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葉問)

Movie 2016. 1. 7. 13:35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엽문 (葉問)


<앞문도, 뒷문도 아닌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1. 실전무술을 구사한 이소룡의 스승 - 영춘권 고수 엽문


요즘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하늘을 콕콕 찌르고 있다. 실제로 펀치와 킥이 오가고,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한방 떡실신의 매력을 선사하는 K-1이나 UFC, M-1 글로벌 등등 이종격투기를 베이스로 한 종합격투기가 이제는 가장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종격투기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킥복싱,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레슬링, 심지어 씨름까지 별의 별 무예가 다 등장하는데, 유독 쿵푸만큼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네 마음 속에는 쿵푸야말로 당할 자가 없는 초절정 필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황당하리만치 아름답고 절묘하며 치명적인 쿵푸였기에 정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역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쿵푸는 실전에서 약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에서 활용도가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쿵푸의 원래 취지는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심신의 단련이 아니었던가 쿵푸가 너무나도 형식적이어서 그 실용성에 심히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주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소룡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무술을 습득한 이소룡은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형식을 버린 미래지향적 혁신적 무술인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다. 비록 비운의 절명으로 널리 보급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확실히 절권도는 기존의 무술과 달리 상당히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바로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그의 사부의 철학이 있었으니, 무술에 있어 형식은 필요치 않다고 얘기한 영춘권의 고수 엽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은 바로 이소룡의 사부이자 영춘권의 초절정 고수이자, 일제시대 중국인들의 정신적 힘이 되었던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엽문>에 대해서 리뷰해 보고자 한다. 역시 오늘도 리뷰의 첫 순서로 스토리를 다듬어보고 가겠다.


<도저히 64년생이라 믿기지 않는 페이스를 자랑하는 견자단>



#2. 스토리 - 뒤늦게 각성하는 게으른 고수의 일대기


때는 1930년대. 중국의 불산 지역은 쿵푸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쿵푸가 번성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유명한 유파들이 모여 하나같이 쿵푸학원을 차려놓으니, 그야말로 강남의 학원가를 능가하는 과열경쟁의 양상을 띄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학원차릴 생각없이 매일 니나노하는 쿵푸의 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춘권 전수자인 엽문(견자단)이다. 


어느 날 새롭게 불산으로 학원 간판내러 온 료가권의 료 사부(진지휘)는 자신의 명성을 살리기 위해 엽문과 폐문결투를 치루기를 요청한다. 늘 마누라 등살에 무술과 거리를 두고 있던 엽문은 어쩔 수 없이 료 사부와 대결을 펼치고, 단 10합도 안되어 료 사부를 패대기 친다. 그런데 마침 나무에 걸린 연을 잡으러 온 사담원(황우남)이라는 청년이 그 장면을 보게 되고, 이후 자신의 형이 알바하는 식당에 가서 소문을 내고 만다. 이 소문을 들은 료 사부는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사담원을 해하려 들고, 사담원의 형인 무치림(석행우)은 평소 엽문을 사부로 불러왔던 터라 동생을 꾸짖는다. 마침 식당에는 엽문이 친구인 주청천(임달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터라, 사담원은 엽문에게 달려가 진실을 알려달라고 조르지만, 료 사부의 명예가 걸린 일인지라 대결은 없었다고 거짓을 전한다. 이에 무치림은 사담원을 꾸짖고 사담원은 크게 실망하며 그 길로 가출을 해버린다. 


