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더 레슬러 (The Wrestler)
<미키 루크의 부활이라고 아예 때려박아넣은 멘트가 압권인 포스터>
#1. 헐리우드판 TV 인생 극장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인의 허심탄회한 일상을 파고드는듯한 TV시리즈 인간극장 류의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스타가 아닌, 그리고 대본조차 없는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또한 가식으로밖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반대로 스타가 등장해서 마치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하여 마치 소박한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 중에는 꽤나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고 본다. 물론 작품 속의 주인공은 가짜 인물이고 대본이 존재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똑같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작품에는 더욱 매력이 느껴지고 재미있게 보게 된다.
만약, 작품 속의 캐릭터의 삶과, 실제 그 배역을 맡은 배우의 삶이 너무도 똑같다면 어떻겠는가? 이러한 경우라면 그야말로 전자와 후자의 모든 장점과 매력을 다 갖춘 작품이 아닐까? 두말하면 잔소리였는지, 아무튼 여기에 그런 걸작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프로레슬러의 애환이 담긴 양키버전 인간극장 <더 레슬러> 되겠다.
#2. 스토리 - 늙다리 레슬러의 눈물겨운 노후 이야기
먼저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한 때 미국 레슬링계를 군림했던 최고의 레슬러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20년이 지난 지금 그 명성을 뒤로 한 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벤트로 펼쳐지는 언더 레슬링계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 지금은 근육도 예전같지 않고, 얼굴에 주름도 늙었으며, 온몸이 삐그덕 거리는 늙다리가 되었지만, 팬들의 성원을 받아 링 위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사나이. 하지만 링 위에서 아직도 많은 인기를 끄는 그도 링을 벗어나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외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월세도 제때 갚지 못하면서 외톨이로 살아가는 랜디. 평일에는 동네 슈퍼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행사 뛰러 다니는 일명 투잡 사나이이다. 그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사람은 동네 스트립바에서 일하는 스트립퍼 캐시디(마리사 토메이). 나이도 비슷해 보일 만큼 스트립계에서 늙다리가 된 캐시디도 랜디가 싫지 않았는지 최고의 손님으로 모신다. 어쨌든 어렵사리 번 돈을 죄다 여기와서 탕진하고 가는 랜디.
여전히 올드팬들에게 인기 만점인 랜디는 이벤트 기획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듣는다. 과거 전성기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아야톨라와 20년만에 재대결을 치루자는 것. 이에 랜디는 흔쾌히 승낙하고 몸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레슬러와 초엽기 하드고어 레슬링을 펼친 랜디는 승리 후 락커룸에 들어와 온 몸의 상처를 치료한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향하던 랜디는 갑작스레 온 심장마비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한 랜디는 의사로부터 두 번 다시 레슬링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는다. 이에 레슬링복을 버리며 삶의 유일한 낙을 포기하는 랜디. 그는 비싼 병원비 지불에 자신의 딸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가 돈을 댔다는 것을 알게 된다.
<WWE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잔혹한 리얼 레슬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랜디에게 고질적인 고민이 하나 있다면, 바로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는 딸 스테파니와 어떻게든 화해하는 것이다. 과거에 레슬링에 미쳐 가족도 버리고 달아난 랜디였기에, 하나뿐인 딸은 무책임했던 아빠를 극도로 미워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이제 심장마비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이 그리워진 랜디는 용기를 내어 스테파니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여전히 저기압인 스테파니는 랜디를 용서하지 않는다.
딸을 만나고 상심만 하고 돌아온 랜디는 캐시디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에 캐시디는 선물을 사줘보라는 조언을 해주고, 랜디는 캐시디의 조언에 따라 옷가게에서 선물로 줄 옷을 산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 랜디는 그렇게 캐시디에게 은근슬쩍 작업을 걸고, 캐시디도 그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만 손님과는 절대 사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며 그렇게 도망치고 만다.
레슬링도 접고 이제 동네 슈퍼에서 잡일하면서 살아가는 랜디. 다시 용기를 내어 스테파니를 만나러 가고, 꼬까 옷을 선물하면서 조금씩 스테파니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리고 옛 추억이 떠오르는 장소를 거닐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부녀. 결국 랜디는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앞으로 잘 해보자며 주말에 저녁식사를 약속하는 두 사람.
