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자단'에 해당되는 글 2건

※ 본 리뷰는 필자가 2010년 2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8인: 최후의 결사단 (十月圍城: Bodyguards And Assassins)



필자가 얼마 전 <엽문>이라는 중국 근현대사의 맥을 짚는 휴먼 다큐멘터리식 영화를 접하면서, 중국이 과거의 왕구라 황당무계 무협액션 영화에서 벗어나 보다 철학적이고 주제의식이 강한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내려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이번에 접한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도 처음에는 단순 액션영화인 줄 알았으나 오히려 엽문보다 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녹아들어있는 무거운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고 순간 움찔했더랬다. 영화 제목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스토리와 주제의식으로 진행되는 일명 섞어찌개식 난잡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에 대해서 리뷰해 보겠다.


<결사단은 커녕 거리의 거지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슬픈 이야기>



#1. 스토리 - 어지러웠던 중국 근대의 정세만큼 어지러운 주인공들의 막장 드라마식 결사의 향연


왜 필자가 섞어찌개식 난잡 영화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알아보고, 일단 스토리부터 짚고 넘어가자. 때는 1900년 초 청나라 말기, 외세의 침입이 득실거릴 때이다. 일찍이 한족의 나라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인 만큼 한족의 지식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식인 중의 한 명인 양구운(장학우)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중국의 근대화를 부르짖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의해 두뇌에 살포시 터널이 뚫리면서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한다. 이렇듯 당시의 중국은 근대화를 추구하는 혁명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청나라 조정의 암살자들간의 치열한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1906년 10월.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이러한 피바람의 전운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아무래도 청나라의 힘이 잘 미치지 못했었던 것. 그러다보니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인 손문은 홍콩에서 중국의 내노라하는 지식인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13성의 대결의’라는 것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에 이를 절대적으로 저지하려는 청나라 조정에서는 암살자 염효국(호군)과 일당을 홍콩으로 보내 손문을 척살할 것을 명한다. 손문의 홍콩 방문을 위해 미리 홍콩에 들어온 손문 서포터즈 넘버 원 진소백(양가휘)은, 손문 홍콩 무사 입성을 위해 서포터즈를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간 청나라 군대에서 배척당하여 연극단원으로 위장 후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던 방장군(임달화)를 만나 서포터즈에 가입시키고, 또한 절친이자 돈줄인 이옥당(왕학기)을 만나 또 다시 3천만 땡겨달라고 조른다. 그러면서 이옥당의 절세미남 아들인 이중광(왕백걸)을 꼬셔 서양학을 배우게 하고 은근 자신의 사상을 세뇌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사건의 원흉은 혁명이랍시고 설레발치는 진소백이다. 세월 앞에 무릎 꿇은 양가휘 형님>



한편 홍콩에 도착한 염효국은 돈벌이라면 온갖 심부름을 다 하는 무늬만 경찰 심중양(견자단)을 시켜 진소백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사하게 한다. 그러던 중 이중광이 서양 대학에 붙었다고 집안 잔치를 벌리는 이옥당의 집에 잠입한 심중양은 창문을 통해 달아나던 중 이옥당의 수많은 마누라 중 한 명인 월여(판빙빙)을 만나 과거에 묘한 인연이 있음을 암시하면서 자취를 감춘다. 


손문이 홍콩에 도착하기로 한 날이 이제 3일 정도 남았을 시점에서, 거리에서는 손문이 홍콩에 온다는 소식을 대거 보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동조하여 시민 혁명주의자들은 거리에서 전단을 뿌리며 중국 근대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전용 운전사인 아사(사정봉)가 모는 인력거를 타고 홍콩 거리를 싸돌아다니던 이옥당은 시민 혁명주의자 가운데 자신의 아들인 이중광이 있음을 알고 깜놀한다. 아들을 말리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에 저항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아들. 하지만 묘하게도 거리의 시민들은 이중광의 호소에 동조하며 근대화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화가 난 이옥당은 진소백에게 달려가 왜 자신의 아들을 끌어들였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진소백은 이옥당도 이미 혁명당의 일원에 가담되어 있다며 중국의 혁명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오로지 아들 출세하기만을 바라보며 살아 오던 이옥당에게는 피가 거꾸로 솟는 일. 


친구를 잃은 진소백은 무언가 짧은 편지를 남긴 후 거사를 치르기 위해 방장군의 극단으로 향한다. 하지만 심중양은 암살자 염효국의 심부름으로 미리 극단에 경찰이 없도록 조치하고, 암살자들은 느긋하게 극단에 쳐들어간다. 진소백은 줄행랑을 치고, 방장군과 그의 딸 방홍(이우춘)은 필사적으로 진소백을 보호하려 하지만, 딸이 더 아까웠던 방장군은 딸을 기절시켜 목숨을 건지게 하고 자신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방홍이 극단으로 달려오지만, 이미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단원들이 시체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뜬금없이 이옥당도 극단으로 달려와 단원 모두가 개죽음 당한 것을 깨닫고, 그 와중에 절친인 진소백의 시그네쳐 에디티드 펜슬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죽거나 혹은 납치당했음을 알게 된다. 


평소 진소백이 운영하던 중국일보 신문사에 온 이옥당은 진소백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발견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이옥당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혁명의 불씨를 일으켜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읽게 된다. 순간 사미부(증지위)가 경찰서장으로 있는 홍콩 경찰이 들이닥쳐 신문사를 폐쇄하고 모두 해산 명령을 내린다. 이에 열받은 이옥당은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혁명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할 것이라면서 일종의 선전포고를 내린다. 이에 감동받고 열혈지지하는 신문사 직원들.


<혁명가와 암살자가 스승과 제자라는 막장스러운 연결고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섞어찌개식 영화>



손문이 홍콩으로 오기로 한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이옥당은 드디어 손문 완벽 보호 작전을 위해 보디가드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보수 한 푼 없이 해야 하는 보디가드 역에 이옥당과 지인들이 합작하여 여러 듬직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니, 이 중에는 복수심에 가득 찬 방장군의 딸 방홍도 껴 있었다. 얼마 전 이옥당의 집안 잔치때 쌀 가마니를 얻어간 쵸두부 매점 주인인 거구의 사나이 왕복명(바특)도 합세하고, 그저 거리에서 동냥이냐 하면서 이옥당이 주는 돈으로 매번 아편만 펴대던 걸식도사 유욱백(여명)도 이옥당이 선물로 준 철부채에 감동하여 보디가드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매번 운전사 노릇만 하던 아사도 껴달라고 조르고, 이에 이옥당은 보답으로 아사가 사모하던 사진관 알바생 아손(조원)과 혼사를 맺어준다. 


