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하'에 해당되는 글 2건


동방불패 2 : 풍운재기 (東方不敗 2 : 風雲再起)



<포스터만 보면 마치 둘 중 누가 원조 동방불패인지 배틀붙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필자가 이미 블로그를 통해 홍콩 무협액션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던 <동방불패>는,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훨씬 넘은 현재에도 다시 보더라도 여전히 액션의 퀄리티와 스토리의 우수함, 그리고 배우들의 명 연기가 눈부신 작품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임청하라는 대배우를 알게 해 준 작품이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이었더랬다. 하여 임청하의 팬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봐야만 하는 영화 <동방불패 2 : 풍운재기>에 대해서 리뷰를 해보겠다.



#1. 스토리 – 한 번 제대로 망가진 무림고수의 힘겨운 재기를 다룬 역경 스토리


본 작품의 스토리를 주저리 주저리 파헤치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전작인 <동방불패>의 스토리를 되새김질 해보자. 명나라 말기 중국은 일본과 조선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나라가 IMF 구제금융이 필요할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무림 고수들이 들고 일어나 반란을 꾀한다. 그 중 묘족을 중심으로 한 일월신교의 동방불패는 무림 절대 비급인 규화보전을 익혀 초절정 고수로 거듭나면서 쿠데타를 통한 대륙의 지배를 꿈꾼다. 한편 화산파의 제자였다가 악질 사부를 처단하고 그 사부의 딸래미와 함께 도망쳤던 또 한 명의 무림고수 영호충은, 썸타고 있던 일월신교의 교주의 딸인 임영영과 함께 즐겁게 음주가무나 즐기며 세상 편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가, 일월신교가 동방불패에 의해 쑥대밭이 되면서 다시 강호의 피바람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규화보전으로 인해 남성성을 잃고 점차 초절정 미모로 거듭나던 동방불패와 영호충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썸을 타게 되고, 결국 이 것은 무림의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이름 하에 피비린내 나는 사랑과 전쟁의 씨앗이 되고 만다. 흑목애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동방불패는 영호충의 독고구검에 의해 패하고,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절한 사랑의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벼랑 끝으로 떨어지며 세상과 이별한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고장풍. 나름 강직한 인물인 줄 알았으나 그 역시 미모에 넘어가는 평범한 남자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본 작의 스토리를 이어나가 보자. 흑목애에서 동방불패의 역사적 쿠데타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명나라 말기. 이미 임진왜란 원조로 많은 국고를 탕진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명나라 조정은 결국 외세의 힘을 빌어 국력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그러한 차원에서 신무기로 잔뜩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동원하여 흑목애에서 벌어졌던 쿠데타의 진상을 밝히려고 한다. 스페인 함대를 이끌고 흑목애 사건 조사의 총 책임으로 임명된 자는 명나라 조정에서 몇 안 남은 무술 고수 고장풍(우영광). 고장풍은 평소 전설로 전해지던 절대 고수였던 동방불패에 대하여 이유모를 존경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번 조사에서 동방불패의 죽음에 대한 진위를 가리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스페인 군대는 그와 달리 실제로는 초절정 무림비기라는 규화보전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흑목애에는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고, 동방불패는 천하의 죄인이라는 영호충의 글귀가 적힌 깃발만이 을씨년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스페인 군대는 마치 동방불패의 무덤으로 보이는 곳을 마구 파괴하기 시작했고, 고인이 된 동방불패의 명예를 존중하고자 했던 고장풍은 그러한 스페인 군대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신식 무기인 총 앞에는 무술도 별 수 없었던 것.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진 고장풍이었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백발의 늙은이가 나타나 스페인 군대를 모조리 염라대왕 앞으로 영창보내고 쓰러져가는 고장풍을 구해내 근처 바닷가로 튄다.


자신을 일월신교의 장로라고 소개한 쭈그랑 노인네는 왜 대역죄인의 과거를 들추려 하냐고 하지만, 고장풍은 노인네의 뛰어난 무술 솜씨에 감복하고 그가 혹시 죽은 줄로 알려진 동방불패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고장풍은 어차피 죽을 몸이니 마지막으로나마 동방불패를 보는 것이 로또 1등 당첨보다도 더 큰 꿈이라고 말하고, 이에 노인네는 요술램프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겠다면서 고장풍의 온 몸의 혈도를 죄다 틀어막아 버려 죽음에 직면한 폐인으로 만든 뒤 가면을 벗어던져 진짜 동방불패(임청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발의 늙은이로 숨어 지내던 동방불패의 정체 공개. 이 모습은 훗날 백발마녀전에서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제 마지막 서비스로 상조 서비스까지 베풀려던 동방불패에게 고장풍은 갑툭튀로 장엄한 중대연설을 펼친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강호 곳곳에 동방불패라 지칭하는 자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답시고는 실제로 세상을 더 어지럽히고 있으며, 이를 막을 자는 바로 진짜 동방불패 그 자신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처음에는 무슨 귀신 씨나락 볶아먹는 소리냐며 무시했던 동방불패도 은둔자적이 심심했던지 서서히 마음을 돌려먹게 되고, 동방불패는 강호로 나가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생각을 다지며 대신 고장풍을 죽이지 않고 바다로 내던져 버린다.


실제로 강호는 명나라 조정의 약해진 힘 탓에 치안과 통제가 형편없었고, 그 덕에 자신을 동방불패라 지칭하는 짝퉁들의 이권다툼으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그 중 자신이 원조 30년 전통 동방불패라고 지칭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다 죽어가던 일월신교를 다시 일으켜 세워 묘족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주창하는 나름 비쥬얼은 동방불패스러운 짝퉁 설천심(왕조현). 설천심은 자신을 동방불패라 믿는 교도들을 앞세워 명나라에 들어와 자체 세력을 키우고 있던 동방 닌자 집단 세력들과 대항전을 펼치며 나름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천심의 본래 목적은 일월신교의 구원보다는 자신을 애첩으로 삼고 사랑을 듬뿍 퍼주었던 일편단심 동방불패만을 다시 만나는 것. 그래서 가짜로 동방불패 행세를 하고 다니면 언젠가 진짜 동방불패가 오지 않겠느냐는 초딩스러운 논리였던 것이다.


