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Deadpool)
수퍼 히어로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작품들 속의 수퍼 히어로들, 예를 들어 마블 사의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 그리고 워너브라더스사의 배트맨이나 수퍼맨 같은 존재들은 수퍼 히어로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오로지 정의와 선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각자마다 정의와 선의 기준은 조금씩 달랐지만, 어찌되었건 수퍼 히어로라면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서 이를 개인보다는 지구 평화를 위해 (혹은 우주 평화를 위해) 활용하는 인물, 즉 쉽게 말해 초능력 자원봉사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 다룰 수퍼 히어로는 이러한 관념에서 와장창 빗겨나간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수퍼 히어로라고 부를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능력은 인간 이상이니 수퍼 어쩌구의 자격은 갖추고 있으니 수퍼 히어로가 될지 수퍼 빌런이 될지는 모르는 애매모호한 인물이다. 우스운 것은 이 캐릭터가 히어로로서의 정의구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빌런으로서의 지구파괴를 일삼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뭐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인 수퍼 인간, 바로 데드풀에 대한 영화를 리뷰해 보고자 한다.
<포스터부터 정신이 대략 멍해지는 비주얼과 텍스트의 연속이다>
#1. 스토리 - 발렌타인데이 러브스토리인줄 알았으나 호러스토리인 것 같더니 엽기 액션으로 마무리되는 어느 한 젊은이의 병맛 인생
영화 시작부터 나뒹구는 SUV 차량 안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있는 사람들과 빨간 쫄쫄이 의상을 입은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뒤죽박죽 난장판이 연출된다. 그리고 영화는 곧 약 15분 전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대체 이들에겐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데드풀. 그에게 있어서 오늘은 바로 그 동안 벼르고 벼르던 복수의 날. 이 날을 위해 무려 1년이 넘게 기다렸다고 한다. 택시 기사 도핀더(카란 소니)는 이 괴상망칙한 손님의 수다를 받아주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데드풀은 그야말로 숨쉴 틈 없이 수다를 작렬하다가 도핀더에게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다. 도핀더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더 잘난 경쟁자가 있어서 사랑 쟁취가 어렵다고 말하자, 데드풀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제발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고가도로 한 복판에 택시를 멈춰 선 데드풀은 하이파이브 한 방으로 할증을 받아도 모자랄 택시요금을 외상 처리해 버리고, 고가도로 난간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는 둥 시간을 보낸다. 그 곳에서 철천지원수인 프란시스(에드 스크레인)을 기다리던 데드풀. 그러다가 마침내 프란시스의 부하들이 나타나자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이들을 도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가도로에서의 격투 끝에 데드풀은 악당 무리 중 마지막 남은 한 놈을 꼬치로 만든 채 자신의 기구한 팔자에 대해서 읊조리기 시작한다.
데드풀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것. 그는 한 때 해결사 업계에서 꽤 잘나가는 해결사 웨이드 윌슨이었다. 단지 한 가지 흠이라면 더럽게 말이 많고 까불쟁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바로 해결사들의 둥지이자 일자리 알선장소인 바의 바텐더 위즐(티제이 밀러)이다. 위즐은 매일 웨이드의 수다를 들어주면서도 한 편으로는 바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인 ‘데드풀’에 웨이드의 이름에 200 달러를 베팅하고서 다음 죽을 차례가 웨이드이길 바라는 살인적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확실히 데드풀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기는 하다. 믿거나 말거나>
이 지저분한 세계에서 영원히 넝마 인생을 살 것만 같았던 웨이드에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나타나니, 바로 길거리 매춘부 바네사 칼리슨(모레나 바카린)였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바네사에게 한 눈에 뻑간 웨이드는 특유의 수다로 작업질을 시전하는데, 엉뚱하게도 뻐꾸기 날리는 내용은 누가 더 비참한가였던 것. 나름 비참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바네사에게 더 엽기적이고 비참한 과거사를 남발하는 웨이드가 결국 승리. 이렇게 해서 웨이드는 가진 돈 275달러로 48분동안 웨이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바네사와 딜을 하게 된다.