한편 납치구금당한 진소백은 손문을 암살하려는 염효국이 자신의 과거 제자임을 알고, 그와 사상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오로지 황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된다는 막무가내식 철학으로 만민이 평등하다는 진소백의 철학을 개무시하는 염효국. 결국 사제간의 정을 끊고, 염효국은 대원들을 데리고 항구로 떠난다. 


손문 도착 하루 전. 이옥당은 여러 사람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야말로 한 순간의 실수와 여유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VIP 보호 작전.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대체 자신이 누구를 지켜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 이 작전을 위해 월여는 심중양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알고봤더니 심중양과 월여는 과거 연인사이였던 것. 하지만 심중양이 바다이야기(라 쓰고 도박이라 읽는다)에 빠지면서 집안을 말아먹고, 이에 월여는 그의 아이를 잉태한 채 이옥당에게 시집갔던 것이다. 결국 월여는 히든카드로 심중양과 자신이 낳은 딸래미를 꺼내고, 이에 제대로 쇼크먹은 심중양은 딸래미 크리에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줄 것을 결심한다.


<뛰어야 산다는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인력거 부대>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진소백은 자신의 배를 가르는 퍼포먼스를 손보이며 탈출에 성공하고, 유욱백과 술이나 쳐먹으면서 개똥철학이나 나누고 온 이옥당에게 달려와 겨우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소백은 모든 사람들에게 손문을 보호하기 위한 필사의 전략을 공개한다. 바로 누군가 한 명이 손문을 대신해 단 1시간동안만 홍콩 시내를 싸돌아 다니면서 암살자들의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작위 투표에서 손문 대리인으로 이중광이 뽑힌다. 


드디어 손문이 홍콩에 도착하는 날이 밝아오고, 진소백을 비롯한 보디가드들은 항구 주변에서 잠복 근무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미 암살자들은 거리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은 상태.





<도박쟁이가 알고 봤더니올라운드 무술 고수였다는 또 한번의 초특급 왕구라 설정을 보여주는 심중양>



#2. 주인공들이 개죽음을 불사하고 살리려고 한 극중 실존 인물 손문에 대한 고찰


스토리를 살펴보았는데, 뭐 결론적으로 줄창 아작나는 스토리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단 다 죽이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토록 필사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인물인 손문은 대체 누구이길래 지는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천국으로 보낸단 말인가? 


손문, 짱개 발음으로는 쑨원. 손중산이라고도 불리우는 사나이. 중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이름이다. 아니, 어쩌면 이 이름을 모르더라도 윤리도덕 시간에 ‘삼민주의’라는 것은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중국의 근대화의 이념이 된 삼민주의를 주창한 사나이가 바로 손문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손문은, 실제로 1905년에 동맹회라는 것을 창설해서 중국의 혁명을 위한 서포터즈를 구축하고 그 유명한 삼민주의를 주창한다. 그리고 6년 후인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나라를 쫑내고, 이듬해 중화민국을 수립한다. 


영화에서 그토록 대단한 무언가로 비추어졌던 혁명이 실제로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손문의 혁명은 씁쓸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중화민국 수립 후 임시 대총통이 된 손문은 일본의 괴뢰정부라 할 수 있는 만주국의 황제이자 중국 역사상 최후의 황제로 남은 부의(푸이)를 폐하면서 중국 고대사의 모든 잔존을 씻어내리지만, 곧바로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에 의해 혁명의 본질이 와해되면서 그와 대립하게 된다. 이후 동맹회를 국민당으로 개편한 손문은 위안스카이 타도를 위해 2차 혁명을 시도하지만, 이는 실패하게 되고 결국 그는 일본으로 도피한다. 이후 군벌과 협력 및 파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혁명을 위한 투쟁을 시도하지만 외세, 특히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국공합작을 하게 된다. 비록 이념은 달랐지만 일단은 외부의 적을 무찔러야 한다는 공통된 목적으로 뭉친 두 단체는, 치열한 투쟁 끝에 마침내 2차 대전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승리를 이끌어내고 말았지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내분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이후 손문의 후계자인 장개석(장제스)에 의해 더욱 발전한 국민당은, 모택동(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에 대항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고, 스탈린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공산당이 마침내 승리함으로써 국민당은 축출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은 혁명의 본질인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공산주의 사회로 거듭나게 되었고, 여전히 그 사상을 이어받은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쳐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로서 존속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대만은 여전히 사이가 아주아주 안 좋다.


<마이클 조던의 에어워크에 감명받아 하늘을 날고자 했던 한 암살자의 아름다운(?) 시도>



#3. 이 영화는 구라를 가장한 다큐인가? 다큐를 가장한 구라인가?


이토록 중국 근대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손문은, 대만에서는 국부로서, 그리고 중국에서는 근대혁명을 선동한 혁명선행자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품게 되는 의문이 있다. 손문이 이토록 언빌리버블한 위대한 실존 인물이라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를 아주아주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등장하는 설정이 바로 줄창 죽어나가는 결사대원들의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출신이 소개된다는 것. 그런데 정작 죽지 않아서 자막으로 소개되지 않는 핵심 인물 2명이 있는데, 그 둘은 바로 이옥당과 진소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옥당과 진소백은 실존 인물이다. 이옥당이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시작과 끝이 매우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소백이 지휘하는 동맹회에 자금을 대준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소백도 영화처럼 가치관적 모순을 드러내는 인물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혁명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친절하게도 설명이 주구장창 붙었던, 짧고 굴게 살다 갔던 나머지 결사대원들은 실존 인물이까 하는 의문. 나름 그럴싸하게 자막처리로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데, 사실 필자는 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지를 못했다. 일부는 실존 인물이었다고도 하고 일부는 아니라고도 하는데,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만약 실존 인물들이었다고 해도, 유욱백의 1:100 대결은 그야말로 오리지널 짱개식 초특급 구라 액션이었기에 도무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으며, 닌자 어쌔신을 능가하는 심중양의 전천후 대활약도 정말 대륙급 구라처럼 느껴진다. 