그런 설천심의 배에 무언가 입질이 왔기에 건져 올려보니 다름아닌 반사 상태의 고장풍이었던 것. 고장풍은 동방불패를 흉내내는 설천심을 보고 또 짝퉁이라며 웃어재끼고, 이에 화난 설천심은 그를 잡아가두지만 그의 입에서 진짜 동방불패가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자 이내 회상에 잠기며 동방불패느님을 생각한다.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 님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만 설천심.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일시'라고 한다>


강호로 나온 동방불패는 어디선가 씻김굿을 하는 듯한 장소에 들렀다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대한 동상을 세워 동방불패를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집단이 동방불패의 이름을 빌어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생간도 아닌 생심장을 꺼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없이 펼치고 있었던 것. 이에 동방불패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당장 엽기잔혹 퍼포먼스를 멈추라고 하지만, 사이비 교주는 “너가 동방불패면 나는 동방신기다”라고 콧방귀를 끼면서 개무시를 시전한다. 개무시에 뚜껑열린 동방불패는 결국 사이비 집단을 모조리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앞으로 동방불패를 지칭하는 놈들은 모두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할 것임을 결심한다.


설천심의 활약상은 그러한 동방불패의 귀에도 들어가, 결국 설천심의 소망대로 진짜 동방불패가 그녀의 배에 등장한다. 참치타고 피리부르며 간지나게 등장한 동방불패에게 경의를 표하는 설천심. 그리고 자신이 이끌던 교도들에게 이 분이 진짜 동방불패라고 소개하지만, 여태껏 설천심을 동방불패라고 믿어왔던 교도들에게는 오히려 신뢰도에 타격을 주었던 것. 이에 술렁이는 일월신교의 모습을 보자 동방불패는 설천심에게 이것이 인간사임을 말하면서 다 부질없음을 얘기한다. 그리고는 옛날 화끈하게 불타는 사랑을 했던 둘만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설천심과 달리 이제는 복수의 화신이 된 동방불패는 설천심에게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인 외로움을 선사하겠다며 냉정하게 버리고 떠난다. 


동방불패가 사라지고 아수라장이 된 일월신교는 교도들이 그간 자기들을 속인 설천심에게 분노를느끼며 그녀를 죽이려 든다. 이에 그새 설천심의 미모에 뻑가버린 고장풍은 설천심을 죽이려던 교도들을 막아서고, 이미 몸과 마음 모두 크게 상처를 입은 설천심에게 고장풍은 치료해 주겠다며 자신이 속해 있었던 명나라 군대의 기지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명나라 수군 기지로 복귀한 고장풍은 자신의 절친이자 믿음직한 부하인 한청(고웅)의 도움을 받으며 설천심의 회복을 도우는 한편 이미 통제불능의 파괴의 화신이 된 동방불패를 막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수군 진영에서 동방불패의 옷을 입고 흉내를 내면서 술시중을 드는 여인들과 이를 보고 주색에 빠져 노는 수군들을 보고 크게 실망한 설천심은 한족도 모두 똑같다며 혐오감을 비춘다. 이에 나름 정의파임을 외치는 고장풍은 그 즉시 주색잡기에 빠진 군졸들을 처단하면서 아직 정의는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설천심은 이미 그토록 처절하게 내침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방불패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지고지순한 생각뿐이었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고장풍에게 요청하여 동방불패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그런 그녀에게 두 번 다시 강호의 전장에 돌아오지 말라고 부탁하는 고장풍.



<간만에 강호에 나왔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여성으로서 맹활약하는 타짜 동방불패>


한편, 이제 완전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뜬 동방불패는 동방 닌자 집단의 마을에 카지노녀로 위장취업하여 생계에 힘쓰던 중, 동방 닌자 집단의 우두머리인 무음뇌장도 짝퉁임을 눈치챈다. 동방불패는 밤에 몰래 찾아가 그의 부끄러운 정체를 친히 밝혀주면서 이승과 작별 인사를 시켜주고, 무음뇌장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그의 행세를 하면서 동방 닌자 집단을 명나라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긴다.


고장풍 역시 짝사랑하던 설천심이 떠나간 후 허탈함에 모든 원망을 동방불패의 탓으로 돌리며, 더 이상 그를 존경의 대상이 아닌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악마로 생각하며 그를 막기로 결심한다 (사실 속마음은 설천심을 빼앗기 위함인지도). 이에 무리임을 알면서도 한청을 설득하여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동방불패를 향해 나아간다.






#2. 원작 소설에 없었지만 인기에 편승해 탄생한 외전격 작품


<동방불패> 1편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편에 비해서 2편은 등장인물도 빈약하고 스토리가 너무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본래 김용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편과 달리 2편은 철저하게 감독이 의도한 새로운 스토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동방불패> 1편에서 마지막에 동방불패는 흑목애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사가 불투명하게 되는데, 원작에서는 사실 이 장면에서 동방불패가 확실히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무협 액션 로맨티스트 서극 감독이 이 부분을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로 남기기 위해 생사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설정을 이용해서 실은 동방불패가 죽지 않았다면 하는 IF 시나리오로 2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전편에서 원작대로 등장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은 원작 설정과의 개연성의 문제로 2편에서 등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 스케일이 무척 작아진 것이 사실이고, 더욱이 스토리마저 김용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무협 대서사시를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다시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영호충은 원작에서 정말로 무림을 떠난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등장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방불패2: 풍운재기

<애초에 두 인물의 초 특급 인기를 한데 모아서 기가톤급으로 뻥튀기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모든 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을 속편이 나와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1편의 대대적인 성공과 더불어 임청하라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방불패> 1편은 사실 전작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오강호>였다. <소오강호>도 나름 훌륭한 스토리와 후덜덜한 캐릭터들의 조합으로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는데, 정작 <동방불패>는 후덜덜한 캐릭터들을 정말로 후덜덜한 명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더더욱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나면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동방불패 역을 맡아 중성적인 연기를 펼친 39살 노처녀 임청하는 홍콩 액션 영화계에 전무후무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고, 뒤이어 전 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동방불패 캐릭터의 인기를 이대로 죽이기가 아까워서 1편 제작 후 1년만에 초스피드로 2편 제작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동방불패 2: 풍운재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3. 오로지 액션에만 치중하다가 아스트랄함을 선사한 비운의 작품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1편보다 못한 2편이 어딨겠는가. 아무리 천하의 임청하라 하더라도 진부한 스토리와 바람빠진 타이어마냥 빈약한 캐릭터들의 개성은 어떻게도 살릴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왕조현도 마찬가지였는데, 알다시피 왕조현은 임청하 이전에 <천녀유혼> 등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 커다란 팬덤을 형성하고 있던 초특급 스타였고, 그러한 그녀의 가세는 <동방불패 2>가 제작 전부터 화재의 작품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두 명의 초절정 미녀 스타로서도 살리기 힘든 작품성 앞에 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필자는 또 하나의 가정을 세워본다. 만약 <동방불패 2>가 전작의 감독이었던 서극에 의하여 계속해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말이다. 서극 감독은 사실 <동방불패> 1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소수민족의 비애를 이야기하였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던 동방불패라는 캐릭터가 메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녀가 소수민족인 묘족을 이끌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장풍은 처음엔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며 동방불패를 이끌었으나, 결국 흔한 신파극처럼 여자에 빠져 인생 망치는 캐릭터>