48분동안 둘이 심혈을 기울여 한 짓은 과연 무엇이던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처절하게 짓밟으며 그 둘은 오락실에서 공던지기 게임을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놀라운 솜씨로 득템에 성공한 웨이드는 선물 한가득을 선사하며 이미 초과해버린 48분에 추가로 3분의 시간을 더 벌어서 드디어 그 3분동안 마치 3시간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의 육체적 화음을 만들기에 성공한 것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웨이드와 바네사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커플들이 별의 별 기념일 챙기며 손발 오그라드는 행위를 능가하는 수준의 기념일 챙기기를 통해 매번 육체적 화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된 웨이드는 드디어 바네사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되고, 둘은 결국 결혼까지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포즈 기념으로 또 한방 거사를 치르려는 찰나, 갑자기 나자빠지는 웨이드.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폐암 말기로 오늘내일 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웨이드. 이에 바네사는 임상실험을 받아서라도 웨이드가 나을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이미 마음 속 한 구석에 이 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게 된 웨이드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제 남은 하루하루는 사건 해결이 아니라 생명 연장을 위한 사투가 되어버렸다. 그런 웨이드에게 어떤 손님이 찾아왔다고 위즐이 얘기하고, 전화번호 적힌 명함 하나만 띡 던진 작자가 누군지 궁금해 일단 만나보는 웨이드. 자신을 단지 영업사원일 뿐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제드 리스)는 웨이드의 특수부대 시절 과거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시한부 인생까지 알고 있는 의문의 존재가 아닌가. 그리고 웨이드에게 넌지시 새 삶과 새 능력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에 당연히 미친 소리라고 빠구먹이는 웨이드. 그러나, 점점 죽어만 가는 자신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해 하는 바네사가 걱정되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하는 웨이드. 마침내 웨이드는 바네사에게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작별을 하고 그렇게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를 하기로 한다.
거래 직후 끌려간 곳은 위생시설이 형편없는 생체 실험실 같은 곳. 이 곳에서 웨이드는 자신을 에이잭스(에드 스크레인)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에이잭스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은 인공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수퍼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며, 이 수술이 성공한다면 암세포도 말끔히 사라지고 가공할만한 능력까지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잭스 역시 그 시술을 통해 엄청난 반사신경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동료인 엔젤더스트(지나 카라노)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있었으니, 에이잭스의 경우는 말초신경이 다 타버려서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되는 등 어떠한 능력이 발현되는 대신 무언가를 잃을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시술이었던 것.
<이거슨 악당에게 주는 나의 그림 편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깨달은 웨이드이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은 웨이드. 특히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필요하여 웨이드는 시술 이후 지속적으로 엄청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특유의 낙관주의와 수다정신으로 이 난관마저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버리는 웨이드.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말벗이 되어주는 같은 실험체 처지인 데이빗(휴 스콧) 덕분에 웨이드는 스트레스 없이 계속해서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날리는 조크가 있었으니, 바로 간지 하나로 먹고 사는 에이잭스의 본명이 프란시스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이라는 것. 이에 제대로 뚜껑열린 프란시스는 웨이드를 각성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처방을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산소 농도를 늘이고 줄여서 숨쉬는 것이 힘들도록 만듦으로써 저승길 문턱까지 가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고통은 화생방 가스실 훈련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그러자 드디어 돌연변이 능력을 발생하게 된 웨이드. 그러나 그 대가는 실로 참혹했으니, 온 몸의 피부가 목욕탕에 진득하니 담은 것처럼 쭈끌쭈글해져버린 것이다. 이에 당연히 분노로 화답하는 웨이드. 그러자 프란시스는 그 찌그러진 얼굴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며 말 잘 들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웨이드가 아니었으니. 기어이 기지를 발휘해 시험관 속에서 탈출에 성공하고 화염 속에서 프란시스와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공격에 웨이드는 꼬치구이가 되어버리고, 그렇게 그는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건물더미와 함께 사라진다.
죽은 줄 알았던 웨이드는 돌연변이 능력으로 인해 불사의 힘과 치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겨우 목숨을 건진 웨이드는 자신의 흉측한 몰골을 숨긴 채 힘겹게 살게 되었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차마 바네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일 자신이 없었던 웨이드는 위즐에게 도움을 청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하여 복수를 꿈꾸는 존재로서 ‘데드풀’이라는 이름을 정하고, 이후 자신이 직접 코스튬을 제작하여 얼굴을 숨긴 채 자기를 이 꼴로 만든 프란시스를 잡기 위해 쫄따구들부터 하나 둘씩 처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복수의 순간이 오늘에서야 온 것이다.
<강남 성형외과 의사선생님들이 데드풀의 저 얼굴을 좋아합니다>
한 편, 평소 데드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엑스맨 양성으로 유명한 자비에르 영재학교의 보디가드 콜로서스(스테판 카피식)이다. 그는 그 고지식한 티타늄 몸뚱아리만큼이나 사고방식도 고지식해서 오로지 데드풀을 정의로운 존재로 개화시켜 엑스맨에 합류시키기를 소망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데드풀이 고가도로에서 난장판을 피운다는 소식을 듣자 친히 정신교육을 위해 마침 학교에서 죽치고 있던 또 다른 뮤턴트인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란드)와 함께 고가도로로 향한다.
