보고자 하는 정의파 범죄자. 이 두 사나이의 대결과 우정을 그린 초절정 서스펜스 액션 로드무비 <히트>!! 영화 제목처럼 흥행에서도 대박 히트를 친 <히트>를 리뷰하고자 한다.


<뭐가 뜨겁다는 건지 궁금증을 잔뜩 불어일으키는 포스터>



#1. 스토리 - 두 남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우정


그럼 작품을 해부하기 전에 먼저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노레일역. 진지한 표정의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닐 맥컬리(로버트 드니로). 그는 이어 근처의 병원으로 들어가 의사인척 흉내를 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앰뷸런스를 훔쳐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이번에는 긴 머리를 휘날리는 건장한 사내가 철물점 비슷한 곳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 쉬헐리스(발 킬머). 그는 이상한 도구들을 구매하고는 그 즉시 자리를 떠난다. 


한편 침대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LA 경찰국이 자랑하는 만능범죄해결사 빈센트 한나(알 파치노) 수사반장이다. 빈센트는 이혼 후 두 번째로 만난 부인 저스틴 한나(다이안 베노라)와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저스틴의 딸인 로렌(나탈리 포트만)에 대해서는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0점짜리 가장. 빈센트는 늘 업무상 호출이 있으면 만사를 팽개치고 달려가기 바쁘다. 


한편, 닐의 동료인 마이클 셰리토(탐 사이즈모어)는 알바로 고용한 와인그로(케빈 게이지)를 데리고 닐이 주도한 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닐, 마이클, 크리스, 트레조(대니 트레조), 그리고 알바생 와인그로가 꾸미는 계획은 바로 현금수송차량 탈취 작전. 완벽한 계획으로 인하여 성공적으로 차량 내에 있던 모종의 채권을 회수하지만, 개념없는 알바생 와인그로가 욱하는 바람에 수송경비원을 사살하는 사고를 치고 만다. 어떠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살인만은 하지 않는 것이 모토인 닐의 작전에 찬물을 끼얹고 만 와인그로는, 이 자그마한 실수가 엄청난 사태를 몰고 올 것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천재적인 감각과 냉철한 상황판단은 100점, 하지만 가정관리는 0점인 빈센트 한나>



사건 현장에 도착한 빈센트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감각으로 사건의 세부 항목을 추리하고, 부하인 드러커(마이켈티 윌리엄슨)와 카잘스(웨스 스터디)를 시켜 의심가는 곳을 전부 조사하도록 시킨다. 그리고 사건 당시 주변에 있던 거지로부터 “촉새”라는 호칭을 들었다는 결정적 제보를 얻고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한편 작업을 끝낸 닐 일행은 작업판을 깽판으로 만든 와인그로를 작살내려다 순간의 방심으로 놓치고 만다. 와인그로는 그렇게 줄행랑을 치고, 이를 놓친 닐 일행은 결국 각자의 몫을 챙기고 흩어진다. 한편 닐이 신임하는 크리스는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개념없는 인간. 그래서 초절정 미인 마누라 샬렌(애슐리 쥬드)을 두고도 매번 개망나니 짓만 하고 다닌다. 그래도 매번 이 둘의 사이를 챙겨주는 것은 따뜻함 마음씨를 가진 닐이었던 것. 그러한 닐이기에 언뜻보면 절대 범죄자처럼 생기지 않고, 젠틀한 아저씨처럼 생겼더랬다. 그래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여인 이디(에이미 브랜먼)를 보고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 늙다리 아저씨와 젊은 처자의 만남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겠지만, 어쨌든 닐은 이게 왠 봉이냐 생각하며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만남을 발전시키게 된다. 


닐이 달콤한 사랑에 취해 있을 때 빈센트는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으니. 온갖 정보력을 동원해 결정적 제보를 할 수 있다는 사람을 찾아 갖은 협박을 가한다. 그것이 빈센트만의 노하우였던 것. 이번에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깨끗한 인품과 마인드로 완전범죄의 새 지평을 연 또 하나의 천재 닐 맥컬리>



한편 도널드(데니스 헤이스버트)라는 가석방 죄수가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햄버거 가게를 찾는다. 이 친구 알고봤더니 닐과 교도소 시절 알고 지냈던 사이. 이제는 손 씻었다며 여친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개과천선형 인간이 되었다. 반면 아직도 개과천선이 까마득한 크리스를 위해 닐은 직접 찾아가서 샬렌과 화해를 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샬렌이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샬렌도 평범한 삶을 원했던 것. 


노하우를 통해 결정적 제보자를 찾아간 빈센트는 또 협박과 폭력을 행사해서 모종의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지인의 이름이 마이클 셰리토라는 결정적 제보를 얻게 된다. 조사 결과 엄청난 흉악 범죄자였던 것. 이로 인해 닐 일행의 정체를 서서히 밝혀가는 빈센트. 


이러한 사실도 모르는 닐은 일단 지난 번 범죄에서 얻은 채권을 로저 반 잔트(윌리엄 피츠너)라는 자에게 팔 것을 제안한다. 원래 주인이던 반 잔트는 결국 채권회수를 위해 닐과 거래할 것을 약속하지만,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닐을 죽이려는 반 잔트의 하수인들. 결국 사태를 수습하고 위기에서 탈출한 닐은 반 잔트에게 배신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할 것을 당부한다. 


어쨌든 채권도 그래도, 돈까지 덩달아 챙긴 닐 일행은 돈을 나눠가지며 가족들끼리 회포를 푸는 시간을 마련한다. 모두 가족이 있지만 혼자 홀아비인 닐. 결국 이디에게 전화를 해서 그 외로움을 달랜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빈센트와 강력수사반원들. 모든 멤버들의 신원을 파악했지만, 유독 닐에 대해서만은 정보가 없었던지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놀라운 직감의 빈센트답게, 이 자가 실질적인 두뇌가 아닌가 하고 눈여겨보게 된다.


<만나는 남편마다 어딘가 심히 부족한 비운의 여성 저스틴 한나. 필자의 이상형인 이OO과 심히 닮았다!!>



어쩌다 운 좋게 도망친 와인그로는 여전히 정신줄 못 놓고 콜 걸이랑 놀아 제끼다가 결국 그 성질 못 버리고 콜걸을 살해하고 만다. 이 때문에 빈센트는 사건 현장 분석을 통해 와인그로의 실마리도 잡아가게 된다. 하지만 빈센트를 원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빈센트의 새 마누라인 한나. 한나는 갈수록 방황하는 딸 로렌과 겉으로만 맴도는 빈센트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든 여인. 결국 빈센트 앞에서 고민을 털어내고 만다. 이에 빈센트도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위로는 커녕 서로 상처만 주고 만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닐 일행. 돈이 궁했는지 다시 큰 건수를 하나 시작했다. 야밤에 금고를 터는 일. 이번에도 계획대로 척척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빈센트가 몰래 숨어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금고를 터는 순간 현장범으로 체포할 생각으로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그만 부하의 실수로 소리가 나게 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닐이 그대로 작전을 포기하고 돌아가 현장범으로 체포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하여 닐도 누군가가 자기들을 쫓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사실 알 파치노가 이토록 강인하게 등장한 적은 이 작품 전후로도 없었던 것 같다>



한편 크리스의 마누라인 샬렌의 새 남친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 빈센트는 그자를 이용해서 샬렌에게 협조를 권유하고 이를 통해 크리스를 잡을 수 있도록 작전을 꾸민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즐비한 부두에서 모종의 계획을 꾸미는 듯한 닐의 일당들을 몰래 감시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곳에서 무슨 계획을 꾸몄는지는 몰랐던 빈센트. 그들이 있었던 장소에 가서 나름 롤플레잉을 통해 닐의 생각을 따라가려 하지만, 이내 빈세트는 그것이 닐의 함정임을 알게 된다. 바로 그것은 빈센트의 얼굴과 정체를 알고 싶었던 닐의 감쪽같은 속임수였던 것. 이렇게 해서 드디어 그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뛰어난 능력과 직감에 감탄해 마지 않게 된다. 


제대로 뚜껑 열린 빈센트. 이제 까발려질 대로 발려졌으니 잃을 것이 없었던 그는, 기어이 닐의 차를 쫓아 그 뒤를 달리게 된다. 도로에서 닐의 차를 멈춰 세우고 자신을 소개하며 따라올 것을 권유하는 빈센트.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둘은 범죄자와 형사로서의 신분을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솔한 얘기를 나누게 되고, 서로의 처지와 고민거리를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둘은 어느덧 라이벌로서의 우정이라는 것이 샘솟게 된다. 반드시 닐을 자기 손으로 잡고 말겠다는 빈센트, 그리고 끝까지 잡아보라고 하는 닐. 그 둘은 그렇게 운명적인 만남을 뒤로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 돌아온 빈센트는 그 모든 것이 닐의 계략이었음을 알고, 닐의 일행이 모두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한 방 제대로 먹은 빈센트.


<라이벌이자 친구라는 모순적 관계를 맺게 되는 두 사나이. 어쩌면 둘에게는 서로가 필요했단 사이였는지도>



한편 닐에게 협박으로 시달리는 반 잔트에게 용병 경호원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알바 전문 와인그로. 와인그로는 닐을 잘 안다면서 반 잔트를 안심시키고 특별 경호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닐이 빈센트를 속이면서까지 계획했던 작전은 바로 은행 털이. 대낮에 은행에 쳐들어가서 금고에서 돈을 닥치는 대로 긁어 모으고 나온다는 간 큰 작전이었던 것. 양복 차림에 완전군장이라는 엽기 패션으로 은행을 성공리에 턴 닐과 일행들. 하지만 직감적으로 은행을 털 것을 느꼈던 빈센트는 급히 은행으로 향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썩소를 날리며 은행을 나오는 셰리토와 마주치면서 대낮 시가지 총격전이 펼쳐지게 된다.


대테러 진압 작전을 능가하는 무수한 총격적인 이루어지고, 여러 시민과 경찰이 사상하는 가운데, 햄버거 가게 때려치우고 한탕 노리던 도널드가 운전수 역할 하다가 총알 세례를 받고 세상 하직하고, 닐의 일행인 셰리토가 빈센트의 일격에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도 목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지만, 닐의 도움으로 겨우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병원에서 겨우 응급처치를 받은 크리스는 닐의 말에 따라 샬렌에게 가기로 하고, 닐은 미행때문에 작전에서 빠졌던 트레조를 만나러 갔다가 그가 거의 묵사발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트레조를 개떡으로 만든 범인은 바로 와인그로. 닐은 친구 트레조의 고통을 마감시켜 주고, 와인그로에게 복수의 칼날을 세우게 된다. 먼저 목표는 반 잔트. 그의 별장에 침입한 닐은 반 잔트를 친히 자연으로 회귀하게 만들고, 와인그로를 작살내기 위해 뒤를 쫓는다.


<양복 차림에 완전 군장이라는 테러 패션의 새 지평을 연 시가지 총격전 장면>






<참 싸가지없게 나오지만 차세대 액션 스타로서의 입지를 마련한 발 킬머>



#2. 두 캐릭터가 선보이는 선과 악의 모호한 설정


장장 180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자랑하는 히트의 스토리를 알아보았다. 어느 한 부분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핵심만 간추린다고 해도 상당한 분량이 된다. 그만큼 아주 탄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압권인 작품.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첫째,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와 캐릭터간의 관계, 둘째, 실전을 능가하는 초절정 총격 액션, 셋째, 초호화 캐릭터들의 무더기 등장. 이 중에서 먼저 사나이의 심금을 신라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울리는 스토리를 평가해 보자.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은 닐과 빈센트라는 너무도 상반되는 두 캐릭터간의 관계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 범죄자이지만 애정많고 마음씨 좋고 젠틀한 닐, 그리고 강력계 형사이지만 0점짜리 아빠에 무뚝뚝하고 과격하기 짝이 없는 빈센트. 참으로 역설적인 두 캐릭터의 갈등은, 범죄자와 형사라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의 연결 고리 속에서도, 서로의 단점을 통해 위안을 삼고 위로해주는 보완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특히, 빈센트가 닐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그 어떠한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오랜 친구 같은 두 사람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듯한 그리운 감정이 느껴진다. 원래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닐을 예의주시했던 빈센트는 그가 역시 보통 범죄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라이벌의식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떠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닐 역시 자신을 쫓는 빈센트를 통해 긴장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닐이 웃으면서 빈센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래서 늙다리 남자랑 함부로 사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교훈을 선사한 이디>



어쨌든 닐은 결국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을 하게 된 것이고, 빈센트는 불행 끝에 겨우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게 됨으로써 서로 모두 제로 상태로 수렴하게 되는 듯 하다. 그 때문에 누가 더 잘 났고 못 났는가, 누가 더 행복했고 불행했는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무승부로 나게 된다는 것. 그렇더라도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약간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에는 어쩔 수 없었던 처사인 듯. 



#3. 역대 최고의 도심 총격씬


두 번째로 꼽은 초절정 액션 장면은 그야말로 감독인 마이클 만의 주특기. 그 중에서도 <히트>에서 그려진 시내 총격적인 최고의 연출을 자랑한다. 모든 배우들이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장감 속에서 연기를 펼쳐냈고, 실제와 동일한 총기를 사용해 실탄이 튀고 차량이나 건물이 부서지는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게다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바로 뛰어난 음향효과. 실제 총이 발사될 때의 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크다. 군대 다녀온 대한민국 남아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필자처럼 사격장에서만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그 커다란 총소리가 그리운 법. 아무튼 영화에서는 이러한 총 소리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일부러 줄여서 녹음한다. 그렇기 때문에 총격전 상황에서도 배우들이 떠들고 자시고 하는 등의 엽기적인 행각이 가능하고, 더욱이 관객들이 아주 차분히 액션신을 즐길 수 있었던 것. 하지만 히트에서는 100% 여과없이 실제 현장의 소리를 담았기에 엄청나게 울려퍼지는 총 소리를 정말 실감나게 들을 수 있다. 5.1채널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그야말로 내가 시가전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있을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준. 히트의 액션신은 이후에도 능가하지 못했던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손꼽히는 정말 대단한 명장면이다.


<당시 미모로 따지면 베스트 순위에 드는 애슐리 쥬드>



#4. 엑스트라마저 후덜덜한 캐스팅


세 번째로, 초호화 캐릭터들의 벌떼스러운 캐스팅. 배트맨 다크나이트에도 유명 배우들이 벌떼같이 등장하지만 그처럼 까메오 연출은 아닌 순수 메인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이 <히트>의 매력. 


카리스마 배우로 양대 산맥을 자랑하는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함께 등장하는 것만 해도 이미 이 작품은 기가톤급 블록버스터였더랬다. 거기에 당시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고 있던 발 킬머를 비롯해 초절정 조연배우 탐 사이즈모어와 개성파 배우 대니 트레조가 등장하고, 미모 하면 저리가라 할 정도의 애슐리 주드와 나탈리 포트만이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남자들의 눈동자를 즐겁게 해줬더랬다. 여기에 존 보이트, 다이엔 베노라, 웨스 스터디, 윌리엄 피츠너, 톰 누난 등이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감칠맛나는 연기까지 모두 개성있게 소화해줘 그야말로 조연마저도 빛나는 영화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 작품이 배우들에게 끼친 영향도 매우 큰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알 파치노가 보여준 독선적이고 강렬하면서 냉철한 형사의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던지, 이후의 액션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보여주는 역할이 빈센트 한나와 거의 비슷하다. 냉철하고, 놀라운 본능적 직감을 가지고 있으며 초절정 카리스마로 일을 처리하는 무서운 탈을 쓴 선의 집행자. 알 파치노를 명 배우로 탈바꿈시켜 준 <대부>에서도 이토록 차갑고 무서워보이지는 않았더랬다. 하긴 그때는 이토록 빼빼마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차가워지고 강렬해지는 눈빛과 카리스마는 알 파치노를 필자의 3대 명 배우 중 한명으로 꼽게 만든다. 


로버트 드니로도 요새는 푸근한 아버지 역할로 자주 나오는 듯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덕에 이후에도 종종 비슷한 열혈 캐릭터를 많이 맡았더랬다. 하지만 확실히 알 파치노와는 달리 어딘가 정감있고 여유있는 카리스마를 보여줌으로써 확실히 <히트>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캐릭터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범죄자라고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인정많은 닐>



#5. 액션+우정+감성 = 대박 히트


히트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 영화 중 가장 감각적인 스토리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특히나 엔딩 장면을 수놓은 닐과 빈센트의 공항 신은 최고의 엔딩장면 베스트 순위에 뽑히기도 하였을 정도로 감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싸움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이라는 단어를 여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진하고 감동적인 우정은 없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은 그 진하고도 안타까운 우정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거의 띠동갑 커플이지만 둘은 은근히 잘 어울린다. 어쩌면 티격태격해도 그것이 천생연분일지도>



어쩜 이토록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면, 그 중심에 마이클 만 감독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친구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워낙 많은 작품을 만든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이긴 하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친구의 작품은 대부분이 범죄자와 형사 혹은 특수요원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퍼블릭 에너미>, <콜래트럴>, <FBI>, <인사이더> 등의 작품을 보면 우습게도 <히트>와 비슷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풀어나가는 내용이나 구조는 전혀 다르지만, 이 감독은 서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간의 관계에서 갈등이 아닌 다른 요소로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을 재미로 삼고 있는 듯싶다. 


그리고 <라스트 모히칸>을 비롯해 몇몇 액션신이 강렬한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감독의 특징 중 하나가 정말 리얼한 액션이다. 일단 밋밋한 액션은 절대 배제를 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마이클 만이 만드는 작품이라면 액션에 있어서는 기대해 볼만 하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에는 <핸콕>을 만들어서 이 친구 SF와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원래 태생은 철저한 드라마를 추구하는 감독이다. 특히 <알리>에서 보여준 감동 실화는 이 감독이 어떠한 작품을 만들던지 나름의 감동 철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감동과 여운이 남는 감각적인 액션영화가 되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시가지 총격전 장면. 정말 대단하다!!!>



#6. 오직 사나이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코드


이 작품을 필자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멋진 야경과 고독한 선율이 울리는 영상미. 고독과 야경이라는 두 가지 코드를 너무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이 두 가지 요소는 그야말로 백미라고 할 수 평할 수 있겠다. 닐과 이디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라던지, 고독한 느낌을 듬뿍 선사해주는 야경의 시퀀스는 그야말로 환상적. 이 때문에 더더욱 사나이들의 고독을 필자가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빈센트가 닐을 쫓기 위해 헬기로 도시의 밤 하늘을 나는 시퀀스는 그 감각적이고 고독한 특유의 연출 탓에 <공각기동대>에서 오시이 마모루가 차용했을 정도로 매우 감각적인 영상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빈센트의 고독이 물씬 풍기는 시퀀스. 한편 오밤중에 코리아타운 나들이 인증하고 있는 빈센트>



일생을 살면서 과연 나에게는 닐과 빈센트의 관계 같은 특별한 친구가 있을까? 필자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늘 고민해 본다. 옛말에 “인생에 있어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명의 친구라도 만든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하였다.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의 고사도 그러한 것을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닐과 빈센트도 서로의 신분과 처지를 초월하여 서로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둘은 마지막에 진정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필자도 그러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을 하나의 소망으로 삼는다. 아니, 그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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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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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2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8인: 최후의 결사단 (十月圍城: Bodyguards And Assassins)



필자가 얼마 전 <엽문>이라는 중국 근현대사의 맥을 짚는 휴먼 다큐멘터리식 영화를 접하면서, 중국이 과거의 왕구라 황당무계 무협액션 영화에서 벗어나 보다 철학적이고 주제의식이 강한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내려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이번에 접한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도 처음에는 단순 액션영화인 줄 알았으나 오히려 엽문보다 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녹아들어있는 무거운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고 순간 움찔했더랬다. 영화 제목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스토리와 주제의식으로 진행되는 일명 섞어찌개식 난잡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에 대해서 리뷰해 보겠다.


<결사단은 커녕 거리의 거지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슬픈 이야기>



#1. 스토리 - 어지러웠던 중국 근대의 정세만큼 어지러운 주인공들의 막장 드라마식 결사의 향연


왜 필자가 섞어찌개식 난잡 영화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알아보고, 일단 스토리부터 짚고 넘어가자. 때는 1900년 초 청나라 말기, 외세의 침입이 득실거릴 때이다. 일찍이 한족의 나라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인 만큼 한족의 지식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식인 중의 한 명인 양구운(장학우)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중국의 근대화를 부르짖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의해 두뇌에 살포시 터널이 뚫리면서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한다. 이렇듯 당시의 중국은 근대화를 추구하는 혁명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청나라 조정의 암살자들간의 치열한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1906년 10월.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이러한 피바람의 전운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아무래도 청나라의 힘이 잘 미치지 못했었던 것. 그러다보니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인 손문은 홍콩에서 중국의 내노라하는 지식인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13성의 대결의’라는 것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에 이를 절대적으로 저지하려는 청나라 조정에서는 암살자 염효국(호군)과 일당을 홍콩으로 보내 손문을 척살할 것을 명한다. 손문의 홍콩 방문을 위해 미리 홍콩에 들어온 손문 서포터즈 넘버 원 진소백(양가휘)은, 손문 홍콩 무사 입성을 위해 서포터즈를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간 청나라 군대에서 배척당하여 연극단원으로 위장 후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던 방장군(임달화)를 만나 서포터즈에 가입시키고, 또한 절친이자 돈줄인 이옥당(왕학기)을 만나 또 다시 3천만 땡겨달라고 조른다. 그러면서 이옥당의 절세미남 아들인 이중광(왕백걸)을 꼬셔 서양학을 배우게 하고 은근 자신의 사상을 세뇌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사건의 원흉은 혁명이랍시고 설레발치는 진소백이다. 세월 앞에 무릎 꿇은 양가휘 형님>



한편 홍콩에 도착한 염효국은 돈벌이라면 온갖 심부름을 다 하는 무늬만 경찰 심중양(견자단)을 시켜 진소백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사하게 한다. 그러던 중 이중광이 서양 대학에 붙었다고 집안 잔치를 벌리는 이옥당의 집에 잠입한 심중양은 창문을 통해 달아나던 중 이옥당의 수많은 마누라 중 한 명인 월여(판빙빙)을 만나 과거에 묘한 인연이 있음을 암시하면서 자취를 감춘다. 


손문이 홍콩에 도착하기로 한 날이 이제 3일 정도 남았을 시점에서, 거리에서는 손문이 홍콩에 온다는 소식을 대거 보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동조하여 시민 혁명주의자들은 거리에서 전단을 뿌리며 중국 근대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전용 운전사인 아사(사정봉)가 모는 인력거를 타고 홍콩 거리를 싸돌아다니던 이옥당은 시민 혁명주의자 가운데 자신의 아들인 이중광이 있음을 알고 깜놀한다. 아들을 말리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에 저항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아들. 하지만 묘하게도 거리의 시민들은 이중광의 호소에 동조하며 근대화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화가 난 이옥당은 진소백에게 달려가 왜 자신의 아들을 끌어들였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진소백은 이옥당도 이미 혁명당의 일원에 가담되어 있다며 중국의 혁명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오로지 아들 출세하기만을 바라보며 살아 오던 이옥당에게는 피가 거꾸로 솟는 일. 


친구를 잃은 진소백은 무언가 짧은 편지를 남긴 후 거사를 치르기 위해 방장군의 극단으로 향한다. 하지만 심중양은 암살자 염효국의 심부름으로 미리 극단에 경찰이 없도록 조치하고, 암살자들은 느긋하게 극단에 쳐들어간다. 진소백은 줄행랑을 치고, 방장군과 그의 딸 방홍(이우춘)은 필사적으로 진소백을 보호하려 하지만, 딸이 더 아까웠던 방장군은 딸을 기절시켜 목숨을 건지게 하고 자신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방홍이 극단으로 달려오지만, 이미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단원들이 시체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뜬금없이 이옥당도 극단으로 달려와 단원 모두가 개죽음 당한 것을 깨닫고, 그 와중에 절친인 진소백의 시그네쳐 에디티드 펜슬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죽거나 혹은 납치당했음을 알게 된다. 


평소 진소백이 운영하던 중국일보 신문사에 온 이옥당은 진소백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발견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이옥당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혁명의 불씨를 일으켜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읽게 된다. 순간 사미부(증지위)가 경찰서장으로 있는 홍콩 경찰이 들이닥쳐 신문사를 폐쇄하고 모두 해산 명령을 내린다. 이에 열받은 이옥당은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혁명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할 것이라면서 일종의 선전포고를 내린다. 이에 감동받고 열혈지지하는 신문사 직원들.


<혁명가와 암살자가 스승과 제자라는 막장스러운 연결고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섞어찌개식 영화>



손문이 홍콩으로 오기로 한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이옥당은 드디어 손문 완벽 보호 작전을 위해 보디가드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보수 한 푼 없이 해야 하는 보디가드 역에 이옥당과 지인들이 합작하여 여러 듬직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니, 이 중에는 복수심에 가득 찬 방장군의 딸 방홍도 껴 있었다. 얼마 전 이옥당의 집안 잔치때 쌀 가마니를 얻어간 쵸두부 매점 주인인 거구의 사나이 왕복명(바특)도 합세하고, 그저 거리에서 동냥이냐 하면서 이옥당이 주는 돈으로 매번 아편만 펴대던 걸식도사 유욱백(여명)도 이옥당이 선물로 준 철부채에 감동하여 보디가드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매번 운전사 노릇만 하던 아사도 껴달라고 조르고, 이에 이옥당은 보답으로 아사가 사모하던 사진관 알바생 아손(조원)과 혼사를 맺어준다. 


한편 납치구금당한 진소백은 손문을 암살하려는 염효국이 자신의 과거 제자임을 알고, 그와 사상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오로지 황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된다는 막무가내식 철학으로 만민이 평등하다는 진소백의 철학을 개무시하는 염효국. 결국 사제간의 정을 끊고, 염효국은 대원들을 데리고 항구로 떠난다. 


손문 도착 하루 전. 이옥당은 여러 사람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야말로 한 순간의 실수와 여유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VIP 보호 작전.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대체 자신이 누구를 지켜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 이 작전을 위해 월여는 심중양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알고봤더니 심중양과 월여는 과거 연인사이였던 것. 하지만 심중양이 바다이야기(라 쓰고 도박이라 읽는다)에 빠지면서 집안을 말아먹고, 이에 월여는 그의 아이를 잉태한 채 이옥당에게 시집갔던 것이다. 결국 월여는 히든카드로 심중양과 자신이 낳은 딸래미를 꺼내고, 이에 제대로 쇼크먹은 심중양은 딸래미 크리에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줄 것을 결심한다.


<뛰어야 산다는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인력거 부대>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진소백은 자신의 배를 가르는 퍼포먼스를 손보이며 탈출에 성공하고, 유욱백과 술이나 쳐먹으면서 개똥철학이나 나누고 온 이옥당에게 달려와 겨우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소백은 모든 사람들에게 손문을 보호하기 위한 필사의 전략을 공개한다. 바로 누군가 한 명이 손문을 대신해 단 1시간동안만 홍콩 시내를 싸돌아 다니면서 암살자들의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작위 투표에서 손문 대리인으로 이중광이 뽑힌다. 


드디어 손문이 홍콩에 도착하는 날이 밝아오고, 진소백을 비롯한 보디가드들은 항구 주변에서 잠복 근무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미 암살자들은 거리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은 상태.





<도박쟁이가 알고 봤더니올라운드 무술 고수였다는 또 한번의 초특급 왕구라 설정을 보여주는 심중양>



#2. 주인공들이 개죽음을 불사하고 살리려고 한 극중 실존 인물 손문에 대한 고찰


스토리를 살펴보았는데, 뭐 결론적으로 줄창 아작나는 스토리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단 다 죽이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토록 필사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인물인 손문은 대체 누구이길래 지는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천국으로 보낸단 말인가? 


손문, 짱개 발음으로는 쑨원. 손중산이라고도 불리우는 사나이. 중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이름이다. 아니, 어쩌면 이 이름을 모르더라도 윤리도덕 시간에 ‘삼민주의’라는 것은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중국의 근대화의 이념이 된 삼민주의를 주창한 사나이가 바로 손문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손문은, 실제로 1905년에 동맹회라는 것을 창설해서 중국의 혁명을 위한 서포터즈를 구축하고 그 유명한 삼민주의를 주창한다. 그리고 6년 후인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나라를 쫑내고, 이듬해 중화민국을 수립한다. 


영화에서 그토록 대단한 무언가로 비추어졌던 혁명이 실제로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손문의 혁명은 씁쓸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중화민국 수립 후 임시 대총통이 된 손문은 일본의 괴뢰정부라 할 수 있는 만주국의 황제이자 중국 역사상 최후의 황제로 남은 부의(푸이)를 폐하면서 중국 고대사의 모든 잔존을 씻어내리지만, 곧바로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에 의해 혁명의 본질이 와해되면서 그와 대립하게 된다. 이후 동맹회를 국민당으로 개편한 손문은 위안스카이 타도를 위해 2차 혁명을 시도하지만, 이는 실패하게 되고 결국 그는 일본으로 도피한다. 이후 군벌과 협력 및 파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혁명을 위한 투쟁을 시도하지만 외세, 특히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국공합작을 하게 된다. 비록 이념은 달랐지만 일단은 외부의 적을 무찔러야 한다는 공통된 목적으로 뭉친 두 단체는, 치열한 투쟁 끝에 마침내 2차 대전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승리를 이끌어내고 말았지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내분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이후 손문의 후계자인 장개석(장제스)에 의해 더욱 발전한 국민당은, 모택동(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에 대항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고, 스탈린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공산당이 마침내 승리함으로써 국민당은 축출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은 혁명의 본질인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공산주의 사회로 거듭나게 되었고, 여전히 그 사상을 이어받은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쳐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로서 존속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대만은 여전히 사이가 아주아주 안 좋다.


<마이클 조던의 에어워크에 감명받아 하늘을 날고자 했던 한 암살자의 아름다운(?) 시도>



#3. 이 영화는 구라를 가장한 다큐인가? 다큐를 가장한 구라인가?


이토록 중국 근대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손문은, 대만에서는 국부로서, 그리고 중국에서는 근대혁명을 선동한 혁명선행자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품게 되는 의문이 있다. 손문이 이토록 언빌리버블한 위대한 실존 인물이라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를 아주아주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등장하는 설정이 바로 줄창 죽어나가는 결사대원들의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출신이 소개된다는 것. 그런데 정작 죽지 않아서 자막으로 소개되지 않는 핵심 인물 2명이 있는데, 그 둘은 바로 이옥당과 진소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옥당과 진소백은 실존 인물이다. 이옥당이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시작과 끝이 매우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소백이 지휘하는 동맹회에 자금을 대준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소백도 영화처럼 가치관적 모순을 드러내는 인물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혁명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친절하게도 설명이 주구장창 붙었던, 짧고 굴게 살다 갔던 나머지 결사대원들은 실존 인물이까 하는 의문. 나름 그럴싸하게 자막처리로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데, 사실 필자는 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지를 못했다. 일부는 실존 인물이었다고도 하고 일부는 아니라고도 하는데,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만약 실존 인물들이었다고 해도, 유욱백의 1:100 대결은 그야말로 오리지널 짱개식 초특급 구라 액션이었기에 도무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으며, 닌자 어쌔신을 능가하는 심중양의 전천후 대활약도 정말 대륙급 구라처럼 느껴진다. 


자, 그럼 여기서 영화의 제목을 슬쩍 건드려보겠다. 국내 개봉 제목은 <8인 : 최후의 결사단>이다. 왜 8인이지? 일단 자막처리로 나름 비장미 선사한 전사자들의 수를 세어보자. 방홍, 유욱백, 왕복명, 아사, 이중광, 심중양. 일단 6명이다. 여기에 이옥당과 진소백을 포함하면 8명이 된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8명을 주인공을 치고 제목을 지었나 보다. 하지만 원제는 十月圍城으로, 해석하면 10월에 성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애들 작명 쎈쓰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가보다. 그나마 가장 스토리에 부합되는 제목은 영어제목이다. 경호원들과 암사자들이라. 단순하지만 그나마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북한군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외모로, 자랑거리인 노래는 커녕 나왔다가 초상만 나고 마는 방홍>



원래부터 짱개영화 제목은 한자 다르고, 영어 다르고, 한글 다르기가 부주기수였다. 이번 작품도 어중간한 원제이다 보니 국내 배급사에서 또 한번의 작명 쎈쓰를 작렬해주신 셈. 뭐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4. 혁명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려한 정치적 작품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보면, 줄창 죽어나간 인물들이 왜 손문을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참으로 껄쩍지근하다. 손문이 위대하고도 중요한 인물인건 알겠지만, 그건 후세에 와서 그렇게 평가를 받는 것이고, 당시에는 과연 많은 사람들이 손문에 대해 그토록 잘 알고 있었을까? 여기에서 우스운 사실은, 목숨걸고 지키는 결사대들 조차 손문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세상 하직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의명분이 각각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떨어진다는 뜻. 예를 들어, 방홍의 경우에는 단순히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가담하게 되고, 결국 복수하다가 자기도 인생 하직한다. 심중양은 어떤가? 그는 애초부터 손문은 안중에도 없었고, 단지 월여의 딸래미 크리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옥당을 지키려고 나선 것이다. 쵸두부만 먹고 자라서 키가 홍만이형스럽다는 왕복명 역시 쌀 몇 자루 얻어먹었다고 나선다. 유공자로 나오는 유욱백은 거의 막장 수준이다.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누나인데 사랑을 할 수 없다하여 눈물로 질질 짜며 허송세월 보내다가 맨날 받아먹던 동전과 가보라는 철부채 공세로 인생뭐있어 하고 목숨 내놓은 유욱백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설정. 


손문은 마지막에 눈물을 글썽이며 이들의 죽음이 곧 혁명을 위한 필연적인 희생일 수 밖에 없음을 호소하려는 듯한 퍼포먼스를 펼치지만, 여기에는 혁명을 지나치게 과격하게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혁명이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줄기차게 일어난 사건으로, 나름 이데올로기나 시대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커다란 사건이 혁명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중국의 근대사에서도 손문의 신해혁명은 확실히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맞고, 이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잘 이해하고 있었던 손문을 비롯한 혁명가들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내세움으로써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혁명이 반드시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단지 피를 부르는 수많은 참가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수반된 어떠한 일련의 도전적 행위가 성공하여 변화를 가져왔을 때 혁명이라고 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손문의 신해혁명도 성공했기에 혁명으로 평가받아 왔겠지만, 만약 실패했었더라면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까? 아마도 그냥 손문의 반란 정도로 치부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손문이 추구하고자 했던 혁명은 과연 무고한 민중의 희생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혁명이었을까 한다면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필자가 손문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아는 바도 많지 않기 때문에 100% 정확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주주의의 개념을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바라보았던 손문이 과연 그러한 민주주의의 주인공인 민중을 줄창 죽여나가면서 혁명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이 작품을 위해 맨발의 기봉이를 10번 이상 답습했다는 사정봉. 믿거나 말거나>



반대로, 영화에서 이러한 희생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현대의 중국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일련의 정치적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은 현재 공산주의 사회이고, 공산주의는 사상의 핵심에 바로 혁명이 존재한다. 계급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투쟁을 통해 혁명을 쟁취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혁명에는 바로 무력이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강조한다. 알겠지만 모택동의 공산주의도 엄청난 유혈사태 끝에 달성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어두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혁명을 위한 희생은 숭고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재미있게도 영화가 제작된 2009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중국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중화인민사상을 합리화하고 더욱 굳건히 하자는 의도를 듬뿍 담은 수많은 문화예술 지원이 있었고, 그러한 차원에서 이 작품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 뻔하다. 예부터 소련이든 북한이든 중국이든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알게모르게 영화, 노래, 연극 등에 정치적 의미를 짙게 드리우면서 민중들을 세뇌시키는 짓거리를 많이 해왔던 바, 여전히 중국은 그러한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혁명을 이해하는 자라면 이 작품 역시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5. 임성한 작가도 울고갈 막장 주말 드라마가 되어버린 비운의 작품


뭐, 이제 살짝 영화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난 이상, 그러한 의도를 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표출해야 하는 연출 면에서는 어떤가를 살펴보자. 솔직히 필자는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일단 초장에는 손문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건드렸다는 점,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툭툭 터져나오는 호화찬란한 배우들. 이 정도면 정말 중국의 역사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데, 정작 배우들이 너무 화려한 것에 비해 역할이 짤막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역할들의 개성도 다양할 듯 하다가 너무 개연성이 떨어져버렸다는 점. 그리고 그토록 빈약한 개연성을 극복하고자 꺼낸 도구가 변기 막힌 듯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라는 점.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얼마 전 개봉한 수작 <엽문>으로 인해 견자단의 리얼 액션을 기대하고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견자단은 주인공이라 하기도 어렵고 그저 빛나는 조연 중의 한 명이라는 것 정도. 한때 4대천왕으로 홍콩을 뒤흔들었던 장학우도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안면으로 잠깐 등장해서 씁쓸함을 안겨주고, 한때 미모로 또한 홍콩을 좌지우지했던 이가흔도 눈 깜빡 하면 나왔다 들어가버리는 아쉬운 캐스팅에 눈물샘을 자극한다. 여명도 처음에 거지로 나올 때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습이다. 게다가 뒤이어 면도하고 나왔어도 어딘지 모르게 불쌍해 보이는 그 모습이란. 극중 최강의 무술 실력을 가진 인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선한 이미지 탓에 거지하고도 안 어울리고, 무술 고수하고도 안 어울리는 최악의 캐스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슈퍼스타 K와 비슷한 중국의 후난위성 TV 슈퍼걸 노래자랑대회에서 엄청난 노래 실력으로 단숨에도 스타자리에 오른 날벼락 스타 이우춘도 방홍 역을 맡으면서 실로 얼굴 망가지심이 대단하다. 이 역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역할. 사정봉도 그저 달리기밖에 못하는 맨발의 기봉이급 인력거꾼으로 등장하여 안습을 자아내고, 판빙빙도 나름 싸가지없는 여편네로 등장하여 여전히 2007년 토할 것 같은 연예인 상위랭커로서의 입지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토할 것 같은 연예인에 상위 랭크되었는지 미스테리인 판빙빙>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안타까운 배우는 바로 양가휘. 진소백이라는 나름 비중있는 인물을 맡은 그이지만, 예전의 양가휘다운 포스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양가휘인지도 몰랐다. 원래 조금 샤프해 보이던 얼굴이었는데, 이제 나이들고 머리도 유치원 갓 입학한 애들처럼 깎아놓아서 더욱 안습으로 보인다. 한때 동성서취, 동사서독, 도협, 도신 등으로 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존재하던 양가휘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지. 솔직히 역할 자체로만 보면 진소백이란 인물은 매우 매력적이고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중 내내 진소백은 말로는 혁명과 민주주의 어쩌고 떠들면서 뒤로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이중광이 짝퉁 손문으로 당첨될 때 진소백이 너만은 안 된다며 말리는 모습. 그 전에도 이미 진소백이 이옥당에게 넌 이미 돈 냈으니까 우리팀이라면서 어디서 혼자 내빼려고 하냐고 하기도 한다. 나름 용의주도하면서 기회주의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양가휘가 예전부터 살짝 그런 이미지의 배역을 해오더니 여기서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듯. 