어쨌든 무술이라면 치를 떨며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 때문에 편할 날이 없는 엽문. 그러던 어느 날 북쪽에서 왔다는 도장깨기의 달인 금산조(번소황)가 불산의 모든 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만다. 믿었던 료가권마저 깨지자 금산조는 불산도 별 것 없다고 우쭐해하지만, 진정한 고수인 엽문을 깨지 않고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로 인하여 금산조는 엽문을 찾아 간다. 그야말로 효도르와 크로캅의 대결을 능가하는 빅 이벤트라고 생각한 마을 주민들은 금산조를 따라 엽문의 집으로 향하고, 마을 경찰관이자 엽문의 팬인 리순(임가동)의 협조로 폐문대결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엽문의 마누라인 장영성(웅대림)의 바가지. 눈치를 보고 있는 엽문에게 금산조는 야유를 날리고, 이에 열받은 장영성은 엽문에게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한다. 단, 집안의 가재도구는 부서지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 


<료가권과 영춘권의 대결. 왼쪽의 료 사부 역을 맡은 진지휘는 '삼국지 용의부활'에서 장비 역을 맡았던 배우>



우쭐대는 금산조와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대결이 펼쳐지고, 금산조는 칼까지 빼들며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결국 엽문에게 죽도록 얻어터진다. 결국 싸움에서 패하고 망신을 당한 금산조는 영아치 부하들을 이끌고 불산을 떠나고, 이후 엽문은 불산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더불어 많은 주민들이 영춘권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고, 심지어 그의 베프인 주청천마저 자신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지만, 엽문은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도장운영은 금물로 여기고 버틴다. 


평화롭던 세월도 잠시.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고,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인 1940년대. 불산마저 초토화되고, 대대로 부유함을 자랑했던 엽문의 저택마저 일본군에게 빼앗겨 버리면서 엽문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만다. 바가지긁던 초절정 미인 마누라와 아직 철부지인 아들래미 하나만을 데리고 거리에서 비참한 삶을 보내게 된 엽문. 쌀이 없어 귀중품마저 탈탈 털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이제 한계. 결국 엽문은 쪽팔림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게 된다.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결국 어렵게 구한 일은 석탄나르기. 석탄공장에서 검은 연기 들여마시며 일을 하던 엽문은 한때 불산에서 이름을 날렸던 각 도장의 사부들이 모두 석탄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세월의 무성함과 무술의 무용함에 안타까워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 무치림과 조우하게 되고, 아직도 가출한 동생을 못 찾아 미안하다는 무치림과 함께 새로운 일을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이 석탄 공장에 들어닥치고, 무술을 좋아라 한다는 미우라 장군(이케우치 히로유키)의 지시로 무술 고수들을 초빙하여 가라데와 격투를 벌이는 이벤트를 벌이려는 일본군. 그런데 일본군의 통역을 맡은 이가 다름아닌 리순이었던 것. 그야말로 매국노의 모습이 아니던가. 아무튼 대련에서 이기면 쌀을 준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일본군을 따라 가고, 그 중에는 무치림이 섞여 있었다. 


<가라데가 세상 최강임을 내세우는 미우라. 일본 아해들은 전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미우라 장군은 가라데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 무술과 일본 가라데의 대결을 추진하고 있었고, 무술의 명고장이라는 불산에서 특별히 고수들을 찾아내어 자신이 직접 박살내고 싶어했던 것. 무치림이 와보니 이미 료가권의 료 사부가 일본군들과 1:1 가라데 대결을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하면서 쌀을 타가고 있었다. 이에 혹한 무치림은 쌀과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결에 나서고, 미우라 장군은 몸이라도 풀기 위해 특별히 1:3 대결을 지시한다. 무치림과 2명의 도장 사범이 미우라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미우라는 엄청난 가라데 실력으로 이 세 명을 떡실신 시킨다. 하지만 자존심이 대단한 무치림은 절대 질 수 없다며 끝까지 개기고, 결국 열받은 미우라는 무치림을 영원히 잠재운다. 


한편 새로운 일 때문에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던 엽문은 마침 불산으로 돌아온 친구 주청천이 과거 자신이 꿔 준 돈으로 목화공장을 차렸다는 말에 반가워 간만에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두 사람. 하지만 다음날부터 무치림이 안보이게 되자 엽문은 수상하다 싶어 리순을 따라 대결현장으로 따라가고, 그 곳에서 일본군 3명과 1:3 대결을 펼치던 료 사부가 항복을 하자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우라 장군은 무도인의 예를 운운하며 갑자기 총을 쏜 자신의 부하를 탓하지만, 이미 물건너간 시츄에이션. 평소 어떠한 일에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엽문은 비로소 분노를 느끼고, 료 사부의 죽음과, 무치림의 죽음과, 그리고 중국인의 무너진 자존심으로 인하여 초샤이어인으로 변신! 미우라에게 10대 1 대결을 요청한다. 


