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5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화재예방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셔터아일랜드 포스터. 약간 블랙코미디 장시간호러물 킹덤을 떠올린다>
#1. 가끔 사회가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볼 법만 영화
필자는 가끔 스스로를 프로이트식 정신분열 중에 있다고 얘기한다. 필자 스스로는 무언가가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변에서는, 심지어 이 사회 전체가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세뇌시키는 듯하다. 그럴 때에는 정말로 내가 미쳐버리던지 세상이 미쳐버리던지 둘 중의 하나밖에는 안될 것이리라.
최근 밥벌이로 인해 필자는 이러한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필자가 속한 조직에서 필자는 정말로 톱니바퀴들 사이에 놓인 베어링 같다고나 할까? 즉, 코드가 심히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정말 나만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경우가 있다. 이러한 필자의 심정을 이해해줄 것만 같았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셔터 아일랜드>이다.
처음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다고 해서 안 보려고 했지만, 주연배우의 비호감을 떠나 작품 자체가 매우 신선하고 반전도 나름 깔끔하면서 구성이 치밀하다고 해서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왜 필자가 레오나르도 디씨의 작품을 싫어하는지는 차차 밝히기로 하면서, 일단 작품의 스토리부터 헤집고 들어가자.
<나름 연방수사관인데 넥타이가 저게 뭐꼬? 섬으로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2. 스토리 - 달아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진실
때는 1954년.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회가 암울했던 당시의 미국 보스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가고 있고, 그 배 안에는 연방수사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동료요원 척 아울(마크 러팔로)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정신이상 중범죄자만 격리한다는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이 홀로 서 있는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 최근 이 곳에서 환자 1명이 실종된 사건으로 인해 이를 해결하고자 배에 올랐다.
섬에 도착한 테디와 척 앞에 펼쳐진 정신병원은 마치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으시시한 분위기였다. 교도관을 연상케하는 경비원이 테디와 척의 무기를 회수하고서야 겨우 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서 꽃을 만지고 있는 환자들이 확실히 중증 정신이상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 어떤 미친 환자가 테디를 보자 싱긋 웃는 것이 아닌가! 이에 테디는 질겁하며 원장에게 달려간다. 병원 원장인 닥터 존 코리(벤 킹슬리)는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며 먼저 수사가 펼쳐질 수 있게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실종된 환자는 레이첼 솔란도(에밀리 모티머)라는 여자로, 평소 아무런 증세도 없었다가 갑자기 자식 3명을 살해하고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에 레이첼의 방을 조사하던 테디는 서랍 뒤쪽 바닥 아래에서 쪽지를 발견한다. 쪽지에 써 있는 내용은 “제 4의 법칙, 67은 누구인가?”였다. 대체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모를 상황. 테디는 이번에는 사건 당일 목격자일 가능성이 높은 간호사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펼친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뚱땡이 아줌마를 심문하던 중 그녀가 갈수록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테디. 그리고 마침 척이 물을 가지러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는 갑자기 테디의 수첩에다가 글씨를 써 준다. 그러고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돌아가는 뚱땡이 아줌마. 테디는 그녀가 자신의 수첩에 쓴 글을 보고 놀란다. 'RUN'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한편 존 코리 박사는 전두엽제거술이라는 흥미로운 얘기를 꺼낸다. 이는 일종의 뇌수술로, 증세가 매우 심각한 환자의 경우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뇌수술로 전두엽 일부를 제거하여 그들의 기억을 없애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좀비 상태로 만든다는 것. 테디는 이 것이 불법이라고 반문하자, 코리 박사는 그것이 최후의 방책일 뿐이며 자신은 무엇보다도 환자의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심리적 치료를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병원 부원장인 닥터 제레미아 네링(막스 본 시도우)은 코리 박사와는 전혀 다른 인물. 그는 환자를 마치 실험동물 취급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자신은 전두엽제거술이 최고임을 강조한다.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의문의 실종, 그리고 사건을 수사할수록 자꾸만 다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 그리고 레이첼의 주치의라는 시한 박사가 사건 다음날 바로 휴가로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끔찍한 뇌수술까지 자행하는 이 곳.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서 테디는 이 곳에서 엄청난 음모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테디의 꿈은 그에게 이상한 내용을 던져준다. 2차 대전 당시 참전하여 독일의 패망을 바라본 그는 점령지에서 독일 장교의 자살을 목격하고, 또한 나치 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유태인들의 시체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또 한편, 오래 전 화재로 죽은 아내가 나타나 이 곳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꿈에서 깨는 테디.