나름 포스 풍겨주신 캐릭터는 의외로 암살자 염효국 역으로 나온 호군. <적벽대전>에서 상산의 조자룡 역으로 나와서는 너무도 선한 이미지 보여주신 덕에 도무지 암살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페이스. 그래서 그런지 눈썹을 왕창 밀어버리고 미친 놈처럼 등장해주시는 쎈쓰. 게다가 이것도 모자라 입가에 흉터까지 그어주셨다. 그런데 이 친구 은근 호빵맨 닮지 않았나? 어쨌든 암살자 치고는 너무 페이스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별 대사도 없고 그 자체로 암살자 같은 바특이 암살자역을 했다면 좀 더 엘레강스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으로 거론하고 싶은 것이 바로 화산 폭발하듯 여기 저기 뿜어져 나오는 눈물. 뭐 좀 했다 하면 일단 모든 출연진들이 울고 시작한다. 혁명이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눈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홍콩이 눈물로 홍수가 안 난 것이 천만다행인 듯. 그토록 이 작품에서는 비장미를 선사하고 작품을 더욱 주제의식 짙도록 만들기 위해 눈물잔치를 남발하였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옛말을 답습하는 연출인 듯. 적당히 울면 되는데 너무 질질 짜다보니까 보는 사람이 짜증이 날 정도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심정은 잘 알겠는데, 왜 시도때도 없이 울어버리는 것인지. 인력거 끌면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서로 쳐울고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안구가 건조하고 총총해야 빠른 시간에 완벽한 핸들링으로 인력거를 몰 텐데, 안구에 습기 가득하니 이는 마치 집중호우 한가운데에서 자동차로 야간 운전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도무지 거지와 무술고수라는 컨셉 그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여명. 왜 나왔니??>



#6. 제작 퀄리티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짱개 필름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작품이 보여준 막판 추격씬에서의 긴장감과 스릴감, 그리고 장렬한 액션은 수준급이라고 칭하고 싶다. 울어재끼는 것만 빼고는 빠른 전개에 의한 긴장감이 나름 백미이고, 짧지만 간간히 터져주는 액션은 최근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리얼 액션을 선보여주고 있다.  특히 견자단과 청레라는 태국 출신 격투가와의 대결은 엽문에서의 마지막 대결과 비슷하게 전개되어 매력적이다. 암살자로 분한 청레의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무에타이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견자단의 정통 쿵푸와는 다른 느낌. 하지만 무에타이는 입식 타격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라운딩 기술이 조금이나마 더 발달된 쿵푸에 의해 밀리고 마는 현실. 아마 상대가 무에타이가 아닌 주짓수나 레슬링이었다면 게임 자체가 너무 지루했을 듯. 


20세기 초의 홍콩의 모습도 볼거리가 제법 된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이 홍콩을 무슨 시장통처럼 꾸며놓았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보다 서구화되고 잘 정돈된 홍콩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뭐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영국에 의해 실질적으로 지배가 되었던 홍콩이었던 만큼 서구적인 느낌이 더 강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 작품을 제작한 감독 진덕삼은 사실 <삼부관>이라는 듣보잡 영화 단 한편만을 제작한 초짜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진덕삼을 가장 유망한 감독으로 칭하고 팍팍 밀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B급스러운 느낌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그의 차기작들을 기대해 본다. 수없이 등장하는 초호화 캐스팅들은 자세히 보면 홍콩과 중국, 대만의 신성들이 대거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그 동안 서로 별다른 합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3개의 영화계가 모처럼 공통분자인 손문을 배경으로 근사한 합작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영국이 지배하던 홍콩의 실상을 아주 잘 드러낸 장면. 거의 명동 수준이다>



건국 이래 현재까지 으르렁대고 있는 대만과 중국. 최근에도 여러 차례 군사적, 정치적 갈등이 있었고, 앞으로도 절대 타협의 의지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나라. 혹자는 세계 3차 대전은 아시아, 그것도 대만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 못지 않게 사이 더럽게 안 좋은 두 나라가 이번 영화를 계기로 사상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7. 영화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 손문이 영화에서처럼 1906년 10월에 홍콩에 갔는가에 대해서는, 실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손문은 중국 내에서의 국가적인 반란 실패와 여러 위협 때문에 일본으로 도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홍콩 근처에도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구라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결사대 중 자막처리까지 하면서 세상 하직한 사람들의 실존 여부도 답이 나오려나? 그것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따왔다고 했으니, 인물들은 사실이되 활약상은 거짓이 될 수도 있겠다. 


나름 소림사 출신에 엄청난 거구로서 장풍까지 구사하는 것으로 등장했던 NBA 농구선수 바특이, 소림사 무술은 내팽겨치고 야자나무로 덩크슛만 하다가 끝나는 씁쓸한 영화, <8인 : 최후의 결사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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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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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도럼 (Pandorum)

Movie 2016. 2. 2. 15:48

※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4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팬도럼 (Pandorum)



인류는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한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왔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전 지구의 절반조차도 파헤치지를 못했다. 바다만 해도 인류에게 있어 아직도 미지와 탐구의 대상이다. 그런데 우주라면 어떠하겠는가? 


인류가 먼 미래에 드디어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출을 시도하면서 생기는 미지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SF 스릴러물 <팬도럼>. 예부터 SF에 관심이 많은 필자였기에 큰 기대를 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거대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공포 이야기. 한번 헤집어보자. 전반적으로다가 스토리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오포교 오마쥬^^)


<포스터의 미스테리한 포스는 그야말로 수준급. 하지만 이거 전부 낚시질이다>



#1. 스토리 - 황당할 정도로 무리수를 둔 인류의 미래 이야기


때는 2528년.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면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자원이 고갈되어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등 지구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에 인류는 또 다른 지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였고, 그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지구와 거의 비슷한 환경의 행성을 찾아내게 되었다. '타니스'라고 명명된 그 별을 향해 인류는 마침내 거대 우주선 엘리시움 호를 발진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항해 도중 지구로부터 마지막 무선이 떨어지고, 그 메시지에는 '일레시움 호의 승무원들이 최후의 인류'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두운 우주선 내부 안 오랜 기간 수면탱크 안에서 잠들어 있던 바우어 상병(벤 포스터)이 깨어난다. 마치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듯 우주선 내부는 컴컴하고 이따금씩 심한 진동과 함께 전기가 들어왔다 나가는 상태이다. 바우어는 다른 승무원들을 찾아보지만, 다들 자고 있거나 없는 상태. 겨우 정신을 차린 바우어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되살리려 애쓰며 서서히 어둠 속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오랜 수면에서 깨어나면 과거에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주선이 확실히 고장이 난 것 같고, 다른 승무원도 없는 것으로 보아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여긴 바우어. 그 때 갑자기 또 다른 수면탱크가 열리면서 그 안에서 잠들고 있었던 페이튼 중위(데니스 퀘이드)가 깨어난다. 역시 서서히 정신과 기억을 찾아가게 된 페이튼은 바우어와 함께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갇혀있던 방 밖으로 향하는 문은 굳게 닫혀있고, 누군가 필사적으로 나가려고 한 흔적을 발견한다. 이에 바우어는 페이튼의 도움을 받으며 환기구를 통해 방 밖으로 나가게 된다. 좁다란 통로 끝을 열심히 참사하다 발견하게 된 것은 다른 승무원의 시체. 이 때 바우어는 환기구 아래로 떨어지면서 거대한 우주선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다.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게 되는 바우어. 생존자라 생각한 그는 누군가를 쫓게 되고, 생존자인 줄 알고 다가간 곳에는 목이 졸린 시체가 있었다. 이때 생존자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나고, 그녀는 바우어의 목에 칼을 겨누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놈이 방귀를 뀐겨??" 밀폐된 공간에서 방귀를 살포하게 되면 이처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온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는 다름아닌 정체 불명의 괴 생명체 때문. 파란 불빛을 비추며 징그럽게 달려드는 괴물들을 보고 놀란 바우어는 이내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건진다. 괴물들이 사라지고 조용해지자 바우어는 다시 밖으로 나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주선을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재부팅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였다. 


무전기를 이용해 페이튼과 바우어는 각자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조사를 한다. 이 때 페이튼과 바우어는 팬도럼이라 불리우는 일종의 정신착란증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에 모 우주선장이 팬도럼에 걸려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수면탱크를 전부 우주밖으로 배출하여 한 방에 골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선에서도 설마 팬도럼이? 


조사 도중 바우어는 테러진압용 무기도 습득하고, 또 다른 목 졸린 시체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5조에 속한 바우어나 페이튼보다 더 늦게 깨어났어야 할 6조의 승무원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시체가 발악하고,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 바우어는 그를 살려주지만, 셰퍼드(노먼 리더스) 라 소개한 그는 닥치고 도망쳐야 한다고 얘기한다. 


도망도 잠시, 셰퍼드는 다시 괴물들이 설치한 함정에 걸려 처마 밑에 걸린 메주 신세가 되고, 바우어는 다행히도 괴물 눈에 띄지 않게 숨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셰퍼드는 현장에서 바로 괴물들의 먹이가 되고 바우어는 냅다 도망친다. 그 와중에 다시 무언가와 마주치는 바우어. 알고 봤더니 이번에도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영어를 못해서 말이 안 통한다. 팔뚝의 바코드로 확인해보니 그는 승무원이 아닌, 이 곳에 탑승한 일반인이었던 것. 바우어는 그의 이름이 만(청 레)이고 농사꾼이었음을 알게 된다.


<초거대 우주선 엘리시움호.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이다>



기억을 되찾은 페이튼은 이 우주선이 실은 탐사선이 아니라 수많은 이주민들을 태운 수송선임을 얘기해 준다. 그리고 그 탑승자들 중에는 다양한 직업과 인종을 가진 사람들과, 승무원들 자신의 가족들도 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바우어는 어렴풋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하는 아내의 생존이 궁금해진다. 


한편 페이튼이 갇혀 있던 방 안으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페이튼이 환기구 쪽을 보니 그 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 페이튼은 일단 생존자로 보이는 남자를 도와주고, 그는 갤러 상병(캠 지갠뎃)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게 둘은 방 안에 갇혀서 일단 사고의 원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갤러.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만과 함께 괴물로부터 도망치며 원자로로 향하기 위해 계속해서 모험을 하는 바우어는, 일반인들의 거주용으로 지어진 컨테이너를 조사하다가 맨 처음 조우했던 여성 생존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여자는 그야말로 독고다이 마인드로, 만과도 으르렁대며 싸우는 지경. 이에 바우어가 다 같이 힘을 합쳐 우주선을 구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이에 자신을 나디아(안체 트라우)라고 소개한 여자는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다. 나디아는 본래 생물연구학자인데, 엘리시움호 안에는 노아의 방주처럼 수많은 동식물의 표본이 담겨 있고, 자신은 그것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래 탑승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서 지금은 한 마리의 고독한 서바이벌 전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 


셋은 원자로까지 가는 과정 중 괴물들의 단체 야유회에 딱 걸려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지만, 시체더미 두둑이 쌓인 똥통에 빠져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렇게 고생고생 해가며 겨우겨우 다가가는가 싶더니, 이번에 또 만나게 되는 생존자. 그 생존자는 꽤 오랫동안 생존해와서 이 우주선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삼인방에게 이야기해준다.


<어쩌다 득템한 야광시계...가 아니라 충격파를 발사하는 무기. 감독이 게임 좀 해본 듯>



엘리시움 호가 발진하고 나서 지구가 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했을 때, 선장을 비롯한 3명의 항해요원이 그 충격에 그만 정신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던 중 1명이 나머지 2명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광기는 극에 달해 갔고, 그 1명은 이내 우주선 안에서 끔찍한 짓을 벌이고 만다. 탑승자들을 가둬놓고 서로 잡아먹고 먹히게 하는 엽기 쇼를 펼쳤던 것. 결국 그 1명은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 칭하고 이 우주선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다가 노는 것도 지쳤는지 다시 냉동수면상태로 돌아가고, 그 이후 우주선 안에는 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면서 결국 이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인간도 아닌 그 괴상한 생명체들은 무엇인가? 나디아의 추측에 의하면 본래 새로운 행성인 타니스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에게 냉동수면상태에서 모종의 환경적응제를 투여했는데, 이 적응제가 너무 빨리 퍼져서 변이를 일으키고 말았다는 것. 결국 우주선은 목표로 했던 행성에도 도착하기 전에 난리판이 되고, 최후의 인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우주의 이단아가 되어버린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일단 자기네들은 살아서 어떻게든 우주선을 다시 원상복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바우어와 보디가드들. 


그들은 드디어 원자로 앞까지 다다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자로 아래에 괴물들의 집단서식지가 있는게 아닌가. 결국 들키지않게 조심스레 원자로 가운데로 접근을 시도하지만, 늘 그렇듯이 쇠판대기가 휘면서 바우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절체절명의 순간!!





<거의 애드월~~~드에 버금가는 다중인격 스러운 캐릭터 갤러>



#2.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려던 무리수는 결국 흥행 저조를 낳았다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꽤 괜찮은 반전이구나 싶겠다. 사실 반전이 있다고는 기대했지만, 이런 반전일지는 필자도 몰랐다. 그만큼 허를 찌른 것만은 사실. 그런데, 그 반전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왜냐구? 전반적으로다가 반전까지 이어지는 연출력이 조금 허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소 아쌀한 스릴감을 주는가 싶더니, 중간에는 아주 그냥 축축 늘어진다. 초반에는 괴물들도 괴기스럽게 등장하더니 중간에는 별 감흥없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괴물이 어쩌다 생겼는지도 그다지 설득력은 떨어진다. 


페이튼의 반전은 사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이 되는 반전이더라도 영화를 빛내는 데 있어서는 그만큼 뻔하면서도 적절한 구성이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또 다른 막판 대 반전은 필자도 사실 조금은 '뭥미?'였다. 그야말로 허무주의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기대 대비 나름 저렴한 퍼포먼스 때문인지 이 작품의 흥생 실적은 그야말로 저렴하다. 미국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6위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담한 수준. 나름 핑계로는 초반 시사회 미실시, 홍보 미실시 등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SF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이 작품이 이 정도의 흥행밖에 못 거두었다는 것은 역시 관객들의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3. 충분히 있음직한 인류의 끔찍한 미래


작품 내적으로 접근해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꽤나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예전부터 사실 이러한 주제로 제작된 소실이나 영화는 많았지만, 적어도 최후의 인류, 500년 동안의 우주야영 등 극단적인 설정까지는 아니었더랬다. 예외적인 작품이 있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이 있는데, 이 작품도 사건의 시작은 아주 유사하다. 다만 결과는 이보다 더 괴상하다. 


어쨌든 팬도럼은 인류가 맞이하는 비극, 즉 엘리시움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남은 승무원들이 인류 최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생물체의 위험에서 또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점이 참신하다. 거기에다가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점입가경. 우주선 고치랴, 괴물 물리치랴, 팬도럼 치유하랴, 그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바우어가 아닐 수 없다.


<이봐 자네, 똥통에 빠졌나? 그러게 푸세식은 오래 앉아있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빠진다규>



그런 바우어가 마침내 살아남아 결국에는 엘리시움호가 꿈꾸던 근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하게 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결말이었을까? 새로운 행성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없는 것일까? 그들과 바우어가 마주치게 되면, 이는 단순한 문명간 충돌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주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원주생명체의 입장에서는 바우어가 그야말로 외계인이 아니던가. 바우어를 비롯한 엘리시움 호의 목적은 그 행성에서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는 엄연히 침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어쩌면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물들이 정말 환경과 목적에 보다 더 잘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미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희생당하고 생존자라고는 바우어와 나디아(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뿐이니 이들이 지구에서만큼의 본래의 문명을 발달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는 결국 태초의 원시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겠다.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괴물들이 아니었던가. 나디아의 말처럼 환경적응제는 정말로 괴물들을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시킨 꼴이다. 그들이 우주선 안에서 몇 백년을 살아온 만큼, 그들도 또 진화를 겪게 되면 언젠가는 우주선 밖으로 튀어나올테고, 그렇게 되면 행성은 결국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결국 베르베르 빠삐용에서 기술한 결론과 일맥상통해진다. 결국 뭐가 되었든,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인류에게는 희망은 있으되 그 끝은 너무도 어둡고 멀다는 것.



#4. 미래 인류의 새로운 불치병 - 우주정신병 팬도럼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은 궁극적으로 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기 위한 설정인데, 이는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실제로 우주선과 같이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종 비슷한 정신이상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발생 지역이 남극의 연구기지라고 하는데,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그 곳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환각, 환청, 극도의 신경질 등의 정신이상증세가 흔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이로 인해 추정되는 구타사건까지 생긴 것을 보면, 우주선, 그것도 수백년이나 떠도는 우주선 안에서 이러한 정신병은 충분히 생기고도 남을 것이다. 


<기대보다 안습인 미래의 돌연변이 인류.이 이상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말자>



#5. 안습에 가까운 B급 크리쳐물


연출에 대해 흠을 잡았었는데, 이를 뚜들겨보면 무엇보다도 괴물들의 안습적 포스에 있겠다. 초반에 나름 긴장감 조성하면서 나타나 주시고, 의외로 지능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에일리언도 능가할 종족들이려니 하는 두려움도 생겼더랬다. 그런데, 얘네들이 갈수록 아기자기한 행각을 선보이면서 의외로 허접임이 드러난다. 역시 저글링 10마리가 한 마리의 질럿을 이기기 어려운 것처럼, 이들은 그저 저글링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능은 있어서 무턱대고 좀비행각을 벌이는 것은 아니라서 나름의 센세이션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사같이 보이는 괴물이 생존자 중 가장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만과 1:1 맞짱을 뜨는 장면을 보면, 프레데터처럼 나름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괴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눈땡이가 징그러운 꼬맹이 괴물이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접근하고는 칼질하는 걸 보면, 역시 고단수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괴물들은 공격력이 생각보다 허접이었지만, 정신능력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우수했다는 점. 


그런데 문제는 그에 대항하는 생존자들의 퍼포먼스. 일단 바우어는 별로 잘 난 것도 없는데 엄청 잘 도망친다. 운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주인공답게 쉽게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다. 여기에 만이라는 사나이는 농사꾼임에도 어찌 그리 잘 싸우는지. 혼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애매할 지경이다. 더 웃긴 존재는 바로 나디아. 이 아줌마 원래 직업이 연구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닌자어쌔신 저리가라 할 정도의 초절정 닌자 액션을 선보인다. 마치 에일리언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무 강력하게 등장한다. 


대체 이 영화는 무엇에 포커스를 두고 봐야 하는 것일까? 지구가 멸망하고 엘리시움 호에 남은 승무원들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데, 역경이 너무 크다는 것? 아니면 팬도럼이라는 가공할만한 우주정신병으로 인한 공포? 아니면 돌연변이 괴물들의 습격과 이에 저항하는 서바이벌 정신?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한데 묶으려다보니 영화 자체가 어정쩡해진 느낌이다. 이 영화를 스릴러가 아닌, 단순 크리쳐물로 받아들였다면 일단 크리쳐에서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B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스릴러이니까 괴물들의 허접함은 그냥 눈감아 주자.


<도무지 과학자라는 설명이 납득이 절대 안되는 홍일점 나디아>



#6. 캐스팅마저 다소 저렴한 영화


이 작품이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제작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미국 헐리우드의 힘만으로 제작되지 않은, 외세의 허접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재미있게도 독일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이다. 크리스티안 알바트 감독이 예전 작품에서 독일 작품을 해왔던 것으로 보아, 그가 독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작답게 등장인물 중에도 독일인이 다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디아 역을 맡은 안체 트라우는 독일 배우이다. 컨셉으로 보나 생긴 것으로 보나 최고의 섹시여전사 밀라 요보비치를 패러디한 것 같은데, 이 작품만으로 그다지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페이튼 역의 데니스 퀘이드는 최근에 <빈티지 포인트>에서 끝까지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목숨 내던지는 경호원 토마스 번즈 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이번 작에서도 결코 범상치않은 캐릭터를 잘 연기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갤런과 페이튼의 외관상 연계성 측면에서는 조금 무리가 있는 듯. 


바우어 역의 벤 포스터는 꽤 유명한 배우는 아닌데, 필자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랬다. 알고봤더니 <엑스맨 3>에서 막판 깜짝 활약하는 엔젤 역으로 나온 배우가 아니던가. 어딘가 모르게 여리여리하게 생겼으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로서 나름 좋은 연기를 펼친 듯하다. 만약 캐릭터가 좀 더 공격적이고 터프한 성격이었다면 벤 포스터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은 <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졌을 것이다. 


만 역의 청 레. 이 친구 또 나왔다. 얼마전 필자가 리뷰한 <8인의 결사대>에서 청나라 암살자로 나왔었던 인물이다. 견자단과 PK를 뜨지만, 입식타격의 한계로 인하여 골로 가게 되는 역. 그때도 언급했지만, 이 친구 실제로는 진짜 무에타이 선수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 격투실력으로 인해 수퍼맨급 농사꾼 역으로 캐스팅되었나보다. 그렇더라도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영화만 찍는다는 것은, 제 2의 욜라 뽕따이를 꿈꾸는 것인가?


<다른 애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혼자만 나이 먹은 불쌍한 캐릭터라는 설정(?)>



#7.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 - 인류의 뇌


마지막으로,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에 대해 무시무시한 음모론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이미 실제로 비슷한 정신착란증세가 입증되었다고 한 바, 앞으로 인류가 우주로 본격 진출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질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이나 신체 이상상태를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쟁 당시 포로들을 이용해 각종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우리네 조상들이라면 이보다 더 한 짓이라도 필요하다는 할 것이다. 그래서 추측컨데, 이러한 극단적인 폐쇄적 환경에서 찾아올 정신이상의 증세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디선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다만 해도 아직 인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육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인류는 그나마 익숙한 바다로 진출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바다 속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도시를 건립하는 프로젝트 등이 기획되고 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바다 속 인공도시에서 발생하는 공포물도 꽤 많이 나왔었다. 아무튼 이에 대한 실험은 매우 간단해서, 조그마한 잠수정에 1명 혹은 소수의 인원을 태우고 바다 속으로 내려보낸다. 탑승자들에게는 아마도 잠수 목적이 바다 속 연구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무선이 떨어진다. 연결하는 로프가 끊어졌다는 것. 게다가 전기장치까지 망가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무선은 점점 희미해지고,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 실은 이 모든 것은 조작에 불과하다. 잠수함은 애초부터 리모트컨트롤에 의해 제어가 되고 사고가 난 것처럼 꾸며서, 탑승자들이 과연 이 위기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정도의 실험은 충분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했을 수도 있겠지만. 바다에 대한 연구가 끝나면 이번에는 우주에서도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우주는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부분에서는 동일하지만, 중력과 무중력이라는 조건의 차이로 인해 또다른 결과를 보일지도 모른다. 무중력은 인간의 두뇌를 두개골 안에서 척 달라붙지 않고 동동 떠다니게 만든다. 이러한 차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분명 아주 특이한 형태로 인류에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특수능력이 생길지도. 기동전사 건담의 아므로 레이가 보여준 뉴타입 같은 바로 그것.


<나름 고어씬을 즐기는 매니아들에게는 혹 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기대는 크게 하지 말자>



인류의 심리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팬도럼이라는 정신병으로 인해 단 한명의 승무원이 벌인 엽기행각이 결국에는 최후의 인류 모두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던가. 


과거에 실제로 어떤 남자가 실수로 냉동탱크에 갇혀서 얼어죽는 일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냉동탱크는 영상 10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탱크 안의 남자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정말 영하에서 얼어죽듯이 꽁꽁 얼어죽었다. 이는 그 사람이 스스로 나는 영하의 기온에서 점점 얼어죽어가고 있다는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 최면술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최면술을 이용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손에 뜨거운 감자를 쥐고 있다고 최면을 건다. 그러면 그 남자는 정말로 손에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즉, 심리상태만으로 실제로 인체의 감각이나 신경, 반응 등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토록 가공할만한 심리를 팬도럼이라는 이상한 정신병처럼 막무가내로 망가뜨려버리면 결국 정말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파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파괴의 신은, 신이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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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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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Leon)

Movie 2016. 1. 8. 14:47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레옹 (Leon)



#1. 한 편의 고독한 시를 연상케 하는 감성적 영화


서쪽 하늘 붉은 빛의 구름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해질 무렵 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하고 웅장하고 촘촘히 서 있는 빌딩 숲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았는가? 바삐 돌아가는 세상, 쉴새 없이 움직이는 군중들, 시끄러운 소리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자동차들. 하지만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그 곳에 있던 것일까? 고독하다. 나는 고독하다. 도시의 화려한 모습 속 차디찬 구석에서 숨 쉬고 있는 나는 고독한 존재이다. 


필자는 저녁 노을을 좋아한다. 특히나 빌딩 사이에서 드리워지는 붉은 빛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그 순간만큼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운 적은 없다. 이러한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나만이 알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일지도. 하지만 이러한 느낌을 영상을 통해 뿜어낸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뤽 베송 감독의 걸작 <레옹> 되겠다.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저 뽀죡한 코가 단연 압권인 레옹의 자태>



레옹은 확실히 액션 영화이다. 하지만 필자가 받은 영감은 단순한 액션만은 아니었다. 주인공 레옹이 드러내는 고독한 도시인의 삶과,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평범하게 되기까지 겪게 되는 고독한 싸움, 그리고 고독한 결말. 여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비주얼과 음악은 이 영화를 최고의 감성 영화로 인정받게 만든다. 



#2. 스토리 - 고독한 킬러의 인생개조 이야기 "우리 킬러가 달라졌어요"


필자가 어린 시절 미약했던 감성을 심연의 깊고 어두웠던 바다 속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된 결정적인 대작, 레옹에 대해 먼저 스토리를 알아 보자. 


뉴욕의 어느 거리. 이탈리아 스타일의 어느 식당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다. 우유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살인청부 의뢰를 받는 동그랑땡 선그라스의 털보 사나이 레옹(장 르노)과, 그의 청부업무 중계책이자 식당 중인인 토니(대니 앨로). 토니는 어느 뚱뚱한 남자의 사진을 건네며 모종의 작업을 요청하고 레옹은 그 자리에서 수락한다. 


작업에 착수하는 레옹. 조직의 보스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의 건물에 도착한 레옹은 전화로 도착완료를 공지하며 재깍재깍 부하들을 죽여나간다.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 뚱뚱한 사내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하게 몸을 숨기려 하지만, 레옹은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뚱뚱한 사내의 목을 칼로 죈다. 이윽고 의뢰자의 메시지를 전달한 레옹은 목표를 완수한 후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일을 마친 레옹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귀가하지만, 오늘도 복도에는 부모에게 실컷 얻어터진 옆 집 꼬마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가 기다리고 있었다. 얻어터진 꼴이 불쌍한 지 조심스레 걱정해주는 레옹. 마틸다는 이윽고 레옹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마틸다의 집안은 콩가루 집안의 대명사. 아버지는 마약이나 몰래 빼돌려 팔고, 어머니는 매춘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요염하게 차려입고 다닌다. 게다가 언니는 다이어트에 목숨건 채 마틸다를 괴롭힌다. 마틸다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라고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하나뿐인 남동생. 마틸다는 늘쌍 가족들에게 얻어터지고 욕을 먹지만 남동생만큼은 끔찍하게도 아낀다.


<어리지만 당돌한 마틸다. 이런 여동생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고>



그러던 어느 날, 마약단속국 소속 형사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가 마약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마틸다의 아버지를 협박하지만, 사실은 스스로가 마약쟁이였던 비리 형사 스탠(동료 형사들이 스탠스필드를 스탠이라 줄여 부름)이 자신의 마약을 마틸다의 아버지가 몰래 빼돌렸다고 생각하여 되찾으러 온 것이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스탠은 다음 날 12시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생각하라고 경고한다. 레옹은 문의 열쇠 구멍으로 이러한 모든 정황을 보지만, 고독한 청부업자였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데 매진한다. 


이윽고 다음 날이 되고, 일이 없어 극장에서 영화나 보고 백수처럼 돌아다니다 귀가한 레옹은 오늘도 어김없이 마틸다와 마주친다. 매일 집 앞 슈퍼에서 우유를 무더기로 사오는 레옹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마틸다가 대신 우유를 사오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마틸다는 심부름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레옹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12시가 되던 시점. 스탠이 마약단속국 부하들과 함께 마틸다의 집에 방문해 주시고, 이윽고 처절한 살육이 자행된다. 뻘짓하다가 한 방 맞은 스탠이 뚜껑 열려서 집안의 일원을 모조리 살육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유를 사가지고 오는 마틸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순간 일이 났음을 직감한 마틸다는 슬기롭게도 아무일도 아닌 척 지나친 후 레옹의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한다. 레옹은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마틸다의 처절한 도움 요청에 결국 레옹은 문을 열어준다. 


마틸다는 자신을 살려 준 레옹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만, 레옹은 마틸다를 매몰차게 대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레옹이 킬러임을 알게 되고 자기의 남동생을 죽인 범인들을 모두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오로지 돈에 의해서만 청부살인을 하는 레옹은 이를 거절하고, 마틸다는 기어이 자신이 킬러가 되겠다고 깽판을 친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짐짝이 생긴 레옹은 마틸다를 제거할 생각도 하지만, 이 여린 어린아이를 어찌할 지 모르는 레옹은 결국 마틸다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트러블도 많았지만, 레옹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글을 가르쳐 주겠다는 등의 호의적인 자세로 대하여 서서히 레옹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


<매일 우유만 먹고 사는 레옹. 그래서 그런지 키는 엄청 크다>



레옹은 결국 마틸다에게 킬러의 기술을 전수해주게 된다. 칼, 권총, 소총, 심지어 수류탄까지 쓰는 법을 알려주는 레옹. 그리고 막돼먹은 개념으로 열심히 따라오는 마틸다. 레옹은 이제 마틸다를 제어하려 하고, 그런 레옹에게 아직은 사춘기 소녀에 불과한 마틸다는 반항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티격태격 하면서도 어느덧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되고, 마틸다가 레옹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에 레옹은 깜짝 놀라면서도 무언가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덧 마틸다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 레옹.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청부살인을 하지만, 마틸다가 마음에 걸린 나머지 예전 같은 날카로움을 잃고 만다. 사소한 실수로 이제 총까지 맞는 입장. 하지만 아픔을 숨기고 마틸다에게는 예쁜 옷을 사다주는 등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레옹은 오랜 친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토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틸다를 책임져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편 마틸다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예전의 참혹한 현장을 살펴보면서 남동생의 죽음을 되새기게 되고, 마침 현장 조사를 위해 방문한 스탠을 피해 몰래 숨어서 스탠에 대한 정보를 엿듣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마약단속국 4602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마틸다.


이후 마틸다는 레옹에게 끝없이 킬러가 되고 싶다고 징징대고, 유명한 캐릭터들에겐 항상 사이드킥이 있었다고 강조하며 자신을 사이드킥으로 써달라고 요청한다. 이것만큼은 레옹도 수긍이 가는지 받아들이게 되고, 이후 마틸다에게 타켓들의 문을 따도록 연기를 시키거나 타겟을 붙잡아서 사격 연습을 시키는 등 조금씩 킬러로서 양성을 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옹은 마틸다에게 마지막 일만 처리하고 이제 둘이 떠나자고 이야기를 하고, 이에 마틸다는 아직 복수를 하지 못한 스탠을 처리해야 한다며 돈을 주고 청부의뢰를 한다. 그러나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마틸다에게 총과 탄약을 주고는 정 원한다면 너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냉대하는 레옹.


결국 마틸다는 혼자서 피자배달부로 가장하여 마약단속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간 스탠을 따라 복수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선 마틸다. 하지만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기다리고 있었던 스탠. 스탠은 마틸다를 총으로 위협하여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를 묻는다.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마틸다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는 스탠. 마틸다를 죽일지 말지 시소게임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스탠을 찾아 온 부하 형사. 그는 스탠에게 다른 부하가 어떤 남자에게 살해당했다고 얘기한다. 마틸다가 스탠을 따라갔을 때 레옹은 나름대로 스탠의 흔적을 찾아 그의 부하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레옹이 말한 떠나기 전 마지막 일이었던 것. 그리고 뒤늦게 마틸다가 복수를 위해 마약단속국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옹은 마약단속국으로 쳐들어가 그 자리에서 스탠의 부하들을 골로 보낸다. 그리고 마틸다를 구출해 나오는 레옹.


<마틸다에게 킬러 중 가장 핫바리들이 사용한다는 스나이퍼건에 대해 강의하는 레옹>



부하들이 뜬금없이 죄다 골로 가자 또다시 뚜껑 열린 스탠은 자신을 노리는 범인에 대해 알기 위해 토니의 식당으로 쳐들어가 토니를 협박한다. 결국 레옹의 거처를 알게 된 스탠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여 레옹이 거주하는 건물을 둘러싸고 만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우유를 부탁하며, 들어올 때 조심하라고 자기들만의 노크 암호를 공유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우유를 사가지고 오다가 SWAT팀에게 붙들리고, 마틸다를 이용하여 레옹의 방으로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마틸다의 총명함으로 레옹은 SWAT이 들이닥쳤음을 알고 환영만찬 준비를 완료한 상태.





<자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날 것을 당부하는 레옹과 절규하는 마틸다>



#3. 다양한 색깔을 뿜어 내는 뤽 베송


필자가 스토리를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필자의 마음이 울컥하여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심정이다. 레옹이 마틸다만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향해 어둡고 긴 지하통로를 걸어나갈 때 스탠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정말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마틸다가 외치는 대사는 레옹의 죽음이 있기에 더더욱 슬프고 애절한 장면이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사실 뤽 베송 감독은 묘한 감독이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때에 따라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장르의 감독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레옹에서 보여준 감성적인 면은 뤽 베송 감독의 여타 작품과 비교하면 완전 납득 불가능한 수준. 특히나 헐리우드로 진출하면서 보여준 작품들은 철저하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감성적이라기 보다는 액션이나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뤽 베송이 초장부터 보여준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태생은 감성적인 면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작 <그랑 블루>와 1990년작 <니키타>는 뤽 베송이 추구하는 감성터치가 아주 잘 녹아든 작품이다. 


뤽 베송이 어떤 면에서 감성적이냐 하면, 바로 주인공들간 내면적 아픔과 상처,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희망이라는 코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랑 블루에서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주인공을 통해 갈등과 아픔, 그리고 희망이라는 요소가 바다라는 미지의,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아늑한 공간을 통해 투영되었고, 니키타에서는 주인공이 과거를 딛고 특수요원이 되지만 아픔을 간직한 채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주인공의 연기와 스토리도 이를 뒷받침 해주지만, 뤽 베송의 이러한 감성을 대표하는 공통 코드는 바로 파란 색이다. 파란 색은 차가우면서도 우울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죽음과 재생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픔 뒤의 희망을 암시하기도 한다. 뤽 베송은 이 파랑색을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그랑 블루의 모든 시퀀스를 관통하는 푸른 바다가 그 예이고, 니키타에서도 조명이나 주변의 빛을 이용해 파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레옹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SWAT팀이 들이닥쳤을 때의 빛도 파란 색으로 우울과 죽음을 암시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지하 통로를 걸어나갈 때 비치는 빛도 파란 색으로 처리하여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마틸다 때문에 이곳 저곳 이사철 메뚜기 신세가 되는 레옹>



세 작품의 공통점은 이러한 감성적 터치 외에도 레옹 역을 맡은 장 르노와 모두 함께 작업을 했다는 점이 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뤽 베송 감독의 눈에 장 르노는 자신의 아바타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니키타에서 등장하는 장 르노는 레옹의 프로토타입과도 같은 묘한 관계에 놓여 있다. 니키타에서 장 르노는 주인공 니키타를 돕는 침묵의 특수요원 빅터로 등장하여, 마지막에 니키타를 살리고 고독하게 죽는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임팩트가 매우 강해서 그랬는지, 레옹에서 거의 동일한 컨셉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 어쨌거나 뤽 베송 감독이 자신의 감성을 장 르노라는 걸출한 배우와 신예 마틸다를 통해 뿜어낸 레옹은 세 사람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바로 이 작품을 계기로 뤽 베송은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고, 이후 헐리우드식 대중영화를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뽑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뤽 베송은 헐리우드 진출 이후 자신의 감성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상업성을 극대화한 오락 영화를 만들게 된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레옹 이후의 뤽 베송은 솔직히 기대보다 못 했지만, 어쨌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 저것 다양한 테마와 주제로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실력은 높이 살만 하다.



