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4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팬도럼 (Pandorum)
인류는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한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왔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전 지구의 절반조차도 파헤치지를 못했다. 바다만 해도 인류에게 있어 아직도 미지와 탐구의 대상이다. 그런데 우주라면 어떠하겠는가?
인류가 먼 미래에 드디어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출을 시도하면서 생기는 미지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SF 스릴러물 <팬도럼>. 예부터 SF에 관심이 많은 필자였기에 큰 기대를 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거대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공포 이야기. 한번 헤집어보자. 전반적으로다가 스토리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오포교 오마쥬^^)
<포스터의 미스테리한 포스는 그야말로 수준급. 하지만 이거 전부 낚시질이다>
#1. 스토리 - 황당할 정도로 무리수를 둔 인류의 미래 이야기
때는 2528년.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면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자원이 고갈되어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등 지구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에 인류는 또 다른 지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였고, 그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지구와 거의 비슷한 환경의 행성을 찾아내게 되었다. '타니스'라고 명명된 그 별을 향해 인류는 마침내 거대 우주선 엘리시움 호를 발진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항해 도중 지구로부터 마지막 무선이 떨어지고, 그 메시지에는 '일레시움 호의 승무원들이 최후의 인류'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두운 우주선 내부 안 오랜 기간 수면탱크 안에서 잠들어 있던 바우어 상병(벤 포스터)이 깨어난다. 마치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듯 우주선 내부는 컴컴하고 이따금씩 심한 진동과 함께 전기가 들어왔다 나가는 상태이다. 바우어는 다른 승무원들을 찾아보지만, 다들 자고 있거나 없는 상태. 겨우 정신을 차린 바우어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되살리려 애쓰며 서서히 어둠 속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오랜 수면에서 깨어나면 과거에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주선이 확실히 고장이 난 것 같고, 다른 승무원도 없는 것으로 보아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여긴 바우어. 그 때 갑자기 또 다른 수면탱크가 열리면서 그 안에서 잠들고 있었던 페이튼 중위(데니스 퀘이드)가 깨어난다. 역시 서서히 정신과 기억을 찾아가게 된 페이튼은 바우어와 함께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갇혀있던 방 밖으로 향하는 문은 굳게 닫혀있고, 누군가 필사적으로 나가려고 한 흔적을 발견한다. 이에 바우어는 페이튼의 도움을 받으며 환기구를 통해 방 밖으로 나가게 된다. 좁다란 통로 끝을 열심히 참사하다 발견하게 된 것은 다른 승무원의 시체. 이 때 바우어는 환기구 아래로 떨어지면서 거대한 우주선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다.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게 되는 바우어. 생존자라 생각한 그는 누군가를 쫓게 되고, 생존자인 줄 알고 다가간 곳에는 목이 졸린 시체가 있었다. 이때 생존자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나고, 그녀는 바우어의 목에 칼을 겨누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놈이 방귀를 뀐겨??" 밀폐된 공간에서 방귀를 살포하게 되면 이처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온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는 다름아닌 정체 불명의 괴 생명체 때문. 파란 불빛을 비추며 징그럽게 달려드는 괴물들을 보고 놀란 바우어는 이내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건진다. 괴물들이 사라지고 조용해지자 바우어는 다시 밖으로 나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주선을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재부팅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였다.
무전기를 이용해 페이튼과 바우어는 각자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조사를 한다. 이 때 페이튼과 바우어는 팬도럼이라 불리우는 일종의 정신착란증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에 모 우주선장이 팬도럼에 걸려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수면탱크를 전부 우주밖으로 배출하여 한 방에 골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선에서도 설마 팬도럼이?
조사 도중 바우어는 테러진압용 무기도 습득하고, 또 다른 목 졸린 시체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5조에 속한 바우어나 페이튼보다 더 늦게 깨어났어야 할 6조의 승무원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시체가 발악하고,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 바우어는 그를 살려주지만, 셰퍼드(노먼 리더스) 라 소개한 그는 닥치고 도망쳐야 한다고 얘기한다.