<병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중인 테디. 저 뒤의 좀비같은 간호조무사들을 보라>
테디는 계속해서 사건을 풀어나가려 하지만, 단서는 좀처럼 잡히질 않고, 단지 기존에 이 곳에 환자가 66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쪽지에 쓰인 단서인 '67은 누구인가'는, 바로 이 곳에 66명의 환자가 아닌 67번째 환자가 있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인가? 하지만 코리 박사와 네링 박사는 그저 웃으면서 이를 무마한다.
테디는 지치고, 결국 다음 날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날 밤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배는 뜰 수 없게 되어버렸고, 테디는 그 날 밤 꿈에서 또 다시 아내와 전쟁의 악몽을 꾸며, 이 곳의 비밀을 파헤치리라 다짐한다.
계속되는 악몽. 이제는 레이첼이 죽였다는 자식 3명이 나타나서는 왜 빨리 안 와서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느냐는 협박성 악몽까지 시달리게 된다. 그러는 한편 아내는 계속해서 앤드류 레이디스가 바로 이 병원 어딘가에 있다고 교육까지 시켜준다. 각종 악몽에다가 사건 미해결에 따른 조급한 심정 등이 짬뽕퍼레이드를 펼치며 갈수록 테디를 압박하고 있는 실정.
테디는 다음 날 폭풍우를 뚫고 숲 속으로 향한다. 척은 말리려고 따라가지만 테디는 레이첼이라는 여자가 반드시 이 곳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묘지. 테디는 묘지를 조사하던 중 강한 폭풍우에 나무가 부러지는 등 위험이 느껴지자 일단 묘안치소로 들어가 몸을 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테디는 척에게 왜 이 곳에 왔는지를 얘기해준다. 테디는 이 곳에 온 목적이 단순히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외에도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하나는 이 곳에서 불법적인 뇌실험이 행해지고 있고, 그 뇌수술이 아마도 등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자신은 오래 전에 이 곳에서 탈출한 환자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가 바로 이 곳으로 이송되었고, 자신은 아내를 위해 그 놈을 만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밖에서 경비원이 차를 타고 달려와 이 둘을 구하러 왔고, 그 둘은 무사히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병원은 밤사이의 폭풍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마침 초절정 중증환자들이 수감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C병동의 벽돌이 부서진 것을 보고 테디는 이를 틈타 C병동으로 향한다. 테디와 척은 간호사인 것처럼 위장해서 C병동을 탐험한다. 어둡고 칙칙하며 어디선가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곳. 그 곳에서 어떤 격한 환자를 만나게 되고, 테디와 척은 이를 쫓아서 더욱 깊숙한 곳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환자와 테디는 격투를 벌이고, 이를 제압한 테디는 척에게 환자를 병실로 데려다주고 오라고 한다. 그러고서는 테디 자신은 레이디스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곳을 찾아나선다. 그런데, 정말 어두운 병동 끝 쪽에서 누군가 '레이디스'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레이디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 그 곳에는 놀랍게도 과거에 병원을 탈출하여 자신에게 이 곳의 음모를 알려 준 조지 노이스가 있었던 것. 테디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지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노이스는 테디 너 때문이라며 어서 빨리 꺼지라고 한다. 이에 이제는 아예 라이브로 등장하는 아내의 환영. 조지 노이스는 아내의 환영에 시달리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 아내의 귀신드립에 테디는 결국 아내의 의지를 실현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꽃다운 미모는 서서히 사라지고 중년의 세계로 접어든 디씨>
#3.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간만의 명작 스릴러
필자가 스토리를 객관적으로 기술했는지 의문스럽다. 이 작품은 엔딩을 보고 나서도 계속해서 여운과 의문이 남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을 보고 나면 대부분은 아마 “그래서 뭐가 진실일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쓴 스토리, 특히 스포일러 부분을 보고 나면 어쩌면 두 가지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어쨌거나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부디 필자의 글만 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작품을 보고 난 뒤에 자기 나름의 결말을 추측하기를 바란다.