#4. 레옹과 마틸다로 대변되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


작품의 내면적인 요소로 들어가 보자면, 레옹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던져주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액션 그 이상이겠다. 레옹은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고독한 존재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살인청부밖에 없다. 그는 도시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도시에서 소외된 존재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어두운 일을 하고, 스스로를 홀로 존재하게 한다. 그런 레옹에게 유일한 삶의 낙이라면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비쳐주어야 하는 화분. 이토록 고독한 레옹에게도 소박하나마 삶의 희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화분이 암시하는 것은 레옹과 마틸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옹은 마틸다를 살리면서 화분까지 꼭 가지고 가도록 한다. 자기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더라도 화분은 자기를 대신해 희망을 심어줄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레옹에게 화분보다 더 실질적으로 다가온 희망이 있다면 바로 마틸다이다. 


마틸다도 가정의 불화와 학교생활의 적응 실패로 나름 나락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도 남동생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레옹의 화분과 같이 마틸다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틸다의 희망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스탠스필드에 의해 살해당한 남동생으로 인해 마틸다는 희망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또 다른 희망이 다가왔으니, 그것이 바로 레옹이었던 것.


<악역전문배우 게리 올드만의 명 연기가 일품인 레옹>



마틸다가 울먹이며 레옹에게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대목에서 주의깊게 봐야 하는 것은, 레옹이 문을 열어줄 때 환한 빛이 마틸다의 얼굴을 반긴다는 것이다. 환한 빛은 일종의 새로운 희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장치는 마지막에 레옹에게도 나타난다. 레옹이 마틸다라는 새로운 희망을 통해 삶의 행복과 의미를 깨닫게 되고, 최후의 싸움에서 오로지 마틸다 하나만을 생각하며 힘겹게 탈출하여 어두운 지하 복도를 걸어나갈 때, 레옹의 눈 앞에는 어둠 끝에서 빛나는 밝은 빛만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레옹의 눈은 환한 빛으로 뒤덮이게 된다. 


레옹은 마틸다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일상에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곧 또 다른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총을 손에 쥔 채 자던 레옹이 처음으로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잤을 때, 레옹은 그 한번의 경험으로 이내 침대를 행복이라 느끼게 된다. 재미있게도 마틸다도 반작용처럼 레옹에 의해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직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꼬마숙녀가 레옹에게 킬러의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 킬러로서 변해가는 모습에서, 마틸다 역시 처음에는 어려운 적응을 보이지만, 나중에는 레옹을 놀라게 할 정도의 과감한 직업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는 서로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다가서게 되고, 이윽고 둘 사이에는 나이를 떠나 친구로서, 그리고 이성으로서 순수한 우정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는 어찌보면 유치하고 어수룩하지만, 그 순수함에 오히려 더 큰 애절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 레옹이 스탠스 필드에게 ‘마틸다가 주는 선물’이라면서 최후의 선택을 하는 장면은 끝까지 레옹의 순수함이 마틸다에게 깃들어있음을 보여주어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홀로 남게 된 마틸다는 다시 고독한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뉴욕 거리를 홀로 걸으며, 이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만한 희망이 없어진 고독한 모습을 너무나도 감성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공원에서 레옹의 화분을 묻으며 그녀 역시 레옹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과 함께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는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5. 최고의 킬러와 최고의 악당을 탄생시킨 명 배우들


고독한 킬러로서 완벽하게 변신한 명 배우 장 르노. 원래 그는 프랑스의 국민 배우이자 코미디 배우이다. 태생이 코미디는 아니지만,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벙 뜬 듯한 표정과 말투는 코미디적 요소를 200% 뻥튀기시킨 듯한 그만의 매력.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산 코미디 영화에 장 르노가 상당히 많이 출연한다. <핑크 팬더>에서도 몸개그를 펼치는 어리버리 형사로 등장하였고, <비지터>에서도 시대감각 제로의 덜떨어진 중세 기사로 등장하여 재미를 선사하였다. 하지만 니키타에서 고독한 킬러로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 데 힘입어 레옹에서 주연으로서 발군의 연기를 선보였기에, 장 르노는 필자가 손에 꼽는 명 배우의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이 장 르노를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그는 스페인혈통이며 모로코 태생이다. 본명은 에스파뇰답게 후안 모레노 이 에레라-히메네즈(Juan Moreno y Herrera-Jiménez). 부모님이 모두 스페인인이며, 어렸을 적 가족이 프랑코의 독재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이후 프랑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때부터 배우 경험을 쌓게 되었다. 참고로 그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다.


장 르노 못지 않게 필자가 명 배우로 손에 꼽는 배우가 이 작품에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노먼 스탠스필드로 악역을 소화해낸 게리 올드만. 이 배우가 누구던가? 헐리우드의 악역 전문 배우 되시겠다. 태생적으로 까칠해 보이는 얼굴과 표정, 그리고 광기어린 연기는 그를 헐리우드 최고의 악역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본래 영국 빈민가 출신의 노동계급으로 태어나 불우한 과거사를 가진 게리 올드만은 자신이 배우의 길을 걷게 되면서 영국의 연극/영화 산업계에 뿌리박힌 계급차별에 대한 부당함으로 인해 일찌감치 헐리우드로 도피한 영국출신 배우이다. 태생적으로 비참했던 과거, 지독한 차별, 거기에 알코올 중독까지 아주 다양하게 어두운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연기에는 다크한 기운이 매우 잘 묻어나기도 한다.


이 배우가 맡는 악역은 신기하게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광기어린 악역에서 나름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은데, 게리 올드만이 바로 그러한 명 배우이다. 그래서 작품 내내 마약에 찌들어 비리를 저지르고 악행을 일삼은 스탠스 필드도 왠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는 마력을 뿜어내고 있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 특징을 보면 진지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정말 싸이코가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한결 같은 여유와 뜬금없는 표정과 대사 되시겠다. 최근에는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을 도우는 착한 형사 고든 역을 맡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최고의 선한 역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게리 올드만은 금세기 최고의 악역 전문 배우로 인정받을 만하다. 참고로 고든 역을 맡았을 때 이제 선한 역에 캐스팅되었다며 온 가족이 울었다고 한다.


<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늘 쓸쓸해 보인다>



레옹으로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나탈리 포트만은 당시 나이가 14살. 수많은 오디션 끝에 뽑혔다는 나탈리 포트만은, 뤽 베송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소유한 흙 속의 진주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이 말을 100% 동감할 수 있을 듯. 14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발적이고 카리스마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래서 많은 아저씨 팬들이 이때부터 원조교제에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나탈리 포트만은 출연 당시 흡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를 부모가 매우 반대했다고 하여 결국 담배를 가지고만 있지 피지는 않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한다. 게다가 출연 이후 수많은 성인 남성들로부터 성적 혐오감이 강한 팬레처들을 너무나도 많이 받아서 어린 나이에 정신적 후유증이 매우 컸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정신줄 놓지 않고 잘 자란 덕에 미모도 으뜸이고 두뇌회전까지 으뜸이라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그야말로 엄친녀스러운 매력을 발산해주는 나탈리 포트만. 아무리 엠마 왓슨이 어린 나이에 강렬한 매력을 뿜어냈다고는 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나탈리 포트만만큼 큰 임팩트는 없었다는 느낌이다. 


참고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얘기하자면, 뤽 베송이 영화의 한 장면에 깜짝 출연한다. 토니의 레스토랑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서성이는 남자 중 한 명이 뤽 베송 자신이니, 한번쯤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도 있겠다. 



#6. 한국과 악연이 되어버린 레옹


레옹이 개봉되던 시기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극장 상영시간에 맞춘다는 핑계로 대폭 삭제된 버전이 상영되었는데(실제로는 미성년자가 살인 기술을 배운다는 내용이 심의에 걸렸기 때문), 레옹과 마틸다가 킬러업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약 26분의 장면이 통째로 날라갔더랬다. 이러한 처사 때문에 당시 뤽 베송이 한국 영화산업에 적잖게 실망을 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뤽 베송의 다음 작품인 <택시>에서는 한국인이 매우 추잡하게 그려지며 등장하는데, 아마도 복수의 목적이 있지 않은가 하는 소문이 많았다. 어쨌거나 뒤이어 디렉터스컷으로 26분이 추가되어 완전판이 다시 나왔고, 이를 보고서야 뒤늦게 레옹과 마틸다가 어찌 그리 급 친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애초부터 완전판이 개봉되었던 일본과 홍콩에서는 초대박이 나서, 각종 아류작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고, 특히나 주성치의 <홍콩 레옹>은 레옹의 대표적 패러디물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꼬마돼지 레옹>도 있는데, 이는 안 보느니만 못하니 예외로 하겠다. 



#7. 프랑스 영화 음악의 거장 에릭 세라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세우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음악. 감성적인 비주얼도 대단하지만 감성적인 음악도 그야말로 빤타스틱하다. 그 중심에는 바로 감성OST의 대표 주자 에릭 세라가 있다. 에릭 세라는 뤽 베송과 <그랑 블루>, <니키타> 등을 작품을 통해 함께 하면서 비주얼과 음악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내 왔던 뤽 베송 사단의 숨은 명장이다. 레옹에서도 중간 중간 녹아드는 감성적인 선율은 어쩌면 이토록 도시의 고독한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싶을 정도로 놀라울 따름이다. 


레옹 OST는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정말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영화 OST 타이틀 중 하나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서 주옥 같은 음악으로 전 세계 팬들을 눈물 바다로 지었던 스팅의 Shape of My Heart은, 원래 스팅의 앨범에서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인데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죽하면 스팅의 스 자도 모르던 국내 팬들이 이 노래는 전부 알고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레옹 OST 앨범에는 스팅의 이 노래는 삽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Shape of My Heart를 듣고 싶으면 스팅의 앨범을 따로 사서 들어야 한다. 


레옹이 개봉된 이후 그 놀라운 인기에 편승하여 <레옹 2>가 개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레옹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원제는 <와사비>라는 작품이다. 장 르노가 등장하지만 레옹 같은 킬러가 아니고, 형사로 등장하여 일본에서 마틸다 비스무리하게 컨셉잡은 여자애와 만나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내용이다. <레옹 2>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떡밥에 불과하니 절대 원 작품과 연계하여 보지 말 것을 권한다.


<저녁 노을이 비추는 도시의 소리없는 그림자처럼 고독하기 그지없는 레옹>



#8. 영화를 통해 고독을 느끼다


우리는 오늘도 또 힘든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수많은 군중 속에 파묻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고 고독이 온 몸을 사무칠 때, 빌딩숲 사이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라. 레옹이 그러했듯, 마틸다가 그러했듯, 극도의 정말과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아주 자그마한 삶의 희망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고, 결말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할 지라도 절대 희망을 포기하지는 말자. 레옹이 마틸다에게 비추어 준 밝은 빛과도 같은 그 무언가가 우리를 반겨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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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

※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허트 록커 (The Hurt Locker)


<미팅 나갈 때마다 폭탄만 걸렸다는 비운의 사나이의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필자는 밀리터리 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미 <블랙 호크 다운>이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밀리터리 영화에 있어 역사의 획을 긋는 명작들을 적나라하게 리뷰한 필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밀리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열심히 구르고 뛰고 갈기고 하는 보병, 일명 땅개들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전투에서는 그들이 가장 죽을 확률이 높으면서도 그들이 없으면 전쟁에서 승리가 어렵다는 특성 탓이겠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리뷰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이들보다 더 높은 죽음의 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뒤에서 가려져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대원들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 다른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비운의 전쟁 영웅들, 바로 폭탄제거전문가(EOD)의 이야기를 다룬 <허트 록커> 되겠다. 



#1. 스토리 - 수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위대한 도박꾼


제목만 듣고 포스터를 안 보면 어느 뜨거운 심장을 가진 정열의 락커 얘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영화. 그 착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스토리를 폭탄제거하듯 까뒤집어 보겠다. 


이라크. 미국이 세계의 자유를 수호한답시고 강제로 나라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린 비운의 국가. 그 곳에서는 여전히 수 많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테러와 전쟁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모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브라보 중대는 오늘도 어김없이 테러와의 전쟁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브라보 중대 EOD 지휘관인 맷 톰슨 하사(가이 피어스)는 시내 한 가운데 놓인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같은 EOD 부대원인 JT 샌본 병장(앤소니 맥키)과 우웬 앨드리지 상병(브라이언 게러그티)의 보조를 받으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늘 밥먹듯이 해 온 일이기에 여유 만점인 톰슨 하사. 원격 조종 로봇을 이용해 폭탄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발물을 실어 나르던 중, 사고로 수레 바퀴가 빠지면서 폭발물이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톰슨은 방호복을 입고 수레로 접근하여 폭발물을 조심스레 폭탄 옆에 놓는데 성공한다. 그 순간, 주변을 감시하던 앨드리지의 눈에 수상한 이라크인 남자가 포착되고, 그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앨드리지는 급히 그 남자에게 달려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외치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톰슨은 급히 폭탄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하지만 수상한 남자는 결국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그 즉시 폭탄이 터지면서 톰슨은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유능했지만 적군의 테러에 비명횡사하는 톰슨 하사>



유능했던 리더을 잃은 브라보 중대 EOD 팀에 그 뒤를 대신할 새로운 리더가 온다. 윌리엄 제임스 하사(제레미 레너)는 부임 첫날에도 불구하고 꽤나 시건방진 태도를 보여, 늘 FM을 고수하는 샌본 병장에게는 깜놀로 다가온다. 한편 자신이 제때 총을 쏘지 않아서 톰슨 하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앨드리지는 군의관 캠브리지 대령(크리스쳔 카마고)으로부터 1:1 면담 치료를 받는 등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브라보 중대 EOD 임무 교대까지 남은 기일은 38일. 아직 팀이 재정비되기도 전에 폭탄 테러 사고 접수가 들어와 출동하는 EOD 팀. 현장에 가 보니 시내 거리 바닥에서 이상한 끈이 발견되었다는 제보이다. 제임스 하사는 원격 로봇도 필요없다며 방호복을 입고 직접 의심지역으로 다가간다. 샌본과 앨드리지가 엄호를 하면서 따라붙지만, 어쩐 일인지 연막탄을 피며 아군의 시야마저 가려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제임스. 그런데, 길을 가던 도중 갑자기 방어망을 뚫고 돌진하는 간 큰 택시가 있었으니. 이에 제임스는 권총을 이라크인 택시 드라이버에게 겨누고 빨리 꺼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계속 배째라 버티는 택시 드라이버. 그렇게 신경전이 오가고 끝내 권총을 주변에 쏴대며 겁을 주는 제임스. 이에 택시 드라이버는 그 곳을 빠져나가고, 근처에 있던 미군들에게 붙잡힌다. 알고봤더니 그 택시 드라이버는 저항군이었던 것. 


목적지에 도착한 제임스는 그 곳에서 폭탄과 연결된 전선을 발견하고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하나 해체하고 성공했다고 기뻐할 찰나에, 전선이 한두개가 아님을 직감하고 계속 살펴본다. 그러자 무려 10여개에 달하는 폭탄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던 것. 하지만 노련한 제임스에게는 식은 스프 먹기였던 바, 쉽게 해제를 완료한다. 한편, 폭탄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던 동안, 주변에서는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라크인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걸 1타 7피라고 해야 하나? 제대로 월척 낚은 제임스 하사>



숙소에서 샌본은 제임스에게 껄렁껄렁한 놈들은 모두 허접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제임스는 샌본이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제임스. 오죽하면 부대 앞에서 불법복제 DVD를 팔고 있는 이라크인 꼬맹이까지 친구먹으려고 한다. 자신을 베컴이라고 소개한 축구광 꼬맹이에게서 DVD를 산 제임스는 그렇게 늘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며칠 후 또 다른 임무가 부여된다. 이번에는 건물 주차장에서 수상한 차량이 발견되었다는 제보이다. 제임스는 역시 방호복을 입고 직접 차를 살펴본다. 자랑스럽게도 주차장에 서 있던 수상한 차량은 바로 현대 EF 소나타. 테러범이 선정한 테러에 이용하기 가장 좋은 차량 1위에 선정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과 함께, 어쨌든 테러범은 어디선가 저격을 하여 소나타를 폭발시키려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만 붙고 말아서 소화기를 가지고 급히 불을 끈 제임스. 트렁크를 열자 트렁크 안에는 엄청난 폭탄이 아름드리 놓여있었다. 이에 깜놀하는 제임스. 제임스는 결국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어차피 죽을 바에는 그냥 편하게 일하다가 죽겠다고 한다. 입고 죽으나 벗고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논리. 샌본은 기겁하여 제임스를 말리지만, 제임스는 독고다이로 문제 해결 의지를 선사한다. 나중에는 귀찮은지 아예 해드셋을 벗어 던져버리는 제임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놀라운 성장!! 무려 이라크에까지 팔리는 소나타. 그것도 테러용으로>



한편 주변을 경계하던 샌본과 앨드리지는 이번에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이라크인들을 발견한다. 이번엔 아예 캠코더까지 들고 와서 무단 촬영하는 대범함까지 보여준다. 이에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샌본은 빨리 탈출하자고 한다. 하지만 제임스는 끝까지 폭탄 제거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폭발 스위치를 찾아내 해체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또 한번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제임스. 하지만 샌본은 그런 제임스에게 분노의 펀치를 날리며, 두 번 다시 사람 간 떨어지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극상에 썩소로 보답하는 제임스. 


한편 작전지역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던 인근 담당부대의 리드 대령(데이빗 모즈)은 제임스의 놀라운 실력과 통 큰 배짱에 감탄하여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치하한다. 알고봤더니, 제임스가 지금까지 해제한 폭탄의 수가 자그마치 800여 개에 달했던 것. 


작전이 없는 날에는 짝퉁 베컴과 노는 제임스. 그는 자신에게 허접 DVD를 속여 판 꼬맹이에게 온정을 베풀며 친구처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외곽 순찰을 떠나게 된 EOD 팀원들. 황량한 벌판을 달리던 도중 의심스러운 지프를 발견하고 대응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알고봤더니 그들은 미군으로부터 계약제로 활동하고 있던 용병대원들. 서로 아군임을 알고 반가워하며 타이어가 펑크난 계약직 용병들의 지프를 고쳐주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 소리와 함께 용병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저격당한다. 적의 습격에 놀라 급히 몸을 숨기는 일행들. 용병들은 비록 의상은 허접해도 장비만은 프로답게 바렛 대구경 저격소총을 들이밀며 적의 동태를 살핀다. 그런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적. 계약직의 리더는 바렛을 들고 좀 더 살피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던 중 적의 저격에 역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샌본은 대신하여 바렛을 잡고, 제임스는 그 옆에서 망원경으로 적의 위치를 살펴본다. 그랬더니 멀리 푸세식 화장실처럼 지어진 간이구조물에서 적의 동태가 확인된 것.


<멀리서 원격으로 폭탄을 제거하는 EOD 대원들. 이런 임무는 식은 죽 먹기>



샌본은 제임스의 도움을 받으며 바렛의 50구경 총탄을 날려보지만 사격술이 잼뱅이인지 명중시키지를 못한다. 첫번째 탄창이 동나고 두번째 탄창을 챙기보지만, 품고 있던 계약직 리더의 피가 묻어 송탄불량이 나버린 것. 이에 제임스는 앨드리지를 격려하며 침으로 피를 닦아내도록 한다. 그렇게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샌본은 저격수 중 2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머지 1명이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도 안보이는 상황. 사막에 노을이 붉어지고, 팀원들은 경계상태 그대로 미동하나 없이 자세를 유지하면서 적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는 탈수증상마저 나는 순간. 그런데 후방을 지켜보고 있던 앨드리지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포착된다. 멀리 떼를 지어있는 양떼들 사이로 무언가 움직임이 보인 것. 알고 봤더니 꼭꼭 숨었던 저격수가 어느 새 뒤로 돌아가 그들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앨드리지는 경계하고, 제임스는 일단 쏴재끼라고 한다. 결국 앨드리지는 과거 자신이 손가락질 못해서 죽은 톰슨 하사의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방아쇠를 땡긴다. 그리고는 적은 즉사. 그렇게 그들은 오랜 긴장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는, 어느 새 신뢰라는 마음을 조금씩 쌓아가게 되었다. 


살아돌아온 그 날 밤 팀원들은 양주 나발을 불어재끼며 서로 배를 주먹으로 치는 도무지 이해안되는 놀이를 하며 올나잇 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임스가 소장하는 물건이 다름 아닌 폭탄 기폭장치임을 알고 놀라는 멤버들. 제임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처리해 온 폭탄의 기폭장치를 모으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막 한 복판에서 엎드려 쏴 자세로 꿈쩍않고 몇 시간씩 버틴다는 것이 말이 되나?>



며칠 후. 이번에 맡은 임무는 어떤 현지인이 자신의 몸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현지인은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그가 저항군일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제임스는 그가 저항군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폭탄 제거에 도전한다. 하지만, 온 몸을 감싼 철제 자물쇠 때문에 도무지 풀지 못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폭탄에는 시한장치까지 달려 있었다. 샌본은 무모하다고 하면서 제임스를 말리지만, 제임스는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폭탄 해체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천하의 제임스 마저도 난공불락의 폭탄이었던 것. 결국 팀원들은 도망치고 현지인은 그 자리에서 한 줌의 재로 승화하고 만다. 


사건은 계속되어, 이번에는 폭탄 제조창으로 의심되는 지역을 조사하게 된다. EOD 팀원들은 수상한 건물로 잠입하여 조사를 하고, 건물 내부에서 폭탄이 제조되었던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곳에서 같이 발견된 것은 다름아닌 짝퉁 베컴의 시체. 제임스는 베컴의 몸에 폭탄이 설치되었음을 알고 원격 폭발을 통해 처리하려고 했지만, 어느덧 친구가 되어버린 베컴을 고이 여겨 그의 몸 안에 놓인 폭탄을 해체하고 시체를 온전한 상태로 들고 나온다. 한편, 앨드리지가 걱정되어 이 임무에 같이 따라 온 캠브리지 군의관은 바깥에서 현지인들과 노가리 까고 있다가, 그들이 놓고 간 폭탄에 당해 그 자리에서 분자구조로 분해되고 만다. 이에 충격 제대로 받는 앨드리지.





<그는 진정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숨은 영웅이었다>



#2. 알고보니 다큐멘터리 영화


일단 스토리를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했던 관객들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초반 나름 서스펜스 스릴러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끝에서는 마치 TV 인생극장을 보는 듯한 휴먼 다큐식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무언가 대단한 반전이나 액션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오산 미 공군기지. 


이 작품은 철저하게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을 위한 일종의 위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라크에서는 지금도 매일 테러와의 전쟁으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에 따른 미국 내 여론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자신의 아들이 전사해버린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재미있게도 이러한 인명 피해의 대부분이 자살폭탄테러 등의 비전투적 요소이다 보니, 감독은 바로 그러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진정한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다분히 인종적 차별성과 미국식 영웅주의를 깔고 있다는 지탄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이라크 내 저항군들이 왜 폭탄테러를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는 지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아무런 설명이 없이 단순히 닥치는 대로 폭탄 테러를 시도하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역시 나쁜 놈들이라는 이미지만 심어줄 우려가 다분하다. 과거 <위 워 솔져스>에서 보여주었던 적군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이라는 요소는 완전 무시된 형태이다. 대신 이러한 장치 때문에 우리는 EOD라는 특수 임무를 담당하는 대원들의 생사를 넘나드는 모습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적어도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폭탄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체하는 고생을 하지 않는가. 이러한 요소 때문에 이 작품은 정말 휴먼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초반의 수상한 이라크 테러범들의 소행이라던지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긴장감과 몰입도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차치하고 그저 우리에겐 생소한 EOD 대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어떠한 인격적 고뇌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냥 맘 편하게 보면 되는 영화이다.


<EOD가 얼마나 위험한 임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폭발에서도 방호복입고도 죽을 수 있다는 것>



#3. 이름은 들어 봤나? - 드러나지 않는 영웅들 EOD


필자의 입장에서는 밀리터리 측면에서 많은 요소들이 등장하여 반가웠는데, 일단 EOD라는 임무가 그러하였다. 대부분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EOD라는 동일 명칭으로 동일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가 있다. 부대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각 부대 내 EOD 팀이 존재하는데, 특히 공군 EOD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몇 년 전 광화문 한복판에서 발견된 한국전쟁 당시의 불발탄도 공군 EOD에서 해체한 사실도 있을 정도로 그들은 나름 베테랑이다. 필자도 군 생활 당시 EOD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들이 참으로 정겹기만 하다. 


비록 EOD는 임무 특성상 전투보다는 비전투 임무를 많이 띠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전투적인 요소도 많이 첨가하였다. 샌본이나 앨드리지가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특히 외곽 순찰 중 발생한 교전에서는 의외로 기대 이상의 교전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백병전이 아니라 바로 저격에 의한 숨막히는 혈전이었던 것. EOD 대원이 저격까지 한다는 다소 황당한 연출을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필자가 스나이퍼건 중 가장 좋아라 하는 바렛 저격소총이 등장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4. 나름 장비 고증에 충실한 영화


재미삼아 이 총에 대해 설명하자면, 미국의 총기 회사인 바렛(Barrett)사에서 1982년에 처음 생산한 제품으로, 무려 50구경에 달하는 브라우닝 탄환을 쓰는 대물 저격총이다. 50구경 탄환이라고 해서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손가락 하나보다 더 굵고 긴 탄환이라고 보면 된다. 이 총은 단순히 멀리서 적을 사살하는 목적보다는, 특유의 엄청난 타격력 때문에 주로 장애물이 동반된 목표 제거에 활용된다. 엄폐물 뒤에 숨은 적도 사살할 수 있고, 비행기나 장갑차 등 나름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이동수단 내부에 있는 목표물도 타격할 수 있다. 그만큼 관통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 가끔 탱크의 캐터필러를 멀리서 타격하여 탱크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쓰였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주로 대인 저격총이 아닌 대물 저격총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일반 장갑차의 경우 방탄 효과가 무용지물에 가깝다고 해서 가끔 탱크잡는 저격총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어떤 버전인지 정확히 확인이 안되었지만, 가장 일반적인 버전이 M82 버전이고, 현재는 개량을 거쳐 M107버전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25mm 고속 철갑탄용 바렛도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정말 무식할 정도로 파괴적인 바렛 저격총>



어쨌든, 이 정도로 후덜덜한 저격총을 가지고 등장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한 발 쏘고 나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연출이란. 이 총의 감동 포인트는 바로 소리이다. 실제 바렛의 격발소리를 들으면 5000와트급 중저음 짱짱한 스피커는 저리가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발사음이 들린다. 그것도 촐삭대는 소리가 아니라 매우 중후한 소리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못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비단 바렛 격발음뿐만 아니라 폭발음도 다소 약한 듯하다. 필자가 이미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던 명품 사운드의 대표작 <히트>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눈물이 망막을 워싱해버리고 만다. 일반적으로 저격총이 쇼트리코일 방식이라는 특성상 발사음이 크지만, 정말 바렛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이를 이토록 일반 저격총보다 허접하게 연출한 것은 최대의 안타까움. 


이 외에도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이 장착하고 있는 각종 장비들에 대해서는 고증이 매우 사실적인 편이다. 개인 화기에 대해서도 디테일이 묻어나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눈으로 즐기기에는 어느 밀리터리물 못지 않게 많은 볼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5. 도무지 매칭 안되는 감독 - 명감독이 된 캐서린 비글로우


나름 정교한 밀리터리 고증과, EOD에 대한 심도 높은 스토리 전개라면, 감독이 어느 정도는 밀리터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감독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놀랍게도 여자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여자로 어떻게 이런 정교한 밀리터리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알고보면 이 아주머니는 예전부터 밀리터리물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액션영화 <폭풍 속으로>도 바로 이 아주머니의 작품이다. <K-19>라는 독특한 잠수함물을 통해 독특한 밀리터리 철학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흥행에서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K-19>역시 서로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함장과 부함장의 갈등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다루었는데, 너무 캐릭터간의 갈등으로 치부해 버려서 밀리터리 본연의 액션은 부족한 감이 많았다.


<비록 임무는 폭탄 제거이지만 총격 액션도 쏠쏠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샌본의 자세가 좀...>



어쨌든 이러한 실패를 뒤로 하고, 7년만에 복귀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허트 로커>이다. 개봉 당시 흥행에서는 다소 밀리는 듯 하였으나, 캐서린의 진가가 발휘된 곳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당대 최고의 SF 걸작 영화라고 불리우는 <아바타>와 함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무려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향상, 편집상, 음향효과상)의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더욱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상이라는 놀라운 영예까지 함께 얻었다. 역시 아카데미는 흥행이 아닌 작품성을 중요시 여긴다는 설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지만, 어쨌든 이 작품으로 인해 캐서린은 하룻밤 사이에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캐서린 감독이 이 작품을 단순한 액션 밀리터리물로 접근하지 않고 휴먼다큐식으로 접근한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이러한 명작이 탄생할 수 있게 해준 배우들의 수준 높은 심리연기도 아주 나이스이다. 



#6. 주연보다 조연들이 더 유명한 저렴한 캐스팅


주인공 제임스 하사 역을 맡은 제레미 레너는 놀랍게도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아니다. 좀비물인 <28주 후>에서 도일 역으로 활약은 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 <SWAT 특수기동대> 영화에서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였지만, 딱히 액션스타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인상부터가 액션스럽지가 않고 푸근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멜로물에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진 똥고집 막무가내 엘리트 폭탄제거요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늘 위험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임무에 매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국군 병장과 전혀 다른 포스를 보여주는 샌본 병장은 앤소니 맥키가 연기하였다. 이 친구도 액션 연기는 미미하고 오히려 흑인 영화에 많이 출연한 이력을 보이고 있다. 연극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스파이크 리 감독을 좋아라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의 작품에 많이 출연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긴 것으로 보면 참으로 푸근하게 생긴 제레미 레너>



어딘가 모르게 어벙벙해 보이는 앨드리지 상병을 연기한 브라이언 게러그티도 정말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이다. 거의 무명에 가까운데 이토록 큰 역할을 해내다니. 그러고보니 주인공 3인방이 모두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칠맛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캐서린 감독의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3인방보다는 조연들이 좀 더 후덜덜한 독특한 영화이다. 도입 부분에서 카리스마있게 등장했다가 비명횡사하는 톰슨 하사 역에는 가이 피어스가 맡았는데, 이 친구가 그 유명한 <메멘토>의 기억을 잃는 사나이 레너드라는 믿겠는가? 바로 그 친구가 맞다.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다룬 <팩토리 걸>에서는 앤디 워홀로 분하여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한 그이다. 최근에는 <더로드>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계약직으로 봉사하다가 절명하는 용병부대의 리더를 맡은 랠프 파인즈도 후덜덜한 배우이다. 이 친구가 바로 그 유명한 볼드모트라면 믿겠는가? 무조건 믿어야 한다. 사실이니까.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로 분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타이탄>에서 악역 하데스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페이션트 역을, <쉰들러 리스트>에서 악한 독일 장교 괴트 역을 맡기도 하였다. 참고로, <월레스와 그로밋 – 저주받은 토끼>에서는 멍청한 악당 쿼터메인 백작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하였다.


<주인공보다도 더 엣지있게 등장하는 FM 병장 샌본>



별 활약도 없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리드 대령 역은 또 누구인가. 콧수염 붙여서 잘 모르겠지만 데이빗 모즈라는 아저씨로, 빛나는 조연으로 유명한 아저씨이다. <그린 마일>에서는 정이 넘치는 교도관 브루터스 역을 맡았고, 미지의 존재와 조우하면서 겪게 되는 SF영화 <컨택트>에서는 주인공의 애인 테드로 나와 막판에 인자한 웃음을 선사하였다. 멜로에도 강하지만 액션에도 강해서 <더 록>에서는 끝까지 애드 해리스를 위해 충성하는 박스터 소령 역으로 활약하였고, <네고시에이터>와 <12몽키즈>에서도 등장하였다. 참고로 이 아저씨가 필자 또래되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명작 <천사들의 합창>에 등장했다면 믿겠는가? 믿으라니깐!! 


이 외에도 캠브리지 군의관 역의 크리스찬 카마고 등이 캐서린 감독과의 <K-19> 작품을 인연으로 하여 출연하게 되었다. 비록 또 별볼일 없이 한 줌의 재로 끝나버렸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더 굵직한 역을 맡지 않을까 기대된다. 


배우들을 쭉 설명했는데, 대충 감이 잡히겠지만 일단 배우들의 개런티에서 싸게 먹히고 있다. 그 말은, 요새 헐리우드 영화를 블록버스터로 만드는 1등 공신인 배우 개런티에서 상당한 절약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로 분류된다. 미 육군에 돈을 조금 많이 주기는 했겠지만, 장병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하면 설마 바가지 씌우겠는가. 저예산으로 촬영해서 아카데미 상도 싹쓸이하고, 엄청난 인기몰이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한 로또가 어디있을까. 전작인 <K-19>에서 1억 달러 가량 투자하고 그 절반도 못 건져서 쪽박찼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인생역전한 셈이다. 


<해리 포터에게 밀려 이라크로 파견 왔다가 허무하게 인생 쫑나는 볼드모트>



#7. 적과의 동침 - 캐서린 비글로우와 제임스 카메론


마지막으로, 캐서린 감독에 대한 비밀 같지 않은 사실 하나 밝히겠다. 이 아주머니가 원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전 부인 되시겠다. 카메룬 감독하고 <어비스> 작업하다가 눈 맞아서 결혼했지만, 재미있게도 캐서린 감독 본인은 카메룬은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될 남자라고 혹평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번 아카데미에서 두 사람은 보기 좋게 라이벌로 후보에 오르는 묘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결국 흥행에서는 전 남편이 승리하고, 수상에서는 전 부인이 이겨버린 매우 진기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필자가 현역 시절 당시 몇 번 EOD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미팅 나갔을 때 상대편에 폭탄이 있으면 무조건 폭탄제거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었던 것. 참고로 EOD 임무는 아무나 맡는 것이 아니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모든 면에서 베테랑급에 속해야 EOD의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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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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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葉問)

Movie 2016. 1. 7. 13:35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엽문 (葉問)


<앞문도, 뒷문도 아닌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1. 실전무술을 구사한 이소룡의 스승 - 영춘권 고수 엽문


요즘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하늘을 콕콕 찌르고 있다. 실제로 펀치와 킥이 오가고,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한방 떡실신의 매력을 선사하는 K-1이나 UFC, M-1 글로벌 등등 이종격투기를 베이스로 한 종합격투기가 이제는 가장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종격투기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킥복싱,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레슬링, 심지어 씨름까지 별의 별 무예가 다 등장하는데, 유독 쿵푸만큼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네 마음 속에는 쿵푸야말로 당할 자가 없는 초절정 필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황당하리만치 아름답고 절묘하며 치명적인 쿵푸였기에 정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역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쿵푸는 실전에서 약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에서 활용도가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쿵푸의 원래 취지는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심신의 단련이 아니었던가 쿵푸가 너무나도 형식적이어서 그 실용성에 심히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주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소룡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무술을 습득한 이소룡은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형식을 버린 미래지향적 혁신적 무술인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다. 비록 비운의 절명으로 널리 보급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확실히 절권도는 기존의 무술과 달리 상당히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바로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그의 사부의 철학이 있었으니, 무술에 있어 형식은 필요치 않다고 얘기한 영춘권의 고수 엽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은 바로 이소룡의 사부이자 영춘권의 초절정 고수이자, 일제시대 중국인들의 정신적 힘이 되었던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엽문>에 대해서 리뷰해 보고자 한다. 역시 오늘도 리뷰의 첫 순서로 스토리를 다듬어보고 가겠다.


<도저히 64년생이라 믿기지 않는 페이스를 자랑하는 견자단>



#2. 스토리 - 뒤늦게 각성하는 게으른 고수의 일대기


때는 1930년대. 중국의 불산 지역은 쿵푸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쿵푸가 번성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유명한 유파들이 모여 하나같이 쿵푸학원을 차려놓으니, 그야말로 강남의 학원가를 능가하는 과열경쟁의 양상을 띄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학원차릴 생각없이 매일 니나노하는 쿵푸의 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춘권 전수자인 엽문(견자단)이다. 


