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허트 록커 (The Hurt Locker)
<미팅 나갈 때마다 폭탄만 걸렸다는 비운의 사나이의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필자는 밀리터리 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미 <블랙 호크 다운>이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밀리터리 영화에 있어 역사의 획을 긋는 명작들을 적나라하게 리뷰한 필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밀리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열심히 구르고 뛰고 갈기고 하는 보병, 일명 땅개들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전투에서는 그들이 가장 죽을 확률이 높으면서도 그들이 없으면 전쟁에서 승리가 어렵다는 특성 탓이겠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리뷰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이들보다 더 높은 죽음의 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뒤에서 가려져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대원들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 다른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비운의 전쟁 영웅들, 바로 폭탄제거전문가(EOD)의 이야기를 다룬 <허트 록커> 되겠다.
#1. 스토리 - 수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위대한 도박꾼
제목만 듣고 포스터를 안 보면 어느 뜨거운 심장을 가진 정열의 락커 얘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영화. 그 착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스토리를 폭탄제거하듯 까뒤집어 보겠다.
이라크. 미국이 세계의 자유를 수호한답시고 강제로 나라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린 비운의 국가. 그 곳에서는 여전히 수 많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테러와 전쟁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모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브라보 중대는 오늘도 어김없이 테러와의 전쟁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브라보 중대 EOD 지휘관인 맷 톰슨 하사(가이 피어스)는 시내 한 가운데 놓인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같은 EOD 부대원인 JT 샌본 병장(앤소니 맥키)과 우웬 앨드리지 상병(브라이언 게러그티)의 보조를 받으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늘 밥먹듯이 해 온 일이기에 여유 만점인 톰슨 하사. 원격 조종 로봇을 이용해 폭탄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발물을 실어 나르던 중, 사고로 수레 바퀴가 빠지면서 폭발물이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톰슨은 방호복을 입고 수레로 접근하여 폭발물을 조심스레 폭탄 옆에 놓는데 성공한다. 그 순간, 주변을 감시하던 앨드리지의 눈에 수상한 이라크인 남자가 포착되고, 그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앨드리지는 급히 그 남자에게 달려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외치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톰슨은 급히 폭탄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하지만 수상한 남자는 결국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그 즉시 폭탄이 터지면서 톰슨은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유능했지만 적군의 테러에 비명횡사하는 톰슨 하사>
유능했던 리더을 잃은 브라보 중대 EOD 팀에 그 뒤를 대신할 새로운 리더가 온다. 윌리엄 제임스 하사(제레미 레너)는 부임 첫날에도 불구하고 꽤나 시건방진 태도를 보여, 늘 FM을 고수하는 샌본 병장에게는 깜놀로 다가온다. 한편 자신이 제때 총을 쏘지 않아서 톰슨 하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앨드리지는 군의관 캠브리지 대령(크리스쳔 카마고)으로부터 1:1 면담 치료를 받는 등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브라보 중대 EOD 임무 교대까지 남은 기일은 38일. 아직 팀이 재정비되기도 전에 폭탄 테러 사고 접수가 들어와 출동하는 EOD 팀. 현장에 가 보니 시내 거리 바닥에서 이상한 끈이 발견되었다는 제보이다. 제임스 하사는 원격 로봇도 필요없다며 방호복을 입고 직접 의심지역으로 다가간다. 샌본과 앨드리지가 엄호를 하면서 따라붙지만, 어쩐 일인지 연막탄을 피며 아군의 시야마저 가려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제임스. 그런데, 길을 가던 도중 갑자기 방어망을 뚫고 돌진하는 간 큰 택시가 있었으니. 이에 제임스는 권총을 이라크인 택시 드라이버에게 겨누고 빨리 꺼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계속 배째라 버티는 택시 드라이버. 그렇게 신경전이 오가고 끝내 권총을 주변에 쏴대며 겁을 주는 제임스. 이에 택시 드라이버는 그 곳을 빠져나가고, 근처에 있던 미군들에게 붙잡힌다. 알고봤더니 그 택시 드라이버는 저항군이었던 것.
