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

Movie 2016. 4. 1. 16:10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11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2012 (2012)



#1. 심심하면 튀어 나오는 뜨거운 감자, 지구의 종말


예부터 지구의 종말은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신화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지구의 종말은 우리네 삶과 결코 먼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왔다. 고대의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던지 간에,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구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어왔고, 그것은 당시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을 순식간에 멸종시킬 정도의 가공할만한 변화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서인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인류도 언젠가는 떼죽음을 당하겠거니 하고 본능적으로 느껴왔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언젠가는 들어맞을 수 밖에 없는 어거지식 예언을 뿌렸던 바, 그것이 바로 인류의 종말이었다.


<힘들게 산 꼭대기에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스님의 슬픈 뒷모습이 압권>



20세기 말에는 세기말적 현상때문인지 종말에 대한 이슈가 시끄러웠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의 시기가 마침 도래했던 것이다. 게다가 종교계에서도 휴거가 올 것이라는 말이 성행하면서 집단자살 유행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별 일 없다는 듯이 살아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종말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는 매스컴까지 아주 대놓고 떠들어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종말론계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급 매니아인 한 사나이가 종말을 시각화한 또 한편의 자신의 작품을 내놓게 된다. 바로 영화 <2012>이다. 숫자로 제목을 써서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고 의문을 품는 분들을 위해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주구장창 읊어나가겠다.


<지구 최후의 시각을 잘못 예측하여 나름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애드리언 박사>



#2. 스토리 -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인간의 종족보존능력


때는 2009년. 지질학계의 유망주 애드리언 헬슬리(치웨텔 에지오포) 박사는 동료의 부름을 받고 인도의 한 지역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는 지구의 내부운동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되었다는 것. 바로 최근에 심각해진 태양의 대폭발로 인해 중성미자가 다량으로 지구로 뻗쳐오면서 지구 내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본능적으로 지구가 곧 과열해서 폭발하고 말겠구나 하고 감 잡는 애드리언. 애드리언은 즉시 미국으로 돌아와 환경부장관인 앤하우저(올리버 플랫)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에 지구의 위기가 대통령(대니 글로버)에게까지 보고되고, 세계의 수장들은 그 이후 지구의 종말이 될지도 모를 이 사실을 비밀리에 대응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12년. 최근들어 지진이 심해진 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소설작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이혼한 후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선다. 얼떨결에 링컨 리무진을 끌고 가서 아이들과 자연 탐방을 하게 된 잭슨. 잭슨은 자신의 딸 릴리(모갠 릴리)와 아들 노아(리아 제임스)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외부통제가 되어있는 것. 그래도 배째라 마인드로 기어이 쳐들어가는 세 사람은, 예전에 호수였던 곳이 홀라당 말라버린 비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치는 군인들. 졸지에 군인들에게 잡혀간 잭슨과 아이들은, 마침 그곳을 담당하고 있던 애드리언 박사와 만나게 된다. 애드리언 박사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지구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에 구축된 비밀기지에 앤하우저 장관의 명으로 급파되었던 터였다. 애드리언 박사는 마침 잭슨을 알아보고 자신이 잭슨의 저서의 애독자라고 소개하면서 급친한척 한다. 이 때문에 아무 탈 없이 풀려나게 되는 잭슨.


<통제구역 강제침입이라는 강수를 두었다가 결국 팔자 피게되는 잭슨>



그런데 공원을 나서자마자 이번에는 웬 미치광이 히피족이 달려들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는다. 잭슨은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그 미치광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겔겔대면서 사라진다. 


그날 밤, 공원 근처에서 야영을 하던 잭슨과 자식들은,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어색한 가족분위기를 풀지 못한 채 어색함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잭슨은 그 소리를 따라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낮에 보았던 미치광이 남자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용을 들어보니, 잭슨이 줄곧 들어왔던 찰리 프로스트(우디 해럴슨)라는 라디오 방송가가 바로 그 미치광이였음을 알게 된다. 찰리는 이제 지구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면서 그 모든 사실을 정부가 숨기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사나이였던 것. 평소 찰리의 애청자였던 잭슨은 이내 아는 척 하고, 찰리는 잭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부의 음모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지구는 곧 종말할 것이고, 정부는 이미 종말에 대비해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이에 잭슨은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떠나버린다. 