서극 감독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명감독이지만, 사실 그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극 감독은 어렸을 적에 베트남에서 쫓겨나다시피 나라를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여 정착을 하게 되면서 터전을 잃고 사는 소수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은연 중에 이러한 아픔과 불안감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다름아닌 <영웅본색> 시리즈인데,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액션 느와르로 꼽는 영화인 <영웅본색>도 사실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90년대의 암울한 홍콩인들의 자화상을 깊숙이 깔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오죽하면 <영웅본색>의 영문 제목이 “A better tomorrow”였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고유의 터전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홍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극은 이미 베트남에서 겪었던 아픈 경험을 다시 홍콩에서 겪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그 누구보다도 컸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그의 주제의식 때문에 <동방불패>는 일월신교의 비애와 함께 이를 짊어지고 나아가려는 동방불패의 애절함이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방불패 2>가 서극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2편 역시 일월신교와 동방불패의 애절한 스토리가 부각되면서 보다 사회성이 더 짙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2편의 부재로 선정된 “풍운재기”라는 말을 보았을 때는 이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서극의 관점에서의 풍운재기는 동방불패 자신과 일월신교 모두의 재기를 의미했을 것이고, 그들의 처절한 재기 스토리가 마치 <백발마녀전>처럼 애절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주면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쉽게도 서극이 손을 떼면서 정소동과 이혜민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둘 다 액션에 치중하는 스타일이었던 만큼 보다 액션 중심적인 작품으로 탄생될 수 밖에 없었다. 정소동과 이혜민 감독은 <소오강호> 작품에서부터 같이 작품을 해왔던 관계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동방불패> 시리즈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방불패> 1편에서 전무후무한 무협 액션을 선사하였던 멤버들인 만큼, 이를 더 업그레이드한 무협 액션을 선보이고자 하는 욕심도 컸을 것이다. 그 결과물로 <동방불패 2>는 확실히 더욱 커진 스케일의 무협 액션을 보여주었고, 너무 오버한 나머지 시대를 앞서간 사물 액션(잠수함 변신 같은)까지 선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아스트랄 무협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흥행면에서 결국은 액션보다 스토리를 원했던 관객들에게 처참하게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스트랄함의 시작. 일명 대서양 참치타고 무공 뽐내기>



#4. 파란만장한 배우 왕조현에 대한 고찰


앞서 왕조현 얘기가 나왔으니, 배우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이미 임청하라는 배우는 본 블로그의 <동방불패> 1편 리뷰에서 자세히 얘기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왕조현은 80년대부터 홍콩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특유의 청순한 미모로 전 아시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더랬다. 그녀를 80년대 책받침 공주로 만들어버린 결정적 작품은 바로 1987년작 <천녀유혼>.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애절하면서도 때로는 발랄하고 도도하면서도 귀여움이 철철 넘치는 개성넘치는 귀신 연기를 해내면서, 장국영과 더불어 홍콩을 대표하는 남녀 스타로 대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귀신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였을까, 이듬해 출연작인 <화중선>에서도 너무나도 유사한 캐릭터도 재등장하여 사골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더랬다. 그러더니 이후에도 여러 무협 영화에 출연하면서 귀신이거나 혹은 귀신이 아니더라도 저주를 받아 남자주인공에게 구원을 받는 등의 정형화된 캐릭터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왕조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청순함과 여성스러움으로 인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캐릭터로서의 가치와 가장 잘 매칭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이번 작품에서 남성다움을 강조한 임청하와 여성다움을 강조한 왕조현의 콤비 플레이는 같은 여성끼리의 조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화재가 된 장면. 실제 둘은 이 장면에서 키스와 끈적한 스킨십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에서 입으로 물을 따라주는 괴랄한 짓까지도...>


그러나 저러나, 왕조현 역시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는 매우 드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사실 대만 출신으로, 16세까지 농구선수로 활약하는 등(이 때문에 그녀의 별명이 롱다리 아가씨이다) 홍콩 영화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행보를 걸어 왔더랬다. 그러다가 광고모델로 덜컥 뽑히면서 대만 언론에서 잘나가는 CF 모델 겸 영화배우가 되었고, 보다 더 큰 시장을 노리기 위해 1985년에 홍콩 영화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약 10년간 무려 60여편이 넘는 다작 활동을 펼치다가 1997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표면적 이유로는 휴식이었지만, 루머에 따르면 유부남이었던 홍콩 거물과의 염문설이 불거지면서 스캔들을 잠재우고자 은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때부터 왕조현이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녀의 늙어가는 나이에 반비례하여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2001년 그간의 은둔자 생활을 마감하고 당차게 재기를 선언하여 <유원경몽>이란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다시 연기인생을 펼쳤다. 이 작품에서 왕조현의 과거의 청순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천녀유혼>에 버금가는 열연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해당 작품은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아 그녀를 원했던 원조 팬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공간 상 안 넣으려다가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비스로 대 방출>


<유원경몽> 출연 이후 왕조현은 다시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팬들에게 또 한번의 쇼크를 선사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덕에 그간의 열정이 식었다, 여전히 스캔들에 시달려서 스트레스가 크다 등등의 각종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 이후 지속적인 두문불출 속에서 2003년 자신의 영화인생 최고의 파트너이자 베프였던 장국영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더해지면서 왕조현이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심각한 비만 상태라는 등의 루머가 한국까지 퍼지기도 하였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 2004년에 양치기 소년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재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금 팬들에게 쇼크X2를 선사하였고, 그렇게 해서 <미려상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의 왕조현은 더 이상 책받침 공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 찌든 중년의 여배우 모습이 역력했고, 작품 역시 그녀의 대표 장르였던 무협이 아니라 근대의 암울한 중국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왕조현은 또 다시 영원한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에게 크리티컬 350배의 초특급 필살기 데미지를 선사하면서 영원히 영화계를 떠나버렸고, 역시 은둔자적 모드였기 때문에 다시 비만이 도졌다는 둥, 지나친 성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둥, 사생아를 낳았다는 둥 별 희한한 루머에 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왕조현은 은퇴 직후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고 그 곳에서 어학 공부도 하는 등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몸과 얼굴 모두 아주 정상적으로 아름다운 상태로 말이다.