데드풀이 드디어 프란시스를 찾아내서 도망가려던 프란시스를 잡아 복수의 종지부를 지으려 할 때, 훈수쟁이 콜로서스가 나타나서 그런 데드풀을 막아선다. 그러자 훈수라면 이골이 나는 데드풀이 콜로서스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그 틈을 타서 프란시스는 도망쳐 버리고 만다. 결국 자신의 계획을 망친 콜로서스에 화가 난 데드풀은 회심의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지만, 온 몸이 티타늄으로 된 콜러서스인지라 때리는 족족 뽀사지는 데드풀의 육체. 그리고 마침내 콜로서스가 데드풀에 수갑을 채워 엑스맨 아지트로 데려가려고 시도하자, 친히 영화 <128시간>을 스포일러하면서까지 자신의 손목을 잘라 탈출에 성공하는 데드풀.
<원작에서도 티격태격 하더니 영화에서까지도 그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 두 뮤턴트>
이후 데드풀은 그 동안 자신을 챙겨주었던 룸메이트인 맹인 알 할머니(레슬리 우감스)의 집으로 몸을 숨기고 서서히 자라나는 손과 함께 다시 시간을 두고 복수의 기회를 다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바네사에게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일그러진 얼굴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프란시스가 절실히 필요한 그였다. 그러나 그 동안 죽은 줄 알았던 웨이드가 데드풀로 멀쩡히 살아있음을 알게 된 프란시스는 반대로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이름가지고 능욕한 데드풀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고, 그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위즐을 찾아가 협박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네사와 웨이드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 프란시스는 곧바로 바네사에게 향한다.
#2. 기존의 통념을 산산히 박살내는 이단아같은 작품
간만의 포스팅이라 그런지 스토리 리뷰가 너무너무 길어졌다. 마치 데드풀이 수시로 떠드는 듯 필자 역시 리뷰 하나만으로 줄줄 늘어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기존의 수퍼히어로물과는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캐릭터에 대한 개성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캐릭터에 걸맞게 아주 엽기적이고 황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하나 천천히 따져보자면, 가장 먼저 오프닝에서 표기되는 크레딧에 대한 신랄한 시도부터 아주 주옥같다. 보통은 등장 배우들의 이름과 감독, 기타 연출진들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 영화는 이름 대신 이들을 조롱하는 듯한 장난스러운 문구로 나타내고 있다. 가령 주연배우인 라이언 레이놀즈의 이름 대신 ‘쎄끈한 매력남’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감독에 대해서는 “돈만 많이 쳐받는 초짜”라고 하질 않나, 제작진에 대해서는 ‘이들이 진정한 히어로’라는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비꼬고 있다. 필자가 극장에서 보는 통에 모두 정확한 표기가 기억나지도 않고 영어식 표현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의역한 부분이 있어서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초반부터 기발하게 배꼽잡으며 시작하는 영화이다. 이러한 병맛 개드립은 영화 내내 시종일관 진행되는데, 아예 엔딩 크레딧에서까지도 등장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면 “겁내 섹시” 이런 식으로 드립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병맛의 수준이 고정관념을 완전 깨버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로 등장하는 워헤드에게 색드립을 치는가 하면, 막판에도 콜로서스의 장엄한 연설에도 불구하고 확 깨는 행동을 하는 등 그야말로 상상초월 병맛과 드립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중간중간 터지는 이런 장면 때문에 이 영화가 로맨스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두 번째로는 데드풀의 정체성이다. 그는 다른 영화작품과 달리 자신이 영화 속 캐릭터임을 알고 있는 아주 황당한 존재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들 즉 관객들에게 대화를 건낸다. 데드풀은 영화 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우리들 사이에 놓인 벽을 ‘제 4의 벽’이라고 말하며, 이를 깨는 것이 하나의 목표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이러한 설정이다 보니 데드풀은 또한 작품 중간중간 자신이 겪는 상황에 대해서 영화 컨셉임을 알고 말하는 엽기발랄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자비에르 학교로 콜로서스를 찾아갔을 때, 콜로서스와 워헤드만 있는 것을 보고 제작진이 예산이 부족해서 두 명 밖에 캐스팅 못한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콜로서스가 학교로 가서 자비에르 교수를 만나면 얼굴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데드풀이 “맥어보이? 스튜어트? 시대가 마구 바뀌어서 헷갈린다”는 식으로 드립을 친다. 실제로 과거 엑스맨 영화에서 늙은 자비에르 교수는 패트릭 스튜어트가, 젊은 시절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는데, 실제와 영화를 완전히 허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데드풀은 관객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발칙한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온갖 잡설로 영화의 스토리를 앞으로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영화의 시간대를 비틀어버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 영화는 사실 러브스토리였다는 둥, 사실은 호러무비 였다는 둥의 관객 스스로의 평가를 아예 통제해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장난질의 백미는 바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 나오는 쿠키영상에서 나타나는데, 이전의 수퍼히어로 무비에서 엔딩 크레딧은 후속편을 위한 암시라던가 주인공들의 재미있는 후일담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데드풀이 목욕 가운을 입고 슬금슬금 나오더니 관객들에게 영화 끝났다고 왜 아직까지 멍청히 앉아 있냐며 어서 가라고 핀잔을 준다.