어느 날 새롭게 불산으로 학원 간판내러 온 료가권의 료 사부(진지휘)는 자신의 명성을 살리기 위해 엽문과 폐문결투를 치루기를 요청한다. 늘 마누라 등살에 무술과 거리를 두고 있던 엽문은 어쩔 수 없이 료 사부와 대결을 펼치고, 단 10합도 안되어 료 사부를 패대기 친다. 그런데 마침 나무에 걸린 연을 잡으러 온 사담원(황우남)이라는 청년이 그 장면을 보게 되고, 이후 자신의 형이 알바하는 식당에 가서 소문을 내고 만다. 이 소문을 들은 료 사부는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사담원을 해하려 들고, 사담원의 형인 무치림(석행우)은 평소 엽문을 사부로 불러왔던 터라 동생을 꾸짖는다. 마침 식당에는 엽문이 친구인 주청천(임달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터라, 사담원은 엽문에게 달려가 진실을 알려달라고 조르지만, 료 사부의 명예가 걸린 일인지라 대결은 없었다고 거짓을 전한다. 이에 무치림은 사담원을 꾸짖고 사담원은 크게 실망하며 그 길로 가출을 해버린다. 


어쨌든 무술이라면 치를 떨며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 때문에 편할 날이 없는 엽문. 그러던 어느 날 북쪽에서 왔다는 도장깨기의 달인 금산조(번소황)가 불산의 모든 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만다. 믿었던 료가권마저 깨지자 금산조는 불산도 별 것 없다고 우쭐해하지만, 진정한 고수인 엽문을 깨지 않고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로 인하여 금산조는 엽문을 찾아 간다. 그야말로 효도르와 크로캅의 대결을 능가하는 빅 이벤트라고 생각한 마을 주민들은 금산조를 따라 엽문의 집으로 향하고, 마을 경찰관이자 엽문의 팬인 리순(임가동)의 협조로 폐문대결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엽문의 마누라인 장영성(웅대림)의 바가지. 눈치를 보고 있는 엽문에게 금산조는 야유를 날리고, 이에 열받은 장영성은 엽문에게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한다. 단, 집안의 가재도구는 부서지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 


<료가권과 영춘권의 대결. 왼쪽의 료 사부 역을 맡은 진지휘는 '삼국지 용의부활'에서 장비 역을 맡았던 배우>



우쭐대는 금산조와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대결이 펼쳐지고, 금산조는 칼까지 빼들며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결국 엽문에게 죽도록 얻어터진다. 결국 싸움에서 패하고 망신을 당한 금산조는 영아치 부하들을 이끌고 불산을 떠나고, 이후 엽문은 불산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더불어 많은 주민들이 영춘권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고, 심지어 그의 베프인 주청천마저 자신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지만, 엽문은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도장운영은 금물로 여기고 버틴다. 


평화롭던 세월도 잠시.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고,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인 1940년대. 불산마저 초토화되고, 대대로 부유함을 자랑했던 엽문의 저택마저 일본군에게 빼앗겨 버리면서 엽문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만다. 바가지긁던 초절정 미인 마누라와 아직 철부지인 아들래미 하나만을 데리고 거리에서 비참한 삶을 보내게 된 엽문. 쌀이 없어 귀중품마저 탈탈 털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이제 한계. 결국 엽문은 쪽팔림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게 된다.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결국 어렵게 구한 일은 석탄나르기. 석탄공장에서 검은 연기 들여마시며 일을 하던 엽문은 한때 불산에서 이름을 날렸던 각 도장의 사부들이 모두 석탄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세월의 무성함과 무술의 무용함에 안타까워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 무치림과 조우하게 되고, 아직도 가출한 동생을 못 찾아 미안하다는 무치림과 함께 새로운 일을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이 석탄 공장에 들어닥치고, 무술을 좋아라 한다는 미우라 장군(이케우치 히로유키)의 지시로 무술 고수들을 초빙하여 가라데와 격투를 벌이는 이벤트를 벌이려는 일본군. 그런데 일본군의 통역을 맡은 이가 다름아닌 리순이었던 것. 그야말로 매국노의 모습이 아니던가. 아무튼 대련에서 이기면 쌀을 준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일본군을 따라 가고, 그 중에는 무치림이 섞여 있었다. 


<가라데가 세상 최강임을 내세우는 미우라. 일본 아해들은 전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미우라 장군은 가라데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 무술과 일본 가라데의 대결을 추진하고 있었고, 무술의 명고장이라는 불산에서 특별히 고수들을 찾아내어 자신이 직접 박살내고 싶어했던 것. 무치림이 와보니 이미 료가권의 료 사부가 일본군들과 1:1 가라데 대결을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하면서 쌀을 타가고 있었다. 이에 혹한 무치림은 쌀과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결에 나서고, 미우라 장군은 몸이라도 풀기 위해 특별히 1:3 대결을 지시한다. 무치림과 2명의 도장 사범이 미우라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미우라는 엄청난 가라데 실력으로 이 세 명을 떡실신 시킨다. 하지만 자존심이 대단한 무치림은 절대 질 수 없다며 끝까지 개기고, 결국 열받은 미우라는 무치림을 영원히 잠재운다. 


한편 새로운 일 때문에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던 엽문은 마침 불산으로 돌아온 친구 주청천이 과거 자신이 꿔 준 돈으로 목화공장을 차렸다는 말에 반가워 간만에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두 사람. 하지만 다음날부터 무치림이 안보이게 되자 엽문은 수상하다 싶어 리순을 따라 대결현장으로 따라가고, 그 곳에서 일본군 3명과 1:3 대결을 펼치던 료 사부가 항복을 하자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우라 장군은 무도인의 예를 운운하며 갑자기 총을 쏜 자신의 부하를 탓하지만, 이미 물건너간 시츄에이션. 평소 어떠한 일에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엽문은 비로소 분노를 느끼고, 료 사부의 죽음과, 무치림의 죽음과, 그리고 중국인의 무너진 자존심으로 인하여 초샤이어인으로 변신! 미우라에게 10대 1 대결을 요청한다. 


일본군 10명과 싸우게 된 엽문. 하지만 10명이 단 한번도 엽문을 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묵사발 되고 만다. 이에 놀라는 미우라 장군. 엽문은 포상으로 준 10개의 쌀은 받지 않은 채 료 사부의 피가 묻은 쌀 한 포대와 자신이 간직했던 고구마 반쪼가리만을 든 채 그렇게 자리를 떠난다. 


<전설로 남아 있는 가라데 고수들과의 1:10 대결 장면>



한편 친구 주청천이 운영하는 목화 공장에는 때아닌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바로 엽문에게 된통 당했던 금산조가 산적이 되어 목화공장을 습격한 것. 주청천은 금산조에게 얻어터지고 다음 번에는 돈을 꼭 준비하라는 협박을 듣는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엽문은 주청천과 공장인부들의 요청으로 비로소 처음 사람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하기에 이른다. 


대결 이후 소식이 끊긴 엽문을 찾기 위해 미우라 장군은 리순을 족쳐서 엽문의 행적을 캐고, 리순은 거짓 보고를 하면서 엽문을 계속 감싸준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일본군이 엽문의 집에 쳐들어오고 아들과 아내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한 엽문은 일본군 장교를 때려눕히고 그 길로 리순의 도움을 받아 리순의 집으로 숨어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숨바꼭질 삶을 살며 목화공장 인부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해준 엽문. 그리고 금산조가 다시 찾아왔을 때 공장인부들은 영춘권을 내세우며 금산조 일당과 한판 패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금산조도 워낙 깡다구가 있었던 인물. 전세가 밀리자 엽문이 나타나고, 엽문은 또다시 금산조를 피박살내고 그를 쫓아낸다. 그런데 금산조의 산적 무리에 무치림의 동생인 사담원이 있었던 것. 엽문은 사담원에게 죽은 형의 유품을 건네주고, 이에 사담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한편 목화공장 사건이 일본군에게 알려지자 일본군은 엽문을 찾기 위해 공장으로 들이닥치고, 엽문은 스스로 나서 일본군에게 연행된다. 그리고 미우라 장군은 엽문에게 일본군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지만, 자랑스런 중국인임을 내세우며 거절하는 엽문. 그리고 엽문은 복수를 위해 미우라와 1:1 대결을 요청한다. 







<물 흐르듯 한 편의 감동의 서사시를 눈으로 보는 듯한 영춘권>



#3. 동시대를 평정한 4명의 고수 - 엽문, 곽원갑, 황비홍, 이서문


엽문의 스토리는 기존에 개봉되었던 모 영화가 심히 비슷한 구조와 주제의식을 따라가고 있다. 눈치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로 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 되겠다. 재미있게도 둘 모두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고, 또한 무술의 고수였다는 점, 그리고 일제시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더더욱이 일본군과 무술 대련을 통해 중국 무술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는 점 등 엄청나게 많은 유사점이 있다. 


사실 곽원갑과 엽문을 놓고 얘기를 하자면 너무나도 많은 얘기거리가 있다. 이공…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난감하다. 먼저 곽원갑과 엽문,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전설적인 무술 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곽원갑은 최근 영화를 통해서 알려졌듯이 1868년~1910년에 살다간 인물로, 중국의 유명한 도장 ‘정무문’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여러 무술들을 종합하여 곽가권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중국 개화기 당시 무술을 통해 부국강병과 심신을 달랠 것을 주창하였다. 하지만 1910년 갑작스레 사망하였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죽음은 독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에서 그 죽음을 일본의 소행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중국의 무술 대결에서 너무나도 압승을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독을 타 곽원갑을 죽였다는 설정이다. 아무튼 향년 42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죽은 무술의 달인 곽원갑. 


이에 비해 엽문은 비숫했던 처지에도 불구하고 꽤 평탄하게 살았다. 1893년~1972년으로 다른 3명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존재하였던 엽문은, 영화에서와 같이 일제침략 이후 무술로 부국강병 할 것을 깨닫고 홍콩으로 망명하여 뒤늦게 영춘권을 보급시킨 인물이다. 살아생전 조용하고 차분하게 살았다는 엽문은, 그래서 그런지 인상이 참으로 단아하고 푸근해 보인다. 지금은 아들인 엽준이 영춘권을 전수하고 있으며, 13세였던 이소룡을 제자로 받고난 후,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부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제 두 명이 남았는데, 먼저 가장 유명한 사람부터 얘기해보자. 바로 황비홍 되겠다. 아주 지긋지긋하게 시리즈가 나오는 황비홍. 설마 이 사람도 실존 인물이야? 하고 놀랬다면 중국 역사에 관한 지식에 대해 한번쯤 반성해 보시길. 어쨌든 황비홍은 1847년~1924년에 존재했던 인물로, 영화에서처럼 변발을 주 스타일로 하고 ‘보지림’이라는 의원을 운영하면서 무술마저 초절정에 오른 고수이다. 황비홍은 방세옥의 3대 제자로 불리우며, 불산 출신으로 나중에는 광주에서 무술로 이름을 떨쳐 도장도 내고, 의원을 차려 약자들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황비홍은 대대로 황씨가문의 가권인 홍가권을 전수받았고, 이 외에도 철산권과 무영각 등을 전수받아 당시 광주 최고의 고수로 군림하였다. 특히 당시 외세의 세력에 항거하여 조정을 수복하고 한족의 부흥을 내세웠던 진가락의 천지회에 가입하여 천지회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홍가권을 보급하여, 홍가권을 천지회의 대표 무술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이바지 하기도 하였다. 이후 황비홍은 화재로 인해 의원이 무너지고, 큰 아들마저 사업 실패로 망하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살아 생전의 엽문의 모습. 도무지 견자단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1인. 위의 세 명은 영화로라도 만들어졌기에 들어는 봤겠지만, 나머지 한 명은 대체 누구일까? 바로 전설적인 인물 이서문이다. 1864년~1934년에 존재했다는 이서문은 다른 세 명과는 달리, 그야말로 극의에 오른 실전무술을 구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팔극권과 창으로 유명한 이서문은 다소 괴팍하고 외골수적인 성격 탓에 영웅 대접은 못 받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초부터 무술을 배움에 있어 인의예지나 심신의 단련 등은 마음에 없었고, 오로지 상대를 한 방에 무찌르는 극의의 기술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의, 타의적으로 많은 이들을 해쳤다고 하며,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도 독살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타인에게 원한을 많이 사고 다녔을 법한 다크포스를 뽐내고 다녔다지만, 이서진은 단 1합에 상대를 죽일 정도로 강력한 무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단 1합에 상대의 7개의 구멍에서 피를 뿜고 죽게 하였다는 ‘칠공분혈’의 에피소드는 전설 중의 전설로 남아있다. 


왜 갑자기 위의 4명의 절대 고수를 거론하는가 싶겠지만, 재미있게도 모두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 4명이 과연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을까? 현재로서는 사료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만나서 대결을 했었다면 서로 치명상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료로만 놓고 볼 때 가장 강한 자는 이서문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격동기에 살았던 4명의 전설의 고수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지냈을까? 명성이 전 중국으로 퍼졌기 때문에 서로를 인지하고는 있었겠지만, 과연 실제로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필자의 지식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다. 



#4. 이소룡을 용으로 만든 장본인


곽원갑과 엽문의 관계는 단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것 빼고도 다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바로 불운의 액션 스타 이소룡이다. 이소룡이 이미 엽문을 스승으로 두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곽원갑은 어떤 관계일까가 궁금해진다. 사실 이소룡과 곽원갑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이소룡이 살아 있을 때 곽원갑은 이미 고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룡을 최고의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해준 작품인 <정무문>에서 그는 곽원갑과 관계를 맺는다. 바로, 정무문의 수제자인 이소룡이 자신의 스승인 곽원갑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 어쩌면 자신의 실제 스승이었던 엽문과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곽원갑의 삶에 이소룡은 애착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5. 본래 여자를 위해 창시된 영춘권 


기왕 무술의 족보 따지는 얘기 비스무리하게 나와서 추가로 또 얘기하자면, 엽문의 필살기인 영춘권에 대해 알고 넘어가고자 한다. 영춘권은 발음상으로는 상당히 추리~한데, 이는 그 기원이 바로 추리~한 여자의 이름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미 양자경이 주연한 <영춘권>이라는 작품이 존재하는데,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엄영춘이라는 여자가 바로 영춘권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자가 창시한 최초의 권법이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청나라 시대에 존재했다는 엄영춘은 특유의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여성에 적합한 무술을 개발하여 이를 영춘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의 남편인 양박주에 의해 널리 전파되어 여러 대를 걸쳐 전수된 영춘권은 엽문을 계기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되고, 이후 이소룡 또한 영춘권을 베이스로 절권도를 창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존하는 영춘권의 제자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영웅본색>의 대머리 사나이 ‘송자호’역을 맡은 적룡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게도, <영춘권>에서 견자단이 남편인 양박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견자단과 영춘권의 묘한 인연이지 않은가? 


<영춘권의 시조라 불리우는 엄영춘의 수련 모습>



#6. 더 이상 구라 액션은 없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와서 얘기를 하자면, 일단 최근에 시들해진 무술 영화에 새로운 시도였다는 것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자 가치이다. 과거 황비홍 식의 초절정 구라 액션을 선보이면서 인기를 끌던 무술영화들이 더 이상은 씨도 안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K-1이나 UFC같은 실전 이종 격투기에 눈높이가 맞추어진 관객들에게 더 이상 구라 액션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보다 사실적이고 타격감있는 액션이 필요해졌고, 그 중심에 바로 견자단이 있었다. 


37단의 종합 무술인 견자단의 리얼한 액션과, 실전을 방불케하는 타격감 넘치는 격투신은 가식을 벗어던지고 관객 앞에 섰다. 특히 와이어 없이 펼친 견자단의 리얼 액션은 중국 무술의 신비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로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 일찌감치 성룡이 와이어 없이 정말 몸을 던지는 리얼 액션을 펼쳤지만, 성룡의 무술은 약간 코믹스러워서 흔히 무술다운 무술 액션을 평하기에는 성룡의 연기는 다소 형식이 없었더랬다. 하지만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아무래도 가짜라는 게 티가 나는 것이 액션연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견자단이 영춘권의 필살기인 연타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그 타격감이나 리얼함에서 정말 압권이다. 견자단이 이러한 실전 영춘권을 익히기 위해 엽문의 아들이자 영춘권의 전수자인 엽준으로부터 9개월간 필사적으로 영춘권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의 액션은 기존의 무술영화의 가식을 벗어 던졌다는 점에서 실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실존 인물의 영웅담을 솔직 담백하게 묘사한 것도 재미있다. 황비홍의 경우는 너무 방정맞게 그려진 느낌이 강하고, 곽원갑의 경우는 너무 무게를 잡았더랬다. 하지만 엽문은 때로는 비장하면서도 때로는 재치있게 그려져서 정말 사람다운 맛이 난다. 일례로 엽문이 그토록 무술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눈치보며 사는 모습은 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하는 안타까운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일제의 점령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거의 굶다시피 사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는 부랑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통 영웅이라 하면 약점은 가리고 최대한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성이 아니던가. 하지만 적어도 엽문에 대해서 만큼은 그러한 가식을 그나마 벗어 던졌다고 볼 수 있겠다. 



#7. 견자단이 보여준 프로페셔널 정신


견자단은 엽문의 배역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춘권도 열심히 전수받았다지만 수시로 엽문의 행적을 되밟으며 그의 인생을 이해하려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엽문이 실제 쓰던 찻잔을 이용해 차를 마시며 엽문처럼 말하고 엽문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 엽문을 보면 인상은 편안한 옆집 아저씨 스타일인데, 몸매가 상당히 한민관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견자단도 10kg 이상을 감량하면서 최대한 말라비틀어지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투혼이 있었기에 기존의 견자단의 연기력 제로에 대한 불안을 싹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데뷔작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웅대림. 기대가 크다>



견자단에 대해서 살짝 얘기해 보자면, 그는 어렸을 적부터 무술 고수였던 어머니 밑에서 무술을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각종 문파의 무술을 모두 섭렵하고, 총 37단의 종합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청년시절 각종 무술대회에서 모두 우승이라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무술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최초의 예능인이 바로 견자단 되겠다. 그 이후로 얼굴 좀 되고 실력 좀 뛰어난 무술인들이 견자단의 뒤를 이어 예능에 뛰어들었는데, 조문탁이 그 대표적인 후발 주자 되겠다. 


아무튼 견자단은 여러 무술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무술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연기력이 딸려서 주연은 늘 놓치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그가 택한 길은 바로 무술감독. 이후 여러 메가톤급 작품에서 무술감독으로서 완성도 높은 무술 액션을 지도하였고, 특히 구라식 액션을 벗어던지고 실전 액션을 강조하면서 무술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그는 헐리우드에서도 초특급 무술감독으로 초빙받아 작품에 참여하였고, <블레이드 2>에서는 무술감독 겸 배우로 직접 출연하는 이력을 남기기도 한다. 


견자단은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장편 짱개 드라마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했던 진진 역을 맡아서 국내 안방 극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사실 견자단은 이소룡의 엄청난 팬이었기 때문에, 그 역에 지대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센세이션이 적었는지, 큰 인기는 끌지 못한 채 몇몇 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장예모 감독의 대작 <영웅>에서 은모장천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연기력을 절정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제서야 무술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내공 좀 되는 무술연기인이 되었다. 


<목각인형은 영춘권의 트레이드 마크이다.이소룡도 실제로 저것을 애용했다>



#8. 앞날이 기대되는 출연진과 제작진


견자단 말고도 놀라운 배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엽문의 아내 장영성 역을 맡은 초절정 미모의 웅대림. 보면 알겠지만 견자단보다도 키가 크다. 실제로 두 부부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견자단이 키가 작다고는 해도 이토록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체격 조건이라니. 워낙 절제된 연기만 선보여서 그런지 아직 연기력에 대한 검증은 안 되는 편이지만, 놀랍게도 웅대림은 이번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기자인 만큼 차기 작품도 기대가 매우 된다. 


엽위신 감독이 전체적으로 액션과 연출, 그리고 드라마를 훌륭하게 조율하여 완성도 높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도 <공각기동대> OST 등으로 유명한 가와이 겐지가 맡아 장엄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근래들어 이 정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무술 영화가 없었기에, 엽문은 무술 영화 부흥의 새로운 선구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엽문과 이소룡의 커플 사진. 그런데 엽문의 저 짝발은 뭥미?>



국내에서도 리얼 액션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뛰어난 작품성,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는 민족정신이 반영되어서 그런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엽문. 하지만 최근 홍콩으로 망명한 이후의 에피소드를 다룬 <엽문 2>를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문득 제 2의 황비홍 시리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중국 아해들은 딱 좋겠다 싶은 시점에서 꼭 한번 더 오바하는 습성이 있는데, 엽문도 제발 더 이상 무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은 고인이 된 엽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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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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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화재예방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셔터아일랜드 포스터. 약간 블랙코미디 장시간호러물 킹덤을 떠올린다>



#1. 가끔 사회가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볼 법만 영화


필자는 가끔 스스로를 프로이트식 정신분열 중에 있다고 얘기한다. 필자 스스로는 무언가가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변에서는, 심지어 이 사회 전체가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세뇌시키는 듯하다. 그럴 때에는 정말로 내가 미쳐버리던지 세상이 미쳐버리던지 둘 중의 하나밖에는 안될 것이리라. 


최근 밥벌이로 인해 필자는 이러한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필자가 속한 조직에서 필자는 정말로 톱니바퀴들 사이에 놓인 베어링 같다고나 할까? 즉, 코드가 심히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정말 나만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경우가 있다. 이러한 필자의 심정을 이해해줄 것만 같았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셔터 아일랜드>이다. 


처음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다고 해서 안 보려고 했지만, 주연배우의 비호감을 떠나 작품 자체가 매우 신선하고 반전도 나름 깔끔하면서 구성이 치밀하다고 해서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왜 필자가 레오나르도 디씨의 작품을 싫어하는지는 차차 밝히기로 하면서, 일단 작품의 스토리부터 헤집고 들어가자.


<나름 연방수사관인데 넥타이가 저게 뭐꼬? 섬으로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2. 스토리 - 달아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진실


때는 1954년.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회가 암울했던 당시의 미국 보스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가고 있고, 그 배 안에는 연방수사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동료요원 척 아울(마크 러팔로)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정신이상 중범죄자만 격리한다는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이 홀로 서 있는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 최근 이 곳에서 환자 1명이 실종된 사건으로 인해 이를 해결하고자 배에 올랐다. 


섬에 도착한 테디와 척 앞에 펼쳐진 정신병원은 마치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으시시한 분위기였다. 교도관을 연상케하는 경비원이 테디와 척의 무기를 회수하고서야 겨우 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서 꽃을 만지고 있는 환자들이 확실히 중증 정신이상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 어떤 미친 환자가 테디를 보자 싱긋 웃는 것이 아닌가! 이에 테디는 질겁하며 원장에게 달려간다. 병원 원장인 닥터 존 코리(벤 킹슬리)는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며 먼저 수사가 펼쳐질 수 있게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실종된 환자는 레이첼 솔란도(에밀리 모티머)라는 여자로, 평소 아무런 증세도 없었다가 갑자기 자식 3명을 살해하고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에 레이첼의 방을 조사하던 테디는 서랍 뒤쪽 바닥 아래에서 쪽지를 발견한다. 쪽지에 써 있는 내용은 “제 4의 법칙, 67은 누구인가?”였다. 대체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모를 상황. 테디는 이번에는 사건 당일 목격자일 가능성이 높은 간호사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펼친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뚱땡이 아줌마를 심문하던 중 그녀가 갈수록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테디. 그리고 마침 척이 물을 가지러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는 갑자기 테디의 수첩에다가 글씨를 써 준다. 그러고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돌아가는 뚱땡이 아줌마. 테디는 그녀가 자신의 수첩에 쓴 글을 보고 놀란다. 'RUN'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한편 존 코리 박사는 전두엽제거술이라는 흥미로운 얘기를 꺼낸다. 이는 일종의 뇌수술로, 증세가 매우 심각한 환자의 경우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뇌수술로 전두엽 일부를 제거하여 그들의 기억을 없애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좀비 상태로 만든다는 것. 테디는 이 것이 불법이라고 반문하자, 코리 박사는 그것이 최후의 방책일 뿐이며 자신은 무엇보다도 환자의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심리적 치료를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병원 부원장인 닥터 제레미아 네링(막스 본 시도우)은 코리 박사와는 전혀 다른 인물. 그는 환자를 마치 실험동물 취급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자신은 전두엽제거술이 최고임을 강조한다.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의문의 실종, 그리고 사건을 수사할수록 자꾸만 다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 그리고 레이첼의 주치의라는 시한 박사가 사건 다음날 바로 휴가로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끔찍한 뇌수술까지 자행하는 이 곳.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서 테디는 이 곳에서 엄청난 음모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테디의 꿈은 그에게 이상한 내용을 던져준다. 2차 대전 당시 참전하여 독일의 패망을 바라본 그는 점령지에서 독일 장교의 자살을 목격하고, 또한 나치 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유태인들의 시체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또 한편, 오래 전 화재로 죽은 아내가 나타나 이 곳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꿈에서 깨는 테디. 


<병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중인 테디. 저 뒤의 좀비같은 간호조무사들을 보라>



테디는 계속해서 사건을 풀어나가려 하지만, 단서는 좀처럼 잡히질 않고, 단지 기존에 이 곳에 환자가 66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쪽지에 쓰인 단서인 '67은 누구인가'는, 바로 이 곳에 66명의 환자가 아닌 67번째 환자가 있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인가? 하지만 코리 박사와 네링 박사는 그저 웃으면서 이를 무마한다. 


테디는 지치고, 결국 다음 날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날 밤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배는 뜰 수 없게 되어버렸고, 테디는 그 날 밤 꿈에서 또 다시 아내와 전쟁의 악몽을 꾸며, 이 곳의 비밀을 파헤치리라 다짐한다. 


계속되는 악몽. 이제는 레이첼이 죽였다는 자식 3명이 나타나서는 왜 빨리 안 와서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느냐는 협박성 악몽까지 시달리게 된다. 그러는 한편 아내는 계속해서 앤드류 레이디스가 바로 이 병원 어딘가에 있다고 교육까지 시켜준다. 각종 악몽에다가 사건 미해결에 따른 조급한 심정 등이 짬뽕퍼레이드를 펼치며 갈수록 테디를 압박하고 있는 실정. 


테디는 다음 날 폭풍우를 뚫고 숲 속으로 향한다. 척은 말리려고 따라가지만 테디는 레이첼이라는 여자가 반드시 이 곳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묘지. 테디는 묘지를 조사하던 중 강한 폭풍우에 나무가 부러지는 등 위험이 느껴지자 일단 묘안치소로 들어가 몸을 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테디는 척에게 왜 이 곳에 왔는지를 얘기해준다. 테디는 이 곳에 온 목적이 단순히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외에도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하나는 이 곳에서 불법적인 뇌실험이 행해지고 있고, 그 뇌수술이 아마도 등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자신은 오래 전에 이 곳에서 탈출한 환자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가 바로 이 곳으로 이송되었고, 자신은 아내를 위해 그 놈을 만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밖에서 경비원이 차를 타고 달려와 이 둘을 구하러 왔고, 그 둘은 무사히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병원은 밤사이의 폭풍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마침 초절정 중증환자들이 수감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C병동의 벽돌이 부서진 것을 보고 테디는 이를 틈타 C병동으로 향한다. 테디와 척은 간호사인 것처럼 위장해서 C병동을 탐험한다. 어둡고 칙칙하며 어디선가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곳. 그 곳에서 어떤 격한 환자를 만나게 되고, 테디와 척은 이를 쫓아서 더욱 깊숙한 곳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환자와 테디는 격투를 벌이고, 이를 제압한 테디는 척에게 환자를 병실로 데려다주고 오라고 한다. 그러고서는 테디 자신은 레이디스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곳을 찾아나선다. 그런데, 정말 어두운 병동 끝 쪽에서 누군가 '레이디스'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레이디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 그 곳에는 놀랍게도 과거에 병원을 탈출하여 자신에게 이 곳의 음모를 알려 준 조지 노이스가 있었던 것. 테디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지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노이스는 테디 너 때문이라며 어서 빨리 꺼지라고 한다. 이에 이제는 아예 라이브로 등장하는 아내의 환영. 조지 노이스는 아내의 환영에 시달리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 아내의 귀신드립에 테디는 결국 아내의 의지를 실현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꽃다운 미모는 서서히 사라지고 중년의 세계로 접어든 디씨>



#3.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간만의 명작 스릴러


필자가 스토리를 객관적으로 기술했는지 의문스럽다. 이 작품은 엔딩을 보고 나서도 계속해서 여운과 의문이 남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을 보고 나면 대부분은 아마 “그래서 뭐가 진실일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쓴 스토리, 특히 스포일러 부분을 보고 나면 어쩌면 두 가지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어쨌거나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부디 필자의 글만 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작품을 보고 난 뒤에 자기 나름의 결말을 추측하기를 바란다. 


일단, 이 작품은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목은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정해진 것이고, 실제 원제는 <Shutter Island>이다. 즉, 영화는 원작소설과 동일한 제목을 차용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과거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원작과 달리 심히 실망스러운 결말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긴장감과 치밀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다분하다. 이 치밀함이 비록 원작 소설만큼의 초절정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근래의 스릴러 영화치고는 꽤 훌륭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레오나르도 디씨가 보기 싫어도 이 작품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4. 의외로 여운이 진하게 남는 결말


필자가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부분은 바로 앞에서도 언급한 애매한 결론. 늘 작품을 보고 나서도 고민하게 되고, 더 보게 되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필자는

이 작품이 딱 그러한 느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해주고 싶다. 


대체 무엇을 고민하게 되는 것일까? <공각기동대>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아주 무거운 철학적 주제까지는 아니지만, 주인공에게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하는 끝없는 의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가볍고 단순한 문제 같고, 감상 중간에도 이미 반전을 눈치챌 수도 있을 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펼쳐지는 진실과 거짓의 싸움,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태도가 너무나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장면이자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테디가 보여주는 그의 결심과 대사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작품을 아주 촘촘히 살펴보아야 한다. 


자, 이제 그 고민에 대해 접근해보자. 일단, 이 내용을 읽기 전에 스포일러성 내용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음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 애매한 결말에 대해 미리 알기 싫다면 아래의 내용은 건너뛰고 배우 소개 등부터 읽기를 바란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은 바로 주인공 테디가 정말로 앤드류 레이디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초반에는 모든 것이 테디가 생각하는 병원의 음모론인 것처럼 흐른다. 사실 등대에 올라간 후 존 코리 박사가 설명을 하는 부분까지도 이는 음모론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갑자기 음모에 굴복한 나머지 쓰러지고 나서 자신의 꿈 속에서 박사가 말한 대로 아내를 살해하는 것을 보고나서는 그 때부터 이야기의 흐름은 테디가 정말로 미쳐버린 범죄자 앤드류 레이디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게 테디는 결국 굴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들은 “결국 테디가 진건가? 아니면 정말 테디가 미쳐버렸던건가 보다”하고 약간의 허심탄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테디는 자신의 주치의였다는 시한 박사에게 의외의 태도를 보인다. 자신은 아직 이 병원이 음모로 가득찼다는 이야기이다. 즉, 앤드류로서 자각했을 것 같았던 테디가 다시 맨 처음의 테디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은 어쩌면 “아차”할 수도 있겠다. 역시 테디는 속은게 아니었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의 테디의 대사와 행동은 더욱 알 수 없는 의문을 던져준다. 그는 “끔찍한 괴물로 사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죽느냐”는 말과 함께 저항없이 박사를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우리는 그가 향하는 곳이 다름아닌 등대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여편네가 도대체 뭐하는 여편네여? 니 정체가 모니???>



테디의 마지막 대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끔찍한 괴물이란, 아마도 앤드류로서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고, 선량한 사람이란 뇌수술을 받은 테디로서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테디의 애매모호한 대사에 영화는 비록 아무런 답도 주지 않지만, 그가 순순히 어떤 곳으로 끌려갔다는 것에서 그는 아마도 후자의 자신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결국 맨처음 던진 질문인 “테디가 앤드류인가 아닌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즉,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은 테디가 앤드류가 맞고 그는 결국 모든 기억을 되찾은 뒤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미쳐버린 광기에 사로잡힌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싫어, 이를 잊기 위해 스스로 뇌수술을 받기를 택한 것이다. 결국 그가 마지막에 시한 박사에게 보여준 테디로서의 모습은 일부러 뇌수술을 받기 위해 꾸민 놀라운 속임수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를 쉽게 받아들기는 힘들다. 설마 주인공이 정말로 앤드류일까?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고, 세상은 늘 그런 정의파를 속여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끔찍한 곳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테디가 코리 박사의 설명에 의해 앤드류로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그것이 그야말로 너무도 완벽하게 꾸며진 거대한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는 영화가 뚜렷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SF 명작 <브라질>에서도 주인공 샘이 테디와 비슷한 환경에 처하지만, 감독은 마지막에서 그 모든 것이 샘의 꿈에 불과했음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다. 분명 무언가 음모가 숨어있을 것이고, 테디는 그것에 의해 결국 희생당함으로써 우리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의 결정적 장면을 논외로 하고, 작품 속에 숨어있는 암시장치들을 통해 과연 무엇이 답인지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필자도 감독의 의도를 100%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 일부는 놓쳤을 수도 있고, 일부는 과대 해석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최종 결론은 각자가 알아서 내길 바란다. 



#5. 두 가지 결론에 대한 고찰


먼저 테디가 앤드류가 맞다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겠다. 처음 테디가 섬에 왔을 때 병원 주위에 둘러쳐진 철조망을 보고 테디는 그 곳에서 전기가 흐르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이미 그가 오래전에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암시이다. 더욱이 그는 C병동이 어느 건물인지도 알고, 폭풍우 속에서 묘지가 있는 곳도 잘 찾아간다. 그리고 C병동 안에 들어갔을 때 조지 노이스를 찾아낸다. 이러한 사실들은 테디의 기억 속에 이미 병원이 익숙한 곳이라는 것이다. 처음 병원에 방문했다는 테디에게 정원에 있던 어느 환자 한 명이 웃으면서 그를 맞이해준다. 이는 그 환자가 테디를 이미 알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테디는 레이첼의 방에서 판자를 뜯고 그 곳에 쪽지가 있음을 알아낸다.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이 그렇게 꾸며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4의 법칙과 67번째 환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테디가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도록 꾸며진 장치인 것이다.


<초대 간디였던 벤 킹슬리. '간디 2'라는 전대미문의 작품도 있지만, 그는 이 작품과 하등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조지 노이스라는 인물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그는 계속해서 레이디스라는 이름을 읊조리고 있었고, 이를 따라 테디가 접근한다. 여기에서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디는 계속해서 조지 노이스로부터 레이디스의 행방에 대해 묻지만, 조지는 계속해서 여자를 제발 떼어내라고 한다. 무슨 여자? 조지는 이미 테디에게 환영으로 나타나는 그의 죽은 아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테디가 아내를 죽이고 나서 미쳐버렸다는 것을 조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만 그 여자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설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지가 얼굴이 망가져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던 조지를 향해 앤드류인 테디가 죽살나게 쥐어팼던 것이다. 


테디가 앤드류라는 암시는 험상궂은 경비대장의 말이나, C병동에서 격투를 벌인 환자의 말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즉, 병원 내의 모든 사람들은 테디가 앤드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테디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들이 꾸민 속임수인 만큼, 그들의 어설픈 부분이 또한 암시로 작용한다. 척이 맨처음 경비원에게 총을 꺼내줄 때 그는 연방수사관답지 않게 어설프게 총을 찾아서 준다. 그리고 탐문수사를 받던 간호사와 환자들이 하나같이 테디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꿈에 나타나는 아내의 모습도 되짚어 보면, 그녀가 화재로 죽었다고 나오는 부분에서 이상하게도 배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꿈에서 나타나는 아이는 테디에게 왜 자기들을 구해주지 않았냐고 질문한다. 이는 테디가 집에 늦게 도착한 나머지 아내가 이미 아이들을 익사시켰기 때문이다. 꿈 중간에 테디가 아이를 안고 가는 장면도, 익사해서 죽은 아이들을 건져낸 테디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런 모든 꿈속 내용을 존 코리 박사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앤드류가 테디라는 이중자아를 만들어 내면서 실컷 떠들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디가 앤드류라고 가정해도 몇 가지 의문은 남아있다. 맨 처음에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토록 중증 환자를 설마 진짜로 섬 밖으로 내보냈다가 다시 들어오게 했을 것인 것? 배를 타는 장면이 테디의 환상이었다 해도 그 이후에 펼쳐지는 스토리와는 너무나도 현실처럼 딱딱 들어맞는다는 부분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또 다른 증거는 탐문 도중 뚱땡이 아줌마가 테디에게 'RUN'이라고 쓴 장면이다. 왜 도망치라고 썼을까? 이것은 정말로 이 병원이 끔찍할 정도로 무서운 음모를 가진 곳이니 테디보고 도망가라고 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오히려 뚱땡이 아줌마가 테디로서 살아가고 있는 앤드류가 불쌍해서 그냥 테디로써 도망쳐서 살아가라는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만난 레이첼이라는 여자는 그렇다면 테디의 환상일까? 사실 이 부분은 애매하다. 그 여자가 단순한 환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간호사 중 한명이 레이첼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테디의 자각을 도와야 할 간호사가 오히려 테디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드는 말들을 했을까? 테디라는 자아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랍도록 정교하다는 것이 다소 의문이다. 