일단, 이 작품은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목은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정해진 것이고, 실제 원제는 <Shutter Island>이다. 즉, 영화는 원작소설과 동일한 제목을 차용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과거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원작과 달리 심히 실망스러운 결말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긴장감과 치밀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다분하다. 이 치밀함이 비록 원작 소설만큼의 초절정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근래의 스릴러 영화치고는 꽤 훌륭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레오나르도 디씨가 보기 싫어도 이 작품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4. 의외로 여운이 진하게 남는 결말
필자가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부분은 바로 앞에서도 언급한 애매한 결론. 늘 작품을 보고 나서도 고민하게 되고, 더 보게 되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필자는
이 작품이 딱 그러한 느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해주고 싶다.
대체 무엇을 고민하게 되는 것일까? <공각기동대>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아주 무거운 철학적 주제까지는 아니지만, 주인공에게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하는 끝없는 의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가볍고 단순한 문제 같고, 감상 중간에도 이미 반전을 눈치챌 수도 있을 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펼쳐지는 진실과 거짓의 싸움,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태도가 너무나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장면이자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테디가 보여주는 그의 결심과 대사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작품을 아주 촘촘히 살펴보아야 한다.
자, 이제 그 고민에 대해 접근해보자. 일단, 이 내용을 읽기 전에 스포일러성 내용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음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 애매한 결말에 대해 미리 알기 싫다면 아래의 내용은 건너뛰고 배우 소개 등부터 읽기를 바란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은 바로 주인공 테디가 정말로 앤드류 레이디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초반에는 모든 것이 테디가 생각하는 병원의 음모론인 것처럼 흐른다. 사실 등대에 올라간 후 존 코리 박사가 설명을 하는 부분까지도 이는 음모론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갑자기 음모에 굴복한 나머지 쓰러지고 나서 자신의 꿈 속에서 박사가 말한 대로 아내를 살해하는 것을 보고나서는 그 때부터 이야기의 흐름은 테디가 정말로 미쳐버린 범죄자 앤드류 레이디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게 테디는 결국 굴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들은 “결국 테디가 진건가? 아니면 정말 테디가 미쳐버렸던건가 보다”하고 약간의 허심탄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테디는 자신의 주치의였다는 시한 박사에게 의외의 태도를 보인다. 자신은 아직 이 병원이 음모로 가득찼다는 이야기이다. 즉, 앤드류로서 자각했을 것 같았던 테디가 다시 맨 처음의 테디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은 어쩌면 “아차”할 수도 있겠다. 역시 테디는 속은게 아니었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의 테디의 대사와 행동은 더욱 알 수 없는 의문을 던져준다. 그는 “끔찍한 괴물로 사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죽느냐”는 말과 함께 저항없이 박사를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우리는 그가 향하는 곳이 다름아닌 등대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여편네가 도대체 뭐하는 여편네여? 니 정체가 모니???>