<분명 포스터에는 발렌타인데이 때 보는 러브스토리였더랬다. 여성 관객들은 정말 속았을까?>
여기에 데드풀만의 코믹하면서도 잔인한 영상은 또 다른 매력이다. 데드풀은 마블 수퍼히어로 무비 최초로 19금 청소년 불가 영화로 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로 바로 잔인한 영상이 수두룩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총알이 신체 구석구석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은 아주 그냥 애교 수준이며, 머리가 숭덩숭덩 잘려 날라다닌다거나 사지가 절단되어서 나뒹구는 장면이 아주 감칠맛나게 등장한다. 게다가 데드풀이 자신의 손목을 거침없이 자르는 장면은 이걸 웃으면서 봐야 할지 토하면서 봐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는 개그와 거북함이 공존하는 묘한 장면이 되기도 하였다.
데드풀이 19금 판정을 받은 이유는 단연 피비린내 나는 사지절단 액션 때문만은 아니다. 당연히 19세 이상의 관객들의 심장 박동수를 향상시키는 배드신도 등장하는데, 어차피 제대로 19금으로 가기로 작정했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남녀 주인공의 맨살이 도드라진다. 아마도 마블 수퍼히어로 무비 역사상 최초로 붕가붕가 장면을 보여준 히어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서 데드풀 특유의 수다정신을 배가시켜 주는 찰진 욕설과 거친 입담도 청소년 불가 판정에 한 몫 하였다. 데드풀의 말투 자체가 온갖 비속어와 욕으로 점철되었다 해도 무방하며, 어차피 정의로운 수퍼 히어로라는 딱지를 걷어찬 이상 아무런 말이나 거침없이 질러댄다. 오죽하면 콜로서스가 계속 입조심 하라고 훈계를 둘까.
#3. 아는 만큼 더 배꼽빠지는 깨알같은 셀프디스
이러한 깨알 같은 발칙함과 고정관념의 붕괴, 그리고 유쾌한 유머 코드는 필자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필자가 오히려 이 작품에서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던 부분은 바로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셀프디스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셀프디스가 이 작품을 가장 독특한 마블 히어로 작품으로 인정받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단순히 자기 비하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배우 자체의 이력에 대한 셀프디스가 이루어지는 경지에까지 오른다. 이미 필자의 블로그에서 다룬 <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도 데드풀이 등장한다고 리뷰를 했었는데, 여기에서 데드풀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라이언 레이놀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작품에서의 데드풀이 원작과 많이 동떨어진 그야말로 안습의 캐릭터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오죽하면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가 원망스러워 입까지 막히는 비운의 캐릭터가 되질 않았던가. 그리고 <데드풀>에서 이제서야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라이언 레이놀즈는 바로 과거 자신의 흑역사와도 같은 그 배역에 대해 대놓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분들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이겠지만, 초반에 데드풀이 궁댕이에 총알 박힌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장 쪽팔린 모습”이라고 얘기를 한 후 과거를 회상할 때 등장하는 액션피규어가 바로 그 문제의 흑역사를 장식한 데드풀 캐릭터의 피규어이다. 필자마저도 해당 작품을 리뷰할 때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글을 썼을 만큼 황당함이 너무도 컸던 캐릭터이긴 하였더랬다.
<이 녹색 수트가 그의 평생 쪽팔림이 될 지는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셀프디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또 하나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연기한 경력이 있는데, 바로 DC가 대표하는 히어로 중 하나인 그린 랜턴 되시겠다. 나름 상당한 비주얼과 원작에 준하는 설정으로 꽤 퀄리티가 우수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평가는 그야말로 폭망. 덕분에 라이언 레이놀즈의 두 번째 히어로무비 도전기 역시 흑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이 역시 흑역사로 치부하며 간접 디스를 하는데, 주인공이 뮤턴트 실험을 당하기 전 최초로 실려가는 장면에서 “내 수퍼 수트는 초록색으로 만들지 말아. 애니메이션도 안돼"라고 농담을 치는 장면이 그 문제의 장면 되시겠다. 왜냐하면 <그린 랜턴>에서 라이언 레이놀즈는 시종일관 캐릭터의 비주얼 아이덴티티인 녹색 쫄쫄이 스판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실제 배우의 이력에 대한 셀프디스는 데드풀이 지향하는 제 4의 벽 돌파와 관련된 설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제 4의 벽이 현실과 작품간의 갭이라고 말하였는데, 작품 속에서의 데드풀을 연기하는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의 현실에서의 이력에 대해서 디스를 하고 있는 셈이니 이미 제 4의 벽은 그 때부터 무너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그는 또 다른 실존 배우에 대한 디스까지 뻗치면서 그 정점을 치닫게 된다. 바로 맨 중의 맨 휴 잭맨에 대한 일편단심 디스이다. 초장부터 휴 잭맨에 대해 “풀버린”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명까지 말하며 비하하는가 하면, 계속해서 이제는 자기가 <데드풀> 영화로 인해 휴 잭맨을 능가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개드립을 치기도 한다. 막판에도 휴 잭맨의 마스크로 괴상한 장난까지 치는데, 어찌나 질기고도 우습던지 아주 찰지기 그지없다.