도망도 잠시, 셰퍼드는 다시 괴물들이 설치한 함정에 걸려 처마 밑에 걸린 메주 신세가 되고, 바우어는 다행히도 괴물 눈에 띄지 않게 숨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셰퍼드는 현장에서 바로 괴물들의 먹이가 되고 바우어는 냅다 도망친다. 그 와중에 다시 무언가와 마주치는 바우어. 알고 봤더니 이번에도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영어를 못해서 말이 안 통한다. 팔뚝의 바코드로 확인해보니 그는 승무원이 아닌, 이 곳에 탑승한 일반인이었던 것. 바우어는 그의 이름이 만(청 레)이고 농사꾼이었음을 알게 된다.
<초거대 우주선 엘리시움호.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이다>
기억을 되찾은 페이튼은 이 우주선이 실은 탐사선이 아니라 수많은 이주민들을 태운 수송선임을 얘기해 준다. 그리고 그 탑승자들 중에는 다양한 직업과 인종을 가진 사람들과, 승무원들 자신의 가족들도 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바우어는 어렴풋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하는 아내의 생존이 궁금해진다.
한편 페이튼이 갇혀 있던 방 안으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페이튼이 환기구 쪽을 보니 그 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 페이튼은 일단 생존자로 보이는 남자를 도와주고, 그는 갤러 상병(캠 지갠뎃)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게 둘은 방 안에 갇혀서 일단 사고의 원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갤러.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만과 함께 괴물로부터 도망치며 원자로로 향하기 위해 계속해서 모험을 하는 바우어는, 일반인들의 거주용으로 지어진 컨테이너를 조사하다가 맨 처음 조우했던 여성 생존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여자는 그야말로 독고다이 마인드로, 만과도 으르렁대며 싸우는 지경. 이에 바우어가 다 같이 힘을 합쳐 우주선을 구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이에 자신을 나디아(안체 트라우)라고 소개한 여자는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다. 나디아는 본래 생물연구학자인데, 엘리시움호 안에는 노아의 방주처럼 수많은 동식물의 표본이 담겨 있고, 자신은 그것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래 탑승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서 지금은 한 마리의 고독한 서바이벌 전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
셋은 원자로까지 가는 과정 중 괴물들의 단체 야유회에 딱 걸려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지만, 시체더미 두둑이 쌓인 똥통에 빠져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렇게 고생고생 해가며 겨우겨우 다가가는가 싶더니, 이번에 또 만나게 되는 생존자. 그 생존자는 꽤 오랫동안 생존해와서 이 우주선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삼인방에게 이야기해준다.
<어쩌다 득템한 야광시계...가 아니라 충격파를 발사하는 무기. 감독이 게임 좀 해본 듯>
엘리시움 호가 발진하고 나서 지구가 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했을 때, 선장을 비롯한 3명의 항해요원이 그 충격에 그만 정신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던 중 1명이 나머지 2명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광기는 극에 달해 갔고, 그 1명은 이내 우주선 안에서 끔찍한 짓을 벌이고 만다. 탑승자들을 가둬놓고 서로 잡아먹고 먹히게 하는 엽기 쇼를 펼쳤던 것. 결국 그 1명은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 칭하고 이 우주선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다가 노는 것도 지쳤는지 다시 냉동수면상태로 돌아가고, 그 이후 우주선 안에는 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면서 결국 이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인간도 아닌 그 괴상한 생명체들은 무엇인가? 나디아의 추측에 의하면 본래 새로운 행성인 타니스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에게 냉동수면상태에서 모종의 환경적응제를 투여했는데, 이 적응제가 너무 빨리 퍼져서 변이를 일으키고 말았다는 것. 결국 우주선은 목표로 했던 행성에도 도착하기 전에 난리판이 되고, 최후의 인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우주의 이단아가 되어버린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일단 자기네들은 살아서 어떻게든 우주선을 다시 원상복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바우어와 보디가드들.