테디의 마지막 대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끔찍한 괴물이란, 아마도 앤드류로서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고, 선량한 사람이란 뇌수술을 받은 테디로서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테디의 애매모호한 대사에 영화는 비록 아무런 답도 주지 않지만, 그가 순순히 어떤 곳으로 끌려갔다는 것에서 그는 아마도 후자의 자신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결국 맨처음 던진 질문인 “테디가 앤드류인가 아닌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즉,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은 테디가 앤드류가 맞고 그는 결국 모든 기억을 되찾은 뒤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미쳐버린 광기에 사로잡힌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싫어, 이를 잊기 위해 스스로 뇌수술을 받기를 택한 것이다. 결국 그가 마지막에 시한 박사에게 보여준 테디로서의 모습은 일부러 뇌수술을 받기 위해 꾸민 놀라운 속임수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를 쉽게 받아들기는 힘들다. 설마 주인공이 정말로 앤드류일까?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고, 세상은 늘 그런 정의파를 속여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끔찍한 곳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테디가 코리 박사의 설명에 의해 앤드류로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그것이 그야말로 너무도 완벽하게 꾸며진 거대한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는 영화가 뚜렷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SF 명작 <브라질>에서도 주인공 샘이 테디와 비슷한 환경에 처하지만, 감독은 마지막에서 그 모든 것이 샘의 꿈에 불과했음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다. 분명 무언가 음모가 숨어있을 것이고, 테디는 그것에 의해 결국 희생당함으로써 우리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의 결정적 장면을 논외로 하고, 작품 속에 숨어있는 암시장치들을 통해 과연 무엇이 답인지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필자도 감독의 의도를 100%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 일부는 놓쳤을 수도 있고, 일부는 과대 해석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최종 결론은 각자가 알아서 내길 바란다.
#5. 두 가지 결론에 대한 고찰
먼저 테디가 앤드류가 맞다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겠다. 처음 테디가 섬에 왔을 때 병원 주위에 둘러쳐진 철조망을 보고 테디는 그 곳에서 전기가 흐르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이미 그가 오래전에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암시이다. 더욱이 그는 C병동이 어느 건물인지도 알고, 폭풍우 속에서 묘지가 있는 곳도 잘 찾아간다. 그리고 C병동 안에 들어갔을 때 조지 노이스를 찾아낸다. 이러한 사실들은 테디의 기억 속에 이미 병원이 익숙한 곳이라는 것이다. 처음 병원에 방문했다는 테디에게 정원에 있던 어느 환자 한 명이 웃으면서 그를 맞이해준다. 이는 그 환자가 테디를 이미 알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테디는 레이첼의 방에서 판자를 뜯고 그 곳에 쪽지가 있음을 알아낸다.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이 그렇게 꾸며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4의 법칙과 67번째 환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테디가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도록 꾸며진 장치인 것이다.
<초대 간디였던 벤 킹슬리. '간디 2'라는 전대미문의 작품도 있지만, 그는 이 작품과 하등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조지 노이스라는 인물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그는 계속해서 레이디스라는 이름을 읊조리고 있었고, 이를 따라 테디가 접근한다. 여기에서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디는 계속해서 조지 노이스로부터 레이디스의 행방에 대해 묻지만, 조지는 계속해서 여자를 제발 떼어내라고 한다. 무슨 여자? 조지는 이미 테디에게 환영으로 나타나는 그의 죽은 아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테디가 아내를 죽이고 나서 미쳐버렸다는 것을 조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만 그 여자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설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지가 얼굴이 망가져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던 조지를 향해 앤드류인 테디가 죽살나게 쥐어팼던 것이다.
