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 (Leon)

Movie 2016. 1. 8. 14:47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7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레옹 (Leon)



#1. 한 편의 고독한 시를 연상케 하는 감성적 영화


서쪽 하늘 붉은 빛의 구름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해질 무렵 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하고 웅장하고 촘촘히 서 있는 빌딩 숲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았는가? 바삐 돌아가는 세상, 쉴새 없이 움직이는 군중들, 시끄러운 소리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자동차들. 하지만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그 곳에 있던 것일까? 고독하다. 나는 고독하다. 도시의 화려한 모습 속 차디찬 구석에서 숨 쉬고 있는 나는 고독한 존재이다. 


필자는 저녁 노을을 좋아한다. 특히나 빌딩 사이에서 드리워지는 붉은 빛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그 순간만큼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운 적은 없다. 이러한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나만이 알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일지도. 하지만 이러한 느낌을 영상을 통해 뿜어낸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뤽 베송 감독의 걸작 <레옹> 되겠다.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저 뽀죡한 코가 단연 압권인 레옹의 자태>



레옹은 확실히 액션 영화이다. 하지만 필자가 받은 영감은 단순한 액션만은 아니었다. 주인공 레옹이 드러내는 고독한 도시인의 삶과,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평범하게 되기까지 겪게 되는 고독한 싸움, 그리고 고독한 결말. 여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비주얼과 음악은 이 영화를 최고의 감성 영화로 인정받게 만든다. 



#2. 스토리 - 고독한 킬러의 인생개조 이야기 "우리 킬러가 달라졌어요"


필자가 어린 시절 미약했던 감성을 심연의 깊고 어두웠던 바다 속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된 결정적인 대작, 레옹에 대해 먼저 스토리를 알아 보자. 


뉴욕의 어느 거리. 이탈리아 스타일의 어느 식당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다. 우유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살인청부 의뢰를 받는 동그랑땡 선그라스의 털보 사나이 레옹(장 르노)과, 그의 청부업무 중계책이자 식당 중인인 토니(대니 앨로). 토니는 어느 뚱뚱한 남자의 사진을 건네며 모종의 작업을 요청하고 레옹은 그 자리에서 수락한다. 


작업에 착수하는 레옹. 조직의 보스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의 건물에 도착한 레옹은 전화로 도착완료를 공지하며 재깍재깍 부하들을 죽여나간다.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 뚱뚱한 사내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하게 몸을 숨기려 하지만, 레옹은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뚱뚱한 사내의 목을 칼로 죈다. 이윽고 의뢰자의 메시지를 전달한 레옹은 목표를 완수한 후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일을 마친 레옹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귀가하지만, 오늘도 복도에는 부모에게 실컷 얻어터진 옆 집 꼬마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가 기다리고 있었다. 얻어터진 꼴이 불쌍한 지 조심스레 걱정해주는 레옹. 마틸다는 이윽고 레옹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마틸다의 집안은 콩가루 집안의 대명사. 아버지는 마약이나 몰래 빼돌려 팔고, 어머니는 매춘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요염하게 차려입고 다닌다. 게다가 언니는 다이어트에 목숨건 채 마틸다를 괴롭힌다. 마틸다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라고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하나뿐인 남동생. 마틸다는 늘쌍 가족들에게 얻어터지고 욕을 먹지만 남동생만큼은 끔찍하게도 아낀다.


<어리지만 당돌한 마틸다. 이런 여동생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고>



그러던 어느 날, 마약단속국 소속 형사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가 마약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마틸다의 아버지를 협박하지만, 사실은 스스로가 마약쟁이였던 비리 형사 스탠(동료 형사들이 스탠스필드를 스탠이라 줄여 부름)이 자신의 마약을 마틸다의 아버지가 몰래 빼돌렸다고 생각하여 되찾으러 온 것이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스탠은 다음 날 12시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생각하라고 경고한다. 레옹은 문의 열쇠 구멍으로 이러한 모든 정황을 보지만, 고독한 청부업자였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데 매진한다. 