자, 그럼 여기서 영화의 제목을 슬쩍 건드려보겠다. 국내 개봉 제목은 <8인 : 최후의 결사단>이다. 왜 8인이지? 일단 자막처리로 나름 비장미 선사한 전사자들의 수를 세어보자. 방홍, 유욱백, 왕복명, 아사, 이중광, 심중양. 일단 6명이다. 여기에 이옥당과 진소백을 포함하면 8명이 된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8명을 주인공을 치고 제목을 지었나 보다. 하지만 원제는 十月圍城으로, 해석하면 10월에 성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애들 작명 쎈쓰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가보다. 그나마 가장 스토리에 부합되는 제목은 영어제목이다. 경호원들과 암사자들이라. 단순하지만 그나마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북한군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외모로, 자랑거리인 노래는 커녕 나왔다가 초상만 나고 마는 방홍>



원래부터 짱개영화 제목은 한자 다르고, 영어 다르고, 한글 다르기가 부주기수였다. 이번 작품도 어중간한 원제이다 보니 국내 배급사에서 또 한번의 작명 쎈쓰를 작렬해주신 셈. 뭐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4. 혁명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려한 정치적 작품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보면, 줄창 죽어나간 인물들이 왜 손문을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참으로 껄쩍지근하다. 손문이 위대하고도 중요한 인물인건 알겠지만, 그건 후세에 와서 그렇게 평가를 받는 것이고, 당시에는 과연 많은 사람들이 손문에 대해 그토록 잘 알고 있었을까? 여기에서 우스운 사실은, 목숨걸고 지키는 결사대들 조차 손문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세상 하직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의명분이 각각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떨어진다는 뜻. 예를 들어, 방홍의 경우에는 단순히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가담하게 되고, 결국 복수하다가 자기도 인생 하직한다. 심중양은 어떤가? 그는 애초부터 손문은 안중에도 없었고, 단지 월여의 딸래미 크리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옥당을 지키려고 나선 것이다. 쵸두부만 먹고 자라서 키가 홍만이형스럽다는 왕복명 역시 쌀 몇 자루 얻어먹었다고 나선다. 유공자로 나오는 유욱백은 거의 막장 수준이다.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누나인데 사랑을 할 수 없다하여 눈물로 질질 짜며 허송세월 보내다가 맨날 받아먹던 동전과 가보라는 철부채 공세로 인생뭐있어 하고 목숨 내놓은 유욱백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설정. 


손문은 마지막에 눈물을 글썽이며 이들의 죽음이 곧 혁명을 위한 필연적인 희생일 수 밖에 없음을 호소하려는 듯한 퍼포먼스를 펼치지만, 여기에는 혁명을 지나치게 과격하게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혁명이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줄기차게 일어난 사건으로, 나름 이데올로기나 시대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커다란 사건이 혁명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중국의 근대사에서도 손문의 신해혁명은 확실히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맞고, 이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잘 이해하고 있었던 손문을 비롯한 혁명가들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내세움으로써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혁명이 반드시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단지 피를 부르는 수많은 참가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수반된 어떠한 일련의 도전적 행위가 성공하여 변화를 가져왔을 때 혁명이라고 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손문의 신해혁명도 성공했기에 혁명으로 평가받아 왔겠지만, 만약 실패했었더라면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까? 아마도 그냥 손문의 반란 정도로 치부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손문이 추구하고자 했던 혁명은 과연 무고한 민중의 희생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혁명이었을까 한다면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필자가 손문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아는 바도 많지 않기 때문에 100% 정확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주주의의 개념을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바라보았던 손문이 과연 그러한 민주주의의 주인공인 민중을 줄창 죽여나가면서 혁명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이 작품을 위해 맨발의 기봉이를 10번 이상 답습했다는 사정봉. 믿거나 말거나>



반대로, 영화에서 이러한 희생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현대의 중국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일련의 정치적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은 현재 공산주의 사회이고, 공산주의는 사상의 핵심에 바로 혁명이 존재한다. 계급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투쟁을 통해 혁명을 쟁취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혁명에는 바로 무력이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강조한다. 알겠지만 모택동의 공산주의도 엄청난 유혈사태 끝에 달성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어두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혁명을 위한 희생은 숭고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재미있게도 영화가 제작된 2009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중국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중화인민사상을 합리화하고 더욱 굳건히 하자는 의도를 듬뿍 담은 수많은 문화예술 지원이 있었고, 그러한 차원에서 이 작품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 뻔하다. 예부터 소련이든 북한이든 중국이든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알게모르게 영화, 노래, 연극 등에 정치적 의미를 짙게 드리우면서 민중들을 세뇌시키는 짓거리를 많이 해왔던 바, 여전히 중국은 그러한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혁명을 이해하는 자라면 이 작품 역시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5. 임성한 작가도 울고갈 막장 주말 드라마가 되어버린 비운의 작품