일본군 10명과 싸우게 된 엽문. 하지만 10명이 단 한번도 엽문을 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묵사발 되고 만다. 이에 놀라는 미우라 장군. 엽문은 포상으로 준 10개의 쌀은 받지 않은 채 료 사부의 피가 묻은 쌀 한 포대와 자신이 간직했던 고구마 반쪼가리만을 든 채 그렇게 자리를 떠난다. 


<전설로 남아 있는 가라데 고수들과의 1:10 대결 장면>



한편 친구 주청천이 운영하는 목화 공장에는 때아닌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바로 엽문에게 된통 당했던 금산조가 산적이 되어 목화공장을 습격한 것. 주청천은 금산조에게 얻어터지고 다음 번에는 돈을 꼭 준비하라는 협박을 듣는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엽문은 주청천과 공장인부들의 요청으로 비로소 처음 사람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하기에 이른다. 


대결 이후 소식이 끊긴 엽문을 찾기 위해 미우라 장군은 리순을 족쳐서 엽문의 행적을 캐고, 리순은 거짓 보고를 하면서 엽문을 계속 감싸준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일본군이 엽문의 집에 쳐들어오고 아들과 아내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한 엽문은 일본군 장교를 때려눕히고 그 길로 리순의 도움을 받아 리순의 집으로 숨어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숨바꼭질 삶을 살며 목화공장 인부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해준 엽문. 그리고 금산조가 다시 찾아왔을 때 공장인부들은 영춘권을 내세우며 금산조 일당과 한판 패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금산조도 워낙 깡다구가 있었던 인물. 전세가 밀리자 엽문이 나타나고, 엽문은 또다시 금산조를 피박살내고 그를 쫓아낸다. 그런데 금산조의 산적 무리에 무치림의 동생인 사담원이 있었던 것. 엽문은 사담원에게 죽은 형의 유품을 건네주고, 이에 사담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한편 목화공장 사건이 일본군에게 알려지자 일본군은 엽문을 찾기 위해 공장으로 들이닥치고, 엽문은 스스로 나서 일본군에게 연행된다. 그리고 미우라 장군은 엽문에게 일본군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지만, 자랑스런 중국인임을 내세우며 거절하는 엽문. 그리고 엽문은 복수를 위해 미우라와 1:1 대결을 요청한다. 







<물 흐르듯 한 편의 감동의 서사시를 눈으로 보는 듯한 영춘권>



#3. 동시대를 평정한 4명의 고수 - 엽문, 곽원갑, 황비홍, 이서문


엽문의 스토리는 기존에 개봉되었던 모 영화가 심히 비슷한 구조와 주제의식을 따라가고 있다. 눈치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로 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 되겠다. 재미있게도 둘 모두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고, 또한 무술의 고수였다는 점, 그리고 일제시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더더욱이 일본군과 무술 대련을 통해 중국 무술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는 점 등 엄청나게 많은 유사점이 있다. 


사실 곽원갑과 엽문을 놓고 얘기를 하자면 너무나도 많은 얘기거리가 있다. 이공…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난감하다. 먼저 곽원갑과 엽문,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전설적인 무술 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곽원갑은 최근 영화를 통해서 알려졌듯이 1868년~1910년에 살다간 인물로, 중국의 유명한 도장 ‘정무문’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여러 무술들을 종합하여 곽가권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중국 개화기 당시 무술을 통해 부국강병과 심신을 달랠 것을 주창하였다. 하지만 1910년 갑작스레 사망하였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죽음은 독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에서 그 죽음을 일본의 소행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중국의 무술 대결에서 너무나도 압승을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독을 타 곽원갑을 죽였다는 설정이다. 아무튼 향년 42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죽은 무술의 달인 곽원갑. 