테디가 앤드류라는 암시는 험상궂은 경비대장의 말이나, C병동에서 격투를 벌인 환자의 말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즉, 병원 내의 모든 사람들은 테디가 앤드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테디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들이 꾸민 속임수인 만큼, 그들의 어설픈 부분이 또한 암시로 작용한다. 척이 맨처음 경비원에게 총을 꺼내줄 때 그는 연방수사관답지 않게 어설프게 총을 찾아서 준다. 그리고 탐문수사를 받던 간호사와 환자들이 하나같이 테디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꿈에 나타나는 아내의 모습도 되짚어 보면, 그녀가 화재로 죽었다고 나오는 부분에서 이상하게도 배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꿈에서 나타나는 아이는 테디에게 왜 자기들을 구해주지 않았냐고 질문한다. 이는 테디가 집에 늦게 도착한 나머지 아내가 이미 아이들을 익사시켰기 때문이다. 꿈 중간에 테디가 아이를 안고 가는 장면도, 익사해서 죽은 아이들을 건져낸 테디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런 모든 꿈속 내용을 존 코리 박사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앤드류가 테디라는 이중자아를 만들어 내면서 실컷 떠들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디가 앤드류라고 가정해도 몇 가지 의문은 남아있다. 맨 처음에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토록 중증 환자를 설마 진짜로 섬 밖으로 내보냈다가 다시 들어오게 했을 것인 것? 배를 타는 장면이 테디의 환상이었다 해도 그 이후에 펼쳐지는 스토리와는 너무나도 현실처럼 딱딱 들어맞는다는 부분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또 다른 증거는 탐문 도중 뚱땡이 아줌마가 테디에게 'RUN'이라고 쓴 장면이다. 왜 도망치라고 썼을까? 이것은 정말로 이 병원이 끔찍할 정도로 무서운 음모를 가진 곳이니 테디보고 도망가라고 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오히려 뚱땡이 아줌마가 테디로서 살아가고 있는 앤드류가 불쌍해서 그냥 테디로써 도망쳐서 살아가라는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만난 레이첼이라는 여자는 그렇다면 테디의 환상일까? 사실 이 부분은 애매하다. 그 여자가 단순한 환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간호사 중 한명이 레이첼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테디의 자각을 도와야 할 간호사가 오히려 테디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드는 말들을 했을까? 테디라는 자아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랍도록 정교하다는 것이 다소 의문이다.
자, 당신은 과연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영화를 보고 나서 나름의 답을 얻기를 바란다. 위의 논란에 대해서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필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갈수록 얼굴 모양이 야구장 홈 베이스 모양으로 바뀌어가는 디카프리오>
#6. 그래도 끝나지 않는 다른 의문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의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왜 병원은 테디가 앤드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어마어마한 속임수를 썼던 것일까? 이미 3년 전부터 있었던 환자인데, 이토록 중증이면 바로 뇌수술을 시도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존 코리 박사의 아주 중요한 대사가 있다. 코리 박사가 뜬금없이 테디에게 전두엽제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나서 코리 박사는 자신이 그 수술을 지양하고, 우선적으로 환자를 이해하는 심리적 치료를 장려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무언가를 속이기 위한 위선으로 보였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코리 박사가 진실을 말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코리 박사는 등대에서 테디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선의 방법을 써 봤지만 실패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진심으로 테디의 상태를 심리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이 모든 속임수가 바로 일종의 테디에 대한 심리치료였던 셈이다. 이를 위해 무려 병원의 모든 관계자들이 짜고치는 고스톱판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테디는 자동차까지 박살내가며 쌩난리를 쳤던 것. 이에 코리 박사는 더 이상은 어렵다는 결심을 하고 테디에게 결국 진실을 강제주입시키게 된다. 마지막에 테디가 미친 모습을 또 보이자 이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코리 박사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아마 뇌수술을 좋아라하는 네링 박사라면 므흣한 미소를 던졌을지도.
#7. 필자가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디씨의 이야기
자, 이번에는 가벼운 얘기로 넘어가보자. 왜 필자가 레오나르도 디씨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시간이다. 결론적으로 답은 “그냥”이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왠지 모르게 누군가는 싫고, 누군가는 좋은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에는 디씨가 딱 그러한 경우였다. 디씨가 인격적으로나 배우로서의 실력 등에서 비호감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필자의 대뇌 안에 뻗어져있는 뉴런의 일부에서 알 수 없는 미세한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여 전두엽을 타고 대뇌피질을 한번 여행한 뒤 중추신경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도록 전달받았을 뿐이다. 어쩌겠는가… 본인도 제어할 수 없는 정신적 프로세스를.