<2016년에 공개된 왕조현의 근황. 49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한 미모를 자랑한다. 임청하의 동안 미모를 능가하는 듯>



#5. 조촐하지만 나름 명연기로 무장한 조연진들


<동방불패 2>는 1편에 비해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연으로서 명 연기를 펼친 배우가 하나 있는데 바로 고장풍 역의 우영광 되시겠다. 이 배우는 홍콩 영화를 많이 본 팬들이라면 아주 친숙한 배우일텐데, 한국으로 치면 배우 이경영 정도만큼 다작 출연을 하면서 감칠맛나는 명품 조연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우영광 역시 80년대부터 홍콩 무협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선이 굵은 연기들을 펼쳤는데, 필자가 기억하는 이 배우의 유명 출연작만 해도 <진용>, <프로젝트 S>, <영웅>, <풍운>, <뉴 폴리스 스토리>, <삼국지 용의 부활> 등이다. 초반에는 강인한 인상 탓에 악역에 주로 캐스팅되었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비중있는 조연 역할을 펼치며 인상깊은 배우로 남아 있다. 재미있게도 정우성과 장쯔이가 출연하여 화재가 된 한국산 무협 영화 <무사>에서도 등장하였고, 한국에서 제작된 <깡패 법칙>이라는 괴작에서도 무려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출연하여 나름 필모그래피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당시 악역을 주로 맡다가 이 작품에서 어쩐 일로 선한 일을 다 맡았을까 싶었던 우영광. 그러나 역시 기존 이미지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장풍만큼의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그나마 명나라 장수 중 가장 정신머리 제대로 박혀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한청 역의 고웅 역시 한번쯤은 입방정을 털어보고 싶은 명품 조연 배우 되시겠다. 사실 이 배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자세히 보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을 것이다. <리썰웨폰 4>에서 위조지폐 전문가로 출연하여 악당 이연걸에게 목이 졸려 사망하는 비운의 캐릭터로 출연한 배우가 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아하~”하실지도 모르겠다. 이 배우도 상당한 다작 배우인데, 그나마 기억나는 역할로 견자단이 출연한 <정무문>에서 곽원갑으로 등장했던 것과,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백발마녀전>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하였고, 유덕화를 명배우로 각인시킨 <지존무상>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나름 고전에 속하지만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한번쯤 시청했을 <공작왕>에서도 등장하여 필자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배우이다.



#6. 영화보다 더 빛난 주옥 같은 OST


<동방불패 2>는 비록 기대만큼의 훌륭한 작품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바로 OST인데, 사실 최초의 시리즈 격이었던 <소오강호>의 작품 배경을 본다면 사실 음악적인 부분이 매우 강조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오강호>는 영화 제목 그 자체가 바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노래 제목으로, 작 중에서 무림 고수 커플인 순풍당 당주와 일월교 장로가 K(강호)-POP 오디션 1등을 위해 자작한 명곡이다. 이 곡은 <동방불패>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작품 곳곳에서 강호의 허무함을 노래하듯 울려퍼지기도 하였고, 임청하 본인도 직접 소오강호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방불패 2>에서는 이러한 소오강호 음악은 단 한번도 울려퍼지지 않아 어찌보면 원조 시리즈인 <소오강호>와의 연결고리는 더 이상 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대신 극 중에서 임청하가 카지노 로열을 재현하며 불러재낀 노래와 엔딩 크레딧에서 울려퍼진 노래는 모두 <동방불패 2>만을 위해 만들어진 곡인데, 이 곡들이 그야말로 주옥같았다는 것이 반전. 실제로 영화 자체는 시시껄렁하게 보신 관객들 중에서 노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찾아서 들으려는 의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임청하가 극 중 직접 노래를 불렀던 장면. 은근히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필자가 솔직히 해당 노래의 제목은 잘 모르지만, 그 음만큼은 아주 강렬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필자의 우상인 임청하가 직접 불렀기 때문이리라. 사실 임청하가 그렇게 노래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홍콩 영화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배우들이 단순히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댄스에까지 매진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대세였다. 오죽하면 홍콩 4대 천왕으로 꼽힌 배우들이 모두 자신의 고유 앨범 타이틀과 더불어 가요계로 홍콩을 점령했을까. 이러한 트렌드였다 보니 임청하 역시 OST에 직접 참여하여 노래를 불렀던 것인데, 임청하는 노래 실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에 <동방불패 2> OST 중 임청하가 직접 부른 곡은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수려한 OST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음악을 맡은 원탁범으로, 그는 이미 <동방불패> 1편에서도 음악을 맡으면서 명품 음악 감독으로서의 싹수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그는 그 유명한 주제가를 탄생시킨 <황비홍 2 남아당자강>에서도 음악을 맡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주제가를 듣는다면 “얼씨구!!”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될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그리고 그 곡은 원조 황비홍인 성룡이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요수도시>, <백발마녀전> 등에서도 음악감독으로서 좋은 음악들을 선보였으나, 90년대 말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이 없어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강호에 나왔더니 그 새 짝퉁들이 너무 범람하여 이미지 손상에 적잖이 타격받은 동방불패>



#7. 임청하를 한국으로 오게 한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


이 작품이 필자 개인적으로나 한국 문화계에서 또 하나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임청하라는 당대의 명배우를 초전성기 시절에 한국에 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90년대에 홍콩 배우들이 한국 문화를 초토화 시키고 있을 때 그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동방신기가 동남아 방문하는 것과 유사한 거대한 문화계 지각 변동을 야기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영화 시장은 홍콩 영화의 주요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가 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어서, 많은 홍콩 스타들은 영화 홍보차 일본이나 기타 동남아 국가를 많이 가고 한국은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동방불패> 1편이 한국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 성공 기록을 보이면서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임청하 팬덤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고자 <동방불패 2>의 홍보를 위해 임청하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더랬다.