이에 비해 엽문은 비숫했던 처지에도 불구하고 꽤 평탄하게 살았다. 1893년~1972년으로 다른 3명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존재하였던 엽문은, 영화에서와 같이 일제침략 이후 무술로 부국강병 할 것을 깨닫고 홍콩으로 망명하여 뒤늦게 영춘권을 보급시킨 인물이다. 살아생전 조용하고 차분하게 살았다는 엽문은, 그래서 그런지 인상이 참으로 단아하고 푸근해 보인다. 지금은 아들인 엽준이 영춘권을 전수하고 있으며, 13세였던 이소룡을 제자로 받고난 후,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부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제 두 명이 남았는데, 먼저 가장 유명한 사람부터 얘기해보자. 바로 황비홍 되겠다. 아주 지긋지긋하게 시리즈가 나오는 황비홍. 설마 이 사람도 실존 인물이야? 하고 놀랬다면 중국 역사에 관한 지식에 대해 한번쯤 반성해 보시길. 어쨌든 황비홍은 1847년~1924년에 존재했던 인물로, 영화에서처럼 변발을 주 스타일로 하고 ‘보지림’이라는 의원을 운영하면서 무술마저 초절정에 오른 고수이다. 황비홍은 방세옥의 3대 제자로 불리우며, 불산 출신으로 나중에는 광주에서 무술로 이름을 떨쳐 도장도 내고, 의원을 차려 약자들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황비홍은 대대로 황씨가문의 가권인 홍가권을 전수받았고, 이 외에도 철산권과 무영각 등을 전수받아 당시 광주 최고의 고수로 군림하였다. 특히 당시 외세의 세력에 항거하여 조정을 수복하고 한족의 부흥을 내세웠던 진가락의 천지회에 가입하여 천지회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홍가권을 보급하여, 홍가권을 천지회의 대표 무술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이바지 하기도 하였다. 이후 황비홍은 화재로 인해 의원이 무너지고, 큰 아들마저 사업 실패로 망하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살아 생전의 엽문의 모습. 도무지 견자단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1인. 위의 세 명은 영화로라도 만들어졌기에 들어는 봤겠지만, 나머지 한 명은 대체 누구일까? 바로 전설적인 인물 이서문이다. 1864년~1934년에 존재했다는 이서문은 다른 세 명과는 달리, 그야말로 극의에 오른 실전무술을 구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팔극권과 창으로 유명한 이서문은 다소 괴팍하고 외골수적인 성격 탓에 영웅 대접은 못 받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초부터 무술을 배움에 있어 인의예지나 심신의 단련 등은 마음에 없었고, 오로지 상대를 한 방에 무찌르는 극의의 기술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의, 타의적으로 많은 이들을 해쳤다고 하며,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도 독살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타인에게 원한을 많이 사고 다녔을 법한 다크포스를 뽐내고 다녔다지만, 이서진은 단 1합에 상대를 죽일 정도로 강력한 무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단 1합에 상대의 7개의 구멍에서 피를 뿜고 죽게 하였다는 ‘칠공분혈’의 에피소드는 전설 중의 전설로 남아있다. 


왜 갑자기 위의 4명의 절대 고수를 거론하는가 싶겠지만, 재미있게도 모두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 4명이 과연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을까? 현재로서는 사료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만나서 대결을 했었다면 서로 치명상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료로만 놓고 볼 때 가장 강한 자는 이서문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격동기에 살았던 4명의 전설의 고수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지냈을까? 명성이 전 중국으로 퍼졌기 때문에 서로를 인지하고는 있었겠지만, 과연 실제로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필자의 지식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다. 