아무튼 그래서 디씨가 나오는 영화는 사실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초대박 명작 <타이타닉>마저 처음과 끝 부분만 봤을 정도로 디씨가 등장하는 씬은 일단 재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디씨를 봄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회하는 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와 재미가 있을 거라는 필자의 본능적 욕구로 인하여 보게 되었고, 지금와서는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필자는 디씨가 나오고 말고를 떠나서 작품에서 끊임없이 던져주는 의문들에 대한 고민이 이미 머리 속을 꽉 채웠던 것이다.
필자에게서는 나름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이 작품의 실제 흥행은 어떠했을까? 원작 소설이 이미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그 후폭풍에 힘입어 이 작품도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적어도 흥행에 있어서는 나름 짭짤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혹자는 놓칠 수 없는 긴장감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평했는가 하면, 다른 평론가들은 감독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B급 졸작이라는 혹평을 가했다. 좋게 말하면 치밀한 구성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복잡하기만 하고 초점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 역시 작품을 보는 관객의 마음에 달린 것이려니 싶다.
#8. 명장 마틴 스콜세지의 휴식과도 같은 작품
이 작품은 나름 으시시한 긴장감도 있고, 보는 내내 관객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력에,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와 고딕스러운 분위기 연출 등이 나름 수준급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작품의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역량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아저씨가 누구인가? 영화를 좀 안다 싶은 사람은 이 사람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하듯 꿈과 현실 속에서 거의 귀신수준으로 등장하는 테디의 아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면서 나름 독특한 인생관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적나라하게 투영하여 뛰어난 작품성과 비판 의식을 보여 온 감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영화의 배경을 주로 뉴욕으로 잡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뉴욕의 자그마한 이탈리아인 구역인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라오면서 어메리카 드림으로 대변되는 뉴욕의 뒷모습과 허황된 꿈에 대한 맹목적 도전과 그에 따른 좌절 등을 겪어온 그였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뉴욕은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또한 가장 미국적이다. 이 말은, 뉴욕은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활발하고 국제적이며 거대한 도시인 반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부분 또한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도시라는 의미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표작 중 필자가 기억하는 것은 <택시 드라이버>와 <분노의 주먹>,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 <애비에이터>, <디파티드> 정도인데, 대부분의 작품으로 그는 깐느나 아카데미에서 여러 번 수상을 했을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초기의 작품은 그의 작품성을 강조한 경향이 있어서 흥행하고는 조금 거리는 멀었지만, 90년대 들어 흥행을 의식한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버트 드 니로라는 걸출한 스타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만들어 작품에 출연시키고 있는데,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돈독한 사이라고 한다. 심지어 로버트 드 니로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마약 중독으로 입원 중일 때 그가 아니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뚝심을 보여준 일화도 있다. 그런데, 로버트 아저씨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자 마틴 스콜세지는 이제 좀 더 젊은 다른 페르소나를 찾게 되었고, 그 주인공으로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갱스 오브 뉴욕>을 시작으로 <애비에이터>, <디파티드> 등에 줄줄이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9.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알고보면 빠방한 캐스팅
이번에는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필자가 싫어라 하지만 그래도 소개는 해야겠다. 이 친구 의외로 혈통이 복잡하다. 독일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북부유럽과 남부유럽의 혈통을 모두 타고난 친구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모의 밸런스가 잘 잡혀서 전 세계 여성들의 안구를 촉촉하게 만드는 선천적 복을 타고났을 지도.