당시 더더욱 놀랐던 것은, 홍콩의 수퍼스타가 이례적으로 한국의 TV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감행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당시 주말 예능계를 주무르고 있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는 이경규가 ‘시네마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당대 걸작 영화들을 대스타를 초청하여 엽기적으로 패러디하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임청하가 홍보차 내한한다는 소식에 프로그램을 특집 편성하여 ‘시네마천국 시상식’ 중간에 특별 게스트로 등장시켜 우수상과 대상 등을 직접 수여한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해서 임청하가 정말로 무대에 등장했고, 사전에 예고가 크게 되지 않았던 탓에 관객들은 광범위 스턴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특별 출연이었지만 임청하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프로그램과 함께 하면서 시상식 외적으로 자신의 출연작인 <동방불패 2>의 홍보와 함께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지게 풀어냈고, 특히 직접 OST까지 한 소절 불러주면서 어마어마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게스트였던 미모의 배우 김희애를 능가하는 젊음과 미모를 과시하여 필자를 비롯해 많은 남성 팬들의 분당 심장 박동 수를 평균 257% 상승시켰으며, 말하는 중간 중간 선사한 깨알 같은 애교 넘치는 행동은 기존의 한국 스타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문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임청하는 한국에서 짧은 일정을 소화하며 팬 사인회, 영화 홍보, 화보 촬영 등을 진행하였고, 당시 임청하의 특별 화보집이 발행되어 해당 화보집의 뒷부분에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물론 임청하의 전무후무한 한국판 화보집은 필자도 고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한국 방문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 한국판 화보집에도 실려 있다>


영화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냈지만, 무대 위에서는 애교 넘치고 끼 많은 연예인이었고, 또 사진 속에서는 청순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수수함을 보여준 임청하. 그리고 그녀의 매력이 듬뿍 발산된 영화 <동방불패 2>. 액션과 스토리를 배제한다면, <백발마녀전>과 함께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을 가장 잘 뽑아낸 작품으로서 인정할 만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블로그 이미지

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

동방불패 (東方不敗)

Movie 2015. 11. 11. 14:19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동방불패 (東方不敗)


필자는 이미 옛날 블로그에서 인물 리뷰를 통해 동방불패 역을 맡았던 임청하를 극찬한 적이 있다. 임청하라는 배우 자체도 대단하였지만,당시 아시아 영화권에서 메인으로 자리잡고 있던 홍콩 무협 영화의 새 지평을 연 동방불패라는 작품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혁명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홍콩 무협영화의 바이블이 된 명작, <동방불패>를 리뷰해 보고자 한다.


<포스터만큼은 짱깨 냄세가 물신 풍기는 동방불패 국내버전 포스터>



#1. 홍콩무협영화 최고의 걸작 - 동방불패


동방불패는 1992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장군의 아들 3>, <미스터 맘마>,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등의 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시기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촌스럽기 그지없는 액션과 연출이 매력으로 인정받는 그런 영화들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 홍콩에서는 홍콩 무협 느와르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서극과 정소동 감독이 투톱을 이루어 무협영화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만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무협 액션과 특수효과, 그리고 주인공들의 뛰어난 연기와 연출, 마지막으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다는 애절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그것이 바로 동방불패였다.


원래 동방불패는 김용의 원작 소설 <소오강호>의 일부 내용을 구성한 작품이다. 김용 하면 아시아의 J. R. 톨킨이라 불리우는 무협소설의 아버지. (개그맨 김용이 아니다!) 그 방대한 무협의 세계관을 집대성하여 소설화한 인물인지라 스토리 자체가 엄청 세밀하고 탄탄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아주 짤막한 스토리를 좀 더 각색하고 쫄깃쫄깃하게 엮어낸 작품이 동방불패였으니, 영화화한다는 자체부터가 이미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방불패가 소설 소오강호의 짤막한 일부만 다루고 있다보니, 처음부터 동방불패를 보는 관객들은 설정에 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이는 동방불패뿐만 아니라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여러 영화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이다. 그렇더라도 동방불패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바로 직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프리퀄격인 <소오강호>라는 영화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1990년에 이미 서극이 정소동 감독과 손잡아 만든 소오강호는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는데, 여기에 삘 받은 나머지 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자신들만의 철학과 주제의식을 담아 동방불패를 파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인이 39살 노처녀라면 믿겄수???>



#2. 동방불패의 프리퀄 이야기 - 소오강호


그렇다면 동방불패를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소오강호를 훑어보자.


명나라 만력, 황궁(禁宮)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내승운고(內承運庫)에 자객이 침입하여, 최고의 무공이 수록된 무공비록 '규화보전(葵花寶典)'이 도난당한다. 이를 맡아오던 동파의 내시 총관은 대립되고 있던 서파에 의해 조정에 알려질까 두려워 심복 황보천호(장학우)를 앞세워, 근래에 사직한 황궁의 금위무사 임진남의 집을 포위하고 그와 대립한다. 이때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임진남을 찾은 자가 있으니,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이다. 그는 사매(엽동)와 함께 사부인 악불군의 명을 받고 임진남을 찾아오게 되어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 


한편 총관 내시는 강남 맹주를 자처하는 고수 좌냉선을 고용하여, 규화보전을 찾게 한다. 임진남의 집에 침입한 좌냉선은 그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임진남 마저 목숨을 빼앗는다. 임진남은 죽기전 영호충에게, 자신의 아들 임평지에게 규화보전의 행방을 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번 일들을 모두 일월교의 소행으로 몰아넣은 총관은 일월교도들을 탄압한다. 


한편, 화산파로 향하던 영호충은 은퇴하여 강호를 떠나려는 순풍당의 당주(우마)와 그의 친구인 일월교의 곡장노(임정영)를 만나 함께 뱃길을 가게 되면서 젊은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은퇴하면 부르겠다는 소오강호를 연주한다. 이때, 좌냉선이 영호충 일행을 추적해 와 일대 싸움이 벌어지고 그에게 큰 부상을 입은 당주와 곡장노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악기를 영호충에게 전해주고 스스로 배에 불을 지르고 죽음을 택한다. 


한편, 임평지를 죽인 황보천호는 자신이 임평지로 위장하여 영호충의 화산파에 접근하게 되고, 마침 제자들을 이끌고 임진남의 집으로 향하던 화산파 사부 악불군과 객전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이 찾는 규화보전은 체내의 기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인화대법'이라는 무예에 대해 씌어진 비법서였다. 쫓기는 몸이 된 영호충은 무림에서 우연히 강호를 떠도는 풍천양이라는 괴노인에게서 만나 죽음을 초월한 신비한 공격 검술 '독고구검'을 전수받고, 그에게서 영욕에 사로잡힌 사부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영호충은 이어서 고산족 일월교와 만나 교주의 심복인 남봉황(원걸영)을 알게 된다. 화산파로 돌아온 영호충은 임평지로 가장한 황보천호에게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려주나 악불군도 몰래 이를 엿듣는다. 영호충이 황보천호의 독주를 마시고 의식을 잃자 염탐을 하기 위해 잠입했던 남봉황이 그를 일월교로 옮겨간다. 처음엔 영호충이 한인이라 오해했던 미모의 교주 임영영(장민)은 그가 곡장노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의 몸에 퍼진 독을 없애 목숨을 구한다. 이때 좌냉선이 공격해 오자 의식이 깨어난 영호충과 결전을 벌이고, 마침내 좌냉선은 남봉황이 구사하는 벌떼에 휩싸여 교주의 무서운 채찍에 목이 잘려 죽는다.