#4. 이소룡을 용으로 만든 장본인


곽원갑과 엽문의 관계는 단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것 빼고도 다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바로 불운의 액션 스타 이소룡이다. 이소룡이 이미 엽문을 스승으로 두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곽원갑은 어떤 관계일까가 궁금해진다. 사실 이소룡과 곽원갑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이소룡이 살아 있을 때 곽원갑은 이미 고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룡을 최고의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해준 작품인 <정무문>에서 그는 곽원갑과 관계를 맺는다. 바로, 정무문의 수제자인 이소룡이 자신의 스승인 곽원갑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 어쩌면 자신의 실제 스승이었던 엽문과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곽원갑의 삶에 이소룡은 애착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5. 본래 여자를 위해 창시된 영춘권 


기왕 무술의 족보 따지는 얘기 비스무리하게 나와서 추가로 또 얘기하자면, 엽문의 필살기인 영춘권에 대해 알고 넘어가고자 한다. 영춘권은 발음상으로는 상당히 추리~한데, 이는 그 기원이 바로 추리~한 여자의 이름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미 양자경이 주연한 <영춘권>이라는 작품이 존재하는데,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엄영춘이라는 여자가 바로 영춘권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자가 창시한 최초의 권법이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청나라 시대에 존재했다는 엄영춘은 특유의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여성에 적합한 무술을 개발하여 이를 영춘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의 남편인 양박주에 의해 널리 전파되어 여러 대를 걸쳐 전수된 영춘권은 엽문을 계기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되고, 이후 이소룡 또한 영춘권을 베이스로 절권도를 창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존하는 영춘권의 제자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영웅본색>의 대머리 사나이 ‘송자호’역을 맡은 적룡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게도, <영춘권>에서 견자단이 남편인 양박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견자단과 영춘권의 묘한 인연이지 않은가? 


<영춘권의 시조라 불리우는 엄영춘의 수련 모습>



#6. 더 이상 구라 액션은 없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와서 얘기를 하자면, 일단 최근에 시들해진 무술 영화에 새로운 시도였다는 것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자 가치이다. 과거 황비홍 식의 초절정 구라 액션을 선보이면서 인기를 끌던 무술영화들이 더 이상은 씨도 안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K-1이나 UFC같은 실전 이종 격투기에 눈높이가 맞추어진 관객들에게 더 이상 구라 액션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보다 사실적이고 타격감있는 액션이 필요해졌고, 그 중심에 바로 견자단이 있었다. 


37단의 종합 무술인 견자단의 리얼한 액션과, 실전을 방불케하는 타격감 넘치는 격투신은 가식을 벗어던지고 관객 앞에 섰다. 특히 와이어 없이 펼친 견자단의 리얼 액션은 중국 무술의 신비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로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 일찌감치 성룡이 와이어 없이 정말 몸을 던지는 리얼 액션을 펼쳤지만, 성룡의 무술은 약간 코믹스러워서 흔히 무술다운 무술 액션을 평하기에는 성룡의 연기는 다소 형식이 없었더랬다. 하지만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아무래도 가짜라는 게 티가 나는 것이 액션연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견자단이 영춘권의 필살기인 연타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그 타격감이나 리얼함에서 정말 압권이다. 견자단이 이러한 실전 영춘권을 익히기 위해 엽문의 아들이자 영춘권의 전수자인 엽준으로부터 9개월간 필사적으로 영춘권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의 액션은 기존의 무술영화의 가식을 벗어 던졌다는 점에서 실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실존 인물의 영웅담을 솔직 담백하게 묘사한 것도 재미있다. 황비홍의 경우는 너무 방정맞게 그려진 느낌이 강하고, 곽원갑의 경우는 너무 무게를 잡았더랬다. 하지만 엽문은 때로는 비장하면서도 때로는 재치있게 그려져서 정말 사람다운 맛이 난다. 일례로 엽문이 그토록 무술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눈치보며 사는 모습은 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하는 안타까운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일제의 점령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거의 굶다시피 사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는 부랑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통 영웅이라 하면 약점은 가리고 최대한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성이 아니던가. 하지만 적어도 엽문에 대해서 만큼은 그러한 가식을 그나마 벗어 던졌다고 볼 수 있겠다. 