목적지에 도착한 제임스는 그 곳에서 폭탄과 연결된 전선을 발견하고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하나 해체하고 성공했다고 기뻐할 찰나에, 전선이 한두개가 아님을 직감하고 계속 살펴본다. 그러자 무려 10여개에 달하는 폭탄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던 것. 하지만 노련한 제임스에게는 식은 스프 먹기였던 바, 쉽게 해제를 완료한다. 한편, 폭탄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던 동안, 주변에서는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라크인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걸 1타 7피라고 해야 하나? 제대로 월척 낚은 제임스 하사>
숙소에서 샌본은 제임스에게 껄렁껄렁한 놈들은 모두 허접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제임스는 샌본이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제임스. 오죽하면 부대 앞에서 불법복제 DVD를 팔고 있는 이라크인 꼬맹이까지 친구먹으려고 한다. 자신을 베컴이라고 소개한 축구광 꼬맹이에게서 DVD를 산 제임스는 그렇게 늘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며칠 후 또 다른 임무가 부여된다. 이번에는 건물 주차장에서 수상한 차량이 발견되었다는 제보이다. 제임스는 역시 방호복을 입고 직접 차를 살펴본다. 자랑스럽게도 주차장에 서 있던 수상한 차량은 바로 현대 EF 소나타. 테러범이 선정한 테러에 이용하기 가장 좋은 차량 1위에 선정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과 함께, 어쨌든 테러범은 어디선가 저격을 하여 소나타를 폭발시키려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만 붙고 말아서 소화기를 가지고 급히 불을 끈 제임스. 트렁크를 열자 트렁크 안에는 엄청난 폭탄이 아름드리 놓여있었다. 이에 깜놀하는 제임스. 제임스는 결국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어차피 죽을 바에는 그냥 편하게 일하다가 죽겠다고 한다. 입고 죽으나 벗고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논리. 샌본은 기겁하여 제임스를 말리지만, 제임스는 독고다이로 문제 해결 의지를 선사한다. 나중에는 귀찮은지 아예 해드셋을 벗어 던져버리는 제임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놀라운 성장!! 무려 이라크에까지 팔리는 소나타. 그것도 테러용으로>
한편 주변을 경계하던 샌본과 앨드리지는 이번에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이라크인들을 발견한다. 이번엔 아예 캠코더까지 들고 와서 무단 촬영하는 대범함까지 보여준다. 이에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샌본은 빨리 탈출하자고 한다. 하지만 제임스는 끝까지 폭탄 제거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폭발 스위치를 찾아내 해체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또 한번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제임스. 하지만 샌본은 그런 제임스에게 분노의 펀치를 날리며, 두 번 다시 사람 간 떨어지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극상에 썩소로 보답하는 제임스.
한편 작전지역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던 인근 담당부대의 리드 대령(데이빗 모즈)은 제임스의 놀라운 실력과 통 큰 배짱에 감탄하여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치하한다. 알고봤더니, 제임스가 지금까지 해제한 폭탄의 수가 자그마치 800여 개에 달했던 것.
작전이 없는 날에는 짝퉁 베컴과 노는 제임스. 그는 자신에게 허접 DVD를 속여 판 꼬맹이에게 온정을 베풀며 친구처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외곽 순찰을 떠나게 된 EOD 팀원들. 황량한 벌판을 달리던 도중 의심스러운 지프를 발견하고 대응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알고봤더니 그들은 미군으로부터 계약제로 활동하고 있던 용병대원들. 서로 아군임을 알고 반가워하며 타이어가 펑크난 계약직 용병들의 지프를 고쳐주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 소리와 함께 용병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저격당한다. 적의 습격에 놀라 급히 몸을 숨기는 일행들. 용병들은 비록 의상은 허접해도 장비만은 프로답게 바렛 대구경 저격소총을 들이밀며 적의 동태를 살핀다. 그런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적. 계약직의 리더는 바렛을 들고 좀 더 살피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던 중 적의 저격에 역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샌본은 대신하여 바렛을 잡고, 제임스는 그 옆에서 망원경으로 적의 위치를 살펴본다. 그랬더니 멀리 푸세식 화장실처럼 지어진 간이구조물에서 적의 동태가 확인된 것.