딸과의 화해도 잘 되었겠다, 슈퍼에서 일하는 맛도 재미있겠다 싶어 자신의 변한 삶이 마냥 행복한 랜디. 그는 캐시디에게 가서 자랑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서툴렀던 것일까? 그만 너무 오바해서 캐시디와 다투게 된다. 레슬링이 그리워 후배들의 경기장을 찾은 랜디는 뒤풀이에서 너무 삘받아서 그만 자신의 팬이라는 여자와 마약도 하고 홀라당 자버리고, 뒤늦게 깨어나서는 딸과의 약속을 잊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급하게 스테파니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마음 단단히 돌아선 스테파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절규의 소리를 들은 랜디는 그렇게 쫓겨나고, 다시 인생의 좌절을 맛보면서 랜디는 집으로 돌아온다.
<심장수술을 받는 랜디. 그런데 심장보다 얼굴 상태가 더 안 좋은 듯...>
#3. 오로지 미키 루크만이 할 수 있었던 배역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휴먼 다큐 어쩌구 눈물 쥐어짜내고 그런 식의 뻔한 스토리는 안 보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관이다. 이 작품도 사실 막판에 약간의 눈물방울 분사를 요구하는 구조이기는 하다. 하지만 필자가 왜 스스로에게 모순을 안겨주면서 이 작품을 보았는가!! 실망하려고? 아니다. 오히려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미키 루크라는 배우 단 하나 때문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통해 미키 루크는 최근의 영화팬들에게 새롭게 회자되었었는데, 그 이유는 미키 루크의 삶이 자신의 배역이었던 랜디 더 램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나이 어린 관객들은 미키 루크가 뭐하던 사람이야 하고 궁금해하실 텐데, 여기서 잠깐 미키 루크의 바이오그래피를 떠듬어보고 지나가겠다. 1956년에 태어난 미키 루크는, 1979년에 <1941>이라는 영화를 통해 데뷔하여, 이후 <나인 하프 위크>와 <와일드 오키드> 등의 영화를 통해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단 더럽게 잘생기고 쌔끈하게 빠진 몸매와 외모, 그리고 조니 뎁을 능가하는 섹시한 수염, 게다가 화려한 패션 감각. 그야말로 헐리우드의 섹시가이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갖춘 배우였더랬다.
<왕년의 미키 루크. 섹시가이의 i-Pod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토록 잘 나가던 미키 루크는 영광도 잠시, 곧 나락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데, 그 시작은 바로 그가 취미로 시작한 아마복서 생활이었다. 그는 영화 데뷔 전부터 아마복서로 활약하면서 뛰어난 권투실력을 자랑하였는데, 문제는 배우가 된 이후에도 그 취미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계속했던 것. 아마에서 어느 정도 전적이 화려했던 탓에 그는 배우라는 유명세를 등에 업고 1991년에 프로복서 데뷔전까지 치르기도 하였지만, 아무리 전적이 좋았다 한들 무엇하나? 배우의 생명은 얼굴인데, 그 얼굴을 샌드백 후려치듯 얻어터지고 으깨졌으니 결국 최고의 자산을 쓰레기통에 꾸겨버린 셈.
복싱으로 인해 망가진 얼굴을 고치기 위해 결국 미키 루크는 엄청난 성형을 시도하였으나, 과도한 성형은 결국 자신을 제 2의 마이클 잭슨으로 만들어버렸더랬다. 성형 중독과 부작용으로 인해 얼굴이 심히 오크스러워졌던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권투때문이었을까? 워낙 성질도 더러웠고, 게다가 술에 쩔어 살면서 이 여자 저 여자 마구 덮쳐대서 여성편력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던 바람둥이 터프가이였다.
그러다가 88년에 데브라 포이어와 결혼하지만 이후 92년에 케리 오티스와 재혼, 그리고 개 같은 성질 못 참아서 케리 오티스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98년에 결국 이혼을 하지만 이미 그 때의 미키 루크는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 동안 벌어두었던 돈은 엄청난 성형과 방탕한 생활, 그리고 자신이 운영했던 복싱체육관 운영에 모두 쏟아 부었었고, 하나도 제대로 관리된 것이 없다 보니 거의 알거지 신세가 되었던 것. 복싱도 은퇴했던 상황이라 그는 더 이상 돈벌이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팬들은 그를 질타할 뿐이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미키 루크는 그렇게 사라져만 갔다.