디씨가 그의 미모와 이름을 드높이기 시작한 것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면서였고, 이후 <타이타닉>을 통해 그야말로 전 세계의 아이돌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디씨의 데뷔작을 보면 재미있게도 <크리터스 3>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필자는 아주아주 재미있게 본 시리즈물이다. 우주의 귀엽고도 끔찍한 두더지 모양 괴물들이 지구로 날아와 인류를 때려잡으며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를 춘다는 B급 호러코믹물이다. 이 시리즈의 3편에서 주인공 가족의 어린 아들래미 역으로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꼬꼬마가 이토록 큰 인물이 될 줄이야. 아무튼 초반엔 얼굴로만 먹고 사는가 싶더니, 지금은 중년 아이돌이 되면서 연기력이 대폭 상승하여 연기자로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 디씨는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콤플렉스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의 손이다. 그는 자신의 손이 너무도 투박하고 짧다막하다고 해서 손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몇몇 초기의 작품을 보면 그의 손이 교묘하게 가려지거나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컷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고 연기력으로 승부하려는지 이 작품에서는 손을 감추거나 하는 의도적인 컷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2011년에는 애니를 원작으로 한 <아키라>에 출연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디씨 외에도 출연진들은 그야말로 빠방하다. 존 코리 박사 역으로 나온 벤 킹슬리는 이름을 몰라도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 아닌가 하고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빛나는 민대머리에 오똑한 코. 어디서 봤더라? 그의 이미지가 우리가 아는 간디와 너무도 닮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는 1982년 명작 <간디>에서 주인공 간디로 출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명 배우 되시겠다. 실제로 그는 영국 태생이지만 혈통이 인도인이라서 인도식 이름도 가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극 배우로서 탄탄한 실력을 쌓고 영화에서도 굵직한 역을 맡으면서 명 연기를 선보여 영국에서도 정말 명인에게나 붙는다는 'Sir'의 호칭이 붙은 몇 안되는 배우이다. 참고로 이 아저씨는 맡는 역할과는 달리 꽤 여자를 밝히는 편인지, 결혼은 4번이나, 그것도 30살 차이가 나는 어여쁜 영계랑 결혼하신 대단하신 분이다. 정말 Sir로 추앙받을 만 하다.
<뭔가 허접한 연방수사요원이려니 싶더니만 정체가 참으로 황당했던 바로 그 인물>
테디의 동료 요원이자 시한 박사로 나온 마크 러팔로는 <윈드토커>와 <콜래트럴>에서 조연으로써 활약하였고, 연극무대에서는 여러 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첼 역으로 나오는 에밀리 모티머는 <스크림 3>에서 주인공 떼거지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고, 테디의 아내인 샤넬 역의 미쉘 윌리엄스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주인공들의 상대역으로 분하며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냉소적인 역할로 나오는 제레미아 네링 박사 역의 막스 본 시도우는 우리들의 눈에 많이 익은 배우이다. 어디서 봤더라? 벤 킹슬리가 간디였다면, 이 할아버지도 뭐 하나는 해먹었을 법 한데… 그렇다. 이 할아버지가 바로 <엑소시스트>에서 랭커스터 신부 역으로 등장한 그 분이시다. 무언가 대박칠 것 같은 포스로 등장하셨다가 씻김굿 하던 중에 절명하시는 바로 그 분이다. 이 외에도 <저지드레드>에서 악덕 판사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악의 축인 라마 버제스로 등장하시면서 사악한 노익장을 과시한다. 의외로 유명한 이분은 현재 스웨덴이 낳은 최고의 남자배우로서 그야말로 자국에서 국민할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다. 참고로 곧 개봉할 신작 <로빈후드>에서는 로빈후드의 아버지인 월터 록슬리 경으로 출연하여 또 한번의 노익장을 과시할 예정이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명 배우가 한 명 있다. 바로 조지 노이스로 등장한 잭키 얼 헤일리. 사실 작품에서는 얼굴도 일그러진 채로 나오고 조명조차 변변치 못하게 어둡게 등장하는 지라 나름 안타까운 배역인데, 이 친구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 아직까지 명 배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바로 이 친구이다. 배우로 데뷔하였다가 때려치우고 경비원, 리무진 기사 등 그야말로 다양한 밥벌이로 막장 인생을 살다가, 15년이 지난 후에 <올 더 킹즈 맨>이라는 작품으로 컴백하여 일약 명 연기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인 <리틀 칠드런>에서 장애인 역할을 눈부시게 열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필자에게 그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던 명작 <왓치맨>에 등장하게 된다. 바로 끝까지 정의와 진실의 시소게임 사이에서 진실을 택하고 마는 외로운 흑기사 로어셰크 역을 맡았던 것이다. 비록 출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앞도 안 보이는 가면쓰고 등장하느라 그의 동정심 유발하는 면상을 잘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그 역으로 인하여 필자는 이 배우는 분명 빼어난 조연이 될 것이라는 삘을 받았더랬다. 실제로 잭키 자신도 로어셰크 역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욕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왓치맨의 팬이었고, 특히 로어셰크를 죽도록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왓치맨 제작 계획이 발표되자 스스로 오디션 비디오를 만들어서 제작진에게 보내 로어셰크는 바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였고, 마침내 그 역을 따냄으로써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던 것이다.