<멀리서 원격으로 폭탄을 제거하는 EOD 대원들. 이런 임무는 식은 죽 먹기>
샌본은 제임스의 도움을 받으며 바렛의 50구경 총탄을 날려보지만 사격술이 잼뱅이인지 명중시키지를 못한다. 첫번째 탄창이 동나고 두번째 탄창을 챙기보지만, 품고 있던 계약직 리더의 피가 묻어 송탄불량이 나버린 것. 이에 제임스는 앨드리지를 격려하며 침으로 피를 닦아내도록 한다. 그렇게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샌본은 저격수 중 2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머지 1명이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도 안보이는 상황. 사막에 노을이 붉어지고, 팀원들은 경계상태 그대로 미동하나 없이 자세를 유지하면서 적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는 탈수증상마저 나는 순간. 그런데 후방을 지켜보고 있던 앨드리지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포착된다. 멀리 떼를 지어있는 양떼들 사이로 무언가 움직임이 보인 것. 알고 봤더니 꼭꼭 숨었던 저격수가 어느 새 뒤로 돌아가 그들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앨드리지는 경계하고, 제임스는 일단 쏴재끼라고 한다. 결국 앨드리지는 과거 자신이 손가락질 못해서 죽은 톰슨 하사의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방아쇠를 땡긴다. 그리고는 적은 즉사. 그렇게 그들은 오랜 긴장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는, 어느 새 신뢰라는 마음을 조금씩 쌓아가게 되었다.
살아돌아온 그 날 밤 팀원들은 양주 나발을 불어재끼며 서로 배를 주먹으로 치는 도무지 이해안되는 놀이를 하며 올나잇 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임스가 소장하는 물건이 다름 아닌 폭탄 기폭장치임을 알고 놀라는 멤버들. 제임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처리해 온 폭탄의 기폭장치를 모으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막 한 복판에서 엎드려 쏴 자세로 꿈쩍않고 몇 시간씩 버틴다는 것이 말이 되나?>
며칠 후. 이번에 맡은 임무는 어떤 현지인이 자신의 몸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현지인은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그가 저항군일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제임스는 그가 저항군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폭탄 제거에 도전한다. 하지만, 온 몸을 감싼 철제 자물쇠 때문에 도무지 풀지 못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폭탄에는 시한장치까지 달려 있었다. 샌본은 무모하다고 하면서 제임스를 말리지만, 제임스는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폭탄 해체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천하의 제임스 마저도 난공불락의 폭탄이었던 것. 결국 팀원들은 도망치고 현지인은 그 자리에서 한 줌의 재로 승화하고 만다.
사건은 계속되어, 이번에는 폭탄 제조창으로 의심되는 지역을 조사하게 된다. EOD 팀원들은 수상한 건물로 잠입하여 조사를 하고, 건물 내부에서 폭탄이 제조되었던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곳에서 같이 발견된 것은 다름아닌 짝퉁 베컴의 시체. 제임스는 베컴의 몸에 폭탄이 설치되었음을 알고 원격 폭발을 통해 처리하려고 했지만, 어느덧 친구가 되어버린 베컴을 고이 여겨 그의 몸 안에 놓인 폭탄을 해체하고 시체를 온전한 상태로 들고 나온다. 한편, 앨드리지가 걱정되어 이 임무에 같이 따라 온 캠브리지 군의관은 바깥에서 현지인들과 노가리 까고 있다가, 그들이 놓고 간 폭탄에 당해 그 자리에서 분자구조로 분해되고 만다. 이에 충격 제대로 받는 앨드리지.
<그는 진정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숨은 영웅이었다>
#2. 알고보니 다큐멘터리 영화
일단 스토리를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했던 관객들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초반 나름 서스펜스 스릴러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끝에서는 마치 TV 인생극장을 보는 듯한 휴먼 다큐식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무언가 대단한 반전이나 액션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오산 미 공군기지.