자, 당신은 과연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영화를 보고 나서 나름의 답을 얻기를 바란다. 위의 논란에 대해서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필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갈수록 얼굴 모양이 야구장 홈 베이스 모양으로 바뀌어가는 디카프리오>



#6. 그래도 끝나지 않는 다른 의문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의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왜 병원은 테디가 앤드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어마어마한 속임수를 썼던 것일까? 이미 3년 전부터 있었던 환자인데, 이토록 중증이면 바로 뇌수술을 시도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존 코리 박사의 아주 중요한 대사가 있다. 코리 박사가 뜬금없이 테디에게 전두엽제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나서 코리 박사는 자신이 그 수술을 지양하고, 우선적으로 환자를 이해하는 심리적 치료를 장려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무언가를 속이기 위한 위선으로 보였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코리 박사가 진실을 말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코리 박사는 등대에서 테디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선의 방법을 써 봤지만 실패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진심으로 테디의 상태를 심리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이 모든 속임수가 바로 일종의 테디에 대한 심리치료였던 셈이다. 이를 위해 무려 병원의 모든 관계자들이 짜고치는 고스톱판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테디는 자동차까지 박살내가며 쌩난리를 쳤던 것. 이에 코리 박사는 더 이상은 어렵다는 결심을 하고 테디에게 결국 진실을 강제주입시키게 된다. 마지막에 테디가 미친 모습을 또 보이자 이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코리 박사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아마 뇌수술을 좋아라하는 네링 박사라면 므흣한 미소를 던졌을지도. 



#7. 필자가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디씨의 이야기


자, 이번에는 가벼운 얘기로 넘어가보자. 왜 필자가 레오나르도 디씨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시간이다. 결론적으로 답은 “그냥”이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왠지 모르게 누군가는 싫고, 누군가는 좋은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에는 디씨가 딱 그러한 경우였다. 디씨가 인격적으로나 배우로서의 실력 등에서 비호감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필자의 대뇌 안에 뻗어져있는 뉴런의 일부에서 알 수 없는 미세한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여 전두엽을 타고 대뇌피질을 한번 여행한 뒤 중추신경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도록 전달받았을 뿐이다. 어쩌겠는가… 본인도 제어할 수 없는 정신적 프로세스를. 


아무튼 그래서 디씨가 나오는 영화는 사실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초대박 명작 <타이타닉>마저 처음과 끝 부분만 봤을 정도로 디씨가 등장하는 씬은 일단 재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디씨를 봄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회하는 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와 재미가 있을 거라는 필자의 본능적 욕구로 인하여 보게 되었고, 지금와서는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필자는 디씨가 나오고 말고를 떠나서 작품에서 끊임없이 던져주는 의문들에 대한 고민이 이미 머리 속을 꽉 채웠던 것이다. 


필자에게서는 나름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이 작품의 실제 흥행은 어떠했을까? 원작 소설이 이미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그 후폭풍에 힘입어 이 작품도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적어도 흥행에 있어서는 나름 짭짤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혹자는 놓칠 수 없는 긴장감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평했는가 하면, 다른 평론가들은 감독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B급 졸작이라는 혹평을 가했다. 좋게 말하면 치밀한 구성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복잡하기만 하고 초점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 역시 작품을 보는 관객의 마음에 달린 것이려니 싶다. 



#8. 명장 마틴 스콜세지의 휴식과도 같은 작품


이 작품은 나름 으시시한 긴장감도 있고, 보는 내내 관객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력에,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와 고딕스러운 분위기 연출 등이 나름 수준급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작품의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역량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아저씨가 누구인가? 영화를 좀 안다 싶은 사람은 이 사람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하듯 꿈과 현실 속에서 거의 귀신수준으로 등장하는 테디의 아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면서 나름 독특한 인생관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적나라하게 투영하여 뛰어난 작품성과 비판 의식을 보여 온 감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영화의 배경을 주로 뉴욕으로 잡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뉴욕의 자그마한 이탈리아인 구역인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라오면서 어메리카 드림으로 대변되는 뉴욕의 뒷모습과 허황된 꿈에 대한 맹목적 도전과 그에 따른 좌절 등을 겪어온 그였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뉴욕은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또한 가장 미국적이다. 이 말은, 뉴욕은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활발하고 국제적이며 거대한 도시인 반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부분 또한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도시라는 의미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표작 중 필자가 기억하는 것은 <택시 드라이버>와 <분노의 주먹>,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 <애비에이터>, <디파티드> 정도인데, 대부분의 작품으로 그는 깐느나 아카데미에서 여러 번 수상을 했을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초기의 작품은 그의 작품성을 강조한 경향이 있어서 흥행하고는 조금 거리는 멀었지만, 90년대 들어 흥행을 의식한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버트 드 니로라는 걸출한 스타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만들어 작품에 출연시키고 있는데,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돈독한 사이라고 한다. 심지어 로버트 드 니로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마약 중독으로 입원 중일 때 그가 아니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뚝심을 보여준 일화도 있다. 그런데, 로버트 아저씨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자 마틴 스콜세지는 이제 좀 더 젊은 다른 페르소나를 찾게 되었고, 그 주인공으로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갱스 오브 뉴욕>을 시작으로 <애비에이터>, <디파티드> 등에 줄줄이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9.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알고보면 빠방한 캐스팅


이번에는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필자가 싫어라 하지만 그래도 소개는 해야겠다. 이 친구 의외로 혈통이 복잡하다. 독일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북부유럽과 남부유럽의 혈통을 모두 타고난 친구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모의 밸런스가 잘 잡혀서 전 세계 여성들의 안구를 촉촉하게 만드는 선천적 복을 타고났을 지도. 


디씨가 그의 미모와 이름을 드높이기 시작한 것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면서였고, 이후 <타이타닉>을 통해 그야말로 전 세계의 아이돌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디씨의 데뷔작을 보면 재미있게도 <크리터스 3>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필자는 아주아주 재미있게 본 시리즈물이다. 우주의 귀엽고도 끔찍한 두더지 모양 괴물들이 지구로 날아와 인류를 때려잡으며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를 춘다는 B급 호러코믹물이다. 이 시리즈의 3편에서 주인공 가족의 어린 아들래미 역으로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꼬꼬마가 이토록 큰 인물이 될 줄이야. 아무튼 초반엔 얼굴로만 먹고 사는가 싶더니, 지금은 중년 아이돌이 되면서 연기력이 대폭 상승하여 연기자로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 디씨는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콤플렉스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의 손이다. 그는 자신의 손이 너무도 투박하고 짧다막하다고 해서 손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몇몇 초기의 작품을 보면 그의 손이 교묘하게 가려지거나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컷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고 연기력으로 승부하려는지 이 작품에서는 손을 감추거나 하는 의도적인 컷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2011년에는 애니를 원작으로 한 <아키라>에 출연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디씨 외에도 출연진들은 그야말로 빠방하다. 존 코리 박사 역으로 나온 벤 킹슬리는 이름을 몰라도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 아닌가 하고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빛나는 민대머리에 오똑한 코. 어디서 봤더라? 그의 이미지가 우리가 아는 간디와 너무도 닮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는 1982년 명작 <간디>에서 주인공 간디로 출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명 배우 되시겠다. 실제로 그는 영국 태생이지만 혈통이 인도인이라서 인도식 이름도 가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극 배우로서 탄탄한 실력을 쌓고 영화에서도 굵직한 역을 맡으면서 명 연기를 선보여 영국에서도 정말 명인에게나 붙는다는 'Sir'의 호칭이 붙은 몇 안되는 배우이다. 참고로 이 아저씨는 맡는 역할과는 달리 꽤 여자를 밝히는 편인지, 결혼은 4번이나, 그것도 30살 차이가 나는 어여쁜 영계랑 결혼하신 대단하신 분이다. 정말 Sir로 추앙받을 만 하다.


<뭔가 허접한 연방수사요원이려니 싶더니만 정체가 참으로 황당했던 바로 그 인물>



테디의 동료 요원이자 시한 박사로 나온 마크 러팔로는 <윈드토커>와 <콜래트럴>에서 조연으로써 활약하였고, 연극무대에서는 여러 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첼 역으로 나오는 에밀리 모티머는 <스크림 3>에서 주인공 떼거지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고, 테디의 아내인 샤넬 역의 미쉘 윌리엄스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주인공들의 상대역으로 분하며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냉소적인 역할로 나오는 제레미아 네링 박사 역의 막스 본 시도우는 우리들의 눈에 많이 익은 배우이다. 어디서 봤더라? 벤 킹슬리가 간디였다면, 이 할아버지도 뭐 하나는 해먹었을 법 한데… 그렇다. 이 할아버지가 바로 <엑소시스트>에서 랭커스터 신부 역으로 등장한 그 분이시다. 무언가 대박칠 것 같은 포스로 등장하셨다가 씻김굿 하던 중에 절명하시는 바로 그 분이다. 이 외에도 <저지드레드>에서 악덕 판사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악의 축인 라마 버제스로 등장하시면서 사악한 노익장을 과시한다. 의외로 유명한 이분은 현재 스웨덴이 낳은 최고의 남자배우로서 그야말로 자국에서 국민할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다. 참고로 곧 개봉할 신작 <로빈후드>에서는 로빈후드의 아버지인 월터 록슬리 경으로 출연하여 또 한번의 노익장을 과시할 예정이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명 배우가 한 명 있다. 바로 조지 노이스로 등장한 잭키 얼 헤일리. 사실 작품에서는 얼굴도 일그러진 채로 나오고 조명조차 변변치 못하게 어둡게 등장하는 지라 나름 안타까운 배역인데, 이 친구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 아직까지 명 배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바로 이 친구이다. 배우로 데뷔하였다가 때려치우고 경비원, 리무진 기사 등 그야말로 다양한 밥벌이로 막장 인생을 살다가, 15년이 지난 후에 <올 더 킹즈 맨>이라는 작품으로 컴백하여 일약 명 연기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인 <리틀 칠드런>에서 장애인 역할을 눈부시게 열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필자에게 그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던 명작 <왓치맨>에 등장하게 된다. 바로 끝까지 정의와 진실의 시소게임 사이에서 진실을 택하고 마는 외로운 흑기사 로어셰크 역을 맡았던 것이다. 비록 출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앞도 안 보이는 가면쓰고 등장하느라 그의 동정심 유발하는 면상을 잘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그 역으로 인하여 필자는 이 배우는 분명 빼어난 조연이 될 것이라는 삘을 받았더랬다. 실제로 잭키 자신도 로어셰크 역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욕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왓치맨의 팬이었고, 특히 로어셰크를 죽도록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왓치맨 제작 계획이 발표되자 스스로 오디션 비디오를 만들어서 제작진에게 보내 로어셰크는 바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였고, 마침내 그 역을 따냄으로써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던 것이다. 



#10. 감독의 후광 때문에 본전도 찾기 어렵게 된 명작


이토록 빠방한 배우들과 더더욱 후덜덜한 감독이 만난 이 작품이 왜 예상외로 혹평이 많았던 것일까? 이는 지극히 감독의 명성에 대한 후광효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전 작품에서 지겹도록 무겁고 축축한 도시인들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력이, 도시가 아닌 섬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심리 스릴러물인 이 작품에서는 빛을 발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에서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근래 들어 최고의 연기였다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는 B급 저질 영화라는 악평까지 받았어야만 했다. 이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만루홈런을 가하는 참으로 잔인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그가 원작에서의 느낌을 영화를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지만, 단순히 감독의 기존 작품의 명성에 기반하여 새로운 작품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과연 옳은 평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도 과거에 그야말로 쪽박 찬 작품도 많이 만들었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에게 있어 잠시 쉬어가는 작품이라고 순화해서 평가해도 좋지 않았을까? 



#11.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구요


옛 말에 세 사람만 있으면 그 중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쉽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최근 TV프로그램의 실험에서도 두 사람 이상이 옳다고 하면 나머지도 거짓임을 알면서도 옳다고 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확대해석해보면, 우리가 듣고 보고 접하는 모든 정보들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이를 접하는 대중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가공할만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한 수많은 작품들, <이퀄리브러임>이나 <데몰리션 맨>, <아일랜드>, <브라질>, <빌리지>, <늑대의 후예들> 등이 모두 통제받는 사회를 배경으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작품들이다. 비록 방법론에 있어서는 흥행을 감안한 액션 우선주의를 표방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정보의 통제에 의한 대중의 바보화는 확실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위험인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내가 미쳤다는 거냐 안 미쳤다는 거냐? 아님 너가 미쳤다는 거냐?>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정보의 통제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군사정권 체제에서는 확실히 이러한 경향이 짙었던 듯싶다.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 국민들은 이를 오히려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았던가. 


현재에도 이러한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나 언론이 얘기하는 많은 내용들이 어쩌면 조작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9.11 테러가 났던 것도 어쩌면 거대한 거짓말에 전 세계가 속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음모론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어쨌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오직 그 주체만이 알 뿐이다. 이를 그저 보고 듣는 우리들로서는 여론이 흐르는 방향, 대중이 흐르는 방향으로 휩쓸려 그저 바보집단 중의 한 사람이 되어버릴 뿐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미쳐버렸고, 그 중 나 혼자만이 정신이 멀쩡한 정상인이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혼자만 미친 것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정말로 미쳐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눈을 뜬 정상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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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4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미러 마스크 (Mirror Mask)



<포스터만으로도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필자는 늘 꿈을 꾸듯 삶을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고정관념과 상식을 초월하는 색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결코 미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적당히 제어할 줄은 안다. 


2005년에 소리소문없이 제작되어 공개된 미러 마스크는 필자의 이러한 가치관을 너무도 잘 투영한 작품이다. 사실 필자는 이 작품이 개봉했는지도 몰랐으나, 우연한 계기로 보게 되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필자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스크린으로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고는 마치 서스펜스 스릴러나 호러물을 연상케 하는 문제의 대작 미러 마스크. 필자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싶거나, 필자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독자라면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현실에서 갈수록 비행등급이 상승하는 싸가지 제로의 거짓된 자아의 헬레나>



영화의 스토리는 예측과 달리 너무도 평범한 가정드라마 타입이다. 15세의 한 소녀가 겪는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사춘기에 흔히 겪게 되는 자아정체성의 혼란. 하지만 결국 다시 자기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참으로 교훈적인 내용이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필자가 정말 지루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무엇이 필자를 이토록 감동하게 만들었을까? 그 것은 주인공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요소가 바로 꿈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몽환적인 스토리는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개해준다. 거기에 더하여 200%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몽환적 비주얼은 지금껏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것. 우리가 꿈을 꾸는 세상이 그대로 투영된 놀라운 비주얼이다.



#1. 스토리 - 비행청소년의 무사 착륙 후기


그럼 대체 그 평범한 스토리는 무엇일지 자세히 알아보자. 이제 막 15살이 된 소녀 헬레나(스테파니 레오니다스)는 가족과 함께 서커스단에서 물건던져받기 묘기를 선보이는 평범한 아이이다. 사춘기를 겪게 되는 나이인 만큼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헬레나는 엄마인 조안(지나 맥키)에게 아무 이유없이 불평만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서커스 도중 조안이 갑자기 쓰러지고 서커스는 결국 중지되어 운영이 불가능하게 된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하면 오산. 우리의 꿈속 세상을 상상해보자>



조안은 병원에 입원하고 헬레나는 자기때문에 엄마가 아파서 쓰러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걱정하지만, 아버지(롭 브라이든)는 엄마보다도 서커스 운영에 대한 걱정이 더 커서 헬레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만 한다. 


평소 기괴한 그림을 즐겨 그리던 헬레나는 어느날 밤 집 밖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밖을 나서게 된다. 골목길 한켠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상한 가면을 쓰고 헬레나의 주특기인 물건던져받기를 하고 있던 중.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과 접촉한 헬레나는 갑자기 세상을 감싸는 검은 그림자에 쫒겨 이상한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요상한 가면을 쓰고 헬레나를 그림자로부터 구해 준 남자의 이름은 발렌타인(제이슨 배리). 남자의 가면 만큼이나 모든 것이 어색하고 신기한 세상으로 들어오게 된 헬레나는 이것이 곧 현실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괴상한 세상을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발렌타인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불만 가득한 헬레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조안. 그 뒤에는 조롱하는 듯한 자세의 새대가리 가면을 쓴 서커스 단원. 저 가면은 뒤에 꿈에서 등장하는 생명체들을 암시하는 듯>



마치 꿈과도 같은 이 세상은 빛의 세상과 어둠의 세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빛의 여왕이 영원한 잠에 빠져들면서 어둠의 여왕이 세상을 점점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어둠의 여왕의 최대 고민거리는 가출해버린 자신의 딸이자 어둠세상의 공주. 이미 이 세상은 가출해버린 공주 때문에 붕괴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해주는 발렌타인. 공교롭게도 가출해버린 공주는 헬레나와 똑같이 생겼는데, 어둠의 여왕이 헬레나를 공주로 생각하고 쫓게 된다. 


그림자 군단의 추적 속에서 발렌타인과 함께 도망치던 헬레나는 이 세상을 다시 살리는 방법이 특별한 마법에 있다고 듣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러마스크. 미러마스크는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가면으로, 헬레나는 미러마스크를 찾아서 다시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헬레나가 이 세상의 붕괴의 원인을 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 너무도 형편없이 망가져가는 현실의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을 붕괴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필자는 도저히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말이지 미친듯이 몽환적인 영상이다>



결국 헬레나는 이 세상의 붕괴를 막고 빛의 여왕을 다시 깨워 평화를 되찾고, 동시에 자신도 현실로 돌아가려는 목적을 위해 발렌타인과 함께 미러마스크를 찾으러 모험을 시작한다. 






#2. 영화의 철학적 주제 의식 - 가면과 자아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무척이나 감각적인 비주얼과 시퀀스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영상미를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수채화도 같은 동화 이야기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매우 참신하고 독특한 요소들로 관객들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그야말로 필자가 좋아하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역시 꿈나라 답게 공중에 오징어포가 둥둥 떠다닌다. 그런데 아버지 얼굴에 왠 오징어가??>



영화의 이야기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가면이다. 제목에서도 대놓고 마스크를 표출하고 있을 정도로, 작품에서 가면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나게 크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면을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기 위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것을 좀더 확대해석해 본다면 가면은 우리의 내면, 즉 속마음을 숨기는 일종의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진심을 숨기고 객관화된 자신을 표출하는 것이 가면을 쓴 자신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영화에서는 가면이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헬레나가 꿈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쓰고 있다. (빛의 여왕만 유별나게도 가면을 안 쓰고 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헬레나에게 모두 이렇게 말한다. "가면을 쓰지 않고 어떻게 내 기분을 표현할 수 있겠니? 가면을 써야 표현이 되지." 우습지 않은가? 가면의 표정은 늘 한결같은데, 가면을 써야 기분이 표현된다고? 이는 지극히 역설적인 표현이다. 이는 늘 얼굴에 불평불만을 달고 어머니인 조안에게 대들었던 헬레나의 본심을 비꼬는 일종의 장난이다. 헬레나의 본심은 사실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고 걱정하는 여린 딸의 사랑이건만, 늘 사춘기시절의 우리가 그러했듯이 겉으로는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찬 거짓된 표현을 하곤 한다. 즉, 가면을 쓰지 않은 쌩얼이 오히려 거짓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꿈속의 시민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헬레나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전형적인 나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둠의 여왕>



가면 밖의 모습과 가면 안의 모습이 다른 것 처럼, 이 작품에서는 각각 현실의 자아와 꿈속의 자아가 등장한다. 현실의 헬레나는 점점 더 비행청소년의 내공을 쌓아가는 초특급 개날라리로 보여지지만, 꿈속의 헬레나는 갈수록 순진무구해지는 15살 여자아이로 보여진다. 즉, 거짓된 자아와 진실된 자아를 각각 현실과 꿈에 위치시키고, 아직 진실된 자아가 꿈속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현실의 거짓된 자아를 물리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얘기하고 있다. 


헬레나가 거짓된 자아를 바라보는 채널은 바로 창문인 것도 재미있다. 헬레나가 평소에 그렸던 기상천외한 그림들에 표현된 창문이 바로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열쇠인 셈. 결국 진실의 헬레나는 자신이 그린 그림속의 세상에 갇히게 된 것이고, 꿈속의 세상이 붕괴되어 간다는 것은, 헬레나의 순수함이 깃든 그림이 현실에서 거짓된 자아에 의해 찢겨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의 창"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창문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독의 쎈쓰가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패러디(?)한 빛의 여왕. 헬레나 어머니 이뻐지셨쎄요~>



헬레나가 현실의 거짓된 자아(결국 현실로 도망간 어둠의 공주인 셈)를 다시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미러 마스크를 뒤집어 쓰는 것이었는데, 조금 전에도 언급했듯이, 미러마스크가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밖으로 끄집어 표현해내는 진정한 도구임을 주장함으로써, 가면이 오히려 진실된 표현의 수단임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가면과는 달리 가면을 바라보는 자의 얼굴이 그대로 비치는 거울로 된 미러마스크임을 감안하였을 때 거울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3. 어른들을 위한 동화 - 교훈적 스토리의 철저한 답습


헬레나가 모험하는 꿈속 세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도 모두 현실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빛의 세계의 시장같은 사람은 바로 헬레나의 아버지이고, 잠들어 쓰려져있는 빛의 여왕은 다름아닌 헬레나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어둠의 여왕도 사실 헬레나의 어머니와 동일 인물이다. 즉, 헬레나에게는 나쁜 엄마와 좋은 엄마의 2가지가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셈인데, 헬레나가 꿈을 꾸기 전에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엄마에 대한 인상, 즉 맨날 들들 볶고 괴롭히기만 하는 짜증나는 엄마의 인상이 어둠의 여왕인 것이고, 반면 아파서 쓰러져버린 너무도 나약하고 그리운 엄마의 인상이 빛의 여왕인 것이다. 


<꿈에서나 가능한 새대가리 4발 짐승들. IQ는 새대가리의 수준을 초월한 듯>



빛의 여왕을 깨우는 방법이 바로 미러마스크를 찾아서 현실의 거짓된 자아를 다시 어둠세상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파서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일으켜세울 유일한 방법은 바로 딸의 진심어린 사랑과 걱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헬레나도 점점 그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를 깨우기 위해 미러마스크를 필사적으로 찾게 되니 참으로 교훈적이라 할 수 있겠다. 


발렌타인을 통해 자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깊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선하다. 발렌타인은 헬레나에게 자신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당연하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 미안할 것이 없지 않은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험 중간에 태연하게 헬레나를 어둠의 여왕에게 밀고할 수 있었을지도. 


<이 물건이 썼다 하면 게임 오버라는 미러마스크. 투탕카멘의 황금가면 등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하지만 헬레나의 영향으로 좀 더 인간화(?)되어 가던 발렌타인은, 미래를 알 수 있는 열매를 먹고 나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 후 좌절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러마스크를 자신이 쓰게 된 후 현실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치이고 사고뭉치로만 전락해버린 평범한 웨이터, 그것이 바로 발렌타인이 본 현실의 자아였던 것이다. 결국 발렌타인은 현실화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자, 이 부분이 암시하는 바는 매우 크고 교훈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헬레나를 통해 거짓된 자아를 버리고 진실된 자아를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발렌타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현실은 그만큼 힘들고 고달플 수도 있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일 수도 있다. 실망도 크고 좌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버리고 자꾸만 거짓된 자아를 통해 일탈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헬레나가 마침내 선택한 길, 바로 진실된 자아를 찾는 것, 그것은 고달픈 현실일 지라도 가족의 사랑을 되찾거나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행동인 것이다. 


어쩌다보니 필자가 너무도 심취해서 자꾸만 철학적인 요소로 빠져버리고 만 것 같다. 필자가 워낙 철학적인 사고를 좋아하다보니 이런 작품만 만나면 흠뻑 취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필자는 <공각기동대>나 <블레이드러너>같은 작품은 함부로 감상평을 쓰고 싶지 않다. 한 번 썼다 하면 수백 페이지는 써야할 것만 같은 가공할만한 두려움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헬레나와 아버지. 참으로 교훈적인 결말이다>



#4. 진정한 압권 -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몽환적 영상


아무튼, 이제는 무거운 내용을 떠나 가벼운 내용으로 가보자. 필자가 처음부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영상미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사실 우리가 흔히 몽환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영상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잠을 자면서 얼마나 기상천외한 꿈을 꾸는지 잘 생각해보라. 꿈속에서는 별의 별 신기한 건물과 장면, 등장인물, 여러가지 들이 등장한다. 도무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오로지 내 자신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것들이다. 


현재까지는 애니매이션이 그나마 이러한 몽환적인 영상을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검퓨터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좀 더 사실적이고 좀 더 파격적인 영상이 가능해지면서, 이 작품은 바로 대뇌피질 속에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기상천외한 이미지들을 그래픽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강렬한 색감과 과장된 블러 효과, 그리고 시공간이 뒤틀린 듯한 묘한 세상. 상상조차 힘들었던 묘한 생김새의 생물체들,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는 몽환적 사운드까지. 이러한 연출을 보여준 것에 대해, 미러마스크가 첫 작품이라고 하는 데이브 맥킨 감독의 능력이 실로 놀랍기 그지 없다.


<이런 괴생물체들을 꿈속에서 만난다면 그거야말로 악몽 아니겠니?>



하늘에 둥둥 떠있는 2마리(?)의 거대한 석상과, 기묘하게 솓구쳐있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의 웅장함.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새대가리의 4발 달린 동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헬레나가 어둠의 공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Close To You> 음악과 율동. 이 외에도 꿈속에서 보여주는 모든 영상은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그렇다고 꿈속 세상만 감각적이라고 평하면 큰 오산이다. 헬레나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의 영상미가 압권이다. 한적한 해변가에 자리잡은 오래된 아파트로 보이는데,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쓸쓸하고 어둡고 고독한 분위기를 너무도 잘 표출하고 있다. 별것 아닌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 영상미를 진정으로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필자의 수준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무슨 경지냐구? 으흐...그건 비밀)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우리네 현실에서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감각적 영화 미러마스크.


<15살 소녀의 암흑가 진출기 - 미러마스크!! (어엇..이건 아니자나!)>



신인 감독에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을 포진시켜 제목만으로 호러물을 연상케 하는 숨겨진 대작 미러마스크. 그다지 이쁘지는 않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여주인공 스테파니 레오니다스를 계속 눈여겨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참고로 영화 300의 근육질 수염아저씨 레오니다스 왕하고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니 착오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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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9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제목은 블랙호크다운인데 포스터에는 왠 기동헬기가???>



인류가 살아오면서 지난 3000년간 세계가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단 268년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1945년부터는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지 3주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토록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빼앗아버리는 인류만의 독특한 행위이다. 사람을 죽이면 죄를 받아야 하지만, 전장에서는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법이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전쟁. 필자도 한번도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결과만큼은 참혹함의 정도를 잘 느끼고 있는 전쟁. 하지만 많은 영화들이 전쟁을 미화하면서 현실을 왜곡한 채 전쟁을 마치 전우애와 애국심, 그리고 액션의 마당놀이로 생각하게끔 만들어버렸다. 


필자는 사실 람보 식의 주인공의 액션에 쾌재를 부르는 전쟁 영화는 정말 싫어한다. 필자는 남들보다 군생활을 좀 더 길게 했을 정도로 군대와 군인이라는 것에 상당한 애착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만, 전쟁을 결코 동경하지는 않는다. 전쟁은 곧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멍청한 행위라는 것은 필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전쟁이 얼마나 허무하고 잔혹한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정통리얼 전쟁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보고나면 무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전쟁영화를 말이다. 물론 그런 영화는 많지 않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 신호탄이 되었고, 이후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정점을 찍었으며, 현대전에서는 바로 오늘 소개할 <블랙 호크 다운>이 현존하는 최고의 리얼전쟁영화로 추앙받고 있다. 그럼, 그 장엄하고도 웅장한 블랙 호크 다운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어디까지나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면 안되는 법>



#1. 스토리 - 지구평화를 부르짖는 미국의 참전에 관한 흑역사


때는 1992년.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소말리아는 몇 년간의 기근으로 인하여 전 세계로부터 구호물품을 받아 겨우겨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군부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는 민중들의 구호물품을 빼앗고 이를 무기로 소말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에 UN은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미해병대를 투입하여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미해병대가 철수한 직후 아이디드는 남아있던 UN평화유지군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이후 파키스탄군을 사살하는 등의 저항행위를 작렬하였다. 


1993년 10월. UN은 결국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미육군 레인저부대와 델타포스를 투입하여 질질 늘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특수작전을 펼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수도 모가디슈를 기습하여 아이디드의 오른팔인 오스만 애토와 또 한명의 부관을 납치하는 것. 총 책임자인 윌리엄 개리슨 장군(샘 쉐퍼드)은 이 모든 작전이 단 1시간 만에 끝날 것이라 확신하고 최정예 부대원들을 투입시킬 것을 지시한다. 


당시 모가디슈로 파병된 미육군 레인저 소속의 맷 에버스만 2등 중사(조쉬 하트넷)는 작전을 앞두고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부하들을 챙기며 FM군인으로서의 일장 연설을 내뿜는다. 다들 개소리라고 썩소를 날리고 있을 때, 한편에서 초긴장 상태로 군장을 꾸리는 병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기관을 담당하던 특수병 존 그림스(이완 맥그리거)였다. 실전이 처음이지만 기대 만빵이라는 그림스에게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해주는 FM상관인 에버스만.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군장이 무겁다고 방탄조끼의 메탈패널을 빼내는 둥, 별의 별 뺑끼를 다 치고 있었다.


<블랙호크에서 하강하는 레인저 대원들. 레골라스가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10월 3일 오후 3시 42분. 드디어 작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19대의 무적의 블랙호크에 몸을 싣고 신나는 락 음악을 들으며 작전지역으로 향하는 레인저와 델타포스 대원들. 하지만 민군 행동대장은 이러한 사실을 꼬맹이 스파이를 통해 단박에 알아채고 만반의 대비를 하게 된다. 


현지 스파이의 도움으로 오스만 애토의 본거지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한 미군. 드디어 작전이 시작되고, 블랙호크에서 하강한 대원들은 기습적으로 건물을 에워싸 포로들을 포획하는데 성공한다. 다만, 민군의 공격으로 헬기가 움직이면서 하강중이던 토드 브랙 병사(올랜도 블룸)가 목을 크게 다치면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 지상군을 담당하는 대니 맥나이트 대령(톰 사이즈모어)은 부상자와 포로들을 태우고 장갑차와 트럭을 이용해 모가디슈를 빠져나가려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작전지역을 육로로 탈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소말리아 민군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셌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바주카 공격으로 상공에 대기 중이던 블랙호크 슈퍼 61이 추락을 하고 만다. 


작전에 차질이 생긴 대원들은 계획을 변경하여 추락한 조종사를 수습하는데 우선 목표를 둔다. 단 한 명의 전우도 남기지 않고 가야 한다는 사명으로 똘똘 뭉친 레인저 대원들. 거센 민군의 저항을 뚫고 어렵사리 블랙호크 슈퍼 61의 추락지점에 도착하여 부상당한 생존자와 사망자를 수습하고 탈출하게 된다. 한편 저항은 육로로 이동중인 지상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옥상에서 뿜어대는 무개념 막쏴대기 총질에 미군 병사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게 되고, 결국 지상군은 계속되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실은 채 무사히 미군 주둔기지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이송트럭을 제외한 장갑차는 잔존 지상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작전지역을 이동하며 사투를 벌이게 된다.


<오우씨! 여기 장난이 아니야!! 소말리아애들 모두 스팀팩 먹었나봐!!>



상황이 힘겨워지는 것을 지켜본 개리슨 장군은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블랙호크 슈퍼 64에게 지상군 지원을 명령하고, 슈퍼 64의 조종사 마이크 듀란트는 자신감없는 표정을 지으며 지상으로 하강한다. 작전지역으로 향하던 도중 지상에서 발사된 민군의 바주카에 꼬리날개를 맞고, 결국 슈퍼 64도 거리 한복판에 추락을 하고 만다. 벌써 2대나 추락해버린 블랙 호크. 두 번째로 떨어진 블랙 호크에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한 지휘부는 일단 탈출을 중심으로 작전을 계속하게 된다. 


한편 레인저와 델타포스 요원들을 이끌고 계속되는 민군의 저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레인저 소속 마이클 스틸 대위(제이슨 아이삭스)는 계속되는 부상자를 보호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건물에서 주둔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민군의 저항에서 숨어있기만 하면 다 뒈져버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델타포스의 제프 샌더슨 중사(윌리엄 피츠너)는 스틸 대위의 명령에 정식으로 저항하고, 자기네들만 따로 추락한 블랙 호크로 가겠다고 한다. 이에 4분대에서 왕따신세였던 그림스가 델타 지원사수로 뽑혀 샌더슨 중사를 따라가게 된다. 


뿔뿔이 흩어진 대원들은 사투를 벌이며 각자 집결지로 향하고, 계속되는 병력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개리슨 장군은 더 이상의 희생을 볼 수 없다며 병력지원을 거부한다. 결국 남아있는 대원들은 자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상황. 2번째로 추락한 블랙 호크 쪽에서는 수많은 민군들이 저글링처럼 모여들기 시작하고, 겨우 상반신만 움직일 수 있는 조종사 듀란트는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이에 생존자가 있음을 깨달은 상공의 델타소속 스나이퍼 게리 고든과 랜디 슈거트 중사는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를 구출하겠다고 자원해서 하강한다. 듀란트를 헬기에서 무사히 빼낸 두 사람은 헬기를 끝까지 사수하며 저항하지만, 정말 쓰리 해처리에서 뿜어내는 저글링만큼 무서운 속도로 들이대는 민군들에게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두 델타포스 요원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듀란트는 민군들에게 산채로 잡혀 포로로 끌려가고 만다. 


<델타포스 요원들의 사망자 수습 작전. 시체 하나 수습하다가 시체가 더 늘어난다>



날이 저물어가면서도 계속해서 공격을 받는 대원들은 건물 안에 몸을 숨긴 채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린다. 하나둘씩 부상으로 생명을 잃어가는 대원들. 극한의 공포 속에서 대원들은 정신줄을 놓아버리지만. FM군인 에버스만은 그런 부하들을 다독이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장군 말년이라도 안 통하는 것은 꼭 있는 법이다>



#2.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리얼한 전쟁 이야기


필자가 간만에 스토리는 좀 짧게 쓴 것 같다. 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자랑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짧은 글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내용이 총알이 날라다니고 피가 튀기는 전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게다가 어찌나 리얼한지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그 전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1993년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통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조금은 영화에 맞게 바꾸는 구석이 있는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100% 리얼 고증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상업적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과 다른 단 한가지라면, 바로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존 그림스 특수병의 극중 이름 정도? 사실 여기에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존 그림스의 원래 모델은 존 스테빈스인데, 이 친구가 12살 여아 성폭행 혐의로 죄인이 되어버려서, 그의 가족들이 죄인을 미화할 수 없다며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나름 영웅처럼 나오더니, 결국 쓰레기였던 것. 


자, 이 작품이 실화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극중에서 보여지는 긴박한 순간이 실제로는 얼마나 더 참혹하게 다가올지를 생각해보자. 내가 대원 중의 한 명인데, 어쩌다가 블랙 호크가 추락하면서 일이 꼬이고, 사방에서는 민군들의 총탄이 날아오면서 나는 겨우 건물 기둥 뒤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탄은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어떻게든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 말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그 공포를 느낀 적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경험을 통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많이 느꼈었다. 군대에서도 훈련하면서 느끼기는 하지만, 정말로 내가 다치거나 아프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것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정말 그 공포는 말로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군인들은 전쟁에 나가는가? 맨 마지막의 깁슨 중사의 말처럼, 그 누구도 이해 못하는 자신만의 주관이 있는 것이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옆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쓰려져가는 전우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아무튼, 전쟁이란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오프닝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초절정 리얼 시츄에이션을 작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혹함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람보에서 보여주는 잔인무도함하고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전쟁이란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경고를 날려주는 시그널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암시가 상당히 많이 드러나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예 의도적으로 음악부터 무언가 허무하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버무려 버렸다. 



#3. 전쟁 리얼리즘의 선두주자 리들리 스콧


여기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을 얘기하지 않고는 말이 안될 것이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에일리언>으로 SF영화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고, <블레이드 러너>로 SF철학영화의 신으로 등극한 명감독 중의 명감독이시다. 이 사람은 작품을 만들면서 결코 가볍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무게감 팍팍 느껴지는 주제의식으로 작품을 도배질하는 사람이고, 음악과 비주얼에서 특유의 느와르를 펼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리얼에 있어서도 결코 뒤지지않은 뛰어난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원래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의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리들리 스콧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특유의 철학을 담고자 하였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요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가 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운 역사를 과감히 파헤치며, 모든 전쟁에 있어 승자와 패자는 없다는 전쟁무용론을 펼치고 있다. 


음악과 비주얼도 따져보면, 확실히 기존의 전쟁액션영화와는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전투신에서는 시끄럽고 격렬한 음악을 통해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이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철저하게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극도로 리얼하면서도 장중한 연출로 인하여 전투신이 화끈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비장하고 끔찍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매특허이기도 한데, <킹덤 오브 헤븐>과 <글레디에이터>의 팬이라면 그의 이러한 특징이 얼마나 잘 살아나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다른 작품들도 유사하게, 전쟁이란, 인간들의 다툼이란 결국 무용한 것임을 시사하는 블랙 호크 다운. 비록 18명의 미군 병사와 1,000여 명의 소말리아인의 죽음을 똑 같은 무게로 다루는 부분에서는 다소 고개가 갸우뚱하긴 하지만, 어쨌든 소말리아인들의 죽음에서도 나름 비장미를 선사한다는 데서 결코 미국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멜 깁슨이 주연한 <위 워 솔저스>라던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등의 작품을 보면 상대편의 입장에서도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결국 전쟁이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최근 전쟁영화의 주류인 듯싶다.