그들은 드디어 원자로 앞까지 다다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자로 아래에 괴물들의 집단서식지가 있는게 아닌가. 결국 들키지않게 조심스레 원자로 가운데로 접근을 시도하지만, 늘 그렇듯이 쇠판대기가 휘면서 바우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절체절명의 순간!!
<거의 애드월~~~드에 버금가는 다중인격 스러운 캐릭터 갤러>
#2.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려던 무리수는 결국 흥행 저조를 낳았다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꽤 괜찮은 반전이구나 싶겠다. 사실 반전이 있다고는 기대했지만, 이런 반전일지는 필자도 몰랐다. 그만큼 허를 찌른 것만은 사실. 그런데, 그 반전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왜냐구? 전반적으로다가 반전까지 이어지는 연출력이 조금 허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소 아쌀한 스릴감을 주는가 싶더니, 중간에는 아주 그냥 축축 늘어진다. 초반에는 괴물들도 괴기스럽게 등장하더니 중간에는 별 감흥없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괴물이 어쩌다 생겼는지도 그다지 설득력은 떨어진다.
페이튼의 반전은 사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이 되는 반전이더라도 영화를 빛내는 데 있어서는 그만큼 뻔하면서도 적절한 구성이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또 다른 막판 대 반전은 필자도 사실 조금은 '뭥미?'였다. 그야말로 허무주의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기대 대비 나름 저렴한 퍼포먼스 때문인지 이 작품의 흥생 실적은 그야말로 저렴하다. 미국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6위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담한 수준. 나름 핑계로는 초반 시사회 미실시, 홍보 미실시 등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SF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이 작품이 이 정도의 흥행밖에 못 거두었다는 것은 역시 관객들의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3. 충분히 있음직한 인류의 끔찍한 미래
작품 내적으로 접근해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꽤나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예전부터 사실 이러한 주제로 제작된 소실이나 영화는 많았지만, 적어도 최후의 인류, 500년 동안의 우주야영 등 극단적인 설정까지는 아니었더랬다. 예외적인 작품이 있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이 있는데, 이 작품도 사건의 시작은 아주 유사하다. 다만 결과는 이보다 더 괴상하다.
어쨌든 팬도럼은 인류가 맞이하는 비극, 즉 엘리시움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남은 승무원들이 인류 최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생물체의 위험에서 또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점이 참신하다. 거기에다가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점입가경. 우주선 고치랴, 괴물 물리치랴, 팬도럼 치유하랴, 그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바우어가 아닐 수 없다.
<이봐 자네, 똥통에 빠졌나? 그러게 푸세식은 오래 앉아있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빠진다규>
그런 바우어가 마침내 살아남아 결국에는 엘리시움호가 꿈꾸던 근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하게 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결말이었을까? 새로운 행성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없는 것일까? 그들과 바우어가 마주치게 되면, 이는 단순한 문명간 충돌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주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원주생명체의 입장에서는 바우어가 그야말로 외계인이 아니던가. 바우어를 비롯한 엘리시움 호의 목적은 그 행성에서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는 엄연히 침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어쩌면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물들이 정말 환경과 목적에 보다 더 잘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미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희생당하고 생존자라고는 바우어와 나디아(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뿐이니 이들이 지구에서만큼의 본래의 문명을 발달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는 결국 태초의 원시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겠다.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괴물들이 아니었던가. 나디아의 말처럼 환경적응제는 정말로 괴물들을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시킨 꼴이다. 그들이 우주선 안에서 몇 백년을 살아온 만큼, 그들도 또 진화를 겪게 되면 언젠가는 우주선 밖으로 튀어나올테고, 그렇게 되면 행성은 결국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결국 베르베르 빠삐용에서 기술한 결론과 일맥상통해진다. 결국 뭐가 되었든,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인류에게는 희망은 있으되 그 끝은 너무도 어둡고 멀다는 것.