<이렇게라도 해서 먹고살아야지 별 수 있나>
#4. 미키 루크의 화려한 컴백과 인생 대역전
이후 미키 루크는 돈벌이를 위해 몇몇 인디 영화에 출연하며 겨우겨우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았는데, 이를 보다 못한 한 사람이 과거의 미키 루크를 재건하기 위해 엄청난 배역을 그에게 제시하게 된다. 미키 루크는 그 작품으로 인해 새로운 연기를 선보이면서 제 2의 전성기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프랭크 밀러 원작의 <씬 시티>였다.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맡은 배역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신의 애인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독고다이 액션을 펼치는 마브 역이었다.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하였을 때 과연 누가 괴물같이 생긴 마브 역을 맡을 수 있을까 하고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이 고민하고 있었을 적에 그 적임자로 단 한 사람, 바로 미키 루크밖에 없다고 강추한 인물이 다름아닌 원작자 프랭크 밀러였다고 한다. 그래서 프랭크 밀러와 쿠엔틴은 인생에 좌절하고 있었던 미키 루크를 찾아가 수 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겨우 출연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씬 시티에서 전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른 외모와 연기를 선보인 미키 루크는, 그의 화려했던 과거 뒤에 쌓인 불명예적인 좌절과 함께 재기라는 타이틀이 믹스되면서 작품의 새로운 히어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흥행에 맞물려 미키 루크는 헐리우드에서 다시 주목해야될 인물로 꼽혔고, 미키 루크는 이 일을 계기로 과거의 슬픔을 떳떳하게 털어내고 흉측해진 외모를 부끄럼없이 드러낸 채 새로운 배우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된다.
자, 미키 루크라는 배우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이제 이해가 좀 되시는가? 하여간 헐리우드에서 한 때 휘파람 좀 불었다 싶은 남자 배우들은 하나같이 술과 여자로 인해 인생 망치는데, 미키 루크가 딱 그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표본이었던 것. 하지만 미키 루크는 그에 좌절하지 않고 뒤늦게나마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물론 그 스스로가 택한 재기는 아니었고, 순전히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와 <씬 시티>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씬 시티를 보면 원작의 마브와 200%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미키 루크를 보고 있노라면 저게 정말 미키 루크 맞아? 싶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실제 매치였다고 하면 믿을까?>
그래도 어쨌든 미키 루크는 그 한번의 계기로 스스로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재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부분에 있어서 영화 속에서의 랜디 더 램이 막판에 다시 링 위에 서는 것과 똑 같은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미키 루크는 나이도 많이 먹은 상태이고, 몸도 확실히 예전같지는 않다. 더욱이 그의 외모는 더 이상 과거의 그의 수려했던 외모가 아니다. 정말 어디서 실컷 얻어터지다 온 오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미키 루크는 그 천재적인 연기력과 열정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더랬다. 그러했기에 다시 헐리우드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악평으로 거론되었던 자신의 이름을, 이제는 재기의 사나이, 불명의 명 배우 미키 루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작품이 미키 루크의 실제 삶과 100% 동화된 스토리를 보여준다고 해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미키 루크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재기의 의지, 즉 그의 꺼지지 않은 연기력과 열정을 700% 분출하였다는 데서 더 큰 가치가 있다 하겠다.
#5. 100% 리얼을 지향한 배우들의 투혼
이 작품은 전적으로 레슬러의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레슬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노령 세대로 접어든 미키 루크가 과연 레슬링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무리 과거에 복서였다고 해도 복싱과 레슬링은 전혀 다른 운동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우려와 달리, 미키 루크는 스턴트맨 없이 모든 배우가 직접 레슬링을 펼칠 것을 주문하였다. 자신 스스로도 유명 프로레슬러와 격투가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하며 실전기술을 익혔고, 작품 내내 등장하는 모든 레슬링 경기 장면을 직접 찍는 투혼을 발휘하였다. 특히 망가진 몸을 되살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정말 늙은 레슬러다운 몸을 만들어냈고, 진짜 레슬러들과 똑 같은 기술과 마인드를 가지고 레슬링에 임했다고 한다.
<표정이 살아 있는 저 연기를 보라.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 오지 않는가>
여기에는 엄청난 에피소드가 있는데, 정말 리얼한 레슬링 경기를 위해 관중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관람객들을 모아놓고 컷 사인 없이 경기를 펼쳤다고 한다. 특히 영화 속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랜디와 숙적이였던 아야톨라와의 경기는 2008년 3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Ring of Honor” 이벤트로 실제로 치뤄졌고, 그 때의 열기와 함성이 그대로 필름에 담겼다고 한다.
100% 리얼한 액션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런지 경기 중의 미키 루크의 얼굴과 표정은 정말로 그가 실제로 느끼고 말하고 싶은 모든 것 같다. 연기가 아닌 실제라는 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에 링 기둥 위에 올라서서 고통을 참으며 다이빙 할 때의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감동적이고 실제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6.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감각적 작품
이 작품이 연출에 있어서 실제의 레슬링 경기를 담았다는 것 말고도 뛰어난 부분은, 바로 일상에서의 랜디의 모습을 너무도 인간적으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록키 발보아>에서 이미 늙어버린 록키의 모습을 참으로 인간적이고 솔직담백하게 잡아낸 부분이 상당히 인정을 받았었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몇 배는 더 능가하는 듯한 수준이다.