뭐, 이제 살짝 영화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난 이상, 그러한 의도를 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표출해야 하는 연출 면에서는 어떤가를 살펴보자. 솔직히 필자는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일단 초장에는 손문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건드렸다는 점,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툭툭 터져나오는 호화찬란한 배우들. 이 정도면 정말 중국의 역사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데, 정작 배우들이 너무 화려한 것에 비해 역할이 짤막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역할들의 개성도 다양할 듯 하다가 너무 개연성이 떨어져버렸다는 점. 그리고 그토록 빈약한 개연성을 극복하고자 꺼낸 도구가 변기 막힌 듯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라는 점.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얼마 전 개봉한 수작 <엽문>으로 인해 견자단의 리얼 액션을 기대하고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견자단은 주인공이라 하기도 어렵고 그저 빛나는 조연 중의 한 명이라는 것 정도. 한때 4대천왕으로 홍콩을 뒤흔들었던 장학우도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안면으로 잠깐 등장해서 씁쓸함을 안겨주고, 한때 미모로 또한 홍콩을 좌지우지했던 이가흔도 눈 깜빡 하면 나왔다 들어가버리는 아쉬운 캐스팅에 눈물샘을 자극한다. 여명도 처음에 거지로 나올 때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습이다. 게다가 뒤이어 면도하고 나왔어도 어딘지 모르게 불쌍해 보이는 그 모습이란. 극중 최강의 무술 실력을 가진 인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선한 이미지 탓에 거지하고도 안 어울리고, 무술 고수하고도 안 어울리는 최악의 캐스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슈퍼스타 K와 비슷한 중국의 후난위성 TV 슈퍼걸 노래자랑대회에서 엄청난 노래 실력으로 단숨에도 스타자리에 오른 날벼락 스타 이우춘도 방홍 역을 맡으면서 실로 얼굴 망가지심이 대단하다. 이 역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역할. 사정봉도 그저 달리기밖에 못하는 맨발의 기봉이급 인력거꾼으로 등장하여 안습을 자아내고, 판빙빙도 나름 싸가지없는 여편네로 등장하여 여전히 2007년 토할 것 같은 연예인 상위랭커로서의 입지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토할 것 같은 연예인에 상위 랭크되었는지 미스테리인 판빙빙>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안타까운 배우는 바로 양가휘. 진소백이라는 나름 비중있는 인물을 맡은 그이지만, 예전의 양가휘다운 포스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양가휘인지도 몰랐다. 원래 조금 샤프해 보이던 얼굴이었는데, 이제 나이들고 머리도 유치원 갓 입학한 애들처럼 깎아놓아서 더욱 안습으로 보인다. 한때 동성서취, 동사서독, 도협, 도신 등으로 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존재하던 양가휘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지. 솔직히 역할 자체로만 보면 진소백이란 인물은 매우 매력적이고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중 내내 진소백은 말로는 혁명과 민주주의 어쩌고 떠들면서 뒤로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이중광이 짝퉁 손문으로 당첨될 때 진소백이 너만은 안 된다며 말리는 모습. 그 전에도 이미 진소백이 이옥당에게 넌 이미 돈 냈으니까 우리팀이라면서 어디서 혼자 내빼려고 하냐고 하기도 한다. 나름 용의주도하면서 기회주의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양가휘가 예전부터 살짝 그런 이미지의 배역을 해오더니 여기서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듯. 


나름 포스 풍겨주신 캐릭터는 의외로 암살자 염효국 역으로 나온 호군. <적벽대전>에서 상산의 조자룡 역으로 나와서는 너무도 선한 이미지 보여주신 덕에 도무지 암살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페이스. 그래서 그런지 눈썹을 왕창 밀어버리고 미친 놈처럼 등장해주시는 쎈쓰. 게다가 이것도 모자라 입가에 흉터까지 그어주셨다. 그런데 이 친구 은근 호빵맨 닮지 않았나? 어쨌든 암살자 치고는 너무 페이스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별 대사도 없고 그 자체로 암살자 같은 바특이 암살자역을 했다면 좀 더 엘레강스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으로 거론하고 싶은 것이 바로 화산 폭발하듯 여기 저기 뿜어져 나오는 눈물. 뭐 좀 했다 하면 일단 모든 출연진들이 울고 시작한다. 혁명이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눈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홍콩이 눈물로 홍수가 안 난 것이 천만다행인 듯. 그토록 이 작품에서는 비장미를 선사하고 작품을 더욱 주제의식 짙도록 만들기 위해 눈물잔치를 남발하였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옛말을 답습하는 연출인 듯. 적당히 울면 되는데 너무 질질 짜다보니까 보는 사람이 짜증이 날 정도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심정은 잘 알겠는데, 왜 시도때도 없이 울어버리는 것인지. 인력거 끌면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서로 쳐울고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안구가 건조하고 총총해야 빠른 시간에 완벽한 핸들링으로 인력거를 몰 텐데, 안구에 습기 가득하니 이는 마치 집중호우 한가운데에서 자동차로 야간 운전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도무지 거지와 무술고수라는 컨셉 그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여명. 왜 나왔니??>



#6. 제작 퀄리티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짱개 필름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작품이 보여준 막판 추격씬에서의 긴장감과 스릴감, 그리고 장렬한 액션은 수준급이라고 칭하고 싶다. 울어재끼는 것만 빼고는 빠른 전개에 의한 긴장감이 나름 백미이고, 짧지만 간간히 터져주는 액션은 최근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리얼 액션을 선보여주고 있다.  특히 견자단과 청레라는 태국 출신 격투가와의 대결은 엽문에서의 마지막 대결과 비슷하게 전개되어 매력적이다. 암살자로 분한 청레의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무에타이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견자단의 정통 쿵푸와는 다른 느낌. 하지만 무에타이는 입식 타격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라운딩 기술이 조금이나마 더 발달된 쿵푸에 의해 밀리고 마는 현실. 아마 상대가 무에타이가 아닌 주짓수나 레슬링이었다면 게임 자체가 너무 지루했을 듯. 


20세기 초의 홍콩의 모습도 볼거리가 제법 된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이 홍콩을 무슨 시장통처럼 꾸며놓았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보다 서구화되고 잘 정돈된 홍콩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뭐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영국에 의해 실질적으로 지배가 되었던 홍콩이었던 만큼 서구적인 느낌이 더 강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 작품을 제작한 감독 진덕삼은 사실 <삼부관>이라는 듣보잡 영화 단 한편만을 제작한 초짜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진덕삼을 가장 유망한 감독으로 칭하고 팍팍 밀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B급스러운 느낌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그의 차기작들을 기대해 본다. 수없이 등장하는 초호화 캐스팅들은 자세히 보면 홍콩과 중국, 대만의 신성들이 대거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그 동안 서로 별다른 합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3개의 영화계가 모처럼 공통분자인 손문을 배경으로 근사한 합작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영국이 지배하던 홍콩의 실상을 아주 잘 드러낸 장면. 거의 명동 수준이다>



건국 이래 현재까지 으르렁대고 있는 대만과 중국. 최근에도 여러 차례 군사적, 정치적 갈등이 있었고, 앞으로도 절대 타협의 의지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나라. 혹자는 세계 3차 대전은 아시아, 그것도 대만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 못지 않게 사이 더럽게 안 좋은 두 나라가 이번 영화를 계기로 사상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7. 영화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 손문이 영화에서처럼 1906년 10월에 홍콩에 갔는가에 대해서는, 실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손문은 중국 내에서의 국가적인 반란 실패와 여러 위협 때문에 일본으로 도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홍콩 근처에도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구라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결사대 중 자막처리까지 하면서 세상 하직한 사람들의 실존 여부도 답이 나오려나? 그것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따왔다고 했으니, 인물들은 사실이되 활약상은 거짓이 될 수도 있겠다. 