<나름 레인저라고 델타앞에서 깝죽거리다가 개쪽당하는 존 그리스 특수병>



#4. 엑스트라마저 후덜덜한 역대급 캐스팅


이 작품은 주제의식과 연출, 스토리도 빠방하지만, 주연배우들도 빠방하기 그지없다. 거의 주연역할을 도맡아하는 조쉬 하트넷의 경우 이 당시 아예 드러내놓고 전쟁영화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도 했었더랬다. 특히 <진주만>에서 인기몰이하면서 이번 작품에서도 나름 전쟁에 어울리는 사나이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헐크로 명성이 높은 에릭 바나도 초특급 베테랑 델타포스 요원으로 등장하여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친구는 인상 자체가 아주 그냥 베테랑이다. 그리고 선하게 생긴 윌리엄 피츠너도 델타포스로 나오면서 의외로 너무 잘 어울리는 연기를 선사하였다. 


전쟁 전문 배우하면 톰 사이즈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친구는 어쩌면 이리도 전쟁영화와 인연이 깊은지, 조연만 맡으면서도 감칠맛나는 역할은 죄다 이 친구 몫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막판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역할로 나오더니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배짱으로 똘똘 뭉친 맥나이트 대령으로 나와 감칠맛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멜로 연기의 대부 이완 맥그리거는 사실 다소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초짜 실전요원답게 어설프면서도 나름 활약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나저나 꽃미남 엘프 올랜드 블룸이 나오자마자 목잡고 뻗어버리는 신병으로 등장하여 초안습 캐스팅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름 눈물을 쥐어내고 있다. <판타스틱 4>의 주인공인 이안 그루퍼드도 존 빌즈 중위로 등장하는데, 그다지 눈에 띄지 않으니 이 또한 안습이라 할 수 있겠다.


<2번째 헬기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시체를 수습하게 된다>



#5. 미국 최정예 부대 레인저와 델타포스에 대한 짤막한 지식


이번에는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는 나름 군대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고 지식도 조금 있다. 아무래도 남들보다 군대에 오래 짱박혀 있어서 그랬을런지도. 그래서 조금이나마 아는 지식을 풀어보자면, 일단 레인저와 델타포스라는 부대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이게 왜 중요한고 하니, 모르고 보면 마치 우리나라 상록수 부대처럼 어쩌다 착출되어가서 파병근무하는 부대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특수부대들도 당시 작전을 실패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초절정 위기였음을 알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두 부대의 우수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미육군 75레인저 부대는 미육군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특수부대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예보병부대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록 보통의 병사들에 비해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훈련을 거쳐 레인저 부대원이 되지만, 다른 특수전 부대들에 비하면 경험이나 실력이 많이 뒤쳐지기 때문이다. 


레인저 부대의 특성은 유격대의 것과 동일한데, 쉽게 설명하면 극한 상황에서 디립다 들이대면서 쳐들어가는 것이 유격대의 특징이다. 그래서 레인저 부대는 강행돌파 작전에 많이 투입된다. 이 외에도 델타포스를 도와 그들의 작전을 엄호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상황으로 등장한다. 


레인저 코스는 어느 누구나 군인이라면 받을 수 있지만 통과 자체는 결코 쉽지가 않으며, 레인저 과정을 이수하면 어깨의 부대마크 위에 레인저 마크가 추가로 부여된다. 국내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으로 유격코스를 이수하는 자들에게 가슴에 레인저 마크를 달아주지만, 강도나 의미 면에서는 미군의 레인저와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참고로 레인저 부대는 미육군 내에서도 군기가 엄청 빡쎈 부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당시 보급된 레인저 전용 장비를 차고 등장하는데, 당시 새롭게 지급된 사막3색 BDU와 케블라 헬멧, 방풍고글, LC-2 장비와 M16-A2를 기본으로 무장하였다. 


델타포스 부대는 미육군의 대표적인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의 델타 분견대이다. 대대급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특수 중의 특수 요원들로 똘똘 뭉쳤다고 보면 되겠다. 실제 작전 투입시에도 저글링 수준이 아니라 300명 미만의 소규모 요원들로 침투해서 특수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미육군은 늘 델타포스를 병기의 첨단화 1순위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델타포스의 탄생 배경은 놀랍게도 영국의 SAS를 본 따온 것인데, 당시 대테러진압의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SAS에 삘받아 SAS교육을 받고 온 그린베레 대원이 창설하였다고 한다. 이후 존재 자체가 비밀로 붙여지다가 1980년 테헤란 작전에서 어이없게도 대원을 태운 수송기와 헬기가 충돌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델타포스 대원들은 레인저와는 달리 철저하게 기존의 베테랑 군인들 중에서 착출하여 고된 훈련을 거친 후에 임명한다. 그래서 병사 중심의 레인저와는 달리 델타포스는 부사관과 장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레인저와 달리 당시 첨단 장비를 선보이며 등장하는데, 사막3색 BDU를 기본으로, 프로텍 크래쉬 헬멧과 D.O.A.V. 시스템 베스트, R.A.P.T.O.R 백팩, M733 코만도 소총으로 무장하여 기동성을 극대화하였다. 


자, 이 정도면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출 뺑끼칠 생각이나 하고 있는 일반 병사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군인들임을 알 수 있다. 객관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델타포스 정도면 사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특수부대라고 보면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세계최상급 특수부대가 존재한다.) 이러한 그들이 고생 바가지로 해가며 생사를 넘나들었던 소말리아 모가디슈 작전이 얼마나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느껴보시라.


<캐리어라고 해서 못 때려잡는 것은 아니다. 골리앗 개떼의 위력은 테란유저가 잘 안다>



#6. 영화를 통해 배우는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소말리아 민군도 대단한 것이, 이러한 특수부대를 상대로 전혀 쫄지 않고 밀어붙였다는 것이 놀랍다. 비록 많은 사망자가 나긴 했지만, 1,000여 명이 전부 민군은 아니고 민간인도 섞여 있다. 정말 깡말라서 총 하나도 줍기 힘들 정도의 한민관스러운 소말리아인들이 총질해대며 미군들을 압박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나름 또 하나의 공포이기도 하다. 소말리아 민군들이 조금만 더 체계적으로 무장하고 교육받았더라면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만큼 무서운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걸 보면 오사마 빈라덴이란 인물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아프가니스탄을 그토록 게릴라 천국으로 만든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6.25라는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아직도 휴전 중이다. 즉,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잠시 쉬고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들어 북한의 서프라이즈 도발도 정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늘 한편으로는 정말 전쟁이 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혹자들은 그깟 전쟁 나버려라, 그러면 1주일만에 전쟁 끝난다, 그게 속편하다 라고 외치지만, 그것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무개념 사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장 속에서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탄에 맞아 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 누가 전쟁을 겪고 싶을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났다고 무조건 도망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깁슨 중사의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전쟁이 났다면 그 전쟁을 하루 빨리 멈추게 하는 것이 군인들의 의무이자 사명인 것이다. 그 사명을 잊지 말자. 내 한 목숨이 희생해서라도 전쟁의 종결을 앞당겨 수백, 수천명의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바로 깁슨이 말한 남들은 이해 못하는 나만의 의미인 것이 아닐까? 필자는 아직도 예비군 훈련을 가면 군복을 깨끗하게 다려입고 제대로 복장갖춰 훈련을 받는다. 나는 늘 언제나 군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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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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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Avatar)

Movie 2015. 11. 17. 17:05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12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아바타 (Avatar)



#1. 누구나 하나쯤은 있었던 아바타


21세기 들어 IT강국이 되어버린 우리 나라에서는 한때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나의 존재에 대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모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개발한 그 개념은, 마치 우리가 가지고 놀던 인형을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 여전히 나이를 먹고도 인형놀이를 할 수 있도록 즐거움을 선사하였더랬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불린 것이 바로 ‘아바타’였다.


다들 누구나 아바타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이 개념은 정말이지 신선하고도 달짝지근한 것이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 나 자신조차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나름 구현할 수 있었던 탈출구가 바로 아바타였던 것이다. 즉, 인터넷 공간에서는 아바타가 곧 나 자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개념 자체가 조금 시들해 졌지만, 여전히 아바타라는 개념을 통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나의 존재성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아바타라는 것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로 구현된다면 과연 어떠할까? 그 상상력의 끝에 선 한 인물이 있었고, 이를 결국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눈 앞에 선보인 인물이 있으니, 바로 대작만 취급한다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 되시겠다. 그리고 12년이라는 오랜 침묵 끝에 그가 가지고 온 대작 <아바타>. 본격적으로 해부해 보기로 하자.


<대충 보면 최신 게임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이다. 실제로 게임으로도 발매될 예정>



#2. 스토리 – 기뉴특전대도 울고 갈 바디체인지 체험기


먼저 스토리를 살펴보자. 때는 미래. 인류가 살던 지구는 자원의 고갈로 더 이상 충분한 에너지원을 공급받기 어렵게 되자, 인류는 놀라운 과학력을 동원하여 지구와 흡사한 다른 행성을 찾아낸다. 그 행성은 ‘판도라’. 지구처럼 산소도 존재하지 않고 문명화되어 있지도 않으며 태고의 자연으로 포장된 채 ‘언옵타늄’이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는 행성. 인류는 바로 이곳에 언옵타늄을 채취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접촉을 하여왔던 터이다. 하지만 판도라 행성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여전히 인류를 거부하고 있었다.


전직 해병대로서 지금은 다리부상으로 휠체어 신세가 된 퇴역군인 제이크 설리(샘 워딩톤)는 얼마 전 묘한 제안을 받게 된다. 뛰어난 과학자였던 자신의 형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형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에서 형의 연구를 계속 해주는 대가로 그를 불렀던 것. 어차피 몸도 성치 않은 차에 돈벌이가 생겼으니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을 제이크. 결국 그렇게 판도라로 향한다.


제이크의 형이 하고 있던 연구는 ‘아바타’로 불리우는 인간과 나비족의 DNA를 섞어 제작한 가짜 나비인을 신경정신 네트워크를 통해 조종하는 것이었다. 마침 형이 자신의 DNA를 이용하여 만들었던 아바타가 주인을 잃게 되자, DNA 구조가 일치하는 그의 동생 제이크를 회사에서 스카우트했던 것. 푸른 몸덩이에 긴 귀와 꼬리, 인간의 2배에 달하는 큰 몸체, 그리고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바타를 본 제이크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두 다리의 자유를 아바타가 대신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기꺼이 연구에 몰두한다.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가 총괄하는 아바타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고 있던 에너지 회사 RDA는 오래 전부터 나비족과 접촉을 해왔었고, 그 결과로 막대한 언옵타늄을 채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어마어마한 양의 언옵타늄이 나비족의 근거지인 영혼의 나무 밑에 매장되어 있음을 알고 이를 획득하려 하지만, 나비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알기에 일단 아바타를 이용해 나비족들과 외교적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터였다. 하지만 RDA의 경비를 맡고 있는 SECOPS의 마일즈 쿼리치(스티븐 랭) 대령은 전형적인 호전가로서 나비족을 무력으로 제압하자는 노선을 취하고, 늘 그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바타를 들여다보며 흐믓해하고 있는 제이크 설리. 도토리로 아이템좀 사야 할 듯>



아바타의 첫 테스트가 시작되던 날, 제이크는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옴팡지게 좋아라하며 마구 뜀박질부터 하는 등 난동을 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외로 적응력이 뛰어나자, 그레이스 박사는 제이크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아바타가 잠이 들면 다시 본연의 자신에게 돌아오는 제이크는, 틈이 나는 대로 연구에 대한 얘기를 녹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새 다리를 주겠다는 쿼리치 대령의 말에 혹해 나비족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쿼리치 대령에게 별도로 보고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한다.


RDA의 목적과는 달리 본래 나비족의 문화와 생태, 그리고 판도라의 자연에 대한 연구가 주요 목적이었던 그레이스 박사는, 제이크를 데리고 아바타의 형태로 판도라의 자연을 탐사한다. 하지만 탐험 도중 총알도 막아낸다는 무시무시한 동물들과 맞닥뜨리면서 위기에 처한 제이크는, 줄행랑을 치다가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행방불명되는 제이크. 어쩔 수 없이 아바타의 모습으로 듣도 보도 못한 판도라의 밀림 속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제이크. 갑자기 들개처럼 생긴 짐승들이 달려들고, 제이크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선다. 


이 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나비족 한 명이 위기에 처한 제이크를 살려준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나비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이크. 하지만 그 나비족은 오히려 제이크에게 화를 낸다. 이유인 즉슨, 제이크 때문에 무고한 동물들이 죽었다는 것. 그럼 차라리 나를 죽이지 그랬냐는 제이크의 말에, “넌 죽여서는 안돼. 강한 영혼을 가졌으니까”라고 말하는 4차원 쎈쓰. 


<나비족과의 전투에서 생긴 얼굴의 상처를 훈장인 듯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막가파 쿼리치 대령>



자신을 네이티리(조 샐다나)라고 소개한 나비족은 자신을 따라 오라 하고, 제이크는 어둠이 짙어진 판도라의 밀림 속에서 판도라의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라며 새로운 세상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한다. 네이티리는 나비족 족장의 딸로서, 그의 아버지는 부족의 실질적 리더이고, 어머니는 정신적 리더이기도 하다.


영혼의 나무의 계시로 제이크를 데려왔다는 네이티리는, 다른 부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제이크를 훈련시키라는 명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제이크는 나비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바타가 잠이 들고 나면 다시 자기의 모습으로 활동하게 되는 제이크. 결국 자신이 직접 아바타로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레이스 박사와 쿼리치 대령에게 얘기한다. 


제이크는 시간이 흐를수록 네이티리의 도움을 받아 점차 나비족의 전사로서 성장하게 되고, 그러면서 둘은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네이티리는 이미 차기 부족의 리더로 내정된 쯔테이(라즈 알론소)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몸. 그래서 쯔테이는 걸리적 거리는 제이크가 미울 따름이다. 


제이크는 계속 아바타로서의 나비족의 삶과 신체장애자인 자신의 본 모습의 이중 생활을 영위하며 나름 쿼리치 대령의 스파이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주의자인 그레이스 박사는 아바타 프로젝트를 스파이 목적으로 쓰는 것에 회의를 느껴 링크 실험실을 RDA 기지에서 떨어진 다른 곳으로 변경한다. 나름 정의감이 뛰어나고 협조적인 헬리콥터 조종사 트루디 차콘(미쉘 로드리게즈)의 도움으로 ‘하늘에 떠있는 산’이라 불리우는 공중부유바위 위에 마련된 초창기 링크 실험실로 이사하는 멤버들. 알고봤더니 그 곳은 과거에 그레이스 박사가 나비족들에게 영어와 인간의 문명 등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큰 눈과 쭉 뻗은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과 완벽한 V라인 얼굴, 엘프귀를 가진 그녀는 진정한 미인???>



RDA의 간섭을 벗어나 다시 나비족과 교류를 이어나가는 제이크와 그레이스 박사.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도움으로 드디어 나비족의 전사로서 인정받게 되고, 그들과 함께 부족의 일원이 된다. 이제 ‘이크란’이라는 새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제이크는, 하늘에는 ‘투르크’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새가 존재함을 알고, 이 새가 바로 전설의 ‘투르크 막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강 전사로서의 목표라는 것을 듣게 된다. 


한편,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3개월이 다되어갈 무렵, 제이크는 자신이 애초에 쿼리치 대령으로부터 받았던 명령을 떠올리게 된다. 언옵타늄을 얻기 위해서 나비족의 근거지를 폭파시킬 예정이므로, 무력으로 제압하기 전에 외교적으로 나비족들을 숲 속으로 피신하게 설득하라는 것. 하지만 제이크는 이미 자신이 판도라의 자연과, 그리고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고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인간은 무지막지한 기계트럭을 이용해 숲을 뭉개버리고 만다. 이에 분노한 제이크는 기계트럭에 올라타 기계를 부수는 등의 저항행위를 하고 만다. 그런데 쿼리치 대령이 제이크의 정체를 알고는 바로 링크 실험실로 달려가 괘씸죄로 실험실을 박살내고 제이크 일당을 모조리 연행한 것. 그리고 쿼리치 대령은 사전예고없이 무력으로 나비족의 생활중심지인 거대나무 홈트리를 박살내기로 한다. 


<500만년 된 고목나무는 축에도 못 끼는 거대한 크기의 홈트리>



결국 쿼리치 대령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홈트리로 진격하고, 갑작스런 인간의 습격에 나비족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멀리 RDA 기지에서 이를 참다 못한 제이크는 자기에게 마지막 기회를 달라며, 나비족들에게 대피하라고 설득시키겠다고 말한다. 이에 RDA 대표는 제이크를 아바타와 링크시키고, 꼭 약속을 지키라고 말한다. 


아바타가 되어 다시 나비족에게 돌아온 제이크는,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이 곳에 왔고, 지금까지 왜 나비족으로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는지 그 진실을 얘기한다. 그것은 바로, 신뢰를 얻어 나비족들을 이곳에서 대피하게끔 설득시키는 것. 이에 제대로 뒷통수 얻어맞은 니에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제이크를 원망하고, 제이크의 설득에도 불구 그들은 인간에게 무력으로 저항할 것을 외친다. 





#3. 도대체 장르가 무엇인가?


스토리만 놓고 보면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자아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연속으로 보인다. 특히나 SF적인 성격이 짙다. 다른 행성이 존재하고, 외계종족이 등장하고, 링크시스템을 통해 아바타를 원격으로 제어한다는 것 등등의 많은 설정이 가히 SF적이다. 


그런데, 끝까지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작품은 SF라기 보다는 한 편의 판타지 혹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2시간 30분에 가까운 긴 런닝타임동안 판도라의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과 질서, 그리고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아주 몽환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토록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영상을 선보이기 위해 제임스 카메론이 기다린 시간은 무려 12년이다. <터미네이터> 1편으로 SF액션의 새 지평을 열고, <터미네이터> 2편으로 비주얼의 한계를 넘어서더니, <타이타닉>으로는 스케일에서 압도를 해버렸다. 이토록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던 제임스 카메론 조차도 이 작품의 원안을 처음 손댔을 때에는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했다고 한다. 그렇게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작품에 대한 구상이 진행되었고, 중간에 잠깐 방향을 틀어 제작한 타이타닉 이후로는 실로 12년만에 제작된 그의 대작이다. 



#4. 셀카도 영화도 결국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의한 기술빨


제임스 카메론이 장담한 대로 이 작품은 그야말로 영상의 혁명이다. 대부분의 주인공 캐릭터가 CG로 처리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비족이라는 독특한 외계 종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CG뿐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같았으면 탈바가지를 뒤집어 쓰거나 몇 시간에 걸친 전신분장을 한 끝에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겠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그 누구보다 CG를 믿었고, 또한 영상혁명을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였다. 


<이 모든 연기는 실제로 배우들이 똑같이 연기한 덕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바로 최첨단 특수효과인 ‘이모션 퍼포먼스 캡쳐’ 기술이 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CG 캐릭터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위해 실제 인물에 딱지를 붙이고 전선을 연결하여 행동하는 그대로 이를 캡쳐하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이 기술은 널리 알려진 ‘모션 캡쳐’라는 기술이다. 그런데 모션 캡쳐는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얻어진 데이터를 다시 애니메이션화하여 랜더링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퍼포먼스 캡처는 배우가 움직이는 그대로 바로 캐릭터에 적용이 되어 애니메이션화가 가능했다. 여기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14개월간의 공을 들여 개선한 기술이 바로 이모션 퍼포먼스 캡쳐 기술이다. 


나비족을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로 공허한 세트장에서 온 몸에 딱지를 붙인 채 영화에서 나오는 연출 그대로 연기를 해야만 했는데, 그 모습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CG캐릭터에 반영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비족의 표정 연기나 동작 등이 실사 캐릭터를 능가할 정도로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 외에도 AMP 유닛이라던지 헬리콥터, 셔틀 등의 실제 소품들은 기술적으로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실용화가 가능할 정도로까지 완벽하다는 평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구현을 떠나서 설정상으로도 논리적인 결점이 없을 정도로 매우 디테일하게 구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제임스 카메론은 이번 작품에 디테일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품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히 영상미의 놀라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초장부터 영상미에 대해 극찬을 하고 들어갔지만, 제임스 카메론 본인도 이 작품에서 보다 역점을 둔 부분은 바로 스토리와 캐릭터라고 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케 하는공중에 떠있는 산.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서도 공중부유가 가능한 돌이 등장하기도 한다>



#5. 진부하면서도 시나브로 보고 싶어지는 작품


솔직히 스토리는 볼 만은 하지만, 신선하지는 않은 내용이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이와 비슷한 스토리나 설정이 우리들에게 많이 노출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가상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 <매트릭스>이겠지만, SF라는 틀을 뒤집어 쓰지 않은 순수 현실주의 작품 중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거론한 작품은 에드거 R. 버로스의 <화성의 존 카터>라는 소설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하여 대박을 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이다. 전자의 소설은 필자가 읽어보지 않았지만, 후자의 작품은 꽤 많이 본 영화이다. 아직도 ‘주먹쥐고 일어서’라는 인디언식 작명 쎈쓰가 기억에 남는 명작이기도 한 그 작품은 여러 모로 보나 아바타와 닮아 있다. 주인공 던바가 미군으로 근무하다가 우연히 인디언 부족과 함께 하게 되면서 점차 그들의 일원으로 되어간다는 내용은 제이크가 나비족의 일원으로서 점차 융화되어 간다는 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 외에도 특별히 거론은 되지 않았지만, <라스트 사무라이>도 비슷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고, 장자의 호접몽도 역시 비슷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의 스토리 자체는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렇더라도 이 작품이 단순히 주인공이 그저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과 다른 점은, 제이크라는 캐릭터가 인간으로서의 제이크와 나비족으로서의 제이크 모두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제이크는 양자 택일의 극단적 형태가 아니라 둘 다 영위할 수 있는 나름 친절한 설정으로 생성된 캐릭터이다. 그래서 제이크는 참으로 간사하게도 나비족으로서 성장하면서 나름의 재미를 느끼고, 또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쿼리치 대령에게 스파이 노릇하면서 인정받는다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교감을 통해 점차 하나가 되어간다는 설정은 왜 부부사이에서는 불가능한 걸까??>



하지만 제이크는 어느덧 둘 중 하나만이 현실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나비족으로서의 행동이 하나의 재미있는 체험이었지만, 점차 그들과 동화되어 가면서 그는 어느새 현실과 가상이 뒤바뀌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나비족으로서 보다 본연에 가깝다는 쪽을 택한다. 여기에는 제이크의 현실이 걷지 못하는 장애자라는 점에서도 기인하지만, 그가 전직 해병대원으로서 무수한 전과를 올린 전사로서의 숙명을 타고났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즉, 그는 일상의 고리타분함에서 벗어나 나비족의 전사로서 존재할 때 자신의 숙명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제임스 카메론이 스토리와 캐릭터에 얼마나 많이 공을 들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작품은 기존의 SF 대작들이 선사했던 어떠한 철학적 센세이션 또는 깨달음에 대해서는 다소 약한 느낌이 강하다. 요약하자면,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강력한 비주얼로 무장한 최고의 SF 액션 판타지인 아바타는, 껍데기는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빈 느낌이랄까? 즉, 특별한 주제의식은 없이 그저 즐기는 영화로서 평가받아야 하는 작품이라는 의미이다. 



#6. 은근히 교훈을 던져주는 요소들


그나마 이 작품이 주제의식에 있어서 인정받을 만한 부분은 서두에서 말한 자연 다큐멘터리적 차원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찾아볼 수 있다. 판도라가 선사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나비족들이 왜 영혼의 나무를 지키려 하는지에 대한 의미. 그것은 자연이 단순히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것들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인간의 두뇌와 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가이아’ 이론하고도 통하는데, 가이아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고 생명체가 갖는 성장과 쇠퇴의 순환의 이론으로 지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판도라 행성도 에이와라고 불리우는 행성의 심장과도 같은 나무가 존재하고, 그 나무 밑으로 엄청난 뿌리가 뻗어져있어 모든 자연이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자연에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들도 자연의 일부로서 모두 가치가 있음을 나비족은 강조한다. 나비족 또한 그러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 예로, 나비족과 다른 동식물들끼리는 모종의 프로토콜을 이용해 정신적 교감을 이룬다. 명칭이 정확히 생각은 안 나는데, 나비족은 자신의 머리 끝에서 나오는 촉수를 이용해 동식물의 다른 비슷한 기관과 연결하여 교감을 한다.


이는 <공각기동대>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류가 자신의 목 뒤에 전선을 연결하여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나비족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제이크가 이러한 교감을 통해 점차 나비족으로 동화되어 간다는 설정도 참으로 교훈적이다. 뻔한 내러티브이기는 하지만, 인류처럼 자연을 지배의 존재로 인식하고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는 극단적 장치인 듯싶다. 


<밤이 되면 모든 식물들이 야광이 되어 클럽분위기를 연출하는 판도라>



이 행성의 이름이 판도라로 명명된 것도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의 전설에서 따온 것인지도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는 다들 알다시피,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채로 판도라를 시켜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는 상자이다. 판도라가, 열어 보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호기심이 생겨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간의 모든 불행과 재앙이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당황한 나머지 급히 닫아 ‘희망’만이 그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담겨 있다. 행성 이름이 판도라인 것도 이 행성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하지, 절대로 파괴하거나 변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재미있게도 정말 RDA사는 영혼의 나무를 뽑아서 그 뿌리를 뚜껑 열듯이 열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많은 양의 언옵타늄은 얻을 수 있을 수 있더라도 판도라의 행성 자체가 파괴되어 모두 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 지구의 자연은 판도라처럼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감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러한 우매한 관객들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은 판도라의 자연을 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래야 좀 더 설명력이 생기기 때문이겠거니. 어쨌든 막판에도 결국 행성을 지키는 것은 자연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지금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들은 좀 더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7. 기대와 우려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 퍼펙트 캐스팅


늘 그래왔듯이, 배역에도 신경을 써줘야 할 타이밍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제이크 설리 역의 샘 워딩톤. 이 친구 얼마 전 <터미네이터 4>에서 존 코너를 능가하는 포스를 가진 마커스 라이트 역으로 나와 제대로 히트 친 친구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제임스 카메론은 샘 워딩톤이 터미네이터 4에 출연이 확정되기 전부터 아바타의 주인공 역으로 점찍어두었다고 한다. 이는 일찌감치 샘 워딩톤의 연기력과 잠재성을 제임스 카메론이 눈치챘다는 의미인데, 그의 캐스팅 감각은 이전 작품에서부터 아주 일가견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타이타닉을 통해 대박 쳤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터미네이터를 통해 대박친 케이스이다. 마찬가지로 샘 워딩톤도 드디어 아바타라는 대작을 통해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이제 헐리우드의 초대박 배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아바타마저 특유의 입술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버린 비운의 여성학자 그레이스 박사> 



샘 워딩톤 못지 않게 포스 강한 캐릭터가 바로 시고니 위버. 어쩜 아직까지도 그렇게 선 굵은 연기를 펼치는지 대단할 정도인 꼴초도사 시고니 위버 역시 이번 작품을 위해 제임스 카메론이 오래 전부터 점 찍어 둔 인물이라고 한다. 그녀의 데뷔작이자 초 히트작인 <에일리언>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는 제임스 카메론은 이후 그가 맡은 <에일리언 2>에서 더 강한 여전사로 만든 이후 아바타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미지를 통해 캐릭터를 살리고 있다.


시고니 위버는 에일리언 때문에 떴지만, 안타깝게도 에일리언에서의 리플리의 이미지가 강해 그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제임스 카메론이 원래 그레이스 박사의 이름을 쉬플리로 지으려고도 했다는 소문까지 있다.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강인한 여전사로서, 그리고 강인한 조력자이자 어머니 같은 품성의 캐릭터로서 활약하며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시종일관 시푸르딩딩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실제 배역이 누구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캐릭터인 네이티리는, 최근 <스타트랙 더 비기닝>에서 통신장교이자 두 남자 주인공과 짜릿한 관계를 자아내는 우후라 역을 맡은 조 샐다나이다. 그녀는 그 이전에 <캐러비안 해적 블랙펄의 저주>에서도 아나마리아라는 여 해적으로도 나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녀의 실제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정말로 뛰어난 연기력을 펼쳐 더욱 매력적인 포스를 발산하고 있다. 네이티리의 말투나 행동, 표정 등등을 자세히 보면 정말 살아있는 외계 종족 생명체인 것처럼 보이는데, 처음에는 좀 징그러워 보이지만 보다 보면 은근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필자 취향이 이상한 것인가??) 아마 CG캐릭터 여우주연상을 신설한다면 조 샐다나가 단연 0순위가 아닐까 싶다.


<키가 180cm도 안되는 루저가 감히 언옵타늄 때문에 판도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나비족은 키가 3m는 족히 되는 그야말로 위너 중의 위너란 말이다!> 



이번 작품의 캐스팅에서 나름 센세이션이 불었던 배우는 의외로 쿼리치 대령 역을 맡은 스티븐 랭이었다. 원래 이 역은 마이클 빈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다. 마이클 빈이 누구냐고? 팀 버튼과 죠니 뎁의 관계처럼 제임스 카메론에게 있어서 늘 비중있는 캐릭터로 열연했던 친구라고나 할까? 터미네이터 1편에서 카일 리스 역으로 등장하여 잔뼈 굵은 연기를 펼친 이후 액션 배우로 열연하던 친구였는데, 세월이 흘러 그런지 어느덧 조용히 파묻힌 비운의 배우이다. 지금은 나이가 거의 아놀드 주지사급 정도 되어서 쿼리치 대령 역으로 딱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종 오디션에서는 스티븐 랭이 선정된 것. 공교롭게도 스티븐 랭은 <에일리언 2>에서 드웨인 힉스 역을 놓고 마이클 빈과 경합하다가 오디션에서 탈락한 일화가 있다. 어쨌든 세월이 흘러 복수에 성공한 스티븐 랭인 만큼, 이번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독불장군 전쟁광 쿼리치 대령의 섬뜩한 모습이 매우 훌륭하다. 


이 외에도 짧고 굵게 활약하다 공중의 먼지로 산화하는 트루디 역의 미쉘 로드리게즈도 시고니 위버 못지 않게 강인한 여성 캐릭터로 꾸준히 이미지 유지를 하고 있는 배우. <레지던트 이블> 1편에서 강인한 여전사로 등장하여 좀비학살에 가담하다가 막판에 스스로 좀비가 되어 유명을 달리하는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미쉘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역을 해 또 한번의 인기상승을 노리고 있다. 적어도 <울버린 오리진>의 다니엘 헤니보다는 좀 더 비중있게 활약하다 죽은 듯한 느낌. (헬기타고 죽는 것은 둘 다 똑같다는…)


<'분노의 질주', '레지던트 이블' 등 일단 거친 역할만 맡게 되는 로드리게즈>



#8. 제임스 카메론의 질풍노도의 시기


무려 스크린에 옮겨지기 까지 무려 15년이 걸린 아바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번에는 이를 한번 살짝 들춰보자. 아바타가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구현이 불가능하게 되자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과 <스파이더맨>에 몰두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그러다가 타이타닉 이후 잠시 숨을 고르면서 그가 생각한 차기 작품은 놀랍게도 애니메이션의 영화화. 그 대상은 바로 <총몽>이라고 불리는 일본 만화이다. 


필자도 매우매우 재미있게 본 작품인데, 총몽은 이미 일본에서 에피소드 2개를 묶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도 있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고철덩어리 로봇과 인간, 그리고 자렘이라 불리우는 공중 위의 폐쇄된 공간에서 산다는 선택받은 인간들. 그 두 계층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전투로봇 갈리의 이야기.


이 작품은 상당히 디테일한 과학적 설정을 바탕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로봇인 주인공이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험을 통해 여러가지 철학적 주제를 고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면 제임스 카메론이 확실히 반했을 만도 할 작품이라 생각이 드는데, 그는 이 작품을 사실 아바타 이전에 제작하여 공개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개봉일 연기하기의 달인인 제임스 카메론은 2005년 개봉하겠다던 아바타까지 미루는 쌩쑈 끝에 결국 아바타를 이제 개봉하고, 이 차기작으로 총몽을 스크린에 옮긴 <배틀 엔젤>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아바타에서 보여 준 비주얼적 혁신이라면 배틀 엔젤에서 펼쳐질 갈리(작품에서는 알리타라는 이름을 쓸 예정이라고 한다)의 디테일한 설정이나 다이나믹한 액션이 사뭇 기대가 된다.



#9. 사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인간중심적인 설정들


이번에는 이 작품을 보면서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 몇몇 요소들을 짚고 넘어갈까 한다. 먼저 나비 족의 생태가 너무나도 인간친화적이라는 것이다. 나비 족은 분명 판도라 행성의 고유 원주민이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외계인인데, 서로 수많은 세월 동안 그 드넓은 우주 속에서 접촉이 없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행동양식들이 공유된다는 점이 의아스럽다. 나비 족의 문명이나 자연관을 보면 마치 인류의 고대 문명을 보는 듯하다.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으로 대변되는 인류의 고대 종교관이나 의식 등이 나비족에 의해 거의 유사하게 표현된다. 뭐,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문명의 발전 특성상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왜 키스는 공통의 사랑 표현이란 말인가?


<스타크래프트의 골리앗을 연상케 하는 AMP 유닛. 작동방식은 매트릭스에서 등장한 전투유닛과 동일하다>



솔직히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필자가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종 생명체간의 교감이라지만, 저렇게 인간친화적인 표현으로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것. 


인류가 나비 족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도 너무 억지스럽다. 솔직히 전혀 언어 체계가 다른 문명인끼리 공통된 언어를 배우려면 보다 과학적인 언어가 적용하기 쉬울텐데, 그렇다면 영어보다는 한글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욕심도 생각해 본다. <더 문>에서 기지 이름을 한글로 짓거나 한글로 인사를 하는 설정 등을 보면 미래에는 한글의 위상이 어느 정도 더 커질 수도 있음을 기대하게 하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판도라 행성에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는데, 왜 하필 나비 족들은 인간과 거의 유사한 지적 수준과 생김새, 그리고 문명의 형태를 가지고 존재할까 하는 것도 의아스럽다. 외계인이 꼭 우리와 닮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편협한 사고에 불과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화성의 유령들>에서 등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성의 지적 생명체의 설정은 가히 끔찍하면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솔직히 아바타는 특별한 고민을 던져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로 하여금 2번, 3번을 더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선사하는 뛰어난 영상미와 CG 캐릭터의 놀라운 연기력에 매료되어버린 필자의 감동 때문인지도. 게다가 스케일에 있어서도 요근래 보기 드문 압도적인 작품이니만큼 아이맥스를 통해 봐야 제대로 된 감동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제이크~ 우리 2탄에도 출연하는 거여?" "몰러... 제임스 영감님이 다른 영화 찍는대잖여">



아바타의 후속편이 나온다는 얘기는 없지만, 이미 터미네이터를 한번 재탕하여 대박쳤던 사례가 있는 제임스 카메론인 만큼, 어쩌면 훗날 더 나은 기술력이 나오면 더 충격적인 작품으로 우리 앞에 2탄이 나오지 않을까 나름 기대도 해본다. 그 전에 물론 <배틀 엔젤>의 개봉이 제 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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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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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패 (東方不敗)

Movie 2015. 11. 11. 14:19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동방불패 (東方不敗)


필자는 이미 옛날 블로그에서 인물 리뷰를 통해 동방불패 역을 맡았던 임청하를 극찬한 적이 있다. 임청하라는 배우 자체도 대단하였지만,당시 아시아 영화권에서 메인으로 자리잡고 있던 홍콩 무협 영화의 새 지평을 연 동방불패라는 작품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혁명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홍콩 무협영화의 바이블이 된 명작, <동방불패>를 리뷰해 보고자 한다.


<포스터만큼은 짱깨 냄세가 물신 풍기는 동방불패 국내버전 포스터>



#1. 홍콩무협영화 최고의 걸작 - 동방불패


동방불패는 1992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장군의 아들 3>, <미스터 맘마>,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등의 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시기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촌스럽기 그지없는 액션과 연출이 매력으로 인정받는 그런 영화들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 홍콩에서는 홍콩 무협 느와르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서극과 정소동 감독이 투톱을 이루어 무협영화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만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무협 액션과 특수효과, 그리고 주인공들의 뛰어난 연기와 연출, 마지막으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다는 애절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그것이 바로 동방불패였다.


원래 동방불패는 김용의 원작 소설 <소오강호>의 일부 내용을 구성한 작품이다. 김용 하면 아시아의 J. R. 톨킨이라 불리우는 무협소설의 아버지. (개그맨 김용이 아니다!) 그 방대한 무협의 세계관을 집대성하여 소설화한 인물인지라 스토리 자체가 엄청 세밀하고 탄탄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아주 짤막한 스토리를 좀 더 각색하고 쫄깃쫄깃하게 엮어낸 작품이 동방불패였으니, 영화화한다는 자체부터가 이미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방불패가 소설 소오강호의 짤막한 일부만 다루고 있다보니, 처음부터 동방불패를 보는 관객들은 설정에 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이는 동방불패뿐만 아니라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여러 영화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이다. 그렇더라도 동방불패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바로 직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프리퀄격인 <소오강호>라는 영화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1990년에 이미 서극이 정소동 감독과 손잡아 만든 소오강호는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는데, 여기에 삘 받은 나머지 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자신들만의 철학과 주제의식을 담아 동방불패를 파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인이 39살 노처녀라면 믿겄수???>



#2. 동방불패의 프리퀄 이야기 - 소오강호


그렇다면 동방불패를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소오강호를 훑어보자.