한편, 전부터 규화보전을 노리는 악불군은 황보천호와 동행하고자, 자신의 딸 사매를 그와 결혼시키겠다며 총관이 있는 임진남의 집으로 향한다. 마침내 규화보전을 둘러싸고 총관과 황보천호, 그리고 악불군과의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날 밤 황보천호가 숨겨놓은 규화보전을 손에 넣는 순간, 악불군이 이를 낚아채 버리나, 도중에 영호충의 소오강호 악보와 뒤바뀌게 된다. 총관에 의해 수세에 몰린 악불군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제자인 영호충과 사제들에게 일월교와 결탁했다며 누명을 쒸우려 하자, 위기에 빠진 영호충에게 교주와 남봉황이 찾아와 총관의 관군과 대립한다. 긴박한 상황, 영호충에게서 몰래 규화보전을 전달받았던 사매가 영호충을 위해 규화보전을 내놓게 되고, 이에 총관과 악불군과의 일대 싸움이 벌어진다. 악불군은 총관이 워낙 고수라 상대가 되지 않아 혼자 도주를 하고, 다시 영호충 일행이 총관과 대적한다. 이때 배신에 대한 두려움에 황보천관이 쏜 총에 총관이 맞자, 이 틈을 타 영호충과 교주가 힘을 합쳐 총관을 처치한다. 하지만 비열한 황보천호는 규화보전을 손에 넣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어 영호충 앞에 사부 악불군이 다시 나타나 규화보전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들어내며 사제들을 공격한다. 마침내 제자와 사부 간의 일대 결투가 벌어진다. 사부보다 무예가 낮은 영호충이 수세에 몰리자, 독고구검을 구사하여 사부를 응징하고, 마침내 그를 제압하지만 사매의 간청으로 목숨을 살려준다. 말에 오른 영호충은 사매를 태우고 교주, 남봉황과 함께 화산파를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난다.


<규화보전을 이용해 절대무림고수와 절대미모를 얻을 수 있다면 필자도 한번...>



스토리가 엄청 복잡하다. 무협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분들은 낯설기만 한 용어들이 튀어나와서 벌써부터 대뇌피질이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동방불패를 이해하기 위해 위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실질적으로 동방불패와 소오강호는 일부 캐릭터들간의 상관관계만 연결고리를 가질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소오강호의 내용 중 핵심을 찝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규화보전은 절대무림고수가 되기 위한 일종의 비급이다.

2. 영호충은 일월신교의 임영영과 연민의 정을 쌓게 된다.

3. 영호충은 사부 악불군의 악행에 회의를 품고 강호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악불군, 황보천호, 좌냉선, 임평지, 풍천양 등등의 캐릭터는 사실 동방불패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영호충과 임영영, 그리고 동방불패의 3각 구도가 동방불패의 메인 이벤트이기 때문에 소오강호에서의 복잡했던 설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각기 다른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느낌이다. 더욱이 주인공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도 달라진다!!



#3. 스토리 - 절세무공을 얻었으나 사랑은 얻지 못한 슬픈 트랜스젠더의 이야기


그렇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동방불패의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화산파의 엘리트 수제자 영호충(이연걸)은 속칭 '오리'로 불리우는 사매 악령산(이가흔)과 함께 유랑을 한다. 영호충은 이미 사부 악불군의 악행에 실망을 하여 니체의 허무주의에 빠진 채 강호를 떠날 것을 결심한 상태. 그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어느덧 연인사이로 발전한 일월신교의 임영영과 만나 회포를 풀기로 약조하였던 것. 하지만 길을 가던 도중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무리들과 부딪히게 되고, 그 와중에 가면을 쓰고 얼굴을 가린 고수와 슬쩍 눈이 마주치게 된다. 이미 강호를 떠나기로 한 영호충은 무모한 결투는 피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한편 이제 거의 씨가 말라버린 묘족의 부하들을 이끌고 주막에서 불법 거주하면서 영호충을 기다리고 있던 임영영(관지림)은 갑작스레 닥친 일본낭인들의 습격에 의해 위기에 처하지만, 남봉황(원결영)의 활약으로 이를 저지한다. 하지만 더 이상 위험에 노출될 수 없음을 생각한 임영영은 영호충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모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 관지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임청하가 너무 쎘다>


 

일본낭인들이 이토록 판치고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 일월신교를 새롭게 장악한 뉴페이스 동방불패(임청하)가 일본 낭인들과 손을 잡고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 당시 세계 정세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해서 임진왜란을 겪고 있었던 시기로, 명나라는 무리하게 조선을 원조하고 있었던 것. 나라꼴이 이모양인지라 동방불패는 전국시대의 패자로 중국까지 흘러들어 온 일본낭인들과 함께 새로운 묘족의 세상을 만들 것을 야심차게 공약으로 내세운 인물. 이미 선대 교주인 임아행(임세관)을 내치고 그 자리를 뺏은 상태인지라, 임아행의 딸이자 차기 교주감이었던 임영영을 어떻게든 죽여야 했던 동방불패의 처지였다.