이윽고 다음 날이 되고, 일이 없어 극장에서 영화나 보고 백수처럼 돌아다니다 귀가한 레옹은 오늘도 어김없이 마틸다와 마주친다. 매일 집 앞 슈퍼에서 우유를 무더기로 사오는 레옹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마틸다가 대신 우유를 사오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마틸다는 심부름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레옹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12시가 되던 시점. 스탠이 마약단속국 부하들과 함께 마틸다의 집에 방문해 주시고, 이윽고 처절한 살육이 자행된다. 뻘짓하다가 한 방 맞은 스탠이 뚜껑 열려서 집안의 일원을 모조리 살육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유를 사가지고 오는 마틸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순간 일이 났음을 직감한 마틸다는 슬기롭게도 아무일도 아닌 척 지나친 후 레옹의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한다. 레옹은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마틸다의 처절한 도움 요청에 결국 레옹은 문을 열어준다. 


마틸다는 자신을 살려 준 레옹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만, 레옹은 마틸다를 매몰차게 대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레옹이 킬러임을 알게 되고 자기의 남동생을 죽인 범인들을 모두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오로지 돈에 의해서만 청부살인을 하는 레옹은 이를 거절하고, 마틸다는 기어이 자신이 킬러가 되겠다고 깽판을 친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짐짝이 생긴 레옹은 마틸다를 제거할 생각도 하지만, 이 여린 어린아이를 어찌할 지 모르는 레옹은 결국 마틸다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트러블도 많았지만, 레옹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글을 가르쳐 주겠다는 등의 호의적인 자세로 대하여 서서히 레옹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


<매일 우유만 먹고 사는 레옹. 그래서 그런지 키는 엄청 크다>



레옹은 결국 마틸다에게 킬러의 기술을 전수해주게 된다. 칼, 권총, 소총, 심지어 수류탄까지 쓰는 법을 알려주는 레옹. 그리고 막돼먹은 개념으로 열심히 따라오는 마틸다. 레옹은 이제 마틸다를 제어하려 하고, 그런 레옹에게 아직은 사춘기 소녀에 불과한 마틸다는 반항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티격태격 하면서도 어느덧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되고, 마틸다가 레옹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에 레옹은 깜짝 놀라면서도 무언가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덧 마틸다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 레옹.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청부살인을 하지만, 마틸다가 마음에 걸린 나머지 예전 같은 날카로움을 잃고 만다. 사소한 실수로 이제 총까지 맞는 입장. 하지만 아픔을 숨기고 마틸다에게는 예쁜 옷을 사다주는 등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레옹은 오랜 친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토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틸다를 책임져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편 마틸다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예전의 참혹한 현장을 살펴보면서 남동생의 죽음을 되새기게 되고, 마침 현장 조사를 위해 방문한 스탠을 피해 몰래 숨어서 스탠에 대한 정보를 엿듣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마약단속국 4602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마틸다.


이후 마틸다는 레옹에게 끝없이 킬러가 되고 싶다고 징징대고, 유명한 캐릭터들에겐 항상 사이드킥이 있었다고 강조하며 자신을 사이드킥으로 써달라고 요청한다. 이것만큼은 레옹도 수긍이 가는지 받아들이게 되고, 이후 마틸다에게 타켓들의 문을 따도록 연기를 시키거나 타겟을 붙잡아서 사격 연습을 시키는 등 조금씩 킬러로서 양성을 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옹은 마틸다에게 마지막 일만 처리하고 이제 둘이 떠나자고 이야기를 하고, 이에 마틸다는 아직 복수를 하지 못한 스탠을 처리해야 한다며 돈을 주고 청부의뢰를 한다. 그러나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마틸다에게 총과 탄약을 주고는 정 원한다면 너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냉대하는 레옹.