나름 소림사 출신에 엄청난 거구로서 장풍까지 구사하는 것으로 등장했던 NBA 농구선수 바특이, 소림사 무술은 내팽겨치고 야자나무로 덩크슛만 하다가 끝나는 씁쓸한 영화, <8인 : 최후의 결사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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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까

후덜덜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상세하게 스포까지 좔좔좔 유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화 리뷰 블로그!!! 그러나 주인장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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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葉問)

Movie 2016. 1. 7. 13:35

※ 본 리뷰는 필자가 2009년 8월에 구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엽문 (葉問)


<앞문도, 뒷문도 아닌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1. 실전무술을 구사한 이소룡의 스승 - 영춘권 고수 엽문


요즘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하늘을 콕콕 찌르고 있다. 실제로 펀치와 킥이 오가고,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한방 떡실신의 매력을 선사하는 K-1이나 UFC, M-1 글로벌 등등 이종격투기를 베이스로 한 종합격투기가 이제는 가장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종격투기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킥복싱,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레슬링, 심지어 씨름까지 별의 별 무예가 다 등장하는데, 유독 쿵푸만큼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네 마음 속에는 쿵푸야말로 당할 자가 없는 초절정 필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황당하리만치 아름답고 절묘하며 치명적인 쿵푸였기에 정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역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쿵푸는 실전에서 약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에서 활용도가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쿵푸의 원래 취지는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심신의 단련이 아니었던가 쿵푸가 너무나도 형식적이어서 그 실용성에 심히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주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소룡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무술을 습득한 이소룡은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형식을 버린 미래지향적 혁신적 무술인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다. 비록 비운의 절명으로 널리 보급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확실히 절권도는 기존의 무술과 달리 상당히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절권도를 창안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바로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그의 사부의 철학이 있었으니, 무술에 있어 형식은 필요치 않다고 얘기한 영춘권의 고수 엽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은 바로 이소룡의 사부이자 영춘권의 초절정 고수이자, 일제시대 중국인들의 정신적 힘이 되었던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엽문>에 대해서 리뷰해 보고자 한다. 역시 오늘도 리뷰의 첫 순서로 스토리를 다듬어보고 가겠다.


<도저히 64년생이라 믿기지 않는 페이스를 자랑하는 견자단>



#2. 스토리 - 뒤늦게 각성하는 게으른 고수의 일대기


때는 1930년대. 중국의 불산 지역은 쿵푸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쿵푸가 번성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유명한 유파들이 모여 하나같이 쿵푸학원을 차려놓으니, 그야말로 강남의 학원가를 능가하는 과열경쟁의 양상을 띄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학원차릴 생각없이 매일 니나노하는 쿵푸의 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춘권 전수자인 엽문(견자단)이다. 


어느 날 새롭게 불산으로 학원 간판내러 온 료가권의 료 사부(진지휘)는 자신의 명성을 살리기 위해 엽문과 폐문결투를 치루기를 요청한다. 늘 마누라 등살에 무술과 거리를 두고 있던 엽문은 어쩔 수 없이 료 사부와 대결을 펼치고, 단 10합도 안되어 료 사부를 패대기 친다. 그런데 마침 나무에 걸린 연을 잡으러 온 사담원(황우남)이라는 청년이 그 장면을 보게 되고, 이후 자신의 형이 알바하는 식당에 가서 소문을 내고 만다. 이 소문을 들은 료 사부는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사담원을 해하려 들고, 사담원의 형인 무치림(석행우)은 평소 엽문을 사부로 불러왔던 터라 동생을 꾸짖는다. 마침 식당에는 엽문이 친구인 주청천(임달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터라, 사담원은 엽문에게 달려가 진실을 알려달라고 조르지만, 료 사부의 명예가 걸린 일인지라 대결은 없었다고 거짓을 전한다. 이에 무치림은 사담원을 꾸짖고 사담원은 크게 실망하며 그 길로 가출을 해버린다. 


어쨌든 무술이라면 치를 떨며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 때문에 편할 날이 없는 엽문. 그러던 어느 날 북쪽에서 왔다는 도장깨기의 달인 금산조(번소황)가 불산의 모든 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만다. 믿었던 료가권마저 깨지자 금산조는 불산도 별 것 없다고 우쭐해하지만, 진정한 고수인 엽문을 깨지 않고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로 인하여 금산조는 엽문을 찾아 간다. 그야말로 효도르와 크로캅의 대결을 능가하는 빅 이벤트라고 생각한 마을 주민들은 금산조를 따라 엽문의 집으로 향하고, 마을 경찰관이자 엽문의 팬인 리순(임가동)의 협조로 폐문대결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엽문의 마누라인 장영성(웅대림)의 바가지. 눈치를 보고 있는 엽문에게 금산조는 야유를 날리고, 이에 열받은 장영성은 엽문에게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한다. 단, 집안의 가재도구는 부서지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 


<료가권과 영춘권의 대결. 왼쪽의 료 사부 역을 맡은 진지휘는 '삼국지 용의부활'에서 장비 역을 맡았던 배우>



우쭐대는 금산조와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대결이 펼쳐지고, 금산조는 칼까지 빼들며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결국 엽문에게 죽도록 얻어터진다. 결국 싸움에서 패하고 망신을 당한 금산조는 영아치 부하들을 이끌고 불산을 떠나고, 이후 엽문은 불산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더불어 많은 주민들이 영춘권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고, 심지어 그의 베프인 주청천마저 자신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지만, 엽문은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도장운영은 금물로 여기고 버틴다. 