영호충은 임영영과 약속한 주막에 도착하지만 이미 주막은 폐허가 된 상태. 시체가 즐비했던 터라 임영영의 행방을 걱정하지만, 그 곳에서 바로 직전에 당도한 화산파의 사제들과 조우하게 된다. 모두들 강호를 떠나기로 결심한 화산파의 제자들. 하지만 이내 관군이 도착하고 이들은 더 이상 무모한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도망을 가게 된다. 도망을 가던 영호충은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들을 보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여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가 근처 저수지에서 혼자 자맥질하며 노닐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여성이 동방불패인지도 모르고 미모에 흠뻑 취해 접근한 영호충은 나름 남자랍시고 작업질을 한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사나이들(?) 인지라 술로서 서로를 교감하게 된다. 원래 남자였던 동방불패는 서서히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호충에게 끌리게 된다. 동방불패. 규화보전을 익힌 나머지 무공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지만, 외모는 서서히 여성의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규화보전이 남성성을 제거해야지만 터득할 수 있었던 무공이었던 것. 그러다보니 동방불패는 어느덧 마음마저 여성이 되어 저수지에서 우연히 만난 쾌남 영호충에게 살짝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영호충과 사제들은 일본 낭인과 마주치고 결투를 하게 되지만, 서로 강호의 검법을 구사하는 것을 알고 모두 강호인임을 알게 된다. 일본 낭인으로 변장했던 자객은 알고보니 임아행의 오른팔이었던 좌상 상문천(유순)이었던 것. 그렇게 해서 임영영의 행방을 알게 된 영호충은 일본 낭인 무리 속에 숨어있던 임영영과 조우하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버지는 사기꾼,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관계 복잡. 팔자 기구한 악령산>



임영영은 아버지인 임아행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몰래 일본 낭인의 무리 속으로 잠입해 있었던 상태. 상좌사로부터 동방불패에 대해 정보를 얻은 영호충은 자신이 직접 부딪혀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동방불패의 자택으로 칩임하는 영호충.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영호충이 동방불패의 얼굴을 몰랐던 것. 그러다보니 자택 안에 있던 동방불패를 보고 예전 저수지에서 본 그 미모의 여성으로 인식하여 급방긋 날려주시는 영호충. 이에 동방불패도 정체를 숨긴 채 영호충과 데이트를 즐긴다. 영호충은 아무 말도 못하는 동방불패를 끌려온 타국의 노예로 오해하고 구해주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데려나간다. 경공술로 즐기는 한 밤의 플라잉 데이트. 그리고 일본 낭인들의 무리 속에 껴서 술 먹고 노래 부르며 세상 만사 허무함을 읊조린다. 이에 삘받은 동방불패는 한편으로 자신의 야심에 회의를 품으며 영호충을 더욱 연민하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방불패의 측근 북부천군(이자웅)에 의해 데이트가 깨지고, 둘의 대결을 틈타 동방불패는 영호충의 비공을 찔러 기절시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동굴에 갇힌 영호충. 죄없는 쥐를 혹사시켜 얻어낸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건너방에 임아행이 있었던 것. 꾀를 내어 탈출에 성공한 영호충은 사지가 묶여 거의 폐인이 된 임아행을 구출하여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말라비틀어져 있었던 임아행은 사실 훼이크. 주특기 흡성대법을 이용해 타인의 정기를 쏙 빼먹은 임아행은 다시 원기를 찾아 영호충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는 임영영에게 당도한다. 동방불패를 처단할 것을 제1 목표로 내세운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제안하지만 이미 강호를 떠나기로 한 영호충은 이를 거절한다. 그러던 중 규화보전을 몰래 숨겨놓았던 임아행은 규화보전을 훔쳐보다가 영호충에게 딱 걸려 한 바탕 난리가 나고, 이 사건으로 임아행과 임영영 그리고 영호충은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






#4. 단순 무협 액션이 아닌 무협 철학 영화


아아… 스토리를 글로 옮기면서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무림의 결투 모습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음에 비탄을 느낀다. 이 부분은 실로 직접 보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요소. 어쨌거나 스토리를 놓고 보면 전작인 소오강호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임을 느낄 수 있다. 전작이 전형적인 무예 위주의 사건 전개였다면, 동방불패는 무림권법의 결투보다도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애절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오강호랑 분위기가 완전 딴 판이라고 볼 맨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서극이 추구하고자 했던 무협 로맨스였던 것이다. 김용의 원작 소설에서도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사랑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물론 동방불패가 규화보전 때문에 여성화가 되어 영호충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애절하지는 않다. 되려 소설에서는 동방불패가 완전 괴물딱지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보고 삘 받아 원작 소설 보면 중추신경이 테러당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방불패는 양면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야심에 불타오르고,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스스로 남성성을 제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한 편으로는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이 영호충을 사랑함에도 완벽한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없었던 한계가 있던 것처럼, 아무리 무림의 고수로서 천하를 지배한다 할지라도 그 한계가 있었음을 느끼고 있었을 지도. 그렇기에 영호충이 허무를 주제로 시를 읊을 적에 동방불패가 크게 깨달은 듯한 행동을 취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호충 또한 강호에 내놓으라 할 적수가 없을 정도의 무림의 고수이지만 그는 강호에서의 한계를 일찌감치 느끼고 강호를 떠나려 했던 인물. 영호충은 스스로 완벽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러한 자아의 틀로부터 탈출하고자 했지만, 동방불패는 완벽할 수 없음을 지각했음에도 스스로를 더더욱 완벽해지도록 채찍질하는 틀 안에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 둘의 차이였다. 그리고 영호충을 통해 뒤늦게 깨달음을 얻고 영호충과 함께 사랑의 여행을 떠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이 완벽한 여성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또한 불가능했을 터, 어쩌면 흑목야에서 동방불패는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동방불패의 내면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후속편인 <동방불패 2 풍운재기>가 될 터인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가 되면 리뷰를 하도록 하겠다.


<한 밤의 플라잉 데이트를 즐기는 영호충과 동방불패. 역시 사랑은 서로 잘 모를 때 해야 제맛이다>



어쨌든 영호충이 추구했던 강호 탈출은 니체의 니힐리즘처럼 단편적으로는 현세로부터의 이탈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호충이 동방불패와 함께 시를 읊조리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천하의 영웅이 되려는 야심을 떨칠 수 없어 강호에 뛰어든지도 어언 십 여년이 흘렸네. 헛되이 품었던 거창한 꿈 문득 돌아보니 일장춘몽이어라."


동방불패가 이 구절에 삘을 받아 자신도 뒤늦게 세상만사가 일장춘몽이 아닐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되는 듯 보인다. 어찌보면 작품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허무주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강호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영호충에게 임아행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받아치는 격이 된다. 