이 작품은 철저하게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을 위한 일종의 위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라크에서는 지금도 매일 테러와의 전쟁으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에 따른 미국 내 여론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자신의 아들이 전사해버린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재미있게도 이러한 인명 피해의 대부분이 자살폭탄테러 등의 비전투적 요소이다 보니, 감독은 바로 그러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진정한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다분히 인종적 차별성과 미국식 영웅주의를 깔고 있다는 지탄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이라크 내 저항군들이 왜 폭탄테러를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는 지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아무런 설명이 없이 단순히 닥치는 대로 폭탄 테러를 시도하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역시 나쁜 놈들이라는 이미지만 심어줄 우려가 다분하다. 과거 <위 워 솔져스>에서 보여주었던 적군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이라는 요소는 완전 무시된 형태이다. 대신 이러한 장치 때문에 우리는 EOD라는 특수 임무를 담당하는 대원들의 생사를 넘나드는 모습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적어도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폭탄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체하는 고생을 하지 않는가. 이러한 요소 때문에 이 작품은 정말 휴먼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초반의 수상한 이라크 테러범들의 소행이라던지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긴장감과 몰입도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차치하고 그저 우리에겐 생소한 EOD 대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어떠한 인격적 고뇌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냥 맘 편하게 보면 되는 영화이다.
<EOD가 얼마나 위험한 임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폭발에서도 방호복입고도 죽을 수 있다는 것>
#3. 이름은 들어 봤나? - 드러나지 않는 영웅들 EOD
필자의 입장에서는 밀리터리 측면에서 많은 요소들이 등장하여 반가웠는데, 일단 EOD라는 임무가 그러하였다. 대부분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EOD라는 동일 명칭으로 동일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가 있다. 부대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각 부대 내 EOD 팀이 존재하는데, 특히 공군 EOD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몇 년 전 광화문 한복판에서 발견된 한국전쟁 당시의 불발탄도 공군 EOD에서 해체한 사실도 있을 정도로 그들은 나름 베테랑이다. 필자도 군 생활 당시 EOD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들이 참으로 정겹기만 하다.
비록 EOD는 임무 특성상 전투보다는 비전투 임무를 많이 띠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전투적인 요소도 많이 첨가하였다. 샌본이나 앨드리지가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특히 외곽 순찰 중 발생한 교전에서는 의외로 기대 이상의 교전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백병전이 아니라 바로 저격에 의한 숨막히는 혈전이었던 것. EOD 대원이 저격까지 한다는 다소 황당한 연출을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필자가 스나이퍼건 중 가장 좋아라 하는 바렛 저격소총이 등장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4. 나름 장비 고증에 충실한 영화
재미삼아 이 총에 대해 설명하자면, 미국의 총기 회사인 바렛(Barrett)사에서 1982년에 처음 생산한 제품으로, 무려 50구경에 달하는 브라우닝 탄환을 쓰는 대물 저격총이다. 50구경 탄환이라고 해서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손가락 하나보다 더 굵고 긴 탄환이라고 보면 된다. 이 총은 단순히 멀리서 적을 사살하는 목적보다는, 특유의 엄청난 타격력 때문에 주로 장애물이 동반된 목표 제거에 활용된다. 엄폐물 뒤에 숨은 적도 사살할 수 있고, 비행기나 장갑차 등 나름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이동수단 내부에 있는 목표물도 타격할 수 있다. 그만큼 관통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 가끔 탱크의 캐터필러를 멀리서 타격하여 탱크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쓰였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주로 대인 저격총이 아닌 대물 저격총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일반 장갑차의 경우 방탄 효과가 무용지물에 가깝다고 해서 가끔 탱크잡는 저격총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어떤 버전인지 정확히 확인이 안되었지만, 가장 일반적인 버전이 M82 버전이고, 현재는 개량을 거쳐 M107버전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25mm 고속 철갑탄용 바렛도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정말 무식할 정도로 파괴적인 바렛 저격총>
어쨌든, 이 정도로 후덜덜한 저격총을 가지고 등장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한 발 쏘고 나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연출이란. 이 총의 감동 포인트는 바로 소리이다. 실제 바렛의 격발소리를 들으면 5000와트급 중저음 짱짱한 스피커는 저리가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발사음이 들린다. 그것도 촐삭대는 소리가 아니라 매우 중후한 소리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못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비단 바렛 격발음뿐만 아니라 폭발음도 다소 약한 듯하다. 필자가 이미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던 명품 사운드의 대표작 <히트>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눈물이 망막을 워싱해버리고 만다. 일반적으로 저격총이 쇼트리코일 방식이라는 특성상 발사음이 크지만, 정말 바렛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이를 이토록 일반 저격총보다 허접하게 연출한 것은 최대의 안타까움.