평화롭던 세월도 잠시.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고,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인 1940년대. 불산마저 초토화되고, 대대로 부유함을 자랑했던 엽문의 저택마저 일본군에게 빼앗겨 버리면서 엽문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만다. 바가지긁던 초절정 미인 마누라와 아직 철부지인 아들래미 하나만을 데리고 거리에서 비참한 삶을 보내게 된 엽문. 쌀이 없어 귀중품마저 탈탈 털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이제 한계. 결국 엽문은 쪽팔림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게 된다.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결국 어렵게 구한 일은 석탄나르기. 석탄공장에서 검은 연기 들여마시며 일을 하던 엽문은 한때 불산에서 이름을 날렸던 각 도장의 사부들이 모두 석탄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세월의 무성함과 무술의 무용함에 안타까워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 무치림과 조우하게 되고, 아직도 가출한 동생을 못 찾아 미안하다는 무치림과 함께 새로운 일을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이 석탄 공장에 들어닥치고, 무술을 좋아라 한다는 미우라 장군(이케우치 히로유키)의 지시로 무술 고수들을 초빙하여 가라데와 격투를 벌이는 이벤트를 벌이려는 일본군. 그런데 일본군의 통역을 맡은 이가 다름아닌 리순이었던 것. 그야말로 매국노의 모습이 아니던가. 아무튼 대련에서 이기면 쌀을 준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일본군을 따라 가고, 그 중에는 무치림이 섞여 있었다. 


<가라데가 세상 최강임을 내세우는 미우라. 일본 아해들은 전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미우라 장군은 가라데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 무술과 일본 가라데의 대결을 추진하고 있었고, 무술의 명고장이라는 불산에서 특별히 고수들을 찾아내어 자신이 직접 박살내고 싶어했던 것. 무치림이 와보니 이미 료가권의 료 사부가 일본군들과 1:1 가라데 대결을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하면서 쌀을 타가고 있었다. 이에 혹한 무치림은 쌀과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결에 나서고, 미우라 장군은 몸이라도 풀기 위해 특별히 1:3 대결을 지시한다. 무치림과 2명의 도장 사범이 미우라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미우라는 엄청난 가라데 실력으로 이 세 명을 떡실신 시킨다. 하지만 자존심이 대단한 무치림은 절대 질 수 없다며 끝까지 개기고, 결국 열받은 미우라는 무치림을 영원히 잠재운다. 


한편 새로운 일 때문에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던 엽문은 마침 불산으로 돌아온 친구 주청천이 과거 자신이 꿔 준 돈으로 목화공장을 차렸다는 말에 반가워 간만에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두 사람. 하지만 다음날부터 무치림이 안보이게 되자 엽문은 수상하다 싶어 리순을 따라 대결현장으로 따라가고, 그 곳에서 일본군 3명과 1:3 대결을 펼치던 료 사부가 항복을 하자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우라 장군은 무도인의 예를 운운하며 갑자기 총을 쏜 자신의 부하를 탓하지만, 이미 물건너간 시츄에이션. 평소 어떠한 일에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엽문은 비로소 분노를 느끼고, 료 사부의 죽음과, 무치림의 죽음과, 그리고 중국인의 무너진 자존심으로 인하여 초샤이어인으로 변신! 미우라에게 10대 1 대결을 요청한다. 


일본군 10명과 싸우게 된 엽문. 하지만 10명이 단 한번도 엽문을 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묵사발 되고 만다. 이에 놀라는 미우라 장군. 엽문은 포상으로 준 10개의 쌀은 받지 않은 채 료 사부의 피가 묻은 쌀 한 포대와 자신이 간직했던 고구마 반쪼가리만을 든 채 그렇게 자리를 떠난다. 


<전설로 남아 있는 가라데 고수들과의 1:10 대결 장면>



한편 친구 주청천이 운영하는 목화 공장에는 때아닌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바로 엽문에게 된통 당했던 금산조가 산적이 되어 목화공장을 습격한 것. 주청천은 금산조에게 얻어터지고 다음 번에는 돈을 꼭 준비하라는 협박을 듣는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엽문은 주청천과 공장인부들의 요청으로 비로소 처음 사람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하기에 이른다. 


대결 이후 소식이 끊긴 엽문을 찾기 위해 미우라 장군은 리순을 족쳐서 엽문의 행적을 캐고, 리순은 거짓 보고를 하면서 엽문을 계속 감싸준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일본군이 엽문의 집에 쳐들어오고 아들과 아내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한 엽문은 일본군 장교를 때려눕히고 그 길로 리순의 도움을 받아 리순의 집으로 숨어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숨바꼭질 삶을 살며 목화공장 인부들에게 영춘권을 전수해준 엽문. 그리고 금산조가 다시 찾아왔을 때 공장인부들은 영춘권을 내세우며 금산조 일당과 한판 패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금산조도 워낙 깡다구가 있었던 인물. 전세가 밀리자 엽문이 나타나고, 엽문은 또다시 금산조를 피박살내고 그를 쫓아낸다. 그런데 금산조의 산적 무리에 무치림의 동생인 사담원이 있었던 것. 엽문은 사담원에게 죽은 형의 유품을 건네주고, 이에 사담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한편 목화공장 사건이 일본군에게 알려지자 일본군은 엽문을 찾기 위해 공장으로 들이닥치고, 엽문은 스스로 나서 일본군에게 연행된다. 그리고 미우라 장군은 엽문에게 일본군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지만, 자랑스런 중국인임을 내세우며 거절하는 엽문. 그리고 엽문은 복수를 위해 미우라와 1:1 대결을 요청한다. 







<물 흐르듯 한 편의 감동의 서사시를 눈으로 보는 듯한 영춘권>



#3. 동시대를 평정한 4명의 고수 - 엽문, 곽원갑, 황비홍, 이서문


엽문의 스토리는 기존에 개봉되었던 모 영화가 심히 비슷한 구조와 주제의식을 따라가고 있다. 눈치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로 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 되겠다. 재미있게도 둘 모두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고, 또한 무술의 고수였다는 점, 그리고 일제시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더더욱이 일본군과 무술 대련을 통해 중국 무술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는 점 등 엄청나게 많은 유사점이 있다. 