"강호? 누구든 원한이 있으면 그게 강호고, 인간이 강호다! 그런데 떠나겠다고?"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대단히 통렬하고 강력하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겠다고 해서 산 속에 들어가 시나 읊으며 띵까땡가 노는 것이 진정한 탈출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심신이 존재하는 모든 곳이 곧 현실이라는 의미이며, 결국 우리는 현실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니체가 추구한 초인의 삶과 무척 닮아 있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제창하면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즉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현실로부터 탈출하여 참된 자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이 의미를 잘못 받아들여 자살을 하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개념 자체를 바꿔야하는 것이 니체의 핵심이었다. 연민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육체이든 물질이든 무엇이든 간에. 신 조차도 인간이라는 우매한 존재에 연민을 품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음을 니체는 말하였다. 이를 뜻하는 "신은 죽었다"는 그의 말은 대단히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영호충은 심신의 측면에서 탈출을 꾀하였지만, 임아행은 그마저 부질없는 현실 속에서의 발버둥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보다 숭고한 차원에서 사고할 것을 제시한다. 물론 임아행의 의도는 철학적 성숙을 바랬던 것이 아니라 어차피 현실탈출이 불가능하니 그냥 나랑 손잡고 동방불패랑 싸우자 였지만, 영호충은 결론적으로 정신적 성숙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3대 메인 캐릭터의 공통점이라면 죄다 술고래라는 것>



#5. 동방불패로 대변되는 소수민족의 비애


동방불패가 선대 교주인 임아행을 내치면서까지 일월신교의 교주로 자리잡아 야심을 꿈꾸었던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딱히 그의 과거에 대해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임아행의 하는 꼬라지가 막무가내형 똥고집 독불장군 방식인 것을 보면 부교주였던 동방불패로서는 불만이 많았을 것은 당연지사. 


여기서 일월신교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의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중국은 대대로 한족에 의해 지배되어 온 사회이다 보니 일부 소수민족들은 대대로 오랑캐 또는 노예 취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중 묘족이 한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자신들만의 행동결사집단을 만든 것이 바로 일월신교이다. 그러므로 일월신교는 단순히 종교적인 집단의 의미를 떠나 묘족의 부흥을 위한 생존적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아행은 묘족의 부흥을 꿈꾸기는커녕 규화보전을 통해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듯하다. 이에 동방불패는 묘족의 부흥을 위해 임아행을 내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터이고, 그러기 위해 규화보전을 통해 힘을 얻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동방불패는 어쩌면 지금 중국사회에서 핍박 받고 있는 소수민족의 강렬한 바램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6. 애절한 러브라인으로 인기몰이


원작에서는 전혀 거론되지도 않는, 오로지 영화에서만 집중적으로 다뤄진 철학적인 논제를 떠나서 영화 자체의 내용에 대해 좀 더 주석을 달자면, 일단 동방불패의 내면과 비정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원작과 다소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동방불패가 극도의 미인으로 그려졌다는 부분도 있지만, 마지막에 동방불패가 흑목야에서 애절한 모습으로 추락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원작에서는 동방불패가 결국 확실하게 죽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벼랑 끝으로 떨어진 동방불패의 생사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했기에 속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만큼 속편은 아예 원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반드시 인지하시고 보시길. 


소오강호와 연계되는 포인트 중 주연배우가 바뀌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사실 감독이 동일하고 제작상의 공백도 2년 밖에 안 되는데, 주연이 죄다 바뀌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그만큼 감독의 의도 자체가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를 별개의 작품으로 보고 싶어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조연 중에는 그대로 동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있다. 상좌사와 남봉황은 두 편의 작품에서 동일 캐릭터를 소화했던 것. 그만큼 두 배우는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상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주연 배우가 바뀌었던 것은 동방불패의 입장에서는 큰 호재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래도 소오강호의 영호충을 맡은 허관걸은 코믹 영화 <최가박당> 시리즈를 통해 개그 캐릭터로 입지가 굳어진 인물. 그리고 임영영의 장민도 큰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었기에 그대로 장민이 했었다면 동방불패-영호충-임영영 3각 라인에 밸런스가 깨졌을 지도 모른다.



#7. 무협 영화계를 평정한 후덜덜한 캐스팅


이연걸이 다소 키가 작아서 안습이긴 하지만 원채 무술을 잘 하니 서극이 추구하고자 했던 경지 높은 무술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했기에 적절한 배역이라고 보여진다. 얼굴로 치면 조문탁이나 장국영이 더 어울렸을 법한 느낌도 들지만, 이연걸도 부족함 없이 연기를 소화해냈다.


<가느다란 실로 절세무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초특급 왕구라 액션>



동방불패 역의 임청하는 정말 대박 캐스팅. 솔직히 여장 남자의 역을 맡기려면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 이러한 이미지에 적합했던 여자 배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서극과 몇 개의 작품을 해보았던 임청하는 특유의 강렬한 눈빛과 매서운 눈썹, 그리고 야무진 턱선이 어찌보면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데, 그것이 서극에게 제대로 간파되었던 것. 그래서 서극 스스로도 커다란 모험이라고 했을 동방불패의 임청하 캐스팅은 그야말로 대박 중의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임청하 스스로도 여장 남자 연기는 연극 시절 빼고는 스크린으로는 처음이라고 했었는데, 어쨌든 정말 소스라칠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를 해주었다. 남자로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여자로서의 매혹적인 자태를 모두 표출해내어 당시 수많은 남정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 그런데 당시 임청하의 나이가 39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성 팬들이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는 사건은 유명하다. 


어쨌든 임청하는 동방불패를 계기로 아시아 최고의 여자 배우로 군림하게 되었고, 이후 <동방불패 2>를 비롯해 <녹정기 2>, <백발마녀전>, <동성서취> 등의 작품에서 주연 배우를 꿰차며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방불패의 여장남자 이미지가 너무 굳건하게 자리잡아 버려서 이후의 작품에서도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 덕분에 필자는 임청하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봤다는 사실. 필자가 고백하건데, 실은 동방불패로 분한 임청하를 보고 홀딱 반하여 이후 임청하의 동방불패스러운 연기에 모두 심취했었더랬다. 필자의 이상형이 다소 괴상하기는 하지만, 동방불패처럼, 혹은 백발마녀전의 연하상처럼 강인하면서도 내면에는 아픔을 지니고 있는 그런 여성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무림 5절급에 버금간다는 풍천양으로부터 전수받은 절세무공 독고구검>



동방불패 이후 두번 다시 동방불패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없다는 서극의 말 처럼, 동방불패는 이미 홍콩 무협영화에 있어서 절대 빠져서는 안될 불문율과도 같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단지 무협 액션이 화려하다고 해서, 임청하와 관지림이 예쁘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볼 영화만은 아닌 동방불패. 그 속에는 강호라고 불리우는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 사고와 행동이 깃들어있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초절정 대작인 것이다.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0) 2016.01.05
미러 마스크 (Mirror Mask)  (0) 2015.12.29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0) 2015.12.29
아바타 (Avatar)  (0) 2015.11.17
아이언 맨 2 (Iron Man 2)  (0) 2015.11.10
블로그 이미지

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