<데드풀에게 평생 까일 팔자인 비운의 두 캐릭터, 흑역사 시절 데드풀과 울버린>
그렇다면 대체 왜 그토록 휴 잭맨을 까고 보는 것일까. 그것은 앞서 말한 안습 데드풀 캐릭터에 대한 흑역사 때문이다. 사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캐릭터의 광팬이었고,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제작 발표와 함께 데드풀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알려지자 본인이 나서서 데드풀 역을 꼭 맡고 싶다고 바지가랑이 붙들고 매달릴 정도였다. 결국 그 배역을 따내며 ‘이제 나의 세상이 왔다’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연기인생을 펼쳤지만, 되돌아 온 것은 안습의 데드풀 캐릭터 설정과, 막판에 배우까지 뒤바뀌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초반에 데드풀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하다가, 막판 웨폰XI가 된 후로는 스콧 앳킨스가 연기하였다). 그러다보니 배우로서도 캐릭터로서도 휴 잭맨이 라이벌이 되어버린 셈이니, 계속해서 그를 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라이언 레이놀즈는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휴 잭맨을 능가했다고 스스로 영화 속에서 자뻑하는 꼬라지인 것이다.
#4. 저예산으로 놀라운 결과물을 낸 역대 최강 능력의 제작진과 배우들
자, 그럼 이제 이토록 발칙한 영화를 만들어낸 제작진과 배우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먼저 감독은 팀 밀러인데, 놀랍게도 <데드풀>이 이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실 데드풀 캐릭터에 대한 스핀오프 시리즈 제작에 대해서는 <엑스맨 탄생 : 오리진> 이후부터 급격히 거론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퍼히어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던 시기인지라 이에 어긋나는 캐릭터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커서 제작사에서 많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본래 2000년 5월, 아티산 엔터테인먼트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데드풀 영화를 공동제작 하고 투자 및 배포를 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2004년 1월, 뉴라인 시네마와 영화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5년 3월, 흥행에 대한 의심때문에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돌리면서 관심이 줄어들었고 대신 20세기 폭스사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5월, 20세기 폭스사가 작가들에게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었고, 2011년 4월에 팀 밀러가 감독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사실 20세기 폭스사는 흥행에 대한 보장이 없어 계속 투자를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2012년 1월 3분짜리 잛은 footage 영상을 만들어 제작사 간부들을 설득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footage 영상이 2014년에 어쩌다가 뒤늦게 유출되면서 의외로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몰게 되자 흥행의 가능성을 직감한 제작사가 급히 입장을 바꿔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하게 되었고, 저예산이다보니 신예 팀 밀러가 감독의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발칙한 자세를 보라. 그만큼 영화의 모든 것이 발칙하다. 심지어 제작진까지>
사실 팀 밀러는 전문 감독이라기 보다는 시각효과 전문가에 가까웠다. 그는 장기를 살려 단편 애니메이션 <Gopher Broke>로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우수한 시각효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와 <토르 : 다크월드>의 오프닝 영상을 제작하면서 그 진가를 세간에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비주얼에 감명받은 제작사가 비주얼 센세이션을 노렸던 <데드풀>에 팀 밀러가 적격이라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제 겨우 감독으로서 명함을 들이민 팀 밀러가 초장부터 이렇게 대박을 쳐버리니, 앞으로 그의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주연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조금씩 설명을 했지만,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 친구는 데드풀을 위해 태어난 영화배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만화 매니아였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캐릭터를 유독 좋아해서 성격이나 말투까지도 데드풀을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드디어 꿈을 이룰 기회가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통해 열리게 되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죽기살기 각오로 매달려 배역을 따내고 데드풀 연기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과는 당연히 흑역사였기 때문에 상심이 무척 컸을 터. 그러나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데드풀 작품을 위해 계속해서 배역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정성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 바로 앞서 <데드풀>이 본격 제작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footage 영상이다. 