#4. 미래 인류의 새로운 불치병 - 우주정신병 팬도럼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은 궁극적으로 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기 위한 설정인데, 이는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실제로 우주선과 같이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종 비슷한 정신이상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발생 지역이 남극의 연구기지라고 하는데,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그 곳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환각, 환청, 극도의 신경질 등의 정신이상증세가 흔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이로 인해 추정되는 구타사건까지 생긴 것을 보면, 우주선, 그것도 수백년이나 떠도는 우주선 안에서 이러한 정신병은 충분히 생기고도 남을 것이다.
<기대보다 안습인 미래의 돌연변이 인류.이 이상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말자>
#5. 안습에 가까운 B급 크리쳐물
연출에 대해 흠을 잡았었는데, 이를 뚜들겨보면 무엇보다도 괴물들의 안습적 포스에 있겠다. 초반에 나름 긴장감 조성하면서 나타나 주시고, 의외로 지능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에일리언도 능가할 종족들이려니 하는 두려움도 생겼더랬다. 그런데, 얘네들이 갈수록 아기자기한 행각을 선보이면서 의외로 허접임이 드러난다. 역시 저글링 10마리가 한 마리의 질럿을 이기기 어려운 것처럼, 이들은 그저 저글링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능은 있어서 무턱대고 좀비행각을 벌이는 것은 아니라서 나름의 센세이션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사같이 보이는 괴물이 생존자 중 가장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만과 1:1 맞짱을 뜨는 장면을 보면, 프레데터처럼 나름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괴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눈땡이가 징그러운 꼬맹이 괴물이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접근하고는 칼질하는 걸 보면, 역시 고단수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괴물들은 공격력이 생각보다 허접이었지만, 정신능력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우수했다는 점.
그런데 문제는 그에 대항하는 생존자들의 퍼포먼스. 일단 바우어는 별로 잘 난 것도 없는데 엄청 잘 도망친다. 운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주인공답게 쉽게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다. 여기에 만이라는 사나이는 농사꾼임에도 어찌 그리 잘 싸우는지. 혼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애매할 지경이다. 더 웃긴 존재는 바로 나디아. 이 아줌마 원래 직업이 연구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닌자어쌔신 저리가라 할 정도의 초절정 닌자 액션을 선보인다. 마치 에일리언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무 강력하게 등장한다.
대체 이 영화는 무엇에 포커스를 두고 봐야 하는 것일까? 지구가 멸망하고 엘리시움 호에 남은 승무원들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데, 역경이 너무 크다는 것? 아니면 팬도럼이라는 가공할만한 우주정신병으로 인한 공포? 아니면 돌연변이 괴물들의 습격과 이에 저항하는 서바이벌 정신?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한데 묶으려다보니 영화 자체가 어정쩡해진 느낌이다. 이 영화를 스릴러가 아닌, 단순 크리쳐물로 받아들였다면 일단 크리쳐에서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B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스릴러이니까 괴물들의 허접함은 그냥 눈감아 주자.
<도무지 과학자라는 설명이 납득이 절대 안되는 홍일점 나디아>
#6. 캐스팅마저 다소 저렴한 영화
이 작품이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제작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미국 헐리우드의 힘만으로 제작되지 않은, 외세의 허접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재미있게도 독일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이다. 크리스티안 알바트 감독이 예전 작품에서 독일 작품을 해왔던 것으로 보아, 그가 독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작답게 등장인물 중에도 독일인이 다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디아 역을 맡은 안체 트라우는 독일 배우이다. 컨셉으로 보나 생긴 것으로 보나 최고의 섹시여전사 밀라 요보비치를 패러디한 것 같은데, 이 작품만으로 그다지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페이튼 역의 데니스 퀘이드는 최근에 <빈티지 포인트>에서 끝까지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목숨 내던지는 경호원 토마스 번즈 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이번 작에서도 결코 범상치않은 캐릭터를 잘 연기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갤런과 페이튼의 외관상 연계성 측면에서는 조금 무리가 있는 듯.