사실 곽원갑과 엽문을 놓고 얘기를 하자면 너무나도 많은 얘기거리가 있다. 이공…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난감하다. 먼저 곽원갑과 엽문,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전설적인 무술 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곽원갑은 최근 영화를 통해서 알려졌듯이 1868년~1910년에 살다간 인물로, 중국의 유명한 도장 ‘정무문’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여러 무술들을 종합하여 곽가권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중국 개화기 당시 무술을 통해 부국강병과 심신을 달랠 것을 주창하였다. 하지만 1910년 갑작스레 사망하였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죽음은 독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에서 그 죽음을 일본의 소행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중국의 무술 대결에서 너무나도 압승을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독을 타 곽원갑을 죽였다는 설정이다. 아무튼 향년 42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죽은 무술의 달인 곽원갑. 


이에 비해 엽문은 비숫했던 처지에도 불구하고 꽤 평탄하게 살았다. 1893년~1972년으로 다른 3명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존재하였던 엽문은, 영화에서와 같이 일제침략 이후 무술로 부국강병 할 것을 깨닫고 홍콩으로 망명하여 뒤늦게 영춘권을 보급시킨 인물이다. 살아생전 조용하고 차분하게 살았다는 엽문은, 그래서 그런지 인상이 참으로 단아하고 푸근해 보인다. 지금은 아들인 엽준이 영춘권을 전수하고 있으며, 13세였던 이소룡을 제자로 받고난 후,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부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제 두 명이 남았는데, 먼저 가장 유명한 사람부터 얘기해보자. 바로 황비홍 되겠다. 아주 지긋지긋하게 시리즈가 나오는 황비홍. 설마 이 사람도 실존 인물이야? 하고 놀랬다면 중국 역사에 관한 지식에 대해 한번쯤 반성해 보시길. 어쨌든 황비홍은 1847년~1924년에 존재했던 인물로, 영화에서처럼 변발을 주 스타일로 하고 ‘보지림’이라는 의원을 운영하면서 무술마저 초절정에 오른 고수이다. 황비홍은 방세옥의 3대 제자로 불리우며, 불산 출신으로 나중에는 광주에서 무술로 이름을 떨쳐 도장도 내고, 의원을 차려 약자들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황비홍은 대대로 황씨가문의 가권인 홍가권을 전수받았고, 이 외에도 철산권과 무영각 등을 전수받아 당시 광주 최고의 고수로 군림하였다. 특히 당시 외세의 세력에 항거하여 조정을 수복하고 한족의 부흥을 내세웠던 진가락의 천지회에 가입하여 천지회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홍가권을 보급하여, 홍가권을 천지회의 대표 무술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이바지 하기도 하였다. 이후 황비홍은 화재로 인해 의원이 무너지고, 큰 아들마저 사업 실패로 망하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살아 생전의 엽문의 모습. 도무지 견자단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1인. 위의 세 명은 영화로라도 만들어졌기에 들어는 봤겠지만, 나머지 한 명은 대체 누구일까? 바로 전설적인 인물 이서문이다. 1864년~1934년에 존재했다는 이서문은 다른 세 명과는 달리, 그야말로 극의에 오른 실전무술을 구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팔극권과 창으로 유명한 이서문은 다소 괴팍하고 외골수적인 성격 탓에 영웅 대접은 못 받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초부터 무술을 배움에 있어 인의예지나 심신의 단련 등은 마음에 없었고, 오로지 상대를 한 방에 무찌르는 극의의 기술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의, 타의적으로 많은 이들을 해쳤다고 하며,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도 독살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타인에게 원한을 많이 사고 다녔을 법한 다크포스를 뽐내고 다녔다지만, 이서진은 단 1합에 상대를 죽일 정도로 강력한 무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단 1합에 상대의 7개의 구멍에서 피를 뿜고 죽게 하였다는 ‘칠공분혈’의 에피소드는 전설 중의 전설로 남아있다. 


왜 갑자기 위의 4명의 절대 고수를 거론하는가 싶겠지만, 재미있게도 모두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 4명이 과연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을까? 현재로서는 사료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만나서 대결을 했었다면 서로 치명상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료로만 놓고 볼 때 가장 강한 자는 이서문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격동기에 살았던 4명의 전설의 고수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지냈을까? 명성이 전 중국으로 퍼졌기 때문에 서로를 인지하고는 있었겠지만, 과연 실제로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필자의 지식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다. 



#4. 이소룡을 용으로 만든 장본인


곽원갑과 엽문의 관계는 단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것 빼고도 다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바로 불운의 액션 스타 이소룡이다. 이소룡이 이미 엽문을 스승으로 두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곽원갑은 어떤 관계일까가 궁금해진다. 사실 이소룡과 곽원갑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이소룡이 살아 있을 때 곽원갑은 이미 고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룡을 최고의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해준 작품인 <정무문>에서 그는 곽원갑과 관계를 맺는다. 바로, 정무문의 수제자인 이소룡이 자신의 스승인 곽원갑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 어쩌면 자신의 실제 스승이었던 엽문과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곽원갑의 삶에 이소룡은 애착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5. 본래 여자를 위해 창시된 영춘권 


기왕 무술의 족보 따지는 얘기 비스무리하게 나와서 추가로 또 얘기하자면, 엽문의 필살기인 영춘권에 대해 알고 넘어가고자 한다. 영춘권은 발음상으로는 상당히 추리~한데, 이는 그 기원이 바로 추리~한 여자의 이름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미 양자경이 주연한 <영춘권>이라는 작품이 존재하는데,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엄영춘이라는 여자가 바로 영춘권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자가 창시한 최초의 권법이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청나라 시대에 존재했다는 엄영춘은 특유의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여성에 적합한 무술을 개발하여 이를 영춘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의 남편인 양박주에 의해 널리 전파되어 여러 대를 걸쳐 전수된 영춘권은 엽문을 계기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되고, 이후 이소룡 또한 영춘권을 베이스로 절권도를 창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존하는 영춘권의 제자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영웅본색>의 대머리 사나이 ‘송자호’역을 맡은 적룡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게도, <영춘권>에서 견자단이 남편인 양박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견자단과 영춘권의 묘한 인연이지 않은가? 