그 영상에서 데드풀 코스튬을 입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짧은 시간이나마 연기하였는데,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모습 그대로의 데드풀을 연기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영상은 의도적으로 유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의 이러한 노력과 가치를 알아준 것이 바로 관객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데드풀이 제대로 된 모습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필자는 라이언 레이놀즈를 과거부터 참 애매한 배우라고 생각해 왔다. 전형적인 미국적 호남형 얼굴에 건장한 체격, 그리고 꽤 훌륭한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 그러나 한 편으로는 무언가 너무 식상한, 그야말로 특별한 개성이 없는 배우라는 느낌이 강했더랬다. 솔직히 그가 처음에 영화계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작품들이 다 고만고만했고, 역할도 조연에 불과했다. 그나마 <저스트 프렌드>에서 주연으로 등장하여 김아중에 버금가는 과체중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필자에게는 <블레이드 3>를 통해 액션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는데, 사실 그 때의 이미지는 진정한 액션보다는 껄렁껄렁하게 입방정떠는 개그 액션 전문 배우로서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엑스맨 탄생 : 울버린>과 <그린 랜턴>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보니 이 친구는 한계가 있는가 싶은 느낌이었다. 이후 최근에 <셀프리스>에서 진지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그 작품이 SF스릴러이다 보니 차라리 그 분야에 내공이 깊은 톰 크루즈가 배역을 맡았더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이러한 껄렁껄렁하고 여유넘치는 가벼운 액션 배우로서의 모습이 실은 데드풀의 성격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다. 역시 그의 회고에서처럼 꼬꼬마였을 때부터 말과 행동이 데드풀을 따라했다고 하니, 그것이 그의 연기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무쪼록 이제 제대로 된 데드풀 캐릭터를 통해 확고한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성공하였으니, 앞으로도 지속적인 <데드풀> 시리즈를 통해 <아이언 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능가하는 고유의 히어로 배역을 가진 배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오로지 데드풀이 되기 위해 살아 오다가 꿈을 이룬 라이언 레이놀즈. 과연 심형탁은 도라에몽이 될 수 있을까?>
여자 주인공 바네사 칼리슨 역을 꿰찬 모레나 바카린은 이 작품이 그녀의 첫 주연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도 감독만큼이나 거의 신예에 가까운데, 2015년 초유머대작 <스파이>에서 조연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에 데뷔한 신참내기 배우이다. 이후 TV시리즈 <고담 시즌 2>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조금씩 연기력을 쌓았는데, 이렇게 검증안 된 조연 배우가 덜컥 주연배우로 캐스팅되었다니,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허를 찌르는 영화가 아닐 수 없겠다. 짧은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매력과 몸매를 과시해주었으니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기대해본다.
악당 프란시스 역을 맡은 에드 스크레인 역시 모레나 바카린만큼이나 신참 배우이다. 이 친구는 2012년 처음으로 데뷔하여 줄곧 액션 연기만 한 외길인생 사나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딱 봐도 비주얼이 무척 액션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나름 탄탄한 연기력과 액션을 선보인 탓에 택배기사들의 삶의 애환(?)을 그린 시리즈물의 최신작 <트랜스포터 : 리퓰드>에서 주연을 맡아 선 굵은 액션을 선보였다. 잘 알다시피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단골 신사였던 제이슨 스타뎀이 영국 출신 배우인 만큼, 에드 스크레인 역시 그 정통성을 이어받아 대머리에 영국 출신 배우로서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킬 유어 프렌즈>, <타이거 하우스>, <스워드 오브 벤전스>, <왕자의 게임> 등 영국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서 활약하면서 연기력을 쌓은 배우이다.
<살짝 니콜라스 홀트와 닮기도 한 에드 스크레인. 대머리로 바꾸면서 제 2대 트랜스포터의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악당 엔젤더스트 역을 맡은 지나 카라노는 어지간한 격투기 매니아라면 다 아는 유명한 배우이자 전직 격투기 선수이다. 과거에 이종격투기 선수였던 그녀의 경력은 화려하였는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7승 무패의 무서운 실력을 뽐내여 여성 격투기 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2009년 스트라이크포스 대회에서 크리스티안 저스티노에게 패하면서 돌연 격투기계를 떠나 영화계에서 투잡 활동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173cm의 남성에 꿀리지 않는 체격과 격투기로 다져진 맨 몸 액션으로 인해 그녀는 이내 영화 내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하였고, 2013년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에서 미셀 로드리게즈와 지하철에서 미모와 액션을 버무린 엄청난 격투 연기를 펼쳐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미모도 나름 괜찮았기 때문에 <인 더 블러드>라는 작품에서는 아예 주연을 꿰차며 평범했지만 알고 봤더니 무서운 여자라는 설정으로 멋진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번 <데드풀>에서는 두 눈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벌크업을 감행하여 엔젤 더스트 역을 소화했는데, 괴력이 컨셉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밸런스잡힌 몸매를 포기하고 드럼통 같은 통짜허리의 몸매를 선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콜로서스와의 힘 대결은 나름 찰진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여주인공의 슴가는 보여주면 지나 카라노의 슴가는 가리는 것이냐 콜러서스!!