명나라 만력, 황궁(禁宮)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내승운고(內承運庫)에 자객이 침입하여, 최고의 무공이 수록된 무공비록 '규화보전(葵花寶典)'이 도난당한다. 이를 맡아오던 동파의 내시 총관은 대립되고 있던 서파에 의해 조정에 알려질까 두려워 심복 황보천호(장학우)를 앞세워, 근래에 사직한 황궁의 금위무사 임진남의 집을 포위하고 그와 대립한다. 이때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임진남을 찾은 자가 있으니,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이다. 그는 사매(엽동)와 함께 사부인 악불군의 명을 받고 임진남을 찾아오게 되어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 


한편 총관 내시는 강남 맹주를 자처하는 고수 좌냉선을 고용하여, 규화보전을 찾게 한다. 임진남의 집에 침입한 좌냉선은 그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임진남 마저 목숨을 빼앗는다. 임진남은 죽기전 영호충에게, 자신의 아들 임평지에게 규화보전의 행방을 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번 일들을 모두 일월교의 소행으로 몰아넣은 총관은 일월교도들을 탄압한다. 


한편, 화산파로 향하던 영호충은 은퇴하여 강호를 떠나려는 순풍당의 당주(우마)와 그의 친구인 일월교의 곡장노(임정영)를 만나 함께 뱃길을 가게 되면서 젊은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은퇴하면 부르겠다는 소오강호를 연주한다. 이때, 좌냉선이 영호충 일행을 추적해 와 일대 싸움이 벌어지고 그에게 큰 부상을 입은 당주와 곡장노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악기를 영호충에게 전해주고 스스로 배에 불을 지르고 죽음을 택한다. 


한편, 임평지를 죽인 황보천호는 자신이 임평지로 위장하여 영호충의 화산파에 접근하게 되고, 마침 제자들을 이끌고 임진남의 집으로 향하던 화산파 사부 악불군과 객전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이 찾는 규화보전은 체내의 기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인화대법'이라는 무예에 대해 씌어진 비법서였다. 쫓기는 몸이 된 영호충은 무림에서 우연히 강호를 떠도는 풍천양이라는 괴노인에게서 만나 죽음을 초월한 신비한 공격 검술 '독고구검'을 전수받고, 그에게서 영욕에 사로잡힌 사부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영호충은 이어서 고산족 일월교와 만나 교주의 심복인 남봉황(원걸영)을 알게 된다. 화산파로 돌아온 영호충은 임평지로 가장한 황보천호에게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려주나 악불군도 몰래 이를 엿듣는다. 영호충이 황보천호의 독주를 마시고 의식을 잃자 염탐을 하기 위해 잠입했던 남봉황이 그를 일월교로 옮겨간다. 처음엔 영호충이 한인이라 오해했던 미모의 교주 임영영(장민)은 그가 곡장노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의 몸에 퍼진 독을 없애 목숨을 구한다. 이때 좌냉선이 공격해 오자 의식이 깨어난 영호충과 결전을 벌이고, 마침내 좌냉선은 남봉황이 구사하는 벌떼에 휩싸여 교주의 무서운 채찍에 목이 잘려 죽는다.


한편, 전부터 규화보전을 노리는 악불군은 황보천호와 동행하고자, 자신의 딸 사매를 그와 결혼시키겠다며 총관이 있는 임진남의 집으로 향한다. 마침내 규화보전을 둘러싸고 총관과 황보천호, 그리고 악불군과의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날 밤 황보천호가 숨겨놓은 규화보전을 손에 넣는 순간, 악불군이 이를 낚아채 버리나, 도중에 영호충의 소오강호 악보와 뒤바뀌게 된다. 총관에 의해 수세에 몰린 악불군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제자인 영호충과 사제들에게 일월교와 결탁했다며 누명을 쒸우려 하자, 위기에 빠진 영호충에게 교주와 남봉황이 찾아와 총관의 관군과 대립한다. 긴박한 상황, 영호충에게서 몰래 규화보전을 전달받았던 사매가 영호충을 위해 규화보전을 내놓게 되고, 이에 총관과 악불군과의 일대 싸움이 벌어진다. 악불군은 총관이 워낙 고수라 상대가 되지 않아 혼자 도주를 하고, 다시 영호충 일행이 총관과 대적한다. 이때 배신에 대한 두려움에 황보천관이 쏜 총에 총관이 맞자, 이 틈을 타 영호충과 교주가 힘을 합쳐 총관을 처치한다. 하지만 비열한 황보천호는 규화보전을 손에 넣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어 영호충 앞에 사부 악불군이 다시 나타나 규화보전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들어내며 사제들을 공격한다. 마침내 제자와 사부 간의 일대 결투가 벌어진다. 사부보다 무예가 낮은 영호충이 수세에 몰리자, 독고구검을 구사하여 사부를 응징하고, 마침내 그를 제압하지만 사매의 간청으로 목숨을 살려준다. 말에 오른 영호충은 사매를 태우고 교주, 남봉황과 함께 화산파를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난다.


<규화보전을 이용해 절대무림고수와 절대미모를 얻을 수 있다면 필자도 한번...>



스토리가 엄청 복잡하다. 무협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분들은 낯설기만 한 용어들이 튀어나와서 벌써부터 대뇌피질이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동방불패를 이해하기 위해 위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실질적으로 동방불패와 소오강호는 일부 캐릭터들간의 상관관계만 연결고리를 가질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소오강호의 내용 중 핵심을 찝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규화보전은 절대무림고수가 되기 위한 일종의 비급이다.

2. 영호충은 일월신교의 임영영과 연민의 정을 쌓게 된다.

3. 영호충은 사부 악불군의 악행에 회의를 품고 강호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악불군, 황보천호, 좌냉선, 임평지, 풍천양 등등의 캐릭터는 사실 동방불패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영호충과 임영영, 그리고 동방불패의 3각 구도가 동방불패의 메인 이벤트이기 때문에 소오강호에서의 복잡했던 설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각기 다른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느낌이다. 더욱이 주인공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도 달라진다!!



#3. 스토리 - 절세무공을 얻었으나 사랑은 얻지 못한 슬픈 트랜스젠더의 이야기


그렇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동방불패의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화산파의 엘리트 수제자 영호충(이연걸)은 속칭 '오리'로 불리우는 사매 악령산(이가흔)과 함께 유랑을 한다. 영호충은 이미 사부 악불군의 악행에 실망을 하여 니체의 허무주의에 빠진 채 강호를 떠날 것을 결심한 상태. 그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어느덧 연인사이로 발전한 일월신교의 임영영과 만나 회포를 풀기로 약조하였던 것. 하지만 길을 가던 도중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무리들과 부딪히게 되고, 그 와중에 가면을 쓰고 얼굴을 가린 고수와 슬쩍 눈이 마주치게 된다. 이미 강호를 떠나기로 한 영호충은 무모한 결투는 피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한편 이제 거의 씨가 말라버린 묘족의 부하들을 이끌고 주막에서 불법 거주하면서 영호충을 기다리고 있던 임영영(관지림)은 갑작스레 닥친 일본낭인들의 습격에 의해 위기에 처하지만, 남봉황(원결영)의 활약으로 이를 저지한다. 하지만 더 이상 위험에 노출될 수 없음을 생각한 임영영은 영호충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모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 관지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임청하가 너무 쎘다>


 

일본낭인들이 이토록 판치고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 일월신교를 새롭게 장악한 뉴페이스 동방불패(임청하)가 일본 낭인들과 손을 잡고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 당시 세계 정세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해서 임진왜란을 겪고 있었던 시기로, 명나라는 무리하게 조선을 원조하고 있었던 것. 나라꼴이 이모양인지라 동방불패는 전국시대의 패자로 중국까지 흘러들어 온 일본낭인들과 함께 새로운 묘족의 세상을 만들 것을 야심차게 공약으로 내세운 인물. 이미 선대 교주인 임아행(임세관)을 내치고 그 자리를 뺏은 상태인지라, 임아행의 딸이자 차기 교주감이었던 임영영을 어떻게든 죽여야 했던 동방불패의 처지였다.


영호충은 임영영과 약속한 주막에 도착하지만 이미 주막은 폐허가 된 상태. 시체가 즐비했던 터라 임영영의 행방을 걱정하지만, 그 곳에서 바로 직전에 당도한 화산파의 사제들과 조우하게 된다. 모두들 강호를 떠나기로 결심한 화산파의 제자들. 하지만 이내 관군이 도착하고 이들은 더 이상 무모한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도망을 가게 된다. 도망을 가던 영호충은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들을 보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여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가 근처 저수지에서 혼자 자맥질하며 노닐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여성이 동방불패인지도 모르고 미모에 흠뻑 취해 접근한 영호충은 나름 남자랍시고 작업질을 한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사나이들(?) 인지라 술로서 서로를 교감하게 된다. 원래 남자였던 동방불패는 서서히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호충에게 끌리게 된다. 동방불패. 규화보전을 익힌 나머지 무공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지만, 외모는 서서히 여성의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규화보전이 남성성을 제거해야지만 터득할 수 있었던 무공이었던 것. 그러다보니 동방불패는 어느덧 마음마저 여성이 되어 저수지에서 우연히 만난 쾌남 영호충에게 살짝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영호충과 사제들은 일본 낭인과 마주치고 결투를 하게 되지만, 서로 강호의 검법을 구사하는 것을 알고 모두 강호인임을 알게 된다. 일본 낭인으로 변장했던 자객은 알고보니 임아행의 오른팔이었던 좌상 상문천(유순)이었던 것. 그렇게 해서 임영영의 행방을 알게 된 영호충은 일본 낭인 무리 속에 숨어있던 임영영과 조우하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버지는 사기꾼,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관계 복잡. 팔자 기구한 악령산>



임영영은 아버지인 임아행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몰래 일본 낭인의 무리 속으로 잠입해 있었던 상태. 상좌사로부터 동방불패에 대해 정보를 얻은 영호충은 자신이 직접 부딪혀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동방불패의 자택으로 칩임하는 영호충.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영호충이 동방불패의 얼굴을 몰랐던 것. 그러다보니 자택 안에 있던 동방불패를 보고 예전 저수지에서 본 그 미모의 여성으로 인식하여 급방긋 날려주시는 영호충. 이에 동방불패도 정체를 숨긴 채 영호충과 데이트를 즐긴다. 영호충은 아무 말도 못하는 동방불패를 끌려온 타국의 노예로 오해하고 구해주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데려나간다. 경공술로 즐기는 한 밤의 플라잉 데이트. 그리고 일본 낭인들의 무리 속에 껴서 술 먹고 노래 부르며 세상 만사 허무함을 읊조린다. 이에 삘받은 동방불패는 한편으로 자신의 야심에 회의를 품으며 영호충을 더욱 연민하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방불패의 측근 북부천군(이자웅)에 의해 데이트가 깨지고, 둘의 대결을 틈타 동방불패는 영호충의 비공을 찔러 기절시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동굴에 갇힌 영호충. 죄없는 쥐를 혹사시켜 얻어낸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건너방에 임아행이 있었던 것. 꾀를 내어 탈출에 성공한 영호충은 사지가 묶여 거의 폐인이 된 임아행을 구출하여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말라비틀어져 있었던 임아행은 사실 훼이크. 주특기 흡성대법을 이용해 타인의 정기를 쏙 빼먹은 임아행은 다시 원기를 찾아 영호충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는 임영영에게 당도한다. 동방불패를 처단할 것을 제1 목표로 내세운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제안하지만 이미 강호를 떠나기로 한 영호충은 이를 거절한다. 그러던 중 규화보전을 몰래 숨겨놓았던 임아행은 규화보전을 훔쳐보다가 영호충에게 딱 걸려 한 바탕 난리가 나고, 이 사건으로 임아행과 임영영 그리고 영호충은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






#4. 단순 무협 액션이 아닌 무협 철학 영화


아아… 스토리를 글로 옮기면서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무림의 결투 모습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음에 비탄을 느낀다. 이 부분은 실로 직접 보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요소. 어쨌거나 스토리를 놓고 보면 전작인 소오강호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임을 느낄 수 있다. 전작이 전형적인 무예 위주의 사건 전개였다면, 동방불패는 무림권법의 결투보다도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애절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오강호랑 분위기가 완전 딴 판이라고 볼 맨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서극이 추구하고자 했던 무협 로맨스였던 것이다. 김용의 원작 소설에서도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사랑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물론 동방불패가 규화보전 때문에 여성화가 되어 영호충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애절하지는 않다. 되려 소설에서는 동방불패가 완전 괴물딱지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보고 삘 받아 원작 소설 보면 중추신경이 테러당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방불패는 양면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야심에 불타오르고,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스스로 남성성을 제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한 편으로는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이 영호충을 사랑함에도 완벽한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없었던 한계가 있던 것처럼, 아무리 무림의 고수로서 천하를 지배한다 할지라도 그 한계가 있었음을 느끼고 있었을 지도. 그렇기에 영호충이 허무를 주제로 시를 읊을 적에 동방불패가 크게 깨달은 듯한 행동을 취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호충 또한 강호에 내놓으라 할 적수가 없을 정도의 무림의 고수이지만 그는 강호에서의 한계를 일찌감치 느끼고 강호를 떠나려 했던 인물. 영호충은 스스로 완벽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러한 자아의 틀로부터 탈출하고자 했지만, 동방불패는 완벽할 수 없음을 지각했음에도 스스로를 더더욱 완벽해지도록 채찍질하는 틀 안에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 둘의 차이였다. 그리고 영호충을 통해 뒤늦게 깨달음을 얻고 영호충과 함께 사랑의 여행을 떠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이 완벽한 여성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또한 불가능했을 터, 어쩌면 흑목야에서 동방불패는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동방불패의 내면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후속편인 <동방불패 2 풍운재기>가 될 터인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가 되면 리뷰를 하도록 하겠다.


<한 밤의 플라잉 데이트를 즐기는 영호충과 동방불패. 역시 사랑은 서로 잘 모를 때 해야 제맛이다>



어쨌든 영호충이 추구했던 강호 탈출은 니체의 니힐리즘처럼 단편적으로는 현세로부터의 이탈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호충이 동방불패와 함께 시를 읊조리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천하의 영웅이 되려는 야심을 떨칠 수 없어 강호에 뛰어든지도 어언 십 여년이 흘렸네. 헛되이 품었던 거창한 꿈 문득 돌아보니 일장춘몽이어라."


동방불패가 이 구절에 삘을 받아 자신도 뒤늦게 세상만사가 일장춘몽이 아닐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되는 듯 보인다. 어찌보면 작품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허무주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강호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영호충에게 임아행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받아치는 격이 된다. 


"강호? 누구든 원한이 있으면 그게 강호고, 인간이 강호다! 그런데 떠나겠다고?"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대단히 통렬하고 강력하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겠다고 해서 산 속에 들어가 시나 읊으며 띵까땡가 노는 것이 진정한 탈출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심신이 존재하는 모든 곳이 곧 현실이라는 의미이며, 결국 우리는 현실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니체가 추구한 초인의 삶과 무척 닮아 있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제창하면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즉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현실로부터 탈출하여 참된 자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이 의미를 잘못 받아들여 자살을 하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개념 자체를 바꿔야하는 것이 니체의 핵심이었다. 연민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육체이든 물질이든 무엇이든 간에. 신 조차도 인간이라는 우매한 존재에 연민을 품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음을 니체는 말하였다. 이를 뜻하는 "신은 죽었다"는 그의 말은 대단히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영호충은 심신의 측면에서 탈출을 꾀하였지만, 임아행은 그마저 부질없는 현실 속에서의 발버둥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보다 숭고한 차원에서 사고할 것을 제시한다. 물론 임아행의 의도는 철학적 성숙을 바랬던 것이 아니라 어차피 현실탈출이 불가능하니 그냥 나랑 손잡고 동방불패랑 싸우자 였지만, 영호충은 결론적으로 정신적 성숙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3대 메인 캐릭터의 공통점이라면 죄다 술고래라는 것>



#5. 동방불패로 대변되는 소수민족의 비애


동방불패가 선대 교주인 임아행을 내치면서까지 일월신교의 교주로 자리잡아 야심을 꿈꾸었던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딱히 그의 과거에 대해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임아행의 하는 꼬라지가 막무가내형 똥고집 독불장군 방식인 것을 보면 부교주였던 동방불패로서는 불만이 많았을 것은 당연지사. 


여기서 일월신교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의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중국은 대대로 한족에 의해 지배되어 온 사회이다 보니 일부 소수민족들은 대대로 오랑캐 또는 노예 취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중 묘족이 한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자신들만의 행동결사집단을 만든 것이 바로 일월신교이다. 그러므로 일월신교는 단순히 종교적인 집단의 의미를 떠나 묘족의 부흥을 위한 생존적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아행은 묘족의 부흥을 꿈꾸기는커녕 규화보전을 통해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듯하다. 이에 동방불패는 묘족의 부흥을 위해 임아행을 내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터이고, 그러기 위해 규화보전을 통해 힘을 얻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동방불패는 어쩌면 지금 중국사회에서 핍박 받고 있는 소수민족의 강렬한 바램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6. 애절한 러브라인으로 인기몰이


원작에서는 전혀 거론되지도 않는, 오로지 영화에서만 집중적으로 다뤄진 철학적인 논제를 떠나서 영화 자체의 내용에 대해 좀 더 주석을 달자면, 일단 동방불패의 내면과 비정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원작과 다소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동방불패가 극도의 미인으로 그려졌다는 부분도 있지만, 마지막에 동방불패가 흑목야에서 애절한 모습으로 추락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원작에서는 동방불패가 결국 확실하게 죽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벼랑 끝으로 떨어진 동방불패의 생사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했기에 속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만큼 속편은 아예 원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반드시 인지하시고 보시길. 


소오강호와 연계되는 포인트 중 주연배우가 바뀌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사실 감독이 동일하고 제작상의 공백도 2년 밖에 안 되는데, 주연이 죄다 바뀌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그만큼 감독의 의도 자체가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를 별개의 작품으로 보고 싶어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조연 중에는 그대로 동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있다. 상좌사와 남봉황은 두 편의 작품에서 동일 캐릭터를 소화했던 것. 그만큼 두 배우는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상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주연 배우가 바뀌었던 것은 동방불패의 입장에서는 큰 호재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래도 소오강호의 영호충을 맡은 허관걸은 코믹 영화 <최가박당> 시리즈를 통해 개그 캐릭터로 입지가 굳어진 인물. 그리고 임영영의 장민도 큰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었기에 그대로 장민이 했었다면 동방불패-영호충-임영영 3각 라인에 밸런스가 깨졌을 지도 모른다.



#7. 무협 영화계를 평정한 후덜덜한 캐스팅


이연걸이 다소 키가 작아서 안습이긴 하지만 원채 무술을 잘 하니 서극이 추구하고자 했던 경지 높은 무술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했기에 적절한 배역이라고 보여진다. 얼굴로 치면 조문탁이나 장국영이 더 어울렸을 법한 느낌도 들지만, 이연걸도 부족함 없이 연기를 소화해냈다.


<가느다란 실로 절세무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초특급 왕구라 액션>



동방불패 역의 임청하는 정말 대박 캐스팅. 솔직히 여장 남자의 역을 맡기려면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 이러한 이미지에 적합했던 여자 배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서극과 몇 개의 작품을 해보았던 임청하는 특유의 강렬한 눈빛과 매서운 눈썹, 그리고 야무진 턱선이 어찌보면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데, 그것이 서극에게 제대로 간파되었던 것. 그래서 서극 스스로도 커다란 모험이라고 했을 동방불패의 임청하 캐스팅은 그야말로 대박 중의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임청하 스스로도 여장 남자 연기는 연극 시절 빼고는 스크린으로는 처음이라고 했었는데, 어쨌든 정말 소스라칠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를 해주었다. 남자로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여자로서의 매혹적인 자태를 모두 표출해내어 당시 수많은 남정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 그런데 당시 임청하의 나이가 39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성 팬들이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는 사건은 유명하다. 


어쨌든 임청하는 동방불패를 계기로 아시아 최고의 여자 배우로 군림하게 되었고, 이후 <동방불패 2>를 비롯해 <녹정기 2>, <백발마녀전>, <동성서취> 등의 작품에서 주연 배우를 꿰차며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방불패의 여장남자 이미지가 너무 굳건하게 자리잡아 버려서 이후의 작품에서도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 덕분에 필자는 임청하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봤다는 사실. 필자가 고백하건데, 실은 동방불패로 분한 임청하를 보고 홀딱 반하여 이후 임청하의 동방불패스러운 연기에 모두 심취했었더랬다. 필자의 이상형이 다소 괴상하기는 하지만, 동방불패처럼, 혹은 백발마녀전의 연하상처럼 강인하면서도 내면에는 아픔을 지니고 있는 그런 여성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무림 5절급에 버금간다는 풍천양으로부터 전수받은 절세무공 독고구검>



동방불패 이후 두번 다시 동방불패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없다는 서극의 말 처럼, 동방불패는 이미 홍콩 무협영화에 있어서 절대 빠져서는 안될 불문율과도 같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단지 무협 액션이 화려하다고 해서, 임청하와 관지림이 예쁘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볼 영화만은 아닌 동방불패. 그 속에는 강호라고 불리우는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 사고와 행동이 깃들어있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초절정 대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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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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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2 (Iron Man 2)

Movie 2015. 11. 10. 17:43

※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아이언 맨 2 (Iron Man 2)


이 좁아터진 지구촌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수퍼히어로들이 있다. 수퍼히어로의 원조이자 창시자라고 한다면 대부분 수퍼맨이 떠오를텐데, 수퍼맨을 뒤로 해서 별의 별 맨이란 맨이 전부 히어로로서 이 지구를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옛 그리스 신화와도 같이, 히어로들 중에도 각자의 개성과 팔자가 존재하고 있는 바, 그 때문에 히어로들마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상당히 쏠쏠한 재미가 있다.

2008년 기존의 히어로의 통념을 깨고 우리 앞에 등장한 깡통 로봇의 업그레이드판 아이언 맨이 2년이 지난 2010년, 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과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오늘은 바로 <아이언 맨 2>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태권브이의 깡통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대나 뭐래나...한국명 깡통사나이>



#1. 스토리 - 우리 아이언맨이 달라졌어요


전편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스토리부터 싸잡아보자.


추운 날씨가 자랑거리인 모스크바. 어느 허름한 방 안에 어떤 알코올중독 할아방이 TV를 보고 있다. TV의 내용은 세계 최고의 군수산업회사인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자신이 바로 아이언맨임을 공개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할아방은 이반 반코(미키 루크)라는 사내를 불러 “너가 아이언맨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이에 절규하는 이반. 이반은 죽은 할아방이 남긴 설계도 같은 것을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제작하기에 이른다. 무언가 가공할만한 무기 같은 것을.


그로부터 6개월 후. 세계는 아이언맨이 된 토니 스타크에 열광하고 있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지원과 기획으로 열리는 거대 행사인 스타크 엑스포에 등장한 아이언맨은, 자신이 있기에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다며 대중들로부터 열성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스타크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창시자인 하워드 스타크(존 슬래터리)의 생전의 영상을 공개한다. 그렇게 쇼를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갑자기 날아온 정부의 소환장. 다음날 소환에 나선 스타크는 스턴 의원(개리 샌들링)으로부터 어이없는 주장을 듣게 된다. 내용인 즉슨, 아이언맨이 바로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불법무기라는 것. 이를 증빙하기 위해 스타크의 베프인 제임스 로즈 중령(돈 치들)까지 불려온다. 로즈 중령은 비록 아이언맨이 불법 무기이므로 미국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나, 효용가치로 볼 때 지금은 스타크가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스턴 의원은 뒷 부분을 무시하고 앞 부분만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정부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또 한 명의 무기전문가를 초빙하는데, 그가 바로 스타크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해머 인더스트리의 CEO 저스틴 해머(샘 락웰)였다. 그는 아이언맨의 기술이 이미 여러 국가에 유출되어 복제품을 만들고 있는 이상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 스타크는 자신의 최첨단 스마트폰을 이용해 그러한 주장을 불식시키는 증거 영상을 공개한다. 그리고 그 영상에는 해머가 비밀리에 아이언맨 같은 로봇 병기를 만들다가 실패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결국 해머는 몰래 아이언맨의 기술을 빼앗아 자신이 무기를 만들어 정부에 납품하려는 계획을 품었던 것. 이에 스타크는 향후 10년 이내 아무도 아이언맨을 만들 수 없다고 자신하며 회장을 빠져나간다. 


한편 갈수록 아이언맨에 푹 빠져 있는 스타크가 답답해 그를 쪼아보려는 수석 비서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우)는 따지는 과정에서 황당하게도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 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스타크는 회사의 경영에 신경쓰기에는 너무도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포츠에게 모두 떠넘겨버렸던 것. 그것은 한편으로는 스타크가 장착하고 있는 그의 생명원인 펠리듐이 시간이 갈수록 독성을 증가시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였다. 회사경영권이 포츠에게 이양되기 위한 공식 절차를 받기 위해 회사에 들른 스타크는, 그곳에서 법무팀 소속 미모의 직원인 나탈리(스칼렛 요한슨)를 보고 한 눈에 빠져버리고 만다. 스타크는 대놓고 꼬셔보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CEO인 포츠의 수석 비서로 임명해 버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나탈리.


<집에 아이언맨 수트 하나쯤은 있어야 행복한거잖아요? 없으면 불행한거잖아요?>



한편 모스크바에 있던 이반은 모나코로 향하기 위한 위조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받고 무언가 음모를 꾸미게 된다. 대체 모나코에는 무슨 일로 가려는 것일까? 모나코에서는 매년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는데, 세계 최고의 억만 장자인 스타크가 소유한 F1 머신도 이 대회에 출전한다. 이를 참관하기 위해 스타크는 포츠와 함께 모나코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해머를 또 만나게 된다. 포츠는 신임 CEO로서 비즈니스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스타크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갑자기 땡기는 대로 사는 쿨한 사나이인 것. 그래서 그는 갑자기 예정에도 없이 자신의 머신을 직접 몰고 F1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모나코에는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있었으니, 바로 모스크바에서 날아 온 이반 반코. F1 대회가 시작되고 머신들이 으르렁거리며 광속의 질주를 하자, 이반은 슬금슬금 트랙으로 발을 디뎌놓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웃옷을 훌렁 태워재끼며 그 속에 감춘 가공할만한 무기를 드러낸다. 일명 휘플래시로 불리우는 자신의 무기를 드러낸 이반은 달려오는 머신을 향해 전기채찍을 휘두르자 머신이 그야말로 아쌀하게 두동강이 나고 만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모나코.
화면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포츠는 스타크의 운전 기사이자 경호원인 호건(존 파브로)과 함께 긴박하게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위기에 처한 스타크를 구하기 위해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휴대용 가방형 아이언맨 수트 Mark5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앞에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을 전혀 모르는 스타크는 열심히 레이싱을 펼치다 갑자기 앞에 서 있던 이반의 채찍에 얻어맞아 머신이 박살나면서 차량이 전복되고 만다. 전복된 차량에서 겨우 빠져나온 스타크는 이반의 공격을 피하며 겨우 목숨을 건지고 있던 찰나, 순식간에 돌입한 호건이 스타크의 자가용인 롤스로이스로 이반을 들이받는다. 이에 겨우 목숨을 건지는 스타크. 그런데, 정신줄 놓은 줄 알았던 이반이 다시 깨어나면서 전기채찍으로 롤스로이스를 박살낸다. 이에 긴박하게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스타크는, 이반과 드디어 맞짱을 뜨게 된다. 초반에는 전기채찍의 힘에 밀려 고전하지만, 충격을 딛고 격전을 벌인 끝에 이반의 가슴에 꽂혀 있던 에너지원을 빼버리고 그를 무력화하는데 성공한다.
이반은 이내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아이언맨은 습득한 에너지원을 분석한 뒤 그대로 부셔버린다. 이반은 끌려가면서 스타크에게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너가 진거다”라는 말을 남긴다.

<전치 12주 전신골절진단 받았을 때 아주 유용하다는 바로 그 문제의 갑옷>


나중에 스타크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반을 만나게 된다. 감옥에서 이반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게 된 스타크는, 이반에게 에너지원이었던 아크 원자로의 출력이 다소 낮았다는 충고를 해 준다. 거기에서 이반은 스타크에게 스타크 때문에 자신의 가문이 몰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싸움은 스타크가 진거라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스타크의 비밀인 펠리듐의 독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는 이반. 스타크는 깜놀하지만 일단 개무시하고 만다. 전세기로 돌아오는 길에 스타크는 자신의 시한부 인생에 대한 비밀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 포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엉망이 되어버린 경영 때문에 일 생각만 하는 포츠와 또 티격태격하게 된다. 단순한 사랑 싸움일까? 아니면 정말 코드가 안 맞아서? 

한편, 감옥에 갇혀 있던 이반에게 프리즌 브레이크를 능가하는 탈옥의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죄수를 방 안에 넣고 죽은 것으로 처리한 다음 유유히 탈출하는 이반.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다름아닌 해머 인더스트리의 CEO 저스틴 해머였다. 해머는 이반에게 스타크를 이기고 싶다며, 그의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다. 대신, 그 조건으로 아이언맨을 능가할 무기를 만들어 스타크를 아작 내버려 달라는 것. 이에 굿뜨~하는 이반. 

세상이 이따구로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일잔치 챙길 생각만 하는 스타크. 결국 그는 미모의 비서 나탈리에게 껄떡대면서 자신의 마지막 생일이라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물어본다. 그러자 대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이에 삘받은 스타크는 자신의 생일 잔치에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채로 온갖 꼴갑쇼를 선보인다. 술에 취해 흥청대는가 하면, 수트 안에다 쉬야~를 하기도 한다. 이를 참다 못한 포츠는 스타크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계속 말 안듣고 개판 5분 전 시츄에이션을 연출하는 스타크. 이 때 베프인 로즈 중령이 파티장을 찾는다. 정부가 계속 아이언맨 수트의 강제 이관을 요청하고 있어, 이에 대한 타협을 보기 위해 로즈 중령이 직접 중재에 나선 것. 하지만 스타크가 이따구로 흥청망청하고 있는 것을 보자 열받은 나머지 그는 멋대로 지하 기지로 들어가 아직 시험개발 중인 은색의 아이언맨 수트를 입어버린다. 그리고 파티장에 난입하는 로즈 중령. 결국 스타크와 로즈 중령은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채로 서로 치고 박고 싸운다. 게스트들은 공포에 질려 모두 도망가고, 아이언맨 수트를 벗으라는 스타크와, 망나니 히어로는 수트를 입을 자격이 없다고 대드는 로즈 중령은 마침내 서로 펄스충격파를 쏴대고, 충격파가 중첩되면서 엄청난 폭발력으로 집이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결국 로즈 중령은 그대로 도망가버리고, 스타크는 허탈감에 사로 잡혀버린다.

<그거 7.99% 금리로 36개월 특별 할부해주는 거니까 연체하지 말고 잘 갚아라>


한편 해머의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된 이반은, 해머가 만들다 만 유인전투로봇 드론을 보며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에 해머는 뭐든 지원해주겠다고 하고, 이반은 자신이 기르던 새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해머를 위해 강력한 무기 개발에 임하게 된다. 

집도 날리고, 친구도 날리고, 개념도 날려버린 스타크는, 꼬질꼬질한 채로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얼굴만 내민 채 이곳 저곳을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가 애꾸눈이 트레이드 마크인 쉴드 국장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를 만나게 되는 스타크. 다방에서 차 한잔 하면서 쉴드 국장은 스타크에게 상태가 심각하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이미 쉴드 국장이 스타크의 펠리듐 중독을 알아채고 있었던 것. 이에 몸매 작살인 스판덱스를 입은 나탈리가 갑자기 나타나고, 스타크의 목에 무슨 주사를 놓는다. 펠리듐의 독성을 어느 정도 중화해주는 약효가 있는 주사였던 것. 스타크는 나탈리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쉴드 국장은 나탈리가 실은 쉴드 멤버의 요원으로서 스타크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나타샤 로마노프 요원이라고 얘기해준다. 스타크는 어차피 자기가 곧 죽을거라고 하지만, 쉴드 국장은 펠리듐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에너지원을 찾으라고 한다. 스타크는 자기가 아는 모든 자원을 가지고 실험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쉴드 국장은 아직 스타크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고 얘기한다. 다시 집에 돌아온 스타크에게 쉴드 국장은 이상한 박스를 하나 건내준다. 바로 스타크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의 물건이 들어있다는 박스. 그리고 쉴드 국장은 로마노프 요원을 계속 측근으로서 회사에 남게 하고, 스타크가 펠리듐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꿈쩍도 못하게 감시 요원으로 필 콜슨 요원(클락 그레그)을 붙여놓는다.




#2. 아이언맨 오리진 - 그의 탄생 비화


일단 스토리는 살펴봤지만, 무엇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아이언맨에 대해서 꺼낼 얘기가 수두룩하다. 원작과의 비교도 빠질 수 없겠고, 빠방한 캐스팅에 대해서도 늘어놓을 말이 많고,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필자가 답습하기에는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너무도 방대한 것이 사실. 전문가도 아니고, 매니아도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참으로 조심스럽다. 고로, 필자가 모르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먼저 아이언맨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 1편의 스토리를 되새김질 해보면, 천재 과학자이자 잘 나가는 군수무기 사장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무기를 팔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한 지역을 방문했다가 테러를 당해 납치당한다. 스타크는 사고의 충격으로 심장에 금속 파편이 박히지만, 인질로 잡혀있던 중동인 박사에 의해 자기장으로 금속 파편이 심장에 가지 못하도록 몸에 커다란 배터리를 연결하여 그를 살려놓는다. 그런 그에게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협박하는 테러 집단의 리더 라자. 하지만 스타크는 그 곳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위한 무기가 아닌, 세계 최초의 깡통 로봇 아이언맨을 만들어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정의는 미사일이나 탱크로부터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아크 원자로를 개량하여 자신의 가슴에 이식하고, 갑옷도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이용해 강력한 무기로 탈바꿈시킨다. 그렇게 해서 아이언맨이 된 스타크는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며 테러 집단을 분쇄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들과 싸우게 된다. 물론 자신의 회사를 꿀꺽하려는 공동창업자 스탠까지도.


아니, 도대체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기에 테러범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데도 최첨단 깡통 로봇을 만들고, 이도 모자라 아이언맨으로까지 직접 활약한다는 말인가. 이미 공개된 바로는, 토니 스타크는 모든 히어로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히어로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배트맨으로 활약하던 웨인 기업의 총수 브루스 웨인이 가장 부유했지만, 스타크는 이보다 2~3배는 더 많다고 한다. 그런데 둘은 일단 원작 차원에서 소속이 다르다. 스타크는 마블 소속이고,

브루스는 워너 브라더스 소속이니까 이 부분은 앞으로도 비교해볼만한 가치가 상당히 높겠다. 


토니 스타크의 설정으로는, 어렸을 적부터 비상한 두뇌를 가진 천재 아이였다. 게다가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마저 초절정 천재이다. 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본인이 직접 천재 과학자로서 별의 별 과학 기술을 죄다 발명한다. 그래서 아이언맨도 본인이 직접 개발하는 셀프 서비스 정신을 선보인다. 토니 스타크의 탄생에 대한 비화는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원작에서 다소 황당한 전개로 이루어진다. 스타크의 어머니는 하워드 스타크의 연구원이었는데, 뇌세포를 증진시키는 모종의 실험을 하다가 감염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망 직전에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였다. 스타크는 어머니를 따라 그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지만, 공교롭게도 뇌 세포만 증진되는 것이 아닌, 온 몸이 뇌세포처럼 활동하는 그야말로 뇌세포 덩어리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온 몸이 도마뱀처럼 재생이 된다는 황당 설정. 이 때문에 아버지 하워드는 스타크의 몸을 보호할 특수 생체 갑옷을 만드는데, 이 갑옷이 푸른 박테리아로 만들어져서 스타크의 겉 모습이 시푸르둥둥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혹자는 스머프가 아니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성장하게 된 스타크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온 몸을 보호할 초강력 하이테크 바디 아머인 아이언맨을 개발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원작이 더 복잡하지만 가볍게 볼 사람은 그냥 영화만 보라규>



사실 탄생에 대한 위의 원작 내용은 최근에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진 아이언맨 이야기 <얼티밋 아이언맨>에서 나오는 설정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마블의 히어로들은 대두분이 스탠 리라는 미국 만화계의 대부로부터 탄생한 아해들이다. 이미 <엑스맨 오리진 : 울버린>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탠 리 할아버지는 몇 시간을 얘기해도 할 얘기가 많은 분이다.