결국 마틸다는 혼자서 피자배달부로 가장하여 마약단속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간 스탠을 따라 복수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선 마틸다. 하지만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기다리고 있었던 스탠. 스탠은 마틸다를 총으로 위협하여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를 묻는다.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마틸다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는 스탠. 마틸다를 죽일지 말지 시소게임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스탠을 찾아 온 부하 형사. 그는 스탠에게 다른 부하가 어떤 남자에게 살해당했다고 얘기한다. 마틸다가 스탠을 따라갔을 때 레옹은 나름대로 스탠의 흔적을 찾아 그의 부하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레옹이 말한 떠나기 전 마지막 일이었던 것. 그리고 뒤늦게 마틸다가 복수를 위해 마약단속국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옹은 마약단속국으로 쳐들어가 그 자리에서 스탠의 부하들을 골로 보낸다. 그리고 마틸다를 구출해 나오는 레옹.


<마틸다에게 킬러 중 가장 핫바리들이 사용한다는 스나이퍼건에 대해 강의하는 레옹>



부하들이 뜬금없이 죄다 골로 가자 또다시 뚜껑 열린 스탠은 자신을 노리는 범인에 대해 알기 위해 토니의 식당으로 쳐들어가 토니를 협박한다. 결국 레옹의 거처를 알게 된 스탠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여 레옹이 거주하는 건물을 둘러싸고 만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우유를 부탁하며, 들어올 때 조심하라고 자기들만의 노크 암호를 공유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우유를 사가지고 오다가 SWAT팀에게 붙들리고, 마틸다를 이용하여 레옹의 방으로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마틸다의 총명함으로 레옹은 SWAT이 들이닥쳤음을 알고 환영만찬 준비를 완료한 상태.





<자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날 것을 당부하는 레옹과 절규하는 마틸다>



#3. 다양한 색깔을 뿜어 내는 뤽 베송


필자가 스토리를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필자의 마음이 울컥하여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심정이다. 레옹이 마틸다만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향해 어둡고 긴 지하통로를 걸어나갈 때 스탠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정말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마틸다가 외치는 대사는 레옹의 죽음이 있기에 더더욱 슬프고 애절한 장면이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사실 뤽 베송 감독은 묘한 감독이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때에 따라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장르의 감독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레옹에서 보여준 감성적인 면은 뤽 베송 감독의 여타 작품과 비교하면 완전 납득 불가능한 수준. 특히나 헐리우드로 진출하면서 보여준 작품들은 철저하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감성적이라기 보다는 액션이나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뤽 베송이 초장부터 보여준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태생은 감성적인 면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작 <그랑 블루>와 1990년작 <니키타>는 뤽 베송이 추구하는 감성터치가 아주 잘 녹아든 작품이다. 


뤽 베송이 어떤 면에서 감성적이냐 하면, 바로 주인공들간 내면적 아픔과 상처,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희망이라는 코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랑 블루에서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주인공을 통해 갈등과 아픔, 그리고 희망이라는 요소가 바다라는 미지의,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아늑한 공간을 통해 투영되었고, 니키타에서는 주인공이 과거를 딛고 특수요원이 되지만 아픔을 간직한 채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주인공의 연기와 스토리도 이를 뒷받침 해주지만, 뤽 베송의 이러한 감성을 대표하는 공통 코드는 바로 파란 색이다. 파란 색은 차가우면서도 우울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죽음과 재생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픔 뒤의 희망을 암시하기도 한다. 뤽 베송은 이 파랑색을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그랑 블루의 모든 시퀀스를 관통하는 푸른 바다가 그 예이고, 니키타에서도 조명이나 주변의 빛을 이용해 파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레옹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SWAT팀이 들이닥쳤을 때의 빛도 파란 색으로 우울과 죽음을 암시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지하 통로를 걸어나갈 때 비치는 빛도 파란 색으로 처리하여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마틸다 때문에 이곳 저곳 이사철 메뚜기 신세가 되는 레옹>