바우어 역의 벤 포스터는 꽤 유명한 배우는 아닌데, 필자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랬다. 알고봤더니 <엑스맨 3>에서 막판 깜짝 활약하는 엔젤 역으로 나온 배우가 아니던가. 어딘가 모르게 여리여리하게 생겼으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로서 나름 좋은 연기를 펼친 듯하다. 만약 캐릭터가 좀 더 공격적이고 터프한 성격이었다면 벤 포스터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은 <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졌을 것이다.
만 역의 청 레. 이 친구 또 나왔다. 얼마전 필자가 리뷰한 <8인의 결사대>에서 청나라 암살자로 나왔었던 인물이다. 견자단과 PK를 뜨지만, 입식타격의 한계로 인하여 골로 가게 되는 역. 그때도 언급했지만, 이 친구 실제로는 진짜 무에타이 선수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 격투실력으로 인해 수퍼맨급 농사꾼 역으로 캐스팅되었나보다. 그렇더라도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영화만 찍는다는 것은, 제 2의 욜라 뽕따이를 꿈꾸는 것인가?
<다른 애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혼자만 나이 먹은 불쌍한 캐릭터라는 설정(?)>
#7.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 - 인류의 뇌
마지막으로, 팬도럼이라는 우주정신병에 대해 무시무시한 음모론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이미 실제로 비슷한 정신착란증세가 입증되었다고 한 바, 앞으로 인류가 우주로 본격 진출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질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이나 신체 이상상태를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쟁 당시 포로들을 이용해 각종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우리네 조상들이라면 이보다 더 한 짓이라도 필요하다는 할 것이다. 그래서 추측컨데, 이러한 극단적인 폐쇄적 환경에서 찾아올 정신이상의 증세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디선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다만 해도 아직 인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육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인류는 그나마 익숙한 바다로 진출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바다 속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도시를 건립하는 프로젝트 등이 기획되고 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바다 속 인공도시에서 발생하는 공포물도 꽤 많이 나왔었다. 아무튼 이에 대한 실험은 매우 간단해서, 조그마한 잠수정에 1명 혹은 소수의 인원을 태우고 바다 속으로 내려보낸다. 탑승자들에게는 아마도 잠수 목적이 바다 속 연구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무선이 떨어진다. 연결하는 로프가 끊어졌다는 것. 게다가 전기장치까지 망가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무선은 점점 희미해지고,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 실은 이 모든 것은 조작에 불과하다. 잠수함은 애초부터 리모트컨트롤에 의해 제어가 되고 사고가 난 것처럼 꾸며서, 탑승자들이 과연 이 위기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정도의 실험은 충분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했을 수도 있겠지만. 바다에 대한 연구가 끝나면 이번에는 우주에서도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우주는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부분에서는 동일하지만, 중력과 무중력이라는 조건의 차이로 인해 또다른 결과를 보일지도 모른다. 무중력은 인간의 두뇌를 두개골 안에서 척 달라붙지 않고 동동 떠다니게 만든다. 이러한 차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분명 아주 특이한 형태로 인류에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특수능력이 생길지도. 기동전사 건담의 아므로 레이가 보여준 뉴타입 같은 바로 그것.
<나름 고어씬을 즐기는 매니아들에게는 혹 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기대는 크게 하지 말자>
인류의 심리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팬도럼이라는 정신병으로 인해 단 한명의 승무원이 벌인 엽기행각이 결국에는 최후의 인류 모두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던가.
과거에 실제로 어떤 남자가 실수로 냉동탱크에 갇혀서 얼어죽는 일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냉동탱크는 영상 10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탱크 안의 남자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정말 영하에서 얼어죽듯이 꽁꽁 얼어죽었다. 이는 그 사람이 스스로 나는 영하의 기온에서 점점 얼어죽어가고 있다는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 최면술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최면술을 이용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손에 뜨거운 감자를 쥐고 있다고 최면을 건다. 그러면 그 남자는 정말로 손에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즉, 심리상태만으로 실제로 인체의 감각이나 신경, 반응 등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토록 가공할만한 심리를 팬도럼이라는 이상한 정신병처럼 막무가내로 망가뜨려버리면 결국 정말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파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파괴의 신은, 신이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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