한편 캘리포니아에서는 잭슨의 전 부인인 케이트(아만다 피트)가 새 남편 고든(톰 맥카시)과 장 보러 나왔다가 땅이 갈라지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케이트는 급하게 아이들을 부르고, 잭슨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서 컴백 홈한다.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그저 몸 하나만 달고 도망가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미스테리>



다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잭슨은 부업으로 하고 있던 운전기사 알바를 뛰기 위해 또다시 출동한다. 유리 카보프(즐라고 뷰리치)라고 불리우는 러시아 대부호의 운전기사로 고용되어 그의 두 쌍둥이 아들들을 집으로 보내주는 역할이었던 것. 그런데 평소 싸가지없기로 유명한 두 아이때문에 진절머리가 났던 잭슨은 아이들을 집이 아닌 공항으로 데려다주고는 이제 일을 때려칠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 때 비행기에 오르던 쌍둥이 중 하나가 “너희들은 곧 죽을꺼야.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멀리 날아갈거니까”라고 잭슨에게 말한다. 이에 잭슨은 갑자기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 얘기를 상기하며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계속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여론 흘리기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태를 직감한 잭슨은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었고, 무언가 곧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믿은 잭슨은 급하게 케이트에게 전화해 빨리 도망갈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하여간 타이밍도 기가 막혀서 땅이 갈라지고 집이 폭삭 무너지기 직전에 케이트와 아이들, 그리고 사이 안 좋은 고든까지 구출하게 된 잭슨. 링컨 리무진으로 웨딩카가 아닌 구출목적으로 활용하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캘리포니아 지대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그러다가 더 이상 땅에 붙어있다가는 살 가망이 없다고 보고 공항으로 달려가 미리 마련한 작은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무너져 내리는 활주로를 겨우 이륙하여 목숨을 건진다. 


한편 지구가 본격적으로 지각변동의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비밀 플랜을 가동하고, 비밀리에 구축한 비밀기지로 우주선 탑승 대상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신호한다. 대부분이 10억 유로라는 거금을 지불한 대부호였던지라, 그 중에는 유리도 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비밀기지로 향한다.


<결국 날고 기는... 아니 나는 놈들만 살아남게 되는 시츄에이션>



어쨌든 겨우 목숨을 건져 비행기로 연명하고 있던 잭슨 일행은,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을 타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가서 장소를 확인하려고 한다. 옐로우스톤에 다시 도착하지만, 그의 트럭에는 라디오 방송만 나올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죽기살기로 찾아본 결과 찰리는 어느새 옐로우스톤 산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지구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화산폭발까지 일으키는 옐로우스톤. 그 광경에 취한 찰리는 그대로 죽기를 바란다며 살기를 거부하고, 우주선의 위치를 알리는 지도는 알아서 찾으라고 한다. 


일단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산재와 불덩어리를 피해 살아야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죽기살기로 또 도망치는 잭슨. 겨우겨우 지도까지 얻어서 비행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옐로우스톤을 탈출한다. 그런데 이게 웬 병 주고 약 주기? 지도를 보니 우주선의 위치가 중국이었던 것. 경비행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판국인지라 잭슨은 더 큰 비행기가 필요하다며 인근 공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공항에는 유리가 비행기가 없다고 못 가고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 마침 몰려오는 옐로우스톤 화산폭발의 후폭풍 때문에 어떻게든 탈출이 시급했던 일행들은, 유리의 충실한 조수 사샤가 급히 마련한 러시아제 대형 수송기를 구해서 일단 죽기살기로 또 도망친다. 결국 사샤와 고든의 콤비플레이로 겨우겨우 무너지는 땅덩어리를 뒤로 하고 살게 된 일행들.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탈출극이 벌어진다. 리무진이 슈퍼카로 돌변하는 그 장면!!!>



식구가 늘어난 잭슨 일행은 이제 수송기에서 안심을 하며 중국까지 갈 것을 꿈꾼다. 그런데 문제는 연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 그래서 중간에 하와이에도 들려보려고 하지만 이미 하와이도 쑥대밭이 되어있던 터라, 그야말로 이제는 갈 데까지 가서 바다에 비상착륙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제 워싱톤도 무사하지 않게 되자 대통령은 자신의 딸 로라(탠디 뉴튼)에게 지구 종말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종말에 대해 알고 있던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비밀리에 살해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를 알게 된 애드리언은 일반 시민들도 알 권리가 있다면서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낸다. 이에 삘받은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을 결심하고, 유일한 탈출구였던 에어포스원에 자기 대신 자신의 딸과 애드리언을 태운 뒤 쓰나미에 무너지는 워싱톤과 함께 장렬히 희생한다.


위기의 순간을 함께 넘기며 이제 어느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잭슨과 가족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 첫 번째로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것. 원래 중국까지 가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질 예정이었으나.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 중국대륙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면서 다행히 비행기가 중국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결국 히말라야 고원지대의 어느 지역에 불시착해야 하는 일행들은, 수송기 안에 있던 유리의 수집품 중 가장 튼튼하다는 벤틀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비행기에서 떨어져나와 무사히 착륙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기수를 놓지 않았던 미남 조수 사샤는 결국 비행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되고 만다.