<결국 격투기보다 영화가 돈벌이에 좋다는 것을 증명한 지나 카라노. 최근 론다 로우지도 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고 한다>
택시기사 도핀더 역으로 분한 카란 소니는 인도 출신답게 인도식 영어가 아주 찰지게 나왔는데, 최신작 <구스범스>에서 조연으로 등장해 우리에겐 크게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 앞으로의 연기 인생이 기대되는 것이, 올해 리부트 예정인 여성판 <고스트 버스터즈>에서도 중요한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 역을 맡은 브리아나 힐데브란드와 위즐 역의 티제이 밀러 모두 신인 배우들인데, 나름 짧지만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어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다만, 브리아나 힐데브란드는 컨셉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 발연기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딱봐도 연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정말로 데드풀 말대로 예산이 적어서 그나마 싼 값에 불러서 출연시킨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종일관 CG로 등장하는 티타늄 부랄을 자랑하는 콜로서스는 스테판 카피식이란 배우가 목소리를 맡아서 러시안스러운 딱딱한 억양을 선보였는데, 그의 우직한 성격이 그대로 억양에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번 작품에도 마블 히어로 무비에 줄창 등장하시는 마블 히어로의 아버지 스탠 리가 역시 등장하는데, 눈이 휙휙 돌아가는 스트립클럽에서 DJ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이 바로 스탠 리 옹 되시겠다. 영감님 이 작품으로 눈 호강 좀 하셨을 듯.
<이름도 거시기한데 연기력마저 더더욱 거시기한 10대 일진 소녀 뮤턴트 워헤드>
#5. 원작에 충실한 데드풀의 스크린 데뷔
갈수록 글이 늘어지는데, 간만의 포스팅이니 참아주기를 바란다. 이제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으며, 이번에는 만화 원작에서의 데드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는 마블 히어로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생각만큼 많이 보지는 못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래픽 노블이 번역되어 발간되어 점차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모든 세계관을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데드풀에 대해 썰을 풀어볼까 한다.
데드풀은 1991년 2월 <뉴 뮤턴츠 #92>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본명인 웨이드 윌슨은 본래 DC 히어로 중 하나인 데스스트로크의 본명인 슬레이드 윌슨을 패러디한 것이다. 본래 캐나다 태생으로 스페셜 포스 등 특수부대와 용병으로 맹활약하다가 뇌종양에 걸리게 되자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쫑내기 위해 웨폰X 프로젝트에 자원하게 된다. 웨폰X 프로젝트는 울버린을 탄생시킨 그 유명한 문제적 프로젝트였는데, 바로 여기서 울버린의 대표 능력으로 꼽힌 힐링 팩터가 획득되고 이를 다시 데드풀에게 주입하면서 그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힐링 팩터가 뇌종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성장시켜버려서 종양이 온 몸에 퍼지게 되고, 결국 데드풀은 힐링 팩터로 인해 끊임없이 종양에 의한 세포 손상과 회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해 데드풀은 외모가 끔찍하게 변한 것이고, 지속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점차 이성이 마비되면서 지금의 병맛스러운 캐릭터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데드풀은 이러한 설정 때문에 자신이 만화 속 존재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면서 자꾸만 제 4의 벽을 뚫어야 한다는 소리를 지껄이게 되고, 심지어 이중 인격도 아닌 4중 인격까지 형성되어 지 혼자서 쉴틈없이 수다떠는 모습을 선사하기도 한다.
<원작에서도 호러와 병맛이 공존하는 아주 개성넘치는 캐릭터이다>
데드풀은 본래 수퍼 히어로를 꿈꾸었지만 점차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래서 이후 마블 세계관에서 전 우주적 사건이 터져 모든 히어로와 빌런들이 힘을 합쳐 생존을 건 전투를 할 때에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데드풀과 친한 수퍼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인데, 이는 그 둘의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이 잘 들어맞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만, 데드풀은 진심으로 스파이더맨을 좋아해서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쫓아다니는데 반해, 스파이더맨은 정신나간 데드풀이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사실이다.
또다른 데드풀과 인연이 있는 존재로는 바로 마블 세계관에서 우주의 4대 본질 중 하나로 꼽히는 데스이다. 데드풀이 종양으로 인해 계속해서 요단강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덧 데스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데, 데스 역시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 데드풀이 신기해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웃긴 것은 설정 상으로 데스는 여성이기 때문에 데드풀이 데스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사상 최강의 빌런과 사랑의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바로 데스의 공식 연인인 타노스가 그 라이벌이다. 참고로, 원작에서 설정된 데드풀의 국적과 신체 사이즈가 실제 라이언 레이놀즈와 동일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정말로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여겨질 법도 하다.