그 분이 <테일즈 오브 서스펜스>라는 만화책에서 아이언맨을 처음 등장시킨다. 미스테리하게도 그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스탠 리 본인이 직접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후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이언맨은 줄곧 그의 향후 행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일단 원작에서의 아이언맨에 대한 기원을 필자가 아는 한에서 정리해 보겠다. 토니 스타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천재 신동으로, 15세에 MIT에 합격할 정도로 엄친아 중의 엄친아였다. 그리고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는 유명 전자제품기업인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총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가 모두 운전 중 브레이크 사고로 인하여 운명을 달리하게 되고, 졸지에 외톨이가 된 스타크는 그렇게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게 된다. 스타크는 천재적인 두뇌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전기제품 개발과 함께 훌륭하게 경영을 키워 나가 단시간에 세계 최고의 전기제품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국방성에서는 스타크의 기술력을 이용해 첨단병기화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되고, 당시 스타크가 개발한 최첨단 트랜지스터가 적용된 무기로 인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생존률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스타크는 현장 시찰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게 된다. 베트남에서 재수없게도 부비트랩으로 인해 중상을 당한 채 베트콩들에 의해 납치된 스타크는, 가슴에 박힌 금속 파편이 심장 쪽으로 조금이라도 쏠리게 되면 죽게 되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런 와중에 베트콩들은 스타크에게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주면 살려주겠다고 제의를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만난 또 다른 인질 호인센 교수를 만나게 된 스타크는, 그와 합심하여 자신의 목숨도 유지해주고 이 곳에서 탈출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를 개발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최초의 아이언맨이 탄생하게 되지만, 조악한 환경 탓에 배터리를 충전해야만 하는 시츄에이션이다보니, 결국 충전시간 기다리느라 호인센 교수가 희생한다. 어쨌든 덕분에 배터리 만땅 채우고 피범벅을 뿌리며 무사히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스타크. 이 때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훗날 베프가 되는 로즈이다. 이후 미국으로 귀환한 스타크는 아이언맨을 개량하여 본격적으로 아이언맨의 시대를 도래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던 그는, 아이언맨을 자신의 비밀 경호원이라고 세간에 공개하고는 비밀리에 정의 수호 임무를 계속하게 된다. 더욱이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최첨단 무기를 그득하게 만들어 그야말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요것이 최초로 아이언맨이 탄생하게 된 바로 그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어이쿠 밋밋하여라>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되는 과정은 원작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배경이 다르다. 원작 만화는 오래 전인지라 배경이 냉전 시대이다. 그 때 아이언맨이 탄생하여, 이후에도 주로 싸우는 적이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화되는 지금 시점에서는 냉전이라는 테마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살짝 비틀어서 테러집단으로 변경하였다. 실제로도 최근에 다른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아이언맨 익스트리미스>에서는 아이언맨의 회상 장면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납치와 탈출을 그리고 있다. 즉, 영화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최근에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된 후자의 작품 설정을 많이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3. 닥치고 악역이 되어버린 비운의 사나이 이반 반코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휘플래시 이반 반코에 대한 설정이다. 이반 반코는 영화에서 초반에 등장해서 몇 마디 못하고 출연 끝나는 알코올 중독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은 안톤 반코. 영화에서 그는 토니 스타크 가문 때문에 몰락한 소련의 천재 과학자라고 나온다. 정확하게는 묘사가 되지 않지만, 아마도 하워드 스타크와 안톤 반코는 동업을 했다가, 안톤 반코가 첨단 기술력을 돈벌이로 사용하려고 하자 하워드가 안톤을 해고하고 추방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베리아로 쫓겨난 안톤은 그 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비참하게 살다 갔다는 설정이다. 즉, 이반 반코가 휘플래시가 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억울한 아버지와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복수심일 뿐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안톤 반코가 다르게 묘사된다. 안톤 반코는 본래 소련의 천재과학자였고, 당시 소련의 적이었던 미국의 아이언맨을 무찌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언맨의 대항마인 크림슨 다이나모 개발에 투입되었었다. 하지만 명예와 정의를 알던 안톤은 크림슨 다이나모로 아이언맨과 싸우다가 아이언맨의 속임수에 넘어가 소련을 등지고 스타크와 함께 일하게 된다. 그 때 안톤 반코는 토니 스타크가 가지고 있던 기술과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 결론적으로 스타크와 안톤은 서로 다른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대립관계가 아닌 협동을 발휘했다는 것. 이는 원작에서 안톤의 최후가 바로 아이언맨을 살리기 위함이었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다른 캐릭터들은 어떨까? 1편부터 스타크를 도와준 S급 비서 페포 포츠와, 충실한 운전기사 해피 호건은 원작에서 어떻게 그려졌을까? 역시 원작에서도 비서와 운전기사로 등장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둘이 원작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모나코의 자동차 경주 씬이다. 원작에서도 자동차 경주 당시 사고가 난 스타크를 구하기 위해 포츠와 호건이 등장하는데, 원작에 대한 오마쥬인지 이번 2편에서 이 부분이 적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때 여왕이었으나 이제는 비서로 전락해버린 기네스양. 그래도 S급 비서이지 않은가!!>



#4. 원작과 영화의 비교 - 내게는 너무도 가벼운 영화


원작의 설정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스타크와 포츠의 관계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일단 둘은 서로 호감을 가지는 관계로 발전하기는 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황당하게도 포츠는 호건과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호건은? 호건은 운전기사로 활약하다가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이상한 전파에 노출되어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나름 스펙터클한 삶을 살다가 비명횡사하고 만다. 원작에서도 나름 개그 캐릭터인데, 막판에는 너무 무리하신 듯.


나타샤 로마노프의 등장인 조금 의외였다. 어쨌든 그도 원작에 등장한다. 하지만 많이 다르다. 나타샤는 본래 소련의 스파이로, 빼어난 매모를 이용해 스타크를 유혹하고 아이언맨 기술을 훔치고 그의 조력자이자 소련의 배신자인 안톤 반코를 암살하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임무 실패로 인해 소련으로부터 혹독한 징계가 예상되자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되어 방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얼티밋 아이언맨>에서 다시 등장하는 블랙 위도우는 몇 가지 놀라운 점을 선보인다. 먼저 블랙 위도우는 원래 복장이 영화에서처럼 쫄쫄이 스판덱스가 아니고 정말 미망인(위도우)처럼 검은 드레스를 입고 다니며 추파를 던지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점점 전투력이 상승하면서 최근에야 비로소 쫄쫄이 스판덱스로 갈아 입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블랙 위도우가 바로 스타크의 공식 최초 애인으로 나온다는 것. 블랙 위도우 입장에서는 스타크를 속이기 위한 일종의 미인계이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태생이 스파이이다 보니 결국 나중에 스타크를 배신하지만, 그 대가로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과연 영화 속편에서 이 설정을 따를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다.


영화 내내 허당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어설픈 악당 저스틴 해머도 원작에 등장한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원작에서는 이 친구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전투력이 아니라, 바로 기업가로서 스타크의 회사를 철저하게 두들겨 부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비록 말아먹으려고 노력했다가 도리어 경찰에 잡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원작에서는 알코올 중독으로 나락에 떨어진 스타크를 향해 거침없는 공격적 경영으로 결국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망하게 한다. 역시 영화 막판에 두고보자는 말을 던졌으니, 그 약속을 지킬지 지켜보는 것도 역시 또 다른 재미일 듯싶다.


계속해서 원작과 영화의 비교가 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가장 큰 화두인, 제 2의 아이언맨에 대해 비교해보자. 작품에서는 베프인 제임스 로즈가 아이언맨 갑옷을 제멋대로 입고서는 해머의 도움을 받아 워 머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막판에 아이언맨을 도와 세상을 구하고는 다시 사라진다. 향후 워 머신의 활약을 예고하는 설정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로즈가 워 머신으로 거듭나는 것은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그는 그 이전에 먼저 정말 아이언맨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사정은 이렇다. 스타크가 해머의 농간으로 인해 경영이 엉망이 되어 회사를 잃을 지경에 이르고, 이 충격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이에 스타크는 아이언맨 수트를 로즈에게 주고 대신 활약하게 한다. 하지만, 수트 자체가 스타크의 뇌파에 셋팅되어 있다 보니 뇌파가 다른 이유로 로즈의 정신이 붕괴되기에 이른다. 마치 에반게리온처럼 폭주를 하게 된 로즈를 보고 스타크는 다시 최첨단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로즈와 대결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스타크가 승리하고, 다시 정신을 차린 로즈는 다시 베프가 된다.


<이봐 자네, 꼭 그러고 있으니 깡통 뒤집어 쓴 고릴라 같구먼 허허>



이후 다시 아이언맨으로 활약하다가 스타크가 그만 에너지원이 신경계를 자극하여 죽음에 이르는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기에 이르자, 로즈는 정말로 스타크가 죽은 줄 알고 아이언맨 갑옷에 중무장을 하여 워 머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가 비로소 워 머신이 탄생하게 된 시점이다. 하지만 이후 죽은 줄 알았던 스타크가 사실은 죽은 척 하고 잠수탔다는 것을 알고 심하게 배신감을 느낀 로즈는 이후 스타크와 결별하여 독자적인 히어로로 활약하게 된다. 참고로 스타크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경영권을 로즈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늘 그렇지만, 원작과 영화가 조금씩 다른 설정과 분위기로 간다는 것은 매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보다. 만화는 꾸준히 나오지만, 영화는 몇 년에 한번씩 만들어서 대박 히트를 쳐야 하지 않은가. 이 때문에 아이언맨 영화도 원작에 비해 상당히 가벼운 느낌이다. 


실제로 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서 가지는 가치관을 보자. 그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여유롭고 껄렁대는 이미지이다. 특히 바람둥이 기질을 확확 뿜어내는 포스가 압권이다. 바람둥이 기질은 사실 원작에서도 드러나는 점이지만, 시종일관 껄렁대는 것은 다소 의외이다. 이는 스탠 리의 히어로들이 모두 그렇듯이 자기네들만의 나름의 고민과 가치관적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을, 영화에서는 싹 다 무시하고 아주 가벼운 오락물로 다가왔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원작에서는 스타크가 그토록 부자이고, 아이언맨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통해 그야말로 수퍼히어로 계열에 들어서게 되지만, 그는 그런만큼 엄청난 고뇌를 겪게 된다.


원작에서 스타크의 말로는 결국 알코올 중독자였다. 왜 그는 알코올 중독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존재한다. 스타크가 몸 담게 되는 세계 평화를 위한 거대 비밀 조직 쉴드가 바로 스타크를 속이게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얘기 하겠지만, 쉴드에 의해 탄생되는 어벤저스라는 조직의 초대 멤버이자 리더가 되는 아이언맨이었지만, 쉴드는 나중에 바로 그 아이언맨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미게 된다. 그것은 쉴드가 바로 스타크만이 아는 아이어맨의 기술력을 차지해서 군사력을 키우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스타크는 결국 쉴드가 몰래 자신의 기술을 훔쳐가려고 했다는 사실과,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 이후 술고래가 되고 만다. 더욱이 쉴드는 자기도 모르게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주식을 사들여 자신을 대주주에서 쫓아내려 까지 한다. 


이후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더 발생하게 된다. 바로 해머의 등장으로 인해 스타크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게 된다. 해머는 아이언맨의 소프트웨어를 해킹하여 원격통제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언맨이 공식석상에서 외교관을 만날 때 원격조정을 하여 그 외교관을 죽여버린다. 스타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이것이 갑옷의 오작동으로 오인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아이언맨의 위험성을 인식한 정부는 아직까지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아이언맨에 대해 당사자의 해명을 요구하지만, 이를 설명할 수 없는 스타크의 답답함. 게다가 스타크는 어벤저스의 리더로서 살인을 저지른 죄책감 때문에 리더 자리를 내놓는다. 이후 그는 아이언맨 수트가 없으면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술과 더욱 가까이 하게 된다. 


계속해서 모든 일들이 스타크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그럴수록 스타크는 알코올과 베프가 된다. 그 때 베서니 케이브라는 여자가 스타크를 감싸안아주게 된다. 그녀는 성심성의껏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게 도와주고, 스타크는 그렇게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게 된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타크 인더스트리 대주주는 결국 그의 손에서 떠나가 버리고, 그는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면서 또 한번 기가톤급 정신적 데미지를 입게 된다. 그래도 케이브는 그런 스타크에게 끝까지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게 된다.


<이봐, 간만의 포스팅인데, 댓글은 좀 달아주구려~>



위 내용은 원작의 일부를 발췌하여 알코올 중독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아이언맨 : 병속의 악마>라는 에피소드에 소개된 내용이다. 그만큼 스타크는 작품 속에서 그 어느 인건 못지 않게 심각한 고뇌와 좌절을 겪게 된다. 우리가 지금 영화에서 보는 긍정적이고 쿨하며 까불까불한 스타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향후 영화가 이러한 설정을 따라갈지는 미지수이지만, 감독의 취향 상 원작을 따라갈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인다. 


참고로,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 된 실존 인물 하워드 휴즈와 토니 스타크, 그리고 이를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모두 공통적으로 실제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싱크로율이 대박이다.



#5. 비록 소속사는 다르지만 어딘가 닮은 두 친구 - 배트맨과 아이언맨


자, 이제 스타크의 실제 모습을 봤으니 이번에는 배트맨과 비교를 해볼까 한다. 배트맨도 원작에서는 매사 고민만 달고 사는 노이로제 쟁이이다. 그는 특히 자신의 부모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심적 장애를 겪고 있다. 그 공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바로 배트맨이라는 껍데기일 정도이다. 그는 매번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그러면서도 늘 고민을 달고 있다. 정의란 반드시 밝아야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의로운 존재이면서도 경찰들에게 쫓긴다. 

바로 다크 나이트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원작의 숙연하고도 무거운 주제 의식은 사실 초반의 영화 배트맨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팀 버튼이 만든 <배트맨> 1, 2편에서는 아주 쬐끔 이러한 내면적 갈등을 선보이지만, 팀 버튼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했던 나머지 이상한 나라의 배트맨이 되어버리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포에버와 리턴즈에서는 아예 킬링타임용 오락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동용으로. 이는 현재의 아이언맨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다. 초기의 배트맨이 순수한 오락물로 다가섰던 것처럼, 아이언맨도 현재는 순수한 오락물에 불과한 느낌이다. 2편에서 중간에 다소 멍때리는 표정으로 고뇌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원작만큼 무거운 수준은 결코 아니다.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유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먼저, 그들은 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인간 베이스로 간다. 수퍼맨이나 엑스맨, 스파이더맨, 헐크 등등 다른 히어로들은 전부 무언가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이다. 하지만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그러한 능력이 없다. 오로지 재력과 기술력,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히어로의 계열에 들어선 인물이다. 결국 돈 없거나 특별한 능력 없으면 히어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느낌이다.


<여기 짜장면 3개, 짬뽕 2개, 탕슉 대짜로...아 그리고 군만듀도 플리이즈>



둘은 또한 상당한 재력가이면서 기업가라는 점도 동일하다. 게다가 모두 사고로 부모를 일찍 잃었다. 다만 그 충격을 극복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 브루스 웨인은 평생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스타크는 일찌감치 극복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산다. 둘이 여자를 밝힌다는 것도 똑같다. 다만, 브루스는 배트맨과 다른 자아의 삶을 위한 거짓된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스타크는 갑옷을 입어도 여전히 여자만 보면 헤벌레이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히어로라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원작에서도 역시 둘은 계속 정체를 숨긴다. 이는 이미 배트맨에서도 주구장창 거론되었던 가면 속과 밖의 서로 다른 자아에 대한 고뇌적 장치이다. 아이언맨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로 바로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밖에 없는 고뇌를 꼽고 있다. 아주 재미있게도, 코스튬을 상당히 자주 바꾼다는 공통점도 있다. 브루스 웨인도 툭하면 배트맨 갑옷을 개량한다. 아이언맨도 비롯 금속 기계 장치라는 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코스튬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이미 Mark1 이후로 벌써 4차례 이상 개량된 버전을 선보인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Model과 Mark로 식별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실버센츄리온, 헐크버스터, 스킨, 틴맨 등 다양한 개량 갑옷을 선보이게 된다. 심지어는 원작에서 어느 코스튬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이다. 이게 모두 돈이 빠방하기 때문에 가능한 소리이다. 수퍼맨은 맨날 단벌 빤스로만 먹고 살았는데 말이다. 둘에게는 훌륭한 조력자도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채 친구 없기로 유명한 브루스 웨인에게도 알프레도라는 훌륭한 집사이자 조력자가 있었다. 스타크에게는 비록 로즈와 같은 베프가 있긴 했지만, 그에게도 알프레도 버금가는 명 집사가 있었다, 바로 자비스. 영화에서는 자비스가 인공지능 로봇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집사이다. 그 역시 스타크를 위해 헌신하지만, 스타크가 술고래가 되었을 때 막말을 해서 그 길로 사표를 내고 빠빠이한다. 


이토록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언맨은 향후 계속해서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다른 분위기로 새로운 시리즈로 영화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는 이미 배트맨이 보인 행보이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4편까지 말아먹다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진지한 배트맨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통해 그야말로 원작의 느낌 그대로 무겁고 어둡고 현실적인 히어로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미 스탠 리의 다른 히어로 캐릭터가 이러한 차원에서 재탄생하게 된 사례가 있다. 바로 <인크레더블 헐크>. 에릭 바나가 분한 헐크가 헐리우드스러웠다면,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는 사뭇 진지하였다. 바로 고뇌할 수 밖에 없는 이중인격 히어로 헐크의 진지한 모습이 잘 살아났던 것. 게다가 이 헐크에서 어벤저스를 암시했다는 부분은 앞으로 마블 히어로들의 성격이 원작에 충실하게 흐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감독의 성향에 따라 확확 달라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애꾸눈이 특징인 쉴드 국장은 50년전에도 지금도 저 모습니다. 한 마디로 늙지 않는다는 소리>



#6. 슈퍼 히어로들의 계모임 - 어벤저스


어벤저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어벤저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어벤저스는 마블 코믹스에서 등장한 수많은 히어로들을 한데 모아 만든 집단 조직 히어로패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 배후에는 쉴드라는 비밀 단체가 있는데, 여기의 수장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애꾸눈 퓨리 국장이다. 쉴드의 창설 멤버로 스타크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원작과 영화에서도 모두 드러나고 있다. 다만, 어벤저스에 대해서는 영화에서는 그저 떡밥 수준으로 던져주고만 있는 실정인데,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매우 재미있는 떡밥임에 틀림없다.


먼저 어벤저스의 초대 멤버들을 보자면, 초대 리더이자 막강한 자금줄로 바로 아이언맨이 선정된다. 그리고 녹색 크리쳐 헐크와, 곤충을 패러디한 앤트맨과 와스프가 속한다. 게다가 켈트족 신화의 기운을 타고 난 토르가 함께 한다. 이들은 원래 처음에 서로 치고박고 하다가 어쩌다보니 호흡이 맞아서 엉겁결에 어벤저스를 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콩가루 조직답게 곧이어 헐크가 이탈하고 만다. 그러다가 2대 리더가 되는 캡틴 아메리카가 합세하게 된다. 이후 아틀라스가 되는 파워맨이 합세하고, 스칼렛 윗치, 퀵 실버, 호크아이, 비전, 블랙팬서 등이 줄줄이 합세하면서 어벤저스 거대 조직이 탄생한다.


이들의 월급과 복지는 아이언맨인 스타크가 대주게 된다. 원작에서도 후덜덜한 히어로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이 조직이, 오래전부터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공표되어 많은 마블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더랬다. 그런데, 어째 지금까지 캐릭터들이 따로 노는 분위기이다. 이를 정리하려고 하는지, 계속해서 각 작품에 어벤저스에 대한 떡밥을 던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아이언맨> 1편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잠깐 등장한다. 스타크가 아이언맨 갑옷을 제대로 만들어 입는 장면에서 뒤쪽에 어렴풋이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별무늬 방패가 보인다. 이는 2편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바로 원자가속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방패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게 되는 것. 그런데 우습게도 수평을 맞추기 위한 받침대로 쓰이다니, 잠자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가 알게 되면 난리날 일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방패 뿐만 아니라 그 모습까지 슬쩍 비춘다. 바로 <인크레더블 헐크>의 오프닝 씬에서 남극 장면이 보이는데, 얼음 속에 캡틴 아메리카로 보이는 물체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는 단순한 암시가 아닌데, 왜냐하면 실제로 캡틴 아메리카는 2차 대전 당시 활약했다가 냉동되어 잠자게 된 후, 남극 지역에서 냉동이 풀리면서 어벤저스에게 발견되어 어벤저스 멤버가 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헐크에서는 단순히 극지방으로 보여주었지만, <아이언맨> 2편에서는 하워드 스타크의 소지품에서 바로 남극 지도가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딘가 표시되어있는 듯한 형태로. 또한 스타크가 쉴드 본부에서 브리핑받고 있을 때 뒤에 비춰지는 스크린에 보면 지도가 나오는데, 아프리카를 빨간 점으로 가리키고 있는 그 지도는 바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의 원료가 되는 비브라늄이라는 운석이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어떠한 무기로도 부술 수 없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스타크가 가지고 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작에서는 나중에 스타크가 캡틴 아메리카를 위해 방패를 개량해서 주게 된다. 물론 써보니 형편없어서 다시 반품요구 하지만, 어쨌든 스타크가 이미 어벤저스의 일에 손을 대고 있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자료로 보여진다. 


참고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묘한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둘은 어벤저스에서 절친한 동료가 되기도 하지만,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는 최근의 새로운 작품에서 나오는 설정으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나 할까? 요새 나오는 새 시리즈는 지극히 무겁고도 캐릭터의 심적 주제 의식을 깊게 가져가는 것이 특징이다.


조금 황당한 캐릭터인 토르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암시하고 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마지막에 나오는 짤방을 보면, 중간에 어디론가 비밀임무로 인해 사라진 콜슨 요원이 뉴멕시코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번개신 토르의 주무기인 묘르닐이다. 즉, 토르의 부활을 암시하는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장치인 것이다. 이미 <아이언맨> 1편에서도 엔딩크레딧에서 똑 같은 떡밥을 던졌고, 그것이 어벤저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이 드러났다. 바로 스타크가 헐크를 거론하는 장면이었다. 어벤저스 프로젝트는 이미 공표되었고, 심지어 어벤저스의 멤버들인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에 대해서도 따로 영화화한다고 공표되었다. 이미 구체적인 제작 계획까지 나왔고, 배우까지 캐스팅될 정도이니 조만간 그들의 이야기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겠다. 


참고로, 이미 개봉한 <인크레더블 헐크>와 이번에 개봉한 <아이언맨 2>가 동시대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마지막에 쉴드 본부에서 역시 뒤에 나오는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는데, 바로 헐크가 블론스키 장군과 대학교에서 싸우는 장면이다. 알다시피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나온 이 장면은, 결국 스타크가 어벤저스 프로젝트를 고심하고 있을 때, 헐크가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유명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이래뵈도 어벤저스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는 껌댕이미망인(블랙 위도우)이라규>



#7. 실컷 던져 놓은 떡밥들 - 3편의 예고


이번에는 어벤저스가 아닌, <아이언맨 3>에 대한 암시도 찾아보자. 1편에서 스타크를 사지로 몬 테러리스트의 두목 라자를 기억하시는가? 이 친구가 1편에서 스타크가 남기고 간 아이언맨 Mark 1 마스크를 보면서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남겼었다. 게다가 그는 1편에서 스타크에게 징기스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이 배우의 증언에 따르면 결코 단순하게 설정된 대사가 아니라고 한다. 원작에서 아이언맨의 최대의 적으로 등장하는 징기스칸의 후예, 바로 만다린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다린은 원작에서 유럽인과 중국인의 혼혈로 태어난 친구로, 원래 기업가인데 어쩌다가 외계인의 비상한 반지를 발견하게 되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인물이다. 이후 자신을 징기스칸의 후예라고 하면서 스타크를 압박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어쨌든 능력으로 보면 사우론 저리가라할 정도로 절대 반지 10개를 끼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바로 그가 3편에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인데, 이는 이미 라자의 발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만다린의 반지를 연상케하는 반지가 라자와 해머가 각각 1개씩 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자가 만다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한번 지켜보자. 다만, 만다린은 마치 알라딘의 자파를 연상케하는 전형적인 간신배 모습인데, 대머리 라자는 좀 매칭이 안된다.

추가적으로, 2편에서 이반 반코에게 위조 여건을 건네주는 동양인은 다름아닌 만다린 조직의 일원이라고 한다. 이는 감독의 증언이기도 하니, 확실히 만다린이 향후에 등장하여 어떻게든 아이언맨을 괴롭힐 공산이 크다.



#8. 배우들마저 슈퍼 히어로에 버금가는 후덜덜한 캐스팅


워낙 방대한 마블 히어로의 설정이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이번에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토니 스타크로 순식간에 최고의 액션 배우가 되어버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원래 어린 나이에 배우로 데뷔한 스타이지만,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잠깐 인생을 망친 친구였다. 필자는 <인 드림스>에서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광기의 악당 연기에 감탄을 쏟아내었는데, <찰리 채플린의 인생, 그리고 예술>이란 작품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선보이며

영국 아카데미상을 받게 된다. 그 이후에도 TV 시리즈 등을 통해 자신만의 프리스타일 연기를 구축해 나가지만, 너무 흥청망청 했을까? 앨범 판매까지 하는 무리수를 두다가 그만 알코올 중독까지 가는 막장 인생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공포영화 <고티카>로 재기하여 다시 연기생활에 시동을 걸더니, 마침내 2008년 <아이언맨>을 통해 인생 최고의 인기 절정을 맛보게 된다. 이후 그는 영국과 미국 모두를 사로잡은 수퍼스타가 되고, <솔로이스트>, <셜록 홈즈>, <트로픽 썬더>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액션, 코미디, 공포, 드라마, 멜로 모든 분야에서 독특한 연기를 뽐내며 이 시대 최고의 중년 수퍼 연기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의 연기를 보면 어딘가 모르게 가끔씩 멍때리는 듯한 연기를 보이는데, 슬쩍 조니 뎁의 정신나간 연기같기도 하지만, 잘 보면 알코올 중독증세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터득한 자기만의 연기 스타일이랄까.


세계적인 섹시 스타 스칼렛 요한슨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명 배우. 그녀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일약 차세대 헐리우드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그녀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섭렵하지는 않았지만,  <프레스티지>, <아일랜드>, <블랙달리아>등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과 섹시미를 마음껏 뿜어내었더랬다.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섹시함으로 똘똘 뭉쳐 남정네들의 눈을 희망차게 만들어주었던 바, <아이언맨 3>와 <어벤저스>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하니 또 한번 기대해보자. 참고로 스칼렛 요한슨이 <나홀로 집에 3>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참고로 그 영화는 망나니 컬킨이 안나와서 쫄딱 망했다.


이번에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미키 루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미 <더 레슬러>에서도 그에 대해 사정없이 얘기를 한 터라 그리 길게 말할 것은 없겠지만, 어쨌든 이 사람을 얘기하면서 늘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주름살 자글자글한 낼모레 60세 할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강렬한 액션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원래 미키 루크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라 전형적인 섹시 심볼이었는데, 어쩌다 그만 스스로 인생을 망쳐 지금은 그나마 이 컨셉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다. 약물 중독과 권투 중독이 바로 그 범인. 90년대에 거의 인생 망쳐먹고 전전긍긍하다가 2005년 <씬 시티>라는 작품에서 마브 역으로 출연하면서 정말 놀라운 재기를 보여주었더랬다. 그야말로 TV인생극장에 나올 법한 감동 휴먼 스토리라고나 할까? 그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이제는 섹시스타가 아닌, 살아숨쉬는 휴머니즘 캐릭터가 되어 우리들 곁에 돌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담은 명작 <더 레슬러>가 탄생하였고, 이후 미키 루크는 헐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할아버지 섹시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는 6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몸관리로 이반 반코라는 강렬한 카리스마 악당 역을 꿰찰 수 있었고, 현재 <람보 5>와 <익스펜더블>, <징기스칸>에도 액션 연기로 등장할 예정이다. 참고로 <징기스칸>에서는 서양인 징기스칸을 연기한다고 하니, 이건 뭥미?


<내가 좀 없어보이긴 하지..사실 이 영화 출연 이유도 딸래미 학자금 대주기 위해서라능>



1편과 2편 배우가 서로 다른 비운의 캐릭터는 제임스 로즈는 2편에서는 돈 치들이 맡게 되었다. 1편에서는 보다 듬직한 체구와 인상의 테렌스 하워드가 맡았었는데, 개런티 문제로 무산되고 싼 값에 돈 치들이 되었다고 한다. 딱 봐도 알겠지만, 이 친구 저렴하게 생겼더랬다. 테렌스의 1/2 사이즈로 등장하여 동정어린 눈물샘을 자극하며 워 머신으로 활약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안습. 그래도 연기력은 알아주는 친구이니 그냥 눈감아 주자. <오션스 일레븐>과 <오션스 트웰브>에서 멤버 중 한명으로 등장하였고, <스워드 피쉬>와 <러시아워2>에서도 등장하였더랬다. 참고로 <블루 데블>로 최우수 남우조연상까지 휩쓴 친구이다. 앞으로도 <어벤저스>에도 등장한다고 하니 얼마나 활약하는지 지켜보자.


수석 비서관 페퍼 포츠 역은 조금 안어울리는 기네스 팰트로우가 맡았다. 1편에서도 왜 이 여편네일까 하고 의아했는데, 단지 집이 제작사와 가까웠다고 하니 작업상 편이성으로 인해 캐스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거식증으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라 다행이다. 그녀는 <후크>에서 어린 나이에 웬디 역을 맡았는데, 그 때만 해도 미모가 장난 아니었다. 그 이후 <쎄븐>과 <위대한 유산>에서 명연기를 펼쳤고, 그녀를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 준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는 매력적인 연기와 함께 알몸을 드러내는 파격 연기로 뭇 남성들의 눈동자를 촉촉하게 만들었더랬다. 그 이후 거식증 때문에 몸매가 많이 망가져서 지금도 여전히 조금은 안쓰러운 몸매를 보이고 있지만, 어쨌든 역시 계속 토니 스타크와 함께 등장한다고 하니 그녀의 활약을 지켜 보자. 어디 한번 원작대로 호건과 결혼하나 두고보자!


시종일관 어벙한 악당 저스틴 해머 역의 샘 락웰. 이 친구 어디서 많이 봤다 싶더니, 바로 얼마 전 개봉한 저예산 명작 <더 문>의 주인공 셈 벨 역으로 등장한 친구이다. 필자가 리뷰까지는 안 했지만, 리뷰해도 참 할 말 많은 명작이었던 <더 문>에서 1인 2역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한 친구이다. 게다가 필자가 엄청 재밌고도 의미깊게 본 명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도 잽호드 비블브록스라는 허당 200%의 우주대통령으로 등장한다. 은근 허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인 듯. 그러고보니 표정도 사뭇 진지하진 못하다. 그런 이 친구가 앞으로 스타크를 사지로 몰아넣을 악덕 기업가가 된다고 하니,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원작만큼의 파괴력을 기대했다면 대 실망인 저스틴 해머. 하지만 캐스팅은 훌륭하다!!>



쉴드 국장 역의 사무엘 잭슨은 이 시대가 인정한 최고의 조연이다. 이 친구가 나온 유명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아 문제이다. 가장 먼저 떠오로는 작품은 뽀글머리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펄프 픽션>. 그 작품에서 우스꽝스럽게도 철학적 고뇌를 하는 살인청부업자로 등장하여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과 골든 글로브 남우 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때부터 그의 조연 연기 인생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후 <정글 피버>와 <타임 투 킬>, <다이하드 3>, <롱 키스 굿나잇>, <좋은 친구들>, <패트리어트 게임>, <쥬라기 공원>, <딥 블루씨>,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 <아프로 사무라이>, <점퍼>, <트리플 엑스>, <킬빌>, <언브레이커블>, <원초적 무기>, <패트리어트 게임> 등 무수한 작품에서 조연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있게 만든 걸작 <스타 워즈>에서는 제다이 메이스 윈두 역으로 등장하여 젊은 날의 화려한 연기 인생을 펴기도 하였다. 하여간 이 친구가 받은 남우조연상이 너무 많아 조연 중 가장 몸값이 비싼 조연으로 인정받을 정도이다. 쉴드 국장으로서 계속해서 마블 히어로 시리즈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하워드 스타크 역의 존 슬래터리는 주로 TV시리즈에서 활약한 배우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위기의 주부들>과 <섹스 앤 시티>에도 등장한 분이다. 그리고 콜슨 요원 역의 클락 그레그는 <AI>와 <유주얼 서스펙트>에 출연한 친숙한 느낌의 아저씨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픈 인물은 바로 해피 호건 역의 존 파브로. 이 친구 조연으로서도 한 몫 하지만, 실은 이 영화의 감독이다! 감독치고 너무 뻔뻔하게 조연으로 등장하지 않는가? 생긴것도 참 친근하게 생겼는데 감독이라니. 게다가 이런 엄청난 블록버스터 대작을!! 그만큼 이 아저씨 능력있는 사람이다. 원래는 배우로 먼저 활약했다. <베리 배드 씽>과 <딤 입팩트>, <리플레이스먼트>, <배트맨 3>, <프렌즈> 등에 배우로 출연했다가, <러브 앤드 섹스>를 통해 주연, 작가, 감독의 3역을 혼자서 싹쓸이하였다. 여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아무튼 이 친구가 시나리오나 감독을 맡은 작품에는 여지없이 그가 등장한다. 향후 제작되는 그의 작품에도 역시 등장한다고 하니 나름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셈. 참고로 존 파브로 감독은 2008년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곧바로 2009년에 <캡틴 아메리카>를 연출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이미 곳곳에 캡틴 아메리카의 떡밥을 던져놓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다가 어벤저스 프로젝트로 인해 일단 이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 후덕한 뱃살의 아저씨가 감독이라면 믿겠는가? 믿으라, 그것이 진리이다>



#9. 더 화려해지기는 했는데, 무언가 액기스는 빠진 느낌?


이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해 보자. 1편이 상당히 센세이션하고 완벽했다는 부분에서 <아이언맨>은 확실히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사실이다. 화려한 액션과 아이언맨의 디테일한 그래픽, 그리고 빠방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연기와 스토리. 모두 빠질 것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런 기대를 이어 이번에 공개된 2편의 평은 어떨까? 의외로 현재까지는 많은 호평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편이 너무 완벽해서였을까? 2편에 걸었던 기대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액션에서는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스토리가 다소 지루해졌다는 평이다. 초반과 중반에 캐릭터들간의 질질 늘어지는 대화 씬이 작품의 속도감을 죽였다는 평이다. 게다가 막판에 휘플래시가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너무 싱겁게 끝난 것이 아니냐는 혹평이다. 잔뜩 기대하고 봤던 미키 루크의 액션 장면이 생각보다 너무 짧았던 것은 필자도 느끼는 부분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고 하지만, <다크 나이트>처럼 전편을 능가하는 작품이 되기에는 <아이언맨 2>는 확실히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느낌이다.


평은 이렇지만, 어쨌든 디테일에 있어서는 가히 완벽하다. 그래픽도 매우 정교하고, 로봇들과 펼치는 액션은 실사를 방불케한다. 게다가 이제는 휴대용 가방으로 소지하고 다니다가 훌떡 입어버리는 아이언맨 수트에서 펼쳐진 연출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원작과는 달리 시종일관 재미있는 분위기로 이끈 개그 코드는 나름 칭찬해줄 만하다. 존 파브로 감독이 코미디에도 재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낸 듯 하다. 스타크가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채 술에 취해 흥청망청대는 장면도 매우 우스웠고, 특히 ‘이혼한 마누라’ 미사일의 충격적인 결말은 필자의 배꼽을 약 5.84초간 분실케 하는 시츄에이션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분위기를 이어나간다면, <어벤저스>를 존 파브로 감독이 맡게 되면 수퍼히어로들의 개그콘서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같은 기대도 해본다. 


이 작품에는 고가의 승용차가 많이 등장한다. 1편부터 꾸준히 등장한다. 하긴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에서도 재력가답게 브루스 웨인의 고급 승용차들이 줄기차게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재력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수퍼카가 나와야 하나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아이언맨>에서 등장하는 모든 차들이 아우디 모델이라는 것이다. 스타크가 애용하는 수퍼카도 아우디의 고성능 수퍼카인 R8이다. 그런데, 사실 가격으로 따지고보면 브루스 웨인의 람보르기니에 비하면 R8은 나름 저렴하다. 세계 최고의 재력가가 왜 하필 비싸고 많은 차를 두고 R8을 타고 다닐까? 부가티나 벤츠 SL65 AMG나 쾨닉세그, 페라리 등 참 많은데. 실은 이 영화가 아우디의 협찬을 받아서이다. 그래서 R8을 비롯해 S, A, TT등 많은 아우디 시리즈가 등장한다. 그나마 스타크가 타는 차중에 롤스로이스가 등장한 것은 다행이다. 적어도 재력가라는 느낌이 나는 차이니까 말이다.


<초기 버전에서부터 계속 개량된 모델들이 전부 전시되어 있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



간만에 정말 장대한 리뷰가 되어버리고 만 <아이언맨 2>이다. 정말 돈만 있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나름 고민도 해보는 필자이지만, 역시 뒤에는 뛰어난 과학 기술이 있어야 함을 통감하며 실제로는 당분간 불가능하겠거니 싶다. 뭐 일부에서는 사람이 옷처럼 입는 컴퓨터가 개발되기는 하였지만,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해야지만 인간다워지는 것이려니. 기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토니 스타크는 그련 면에서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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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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