<영춘권의 시조라 불리우는 엄영춘의 수련 모습>



#6. 더 이상 구라 액션은 없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와서 얘기를 하자면, 일단 최근에 시들해진 무술 영화에 새로운 시도였다는 것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자 가치이다. 과거 황비홍 식의 초절정 구라 액션을 선보이면서 인기를 끌던 무술영화들이 더 이상은 씨도 안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K-1이나 UFC같은 실전 이종 격투기에 눈높이가 맞추어진 관객들에게 더 이상 구라 액션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보다 사실적이고 타격감있는 액션이 필요해졌고, 그 중심에 바로 견자단이 있었다. 


37단의 종합 무술인 견자단의 리얼한 액션과, 실전을 방불케하는 타격감 넘치는 격투신은 가식을 벗어던지고 관객 앞에 섰다. 특히 와이어 없이 펼친 견자단의 리얼 액션은 중국 무술의 신비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로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 일찌감치 성룡이 와이어 없이 정말 몸을 던지는 리얼 액션을 펼쳤지만, 성룡의 무술은 약간 코믹스러워서 흔히 무술다운 무술 액션을 평하기에는 성룡의 연기는 다소 형식이 없었더랬다. 하지만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아무래도 가짜라는 게 티가 나는 것이 액션연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견자단이 영춘권의 필살기인 연타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그 타격감이나 리얼함에서 정말 압권이다. 견자단이 이러한 실전 영춘권을 익히기 위해 엽문의 아들이자 영춘권의 전수자인 엽준으로부터 9개월간 필사적으로 영춘권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의 액션은 기존의 무술영화의 가식을 벗어 던졌다는 점에서 실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실존 인물의 영웅담을 솔직 담백하게 묘사한 것도 재미있다. 황비홍의 경우는 너무 방정맞게 그려진 느낌이 강하고, 곽원갑의 경우는 너무 무게를 잡았더랬다. 하지만 엽문은 때로는 비장하면서도 때로는 재치있게 그려져서 정말 사람다운 맛이 난다. 일례로 엽문이 그토록 무술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눈치보며 사는 모습은 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하는 안타까운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일제의 점령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거의 굶다시피 사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는 부랑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통 영웅이라 하면 약점은 가리고 최대한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성이 아니던가. 하지만 적어도 엽문에 대해서 만큼은 그러한 가식을 그나마 벗어 던졌다고 볼 수 있겠다. 



#7. 견자단이 보여준 프로페셔널 정신


견자단은 엽문의 배역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춘권도 열심히 전수받았다지만 수시로 엽문의 행적을 되밟으며 그의 인생을 이해하려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엽문이 실제 쓰던 찻잔을 이용해 차를 마시며 엽문처럼 말하고 엽문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 엽문을 보면 인상은 편안한 옆집 아저씨 스타일인데, 몸매가 상당히 한민관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견자단도 10kg 이상을 감량하면서 최대한 말라비틀어지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투혼이 있었기에 기존의 견자단의 연기력 제로에 대한 불안을 싹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데뷔작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웅대림. 기대가 크다>



견자단에 대해서 살짝 얘기해 보자면, 그는 어렸을 적부터 무술 고수였던 어머니 밑에서 무술을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각종 문파의 무술을 모두 섭렵하고, 총 37단의 종합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청년시절 각종 무술대회에서 모두 우승이라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무술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최초의 예능인이 바로 견자단 되겠다. 그 이후로 얼굴 좀 되고 실력 좀 뛰어난 무술인들이 견자단의 뒤를 이어 예능에 뛰어들었는데, 조문탁이 그 대표적인 후발 주자 되겠다. 


아무튼 견자단은 여러 무술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무술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연기력이 딸려서 주연은 늘 놓치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그가 택한 길은 바로 무술감독. 이후 여러 메가톤급 작품에서 무술감독으로서 완성도 높은 무술 액션을 지도하였고, 특히 구라식 액션을 벗어던지고 실전 액션을 강조하면서 무술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그는 헐리우드에서도 초특급 무술감독으로 초빙받아 작품에 참여하였고, <블레이드 2>에서는 무술감독 겸 배우로 직접 출연하는 이력을 남기기도 한다. 


견자단은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장편 짱개 드라마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했던 진진 역을 맡아서 국내 안방 극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사실 견자단은 이소룡의 엄청난 팬이었기 때문에, 그 역에 지대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센세이션이 적었는지, 큰 인기는 끌지 못한 채 몇몇 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장예모 감독의 대작 <영웅>에서 은모장천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연기력을 절정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제서야 무술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내공 좀 되는 무술연기인이 되었다. 


<목각인형은 영춘권의 트레이드 마크이다.이소룡도 실제로 저것을 애용했다>



#8. 앞날이 기대되는 출연진과 제작진


견자단 말고도 놀라운 배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엽문의 아내 장영성 역을 맡은 초절정 미모의 웅대림. 보면 알겠지만 견자단보다도 키가 크다. 실제로 두 부부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견자단이 키가 작다고는 해도 이토록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체격 조건이라니. 워낙 절제된 연기만 선보여서 그런지 아직 연기력에 대한 검증은 안 되는 편이지만, 놀랍게도 웅대림은 이번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기자인 만큼 차기 작품도 기대가 매우 된다. 


엽위신 감독이 전체적으로 액션과 연출, 그리고 드라마를 훌륭하게 조율하여 완성도 높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도 <공각기동대> OST 등으로 유명한 가와이 겐지가 맡아 장엄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근래들어 이 정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무술 영화가 없었기에, 엽문은 무술 영화 부흥의 새로운 선구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엽문과 이소룡의 커플 사진. 그런데 엽문의 저 짝발은 뭥미?>



국내에서도 리얼 액션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뛰어난 작품성,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는 민족정신이 반영되어서 그런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엽문. 하지만 최근 홍콩으로 망명한 이후의 에피소드를 다룬 <엽문 2>를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문득 제 2의 황비홍 시리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중국 아해들은 딱 좋겠다 싶은 시점에서 꼭 한번 더 오바하는 습성이 있는데, 엽문도 제발 더 이상 무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은 고인이 된 엽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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