#10. 감독의 후광 때문에 본전도 찾기 어렵게 된 명작
이토록 빠방한 배우들과 더더욱 후덜덜한 감독이 만난 이 작품이 왜 예상외로 혹평이 많았던 것일까? 이는 지극히 감독의 명성에 대한 후광효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전 작품에서 지겹도록 무겁고 축축한 도시인들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력이, 도시가 아닌 섬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심리 스릴러물인 이 작품에서는 빛을 발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에서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근래 들어 최고의 연기였다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는 B급 저질 영화라는 악평까지 받았어야만 했다. 이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만루홈런을 가하는 참으로 잔인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그가 원작에서의 느낌을 영화를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지만, 단순히 감독의 기존 작품의 명성에 기반하여 새로운 작품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과연 옳은 평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도 과거에 그야말로 쪽박 찬 작품도 많이 만들었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에게 있어 잠시 쉬어가는 작품이라고 순화해서 평가해도 좋지 않았을까?
#11.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구요
옛 말에 세 사람만 있으면 그 중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쉽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최근 TV프로그램의 실험에서도 두 사람 이상이 옳다고 하면 나머지도 거짓임을 알면서도 옳다고 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확대해석해보면, 우리가 듣고 보고 접하는 모든 정보들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이를 접하는 대중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가공할만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한 수많은 작품들, <이퀄리브러임>이나 <데몰리션 맨>, <아일랜드>, <브라질>, <빌리지>, <늑대의 후예들> 등이 모두 통제받는 사회를 배경으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작품들이다. 비록 방법론에 있어서는 흥행을 감안한 액션 우선주의를 표방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정보의 통제에 의한 대중의 바보화는 확실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위험인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내가 미쳤다는 거냐 안 미쳤다는 거냐? 아님 너가 미쳤다는 거냐?>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정보의 통제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군사정권 체제에서는 확실히 이러한 경향이 짙었던 듯싶다.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 국민들은 이를 오히려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았던가.
현재에도 이러한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나 언론이 얘기하는 많은 내용들이 어쩌면 조작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9.11 테러가 났던 것도 어쩌면 거대한 거짓말에 전 세계가 속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음모론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어쨌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오직 그 주체만이 알 뿐이다. 이를 그저 보고 듣는 우리들로서는 여론이 흐르는 방향, 대중이 흐르는 방향으로 휩쓸려 그저 바보집단 중의 한 사람이 되어버릴 뿐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미쳐버렸고, 그 중 나 혼자만이 정신이 멀쩡한 정상인이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혼자만 미친 것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정말로 미쳐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눈을 뜬 정상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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