세 작품의 공통점은 이러한 감성적 터치 외에도 레옹 역을 맡은 장 르노와 모두 함께 작업을 했다는 점이 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뤽 베송 감독의 눈에 장 르노는 자신의 아바타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니키타에서 등장하는 장 르노는 레옹의 프로토타입과도 같은 묘한 관계에 놓여 있다. 니키타에서 장 르노는 주인공 니키타를 돕는 침묵의 특수요원 빅터로 등장하여, 마지막에 니키타를 살리고 고독하게 죽는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임팩트가 매우 강해서 그랬는지, 레옹에서 거의 동일한 컨셉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 어쨌거나 뤽 베송 감독이 자신의 감성을 장 르노라는 걸출한 배우와 신예 마틸다를 통해 뿜어낸 레옹은 세 사람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바로 이 작품을 계기로 뤽 베송은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고, 이후 헐리우드식 대중영화를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뽑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뤽 베송은 헐리우드 진출 이후 자신의 감성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상업성을 극대화한 오락 영화를 만들게 된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레옹 이후의 뤽 베송은 솔직히 기대보다 못 했지만, 어쨌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 저것 다양한 테마와 주제로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실력은 높이 살만 하다.



#4. 레옹과 마틸다로 대변되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


작품의 내면적인 요소로 들어가 보자면, 레옹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던져주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액션 그 이상이겠다. 레옹은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고독한 존재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살인청부밖에 없다. 그는 도시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도시에서 소외된 존재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어두운 일을 하고, 스스로를 홀로 존재하게 한다. 그런 레옹에게 유일한 삶의 낙이라면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비쳐주어야 하는 화분. 이토록 고독한 레옹에게도 소박하나마 삶의 희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화분이 암시하는 것은 레옹과 마틸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옹은 마틸다를 살리면서 화분까지 꼭 가지고 가도록 한다. 자기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더라도 화분은 자기를 대신해 희망을 심어줄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레옹에게 화분보다 더 실질적으로 다가온 희망이 있다면 바로 마틸다이다. 


마틸다도 가정의 불화와 학교생활의 적응 실패로 나름 나락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도 남동생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레옹의 화분과 같이 마틸다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틸다의 희망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스탠스필드에 의해 살해당한 남동생으로 인해 마틸다는 희망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또 다른 희망이 다가왔으니, 그것이 바로 레옹이었던 것.


<악역전문배우 게리 올드만의 명 연기가 일품인 레옹>



마틸다가 울먹이며 레옹에게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대목에서 주의깊게 봐야 하는 것은, 레옹이 문을 열어줄 때 환한 빛이 마틸다의 얼굴을 반긴다는 것이다. 환한 빛은 일종의 새로운 희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장치는 마지막에 레옹에게도 나타난다. 레옹이 마틸다라는 새로운 희망을 통해 삶의 행복과 의미를 깨닫게 되고, 최후의 싸움에서 오로지 마틸다 하나만을 생각하며 힘겹게 탈출하여 어두운 지하 복도를 걸어나갈 때, 레옹의 눈 앞에는 어둠 끝에서 빛나는 밝은 빛만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레옹의 눈은 환한 빛으로 뒤덮이게 된다. 


레옹은 마틸다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일상에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곧 또 다른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총을 손에 쥔 채 자던 레옹이 처음으로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잤을 때, 레옹은 그 한번의 경험으로 이내 침대를 행복이라 느끼게 된다. 재미있게도 마틸다도 반작용처럼 레옹에 의해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직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꼬마숙녀가 레옹에게 킬러의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 킬러로서 변해가는 모습에서, 마틸다 역시 처음에는 어려운 적응을 보이지만, 나중에는 레옹을 놀라게 할 정도의 과감한 직업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는 서로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다가서게 되고, 이윽고 둘 사이에는 나이를 떠나 친구로서, 그리고 이성으로서 순수한 우정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는 어찌보면 유치하고 어수룩하지만, 그 순수함에 오히려 더 큰 애절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 레옹이 스탠스 필드에게 ‘마틸다가 주는 선물’이라면서 최후의 선택을 하는 장면은 끝까지 레옹의 순수함이 마틸다에게 깃들어있음을 보여주어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홀로 남게 된 마틸다는 다시 고독한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뉴욕 거리를 홀로 걸으며, 이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만한 희망이 없어진 고독한 모습을 너무나도 감성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공원에서 레옹의 화분을 묻으며 그녀 역시 레옹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과 함께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는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5. 최고의 킬러와 최고의 악당을 탄생시킨 명 배우들