<등에 업은잭슨의 딸이 마치 외계인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고원지대에서 발이 묶인 일행은 때마침 지나가던 중국군의 헬기에 발견되어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들은 우주선의 티켓만 가지고 있는 유리와 그의 아들들만 태운 채 버리고 떠나간다. 졸지에 제대로 버림받게 된 일행들. 결국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어디로든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운이 억수로 좋았는지, 마침 자신의 가족들을 태우고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티벳 승려 니마(오스릭 차우)를 만나 그들과 함께 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들만 몰래 우주선에 태우려던 니마의 형 텐진(친 한)은 잭슨 일행을 거부하고, 니마의 어머니의 설득에 못 이겨 겨우 잭슨 일행까지 태우기로 한다.






<멜 깁슨과형사 노릇하다가 어느새 대통령까지 해먹는 대니 글로버>



#3. 종말, 그거 과연 일어나기는 하는 겁니까?


앗…생각보다 스토리가 길었다.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지구가 어떻게 박살나는가가 전부인데, 워낙 긴 런닝타임(150분)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작품의 요지는 결국 인류가 지구의 환경변화로 인해 멸종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아서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모티브가 지구의 종말론이었던 만큼, 종말론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가자. 이 작품의 제목이 2012인 것은 2012년에 지구가 종말한다는 모종의 이론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고대 잉카문명의 마야 인들이 만들었다는 마야 달력. 마야 달력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일 정도로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이 달력은 5128년을 주기로 계속 돌아가게끔 만든 매우 장시간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달력이다. 그런데 이 달력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2012년 12월 21일(혹은 23일)까지만 달력이 계산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찬란만 문명과 고도의 천문학,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마야인들이 왜 달력을 2012년까지만 나타내도록 만들었을까? 그 달력에는 2012년 이후에는 더 이상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써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그 이후의 날짜를 셀 달력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2012년 종말론이 급 대두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또 하나의 사실이 2012년 종말론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현대의 인류가 만든 최고의 예측기계인 웹봇.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로 개발된 웹봇은 지구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계이다. 그런데 이 로봇이 2012년 이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웹봇이 그 이후의 지구는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러한 것들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객관적 사실만을 고집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지구의 종말은 아직 먼 미래라고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자연파괴가 심각하고 기후의 변동 등이 급속도로 진행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인류가 살만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특히 환경이 나빠지는 만큼, 인류도 서서히 이를 극복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도 많다. 어떤 이들은 지구의 환경오염은 오히려 세계의 음모라는 요상한 말까지 하고 있을 지경이다. 


<극적인 것은 좋은데, 너무 허무맹랑할 정도로 위기 속에서 잘도 탈출한다>



어쨌거나, 실제로 멸망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지켜봐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흥미롭게도 종말론에 대해서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교가 바로 크리스트교인데, 필자는 종교인이 아닌지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쨌든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선한 자는 구원받고 악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주 유명하다. 반면 불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종말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일어나므로 신앙심을 돈독히 하라는 주장도 없다. 그저 탄생과 멸망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 우주상에 단 한 개의 종교가 아닌 이상은 각각 다른 종말론에 대한 얘기는 어느 하나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모든 종교에 중립적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4. 인류를 말살시키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감독


자, 어쨌든 종말이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주 굿 타이밍과 굿 네이밍 센스로 만들어진 것인데, 대체 누가 이런 신선한 감각을 소유했던 것일까? 바로 감독 롤랜드 애머리히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투모로우>이다. 투모로우를 본 독자라면 어딘가 모르게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구의 멸망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감독한 다른 작품에서도 묘하게 인류가 시련을 겪는 고통을 선사한다. 그것도 가족적인 차원이 아니라, 전 인류에 가까운 아주 대규모적인 위기이다. 이것이 바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을 '재난 영화의 황태자'로 평가받게 한 주요 요인이다. 