#6. 마블 세계관을 위한 떡밥 투척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다른 마블 히어로 영화들과 갖는 관계성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 끝내겠다. 다른 마블 히어로들은 어찌되었던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떡밥을 던져주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영화 판권은 20세기 폭스와 마블이 서로 쪼개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계관을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각자의 회사가 가지고 있는 판권 내에서는 어느 정도 떡밥을 뿌리며 관객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데드풀> 역시 이러한 재미를 선사하는 떡밥들이 존재하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찰떡궁합 커플인데 속편에서는 같이 나올 수 있을랑가 아몰랑>
영화 후반부에 데드풀이 프란시스의 부하들과 한바탕 대결을 치른 후에 부하 중 한 명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하의 이름이 밥인데, 사실 밥은 원작에서 데드풀과 매우 친한 쉴드의 요원이자 하이드라의 스파이이다. 안타깝게도 20세기 폭스사는 하이드라 판권이 없기 때문에 대놓고 소속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원작에서 절친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터라 그만큼 원작의 설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 앞으로 판권이 합쳐져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된다면 데드풀과 밥과의 관계가 더욱 알차게 꾸며질 수도 있겠다.
최후의 결투 장소로 등장하는 거대한 항공모함도 쉴드와 연관이 깊다. 이것은 누가 봐도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에서 등장하여 막판에 박살나는 쉴드의 공중부양요새 헬리캐리어인데, 역시 판권 문제로 이게 쉴드 것이다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고 그냥 배경으로만 등장한다. 어쨌든 시대적인 배경을 본다면 이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와 하이드라가 싸우고 난 후의 시기로 볼 수 있겠다.
데드풀의 연인 바네사 칼리슨의 정체는 또 다른 떡밥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그냥 평범한 매춘부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칼리캣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뮤턴트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그녀는 미스틱에 버금갈 정도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 그녀가 아이잭스에게 던진 대사인 “나는 많은 역을 해왔지만, 비탄에 빠진 여자 역할은 안 맞아”에서 마치 칼리캣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이 또한 지켜 볼 설정이다.
<바네사 칼리슨과 그녀의 정체로 의심되고 있는 뮤턴트 칼리캣>
영화에서 그나마 대놓고 나오는 엑스맨의 아지트인 자비에르 영재학교는 당연히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쓴 케이스이다. 사실 데드풀과 엑스맨은 원작에서도 어느 정도 질긴 인연이 있다. 스파이더맨 만큼은 아니지만 울버린은 데드풀에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아마 같은 웨폰X 프로젝트 동기생이라서 그런 것인지, 똑같이 힐링팩터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서 겉도는 데드풀에게 그나마 엑스맨에서 연결고리를 갖는 것은 울버린이다. 아마 예산이 많았더라면 이 영화에서 당연히 휴 잭맨이 울버린으로 까메오 출연하여 멋진 장면을 선사했을 것이라 보여진다. 따라서 이번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만큼 더 이상 흥행 걱정으로 저예산으로 편성한 제작사의 만행은 없을 테니, 후속작에서는 막강한 예산으로 후덜덜한 엑스맨 멤버들의 캐스팅을 기대해 볼 만 하겠다.
#7. 개봉 전부터 회자되었던 병맛 크리의 진수
자, 여기까지 썰을 풀어봤는데, 설마 이게 진짜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마음 놓고 창닫기 버튼을 누르려 했는가? 그렇다면 실로 안습이 아닐 수 없겠다. 실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사실!!! 데드풀도 관객들을 농락하는데 나라고 못 할 쏘냐!!!
진심 마지막 코너는 바로 이 작품이 제작이 예정된 시기부터 펼쳐진 기상천외한 영화 홍보에 대한 것이다. <데드풀>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게 된 부분은 역시 입소문이 가장 효과가 컸는데, 그도 그럴 것이 2015년부터 무슨 특정한 날만 되면 여기저기서 뜬금포로 병맛 같은 데드풀의 마케팅 이미지나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특별한 날마다 그 짓을 하듯이, 실제에서도 그렇게 영화를 홍보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홍보 방식이 기존의 바이럴 마케팅과도 또 다르게 아주 기상천외해서 특히 이슈가 되었는데, 예를 들어 대중 장소에서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복장을 입은 채 평범하게 돌아다니기도 하였고, 트위터에선 시종일관 데드풀 복장을 하고 여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트윗을 하면서 특유의 병맛 개그를 구사하기도 하였다. 때때로 일부 홍보 영상이나 이미지는 대놓고 다른 작품들을 패러디하면서 개그를 시전하였고, 한국에서도 대선후보 포스터 같은 패러디 컨셉을 통해 병맛을 마음껏 선보이기도 하였다.
<나도 모르게 218번 후보에 투표할 뻔 했다>
<어벤저스>가 히어로 무비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면, 역사에도 없었던 새로운 구강액션을 선보여 또 다른 역사의 행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데드풀>. 그 유쾌하고 통렬한 개그와 액션 만큼이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선한 스토리와 컨셉으로 단순 액션이 질린 수퍼 히어로 무비에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데드풀은 입으로 떠드니 그나마 나을 텐데, 필자는 손으로 줄창 떠들어 버리니 손가락에 마비 증세가 온다… 그러나 필자에겐 힐링 팩터가 없다는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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