고독한 킬러로서 완벽하게 변신한 명 배우 장 르노. 원래 그는 프랑스의 국민 배우이자 코미디 배우이다. 태생이 코미디는 아니지만,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벙 뜬 듯한 표정과 말투는 코미디적 요소를 200% 뻥튀기시킨 듯한 그만의 매력.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산 코미디 영화에 장 르노가 상당히 많이 출연한다. <핑크 팬더>에서도 몸개그를 펼치는 어리버리 형사로 등장하였고, <비지터>에서도 시대감각 제로의 덜떨어진 중세 기사로 등장하여 재미를 선사하였다. 하지만 니키타에서 고독한 킬러로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 데 힘입어 레옹에서 주연으로서 발군의 연기를 선보였기에, 장 르노는 필자가 손에 꼽는 명 배우의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이 장 르노를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그는 스페인혈통이며 모로코 태생이다. 본명은 에스파뇰답게 후안 모레노 이 에레라-히메네즈(Juan Moreno y Herrera-Jiménez). 부모님이 모두 스페인인이며, 어렸을 적 가족이 프랑코의 독재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이후 프랑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때부터 배우 경험을 쌓게 되었다. 참고로 그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다.


장 르노 못지 않게 필자가 명 배우로 손에 꼽는 배우가 이 작품에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노먼 스탠스필드로 악역을 소화해낸 게리 올드만. 이 배우가 누구던가? 헐리우드의 악역 전문 배우 되시겠다. 태생적으로 까칠해 보이는 얼굴과 표정, 그리고 광기어린 연기는 그를 헐리우드 최고의 악역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본래 영국 빈민가 출신의 노동계급으로 태어나 불우한 과거사를 가진 게리 올드만은 자신이 배우의 길을 걷게 되면서 영국의 연극/영화 산업계에 뿌리박힌 계급차별에 대한 부당함으로 인해 일찌감치 헐리우드로 도피한 영국출신 배우이다. 태생적으로 비참했던 과거, 지독한 차별, 거기에 알코올 중독까지 아주 다양하게 어두운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연기에는 다크한 기운이 매우 잘 묻어나기도 한다.


이 배우가 맡는 악역은 신기하게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광기어린 악역에서 나름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은데, 게리 올드만이 바로 그러한 명 배우이다. 그래서 작품 내내 마약에 찌들어 비리를 저지르고 악행을 일삼은 스탠스 필드도 왠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는 마력을 뿜어내고 있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 특징을 보면 진지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정말 싸이코가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한결 같은 여유와 뜬금없는 표정과 대사 되시겠다. 최근에는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을 도우는 착한 형사 고든 역을 맡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최고의 선한 역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게리 올드만은 금세기 최고의 악역 전문 배우로 인정받을 만하다. 참고로 고든 역을 맡았을 때 이제 선한 역에 캐스팅되었다며 온 가족이 울었다고 한다.


<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늘 쓸쓸해 보인다>



레옹으로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나탈리 포트만은 당시 나이가 14살. 수많은 오디션 끝에 뽑혔다는 나탈리 포트만은, 뤽 베송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소유한 흙 속의 진주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이 말을 100% 동감할 수 있을 듯. 14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발적이고 카리스마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래서 많은 아저씨 팬들이 이때부터 원조교제에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나탈리 포트만은 출연 당시 흡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를 부모가 매우 반대했다고 하여 결국 담배를 가지고만 있지 피지는 않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한다. 게다가 출연 이후 수많은 성인 남성들로부터 성적 혐오감이 강한 팬레처들을 너무나도 많이 받아서 어린 나이에 정신적 후유증이 매우 컸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정신줄 놓지 않고 잘 자란 덕에 미모도 으뜸이고 두뇌회전까지 으뜸이라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그야말로 엄친녀스러운 매력을 발산해주는 나탈리 포트만. 아무리 엠마 왓슨이 어린 나이에 강렬한 매력을 뿜어냈다고는 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나탈리 포트만만큼 큰 임팩트는 없었다는 느낌이다. 