<하여간 모든 영화에서 개념없는 애완동물 때문에 여럿 다치는 꼴이 생긴다>



이 감독은 정말 묘하게도 지구를 어떻게든 말아먹어야 재미가 느껴지는가 보다. 일단 만드는 작품마다 버라이어티하게 지구를 들들 볶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1992년작 <유니버셜 솔져>에서는 장 끌로드 반담의 화끈한 액션을 볼 수 있었고, 1994년작 <스타게이트>에서는 센세이션에 가까울 정도로 피라미드에 대한 색다른 개념을 선사하면서 SF적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일을 터뜨리는데, 그것이 바로 1996년작 <인디펜던스 데이>. 이 작품에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은 그의 주특기로 불리우는 '스케일'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거대하고, 일단 인정사정없이 박살내고, 일단 닥치는대로 죽인다. 이 작품으로 그는 단번에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고, 이후 또 하나의 SF 대작을 선보이게 된다. 1998년작 <고질라>가 그것인데, 엄청난 투자와 대규모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나름 슬픈 사연이 있는 고질라를 완전 악덕 공룡으로 만들어버린 탓에 이 영화는 의외로 졸작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졸작으로 평가받아도, 2년마다 꾸준히 대작을 선보이는 그답게, 또다시 2000년에는 멜 깁슨이 게릴라로 활약한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를 선보여 정통역사극에도 솜씨를 발휘했고, 그런가하면 2002년에는 <프릭스>를 통해 거대 독거미로 인류를 위협하는 엉뚱한 SF 호러도 만들었더랬다. 


이 때부터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대작 아니면 졸작뿐인 극단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프릭스>로 쫄딱 망한 롤랜드 애머리히는 이후 모든 사람들의 기대 속에 2004년 <투모로우>를 개봉한다. 이 작품은 롤랜드를 다시 대작 감독으로 부상시키는 한편, 재난영화에 있어 가장 충격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감독으로서 인정받게 하였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또 하나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인 <10,000BC>를 개봉하기에 이르는데, 문제는 이 작품이 엄청난 사전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봉 후 발작(일명 발로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롤랜드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다. 


여기서 롤랜드는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는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스펙터클한 재난 영화야말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왔다는 것. 그래서 드디어 이번에 또 하나의 재난영화로 투모로우를 능가하는 엄청난 스케일과 비주얼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제는 거대한 스케일로 부족한 스토리를 메우는 감독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또한 독일 출신으로서 SF적 연출에 뛰어난 감각을 선보여서 그런지 '독일의 스필버그'라는 호칭을 듣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판국에 작업질에 몰두하는 애드리언과 로라>



#5. 지구 멸망에 어울리는 후덜덜한 캐스팅


자, 이 영화가 그럼 과연 롤랜드 감독의 명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졸작이 될 수 있을까? 한번 따져보자.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도 좋고, 투입액도 어마어마하고, 더욱이 쟁쟁한 주연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연기력을 극대화한 것도 훌륭하게 보인다. 특히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존 쿠삭 아저씨는, 아주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실력을 인정받은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이 작품에서도 물불 안 가리는 연기 투혼을 보여주고 있는데, 존 쿠삭 본인의 말로는 역대 배역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리쎌 웨폰>, <쏘우> 등으로 잔뼈가 굵직한 대니 글로버가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여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를 풍기면서 나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고,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전혀 안 어울리지만 탐 크루즈와 러브라인을 구성했던 흑인 여배우 탠디 뉴튼이 대통령의 딸 로라 역을 하였다. 인정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배불뚝이 앤하우저 장관 역에는 올리버 플랫이 활약하였는데, 이 배우는 필자가 아주 오래 전에 <삼총사>라는 영화에서 프로토스로 등장하여 낯이 익은 배우이다. 올리버는 그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감칠맛나는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였는데, 희한하게도 미국 출신인데도 꼭 이탈리아나 러시아 출신 마피아 등의 역할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필자가 여기서 부각시키고 싶은 배우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찰리 프로스트라는 11차원 사나이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 처음에 영화를 보고 누구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대머리가 인상적이었던 그 우디 해럴슨이 아니던가! 이 친구 요새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에 본 <내츄럴 본 킬러>라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문제작에서 정말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여 적잖이 놀랬더랬다. 제목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쾌락을 위한 유일한 취미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미치광이 엽기 잔혹 살인자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정말 그때는 저 배우가 마약이라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더랬다. 아무튼 이 배우가 다시 이 작품에서 지구의 종말에 쾌락을 느끼는 미치광이로 나온다는 점에서 무언가 묘한 옛 추억을 느꼈다.