#7. 견자단이 보여준 프로페셔널 정신


견자단은 엽문의 배역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춘권도 열심히 전수받았다지만 수시로 엽문의 행적을 되밟으며 그의 인생을 이해하려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엽문이 실제 쓰던 찻잔을 이용해 차를 마시며 엽문처럼 말하고 엽문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 엽문을 보면 인상은 편안한 옆집 아저씨 스타일인데, 몸매가 상당히 한민관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견자단도 10kg 이상을 감량하면서 최대한 말라비틀어지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투혼이 있었기에 기존의 견자단의 연기력 제로에 대한 불안을 싹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데뷔작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웅대림. 기대가 크다>



견자단에 대해서 살짝 얘기해 보자면, 그는 어렸을 적부터 무술 고수였던 어머니 밑에서 무술을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각종 문파의 무술을 모두 섭렵하고, 총 37단의 종합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청년시절 각종 무술대회에서 모두 우승이라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무술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최초의 예능인이 바로 견자단 되겠다. 그 이후로 얼굴 좀 되고 실력 좀 뛰어난 무술인들이 견자단의 뒤를 이어 예능에 뛰어들었는데, 조문탁이 그 대표적인 후발 주자 되겠다. 


아무튼 견자단은 여러 무술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무술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연기력이 딸려서 주연은 늘 놓치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그가 택한 길은 바로 무술감독. 이후 여러 메가톤급 작품에서 무술감독으로서 완성도 높은 무술 액션을 지도하였고, 특히 구라식 액션을 벗어던지고 실전 액션을 강조하면서 무술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그는 헐리우드에서도 초특급 무술감독으로 초빙받아 작품에 참여하였고, <블레이드 2>에서는 무술감독 겸 배우로 직접 출연하는 이력을 남기기도 한다. 


견자단은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장편 짱개 드라마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했던 진진 역을 맡아서 국내 안방 극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사실 견자단은 이소룡의 엄청난 팬이었기 때문에, 그 역에 지대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센세이션이 적었는지, 큰 인기는 끌지 못한 채 몇몇 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장예모 감독의 대작 <영웅>에서 은모장천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연기력을 절정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제서야 무술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내공 좀 되는 무술연기인이 되었다. 


<목각인형은 영춘권의 트레이드 마크이다.이소룡도 실제로 저것을 애용했다>



#8. 앞날이 기대되는 출연진과 제작진


견자단 말고도 놀라운 배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엽문의 아내 장영성 역을 맡은 초절정 미모의 웅대림. 보면 알겠지만 견자단보다도 키가 크다. 실제로 두 부부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견자단이 키가 작다고는 해도 이토록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체격 조건이라니. 워낙 절제된 연기만 선보여서 그런지 아직 연기력에 대한 검증은 안 되는 편이지만, 놀랍게도 웅대림은 이번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기자인 만큼 차기 작품도 기대가 매우 된다. 


엽위신 감독이 전체적으로 액션과 연출, 그리고 드라마를 훌륭하게 조율하여 완성도 높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도 <공각기동대> OST 등으로 유명한 가와이 겐지가 맡아 장엄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근래들어 이 정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무술 영화가 없었기에, 엽문은 무술 영화 부흥의 새로운 선구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엽문과 이소룡의 커플 사진. 그런데 엽문의 저 짝발은 뭥미?>



국내에서도 리얼 액션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뛰어난 작품성,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는 민족정신이 반영되어서 그런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엽문. 하지만 최근 홍콩으로 망명한 이후의 에피소드를 다룬 <엽문 2>를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문득 제 2의 황비홍 시리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중국 아해들은 딱 좋겠다 싶은 시점에서 꼭 한번 더 오바하는 습성이 있는데, 엽문도 제발 더 이상 무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은 고인이 된 엽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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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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