이 외에도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이 장착하고 있는 각종 장비들에 대해서는 고증이 매우 사실적인 편이다. 개인 화기에 대해서도 디테일이 묻어나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눈으로 즐기기에는 어느 밀리터리물 못지 않게 많은 볼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5. 도무지 매칭 안되는 감독 - 명감독이 된 캐서린 비글로우
나름 정교한 밀리터리 고증과, EOD에 대한 심도 높은 스토리 전개라면, 감독이 어느 정도는 밀리터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감독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놀랍게도 여자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여자로 어떻게 이런 정교한 밀리터리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알고보면 이 아주머니는 예전부터 밀리터리물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액션영화 <폭풍 속으로>도 바로 이 아주머니의 작품이다. <K-19>라는 독특한 잠수함물을 통해 독특한 밀리터리 철학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흥행에서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K-19>역시 서로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함장과 부함장의 갈등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다루었는데, 너무 캐릭터간의 갈등으로 치부해 버려서 밀리터리 본연의 액션은 부족한 감이 많았다.
<비록 임무는 폭탄 제거이지만 총격 액션도 쏠쏠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샌본의 자세가 좀...>
어쨌든 이러한 실패를 뒤로 하고, 7년만에 복귀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허트 로커>이다. 개봉 당시 흥행에서는 다소 밀리는 듯 하였으나, 캐서린의 진가가 발휘된 곳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당대 최고의 SF 걸작 영화라고 불리우는 <아바타>와 함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무려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향상, 편집상, 음향효과상)의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더욱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상이라는 놀라운 영예까지 함께 얻었다. 역시 아카데미는 흥행이 아닌 작품성을 중요시 여긴다는 설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지만, 어쨌든 이 작품으로 인해 캐서린은 하룻밤 사이에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캐서린 감독이 이 작품을 단순한 액션 밀리터리물로 접근하지 않고 휴먼다큐식으로 접근한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이러한 명작이 탄생할 수 있게 해준 배우들의 수준 높은 심리연기도 아주 나이스이다.
#6. 주연보다 조연들이 더 유명한 저렴한 캐스팅
주인공 제임스 하사 역을 맡은 제레미 레너는 놀랍게도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아니다. 좀비물인 <28주 후>에서 도일 역으로 활약은 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 <SWAT 특수기동대> 영화에서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였지만, 딱히 액션스타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인상부터가 액션스럽지가 않고 푸근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멜로물에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진 똥고집 막무가내 엘리트 폭탄제거요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늘 위험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임무에 매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국군 병장과 전혀 다른 포스를 보여주는 샌본 병장은 앤소니 맥키가 연기하였다. 이 친구도 액션 연기는 미미하고 오히려 흑인 영화에 많이 출연한 이력을 보이고 있다. 연극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스파이크 리 감독을 좋아라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의 작품에 많이 출연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긴 것으로 보면 참으로 푸근하게 생긴 제레미 레너>
어딘가 모르게 어벙벙해 보이는 앨드리지 상병을 연기한 브라이언 게러그티도 정말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이다. 거의 무명에 가까운데 이토록 큰 역할을 해내다니. 그러고보니 주인공 3인방이 모두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칠맛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캐서린 감독의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3인방보다는 조연들이 좀 더 후덜덜한 독특한 영화이다. 도입 부분에서 카리스마있게 등장했다가 비명횡사하는 톰슨 하사 역에는 가이 피어스가 맡았는데, 이 친구가 그 유명한 <메멘토>의 기억을 잃는 사나이 레너드라는 믿겠는가? 바로 그 친구가 맞다.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다룬 <팩토리 걸>에서는 앤디 워홀로 분하여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한 그이다. 최근에는 <더로드>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계약직으로 봉사하다가 절명하는 용병부대의 리더를 맡은 랠프 파인즈도 후덜덜한 배우이다. 이 친구가 바로 그 유명한 볼드모트라면 믿겠는가? 무조건 믿어야 한다. 사실이니까.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로 분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타이탄>에서 악역 하데스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페이션트 역을, <쉰들러 리스트>에서 악한 독일 장교 괴트 역을 맡기도 하였다. 참고로, <월레스와 그로밋 – 저주받은 토끼>에서는 멍청한 악당 쿼터메인 백작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하였다.