인간극장을 따라하듯 카메라가 미키 루크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발걸음, 숨소리, 표정, 행동 하나하나 세세한 것 모두를 잡아내고 있다. 특히 그가 거칠게 내몰아 쉬는 숨소리는 그야말로 리얼 다큐의 백미. 정말로 연기인가? 아니면 정말로 저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미키 루크의 연기는 리얼을 방불케 한다. 보통 연기라면 나름 꾸미고 하는 것이 있을 텐데, 도무지 이 작품에서는 꾸밈이 드러나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적적하게 살아가는 랜디의 삶이 마치 우리의 실제 삶처럼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가 느끼는 고독과 좌절, 슬픔, 그리고 링 위에서의 희열, 그 모든 것이 실제 우리의 삶의 일면인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이런 랜디의 일상에서 무언가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필자는 랜디가 일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필자가 잠깐 아일랜드를 갔었을 때 느꼈던 하루하루의 느낌이 랜디가 보여주는 일상과 너무나도 쉽게 오버랩되었던 것. 뭐라 형용하기는 힘들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 모르게 너무도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랜디의 모습이 마치 아일랜드에서의 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반적인 분위기가 닮아서일까? 필자도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리고 너무도 사실적이다.
이 작품이 개봉된 이후 미국에서는 놀라운 찬사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미키 루크의 연기와 열정에 감동한 듯 하다. 마치 마지막에 링에 서서 관중들로부터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오직 팬”이라는 말을 하듯 미키 루크 자신도 이 작품을 통해 팬들에게 똑 같은 말을 내뱉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겠다. 작품 속에서 랜디는 링 위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키 루크도 그런 열정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건이다. 이미 미키 루크는 여러 작품에 출연이 내정되어 있다. 특히 초 기대작 <아이언맨 2>에서 과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초섹시 수염을 장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기가톤급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7. 화려하진 않지만 멋진 배우들
너무 미키 루크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는데, 하긴 이 작품에서 주연급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나마 여 주인공인 캐시디 역의 마리사 토메이를 보자면, 이 여자 나름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한데도 웃통 홀딱 벋고 섹시한 자태를 뽐내주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정말 눈망울을 촉촉히 젹셔주시는 관대함을 선사하시니,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기를 보여주는 마리사 토메이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거에 딱히 유명한 작품에 출연한 것도 아닌데, 이번 작품에서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어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언뜻 보면 늙은 제니퍼 애니스톤을 연상케 하는 마리사 토메이>
미키 루크의 딸로 등장한 스테파니 역의 에반 레이첼 우드. 전혀 미키 루크랑 닮은 구석은 없지만, 암튼 딸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 아닌가? 표정은 살짝 시니컬하면서 어두운 구석이 있고, 화장이라던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참 다크해 보인다. 뭘까? 이 다크한 포스는… 이 배우의 놀라운 이력이 있는데, 바로 세기말 정신분열 호러 뮤지션 말린 맨손…아니, 마릴린 맨슨의 여친 되시겠다!!! 항상 충격적인 영상미와 퍼포먼스로 락의 새 지평을 열고 다니는 마릴린 맨슨의 여친이라니, 말 다했다. 정말 마릴린 맨슨과 비슷한 포스를 필름 속에서도 보여주고 계신다.
이력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는 것. 특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극 중에서 열혈 레슬링을 펼치는 많은 배우들. 특히, 랜디와 하드고어 레슬링을 펼치는 투혼을 보여준 산타 수염의 대머리 배우가 참으로 인상깊다.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면서까지 보여준 연기. 밥 먹다가 보면 구토 나올 지경이다. 정말로 호치키스를 온 몸에 박아넣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아무튼 실제 연기라면 그야말로 킹왕짱!!
<저 시체같은 표정과 얼굴빛,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다크 포스는 바로...>
정말 간만에 건진 걸작 휴먼다큐 영화인 <더 레슬러>. 뻔할 것 같지만 뻔하지 않은 가슴뭉클한 스토리와 미키 루크의 놀라운 연기 투혼은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고독한 사나이라면 한번쯤 꼭 봐야 할 영화. 그렇다고 보고 나서 썸머 슬램 하겠다고 깝죽대다가 허리 나가면 책임 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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