<어쩌다 이제 얼굴까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묘한 배역만 맡게 된 우디 해럴슨(오른쪽)>



#6.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보다 획기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자, 이정도의 캐스팅이면 언뜻 보아서는 작품이 대작!이겠거니 싶다. 그런데 늘 롤랜드 감독을 괴롭히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형편없는 스토리. 이 작품의 스토리를 보고 느낀 부분은 어떤가? 사실 전체적으로 쭉 보면 답이 뻔히 나오는 스토리 구조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우주선 얘기를 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처럼 수십만 명의 인류를 태운 거대 우주선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우주로 나가는가 하고 기대하기도 하였지만, 나름 반전이라고 준비한 장치가 사실 설마 그거겠어? 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힌트는 영화 초반부터 나온다. 잭슨의 투덜쟁이 아들의 이름에서 그 힌트가 있다. 바로 노아. 아들의 이름이 노아이다. 그리고 지구에 종말이 온다. 그런데 그 종말의 끝에는 바로 세계를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홍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홍수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누구라도 다 아는 얘기. 그렇다. 바로 노아의 방주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막판에 치닫는 결론은 결국 방주이다. 우주선이라고 떡밥을 던져놓고는 결국 제대로 낚은 셈이다. 


사실 방주에 대한 암시를 많이 심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 아크 건조를 위한 비밀기지도 히말라야 산중에 만든 것을 보면, 방주가 터키지역의 아라랏산에 놓여졌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꾸미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메이드 인 차이나이지만 짱개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거대 아크의 모양을 보면 정말 멋대가리 없는 통자루 모양인데, 실제 방주의 모양도 직사각형에 가까웠다고 하니 이도 어쩌면 나름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스토리가 뻔하다 보니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이 심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가족애. 잭슨이 부인과 이혼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아직까지 가족으로서 인식되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가족애를 되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비단 잭슨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딸의 관계에서도 그려지고, 유리 카보프와 아들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려진다. 또한 텐진과 니마의 가족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주제의식은 제대로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삼총사에서 프로토스 역으로 멋진 활약을 했는데, 이제는 배불뚝이에 볼살도 장난 아니다>



뭐, 생사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판국에서는 누구든 애정을 더 느끼게 마련인데, 사실 이는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구가 멸망하는 시츄에이션 정도면 누구나 서로 한 가족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능적인 수순을 롤랜드 감독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나열했다는 점이다. 좀 재미있다 싶으면 어이없이 터지는 것이 바로 가족애를 자극하는 시퀀스이기 때문에,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 처음에는 좀 봐줄만하지만 갈수록 뻔하고도 적나라하게 연출하다 보니 막 짜증이 날 정도이다. 이건 뭐 나중에 눈물은커녕 하품만 나올 지경으로 만드니, 지나친 것은 역시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실제로도 미국에서 개봉 당시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수입을 얻기는 하였지만, 비평가들에게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2012년에 실제로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식의 모욕적인 평까지 받은 작품이다. 호평도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역시 악평이었더랬다. 이는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의 작가주의적 주제의식을 강조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다분히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헐리우드식 뻥튀기 연출에 질려버린 비평가들의 조롱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억지로 가족애를 끌어올리려는 듯한 설정이 너무 뻔한 연출>



#7. 그나마 지구를 작살내는 스케일은 만족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의외로 필자를 감동시키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바로 유리의 수송기 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슈퍼카들이 둘러쳐져 있다는 것. 실제 보기도 어려운 이 슈퍼카들이 한 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된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기서 단 1대만에 멀쩡히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벤틀리인데, 왜 벤틀리를 이용해서 탈출할까 하는 이유는, 5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차가 오직 벤틀리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차보다 튼튼하다거나 비싸다거나 해서 고른 이유는 아닌 것. 아무튼 벤틀리를 타고 출발을 하려 하는데, 시동이 안 걸리지 싶다. 그 때 유리의 촌철살인적 대사 작렬. “쉿! 모두 조용히! 엔진~ 스~타~트~” 그렇다. 벤틀리는 음성 인식으로 엔진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마치 사모님이 “김귀솨~ 운줜훼~”하는 말투 식으로 조용히 엔진 스타트라는 발음을 작렬해 주시는 것. 나름 가장 코믹적인(어쩌면 유일한) 장면이기도 한데, 필자 입장에서는 벤틀리의 첨단 기술이 신기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재미와 평가를 떠나서, 그나마 괜찮았다고 평하고 싶은 것이, 지구가 쩍쩍 갈라지고 화산이 뻥하니 터지는 시퀀스의 그래픽이 나름 예술이라는 점. 실제로 정말 지구가 저렇게 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스펙터클하고도 소름끼치는 영상이었다. 전 세계의 대륙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이되고, 지구의 자장이 바뀌는 등의 파국을 생각해보면, 인류는 지구 멸망 이후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결국 과거의 문명의 형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고 새출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해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2012년 마야인들이 예언했던 인류의 멸망은 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뭐 때문에 이리도 열심히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고도의 찬란한 문명을 향유했던 마야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기이한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도 정말 그들처럼 하루아침에 증발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인생 뭐 있어? 훌랄라~!!!”


(이 글을 2016년에 성공적으로 옮긴 것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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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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