참고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얘기하자면, 뤽 베송이 영화의 한 장면에 깜짝 출연한다. 토니의 레스토랑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서성이는 남자 중 한 명이 뤽 베송 자신이니, 한번쯤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도 있겠다. 



#6. 한국과 악연이 되어버린 레옹


레옹이 개봉되던 시기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극장 상영시간에 맞춘다는 핑계로 대폭 삭제된 버전이 상영되었는데(실제로는 미성년자가 살인 기술을 배운다는 내용이 심의에 걸렸기 때문), 레옹과 마틸다가 킬러업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약 26분의 장면이 통째로 날라갔더랬다. 이러한 처사 때문에 당시 뤽 베송이 한국 영화산업에 적잖게 실망을 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뤽 베송의 다음 작품인 <택시>에서는 한국인이 매우 추잡하게 그려지며 등장하는데, 아마도 복수의 목적이 있지 않은가 하는 소문이 많았다. 어쨌거나 뒤이어 디렉터스컷으로 26분이 추가되어 완전판이 다시 나왔고, 이를 보고서야 뒤늦게 레옹과 마틸다가 어찌 그리 급 친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애초부터 완전판이 개봉되었던 일본과 홍콩에서는 초대박이 나서, 각종 아류작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고, 특히나 주성치의 <홍콩 레옹>은 레옹의 대표적 패러디물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꼬마돼지 레옹>도 있는데, 이는 안 보느니만 못하니 예외로 하겠다. 



#7. 프랑스 영화 음악의 거장 에릭 세라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세우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음악. 감성적인 비주얼도 대단하지만 감성적인 음악도 그야말로 빤타스틱하다. 그 중심에는 바로 감성OST의 대표 주자 에릭 세라가 있다. 에릭 세라는 뤽 베송과 <그랑 블루>, <니키타> 등을 작품을 통해 함께 하면서 비주얼과 음악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내 왔던 뤽 베송 사단의 숨은 명장이다. 레옹에서도 중간 중간 녹아드는 감성적인 선율은 어쩌면 이토록 도시의 고독한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싶을 정도로 놀라울 따름이다. 


레옹 OST는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정말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영화 OST 타이틀 중 하나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서 주옥 같은 음악으로 전 세계 팬들을 눈물 바다로 지었던 스팅의 Shape of My Heart은, 원래 스팅의 앨범에서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인데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죽하면 스팅의 스 자도 모르던 국내 팬들이 이 노래는 전부 알고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레옹 OST 앨범에는 스팅의 이 노래는 삽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Shape of My Heart를 듣고 싶으면 스팅의 앨범을 따로 사서 들어야 한다. 


레옹이 개봉된 이후 그 놀라운 인기에 편승하여 <레옹 2>가 개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레옹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원제는 <와사비>라는 작품이다. 장 르노가 등장하지만 레옹 같은 킬러가 아니고, 형사로 등장하여 일본에서 마틸다 비스무리하게 컨셉잡은 여자애와 만나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내용이다. <레옹 2>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떡밥에 불과하니 절대 원 작품과 연계하여 보지 말 것을 권한다.


<저녁 노을이 비추는 도시의 소리없는 그림자처럼 고독하기 그지없는 레옹>



#8. 영화를 통해 고독을 느끼다


우리는 오늘도 또 힘든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수많은 군중 속에 파묻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고 고독이 온 몸을 사무칠 때, 빌딩숲 사이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라. 레옹이 그러했듯, 마틸다가 그러했듯, 극도의 정말과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아주 자그마한 삶의 희망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고, 결말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할 지라도 절대 희망을 포기하지는 말자. 레옹이 마틸다에게 비추어 준 밝은 빛과도 같은 그 무언가가 우리를 반겨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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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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