<주인공보다도 더 엣지있게 등장하는 FM 병장 샌본>
별 활약도 없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리드 대령 역은 또 누구인가. 콧수염 붙여서 잘 모르겠지만 데이빗 모즈라는 아저씨로, 빛나는 조연으로 유명한 아저씨이다. <그린 마일>에서는 정이 넘치는 교도관 브루터스 역을 맡았고, 미지의 존재와 조우하면서 겪게 되는 SF영화 <컨택트>에서는 주인공의 애인 테드로 나와 막판에 인자한 웃음을 선사하였다. 멜로에도 강하지만 액션에도 강해서 <더 록>에서는 끝까지 애드 해리스를 위해 충성하는 박스터 소령 역으로 활약하였고, <네고시에이터>와 <12몽키즈>에서도 등장하였다. 참고로 이 아저씨가 필자 또래되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명작 <천사들의 합창>에 등장했다면 믿겠는가? 믿으라니깐!!
이 외에도 캠브리지 군의관 역의 크리스찬 카마고 등이 캐서린 감독과의 <K-19> 작품을 인연으로 하여 출연하게 되었다. 비록 또 별볼일 없이 한 줌의 재로 끝나버렸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더 굵직한 역을 맡지 않을까 기대된다.
배우들을 쭉 설명했는데, 대충 감이 잡히겠지만 일단 배우들의 개런티에서 싸게 먹히고 있다. 그 말은, 요새 헐리우드 영화를 블록버스터로 만드는 1등 공신인 배우 개런티에서 상당한 절약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로 분류된다. 미 육군에 돈을 조금 많이 주기는 했겠지만, 장병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하면 설마 바가지 씌우겠는가. 저예산으로 촬영해서 아카데미 상도 싹쓸이하고, 엄청난 인기몰이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한 로또가 어디있을까. 전작인 <K-19>에서 1억 달러 가량 투자하고 그 절반도 못 건져서 쪽박찼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인생역전한 셈이다.
<해리 포터에게 밀려 이라크로 파견 왔다가 허무하게 인생 쫑나는 볼드모트>
#7. 적과의 동침 - 캐서린 비글로우와 제임스 카메론
마지막으로, 캐서린 감독에 대한 비밀 같지 않은 사실 하나 밝히겠다. 이 아주머니가 원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전 부인 되시겠다. 카메룬 감독하고 <어비스> 작업하다가 눈 맞아서 결혼했지만, 재미있게도 캐서린 감독 본인은 카메룬은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될 남자라고 혹평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번 아카데미에서 두 사람은 보기 좋게 라이벌로 후보에 오르는 묘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결국 흥행에서는 전 남편이 승리하고, 수상에서는 전 부인이 이겨버린 매우 진기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필자가 현역 시절 당시 몇 번 EOD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미팅 나갔을 때 상대편에 폭탄이 있으면 무조건 폭탄제거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었던 것. 참고로 EOD 임무는 아무나 맡는 것이 아니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모든 면에서 베테랑급에 속해야 EOD의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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